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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교달(李敎達)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酉九月卄四日 李敎達 李敎成 辛酉九月卄四日 李敎達 李敎成 경상북도 김천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9월 24일에 이교달이 《안우산문집》 중에 조남명에 대한 각 정보와 공교분회소 개회식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21년 9월 24일에 경북 금천군(金泉郡) 조마면(助馬面) 백화동(百花洞) 공교분회소(孔敎分會所)의 이교달(李敎達)이 전남 보성군 문전면(文田面) 가천리(可川洞)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안부를 묻고 항상 누각에서 한가하게 지내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먼저 몇 해 전에 존형(尊兄)의 책상 위에 쌓여있는 《안우산문집(安牛山文集)》 중에 조남명(曺南溟)은 한 때 토호(土豪)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평하였는데, 조남명은 조식(曺植, 1501~1572)을 가리킨다. 본관이 창녕(昌寧), 자가 건중(楗中)이며, 남명이 호이다. 지금 도통사(道統祠) 공교분회소에서 크게 일어난 토론을 언급하고 있는데, "오직 우리 동방에서는 조남명 선생이 성리학(性理學)의 시조인데 우산(牛山)의 천박(淺薄)한 토호(土豪)의 일로 돌아가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는가? 선비가 이 말을 듣고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다."는 언론이 분분하여 한 가지 묻고자 하니 이른바 《안우산문집》에 실려 있는 이 말은 몇 권 몇 장에 있는지와 우산의 이름, 자호(字號), 관직을 알려주고 각판(刻板)인지 활판(活版)인지 상세히 알아서 회답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우산집이 이미 발간되어 각 집에 퍼져 있으나 종씨(宗氏)에게는 혐의가 없으니 의심하지 말고 기록하여 보내라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다음 달 4일 공교분회소에 개회식이 있으니 회답하여 주시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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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寅至月旬九日 李鐺 伊彦宅 丙寅至月旬九日 李鐺 伊彦宅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18_001 1926년 11월 19일에 재종질 이당이 진보하지 못하는 자신의 근황과 《소학》 〈가언편〉을 본 소감 등을 내용으로 이언 댁에 보낸 간찰 1926년 11월 19일에 재종질인 이당(李鐺)이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언(伊彦) 댁에 보낸 간찰이다. 삼가 진흙이 질퍽거리는 때에 행차는 화평하게 돌아왔는지, 재종조부(再從祖父)의 기력이 강건하시고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체후와 집안의 여러 일들도 모두 편안한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재종질 자신은 눈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할 만한데 남은 핵심은 안에 있으며 빛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아 가을빛이 떨어짐을 탄식하고, 맡은 일은 평소에 이끌어 나아가는 기술이 없어 진보하여 중요한 뜻에 부응하지 못하니 부끄럽고 두렵다고 하였다. 사람이 질병이 있는데도 약을 잘 먹지 않으면 가장 나쁜 증상이 되고 백 가지가 이미 고질이 되면 받아들이지도 던져버리지도 못해 명현(瞑眩)해지니 합당한 사람에게 치료를 받지 않으면 창편(倉扁, 편작)이 살아있더라도 손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근래 《소학》 〈가언편(嘉言篇)〉을 보았는데 구절마다 매우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한갓 동몽(童蒙)의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강습하는 사람도 친숙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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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五月十二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五月十二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8_001 1936년 5월 12일에 김택경이 저포를 속히 부쳐달라는 부탁, 마종 값, 길을 떠날 계획, 《소의신편》 전달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6년 5월 12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형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지난번에 부친 서찰을 받아 보았는지, 근래 춘부장(春府丈)님의 기력은 강건한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저포(苧布)는 매우 급하니 만약 2필을 얻기 어려우면 1필이라도 속히 부쳐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마종(麻種) 값은 근래 들여왔는지를 묻고 이곳은 들여오는 원래 금액이 33원이라고 하였다. 지난번에 말한 개화(開花)는 아직 보지 못하였고 영서(嶺西)를 찾아보니 또한 이 종자가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본래 10일에 길을 떠나려고 하였으나 비가 와서 마침내 눌러 앉았고 여름에는 더위와 장마로 나아가기 어려워 가을이 되기를 기다릴 뿐이라고 하였으며, 그곳에는 근래 비와 가뭄이 물러났는지를 묻고서 이곳은 조금 비가 왔으나 흡족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또 물품은 보냈는지 회답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소의신편(昭義新編)》을 정오제(丁梧齋)에게 전해 주었는지 회답해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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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申臘月念六日 金澤卿 李敎成 丙申臘月念六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6년 12월 26일에 김택경이 형의 택지, 대관령 남쪽으로의 이주, 친산(親山) 택정 등의 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896년 12월 26일에 강원도 명주군(溟州郡) 성산면(城山面) 금산리(琹山里)에 사는 김택경(金澤卿)이 전북 정읍군(井邑郡) 고부면(古阜面) 안영리(安永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봄철에 보내주신 서찰을 받고 10년 동안 격조한 뒤에 뵌 듯하였는데, 현합(賢閤, 부인)과 따님의 상에 매우 놀랍고 슬펐다. 아직도 이렇게 좌하(座下)에 조위하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다. 문중의 족보를 만드는 일은 읍저(邑邸)의 일이 바빠 겨를이 없다. 형의 체후 등 두루 편안한가? 형의 택지(擇地)는 본래 오랜 계획인데 고향을 떠나는 마음이 어찌 그저 지나가는 일이겠는가. 자신은 근근이 예전처럼 지내지만 천 가락의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말씀하신 피란(避亂) 같은 일은 없지만 경인년(1890) 3월에 이미 대관령(大關嶺)의 남쪽으로 옮겼다. 구점(舊店) 금산(金山)에서 수십 리 길이며, 한 조각 땅을 버리는데 지나지 않지만 신수(薪水)의 즐거움은 초목(草木)과 함께 썩기를 기약할 뿐이다. 공이 보관하는 서적은 혹 손상된 것이 없는지, 장판(帳板)도 보존되어 있는지를 묻고, 지난해에 자신의 고을에 사는 화종(華宗)의 일로 청한 것을 보내 온 것은 계씨에게 다 주지 않았다고 하였다. 형이 청오(풍수지리학)의 방법으로 유명하다고 얼핏 들었는데, 친산(親山)이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으니 내년 봄 아늑하고 따뜻한 때를 기다려 왕림해서 두루 살펴달라고 하고, 혈자리 하나를 점하고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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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정순(李正淳)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六月十日 李正淳 李百榮 庚申六月十日 李正淳 李百榮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6월 10일에 이정순(李正淳) 등이 형재(亨齋) 선생의 묘표를 새로 만드는 일에 관한 내용으로 이백영(李百榮)에게 보낸 간찰 1920년 6월 10일에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운곡리(雲谷里)에 사는 이교천(李敎川), 이정순(李正淳), 이용순(李龍淳) 공동 명의로 경남 창원군 북면(北面) 고암리(高岩里)에 사는 이백영(李百榮)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형재(亨齋) 선생의 묘표(墓表)를 새로 만드는 일은 실로 수백 년 동안 행하지 못했던 성대한 일인데 여러 종씨(宗氏)가 유독 힘써 노력함에 지극히 흠탄(歆歎)하며, 자손 중에 누구인들 우러러 사모하여 정성을 다하지 않겠는가마는 그중 한둘은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은 이러한 일을 스스로 헤아릴 수 없어 교성(敎成)에게 전송하였다. 여러 종중에서 합의(合議)하여 자손들이 한없이 봉양하게 해야 한다. 자신들의 성품은 고아하고 반듯하여 조금이라도 깨끗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더럽혀질 것처럼 여겼기 때문에 남과 부합되는 일이 적었다. 의론한 것이 어긋나는 일이 반을 넘지 않으나 준공(竣功)에 이르러 결함이 아닌 결함과 결함이 있는 결함을 어찌 논할 수 있겠는가. 이번 우천 관계로 도로가 위험하고 끊어져 소식이 이와 같이 지체하게 되었으며, 문중에 안배하여 부칠 것이니 받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상세하게 회답해 달라고 하였다. 교천과 정순은 이름 아래에 날인하였다. 형재 선생은 성주이씨 이조년의 증손자 이직(李稷, 1362~1431)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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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이상호(李祥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五月念日 李祥鎬 李敎成 丁卯五月念日 李祥鎬 李敎成 경상북도 안동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00_001 1927년 5월 20일에 이상호가 인역(印役)이 늦어지는 것에 양해를 구하고 남은 책권도 곧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간찰 1927년 5월 20일에 이상호(李祥鎬)가 보낸 간찰이다. 류한(榴旱, 음력 5월의 가뭄)에 부모님을 모시며 생활하는 체후가 평안하고 집안 식구들도 모두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위안이 되고 또 하례 드린다고 인사하고, 자신은 처리할 일이 많아 고요하게 붙어 있는 날이 없어 잠시도 온전히 편안할 겨를이 없다고 하였다. 곧 진행될 것이라고 말한 일은 이렇게 늦어져 기한이 없었지만 중간에 일이 많았으며 인역(印役)도 한없이 많고 공인(工人)의 한 손을 겸하고 있어 생병(生病)이 심하게 들었다면서, 일 년 이상이 걸렸으니 먼 밖에서 어찌 마음이 조급하고 답답하지 않겠는가 하고 위로하고 있다. 이를 알고는 있지만 비록 대대로 교분이 두터운 벗이 부탁하여 올린 것인데 후회해도 소용없고 천금과 같은 언약을 스스로 저버릴 수 없는 사람이 나이니 이왕 기다린 것을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현재 인출(印出)하여 책자로 만들고 남은 책권도 차례대로 손수 같이 한다면 오래지 않아 받을 듯하다. 이것이 믿을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이러한 뜻을 그곳의 여러분들에게 말해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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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前惠覽 日來侍餘體度泰安 兩堂大小諸節而一安否仰慰慕願聞之耳 然而第位土事는 今春分與貴君同返寶城ᄒᆞ야 其門中一曰文題形便을 볼지라도 結局은 敎雄反對에因하야 訴訟할 作定은 各門中이 다 된 쥴노生覺ᄒᆞ고 又는 錦變氏家의셔 再昨年分訴訟ᄒᆞ야 位土移轉手續ᄒᆞ기로 結議書을 作成ᄒᆞ야 近百餘名承諾 証印도 在於手中ᄒᆞ고 又는敎成兩家의셔 某之中 同座席ᄒᆞ야 敎成出言中一曰, 訴訟得判ᄒᆞ야 位土移轉件 二曰亨齋公祀版奉安件 三曰譜事也云ᄒᆞᆫ 面證도 되고 上京時 우리派는 勿論이온나 各相逢之族마락訴訟結處을 當ᄒᆞ기로 不可不形便보아不如할時외는 印章通信ᄒᆞ기가 不便及日字가遲滯되온니 若擧訟이 될 時는 印造改刻ᄒᆞᆫ다고唐告ᄒᆞᆫ일도 잇기로 卽時上京ᄒᆞ야 不如ᄒᆞ면擧訟爲計언니 맛참 有身病ᄒᆞ고 又는 敎雄處間 비밀히 調査則別返無理故今新後谷■(城)〔寶〕兩門會을 逐於結處爲計矣니 其月分부터 敎雄間行的이 變動되고 譜所往來ᄒᆞ야 處事凡節並前日片紙와 如히 우리 谷寶兩門中은前道의 餘望이 無一片켸된니 憤心히 莫甚ᄒᆞ야 東取西貸ᄒᆞ야 着手後 通知ᄒᆞ야도 無放할쥴로生覺인바 陰凶ᄒᆞᆫ 敎欄等외계 치소을 바든니 利害는 勿論하고 痛憤痛憤이라 ■故로 初也외도 凶凶ᄒᆞᆫ 敎欄도 此有의 名議을 두랴ᄒᆞ얏든니 譜所鍾浹■〔及〕某某中의셔 監하기로 去六七月分 寶城大淳氏와 同上京ᄒᆞ야 大淳氏는 獨歸下行켸ᄒᆞ고 自己는 敎雄處의셔 一日宿泊ᄒᆞ야 大淳氏보텀 一日後下行인니 敎欄은 고만두라고덜 ᄒᆞ기로 爲疑ᄒᆞ야 敎在는 未覺ᄒᆞ고 敎欄만 빼다가 오쥭지산은 內容証明書을 다 바다보오니 可笑可笑耳 然而爲情心生覺ᄒᆞ면 時急時急히下行ᄒᆞ야 谷寶門會을 開祝ᄒᆞ고 敎欄敎在同席의셔 世世面爛後 其等之也을 累白을門中의셔 善懌ᄒᆞ야보고십을 生覺은 有大ᄒᆞ온나 云流行比說의 大小을 勿論ᄒᆞ고 謀事槐原이 速成敝也라ᄒᆞ는 量을 證定ᄒᆞ온니貴君은 極力을다ᄒᆞ야 此書類等印章을門中외 共抱ᄒᆞ고 印章은 各各分給ᄒᆞ올소셔ᄒᆞ얏사온니 그리알고 餘介寶城印章을보ᄂᆡᆯ젹의 此事實이나 書札ᄒᆞ야보내시옵소셔今年家運이 不吉ᄒᆞ야 生活難而莫甚ᄒᆞᆫ中水割의 不足ᄒᆞ야 하지안는 人生으로 고연는門事의 入添되야 生計의 滅亡으로부터 門中ᄭᅡ지 불난을 ᄭᅵ치계 ᄒᆞ온니 萬萬罪悚홈니 不測量이라 鬱鬱ᄒᆞ기로 餘不備ᄒᆞ온니 或而行員이 上京ᄒᆞ시덜라도부ᄃᆡ 敎欄門에셔 上京이며 우리谷城셔는陰凶의ᄲᅡ지고 말덧ᄒᆞ온니 形便沓沓書耳今月 八日 叔人 百淳 拜拜書類는 取消ᄒᆞ야 付送ᄒᆞ는 中 印紙는 或而半額이라도죰건저볼가ᄒᆞ야 辯護士에계주럿쓴나 法院消除印ᄭᅡ지 되야 飛去西陽斷이中上入九斗耳付送書件記一. 訴狀取消件二. 土地台帳謄本 再昨件은 無用紙物되야 此本訴狀의 提出件과 合二件三. 敎花가 ᄒᆞᆫ 內容証書 一件四. 辯護士이 着手金領收証 一件以上此書類는 門中의셔 輪示ᄒᆞ신 後 必히 返送ᄒᆞ시되門中委任狀一通만 ᄒᆞ야 보ᄂᆡ 쥬기을 千萬切仰切仰耳 委任狀은 門中의셔 印章을抵抵히 送ᄒᆞ기 不便ᄒᆞ니 貴族니 善懌ᄒᆞ야僞造私用할라는 委任書의 宗印下捺ᄒᆞᆫ 委任一張만 보ᄂᆡ 쥬시면 敎欄及敎花門외 此本損割倍償ᄭᅡ지 左右間判結코자 ᄒᆞ옴나이다ᄒᆞ고 門中의 말삼ᄒᆞ옵소셔此本損割金은 左와 如홈一. 着手損實金 一百六十圓也二. 三次京城來往旅費 食費 判事交接費 四五十圓의 達ᄒᆞ고三. 土地台帳謄本 往來費 迄十一円二十戔以外雜費 此致ᄒᆞ고 現在損割가以上인니 他債從當가 莫甚이라略此書類가 敎欄家가면 안쥬기가 슈일터닌이 쥬의ᄒᆞ야 보ᄂᆡ 쥬옵소셔片紙도 各派로 다 ᄒᆞ얏ᄂ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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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신전종중(薪田宗中) 이인순(李寅淳)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戌三月二十二日 李寅淳 壬戌三月二十二日 李寅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67_001 1922년 3월 22일, 신전종중의 이인순 등 7인이 선조묘의 흉변으로 인하여 배당된 돈을 거두는 과정상의 문제를 짚으며 이의를 제기하여 쓴 간찰(簡札) 1922년 3월 22일, 신전종중(薪田宗中)의 이인순(李寅淳) 등 7인이 선조묘의 흉변으로 인하여 배당된 돈을 거두는 과정상의 문제를 짚으며 이의를 제기하여 쓴 경고문(敬告文)이다. 자신들이 경족(京族)이 고변(告變)한 편지와 장로(長老)의 명에 따라 돈을 마련하고자 관련하여 일할 사람을 정하여 보냈는데, 후에 받은 편지에서 오히려 놀라운 취급을 당했다며 전후로 받았던 편지를 살펴보니 모두 장로(長老)의 이름은 있지만 뒤에 받은 편지는 장로(長老)의 본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호가호위하여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금전을 중히 여기어 돈을 받을 줄만 알지 선조를 받드는 도리가 부족해 보이는 이 편지의 뜻과, 돈을 준다고 했다가 돈을 주지 않는다는 등의 중언부언하는 말 등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신들은 공의를 따르겠지만 잘 배분하여 채무상의 비용이 생기지 않도록 해 달라고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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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11.6.19 金澤卿 李敎成 (昭和)11.6.19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6년 김택경(金澤卿)이 『화동사(華東史)』 등 책과 삼씨(麻種), 양철(洋鐵) 구입 등을 의논하는 간찰(簡札) 1936년 8월 22일 김택경(金澤卿)이 상대방이 보낸 답장을 받고 다시 보낸 간찰이다. 『화동사(華東史)』는 이러이러하니 의심하지 말고 매입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였고, 『소의편(昭義編)』은 지난번에 1질(一沓) 매입을 허락하였으나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고 하였으며, 『현가궤범(絃歌軌範)』에 대한 의견도 쓰고 있다. 삼씨는 이번 달 보름에 선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시기를 놓쳤으나, 힘이 닿는 대로 하되 내달 상순은 어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 삼씨의 타적(打積)은 타곡(打穀)한 뒤에 해야 되니 9월 그믐 ~ 10월 초 정도에 마무리 될 것이라는 것, 여기서의 말(斗)은 작은 말(小斗)로 1표(表)는 80말이라는 설명과 이후의 일정 등이 있다. 신문 속보를 보니 당신이 사는 지역이 가뭄이 특히 심하다고 하는데 별 손해가 없는지 등도 묻고, 양철(洋鐵)의 매입 가능한 가격과 양을 제시하는 내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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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매국정(梅菊亭) 석역소(石役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昭和)9, 戊八念 梅菊亭 石役所 李龍淳 (昭和)9, 戊八念 梅菊亭 石役所 李龍淳 경상북도 고령군 郵便日附印 :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4년 8월 20일에 고령군 매국정 석역소에서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의 성주이씨 문중 이용순씨에게 보낸 우편엽서 통문(通文) 1934년 8월 20일에 고령군(高靈郡) 매국정(梅菊亭) 석역소(石役所)에서 이종렬 등 5인이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의 성주이씨 문중 이용순(李龍淳)씨에게 보낸 우편엽서 통문이다. 선조(先祖) 매운당(梅雲堂) 선생의 신도비 건설 사업이 6개월째 진행 중이라며 비용과 채무금이 산과 같이 쌓였음을 전하고 귀 파(派)에 배당한 금액을 보내주기를 요청한 내용이다. 비석을 새기는 일은 마쳤지만 돈이 없어 입석(立石)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며 다가오는 10월 12일 묘사(墓祀) 일까지 우편으로 배당금을 부쳐 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발신자 5인은 이종렬(李宗烈), 이영순(李永淳), 이봉기(李鳳基), 이진화(李鎭華), 이진환(李進煥) 이다. 발급일자 기록이 '무팔념(戊八念)'으로 되어 있으나 우편엽서의 일부인(日附印)에 소화9가 새겨져 있어 1934년(갑술)으로 보았다.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 ?~1343)은 고려후기 장령, 정당문학,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관리로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원로(元老), 호는 매운당(梅雲堂) · 백화헌(百花軒),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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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이인순(李寅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戌三月二十一日 李寅淳 壬戌三月二十一日 李寅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67_001 1922년 3월 21일, 족손 이인순이 자신들의 배당금 수렴과 관련하여 보낸 행원 손해비용을 갚아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쓴 간찰(簡札) 1922년 3월 21일, 족손(族孫) 이인순(李寅淳)이 자신들 문중의 배당금 수렴과 관련하여 보낸 행원(行員)의 손해비용을 갚아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쓴 간찰이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병을 안고 귀가한 후에 아직 낫지 않았다고 안부를 전했다. 드릴 말씀은 이번에 상경(上京)한 것은 오로지 가천(可川)에서 온 편지를 믿고 감히 늦게 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어서 갔던 것인데 집에 돌아와서 편지를 보니 편지의 뜻에 처음과 끝이 불일치하고 자신의 행동이 모두 망령된 행동으로 돌아갔다며 무슨 상황이냐고 반문했다. 사람을 속인 것이냐며 우리 종중의 일을 조종하고 정비하는 것은 가천(可川)에 있다며 사람을 보내며 한 푼의 돈도 주지 않았는데 그 비용을 어찌 자신의 문중에서 오로지 담당해야 하느냐며 의아하다고 하였다. 귀 파(派)의 행원(行員)이 손해비용을 상세히 알 것이니 즉시 조처하고 돈을 마련하여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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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이홍순(李洪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陽三月十二日 李洪淳 鳳山叔主 陽三月十二日 李洪淳 鳳山叔主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67_001 1922년 양력 3월 12일, 종질 이홍순이 봉산 숙주에게 문중 일의 처리에 있어 억울함을 하소연하여 올린 편지 1922년 양력 3월 12일, 종질(從侄) 이홍순(李洪淳)이 봉산(鳳山) 아저씨께 문중 일의 처리에 있어 억울한 부분에 대해 하소연하고 잘 처리해 줄 것을 청한 편지이다. 괘선 편지지 2장을 이용하여 작성하였다. 근일에 손자가 거동을 했고,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고 말한 후 문중 일에 있어서 이번에 문중의 실 사정을 탐문해 보니 모두 말씀하신 것과 다르다며 당시의 말씀은 그렇지 않았고, 또 보성읍에서 전보가 온 것이 있는데 계약과 서로 상반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무슨 일이냐고 놀라며 전 문중이 선영의 제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계획하는 와중에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일을 처리하셨느냐며 평소에 경모했던 마음이 오히려 부끄러워졌다고 말했다. 자신이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소란을 책임져야 할 것이라며 세 번 생각하여 잘 처리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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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광주지방법원의 소견서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臘月念日, 3.11.15 光州地方法院 李冕容 甲戌臘月念日, 3.11.15 光州地方法院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4년 12월 20일에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면용(李冕容)에게 '주고받는 것'에 대한 문제점과 견해를 조목조목 밝힌 소견서 1934년 12월 20일에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면용(李冕容)에게 '주고받는 것'에 대한 문제점과 견해를 조목조목 밝힌 소견서이다. '당신의 편지를 받고 위로되었으나 그간에 말한 것이 많이 잘 이해되지 않은 것 같아 대략 변별하니 바라건대 읽고 거울로 삼는 것이 어떻겠는가. 아마도 친밀한 사귐에는 신중함이 좋으니, 이것이 붕우가 자주 간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고, 벗의 도리를 보전하고자 하면 공경으로 대해야 한다. 지금 주고받는 것이 밝지 않은데, 즉 내가 신뢰를 요구하는 것이 신중하지 않은 것인가, 형의 배신이 신중하지 않은 것인가.'라고 하였다. '집을 남기고 서울로 간 것은 형주(兄主)의 은혜이다.', '기형(奇兄)·김형(金兄)에게 청한 것은', '나는 당신의 고용인(雇傭人)인가, 체부(遞夫)인가?', '형에게 하나의 물질이 나에게는', '완벽(完璧)이 이르고 빠름이 따로 큰 허물이 되지 않는데 형은 어찌 집착하는가', '8년간의 높은 값의 조(租)를 그 실제에 맞게 펴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내 글을 보면 한탄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등의 소제목을 두고 조목조목 그간의 여러 문제와 상대방의 처리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펴고 있다. '이 돈이 어떤 돈인데 이르고 늦음이 진실로 허물인가. 이른바 다른 사람을 책할 때는 하나하나 다 하면서, 스스로 용서함은 두텁다는 것은 이를 두고 말함이다.'라는 말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형이 갑자기 깨달아 마음을 두루 살펴서 속히 청산하면, 이것이 '광주 당일의 주고받은 본의(本意)'니 다행함이 무엇이 이보다 더 크겠는가? 천만 명심하고 천만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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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이기유(李基瑜)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巳二月二十九日 李基瑜 丁巳二月二十九日 李基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7년 2월 29일에 이기유 등 6명이 외선조 봉사공의 재궁의 중건에 관한 일을 칭찬한 다음 약간의 돈을 찬조하겠다고 한 간찰 1917년 2월 29일에 이기유(李基瑜) 등 6명이 외선조(外先祖) 봉사공(奉事公) 재궁(齋宮)의 중건에 관한 일을 칭찬한 다음 약간의 돈을 찬조하겠다고 한 간찰이다. 이기유‧이기상(李基翔)‧이용회(李龍會)‧이우회(李友會)‧이정회(李正會)‧이태회(李太會)가 재양(載陽, 3월)에 외선조 봉사공의 재궁을 중건하는 일은 계획한 날짜보다 미리 완성되었고, 행인들마다 손으로 가리키며 성주이씨(星州李氏)의 효심이라고 한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쇠미해진 세상에 무너지는 풍속을 떨쳐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칭찬을 한 후, 연명한 사람들이 외예(外裔)로써 한 팔의 힘도 되지 못하는 약간의 돈 이십 원(円)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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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나수열(羅壽烈)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十月初四日 羅壽烈 李敎成 乙亥十月初四日 羅壽烈 李敎成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84_001 1935년 10월 4일에 외종질 나수열이 김상두 집안의 17세 규수를 소개하고 선을 볼 날짜와 장동의 혼처에 대해 논의하고자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10월 4일에 전남 장성군(長城郡) 삼계면(森溪面) 수각리(水閣里)에 사는 외종질 나수열(羅壽烈)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삼가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체후와 집안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외종질 자신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역전(驛前)에 사는 종증손이 어린데 무슨 병이 들어 생사를 알 수 없으니 통탄스럽고 염려가 된다고 하고, 두 번째로 몸소 김길중(金吉中)의 집에 가서 여러 가지를 말하였으나 단연코 듣지 않으니 이것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이 사는 장성군 북이면(北二面) 신팽리(莘伻里)의 김상두(金相斗) 집에 규수가 있는데, 나이가 17세로 우산(牛山) 안자수(安自秀)씨 외종(外從)인 주서(注書)의 사촌 동생이라며 이달 11일 안에 선을 본 뒤에 김상두도 자신의 조카를 만나볼 것이니, 선을 보는 기일을 완전히 정하여 미리 자신이 있는 곳에 날짜를 보내주면 그날 장성역(長城驛)에 도착하여 기다릴 것이라고 하였다. 장동(長洞) 혼처(婚處)는 어떻게 정해졌는지, 수산(水山) 한익(漢翼) 형의 손주도 결정하였는지 묻고, 이것을 형제분이 서로 상의하여 확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장동의 숙부에게 각각 서찰을 쓰지 않았으니 알려주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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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나수열(羅壽烈)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二月十一日 羅壽烈 李敎成 乙亥二月十一日 羅壽烈 李敎成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84_001 1935년 2월 11일에 나수열(羅壽烈)이 혼사에 맥동리에 사는 김규봉의 딸을 소개하고 좋은지 봐달라고 하는 내용으로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 1935년 2월 11일에 전남 장성군 삼계면(森溪面) 수각리(水閣里)에 사는 외종질 나수열(羅壽烈)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지난번 서찰은 침체되어 아직 받아 보지 않았는지 암울하다. 삼가 형제분과 집안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외종질 자신은 집안이 모두 별고 없이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혼사(婚事)는 자신의 고을 맥동리(麥洞里)에사는 김규봉(金圭鳳)이 하서(河西) 장령(掌令) 집안의 종손인데 그의 규수(閨秀)가 나이 18세라 하였다. 일전에 양형(梁兄) 선부(善夫)가 와서 서로 의논하였는데, 김규봉이 속히 좋은지 봐달라고 하였다고 하니 숙부께서 속히 왕림하여 이렇든 저렇든 간에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장동(長洞)의 숙부에게 서찰을 보내지 않았으니 전보로 전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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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나수열(羅壽烈)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四月二十日 羅壽烈 李敎成 乙亥四月二十日 羅壽烈 李敎成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5년 4월 20일에 나수열(羅壽烈)이 복중(福中)의 혼례 등에 관한 소식을 이교성(李敎成)에게 전한 간찰(簡札) 1935년 4월 20일에 나수열(羅壽烈)이 복중(福中)의 혼례 등에 관한 소식을 이교성(李敎成)에게 전한 간찰이다. 국한문혼용체이다. 길중과 상봉하여 함께 가자고 한 일, 일간 전주와 군산을 갔다가 돌아온 후 동반하여 숙부님댁에 갈 것이라는 사실, 규수의 연기(年記), 김진사댁에 가서 상의한 일, 동지 방학(放學)에 성례(成禮)하는 일 등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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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교성(李敎成)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五月念五日 李敎成 舍弟 庚申五月念五日 李敎成 舍弟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02_001 1920년 5월 25일에 이교성이 서찰과 전보 후 무소식, 재종형 이교환의 집에 유숙, 비석에 관한 일 등의 내용으로 사제에게 보낸 간찰 1920년 5월 25일에 사형(舍兄) 이교성(李敎成)이 사제(舍弟)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달 6일에 부친 서찰이 겨우 들어가고 12일에 전보로 보냈는데 어찌 한마디 말이 없는지 중간에 지체되었는지 궁금해 하며, 이곳의 우편이 소식이 없음이 어찌 이리 심한지 탄식하고 있다. 가천리(可川里) 아버지께서 보내신 서찰은 18일에 나와 21일 서울에 들어와서 경성일보(京城日報)를 살펴보고 모두 알았으며, 재종형 이교환(李敎換)의 집인 남대문 밖 길야정(吉野町) 118번지에 그대로 유숙하면서 기식하고 있다고 하였다. 대평여관(大平旅館) 최명순(崔明順)에게 가서 서찰이 왔는지 물으니, 이교섭(李敎燮)의 서찰이 와 있더라고 하였다. 그 내용 중에 비석(碑石)에 관한 일을 말하였는데 또한 분명하지 않아 다시 보고 회보(回報)한 뒤에 송금한다고 하였다. 전보는 그 방법에 밝지 않더라도 옆사람에게 물어보더라도 가능할 것이라고 충고하고, 이교환 형과 의논하여 10냥 5전을 주고 특별히 전보하되 우국(郵局) 물어서 하면 날이 저물기 전에 보성군에 들어가고 오늘 밤에는 집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였다. 비석(碑石)에 관한 일은 내려가서 다 말하겠다고 하였다. 이 편지는 편지지 가장자리의 사방을 빙 둘러서 많은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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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윤재원(尹在原)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流月卄三日 尹在原 丁卯流月卄三日 尹在原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7년 6월 23일에 동생 윤재원이 번잡한 일들로 난처한 자신의 근황과 보내준 정의에 감사해하는 등의 내용으로 형제들에게 보낸 간찰 1927년 6월 23일에 장산(長山)에 사는 윤재원(尹在原)이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형제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뜻밖에 서찰을 받고 감사하다는 말과 부모님을 모시는 상대방과 형제들의 체후가 편안함을 알았으니 위로가 되며 자신은 이곳에서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고, 자신은 여러 번잡한 일들로 난처하다고 하였다. 은혜로이 보내주신 것은 두터운 정의로 봉주(蓬廚)에 빛이 나며 달게 받겠다는 내용도 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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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윤재준(尹在準)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四月十日, (昭和)2.5.10 尹在準 李敎成 丁卯四月十日, (昭和)2.5.10 尹在準 李敎成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13_001 1927년 4월 10일에 윤재준이 부탁한 돈 1냥쭝 송부와 유물(鍮物) 입수 계획 등의 내용으로 이생원 댁에 보낸 간찰 1927년 4월 10일에 남원군(南原郡) 시장정(市場町) 공신상회(共信商會)의 윤재준(尹在準)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생원(李生員) 댁에 보낸 간찰이다. 완산(完山)에서 이별하고 지금까지 마음이 섭섭하며 요즈음에 어버이를 모시고 생활하시는 체후가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위로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며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고, 부탁한 돈 1냥쭝[兩重]은 요사이에 구하여 우편으로 보낼 것이며 유물(鍮物)은 입수하여 말씀대로 보낼 계획이라고 하였다. 또 4부(負)를 동봉하여 올리니 고수(鼓手)를 잘 선택하여 회척(回擲)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주자대전(朱子大全)을 아직 구하지 못하였다는 등의 내용이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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