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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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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오남두에게 답함 을축년(1925) 答白光五南斗 ○乙丑 형이 보낸 편지에서 '월사 이정구(李廷龜)의 변론이 없었다면 정응태(丁應泰)가 우리나라를 무함한 것1)은 무함 당한 채 끝났을 것이고, 여러 군자의 변론이 없었다면 오진영(吳震泳)이 선사를 무함한 것2)도 무함 당한 채 끝났을 것이다.' 라고 했으니, 이것은 참으로 명확한 의론입니다. 오호라! 사람들이 모두 나라가 무함을 당한 것은 통분할 줄 알면서 스승이 무함을 당한 것은 통분할 줄 모르니, 무엇 때문입니까? 어찌 스승을 부모나 임금과 다르게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세 분의 은혜로 살기 때문에 똑같이 섬겨야 한다는 의리3)를 알지 못하는 것이니 사람으로서 이러한 의리를 모르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오진영이 스승을 무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정응태가 우리나라를 무함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임금과 스승을 잊고서 난신적자를 허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兄喻: "無李月沙之辨,則丁應泰之誣國也,誣而已矣; 無數君子之辨,則吳震泳之誣師也,誣而已矣." 此眞確論也.鳴呼! 人皆知國誣之爲痛憤,而不知師誣之爲痛憤,何也? 豈以師與君父差殊觀故耶.此不知生三事一之義者,人而不知生三事一之義,則烏得謂人乎哉.若謂吳不誣師,則是謂丁爲不誣國者也,非忘君師與亂賊者乎? 정응태(丁應泰)가……것 선조(宣祖) 31년(1598) 명나라 병부주사(兵部主事)인 정응태가 조선에서 왜군(倭軍)을 끌어들여 중국을 침범하려 한다고 자기 나라에 무함한 사건이다. 이때 월사가 조선국변무주문(朝鮮國辨誣奏文)을 지은 뒤 진주 부사(陳奏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무함 사실을 밝힌 결과 정응태가 파직되고 마침내는 옥에 갇혀 죽게 하였다. 오진영(吳震泳)……것 오진영이 일본 총독부에게 문집 출판 인가를 받아 일제치하에서 간재가 자신의 문집을 출판하라 명했다고 간재 문인들을 속인 것을 말한다. 세분의……의리 부모와 스승과 임금 세 분을 똑같이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국어(國語)》 〈진어(晉語) 1〉에 "사람은 세 분의 은혜로 살게 마련이니, 그분들을 똑같이 섬겨야 한다는 성인의 말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버이는 낳아 주신 분이고, 스승은 가르쳐 주시는 분이고, 임금은 먹여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民生于三 事之如一 父生之 師敎之 君食之]"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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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승 종섬에게 답함 갑자년(1924) 答金允升鐘暹 ○甲子 가르쳐 주신 뜻을 대략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형이 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저 또한 형의 주된 뜻을 분명히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른바 이쪽은 어느 쪽을 가리키며 저쪽은 어느 쪽을 가리키는지요? 영남을 이쪽이라 말하고 호남을 저쪽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감히 알 바가 아닌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호남을 이쪽이라 말하고 영남을 저쪽이라 말한 것이라면 형은 이 편지에 일삼을 필요가 없이 곧 전편을 반복하여 읽어보면 피차간의 여탈(與奪)이 극히 선명하니 의심난 것을 질문하여 채택하여 살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영남이 호남의 인가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버리고 경성 사람에게 인가를 구걸한 것에 대해 일찍이 분명한 말로 배척했었습니다. 음성(陰城)의 인교서(認教書)가 나오자 이것은 대의(大義)가 관련된 것이라 말하고 절절히 근심하고 힘들게 변론하여 한쪽의 지목을 후하게 받았지만 후회하지 않았고, 영백씨(令伯氏)가 스승의 무함을 변론하지 않은 것과 관련하여 옛사람이 부들부들한 가죽을 차고 다니거나 활시위를 차고 다니면서 스스로를 경계한 고사31)를 끌어다가 직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대한 가르침을 받듦에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형의 몽매함이 진실로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김용승(金容承)은 이미 사문(師門)에서 스스로 물러난 자인데 그의 무죄를 변명했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다만 스스로 변명할 것은 있습니다. 내가 김용승을 따른 것이 그 죄를 알지 못했던 날에 있다고 했는데, 지난날에 이미 편지로 절교를 고하였는데 무슨 간섭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음성은 그가 연전에 한농노(漢農老)라고 부른 죄를 알고 있었고, 그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선사를 무시하는 죄를 알고 있었음에도 오히려 그를 여러 해 동안 존경하고 믿어서 선사의 원고를 교정토록 청하였으니, 이것은 김용승을 당인(黨人)으로 삼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용성이 음성에게 사과하면서 "사우간(師友間)으로 선사(先師)를 대하였다,"고 했는데, 사우간이란 말은 끝내 스승을 배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음성은 서로 절교했다고 말하지 않고, "내가 그대를 더는 성토하지 않을 것이다. 조용하게 잘못을 고치고 경향(京鄕)을 미치광이처럼 쏘다니지 말라."라고 했으니, 이것은 김용승을 당인으로 삼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일 풍파가 일어났을 때에 추후에 와서 보고 김용성에게 여관에 물러가서 기다리지 않고 곧장 들어왔다고 질책한 뒤에, 다시 여러 사람에게 말하기를, "그가 이미 상제(祥祭)에 천리 길을 달려 왔으니 반드시 사죄하러 온 것이다. 붙들어 내보낸 뒤에 그 고문(告文)을 보고서 진퇴를 결정해야지, 먼저 멋대로 영전(靈前)에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김용승을 위하여 변명했다고 성토를 한다면 다만 받아들일 뿐이니 또한 다시 어찌하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저와 김용승은 모두 중년입니다. 절교 여부와 변명 여부는 앞날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니, 또한 다시 무슨 변명을 많이 하겠습니까? 教意略綽一覽,非惟兄之不能洞悉我情,弟亦難以明見兄之主意.所謂此邊指何邊,彼邊指何邊? 謂嶺爲此,而謂湖爲彼乎? 則有非吾之所敢知者.謂湖爲此,而謂嶺爲彼,則兄必無事乎此書,乃將全篇反覆,則彼此之與奪,十分躍如,可得以質疑而冀採察焉.弟於嶺之舍湖不認而乞京認也,蓋嘗顯言斥之矣.逮夫陰城認教書之出也,謂是大義攸關,切切然憂之,苦苦然辨之,厚被一邊指目而不悔,至以令伯氏之不辨師誣,獻佩弦佩韋之讜言矣.今承盛教乃如此,兄之昧實至於此乎?金容承旣是自退師門者,則分疏其無罪,果成說乎? 但自爲分疏者,則有之.蓋曰我之從金,在不知其罪之日,向旣以書告絕,則有何相涉乎? 陰城則知其年前呼漢農老之罪,知其心中久無先師之罪,猶與之多年敬信,至於請校師稿,此非黨金乎? 金謝過陰城,而曰"師友間處先師"云,則師友間終是倍師也.陰城不曰相絕,而曰"吾不復討君,其安靜改過,勿狂走京鄉",此非黨金乎云爾.當日風波之起也,追後來見,旣責金以不退舘俟之而直入,復言於衆中曰: "彼旣千里赴祥,則必其謝罪來者也.扶而出之,見其告文而進退之可也,先肆拳踢於靈前,則不可也." 以此而爲爲金分疏聲討之,則只當受之而已,亦復何哉? 雖然弟與金俱是中年人,絕與不絕,分疏不分疏,觀前頭可知,又多何辨? 옛사람이……고사 강하고 사나운 자는 억제하여야 하고, 두려워서 위축된 자는 기운을 충분히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한비자(韓非子)》 〈관행(觀行)〉에 "서문표(西門豹)가 성격이 급하여 무두질한 가죽[韋]을 차고 다녔고, 동안우(董安于)는 성격이 느슨하여 활줄[弦]을 차고 다니며 스스로를 급하게 하였다.[西門豹之性急 故佩韋以自緩已 董安于之心緩 故佩弦以自急]"라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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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승에게 답함 갑자년(1924) 答金允升 甲子 오늘날의 일은 다만 음성(陰城)의 무함 여부와 문죄(問罪)자의 강제 여부를 철저히 따져야 할 뿐입니다. "청원하여 발간하고 배포하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다."32)라는 가르침은 이 어떠한 의리입니까? "힘을 헤아려 하라."는 것과 "반드시 깊게 구애될 필요는 없다."는 설은 이 어떠한 뜻입니까? 음성을 성토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욕보이는 거시니 따르지 말라.'는 것은 '힘을 헤아려서 하라', '구애될 필요는 없다.'는 것과는 얼음과 숯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것과 같다."라고 하는 반면, 음성을 편드는 자들은 "저것도 한 때이고 이것도 한 때이니 병행하더라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또한 누가 옳고 누가 잘못입니까? 공평하게 듣고 아울러 살펴서 그 시비를 판단한 연후에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형은 선사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음성의 주장을 감죄하면서 조금도 자세히 따지 않고 현고한 자에 대해 뒤늦게 문제를 삼았습니다. 당초에 피차가 동의하여 변명하였는데, 영남 사람들이 출판사에 투고하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으며 가리고 막았습니다. 이것이 말이 더욱 많아질수록 끝내는 합치할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큰 윤리이고 의리의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니, 마땅히 신중히 생각하고 명확하게 분변하여 완전히 밝혀지지 않으면 그만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청컨대 그 설을 끝까지 다하고자 합니다.보내온 편지에 의전(義戰)이 없다는 것과 저쪽이 이쪽보다 낫다고 하는 것으로 편지의 첫머리를 삼고 호남과 영남의 단안(斷案)을 주장하였는데, 저는 완전히 타당하지 않은 제목을 붙였다고 생각합니다. 호남이 선사께서 인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여 영남이 원고를 발간하려는 것을 배척했으니, 그 다툰 것은 '의(義)' 한 글자일 뿐이고 애당초 의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으며, 더구나 선사가 무함을 당한 것을 보고 분변하여 성토하는 것은 의리의 가장 큰 것이니, 의전이 아니라고 한다면 더욱 타당하지 않았습니다. 호남이 주장한 전후의 의리가 이처럼 명쾌하고 정대하니, 호남이 영남보다 낫다고 해도 오히려 잘못이지만 영남이 호남보다 낫다고 한다면 더욱 큰 잘못이 됩니다.만약 아무개 일과 아무개 일을 대비하여 논하고, 개개인을 나란히 평가한다면 피차의 득실과 우열이 어찌 없을 수 있겠습니까? 애당초 말을 바르게 하여 이론을 세우지 못한 것은 또한 죄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남이 거리낌이 없는 것을 보면, 인가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주장한 것은 호남입니다. 경신년(1920)의 유서(遺書)가 나온 이후에 더욱 조마조마하며 이전의 죄를 통렬하게 후회한 것은 호남 사람입니다. 애써 인가하지 않은 사실을 버리고 유서를 무시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누차 위반하여 투고를 약속하고 서울에 인가를 구걸한 것은 영남과 음성 사람이니, 또한 유독 무슨 마음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문인들이 스스로 만든 죄이니, 다만 선사에게 누를 끼쳤을 뿐이라고 해도 되고 대죄가 아니라고 말해도 됩니다. 그런데 심지어 "선사께서 인의(認意)와 인교(認教)가 있었다."고 말한 것은 도대체 어떤 곳에 선사를 놓아두고자 한 것입니까? 이는 선사를 무함한 대죄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처음 함재(涵齋 김낙두金洛斗)의 인가설을 성토하는 편지가 왔을 때에 만약 답하기를 "선사의 혼령이 반드시 불같이 나에게 화를 낼 것이지만 나는 다만 오래도록 전하고 싶어서 죄를 지으면서 이것을 했습니다."라고 했다면 일찌감치 아무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내 말하기를 "선사께서 홀로 앉아 있다가 진영(震泳)에게 명하기를 '세상의 앞날은 알 수가 없으니 문고(文稿)를 군이 모쪼록 잘 헤아려 하라.' 하였다."라고 하고, 또 스스로 《오현수언(五賢粹言)》의 간인을 인가한 설을 인용하였으니, 무엇 때문입니까? 자승(子乘)이 편지로써 인가한 뜻을 질문하였을 때, 만약 답하기를 "선사의 절의로써 어찌 이런 뜻이 있었겠습니까. 내가 비록 못났다 하더라도 또한 어찌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말을 전한 자가 망령된 것입니다. 절대로 다시는 말을 하지 마시오."라고 했다면 전혀 아무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선사께서 일찍이 소자에게 책을 쓴 사람은 무관하니 깊이 구애될 필요가 없다는 말로 가르치셨다."33)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또 《오현수언》을 인가했다는 설은 일찍이 한 글자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니, 원고를 발간하는 날에 이 설로 증명한 것은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치지 말고 오이 밭에서 신발 끈을 매지 말라는 경계를 스스로 범한 것이니 감히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물며 다시 큰 소리로 말하기를 "선사가 《오현수언》을 인가한 설은 천지가 만물을 낳고 성인이 표준을 세우는 마음이기 때문에 꺼리지 않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였다."고 했으니, 무엇 때문입니까? 이미 그 글을 완성하여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전파하여, 결국 온 땅에 넘치도록 의심과 비방을 일으키고 하늘 가득 기롱과 조소가 퍼지게 하여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하나같이 생각이 없음이 어찌 이리 심하단 말입니까?근래에 장성(長城) 송문인(松門人)34)으로부터 온 자가 말하기를 "선사가 만약 인가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고제가 어찌 감히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라고 하고, 또 흥덕(興德) 면문인(勉門人)으로부터 온 자가 말하기를 "이런 선사가 있음에 이런 제자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승욱(李承旭)이 〈전간재전(田艮齋傳)〉을 지어 각 신문에 게재하려고 하는데, 보고 들은 것이 이미 이와 같다면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비웃으며 각각 차록(箚錄)을 만들어 배척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냉소하는 것이 장차 산과 바다처럼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선사가 평생토록 쌓은 고결하고도 빛나는 업적을 하루아침에 어둡고 흐릿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형께서 공정하고 맑게 생각하시면 또한 저절로 정확히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청원하여 발간하여 배포하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의리가 확립되면 "힘을 헤아려 하라."는 것'과 "반드시 깊이 구애될 필요가 없다,"라는 설은 무너질 것이고, "힘을 헤아려 하라."는 것'과 "반드시 깊이 구애될 필요가 없다,"라는 설이 행해지면 "청원하여 발간하여 배포하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의리가 무너질 것입니다. 자손과 문인에게 보여준 수필(手筆)이 믿을 수 있다면 홀로 앉아 있을 때 오진영에게 명했다고 한 것은 근거가 없게 되고, 홀로 앉아계실 때 오진영에게 명했다고 하는 것이 근거가 될 만하면 자손과 문인에게 보여준 수필은 쓸데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두 가지의 형세가 양립할 수 없는 것은 마치 밤과 낮, 얼음과 숯의 관계처럼 매양 서로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신해년(1911)의 유서에 인가하지 말라는 것은 그때의 일이고, 임술년(1922)에 혼자 앉아계실 때 명하여 인가하도록 한 것은 이때의 일이다."라고 하였고, 또 "전에는 변통할 길이 없었지만 뒤에는 대인(代認)하는 사례도 있으니, 왕등(暀嶹)에서 '인가하지 말라.'고 쓴 수필(手筆)과 은행나무 아래에 홀로 앉아계실 때 '힘을 헤아려 하라.'고 했던 명은 병행될 수 있고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한 자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음성을 믿는 것이 선사를 믿는 것보다 돈독하고 선사를 의심하기를 음성을 의심하는 것보다 쉽게 하는 자들입니다. 나는 이 때문에 "힘을 헤아려 하라"는 것과 "구애받지 말라"는 등의 설이 깨지지 않으면 선사가 전후로 두 마음을 가졌다는 의심을 받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선사는 광명정대한 군자이니, 음성은 선사를 무함한 것으로 귀착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깨우쳐 주시는 말씀을 내려주길 바랍니다. 今日之事,只當深究陰城之誣與不誣、問罪者之勒與不勒."請願刊布,決是自辱"之訓,是何等義理? "料量爲之"、"不必深拘"等說,是何等意思? 討陰者,則曰"自辱勿從之,與料量、不拘,氷炭之不相容"; 袒陰者,則曰"彼一時此一時,并行而不相悖".此又孰得孰失,而公聽并觀,斷其是非,然後乃可以出場.今兄於據師訓勘陰說,略無致詳,而見告者追提.當初彼此同議分疏,嶺人投稿,張皇而遮欄之,此所以言愈多而終不合也.然此係師生大倫,義理重關,要當愼思明辨,不得不措者.請得以畢其說.來書以無義戰、彼善此,作一書劈頭,主湖嶺斷案,弟則謂大失著題也.湖之主不認而斥嶺徇稿也,所爭者一義字,初不可謂非義戰,而況見師誣而辨討之,義之最大者,則謂非義戰,尤無當矣.湖之前後之義,旣明且大者如此,湖善於嶺,猶爲失也,嶺善於湖,則尤爲失也.若以某事某事,對待論之,箇人箇人比并評之,彼此得失優劣,安得以無也? 夫初不能正言立異者,亦不爲無罪,然見湖無礙,即以不認爲主者,湖也.庚申遺書出後,益加兢兢痛悔前罪者,湖人也.若乃苦舍不認,無視遺書,累違前進,約投稿乞京認者,嶺陰人也,亦獨何心? 然此門人之所自孽,只可曰累師,而謂非大罪可也.至於謂先師有認意、認教者,欲置先師於何地,不得不謂誣師之大罪也.始涵齋討認書至也,若答之曰"先師之靈,必赫然怒我,我但欲傳久,而負罪爲之",則早已無事矣.乃曰"先師獨坐命震泳曰'世不可知,文稿君須料量爲之",又自引《五粹》認說,何也? 子乘之以書質認意也,若答之曰: "以先師之節義,豈有是意? 吾雖無狀,亦豈有是言? 傳之者妄也.絕勿復道也." 則都無事矣.乃曰"先師嘗教小子,以著書者無關,不必深拘之說",何也? 且五粹認說,曾不見隻字者,則證此說於刊稿之日,自犯李下瓜田之戒,已所不敢.況復大言之曰"先師五粹認說,是天地生物聖人立極之心,故不諱而公言之",何也? 旣成其文,無難傳播,以致溢地疑謗,漲天譏嘲,而莫可收拾,一何不思之甚也?頃自長城松門人側來者言: "先師若不教認,高弟焉敢有此言?" 又自興德勉門人側來者言: "有是先師,有是弟子." 李承旭作《田艮齋傳》,欲揭各新聞,聞見所及者旣若此,則餘外諸家之驚怪嗤排,各自箚錄而斥之,往復而騰笑者,將山海之不可量也.蓋使先師生平之皜皜炳炳,一朝歸於昧昧窣窣者,是誰之故? 兄其公清思之,亦自有輕重心衡也."請願刊布,決是自辱"之義立,則"料量爲之"、"不必深拘"之說破矣; "料量爲之"、"不必深拘"之說行,則"請願刊布,決是自辱"之義壞矣.示子孫門人之手筆可信,則獨坐命震之云無據矣; 獨坐命震之云可據,則示子孫門人之手筆無所用矣.二者之勢不兩立,如畫夜氷炭之每每相反.或者謂辛亥遺書之勿認,彼一時也,壬戌獨命之教認,此一時也.又有謂前無變通之路,後有代認之例,暀嶹勿認之之手筆,杏下料量之獨命,可并行而不相悖也.此輩人信陰篤於信師,疑師易於疑陰者也.吾故曰"料量"、"不拘"等說不破,則先師受前後二心之疑.先師之爲光明正大君子也,陰城之不得不歸於誣師也.請下一轉語. 청원하여……것이다 전우는 자손 및 제군에 고하는 글에서 "다른 날 시변이 조금 안정되기 전에 만약 저쪽에 청원하여 발간 배포할 계획을 하는 것은 결단코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비록 혹 강권하더라도 너희는 아비와 할애비의 마지막 명을 맹세코 지켜서 조심하여 애써 따르지 말라.]異時時變稍定之前, 若請願於彼, 以爲刊布之計, 決是自辱.諸人雖或強之. 汝等誓守父祖末命, 愼勿勉從也]"라고 하였다. 《간재집(艮齋集)後編》 권5 〈고제자손겸시제군(告諸子孫兼示諸君)〉 선사께서……가르치셨다 오진영은 이병은에게 편지를 써서 말하기를 "선사가 일찍이 소자에게 말하기를 '인쇄업자가 스스로 총독부에게 출판 인가를 받으면 책을 쓴 사람은 그것과는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으니 이와 같다면 반드시 책을 출판하는데 깊이 구애받을 것이 없겠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후창집속집(後滄集續集)》 4 〈연보(年譜)〉 송문인(松門人) 장성에 거주하였던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을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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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정제원에게 답함 무신년(1908) 答趙子貞濟元 ○戊申 옛날에 주나라 왕실이 쇠락하자 현인군자가 당시의 혼란을 슬퍼하고 풍속의 쇠퇴함을 가슴 아파하여 탄식을 하며 읊조리고 노래하였는데, 공자가 그것을 채집하여 변아(變雅)44)에 기재하니, 그 말이 강개하고 깊고 절실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백세 이후에도 감탄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을 변(變)이라고 한 것은 그 시가 슬픔에 지나치게 상심하여 성정의 바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자가 세상을 근심한 것은 이것과는 달랐으니, 그 마음이 깊고 절실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은 일찍이 지나치게 상심한 뜻은 없었고 다만 "도가 행해지고 폐해지는 것은 명(命)이다"45), "봉황이 이르지 않고 황하에서 하도(河圖) 나오지 않으니, 나는 그만인가보다."46), "옛날에 백성에게 삼질(三疾)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것마저 없구나."47)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성정의 바름을 얻고 근심한 것이 깊고 절실한 것이니, 또한 강개한 사람이 능히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내주신 편지의 어투를 가만히 살펴보면 주의(周意)의 뜻에는 거의 가깝다고 말할 수 있지만, 공자의 말씀하는 법도에는 진실로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이 뜻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체로 세상이 완전한 음(陰)의 시대로 들어가게 되면, 비록 성인이더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도를 지켜서 양(陽)이 회복되는 날을 기다릴 뿐이지, 반드시 발을 동동거리며 무익한 염려를 하고 떠들썩하게 쓸모없는 분노를 발하여 도리어 서로 얽매이는 병폐를 만들어 내면을 수양하는 공부를 손상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昔周室之衰,賢人君子憫時世之亂亡,病風俗之頹敗,發於咨嗟,登之咏歌,而夫子采之,載於變雅,其言慷慨深切,使人感歎於百世之下.然猶謂之變者,以其過傷於哀而不得性情之正也.若夫子之憂世,則異於是,其心非不深切也,其言未嘗有過傷之意,只曰"道之行廢,命也","鳳鳥不至,河不出圖,吾已矣夫","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此其得性情之正,而憂慮之深切,又有非慷慨之人所能及者也.竊觀來書詞氣,其於周意之意,則可謂庶幾焉,而於夫子詞氣之法,則誠有未易言者,此意不可不知也.蓋世入窮陰之時,雖聖人亦無如之何矣.只得守吾之道,以俟陽復之日,不必憧憧然致無益之慮,呶呶然發無用之憤,反成係累之病,而損了向裡之工也. 변아(變雅) 〈시경집전서(詩經集傳序)〉를 참조하면, 변아는 《시경》 의 소아(小雅), 대아(大雅)를 일컫는 정아(正雅)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대개 주나라가 쇠퇴하여 정치가 문란했던 시대를 반영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소아는 〈녹명(鹿鳴)〉부터 〈청청자아(菁菁者莪)〉까지를 정소아(正小雅), 〈유월(六月)〉부터 〈하초불황(何草不黃)〉까지를 변소아(變小雅)라고 하고, 대아는 〈문왕(文王)〉부터 〈권아(卷阿)〉까지를 정대아(正大雅), 〈민로(民勞)〉부터 〈소민(召旻)〉까지를 변대아(變大雅)라고 한다. 도가……명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도(道)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명(命)이며 도(道)가 장차 폐해지는 것도 명(命)이니, 공백료(公伯寮)가 그 명(命)에 어떻게 하겠는가.[道之將行也與도 命也며 道之將廢也與도 命也니 公伯寮其如命何]."라고 말하였다. 봉황이……그만인가보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보인다. 옛날에……없구나 삼질 즉 세 가지 병통은 광(狂)ㆍ긍(矜)ㆍ우(愚)를 말하는데, 《논어(論語)》 〈양화(陽貨)〉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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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 천태 부군이 초록한 《태을통종보감》 뒤에 삼가 쓰다 敬題曾祖考天台府君手鈔太乙統宗寶鑑後 아! 이 《태을통종보감(太乙統宗寶鑑)》 열네 책은 나의 증조부 천태거사185) 부군께서 직접 베껴쓰신 것이다. 나 김택술이 어렸을 때 할머니 김씨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네 증조부께서 일찍이 친구 댁에 가셔서 좋아하는 책 십여 권을 보시고는 베껴 쓰겠다며 빌려주기를 청하셨지. 주인이 선뜻 허락하지 않자, 십여 일 동안 한번 읽어 보겠다고 청하여 허락을 얻었어. 돌아오자마자 시작하여 열흘 안에 베껴 쓰신 다음 돌려주셨어. 그러자 주인이 놀라며 고마워하였단다. 이 이야기를 나는 시어머니께 들었지."라고 하셨다.내가 지금 이 책을 보니 끝에 '임진 정월 하순에 천태거사가 쓰다[壬辰正月下澣天台居士書]'라는 열 한 글자가 있다. 옛날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이 곧 이것이다. 판은 550여 개이고 비록 잡다한 다른 필체가 섞여 있으나 반 이상은 부군의 손에서 나온 것이고, 함부로 거칠게 쓴 글자가 하나도 없다. 그 민첩하고 조심스서운 솜씨가 이렇게 손때 묻은 서책에 담겨 있으니, 지극히 보배롭고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찌나 아둔한지, 책 안에 실려 있는 하늘과 사람에 대한 논설들과 그 광대하고 오묘한 이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고, 다만 바다를 바라보는 탄식186)만 할 뿐이었다.이 책 서문을 가만히 보니 이르기를 '인군(人君)이 그것을 쓰면 가히 백성으로 하여금 요순의 백성이 되게 하고, 인신(人臣)이 그것을 쓰면 가히 임금으로 하여금 요순 같은 임금이 되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부군께서는 재주가 높고 뜻이 크셨으니, 마땅히 그 내용을 매우 좋아하셨고 그래서 그것을 베껴 쓰는 속도가 빨랐을 것이다. 다만 하늘이 수명을 더 주지 않아서 배움을 이루고 세상에 쓰이는 데까지 미치지 못한 것이 애통하다. 그렇지만 글은 여기 굳게 보존되어 있으니, 뒷사람 중에 재주와 뜻이 있으면서 장수할 이가 나와서, 이 책을 궁구하고 큰 쓰임을 얻어서 부군의 한을 깨끗이 씻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부군께서 손수 베끼신 것으로는 그 밖에도 《사기(史記)》, 《소서(素書)》187), 《음부보감전서(陰符寶鑑全書)》, 《영귀침법(靈龜針法)》, 《연파조수가(煙波釣叟歌)》188) 《부령김씨세헌록(扶寧金氏世獻錄)》 등이 있었는데 지금도 모두 다 보존되어 있다. 오직 이 책만이 큰 분량의 거질(巨帙)이라서 삼가 한 마디 말을 적어서 애모하는 내 마음을 부친다. 경진년(1940) 유두일에 증손 김택술 삼가 쓰다. 嗚呼! 此太乙統宗寶鑑十四冊, 我曾祖天台居士府君所鈔也。 澤述幼時承王母金氏語曰: 汝曾王考嘗往友人家, 見有好書十餘冊, 請借謄。 主人不肯, 乃請旬日一覽, 許之。 歸而卽於旬日內了謄而還之。 主人驚謝。 此, 吾所聞於先姑者也。 今觀是書卷末所題壬辰正月下澣天台居士書十一字, 昔年王母所語者, 卽此也。 板爲五百五十有餘, 雖雜他筆强半出府君手, 而無一字放荒, 其敏速謹愼, 如此手澤攸存, 極其寶重。 然柰此鈍根, 於書中所載說天說人, 廣大奧妙, 略不領會, 徒切望洋之歎。 竊觀序此書者有曰: 人君用之, 可以使民爲堯舜之民, 人臣用之, 可以致君爲堯舜之君。 府君才高志大, 宜其好之篤而謄之速也。 但天不假壽, 未及成其學而用之世, 痛哉! 然書固自在, 未知後承有才志而壽者, 出究是編而得大用, 以洩府君之恨也否? 府君手鈔又有史記素書陰符寶鑑全書靈龜針法烟波釣叟歌扶寧金氏世獻錄等書, 今俱存, 而惟此書爲大部, 故謹書一語, 庸寓感慕之私云爾。 歲在庚辰流頭日, 曾孫澤述謹書。 천태거사 김석규(金錫圭, 1804~1835)이다. 자는 내삼(乃三)ㆍ희백(希伯), 호는 유죽헌(幽竹軒)ㆍ천태거사(天台居士), 초명은 석노(錫魯)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탄식[望洋之歎] 황하(黃河)의 신 하백(河伯)이 북해(北海: 渤海)의 끝없는 파도를 보며 자신의 좁은 소견을 탄식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莊子》〈秋水〉 《소서(素書)》 황석공(黃石公)이 한 고조의 책사 장량(張良)에게 전해주었다는 병서이다. 《연파조수가(煙波釣叟歌)》 기문둔갑(奇門遁甲)의 대강을 포함하는 시결(詩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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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선생 차운시 附 先生次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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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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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씀 2수 寫志 【二首】 솔바람 부는 오월에 대나무 창은 차갑기만 하고 松風五月竹牕寒초각에서 조심하는 늙은이와 견주니 우습구나 笑比夔翁草閣看잡념을 없애려면 큰 술잔41)을 기울여야 하고 消慮只宜傾大白선학을 배우려 해도 영단을 구우려 하지 않네 學仙不欲煮靈丹사람들과 함께 높고 낮음 따름을 끝내 부끄러워 與人終愧隨低昂마땅한 일 쉽고 어려움 가림을 어찌 용납하리오 應事何容揀易難조용한 방에서 경서를 궁구해도 오히려 스스로 즐거우니 靜室窮經猶自樂굳이 붉은 난간 있는 곳을 방문할 필요는 없으리 未須ㅁ勝訪朱欄인정을 번복함이 마치 바둑판과 같으니 人情翻覆似碁枰뉘라서 의리를 장차 경중 분별할 수 있으랴 義理誰將辨重輕바닷가 산천 그 어디에도 즐거운 땅 없어 海上山川無樂土문앞 비바람에도 세속 소리 싫어하네 門前風雨厭塵聲멋진 유람하려는 평소 뜻으로 회수에 떠 있어도 壯遊素志浮淮水나라를 걱정하는 단심에 낙성을 바라보네 憂國丹忱望洛城말세의 삶과 죽음 고목과 기러기42) 보듯하니 衰世死生看木鴈재주도 없으면서 왜 굳이 명예 구하는 데 힘쓰는가 不才何必務求名 松風五月竹牕寒,笑比夔翁草閣看.消慮只宜傾大白,學仙不欲煮靈丹.與人終愧隨低昂,應事何容揀易難?靜室窮經猶自樂,未須ㅁ勝訪朱欄.人情翻覆似碁枰,義理誰將辨重輕.海上山川無樂土,門前風雨厭塵聲.壯遊素志浮淮水,憂國丹忱望洛城.衰世死生看木鴈,不才何必務求名? 큰 술잔 원문 '대백(大白)'은 술잔 이름이다. 송나라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의 시에 "모름지기 오늘의 기쁨을 다하려 할진대, 유쾌한 뜻으로 큰 술잔을 들어야 하리.〔須窮今日懽, 快意浮大白.〕"라고 한 예가 있다. 《宋百家詩存 卷5 昔別贈宋復古張景淳》 고목과 기러기 고목은 재주가 없어 오래 사는 사람을 비유하고 기러기는 재주가 없어 일찍 죽음을 당하는 사람을 비유한다. 재주가 없어 오래 살기도 하고 일찍 죽기도 하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가름할 수 없다는 말이다. 《莊子》 〈山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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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스승께서 퇴계의 가재 시에 차운한 작품에 차운함 謹次師門所次退溪石蟹韻 퇴계 선생께서 15세에 가재에 대해 읊은 시에, "돌을 지고 모래 파서 스스로 집 짓고, 앞으로 갔다 뒤로 물러나는데 다리조차 많구나. 찬 샘 한 굽이 평생 충분하니, 강호의 물이 얼마인지 묻지도 않네."라고 하였다. 근래 일종의 험한 말을 하는 사람이 이 시를 간재 선생의 작품이라 하고 억지로 주석을 붙여, "국난에 달려가지 않고서 스스로 신명을 보전한다."라는 뜻을 써서, 헐뜯고 비방하는 것이 많았으니, 사람 마음이 불량한 것이 어찌 이처럼 극도에 이를 수 있는가? 선생께서 퇴계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퇴계의 시가 전가에서 나왔다 잘못 알고, 영서연설(郢書燕說)의 오류46)가 많으니 웃겨 죽겠구나. 다만 묵묵히 더 공부하기만 구할 뿐, 인간들이 얼마나 비방이 어떤지는 묻지 않으리. 다만 다른 집을 관리하려다 자기 집을 버릴 뿐이라, 집안에 가시를 방치하게 한 일 많구나. 자기 집은 도리어 다른 집에서 안타까워하니 그대의 성이 그와 같으니 어찌 하리오."라고 하였다. 나 역시도 감히 스승의 시에 차운해서, 소인의 천한 견식으로 현자의 출처를 망령되이 논의한 것을 비판한다.얕은 산과 시냇가에 스스로 집을 지었으니 淺淺山溪自作家미련한 그놈 견식이 참으로 없구나 嗤渠見識已無多아득한 동해엔 깊이가 천 길이나 되니 渺茫東海深千尺신룡의 변화가 얼마인지 어찌 알리오 豈識神龍變化何 退溪先生十五歲時,咏石蟹曰,負石穽沙自作家,進前退後足偏多.寒泉一曲生涯足,不問江湖水幾何?近來一種險口,以此爲艮齋田先生作强爲註釋,作不赴國難,自保身命之意毁謗多,端人心不良,胡至此極.先生次退溪詩曰;"陶詩誤認出田家,笑殺郢書燕說多.只求黙黙加功去,不問人間謗幾何?只管他家棄自家,放敎荊棘室中多.自家還被他家惜,子聖其如可柰何?" 余亦敢次師韻,以譏小人淺見妄論,賢者出處云爾.淺淺山溪自作家,嗤渠見識已無多.渺茫東海深千尺,豈識神龍變化何? 영서연설(郢書燕說)의 오류 본래의 뜻을 잘못 이해하여 와전(訛傳)하는 것을 가리킨다. 중국의 영(郢) 지방 사람이 연(燕)나라 상국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있었는데, 등불이 어두워 옆 사람에게 촛불을 들라 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편지에 '촛불을 들라'고 썼다. 그런데 연나라 재상이 그 편지를 받아 보고는 기뻐하기를, "촛불을 들라는 것은 현자를 천거해 쓰라는 말일 것이다."라 하고는 임금에게 아뢰어 그대로 실천하게 하니, 연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韓非子 外儲說左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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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재잠221) 차운 【무신년(1908, 융희2)】 次敬齋箴 【戊申】 마음과 정신을 고요히 모아라 凝爾心神,보고 듣기를 거두어 멈추어라 斂爾聽視,마치 신하가 조정에 서서 如臣在廷,황제의 명을 받는 듯이. 受命于帝.방원(方圓)의 규범을 준수하고 遵爾規矩,삼가고 공경함을 꼭 잡아라 執爾恪恭,마치 제후가 나라를 수호하며 如侯守國,제 맡은 봉토를 잃지 않듯이. 不失其封.작게는 밥 먹을 때나 小而喫飯,크게는 제사 모실 때나 大而承祭,사물에 결을 따라 응대하되 順應事物,쉽고 어려움을 가리지 말라. 勿問難易.안으로 정사를 닦거나 內若修政,밖으로 성채를 지키거나 外若防城,공과 사를 조심해 살피고 審愼公私,무겁고 가벼움을 구분하라. 勿混重輕.동서의 방향을 잃지 말고 莫迷東西,남북의 방위를 뒤집지 말며 莫顚南北,천지에 저절로 있는 그 가운데 天然有中,나는 거기에로 나아가리. 我其可適.둘 사이에 의심하지 않으며 不疑於二,셋을 놓고 흔들리지 않고 不惑於三,오직 하나를 지녀 살피면 所存惟一,온갖 이치가 다 보이리. 衆理可監.만약 이와 같이 해낸다면 苟其如此,이를 일러 경(敬)에 능하다 하리니, 是謂能敬,동정(動靜)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動靜不違,표리(表裏)가 서로 맞으리. 表裡交正.순수한 덕으로 틈 하나 두지 말고 純德無間,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을지니, 終始一端,조심하라 잠시 잊고 놓쳐 愼無暫忘,일폭십한(一曝十寒)222)에 이르지 말라. 竟至十寒.지극한 행실에 어긋남 없이 하여 至行無差,정조(精粗)를 구별하지 말지니, 精粗一處,조심하라 얼핏 소홀히 하여 愼無或忽,저절로 무너져 망치지 말라. 順致敗斁.일천 옛 성인의 이 종지를 千聖宗旨,어찌 삼가 받들지 않겠는가. 曷不欽哉,이로써 경계의 잠언을 지어 我庸作箴,마음의 신령한 경대에 새기노라. 銘諸靈臺. 凝爾心神, 斂爾聽視, 如臣在廷, 受命于帝。 遵爾規矩, 執爾恪恭, 如侯守國, 不失其封。 小而喫飯, 大而承祭, 順應事物, 勿問難易。 內若修政, 外若防城, 審愼公私, 勿混重輕。 莫迷東西, 莫顚南北, 天然有中, 我其可適。 不疑於二, 不惑於三, 所存惟一, 衆理可監。 苟其如此, 是謂能敬, 動靜不違, 表裡交正。 純德無間, 終始一端, 愼無暫忘, 竟至十寒。 至行無差, 精粗一處, 愼無或忽, 順致敗斁。 千聖宗旨, 曷不欽哉, 我庸作箴, 銘諸靈臺。 경재잠 주희(朱熹. 1130~1200)가 경(敬)에 관한 격언들을 모아 지은 잠언(箴言)으로, 정주학자들이 애송하였고 퇴계(退溪) 등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폭십한(一曝十寒) 《맹자》에 말한 '천하의 잘 자라는 물건도 하루 햇볕 쬐고 열흘을 추위에 떨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말을 인용한 것으로, 꾸준히 지속하지 못하고 끊겨 실패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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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주잠 【무인년(1938)】 戒酒箴 【戊寅】 옛 사람 어찌하여 매방(妹邦)을 경계하고227) 何誥妹邦,무엇 때문에 의적(儀狄)을 멀리하였나.228) 何疏儀狄,작게는 일을 망치고 小則敗事,크게는 나라를 망쳐서네. 大則亡國.털끝 하나 틀리지 않은 말임은 毫不差爽,옛 일에 모두 증험 있는데 驗諸往迹,그래도 여전히 실수를 하니 然猶有失,스스로 겪어보지 않아서이네. 由不親歷.한 번 실패는 그래도 괜찮지만 一敗猶可,두 번을 망치면 어떻게 하나, 再敗何則,작은 징치(懲治)로 큰 경계(警戒)를 하라 懲小戒大,주역의 큰 가르침이네.229) 訓自大易.실수 하면서도 방비할 줄 모르면 敗不知戒,멸망 빼고는 다른 길 없네. 不亡安適,앙화를 복으로 바꾸어라 轉禍爲福,기회는 경각에 달려있나니. 機在頃刻.점(占)에는 뉘우침[悔]이 있으니, 뉘우침은 길흉의 사이에 있고, 과오는 고쳐야 마땅하니, 고침은 성(聖)과 광(狂)의 갈림길이다. 뉘우치고도 고치지 않으면 흉(凶)이 되고 말 것이며, 고치고도 다시 뉘우칠 일을 하면 광(狂)이 되고 말 것이다. 오호! 뉘우치되 뉘우침이 깊지 않고, 고치되 고침이 참되지 않구나. 자꾸 뉘우치고 자주 고치는 사이에 늙어 죽으리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이 말 조심[愼言]과 술 경계[戒酒]의 두 잠언을 지어, 동생 여안(汝安)230)에게 주며 함께 노력하려 하니, 내 나이는 쉰 하고 다섯이요, 여안은 마흔이다. 何誥妹邦, 何疏儀狄, 小則敗事, 大則亡國。 毫不差爽, 驗諸往迹, 然猶有失, 由不親歷。 一敗猶可, 再敗何則, 懲小戒大, 訓自大易。 敗不知戒, 不亡安適, 轉禍爲福, 機在頃刻。 占有悔, 悔在吉凶之間; 過宜改, 改爲聖狂之幾。 悔而不改, 凶而已矣。 改復有悔, 狂而已矣。 嗚呼! 悔不深悔, 改不眞改。 頻悔頻改之頃, 老且逝矣, 可不悲哉! 作此愼言戒酒二箴, 與舍弟汝安共勉, 余時年五十有五, 汝安四十。 매방(妹邦)을 경계하고 주 성왕(周成王)의 숙부인 강숙(康叔)이 은(殷) 나라의 옛 도읍인 매방(妹邦)에 봉해지자, 주공(周公)이 그를 위해 그곳 백성들이 은나라 주왕(紂王)의 영향으로 술을 즐김을 말하며 경계한 《서경》〈주고(酒誥)〉편의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의적(儀狄)을 멀리하였나 옛날에 의적(儀狄)이 처음 술을 만들어 우(禹)임금에 바치자, 우임금이 그것을 좋은 맛을 보고는 '후세에 반드시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하고 의적을 멀리하였다는  《전국책》 〈위책(魏策)〉의 말을 인용하였다. 작은……가르침이네 《주역》〈계사〉에 "작은 것을 징치하여 큰 것을 경계하니, 이는 소인의 복이다.[小懲而大誡, 此小人之福也。]"라고 하였다. 여안(汝安) 김택술의 세째 아우 김억술(金億述, 1899~1959)의 자(字)이다. 처음의 호로는 연강(蓮岡)을 썼으며, 김택술과 마찬가지로 간재 전우의 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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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성에 대한 문답 【1915년】 氣質性問答 【乙卯】 객이 나에게 묻기를 "성탕(成湯)10) 이후 성현들이 성(性)에 대해 논한 것은 순선(純善)한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말했을 뿐이다. 정호(程顥)와 장재(張載) 두 선생에서부터 처음으로 기질성(氣質性)의 설이 있었으니11), 이른바 기질성이란 것은 과연 어떠한 성입니까?"라고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이른바 기질성이라는 것은 다만 본연성(本然性)이 기질을 따라 저절로 하나의 성이 될 뿐이고, 본연성 밖에 다시 기질의 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대개 사람이 태어날 때 천지의 이(理)를 받은 것이 성이 되고 천지의 기(氣)를 받은 것이 기질이 된다. 이[理]는 형체 없는 물[物]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있어서 성이 되고 혼연히 지선(至善)하여 도모하는 바가 없다. 그러나 기는 형체 있는 물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있어서 기질이 되고 온갖 가지런하지 않아 작용이 무상하다.지선하면서 작위함이 없는 것이 가지런하지 않으면서 작용하는 것에게 운용되지만, 관섭(管攝)하거나 검제(檢制)할 방법이 없다. 이에 혼연한 지선의 체가 이로 말미암아 드러나지 않고, 기질에 따라 온갖 가지런하지 않음이 있는 것만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기질지성으로 지목한다. 그 명칭이 비록 정호와 장재에서부터 시작되어 확립되었을지라도, 실제로는 공자의 성상근(性相近)12), 한자(韓子 한유(韓愈))의 성삼품(性三品)13),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의 성강유선악(性剛柔善惡)14)의 세 말이 이미 정호와 장재 이전에 설파되었다."라고 하였다.객이 묻기를 "그렇다면 본연성이 기질을 따라 가지런하지 않은 성이 되니, 순선(純善)한 본체가 또한 속박되고 착상(鑿喪)되어 남음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아니다. 어찌 일찍이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본 적이 없겠는가. 지극히 밝고 뜨거운 본체가 저렇게 빛나고 붉지만, 구름에 가리고 안개에 막히며 날씨가 써늘하고 한기가 얼어붙게 되면 지극히 밝은 것은 흐려지기도 하고 캄캄해지기도 하며, 지극히 뜨거운 것은 서늘해지기도 하고 차가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지런하지 않은 흐림, 캄캄함, 서늘함, 차가움은 바로구름, 안개, 날씨, 한기의 소치이기 때문에 밝고 뜨거운 태양의 본체에는 본래 손상됨이 없다.이 때문에 사람의 치우침과 온전함 및 선함과 악함이 모두 기질이 하는 것이고, 성의 본체는 본래 그대로임을 알 수 있다. 주자가 말하기를 '이가 어떻게 악하겠는가. 이른바 악이라는 것은 기이다.15)'라고 하였고, 임천 오씨(臨川吳氏)16)가 말하기를 '타고난 기가 맑고 혼탁하며 재질(材質)이 어둡고 밝으니, 이는 고자(告子)의 이른바 생(生)의 본능을 성이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성은 실제로는 기이다.17)'라고 하였으며, 율곡 선생(栗谷先生 이이(李珥))이 말하기를 '기가 치우치면 이도 치우치는데 치우친 것은 이가 아니고 바로 기이며, 기가 악하면 이도 악한데 악한 것은 이가 아니고 바로 기이다.18)'라고 하였으니, 이 세 가지 설은 바꿀 수 없는 지론이다."라고 하였다.객이 묻기를 "그렇다면 기질은 기질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니 기질성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고, 발휘하고 운용하는 곳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니 품수(稟受)19)할 때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정자(程子 정이천)가 '천성인 유완(柔緩)과 강급(剛急)은 타고난 것이다.20)'라는 가르침을 두었고, 율옹(栗翁 이이(李珥))은 '원초(元初)에 기질성을 타고났다.'는 설을 두었는가."라고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치우침과 온전함 및 선함과 악함은 비록 기질이 한 것이지만, 기질이 치우치거나 온전하거나 선하거나 악하면 성도 따라서 치우치거나 온전하거나 선하거나 악하기 때문에 성과 뒤섞어 혼륜하게 말하면 '기질성'이라고 말한다. 성의 치우침과 온전함 및 선함과 악함은 비록 발휘되어 운용되는 곳에서 볼 수 있지만, 치우치거나 온전하거나 선하거나 악한 것은 탁박(濁駁)하고 가지런하지 않은 기를 받았기 때문에 기를 주로 하여 근원을 궁구하여 말한다면 '원초에 품부하였다.'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말미암아 말한다면 정호와 이이 두 선생의 가르침은 거의 막히는 곳이 없다."라고 하였다.객이 묻기를 "근래에 기질성을 논하는 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그 기질에 따라 각각 다른 이를 받으니 이것이 기질성이 되고, 그중에서 단지(單指)21)하면 이것이 본연성이 된다.'라고 하였는데, 내가 일찍이 그러한 설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그대의 말과 같다면 논자의 이 설은 결국 이치에 어긋나고 참을 어지럽히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하늘이 물(物)을 낳음에 근본을 하나로 하게 하였는데, 만일 이 말과 같다면 이것은 근본을 둘로 하는 것이다. 본연지성은 천하일원(天下一原)의 성이고 기질지성은 만물부제(萬物不齊)의 성인데, 일원의 성과 부제의 성을 똑같이 품수할 때에 말할 수 있다면 이것이 근본을 둘로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근본을 둘로 하는 것을 옳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먼저 부제의 성을 받음을 생각하고 뒤에 일원의 성을 가리켰다. 따라서 이것은 기질성을 본(本)으로 삼고 본연성을 말(末)로 삼아 본말이 뒤바뀌고 천하의 일이 전도(顚倒)되어 창피한 것이니, 어느 곳인들 편안하겠는가.이미 처음 태어날 때 다른 이[異理]의 성을 받았다면 이른바 성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고 물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이미 다른 성이 어떻게 갑자기 형체를 바꾸고 삽시간에 태를 변하여 단지할 때에 사람들이 모두 같고 물들이 모두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 단지에서 본연성이라고 한 것은 고기에 붙은 혹과 소금에 절인 건어물에 불과하니, 어찌 족히 말할 거리가 되겠는가.무릇 성을 말하면서 다른 이[異理]를 받은 것으로 주를 삼으면 대성(大聖), 군자(君子), 중인(中人), 하우(下愚)가 모두 처음 태어날 때 똑같이 정해져서 교유(矯糅 잘못을 바로잡음)와 극치(克治)22)의 공을 베풀 곳이 없다. 그렇다면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23)의 가르침, 맹자가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컬었다24)는 뜻, 정자(程子)의 '기질을 이겨 본성을 회복한다.'는 가르침, 장자(張子 장재)의 기질을 변화시키는25) 설이 일체 파탄(破綻)을 면치 못할 것이니, 천하에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겠는가. 이로써 궁구해보면 논자의 설이 이치에 어긋나고 참을 어지럽히는 잘못에서 벗어나려고 하더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客有問於余曰: "成湯以後, 群聖賢之論性, 只言其純善本然之性而已. 自程張二先生, 始有氣質性之說焉, 所謂氣質之性者, 果何性耶?", 余曰: "所謂氣質性者, 只是本然性之隨氣質而自爲一性者, 非本然性之外, 復有氣質之性也. 蓋人之生也, 受天地之理以爲性, 受天地之氣以爲氣質. 理者無形之物, 故在人爲性, 渾然至善而無所猷爲. 氣者有形之物, 故在人爲氣質, 有萬不齊而作用無常. 至善而無爲者, 爲不齊而作用者之所運, 而無管攝檢制之術. 於是渾然至善之體, 因而不著, 而只見其隨氣質而有萬不齊, 故目之以氣質之性. 其名雖肇自程張而立, 其實孔子之性相近, 韓子之性三品, 周子之性剛柔善惡三言, 已道破程張之前矣.". 曰: "然則本然性之隨氣質而爲不齊之性也, 其純善之本體, 亦桎梏鑿喪而無餘矣乎?", 曰: "非也. 盍嘗觀乎中天之太陽乎? 至明至熱之體, 如彼其光且爀也, 而及其雲翳霧塞, 氣肅寒凝也, 至明者或昏或暗, 至熱者或凉或冷. 然昏暗凉冷之不齊者, 乃雲霧氣寒之所致, 太陽明熱之體固無損也. 是故知人之偏全善惡, 皆氣質之所爲, 性之本體, 固自若也. 朱子曰: '理如何得惡? 所謂惡者却是氣.', 臨川吳氏曰: '稟氣淸濁, 材質昏明, 是則告子所謂生之謂性, 是性也實氣也.', 栗谷先生曰: '氣之偏則理亦偏, 所偏非理也, 乃氣也, 氣之惡則理亦惡, 所惡非理也, 乃氣也.', 此三說者, 竊以爲不易之論也.". 曰: "然則氣質只可言氣質而已, 不必曰氣質性, 只可言於發用處而已, 不可言於稟受時, 何程子有天性柔緩剛急所稟受之訓, 栗翁有元初稟賦氣質性之說耶?", 曰: "偏全善惡, 雖是氣質之所爲, 氣質之偏全善惡, 性亦隨而偏全善惡, 故和性而混淪說則曰氣質性. 性之偏全善惡, 雖於發用處可見, 所以偏全善惡者, 以其稟濁駁不齊之氣, 故主氣而推原說則曰元初稟賦. 由此言之, 則程栗二先生之訓, 庶無所礙也.". 客曰: "近有論氣質性者乃曰: '人之始生, 隨其氣質而各稟異理者, 是爲氣質性, 就其中單指, 則是爲本然性.', 吾嘗信其說而不疑矣. 若如子之言, 論者此說, 終不免違理而亂眞耶?", 曰: "天之生物也, 使之一本, 若如此說, 則是二本也. 本然之性, 天下一原之性也, 氣質之性, 萬物不齊之性也, 一原之性, 不齊之性, 均可言於稟受時, 則是非二本而何? 非惟二本之是, 慮先稟不齊之性, 後指一原之性, 是氣質性爲本, 本然性爲末, 本末易置, 天下事顚倒猖披, 何所不有不寧? 惟是旣稟異理之性於始生之時, 則所謂性者人人各異矣, 物物各異矣. 旣異之性, 安得忽地換形, 霎時幻胎, 人人皆同, 物物皆同於單指之際乎? 然則其單指則本然性云者, 不過爲附肉之疣, 加鹽之鮝, 何足爲有無哉? 大抵言性而以稟異理者爲主, 則大聖君子中人下愚, 皆一定於有生之初, 矯糅克治之功, 無所可施也. 孔子克己復禮之敎, 孟子必稱堯舜之旨, 程子勝氣復性之訓, 張子變化氣質之說, 不免一切破綻矣, 天下安有是理哉? 以此究之, 則論者之說, 雖欲免違理亂眞之科, 得乎?". 성탕(成湯) 은(殷)나라 첫 임금인 탕왕(湯王)이다. 본명은 이(履) 또는 천공(天工)이다. 하(夏)의 걸왕(桀王)을 쫓아내고 천자(天子)의 자리에 올랐다. 정호(程顥)와 …… 있었으니 장재가 《정몽(正蒙)》 〈성명편(誠明篇)〉에서 말하기를 "형이 있은 다음에 기질지성이 있다.[形而後有氣質之性]"라고 하였고, 정호는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에서 "생을 성이라 이른다. 성이 곧 기요, 기가 곧 성이니 이것을 생이라고 이른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형기(形氣)를 품부 받으면 이치에 선과 악이 있게 된다.[生之謂性. 性卽氣, 氣卽性, 生之謂也. 人生氣稟, 理有善惡.]"라고 하였다.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도 이러한 내용이 실려 있다. 성상근(性相近)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성은 서로 가까우나 습은 서로 멀다.[性相近也, 習相遠也.]"라고 하였다. 성삼품(性三品) 《창려문집(昌黎文集)》 권11 〈원성(原性)〉에서 한유(韓愈)가 말하기를 "성에는 상중하 세 가지 등급이 있으니, 상품은 선할 뿐이고, 중품은 인도하여 위나 아래로 가게 할 수 있으며, 하품은 악할 뿐이다.[性之品有上中下三, 上焉者善焉而已矣, 中焉者可導而上下也, 下焉者惡焉而已矣.]"라고 하였다. 성강유선악(性剛柔善惡) 《통서(通書)》 〈사 제칠(師第七〉에 주돈이가 말하기를 "성은 강유와 선악의 중일뿐이다.[性者剛柔善惡中而已矣.]"라고 하였다. 이가 …… 기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4 〈성리 일(性理一)〉에 나온다. 임천 오씨(臨川吳氏) 오징(吳澄, 1249~1333)이다. 호는 초려(草廬)이고 자는 유청(幼淸)이며, 무주(撫州) 숭인(崇仁) 사람이다. 송(宋)나라가 망한 뒤 원(元)나라의 국자감 승(國子監丞)이 되었다. 타고난 …… 기이다 《성리대전(性理大全)》 권31 〈성리 삼(性理三) 기질지성(氣質之性)〉에 보인다. 기가 …… 기이다 《율곡전서》 권10 〈서 이(書二) 답성호원(答成浩原)〉에 나온다. 그러나 대본의 "氣之惡則理亦惡, 所惡非理也, 乃氣也."는 《율곡전서》 원문에는 "기가 온전하면 이도 온전한데 온전한 것은 이가 아니고 기이다.[氣之全則理亦全, 而所全非理也, 氣也.]"라고 되어 있다. 품수(稟受) 선천적으로 재능이나 성품을 타고나는 것이다. 천성인 …… 것이다 정이천(程伊川)이 "지금 사람들이 '천성이 유완하고 강급한 것은 모두 이처럼 타고난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품수한 것을 뜻한다.[今人言天性柔緩天性剛急, 皆生來如此, 此訓所禀受也.]"라고 한 말이 《성리대전》 권30 〈성리 이(性理二) 기질지성(氣質之性)〉에 보인다. 단지(單指) 기질(氣質)은 제외하고 이(理)만을 가리켜 말한다는 뜻이다. 극치(克治) 사사로운 욕심이나 그릇된 생각을 이겨 내어 물리치는 것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 《논어》 〈안연(顔淵)〉에 안연이 인(仁)을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자기의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는 것이 바로 인을 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극기복례를 할 수 있다면 온 천하 사람들이 그 인을 허여할 것이다.[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라고 하였다. 맹자가 …… 일컬었다 맹자가 성선(性善)에 대해 말하였는데, 말했다 하면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컬었다.[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라는 내용이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나온다. 기질을 변화시키는 《장자전서(張子全書)》 권12 〈어록(語録)〉에 "학문하는 큰 이익은 스스로 기질의 변화를 구하는 데 있다.[爲學大益, 在自求變化氣質.]"라고 말한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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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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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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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스스로 경계하는 열 가지 조목 【1908년】 自警十則 【戊申】 면재(勉齋)26)가 말하기를 "스스로 자책하여 말에 나타내는 것은 말하지 않으면서 간절히 마음에 자책하는 것만 못하다.27)"라고 하였다. 일찍이 내가 이 말을 음미하고, 겨우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에 매번 문장을 짓고 안(案)을 짜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 마음에 경계할 것을 인하여 갑자기 스스로 명(銘)을 지어 경계하는 뜻을 담을 것을 생각하였으니, 이는 탕왕(湯王)과 무왕(武王) 이후로 혹 이를 폐기한 적이 없다. 나는 생지(生知)28)가 아니니 어떻게 일체의 법을 사용하겠는가. 마침내 지금 바로 힘써야 할 것과 몸소 미치지 못한 것 10칙을 써서 이로써 훗날에 진퇴의 실제를 증험할 것이다. 무신년(1908) 6월 그믐날에 기록한다.큰 뜻 제1지(志)라는 것은 성인(聖人)이 되는 시작이니,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29)"라고 하였고, 뒤의 '법도에 넘지 않았다.30)'라고 한 것은 다만 그 처음을 종결지은 것일 뿐이다.장자(張子)가 말하기를 "뜻이 크면 재주도 크고 사업도 크다.31)"라고 하였으니, 뜻이 크면서 대성(大成)하지 못한 자는 있어도 뜻이 크지 않으면서 대성한 자는 없다.어찌 소장부(小丈夫)처럼 뜻을 세우겠는가. (소장부는) 문장을 과시하여 세상에 자랑하고, 공을 세우고 이름을 드러내어 교만함이 가득하다.부지런히 힘씀 제2모든 일에 부지런하면 성공하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실패하니, 성인은 근심하고 부지런히 힘쓰며 두려워하여 이를 온전하게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게으르고 안일함에 빠져 이를 잃는다.농사 짓는 자는 덥고 비가 올 때에도 몹시 힘들고 고생스럽게 일해야 곳간이 차고, 베 짜는 자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일해야 장(丈)과 필(疋)을 얻으며, 장인은 종일토록 부지런히 애써 노력해야 수레와 가마가 완성된다.상인은 시세를 좇아 급히 달려가야 재화(貲貨)가 남으니, 선비의 부지런함은 성인이 되는 기초이다.그러므로 천지에 간단(間斷)32)이 있으면 만물이 없어지고, 학문에 간단이 있으면 온갖 행동이 무너진다.《주역》에 말하기를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쉬지 않는다.33)"고 하였다.독서 제3도는 어디에 실려 있는가? 책에 실려 있으니 책을 마땅히 읽어야 한다. 책을 읽어서 어디에 사용하려고 하는가? 이를 사용하여 앎에 이르려고 하며, 앎에 이르는 것은 이를 행하고자 해서이다.알지 못하고 행하는 것은 봉사에게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배에 선사(船師)가 없는 것과 같아서 실패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주공(周公)은 아침에 백 편을 읽었고, 중니(仲尼)는 《주역》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으니34) 무엇 때문인가? 이분들은 한가하고 편안할 때에 돌이켜 독서를 생각한 것이다.《주역》에 말하기를 "군자가 이를 본받아 옛 성현들의 말씀과 행실을 많이 알아서 자신의 덕을 쌓는다.35)"라고 하였다.효도와 우애 제4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나는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고 싶다."라고 하지만, 이에 능한 자가 드문 것은 무엇 때문인가? 공자가 말하기를 "어버이에게 순함에 방법이 있으니, 자기 몸에 돌이켜 보아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순하지 못할 것이다.36)"라고 하였으니, 어찌 스스로 성실한지를 돌이켜 보지 않는단 말인가.지성이 있으면 금석(金石)도 뚫을 수 있는데, 하물며 쉽게 감동하는 천속(天屬 천륜(天倫))에 있어서이겠는가.《시경》에 이르기를 "날이 밝도록 잠을 못 이루고, 부모님 두 분을 생각하노라.37)"고 하였으니, 이는 어버이에 대한 효가 아니겠는가. "형제가 화합하고 나서야 화락하고 또 즐길 수 있다.38)"라고 하였으니, 이는 형제간의 우애가 아니겠는가.효는 어느 것이 큰가? 양지(養志)39)가 크다.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선생에게 드시게 하는 것을 중니(仲尼 공자(孔子))는 효라고 하지 않으셨는데40), 하물며 이러한 것도 오히려 잘하지 못하는 자에 있어서이겠는가.옛날에 유우(有虞 순(舜)임금)는 상(象)을 유비(有庳)에 봉해 주었으며41), 우홍(牛弘)은 (죽은) 소를 포(脯)를 뜨라고 하고 (소를 죽인 동생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으니42), 하물며 정상적인 상황에 처한 자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허물을 고침 제5최상은 허물이 없는 것이고 그다음은 같은 허물을 다시 범하지 않는 것이며43), 그다음은 허물을 고치면서 허물이 없고자 하지만, 이는 오히려 같은 허물을 다시 범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소인(小人)은 허물을 꾸민다.허물을 고치는 것은 배우는 자의 일이니, 고치고 또 고치면 점점 허물이 없는 데까지 이를 것이지만,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허물을 꾸미는 데에 이를 것이다.그러므로 공자가 말하기를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44)"고 하였다.몸단속 제6마음은 안이고 몸은 밖이니, 안이 옳으면 어찌 몸을 함부로 하겠는가. 어찌 일찍이 맨 몸을 드러내고 팔을 걷어붙이는데도 마음이 사납지 않고, 다리 뻗고 앉거나 벌떡 드러눕는데도 마음이 거만하지 않은 자를 보았는가.그러므로 군자는 몸을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되니, 몸을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바르지 않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행동이 법도를 잃으며, 행동이 법도를 잃으면 몸 또한 따라서 망한다. 증자(曾子)의 삼귀(三貴)45), 안씨(顔氏 안연(顏淵))의 사물(四勿)46), 중궁(仲弓)의 이여(二如)47)는 모두 몸을 단속하는 데서 나왔다.넓은 도량 제7성인은 천지와 서로 같으니, 일월(日月), 성신(星辰), 산악(山嶽), 하해(河海), 인물(人物), 조수(鳥獸)를 그 안에 수용하여 나아가도 밖이 없고 들어와도 안이 없다. 따라서 양으로 천지에 대해서 말하는 자는 천지를 작게 여기는 것이다.한 번 얻고 한 번 잃으며, 한 번 헐뜯고 한 번 칭찬하면 마음을 괴롭히거나 기세를 올리기도 하니, 슬프다!겸손하게 낮춤 제8《주역》에 "하늘의 도는 가득 차면 이지러지게 하고 겸손한 것을 더해주며,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변하게 하고 겸손한 데로 흐르며,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주며,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48)"라고 하였으니, 심오하다! 사람은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스스로 높은 체하는 자를 사람들은 낮게 여기고, 스스로 낮추는 자를 사람들은 높게 보니, 저 하찮은 재주를 가지고 매번 높고 대단한 체하는 자들은 매우 사려 깊지 못하다.이 때문에 바다가 백천(百川)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그 낮음 때문이고, 산이 허물어지게 되는 것은 그 높음 때문이다.강하고 굳셈 제9천근의 무거움을 지는 자는 강하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고, 굳세지 않으면 중도에 그친다.인(仁)은 선비의 천근과도 같은 것이니 유약하고 해이한 자는 이를 어찌할 수 없을 뿐이다.높이고 물리침 제10《춘추(春秋)》의 대의는 수십 가지이지만 존양(尊攘)49)이 크다.지금 오랑캐가 가득 차서 우리가 장차 그들에게 배척될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만 그들의 제도를 따르지 않고 죽어야 할 뿐이니, 이것이 바로 물리치는 것이다. 勉齋有言曰: "自訟而見於言, 不若不言而責於心之切.". 余嘗味此語, 竊笑世人纔欲有爲, 輒立文出案矣. 今因有警于心者, 忽自思銘以寓戒, 自湯武來, 未之或廢. 我非生知, 則安用一切法? 遂書目下所務及躬所未逮者十則, 庸驗他日進退之實. 戊申六月晦日書.大志第一志者聖人之始, 孔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後來不踰矩, 只是終其始也.張子曰: "志大則才大, 事業大.", 志大而未大成者有矣, 未有志不大而能大成者也.豈若小丈夫之爲志也? 耀文夸世, 樹功顯名, 而沾沾充盈也.勤勵第二凡事勤則立, 不勤卽廢, 聖人憂勤惕厲全之, 衆人懈怠荒寧失之.耕者暑雨艱難而廩囷實, 織者夙夜孜孜而丈疋得, 匠者終日矻矻而輪輿成, 商者趨時奔逐而貲貨贏, 士之能勤, 作聖之基.故天地間斷, 萬物熄, 學問間斷, 百行墮.《易》曰: "天行健, 君子以, 自强不息.".讀書第三道惡乎載? 載乎書, 書宜乎讀. 讀惡乎用? 用以致其知, 致知者欲行之也.不知而行, 瞽之無相, 舟之失師, 鮮有不敗者.周公朝讀百篇, 仲尼韋編三絶, 何? 夫夫反思暇逸.《易》曰: "君子, 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孝友第四人皆曰: "我欲孝于親, 友于兄弟.", 鮮能之者, 何? 孔子蓋曰: "順乎親有道, 反諸身不誠, 不順乎親.", 盍自反乎誠乎?至誠所到, 金石可透, 而況乎天屬之易感者乎?詩云: "夙夜匪懈, 以事二人.", 是非孝乎親乎? "兄弟旣翕, 和樂且湛.", 是非友乎兄弟乎?孝孰爲大? 養志爲大. 服其勞, 先生饌, 仲尼不謂之孝, 而況乎此猶未能者乎?昔者有虞封象于有庳, 牛弘脯牛而不問, 而況乎處常者乎?改過第五太上無過, 其次不貳過, 其次改過而欲無過, 猶不免貳過, 小人文過.改過學者事也, 改之又改, 馴致於無過, 過而不改, 必至於文過.故孔子曰: "過則勿憚改.".檢身第六心內也, 身外也, 內斯可矣, 奚以身爲? 曷嘗見袒裼攘臂而心不暴, 箕踞偃臥而心不慢者乎?故君子不可以不檢身, 身不檢則心不正, 心不正則行敗度, 行敗度則身且從而亡.曾子以三貴, 顔氏以四勿, 仲弓以二如, 皆從檢身上起.恢量第七聖人者, 與天地相似, 日月星辰, 山嶽河海, 人物鳥獸, 容乎其中, 出而無外, 入而無內, 以量言天地者, 小天地者也.爲一得一喪, 一毁一譽, 而動心增氣, 哀哉!謙卑第八《易》曰: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甚哉! 人之不可不謙也.自高者人卑之, 自卑者人尊之, 彼少有才而輒高大者, 不思甚也.是故海之長百川, 以其卑也, 山之見崩頹, 以其高也.剛毅第九負千斤之重者, 不剛則不能起, 不毅則中途而止.仁者士之千斤, 柔弱解弛者, 末如之何也已.尊攘第十《春秋》之義, 數十, 尊攘爲大.今也夷狄盛, 我將爲其所攘, 如之何? 曰: "但不從其制, 有死而已, 便是攘也.". 면재(勉齋) 황간(黃幹, 1152~1221)의 호이다. 남송 복주(福州) 민현(閩縣) 사람이다. 자는 직경(直卿)이고,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주희(朱熹)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스스로 …… 못하다 《논어집주대전(論語集註大全)》 〈공야장(公冶長)〉 소주에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생지(生知)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논어》 〈술이(述而)〉 나는 …… 두었다 《논어》 〈위정(爲政)〉에나온다. 법도에 …… 않았다 《논어》 〈위정)〉에 나온다. 뜻이 …… 크다 장재가 《정몽(正蒙)》 〈지당(至當)〉에서 "뜻이 크면 재주도 크고 사업도 크기 때문에 클 수 있다고 한다.[志大則才大, 事業大, 故曰可大.]"라고 하였다. 간단(間斷) 계속되던 것이 잠시 그치거나 끊어지는 것이다. 하늘의 …… 않는다 《주역》 〈건괘(乾卦) 상전(象傳)〉에 이러한 말이 나온다. 중니(仲尼)는 …… 끊어졌으니 공자가 만년에 《주역》 읽기를 좋아해서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의 유명한 이야기가 《사기(史記)》 권47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실려 있다. 군자가 …… 쌓는다 《주역》 〈대축(大畜) 상전(象傳)〉에 "하늘이 산속에 있는 것이 대축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옛 성현들의 말씀과 행실을 많이 알아서 자신의 덕을 쌓는다.[天在山中, 大畜, 君子以, 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라고 한 데서 나왔다. 어버이에게 …… 것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0장에 "벗에게 믿음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어버이에게 순하지 않으면 벗에게 믿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어버이에게 순함에 방법이 있으니, 자기 몸에 돌이켜 보아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순하지 못할 것이다.[信乎朋友有道, 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順乎親有道, 反諸身不誠, 不順乎親矣.]"라고 하였다. 날이 …… 생각하노라 대본에는 "夙夜匪懈, 以事二人"으로 되어 있는데 《시경》 원문에 이러한 말은 없고, 문맥을 살펴볼 때 《시경》 〈소아(小雅) 소완(小宛)〉에 "날이 밝도록 잠을 못 이루고, 부모님 두 분을 생각하노라.[明發不寐, 有懷二人.]"라고 한 말에서 나왔으므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시경》 〈소아 상체(常棣)〉에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양지(養志) 부모를 봉양할 때에 그 뜻에 순종하며 기쁘게 해드리는 효를 행한다는 말이다. 그 …… 않으셨는데 《논어》 〈위정(爲政)〉에 자하(子夏)가 효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부모를 섬김에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려우니, 일이 있으면 제자가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선생에게 드시게 하는 것을 일찍이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色難, 有事弟子服其勞, 有酒食先生饌, 曾是以爲孝乎?]"라고 하였다. 옛날에 …… 주었으며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순임금이 이복동생인 상을 유비에 봉해 주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우홍(牛弘)은 …… 않았으니 수(隋) 나라 이부 상서(吏部尙書) 우홍(牛弘)의 소를 동생 우필(牛弼)이 술김에 쏘아죽였는데, 우홍은 그저 포를 뜨라고 하고는 동생을 질책하지 않고 태연하게 책을 계속 읽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소학(小學)》 〈선행(善行)〉에 실려 있다. 같은 …… 것이며 《논어》 〈옹야(雍也)〉에 공자가 "안회가 학문을 좋아하여 다른 사람에게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명이 짧아서 죽고 말았다.[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라고 하였다. 《논어》 〈학이(學而)〉에 나온다. 증자(曾子)의 삼귀(三貴) 증자가 《논어》 〈태백(泰伯)〉에서 "군자가 귀중히 여기는 도가 세 가지 있으니, 용모를 움직일 때에는 사나움과 태만함을 멀리하며, 안색을 바르게 할 때에는 신실함을 가까이하며, 말을 할 때에는 비루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멀리해야 한다.[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라고 하였다. 안씨(顔氏)의 사물(四勿) 《논어》 〈안연(顏淵)〉에서 공자가 안연에게 말하기를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동하지 마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하였다. 중궁(仲弓)의 이여(二如) 《논어》 〈안연〉에, 중궁이 인을 물었는데 공자가 대답하기를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뵙는 듯이 하고,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며,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하였다. 하늘의 …… 좋아한다 《주역》 〈겸괘(謙卦) 단전(彖傳)〉에 나온다. 존양(尊攘) 존중화 양이적(尊中華攘夷狄)의 준말로,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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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생일 아침에 스스로 경계함 己未生朝自警 내가 어려서 조숙하다고 일컬어지고 타고난 바탕이 실제로 허약하여 30세가 못 되어 초라하게 늙은 안색이 있었고, 작악(作噩)50)의 다독(荼毒)에 정신이 이미 쇠약해지고 집서(執徐)51)의 거듭된 화(禍)에 기혈(氣血)도 다하였다. 게다가 10년 동안 가난과 병이 서로 계속 이어져 경학(經學)하는 사람으로서 견디지 못하였고, 금일의 패업(敗業)에 이르러 방황이 극에 달했다. 이 해(1919) 6월 6일은 내가 태어난 날인데, 부모를 그리워하는 슬픔으로 집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 하루 전에 화양(華陽)에 들어가 간옹(艮翁 전우(田愚))을 모시고 서론(緖論 강론(講論))을 들으면서 스스로 위로하였다.다음 날 아침에 세수하고 빗질할 때에 갑자기 하나의 흰 물건이 오른쪽 귀밑머리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티끌로 생각하여 닦아냈는데 제거되지 않았고, 실오라기라고 생각하여 잡아당겼는데 나오지 않았으니, 분명히 이는 한 가닥 흰 모발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모발이 흰 것은 간혹 진짜가 아닌 것이 있으나, 오직 귀밑머리가 흰 것은 때가 되지 않으면 희지 않는 만큼 참으로 흰 것이라고 들었다. 아! 모발이 흰 것은 늙었다는 징후이고 늙었다는 것은 죽음의 징후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늙고 늙으면 죽는 것은 떳떳한 이치이다.안연(顔淵)의 덕으로도 29세에 머리가 희었고, 문장가인 반악(潘岳, 247~300)은 32세에 백발이 되었는데, 내가 올해 36세이니 어찌 슬퍼하겠는가. 슬픈 점은 고인(古人)과 같은 덕과 문장이 없는 것이고 일찍 머리가 센 것은 고인과 같을 뿐이다. 게다가 생각건대 집안이 대대로 명이 짧아 고조와 증조 이후로 모두 61세를 채우지 못했고, 돌아가신 부친과 조부의 빼어남과 건장함으로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온갖 근심과 화를 다 겪은 잔약하고 용렬한 나 같은 자가 어찌 감히 수명이 늘어 덕을 쌓고 학문을 닦아 물려주신 몸을 이루어 조상을 욕보이는 일이 없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것이 거듭 슬퍼할 만하다.비록 그렇지만 맹자가 "요절하거나 장수함에 의심하지 않고 몸을 닦으면서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 명을 세우는 일이다.52)"라고 이르지 않았는가. 금일에 해야 할 일은 오직 힘써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고 예와 복에 자신을 신칙하며, 조상의 뜻을 대대로 이어나가 불효를 면하는 데 있을 뿐이다. 곁에서 흰 것을 뽑아내라고 권하는 자가 있었는데, 내가 일부러 듣지 않은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으니, 공도(公道)53)는 사람들이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 하나이고, 이를 남겨 두어 거울을 잡고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자료를 갖추려는 것이 하나이다. 余幼以夙成稱, 而稟質實虛, 未三十有老蒼色, 作噩之荼毒, 精魄旣霣, 執徐之荐禍, 氣血亦竭, 加以十年間, 貧病相仍, 經人不堪, 以至今日之敗業, 漂泊而極矣. 是歲之六月六日, 余懸弧辰也, 悲切蓼莪, 不堪家居, 前一日入華陽, 陪聽艮翁緖論而自遣. 翌朝巾櫛之際, 忽見一白物在右鬂邊, 意爲塵芥也, 而拭之不去, 意爲絲縷也, 而抽之不出, 歷歷是一箇白毛. 余聞人之髮白, 容有非眞者, 惟鬂白非時至不白, 乃眞白也. 噫! 毛白者老徵也, 老者死候也. 人生則老, 老則死, 理之常也. 顔淵之德焉, 而卄九而白, 潘岳之文章焉, 而卅二而白, 余今年三十六, 烏足悲也? 所悲者無德與文之似古人者, 惟早白古人是似爾. 且念家世短祚, 自高曾以下, 皆壽不滿周甲, 先父祖之秀俊, 壯完尙如此, 況如不肖之孱庸, 飽經憂禍者, 安敢望假年進修, 成遺體而無忝生乎? 是重可悲也. 雖然, 孟聖不云乎? "殀壽不貳, 修身而俟之, 所以立命也.". 今日之務, 惟在勉遵典訓而飭身禮禔, 繼述先志而獲免不孝已矣. 傍有勸以揥白者, 而余故不聽者有二道, 公道不可以人强一也, 存之以備把鏡警惕之資一也. 작악(作噩) 고갑자(古甲子)에서, 십이지(十二支)의 열째인 유(酉)를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문맥을 살펴볼 때 기미년(1919) 이전인 기유년(1909)으로 보인다. 집서(執徐) 고갑자에서, 십이지의 다섯째인 진(辰)을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문맥을 살펴볼 때 병진년(1916)으로 보인다. 요절하거나 …… 일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온다. 공도(公道)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는 것을 말한다. 두목(杜牧)의 시에 "세간에 공정한 것은 오직 백발뿐, 귀인의 머리라고 해서 너그럽게 해 주지 않는다.[公道世間惟白髮, 貴人頭上不曾饒.]"라는 구절이 있다. 《번천시집(樊川詩集)》 권4 〈송은자(送隱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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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의 휘일에 감회를 적어 스스로 경계하고 아울러 아이들에게 보임 【1934년 1월 21일】 先君諱日書感自警兼示兒輩 【甲戌元月二十一日】 내가 올해 51세가 되었다. 비록 갑자기 바로 죽더라도 이미 요절은 면한 것이니, 다시 무엇을 한스러워하겠는가. 게다가 생각건대 부친과 조부 이상 4대는 장수한 분이 없고, 내 현재의 나이가 선친의 졸년(卒年)을 꼭 채웠다. 그러나 선친의 후실(厚實 너그럽고 성실함)로도 오히려 회갑(回甲)의 수를 누리지 못했으니, 잔약하고 용렬한 내가 어찌 감히 선친보다 오래 살기를 바라겠는가. 다만 선친께서 임종할 때 나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내 부친이 내 조부보다 11세 더 장수했고 지금 내 나이가 내 부친보다 8세가 더 많으니, 네가 나보다 10년 더 산다면 마땅히 60세가 넘을 것이고 네 아들이 또 마땅히 70세가 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매우 슬픈 것은 여러 대에 단명한 것을 아파하여 후대에 더 살기를 기원했기 때문이다.이러한 마음을 미루어 보면 또 어찌 조금 더 살아서 죽지 않고 10여 년쯤 연명하여 선친의 말을 증험하게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정력(精力)을 아끼고 기르며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도리에 감히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지금은 오랑캐가 명령을 내려 머리를 깎이게 되는 화가 가까이 닥쳐왔고, 백성들이 먹고살기 어려워 굶어 죽기 직전이니, 이는 바로 인인(仁人)과 지사(志士)가 이치와 몸, 이 둘을 온전히 할 수 없는 때이다.내가 비록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지만 30년 동안 독서를 한 사람이고, 너희들이 비록 힘써 농사짓고 집안일을 해나가면서 눈앞의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또한 유문(儒門)의 자손이다. 따라서 내가 만약 몸과 목숨을 아껴 오랑캐의 제도를 따르고, 너희들이 만약 굶어 죽는 것을 두려워하여 불의(不義)한 물건을 먹으며, 이것을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몸을 보존하고 아끼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비록 60세, 70세까지 살아서 선친의 말을 증험하더라도 도리어 장수하지 못하는 것이 더 낫고, 그러한 증험은 증험이 아닌 것과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맹자가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나는 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54)"라고 이르지 않았는가. 이제 오랑캐의 제도에서 벗어나고 더러운 물건을 물리쳐 북쪽 창문 아래서 늙어 죽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生)을 버리고 의(義)를 취해야 한다. 이것이 또 선친이 평소 나에게 가르쳐준 뜻이니, 나와 너희들이 마땅히 소리 없는 가운데서 듣고 분수에 넘는 것을 깊이 살펴야 한다. 진실로 그렇게 하는 자는 거의 후대에 할 수 있는 말이 있을 것이고 그 장수하지 못한 수명은 선친이 바라던 바와 같을 뿐만이 아니라, 그 증험하지 못한 것도 증험한 것과 같을 것이니, 어찌 감히 힘써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은 선친께서 돌아가신 날이기에 감회가 있어 이를 쓰노라. 余今年五十一. 雖卽溘然, 已得免夭, 復何所恨? 且念父祖以上四世無壽, 不肖現齡恰滿先君卒年, 先君之厚實, 猶未享回甲之壽, 以不肖之孱劣, 豈敢求多於先君哉? 但先君臨終, 握不肖手謂曰: "吾父加吾祖壽十一, 今吾之壽, 加吾父八歲, 汝若加吾一甲, 則當踰六旬, 汝子又當踰七旬.", 此言絶悲, 蓋痛累代之短壽, 而冀以延於後世也. 推是心也, 則又豈不願少須臾無死, 延十許歲, 俾驗先君之言也? 然則其於愛養精力, 無損遺體之道, 宜不敢忽矣. 顧今夷狄制命, 薙禍迫頭, 生靈艱食, 溝壑在前, 此正仁人, 志士, 不能理形兩全之秋也. 吾雖無成, 是三十年讀書人, 汝輩雖力田幹家, 救急目前, 亦爲儒門子孫, 吾若惜軀命而從夷狄之制, 汝輩若怕餓死而食不義之物, 認此以爲保愛遺體, 雖壽至六七旬而驗先君之言, 反不若無年之爲愈, 而其驗猶不驗也. 然則如之何其可也? 孟子不云乎?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 免夷制, 却汙物, 而得老死牖下則幸矣, 如其不然, 當舍生而取義. 此又先君平日所以敎不肖之意, 吾與汝輩所當聽於無聲而分外猛省也. 誠然者庶有辭於來世, 而其不壽之壽, 不但如先君所期, 而其不驗猶驗也, 曷敢不勖哉? 今日先君下世之辰, 故有感而書之. 두 가지를 …… 취하겠다 《맹자》 〈고자 상〉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고기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나는 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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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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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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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스승의 상 때에 동문들에게 두루 고함 【1922년】 師喪時輪告同門 【壬戍】 무릇 사람으로서 가르침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니, 나를 도로써 가르쳐 사람을 만들어 준 자가 어찌 스승이 아니겠습니까. 이 때문에 나를 낳아주고 먹고 살게 해 준 군부(君父)와 똑같이 한 몸으로 여겨 치상(致喪), 방상(方喪), 심상(心喪)을 3년 동안 하니, 모두 예서(禮書)에 드러나 있습니다.55) 그렇다면 스승의 3년 상은 바로 영원히 바꾸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세풍(世風)에는 고금의 다름이 있고, 예속(禮俗)에는 통변(通變)의 마땅함이 있으니, 선현이 이에 정을 따르고 능력을 헤아리는 논의를 둔 것은 실정에 맞지 않게 억지로 따르는 것이 도리어 예를 범하여 죄를 짓는 데 이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격을 낮추어 나아가게 한 것입니다.사문(斯文)이 불행하여 우리 선생(간재)께서 갑자기 후학을 버리셨으니, 스승을 잃은 아픔이 어찌 그 다함이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 동문 중에 바꿀 수 없는 정전(正典)을 똑같이 따를 수 없어 혹 어쩔 수 없이 격을 낮추어 나아가게 한 것을 따르는 자가 만일 3년 상을 치르되 예를 다하지 않는 경우에는 진실로 죄줄 만하고, 이미 3년 상을 하지 않으면서 다시 잘못이 있다면 더욱 죄줄 만합니다. 이는 바로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서로 힘써 노력해야 하는데 두렵게도 예를 무너뜨리고 스승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가마(加麻)56)에 이름을 기록하고도 나가서는 저잣거리에서 술과 고기를 먹는 자가 간혹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러한 일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도 이와 같으니 장차 다가올 미래도 알 수 있고, 밝은 데서도 이미 그러한데 어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짓을 논할 것이 있겠습니까.그 마음을 속이고 스승을 속이며, 사람을 속이고 하늘을 속여 조롱과 비웃음을 사고 명교(名敎)를 무너뜨림이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고인(古人)이 이르기를 "사군자가 한번 실수하면 나머지는 볼만한 것이 없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처세할 때 한번 잘못하면 만사가 와해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생각이 이러한 데까지 이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이에 첨좌(僉座 여러분)에게 두루 고하니, 오직 깊이 살펴 실천하고, 고칠 것이 있으면 힘쓰기를 바랍니다. 신명(身名)을 무너뜨리고 인기(人紀)57)를 어기는 지경에 이름이 없으면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夫人而無敎, 則非人也, 而敎我以道而成人者, 豈非師乎? 是以與生我食我之君父同爲一體, 而致方心三喪, 幷著禮書. 然則師喪三年, 乃萬世不易之典. 然世風有古今之殊, 禮俗有通變之宜, 先賢斯有隨情量力之論, 蓋爲其無實强從, 反以犯禮致罪, 故不得已而遷就之也. 斯文不幸, 我先生奄棄後學, 安仰之痛, 曷有其極? 今我同門未能齊循乎正典之不可易者, 或從乎遷就之不得已者, 如有三年而未盡禮者, 固爲可罪, 旣不三年而復有失, 則尤可罪也. 正宜盡心交勖, 恐恐乎壞禮而負師也. 似聞近日入而錄名於加麻, 出而酒肉於市肆者或有之, 此若謬傳則幸矣. 如其未然, 則目下如此, 將來可知, 昭昭旣然, 冥冥奚論? 其爲欺心, 欺師, 欺人, 欺天, 取譏笑, 敗名敎, 果何如哉? 古人云: "士君子失此一著, 餘無足觀.", 又云: "立身一敗, 萬事瓦裂.", 念到于此, 豈不悚然? 玆以輪告于僉座, 惟願猛省實踐, 有改無勉? 毋至陷身名, 乖人紀之地, 幸甚. 치상(致喪) …… 있습니다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부모를 섬기는 데는 숨기는 일은 있어도 범하는 일이 없으며, 좌우에 나아가 봉양하되 일정한 방소가 없으며, 부지런히 일하여 죽음에 이르며, 3년 상을 지극히 한다. 군주를 섬기되 범하는 일은 있어도 숨기는 일은 없으며, 좌우로 나아가 봉양하되 일정한 방소가 있으며, 부지런히 일하여 죽음에 이르며, 상을 부모의 3년 상에 준한다. 스승을 섬기되 범하는 일도 없고 숨기는 일도 없으며, 좌우에 나아가 모시는데 일정한 방소가 없으며, 부지런히 일하여 죽음에 이르며, 심상(心喪) 3년을 한다.[事親有隱而無犯, 左右就養無方, 服勤至死, 致喪三年.事君有犯而無隱, 左右就養有方, 服勤至死, 方喪三年.事師無犯無隱, 左右就養無方, 服勤至死, 心喪三年.]"고 나온다. 가마(加麻) 문인(門人)이 스승의 상(喪)에 심상(心喪)을 입는 표시로 겉옷에 삼베 조각을 붙이는 것인데, 여기서는 심상을 입는 사람의 명단을 기록하는 가마록(加麻錄)을 가리킨다. 인기(人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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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우연히 기록하다 偶書 내가 매번 일에 응하여 마땅함을 잃으면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이 여러 날 동안 가시지 않았는데, 이는 한 가지 일을 하여 두 가지 병을 얻는 것이니, 어째서인가. 이미 처음에 잘 살피지 못한 병이 있고, 뒤에 다시 유소(有所)의 병58)이 있기 때문이다. 무릇 일에 응할 때에는 반드시 정밀하게 살펴서 착오가 없는 것이 가장 좋고, 일에 마땅함을 잃었을지라도 경계하여 뉘우치기만 하고 마음에 오랫동안 남겨 두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다음이 된다.【병오년(1906)】부지런함은 집안을 일으키는 복록(福祿)이고 게으름은 몸을 망치는 짐독(鴆毒)59)이다.공경하는 마음을 한번 세우면 온갖 사특함이 물러나 순종하고, 나태한 마음이 한번 싹트면 온갖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공경과 나태의 사이가 흥망의 기틀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가(齊家)의 어려움이 치국(治國)보다 심하니, 치국자는 교화로 인도하여 행해지지 않으면 형벌을 두어 그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다. 그러나 제가는 교화가 행해지지 않아서 형벌을 쓰고자 하면 은애(恩愛)가 먼저 떠나니, 은애가 이미 떠나면 어떻게 제가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제가의 어려움이 치국보다 심하다고 하는 것이다.하늘의 운행(運行)은 강건하여 쉬지 않고 능히 만물을 내지만 두루 하지 않음이 없으며, 성인의 마음은 부지런하고 힘써 행하여 나태하지 않고 능히 만사에 응하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으니, 사람은 능히 하늘을 본받아 하늘과 하나가 된 뒤에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이를 수 있다.남과 사귈 때에 나에게 있는 도리를 다했는데도 맞지 않으면 또한 그만둘 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회호(回互)60)하여 남들이 좋게 말하는 것을 얻고자 하면, 이는 자기를 굽혀서 남을 따르는 것이다. 맹자가 "하고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61)"라고 말한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무신년(1908)】상(喪)을 틈타 시집가고 장가가는 자에 대해서는 송(宋)나라 사마온공(司馬溫公)62)이 '나라에서 바로잡는 법이 있다.63)'라고 하였으니, 여기서는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 그러나 근세에 상기(喪紀 상사(喪事))가 완전히 무너져 상이 있는데도 시집가고 장가가지 않는 자는 열에 한둘도 없다.그런데도 사람들은 편안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때에 미쳐 권도(權道)를 행하라고 장려한다. 그런데도 혹 행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사람들은 예를 지키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때를 잃어 오활(迂闊)하다고 비웃으니, 이러한 일이 어찌 우리나라 초기에 정법(定法)이 없어서 그러한 것이겠는가. 다만 군상(君相)이 일찍이 진실한 마음으로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차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을 뿐이다.역법(曆法)에 윤달을 두지 않으면 한서(寒暑)가 계절에 맞지 않고 세공(歲功)64)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이는 제요(帝堯)가 "아! 너희 희씨와 화씨야.65)"라고 말한 이유이다. 지금 이른바 양력(陽曆)은 윤달을 두지 않아서 1년의 윤달이 모두 12개월 안으로 나누어 들어간다. 그러므로 1년이 꼭 366일이 되고 절기도 어긋남이 없다. 그러나 제요의 역법에서 12개월로 나눈 것은 해가 29일 반강(半强 1일의 3/4)을 운행하여 달과 만나서 삭(朔)이 된다. 그래서 한 번 합삭(合朔)66)하는 것을 '1월'이라 하고, 두 번 합삭하는 것을 '2월'이라고 이른다. 그런데 저들의 양력은 합삭을 취하지 않아 해는 해이고 달은 달인데도 오히려 억지로 이름하여 '1월', '2월'이라고 하니 매우 부당하다.저들은 우리의 역법이 달[月]의 삭망(朔望)을 취하여 12개월을 정했기 때문에 이를 음력(陽曆)이라 하고, 저들의 역법은 다만 태양[日]으로 수를 계산했기 때문에 이를 양력(陽曆)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천지의 도는 음양이 서로 의지해야 생성할 수 있고 양 단독으로는 만물을 내놓을 수 없는 것을 매우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저들은 우리나라를 병합하려고 하기 때문에 양이 음을 겸한다는 뜻을 취하여 명명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따라서 그러한 칭호를 좇는다. 심지어 부첩(簿牒)67)과 서사(書詞 편지)에 저들의 연월일(年月日)을 사용하고 그 위에 우리나라의 연호(年號)를 더하니 매우 미혹한 일이다.《논어》에서 '인(仁)'자(字)가 오로지 성리(性理)를 가리키는 것이 있는데, 위【행한다.】인[爲仁]68), 성인(成仁)69), 이인(利仁)70)과 같은 인이 이러한 경우이니, 이는 본래 있는[自在] 것으로 인위(人爲)와는 관계없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인심(人心)이 성취한 바의 덕을 가리킨 것이 있는데, 선의인(鮮矣仁)71), 삼인(三仁)72), 언득인(焉得仁)73), 미지기인(未知其仁)74)과 같은 인이 이러한 경우이니, 이것은 한다[爲之], 이룬다[成之], 편안히 여긴다[安之], 이롭게 여긴다[利之]는 공을 아울러 모두 포함하여 말한 것이다. 이 두 항목의 뜻은 명백할 뿐만 아니고, 《논어》뿐만 아니라 모든 경전 가운데 허다한 '인'자를 다만 두 가지 뜻에서 간파한다면 바로 많은 일을 줄일 수 있다.성리의 인은 마음에 갖춰진 이(理)이니, 주자가 "마음의 덕이고 사랑의 이치이다.75)"라고 주석(註釋)한 것이 이러한 경우이다. 성덕(成德)의 인은 마음에 현존하는 이이니, 주자가 "사욕이 없어 그 덕이 있는 것이다.76)"라고 말한 것과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이 없다.77)"라고 주석한 등속이 이러한 경우이다.어떤 이가 의심하여 "인은 오성(五性)78)의 일원(一原)이고 형이상자(形而上者)79)인데, 만약 성덕의 인이라고 하면 이것은 이가 마음에 현존하는 것으로 형이하(形而下)에 속하는 것이니, 어찌 온당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여, (내가) 말하기를 "이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만약 이로써 덕을 주관하여 그 성인(成仁)의 공을 논하면 진실로 마음이 능히 하는 것이니, 형이하자에 속할 수 있고, 만약 이로써 인을 주관하여 그 현존의 이(理)를 논하면 바로 이것은 마음에 갖춰진 본성이니, 저절로 마땅히 형이상에 속해야 한다."라고 하였다.《논어집주》의 '도체는 무위(無爲)하다.80)'라는 것은 이기(理氣)의 계분(界分 경계(境界))에 나아가 도체의 본색(本色)을 말한 것이고, 《주자어류(朱子語類)》의 '이(理)에 동정(動靜)이 있다.81)'라는 것은 이기가 유행(流行)하는 데 나아가 이가 기(氣)의 주재(主宰)가 됨을 말한 것이다. 비록 '무위'라고 했지만 주재하지 않는 주재가 되는 데 해가 되지 않고, '동정'이라 했지만 무위의 본체는 진실로 본래 있는 것이다.【갑인년(1914)】'사람이 요순(堯舜)이 아니니, 어찌 선을 다할 수 있겠는가.82)[人非堯舜, 豈能盡善]'라는 8글자는, 이로써 남을 용서하면 괜찮지만, 이로써 스스로를 용서하면 몸을 해치는 짐독(鴆毒)83)이 될 것이다.【병진년(1916)】실수한 것이 조금 무겁더라도 무심(無心)에서 나왔다면 그 허물이 되는 데 해롭지 않고, 그 실수가 비록 가벼울지라도 유심(有心)에서 나왔다면 악이 되는 것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부유함은 덕을 쌓는 것보다 부유한 것이 없고, 가난함은 들은 것이 적은 것보다 가난한 것이 없으며, 즐거움은 부끄러움이 없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없고, 슬픔은 자신을 해치는 것보다 슬픈 것이 없다.죄를 꾸짖어 자책하는 것이 비록 없을 수 없지만, 만일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좌절하는 마음이 발생한다면, 이는 한 번 넘어져서 천 리 길을 그만두고, 점으로 오염되었다고 하여 입는 옷 전부를 버리는 것이니, 세상에 이와 같은 자가 많은 것은 잘못이다.우리나라의 선현(先賢) 중에 학문을 논설하여 사람들에게 감발(感發 감동하여 분발함)하는 취지를 있게 한 자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만한 자가 없고, 성리(性理)를 환히 밝혀서 사람들에게 원위(源委 본말(本末))의 자세함을 알게 한 자로는 율곡(栗谷 이이((李珥))만한 자가 없다.내 입장에서 구산옹(臼山翁)84)을 보면, 명리(名理)를 분석한 것은 진실로 확실히 아는 견문에서 나왔고, 반드시 치심(治心)과 성기(省己)에 나아가 자세하게 체득하고 알아내어 학자들에게 의거하여 착수할 곳이 있게 하였으니, 퇴계의 논학(論學)과 율곡의 명리(明理)를 합하고 하나로 하여 소유한 자는 구옹(臼翁 간재)일 것이다.궁핍할수록 더욱더 그 뜻을 굳건히 해야 하고, 가난할수록 더욱더 그 청렴을 지켜야 하며, 세상이 혼란할수록 더욱더 그 절개를 힘써야 한다.치국(治國)에 하나의 '인(仁)'자가 부족하면 나라가 망하고, 치가(治家)에 하나의 '예(禮)'자가 부족하면 집안이 망하며, 치신(治身)에 하나의 '경(敬)'자가 부족하면 몸이 죽게 된다.누더기를 입고 굶주리는 것은 슬퍼할 만한 것이 아니고, 슬퍼할 만한 것은 어버이를 생전에 봉양할 때 자미(滋味)85)를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장례를 모실 때에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다. 자로(子路)의 탄식86)은 실제로 자신이 직접 겪어온 것에서 나왔고, 공자의 기쁨을 다하고87) 재산에 맞게 하라88)는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분수에 따라 정성을 다하고 형편에 따라 이치에 맞게 한 것이니, 입언(立言)하여 사람을 가르치는 성인의 법은 진실로 마땅하다. 슬퍼하는 정과 같은 것은 비록 가령 성인이 그러한 상황에 당했더라도, 어찌 이러한 감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옛사람이 이르기를 "항상 기뻐하는 마음을 기르고 홀로 즐거운 곳을 찾는다.89)"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비록 두려움, 근심, 슬픔이 있을지라도 이로써 그 마음을 괴롭혀서는 안 되고, 마땅히 도의(道義)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말이 도에 어긋나고 행실이 의에 어그러지는 것을 아는 때에 이르면, 바야흐로 장차 뉘우치고 부끄러워할 것이니, 이른바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을 또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잘못을 하고 이를 제대로 알면 곧 기쁠 수 있고, 잘못을 알고 이를 잘 고치면 곧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겠다.사군자(士君子)의 훌륭한 명성은 평소에 마음을 다하여 힘을 쌓은 뒤에 얻지만, 간혹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생각하고 성찰하지 않은 때에 잃기도 하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외면의 허물과 내면의 사특함을 지극히 치밀하게 성찰할 때에, 이 마음이 두려워하고 위태로워 바늘방석과 바닥에 물이 새는 배에 앉아 있는 것 같아 구속되어 편치 않은 병이 있음을 아는 것 같은 것과 어지럽고 해이해져 뉘우치고 한탄해도 망각(罔覺)해버리는 것 가운데, 후자와 전자를 바꾼다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겠는가. 하물며 이를 말미암아 익힌다면 결국 광반(廣胖)의 즐거움90)이 있겠는가.부유하고 영달하면서 의(義)를 행하는 것은 물길을 따라 배를 운행하는 것과 같아 일은 절반만 하지만 공은 배가 되고, 빈궁하면서 의를 행하는 것은 물길을 거슬러 배를 운행하는 것과 같아 부지런히 노력은 하지만 얻는 것이 적다. 행동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는 것이 밝지 못하기 때문이고, 아는 것이 밝지 못한 것은 평소에 강(講)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은 무엇을 하고자 해서인가. 그 사람이 허물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어찌하여 그 사람에게 직접 고하지 않는가. 이것은 충실하지 못한 것이다. 자기에게도 이러한 것이 있을까 두렵기 때문이라면, 어찌하여 안으로 마음을 성찰하여 반드시 입으로 말하지 않는가. 이것은 성실하지 못한 것이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상대방과 나의 품평(品評)은 저절로 공론(公論)이 있어 나의 말이 우열(優劣)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위험할 뿐만 아니라 또한 어리석은 것이다. 따라서 한 가지 일을 하여 여러 악이 갖추어지는 것은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악은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보다 갖춰진 것이 없음은 진실로 마땅하다. 다만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우러러 존경받는 자가 언행에 과오(過誤)가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게다가 앞다투어 사모하고 본받아 세도(世道)에 해를 끼치면 어쩔 수 없이 이를 말해야 한다.부유하면서 날마다 그 어버이에게 삼생(三牲)91)을 받들어 올리는 자가 그 뜻을 잘 봉양하지 못하는 경우는 간혹 있지만, 가난하면서 직접 자미(滋味)92)를 극진히 하는 자가 뜻을 잘 봉양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 않다.동일한 명(名)이지만 명리(名利)와 명절(名節)의 차이가 있다. 인(仁)을 빌리고 의(義)를 꾸미며, 진심을 숨기고 명예를 구하여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것은 명리이니,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승(千乘)의 나라를 양보할 수 있다93)'는 것이 이러한 경우이다. 충을 수립하고 효도를 실천하며, 자신을 선하게 하고 덕을 세워 후대에 전할 수 있는 것은 명절이니, '군자는 종신토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94)'는 것이 이러한 경우이다.매사에 제1등의 도리를 구하여 거기에 처하고자 하면, 제1등을 비록 반드시 얻지는 못할지라도 그다음이 되는 것을 잃지 않는다. 만일 '내가 어찌 감히 제1등을 바랄 수 있겠는가. 우선 제2등을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다면 제2등을 결코 얻을 수 없어 제일 낮은 등급을 얻게 될 것이니, 뜻을 세울 때 높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곽거(郭巨)가 아들을 묻으려고 한 일95)에 대해 방손지(方遜志)96)는 "부모를 불의에 빠뜨렸으니97) 죄가 막대하다."라고 말하였다. 내 생각에 곽거는 참으로 죄가 있지만, 그의 행적에 대해서 죄를 주고 그의 마음에 대해서는 죄를 주지 않는 것이 옳다고 본다. 곽거가 이러한 일을 한 것은 다만 어버이가 있는 줄만 알고 자식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아울러 하늘을 감동시켜 명예를 구하려는 뜻이 없었으니, 그의 마음에 어찌 일찍이 죄가 있었겠는가.그가 도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이렇게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였으니, 이에 행적에는 죄가 있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허물을 보면 그 사람의 인(仁)을 알 수 있다.98)"라고 하였고, 또 "인을 좋아하기만 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어리석게 된다.99)"라고 하였으니, 이는 곽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실상 없는 이름은 하늘이 반드시 이를 싫어하여 반드시 파탄(破綻)내는 날이 있을 것이고, 죄 없는 사람을 무고하면 하늘이 반드시 원통하게 여겨 반드시 씻고 결백하게 해 주는 때가 있을 것이다.어버이가 있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 뒤에야 효자(孝子)가 되며, 나라가 있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 뒤에야 충신(忠臣)이 되며, 지아비가 있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 뒤에야 열녀(烈女)가 되며, 도가 있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 뒤에야 진유(眞儒)가 된다.선비가 쇠락한 시대에 태어나 도의(道義)를 배우고 싶다면, 마땅히 먼저 참는 것과 굶는 것을 배워야 한다.허물이 있지만 다른 사람이 이를 알면 이는 기뻐할 만하고, 허물이 있지만 스스로 아는 것도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길 만하다. 불행하게도 슬퍼할 만한 것은 허물이 있는데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허물은 꾸짖음을 받아 고칠 수 있고, 스스로 알고 있는 허물은 마음속으로 자책하여 고칠 수 있지만, 알지 못하는 허물은 영원히 고칠 수 있는 날이 없을 것이다.한때의 분발은 처음에는 쉽지만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 것이 어렵고, 중도에 그만두지 않기는 쉽지만 평생 잘 마치기는 어렵다. 자질이 좋아 선을 행하기는 쉽지만 허물을 고쳐 의를 실천하는 것이 어렵고, 허물을 고쳐 의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만 기질을 변화시켜 덕을 이루는 것이 어렵다.성인은 천리에 합하고 현자는 천리를 받들며, 군자는 천리를 두려워하고 학자는 천리를 찾으며, 중인은 천리에 어둡고 소인은 천리를 어긴다.벗 한 명이 나에게 말하기를 "세상의 변화가 날로 심해지니 나는 다만 굶어 죽는 것이 두렵네."라고 하였다. 내가 대답하기를 "선비는 마땅히 이러한 세상에서 다만 굶어 죽지 않은 것을 두려워해야 하니, 굶어 죽지 않는다면 그 욕됨이 굶어 죽는 것보다 심한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니 벗이 매우 옳다고 하였다. 余每應事失宜, 悔懊之心, 累日不已, 此一擧而得二病, 何者? 初旣有不審之病, 後復有有所之病也. 凡應事, 須要精審而不錯者上也, 事雖失宜, 只當警悔而已, 不長留在心胸, 猶爲其次也.【丙午】勤者起家之福祿, 怠者亡身之鴆毒.敬心一立, 則百邪退聽, 怠心一萌, 則百事無成. 敬怠之間, 興亡之機, 可不懼哉? 齊家之難, 甚於治國, 治國者導之以敎化而不行, 則有刑罰, 可以補其不足. 至於齊家, 敎化不行而欲用刑罰, 則恩愛先離矣, 恩愛旣離, 則何齊家之有? 故曰齊家之難, 甚於治國.上天之行, 剛健不息, 能生萬物, 而無不周徧, 聖人之心, 勤勵不懈, 能應萬事, 而無所遺漏, 人能體天而與天爲一 然後, 始可謂人矣.與人交盡在我之道, 而不合則亦已矣, 必要回互, 得他人道好, 是枉己徇人也. 孟子曰: "無欲其所不欲.", 此之謂也.【戊申】乘喪嫁娶者, 宋司馬溫公以爲國有正1)法, 此不復論, 而近世喪紀全壞, 以有喪而不嫁娶者, 十無一二. 人亦不惟恬不爲怪, 反奬其及時行權, 其或有不行者, 則人亦不惟不善其守禮, 反笑其失時迂闊, 此豈我國初, 無定法而然哉? 特緣君相未嘗實心施行, 馴致於此耳.曆法不置閏, 則寒暑失節, 歲功不成. 此帝堯所以"咨! 羲和也.". 今所謂陽曆不置閏, 而一歲閏, 率分入於十二月中. 故一歲恰滿三百六十六日, 而節氣亦無差. 然堯曆之分十二月者, 日行二十九半强, 與月合而爲朔. 故以其一合朔而謂之一月, 再合朔而謂之二月. 彼則不取合朔, 而日自日, 月自月矣, 猶且强名之曰一月二月, 無謂甚矣.彼以我曆之取月之朔望而定十二月故, 謂之陰曆, 以彼曆只以日計數故, 謂之陽曆, 殊不知天地之道, 陰陽相資, 乃能生成, 而獨陽不能生物也. 且彼欲幷我國, 故取陽兼陰之義而名之, 我人不之覺, 隨以從其稱號. 甚至簿牒書詞, 用彼年月日, 加我國年號於其上, 迷惑甚矣.《論語》中仁字, 有專指性理者, 如爲【行也】仁, 成仁, 利仁之仁是也, 此以自在而不涉人爲言. 有指人心所成之德者, 如鮮矣仁, 三仁, 焉得仁, 未知其仁之仁是也, 此幷包爲之成之安之利之之功而言. 此兩款之義, 不啻明白, 非惟《論語》, 凡經傳中許多仁字, 只從兩義看破, 便省得多少事.性理之仁, 是具於心之理, 朱子所釋心之德, 愛之理是也. 成德之仁, 是見存於心之理, 朱子所釋無私欲而有其德, 當理而無私心之類是也. 或疑仁五性之一原, 是形而上者, 若謂成德之仁, 是理之見存於心者, 是屬於形而下也, 豈非未安耶? 曰: "此不須疑也. 若以之主德而論其成仁之功, 則固心之所能也, 可屬於形而下者, 若以之主仁而論其見存之理, 則乃是具於心之本性也, 自當屬於形而上也.".《論語集註》之道體無爲, 是就理氣界分上, 說道體之本色, 《語類》之理動靜, 是就理氣流行上, 說理爲氣宰也. 雖曰無爲, 而不害爲不宰之宰也, 雖曰動靜, 而其無爲之體, 固自在也.【甲寅】'人非堯舜豈能盡善?'八字, 以之恕人則可, 以之自恕, 則戕身之鴆毒.【丙辰】所失稍重, 出於無心, 則不害其爲過, 其失雖輕, 出於有心, 則難免其爲惡.富莫富於畜德, 貧莫貧於寡聞, 樂莫樂於無怍, 悲莫悲於自賊.訟罪責己, 雖不可無, 若因一失而生沮廢之心, 是一蹉而止千里之行, 點汙而棄全襲之衣, 世多有若此者謬哉.我東先賢論說學問, 使人有感發之趣者, 莫如退溪, 洞明性理, 使人知源委之詳者, 莫如栗谷. 以余觀於臼山翁, 其剖析名理, 固發於眞知的見, 而必就治心省己上體貼出來, 使學者有依據下手處, 退溪之論學, 栗谷之明理, 合一而有之者, 其臼翁乎.窮當益堅其志, 貧當益守其廉, 世亂當益勵其節.治國少一仁字, 是無國, 治家少一禮字, 是無家, 治身少一敬字, 是無身.鶉結枵腹, 不足悲也, 所可悲者, 養生不極滋味, 送終不得恔心. 子路之歎, 實自身親經歷來, 孔子盡歡稱財之訓, 使人隨分竭誠, 順境合理, 聖人立言敎人之法則固也. 若其傷哉之情, 雖使聖人當之, 安得無是哉?昔人云: "常養喜神, 獨尋樂處.", 此言雖有恐懼憂戚, 不可以此累其心, 當以道義爲喜樂也. 然若至覺得言違乎道, 行悖乎義之時, 方且悔懊慚忿, 所謂喜樂者, 又何處見得? 曰: "過而能知, 便可喜也, 知而能改, 便可樂也.".士君子令名, 得於生平竭心積力之餘, 而或失於一言一行不加思省之際, 可不愼哉?外過內慝, 省到極, 察到密時, 此心夔夔遫遫, 如坐針氊漏船, 似覺有拘速不寧之病然, 與其泯泯沓沓, 以致悔吝而罔覺, 以此易彼, 孰得孰失? 而況由此而熟之, 終有廣胖之樂者乎?富達而行義, 如順流行舟, 事半而功倍, 貧窮而行義, 如逆流行舟, 力勤而獲少, 行之有失, 由於知之不明, 知之不明, 由於講之無素.言人之過, 欲何爲哉? 爲其人之改之也, 則何不於其人親告之乎? 此不忠也. 爲恐己亦有是也, 則何不內省于心, 而必言之于口也? 此不誠也. 爲其貶彼而尊己也, 則彼我品藻, 自有公論, 非吾言之所得而高下, 非惟險也, 亦癡也. 一擧而衆惡備, 莫如言人過.惡莫備於言人過固也. 但人之爲世宗仰者, 言行有過誤, 而衆莫之悟, 且爭慕效有害世道, 則不得不言之.富而日奉三牲於其親者, 不能養其志, 則或有之, 貧而親極滋味者, 未有不能養志也.同一名也, 而有名利名節之異, 假仁飭義, 矯情干譽以求人知者, 爲名利也, "好名之人, 能讓千乘之國"者是也. 樹忠服孝, 淑身立德, 可傳後世者, 爲名節也, 疾沒世而名不稱者是也. 每事欲求第一等道理而處之, 第一等雖未必得, 而不失爲抑其次者. 若道我何敢望第一等? 不如且做第二等, 則第二等決不可得, 而歸於最下品, 立志可不高哉?郭巨埋子, 方遜志以爲"陷親不義, 罪莫大焉", 余謂巨信有罪矣, 罪其迹而不罪其心可也. 巨之爲此也, 但知有親而不知有子, 幷無感天要名之意, 其心何嘗有罪乎? 由其未聞道, 而徑情自遂, 有此悖理之擧, 於是乎跡則有罪矣. 孔子曰: "觀過斯知仁.", 又曰: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巨之謂也.無實之名, 天必忌之, 必有破綻之日, 無罪之誣, 天必寃之, 必有雪白之時.只知有親而不知有他, 然後爲孝子, 只知有國而不知有他, 然後爲忠臣, 只知有夫而不知有他, 然後爲烈女, 只知有道而不知有他, 然後爲眞儒.士生衰世, 欲學道義, 當先學忍飢.有過而人知之, 是可喜也, 有過而自知之, 猶可幸也. 不幸而可悲者, 其有過而不自知乎. 人知之過, 得以受責而改之, 自知之過, 得以內訟而改之, 不知之過, 永無可改之日矣.一時之奮始易, 中途之不廢難, 中途之不廢易, 畢生之克終難, 質美而爲善易, 改過而徙義難, 改過而徙義易, 變質而成德難.聖人合天, 賢者奉天, 君子畏天, 學者求天, 衆人昧天, 小人違天.一友人謂余曰: "世變日甚, 吾輩只怕餓死.". 余曰: "士當此世, 只怕不餓死, 不餓死則其辱有甚於餓死者.", 友人深以爲然. 유소(有所)의 병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7장에서 마음을 올바르게 하는데 방해하는 네 가지를 말하였는데, "마음에 분노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身有所忿懥則不得其正, 有所恐懼則不得其正, 有所好樂則不得其正, 有所憂患則不得其正.]"고 하였다. 짐독(鴆毒) 짐새의 깃에 있다는 맹독(猛毒)이다. 회호(回互) 잘못을 거짓으로 꾸미거나 변명하는 일이다. 하고자 …… 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보인다. 사마온공(司馬溫公) 중국 북송 때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이다. 자는 군실(君實), 호는 우부(迂夫), 우수(迂叟)이고 사마온공이라고도 한다. 나라에서 …… 있다 사마온공이 말하기를 "상중에 있으면서 음악을 듣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자는 나라에서 바로잡는 법이 있다.[其居喪, 聽樂及嫁娶者, 國有正法.]"라고 하였다. 《소학(小學)》 〈가언(嘉言)〉 세공(歲功) 한 해의 농사나 수확이다. 아! …… 화씨야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서 제요(帝堯)가 말하기를 "아! 너희 희씨와 화씨야. 1년은 366일이니, 윤달을 사용해야 사시를 정하여 해를 이룬다.[咨! 汝羲曁和. 朞三百有六旬有六日, 以閏月, 定四時成歲.]"라고 하였다. 합삭(合朔) 해와 달이 만나는 것을 말한다. 합삭은 대략 매달 음력 초하루 전후에 일어난다. 《후한서(後漢書)》 〈율력지(律曆志)〉 부첩(簿牒) 관아의 장부와 문서이다. 《논어》 〈학이(學而)〉에서 유자(有子)가 말하기를 "군자는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발생한다. 효와 제라는 것은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고 하였다. 성인(成仁) 《논어》 〈위령공(衛靈公)〉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지사와 인인은 살기를 구하여 인을 해침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라고 하였다. 이인(利仁)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인자는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仁者安仁, 知者利仁.]"라고 하였다. 선의인(鮮矣仁) "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하는 사람은 인한 이가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라고 공자가 《논어》 〈학이〉에서 말하였다. 삼인(三仁) 《논어》 〈미자(微子)〉에 "미자는 떠나가고, 기자는 종이 되고, 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다. 공자가 '은나라에 세 인자가 있었다.'라고 하였다.[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라는 말이 나온다. 언득인(焉得仁)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자장(子張)이 초(楚)나라 영윤(令尹)을 지낸 자문(子文)과 제(齊)나라 대부 진문자(陳文子)에 대해서 공자에게 묻자 "모르겠다. 어찌 인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未知. 焉得仁?]"라고 답한 내용이 나온다. 미지기인(未知其仁) 《논어》 〈공야장〉에 맹무백(孟武伯)이 공자에게 자로(子路)가 인하냐고 묻자 "유는 천승의 나라에서 그 군정을 다스리게 할 수는 있거니와, 그가 인한지는 알지 못하겠다.[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라고 답한 내용이 나온다. 마음의 …… 이치이다 《맹자집주》 〈양혜왕 상(梁惠王上)〉에서 주자가 말하기를 "인은 마음의 덕이고 사랑의 이치이다.[仁者, 心之德, 愛之理.]"고 하였다. 사욕이 …… 것이다 《논어집주》 〈옹야(雍也)〉에서 주자가 말하기를 "인은 마음의 덕이니, 마음이 인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욕이 없어 그 덕이 있는 것이다.[仁者心之德, 心不違仁者, 無私欲而有其德也.]라고 하였다. 이치에 …… 없다 《논어집주》 〈공야장)〉에서 주자가 스승에게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이 없으면 인이다.[當理而無私心則仁矣.]"라고 들은 말을 가리킨다. 오성(五性) 오상(五常)으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말한다. 형이상자(形而上者) 《주역》 〈계사 상(繫辭上)〉에 "형이상자를 도라고 하고 형이하자를 기라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고 하였다. 도체는 무위하다 《논어집주》 〈위령공(衛靈公)〉에서 주자가 "인심은 지각이 있고, 도체는 무위하다.[人心有覺, 而道體無爲.]"라고 하였다. 동정(動靜)이 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94 〈태극도(太極圖)〉에 "양이 동하고 음이 정한 것은 태극의 동정이 아니고 단지 이에 동정이 있는 것이다.[陽動陰靜, 非太極動靜, 只是理有動靜.]"라고 하였다. 사람이 …… 있겠는가 《이태백문집(李太白文集)》 권25 〈표(表) 여한형주서(與韓荆州書)〉에는 "사람이 요순이 아니니, 누가 선을 다할 수 있겠는가.[人非堯舜, 誰能盡善.]"라고 나온다. 짐독(鴆毒) 짐새의 깃에 있다는 맹독(猛毒)을 말한다. 구산옹(臼山翁)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여러 가지 호 가운데 하나이다. 자미(滋味) 맛이 좋고 자양분이 많은 음식이다. 자로(子路)의 탄식 자로가 "슬프다, 가난이여. 어버이가 살아계실 때에는 봉양할 수 없고, 돌아가신 뒤에는 예를 행할 수 없구나.[傷哉, 貧也! 生無以爲養, 死無以爲禮.]"라고 말한 내용이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下)〉에 나온다. 기쁨을 다하고 자로가 가난하여 효도를 제대로 못한다고 탄식하자, 공자가 "콩죽을 끓여 먹고 물을 마실지라도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을 다한다면, 이것이 바로 효이다.[啜菽飮水, 盡其歡, 斯之謂孝.]"라고 한 내용이 《예기》 〈단궁 하〉에 나온다. 재산에 …… 하라 《예기》 〈단궁 하〉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머리와 발의 형체만 염습하여 바로 장사지내며, 덧널이 없더라도 자기의 재산에 맞게 하면 이것을 예라고 한다.[斂首足形, 還葬而無槨, 稱其財, 斯謂之禮.]"라고 하였다. 항상 …… 찾는다 《명유학안(明儒學案)》 권61 〈동림학안 4(東林學案四)〉에 "출세하는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지 않고 곤궁하게 사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으며, 항상 희신을 기르고 홀로 즐거운 곳을 찾는다.[不榮通, 不醜窮, 常養喜神, 獨尋樂處.]"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광반(廣胖)의 즐거움 《대학장구》 전 6장(傳六章)에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히 해야 한다.[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라는 내용이 나온다. 삼생(三牲) 세 가지의 희생으로, 소, 양, 돼지를 말한다. 자미(滋味) 맛이 좋고 자양분이 많은 음식이다. 명예를 …… 있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서 맹자가 말하기를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승의 나라를 양보할 수 있거니와, 만일 그러할 만한 사람이 못 되면 한 그릇의 밥과 국에도 얼굴빛에 드러난다.[好名之人, 能讓千乘之國, 苟非其人, 簞食豆羹, 見於色.]"라고 하였다. 종신토록 …… 싫어한다 《논어》 〈위령공〉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종신토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라고 하였다. 곽거(郭巨)가 …… 일 후한(後漢) 때의 효자 곽거가 가난한 형편에 노모를 극진히 잘 봉양하였는데, 노모가 항상 세 살 된 손자에게 자기 밥을 덜어서 먹였다. 그러자 곽거와 아내가 노모 봉양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아이를 묻으려 하였는데, 갑자기 땅속에서 황금 가득한 가마솥[金釜]이 나왔다. 그래서 아이 묻는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노모를 잘 봉양하고 아이도 잘 키웠다고 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권411. 방손지(方遜志) 손지는 방효유(方孝孺, 1357~1402)의 호이다. 중국 명나라 초기의 학자이다. 자는 희직(希直), 희고(希古)이고, 청렴하고 강직하여 사람들은 그를 방정학(方正學)이라고 불렀다. 부모를 …… 빠뜨렸으니 《맹자집주》 〈이루 상(離婁上)〉에 조씨(趙氏)가 말하기를 "예에 따르면 불효에 세 가지가 있는데, 부모의 뜻에 아첨하고 무조건 따라서 부모를 불의에 빠뜨리는 것이 첫째이다.[於禮有不孝者三事, 謂阿意曲從, 陷親不義一也.]"라고 하였다. 허물을 …… 있다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사람의 허물은 각각 그 유대로 하는 것이니, 허물을 보면 그 사람의 인을 알 수 있다.[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斯知仁矣.]"라고 하였다. 인을 …… 된다 《논어》 〈양화(陽貨)〉에 나온다. 正 대본에는 '定'으로 되어 있으나 원문에 근거하여 '正'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경진년 생일 아침에 감회를 기록함 庚辰生朝識感 올해 경진년(1940)은 내 나이가 57세이고, 오늘 아침 6월 6일은 바로 내 생일이다. 예전 20여세 때에 선친이 관상쟁이를 불러서 내 관상을 보게 하였는데, 관상쟁이가 나의 평생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하고 끝에 "수(壽)가 57세에 불과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선친이 기뻐하지 않고 그만두었다. 올해가 바로 그때에 해당되고 해가 또 장차 반이 되어가는데, 관상쟁이의 말이 참으로 증험이 있는지 모르겠다.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심(心)은 신(身)의 주인이니 심신이 모두 오래 산 뒤에야 장수라 이를 수 있고, 신은 죽었지만 심이 살아서 인(仁)을 이루고 의(義)를 취하여 이름이 오랫동안 전해질 수 있다면 역시 장수이다. 반면에 심이 죽고 신이 산다면 비록 백년 동안 오래 살지라도 다만 어리석은 자일 뿐이니, 장수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무엇을 심에 생사(生死)가 있다고 이르는가? 심이 스스로 능히 스스로 주관하여 성리(性理)와 예법(禮法)을 따르는 것을 생이라 이르고, 스스로 주관하지 못하여 기의 욕심과 습염(習染)100)에 부림을 당하는 것을 사라 이른다.나는 자질이 아름답지 않고 학문도 거칠고 잘못되었으며, 마음이 스스로 단속하지 못해서 허물과 악이 날로 쌓이고, 마음이 스스로 제재(制裁)하지 못하여 언행이 더욱 어그러지며, 마음이 근심과 걱정에 매여서 질병이 침범하고, 마음이 게으름에 빠져서 육신의 추위와 굶주림이 심하며, 마음이 남을 용납하지 않아서 원망과 미움이 눈 앞에 가득하고, 마음에 덕화(德化)가 부족하여 처자가 명령을 어겨서 마음속에 살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지 않으니, 과연 온전한 죽음에 이르지 않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시변(時變)이 날로 극심하여 닥친 상황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또한 앞으로 수립할 것도 고인(古人)이 성취(成取)한 것과 같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아! 삶은 내가 기뻐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반드시 마음이 산 뒤에 기뻐할 만하고, 죽음은 내가 싫어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반드시 마음이 죽은 뒤에 싫어할 만하다. 그러니 내 마음이 만일 지난날을 징계하여 후일을 삼가되 탁월하게 일체의 기의 욕심과 습염을 주관하여 그 사이를 간섭하는 일이 없게 하고, 단호하게 오직 성리와 예법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에 표준으로 삼는다면, 일일귀인(一日歸仁)101)과 조문석가(朝聞夕可)102)의 성인의 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관상쟁이로 하여금 죽을 날을 증험하는 날을 말하게 할지라도 살아있는 해와 같을 것이다.이는 내가 스스로 바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선친이 평소에 바라던 것이니, 혼령이 저승에서 감동하여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혹시라도 이와 반대가 된다면, 비록 수가 모기(耄期)103)에까지 올라서 관상쟁이로 하여금 증험하지 못하게 하더라도, 결국 마음이 죽는 데에 도움이 없을 것이니, 어찌 족히 말할 것이 있겠는가. 今歲庚辰, 余年五十七, 今朝六月六日, 卽余弧辰. 昔余年二十餘, 先考召相者, 令觀不肖, 相者略言平生, 終曰: "壽不過五十七.", 先考不樂而罷. 今年正當其時, 歲且將半, 未知其言信驗乎否. 然而竊念人之爲生, 心者身之主也, 心身俱久生, 然後可謂之壽, 身死心生而成仁取義, 名可久傳亦壽也. 心死而身生, 雖永百年, 徒蠢物耳, 可云壽乎哉? 何謂心之有死生? 心能自主而循夫性理禮法, 謂之生, 不能自主而役於氣慾習染, 謂之死. 余質之不美, 學又疏繆, 心不自檢, 咎惡日積, 心不自制, 言動倍戾, 心纏憂愁, 疾病侵尋, 心汨懶惰, 凍餓切身, 心不容物, 怨嫉滿前, 心乏德化, 妻子違令, 靈臺之中, 生意不敷, 未知果不至全死否. 且時變日極, 所遭難測, 亦未知前頭樹立, 亦能如古人成取否. 嗚呼! 生吾非不喜, 必心生而後可喜, 死吾非不惡, 必心死而後可惡, 吾之心苟能懲前毖後, 而卓然有主一切氣慾習染, 莫干其間, 斷然惟以性理禮法, 準的乎思慮言動之際, 則一日歸仁, 朝聞夕可, 聖人有言, 雖卽使相者言驗死之日, 猶生之年也. 非惟吾所自期, 亦先考所望於平日者, 不昧之靈, 動喜於冥冥. 如或反是, 雖壽躋耄期, 使相者不驗, 究無補於心死矣, 何足道哉? 습염(習染) 습관이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몸에 깊이 배는 것을 말한다. 일일귀인(一日歸仁) 《논어》 〈안연(顔淵)〉에서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자기의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을 허여하는 것이다.[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조문석가(朝聞夕可) 《논어》 〈이인(里仁)〉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朝聞道, 夕死可矣.]"라고 하였다. 모기(耄期) 8, 90세부터 100세까지의 나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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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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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자기설 【1919년】 自欺說 【己未】 무릇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데도 이와 반대로 자신에게 베푸는 것으로는 '자신을 꾸짖음[自責]', '자신을 다스림[自治]', '자신을 원망함[自怨]', '자신을 비웃음[自笑]' 같은 등속이 진실로 많다. 그런데 유독 '자신을 속인다[自欺]'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기(欺)는 이쪽에서 저쪽을 어둡게 하는 것을 이른다. 한 사람인데 과연 누가 속이고, 누가 속는 것인가?이에 《대학》의 경문(經文) 및 장구(章句)를 취하여 반복하고 숙독한 뒤에, 자기(自欺)는 내 마음으로 내 마음을 속인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찌하여 그렇게 이르는가. 선은 마땅히 실천하고 악은 마땅히 제거해야 하는 것은 지(知)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른바 뜻이 그 지를 채워 성실하게 하지 못하면, 이는 뜻이 지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지도 마음의 지이고, 뜻도 마음의 뜻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마음을 속인다.'라고 하겠다.묻기를 "그렇다면 과연 지가 뜻에게 어두워짐을 당하는가?"라고 하기에, 답하기를 "지는 지이고 뜻은 뜻일 뿐이니, 어찌 어두워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묻기를 "어두워지지 않는다면 어찌 이것을 기라고 이르는가."라고 하기에, 답하기를 "내가 비록 어둡지 않을지라도 상대방이 실제로 어둡게 한다면, 어떻게 이것을 기라고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의 간과 폐를 보듯 훤히 꿰뚫어보는 군자가 한가하게 지내는 소인에게 속지 않았으면, 이를 두고 소인이 군자를 속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옳겠는가."라고 하였다.묻기를 "그렇다면 뜻이 성실하지 않을 때 지가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기에, 답하기를 "이때를 당하여 뜻은 한창 용사(用事)하고, 지는 공을 이루고 떠나가 그 자리에 있지 않으니, 어떻게 그것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묻기를 "이 지(知)는 과연 충분히 다하여 한 점의 누도 없는가?"라고 하기에, 답하기를 "그렇다. 성의(誠意)는 격물(格物)과 치지(致知) 이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그 지를 지극히 함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그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이에 자기(自欺)의 여부가 정해진다. 이는 분명히 성의 가운에의 일이니, 비록 지에 누를 끼치려고 하지만 가능하겠는가."라고 하였다.묻기를 "이것은 그렇지만, 그대는 어찌 《주자어류(朱子語類)》와 《혹문(或問)》을 보지 않는가. 지가 미진(未盡)하면 자기(自欺)에 이르니 자기는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사람이, 선은 참으로 좋아할 만하고 악은 참으로 미워할 만한 줄을 모른다면, 자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104) 이와 같은 등속은 장차 어떻게 구분하여 처리해야 하는가?"라고 하기에, 답하기를 "이것은 과연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대학장구》의 '자기라고 이른 것는 선을 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지만, 마음의 발하는 바가 성실하지 못함이 있다.105)'라는 문장을 가지고 보면 결국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이미 '선을 하고 악을 제거해야 하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으니, 이 지가 어찌 일찍이 거짓되고 미진한 지이겠는가.또 '마음의 발한 바에 미진한 것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성실하지 못한 것이다. 과연 뜻이 스스로 재앙을 짓고 지와 죄를 나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만약 《대학장구》를 정론(定論)으로 삼는다면 후학들이 여기에 저절로 의지하여 따를 것이 있을 것이다. 또 공부의 차례와 사리의 구경(究竟)으로 미루어 보면 말할 만한 것이 있다.무릇 세상에서 지를 다하지 못하여 뜻을 성실히 할 수 없는 자가 진실로 많으니, 이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자이다. 군자는 '무심코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이를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속이는 자에 이르러서는 바로 이미 알면서 스스로 성실히 하지 못한 자이니, 이런 경우는 마땅히 유심(有心 의도적인)의 사사로움으로 귀결시켜 용서하지 않는 조목에 두어야 한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지가 미진한 자는 진실로 그 뜻을 성실하게 할 수 없지만, 지가 미진한 데서 사사로움이 있는 자기가 나왔다고 하는데 이르러서는 진실로 의심이 없을 수 없다고 본다.다만 《대학장구》의 장(章) 밖의 주에 '심체의 밝음이 미진하면 발하는 바가 성실하지 않아 스스로 속이게 된다.106)'라고 이른 것은 결국 지(知) 한쪽을 중시한 설인 듯하다. 그러나 이는 바로 성의(誠意)를 따로 세우고 단독으로 전하여 치지(致知)와 연결시키지 않았으니, 이는 사람들이 윗 장을 이어 통틀어 상고하지 않거나, 치지를 먼저 하지 않고 다만 뜻을 성실히 하려고 하면 크게 해가 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위에서부터 근원을 미루어 지의 미진에 대해 말하면 뜻을 성실히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자기는 바로 성실하지 않는 진장(眞贓 확실한 증거물)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연대해서 말해나간 것이고, 심체의 밝음이 미진한 것으로써 스스로 속이는 것의 실병(實病 실제의 병)을 말한 것은 아니다. 수절(首節) 《대학장구》의 자기의 해석 가운데 넣지 않고 장(章) 밖에 둔 것으로 보면 자기의 실병을 볼 수 있으니, 그 아래 글에서 이른바 '이미 밝게 알았더라도 이를 삼가지 않으면107)[已明而不謹乎此]'이라고 말한 한 구는 여기에 해당시킬 수 있다."라고 하였다. 凡人之可施於人, 而反之以自施者, 如自責自治自怨自笑之類固多矣. 獨自欺者何說焉? 欺者以此昧彼之謂也. 一人焉, 而果誰昧之? 果誰受昧? 乃取《大學》經文及《章句》, 反覆熟讀然後, 知自欺者以吾心欺吾心也, 曷謂焉? 善當爲, 惡當去, 非知之所已識乎? 而所謂意者不能充其知而實之, 斯非意欺知乎? 然知亦心之知也, 意亦心之意也. 故曰: "心欺心也.". "然則知果爲意所昧乎?", 曰: "知自知意自意, 焉得昧?". "爲不昧, 胡謂之欺?", "吾雖不昧, 彼實昧之, 安得不謂之欺? 如見肺肝之君子, 不見欺於閒居小人, 謂小人不欺君子可乎?". 曰: "然則意之不實也, 知可以管他而不能, 何也?", 曰: "當是時也, 意方用事, 知則成功者去, 不在其位, 如何管得他?". 曰: "此知也果十分盡而無一點累者乎?", 曰: "然. 誠意是格致以後事. 故不曰所謂誠其意在致其知, 而只曰誠其意者毋自欺也, 於是乎自欺與否定, 定是誠意中事, 雖欲貽累於知, 得乎?". 曰: "是則然矣, 子盍觀乎《語類》, 《或問》乎? 知之未盡, 至於自欺, 自欺是半知半不知底人, 不知善之眞可好, 惡之眞可惡, 則不免於自欺諸. 如此類, 將何以區處?", 曰: "此則果有難言者, 但以《章句》自欺云者, 知爲善而去惡, 心之所發, 有未實之文觀之, 終有不然. 旣云知爲善而去惡, 則是知也, 何嘗是虛假未盡之知乎? 又云心之所發, 有未盡則是未實也, 果非意之自作孼而可分罪於知者乎? 故若以《章句》爲定論, 則後學於此, 自有所適從矣. 且以工夫次序事理究竟推之, 亦有可說者. 凡世之知未盡而不能誠意者, 固多有之矣, 是則欲而未能者. 君子以爲無心之失而恕之也, 至於自欺者, 乃已知而不自實者, 此則當歸之於有心之私, 而在不恕之科也. 故妄意以爲知未盡者, 固不能誠其意, 至謂有私之自欺, 出於知之未盡, 則誠不能無疑也. 獨《章句》章外註心體之明未盡, 則所發不實而自欺云者, 終似重知一邊說. 然此則正以其誠意之別立單傳, 而不連致知, 恐人不承上章而通考之, 或不先致知而徒欲誠意, 則爲害大矣. 故從上推原說知未盡, 則意不可得以誠, 而自欺者乃不誠之眞贓也. 故自然連帶說去, 非以心明之未盡語自欺之實病也. 以其不入首節《章句》自欺訓釋之中, 而置之章外者觀之, 可見若乃自欺之實病, 則其下文所謂已明而不謹乎此一句, 正可以當之矣.". 자기는 …… 것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6 〈대학 삼(大學三)〉에서 주자가 "스스로 속인다는 것은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사람이, 선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충분히 선을 실천하지 못하고, 악은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그만두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自欺是箇半知半不知底人, 知道善我所當爲, 却不十分去爲善, 知道惡不可作, 却是自家所愛, 舍他不得, 這便是自欺,]"라고 하였다. 《대학장구》 전(傳) 6장 성의(誠意) 부분에서 주자가 주석한 내용이다. 심체의 …… 된다 《대학장구》 전 6장의 맨 끝부분에는 "심체의 밝음이 미진한 바가 있으면 그 발하는 바가 반드시 실제로 그 힘을 쓰지 못하여 구차하게 스스로 속임이 있게 된다.[蓋心體之明, 有所未盡, 則其所發必有不能實用其力, 而苟焉以自欺者.]"라고 되어 있다. 이미 …… 않으면 《대학장구》 전 6장 맨 끝부분에 "그러나 혹 이미 밝게 알았더라도 이를 삼가지 않으면, 그 밝힌 것이 또 자기의 소유가 아니어서 덕에 나아가는 기초로 삼을 수 없다.[然或已明而不謹乎此, 則其所明又非己有, 而無以爲進德之基.]"라는 주자의 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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