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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변시연(邊時淵)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邊時淵 李冕容 邊時淵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변시연(邊時淵)이 신도비 사건으로 그릇된 비문(碑文)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논증하는 간찰(簡札) 변시연(邊時淵)이 신도비 사건으로 그릇된 비문(碑文)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논증하고자 보낸 간찰이다. 저희 집안 면섭(冕燮)으로부터 당신이 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완지(莞誌) 간행소에 안비문(贗碑文)을 싣지 말라는 부탁을 했었는데 장차 어찌할 것인가.'라고 하였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답변으로 안비문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당초 임승모(任承模)의 변문(辨文)이 나오자, 안씨(安氏)는 사문난적(斯文亂賊) 등으로 원수처럼 성토하였으나, 필암서원(筆巖書院)에서는 '하서(河西) 비문을 모방했을 뿐아니라 하서보다 낫다.'고 하였다는 등의 의견을 소개하고, 우암 송시열의 말,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호)의 말, 영송(嶺松) 김재홍(金宰弘)과의 토론, 옛글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과 관련한 주자(朱子) 등의 말, 우암(尤庵)이 정암(靜庵), 율곡(栗谷), 하서(河西) 등을 평가한 말 등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였다. 안비(贋碑)에서 한 말 '하늘이 사문(斯文)을 열었으니, 당세에 도를 행할 수 없으나 만세에 능히 전할 수 있다.'는 글의 취지를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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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金箕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箕錫 李舜九 金箕錫 李舜九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74_001 모년에 김기석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곡식 저장소가 가득차지 않은 것에 대한 한숨 등의 내용으로 이순구에게 보낸 간찰 모년에 전남 장성군 황룡면(黃龍面) 옥정리(玉井里)에 사는 동생 김기석(金箕錫)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순구(李舜九)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그대를 본지 오래되어 어느덧 봄과 겨울이 서로 바뀌고 있으니 마음이 서글프다고 하고, 당신의 한 몸은 별일 없이 지내고 있는지 귀댁의 여러분들의 기거는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누구인들 자식을 사랑하여 바라보는 일이 없겠는가마는 늙은 아버지가 마을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바람은 자식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 범연(泛然)하지 않다고 이를 만한데, 옛 사람은 산에 올라가서 바라보고 뫼에 올라가서 바라봄이 있었다. 그대는 어찌 옛 사람같이 하지 않는지 물었다. 자신은 아침저녁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지 못한다고 하고, 구루(篝簍, 곡식을 저장하는 바구니)가 가득차지 않아 말을 이루지 못하여 한숨만 나온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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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이형원(李馨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辰七月十二日 李馨源 李敎成 丙辰七月十二日 李馨源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7월 12일에 종제 이형원이 문열공 백화헌의 일과 형재선생 시집, 도은공 시집 관련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16년 7월 12일에 종제 이형원(李馨源)이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은 수신인이 전남 보성군(寶城郡)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으로 되어 있고, 발신인은 해주군(海州郡) 고산면(高山面) 석담리(石潭里) 은병정사(隱屛精舍) 김익신(金益新)으로 되어있다. 그 내용은 지난달에 여러 날을 온화하게 정담을 나누었던 때를 회상하고 부모님을 모시는 중에 형제분들의 체후가 모두 편안한지 물었다. 자신은 여전히 잘 지내 위로가 되지만 주관하는 일이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으며, 문열공(文烈公) 백화헌(百花軒)의 일은 중년에 그만두어 한탄스럽지만 지금 자세히 탐구하면 때에 맞을 것이고 매국당(梅菊堂)이 바라는 바에 위안이 될 것이며 후생(後生)에게도 큰 위로가 될 것이라 하였다. 형재(亨齋)선생 시집의 판본(板本)을 자세히 살펴보니 장각(藏閣)은 장(章)의 수효에 부합하는데, 그동안 약간 썩고 소멸된 곳이 있는 것은 어찌할 수 없고 연보(年譜)의 초본은 살펴볼 수 없게 되었는데 전쟁으로 인해 화재로 타버린 것인지 알 수 없어 더욱 개탄스럽다고 하였다. 도은공(陶隱公) 시집은 전에 이미 여러 번 보았으나 명확하지 못하여 자꾸 잊어버린다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두루 살펴본 뒤에 신속하게 회답해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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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五月卄九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五月卄九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5월 29일에 동생 김택경이 괴산의 청천과 화양 등의 봉심, 정씨 집안의 선조문집 집성 등에 관한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5월 29일에 강원도 강릉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보성군(寶城郡)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별의 슬픔은 서로 같은데 갑자기 편지를 보내주어 마음이 확 트인다. 아드님의 공부와 혼사에 대해 묻고, 자신은 22일 집에 도착하였는데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이번 남쪽 행차는 실로 우리 형에게 의지하여 나를 입혀주고 먹여주고 책을 빌려주어 읽게 해 주었으니 그 은혜를 잊지 못한다고 하고, 괴산의 청천(靑川)과 화양(華陽), 제천의 지수(泜水)와 장담(長潭)이 대의(大義)를 부식한 지역으로 선현들이 지팡이 짚고 찾아다닌 곳을 봉심(奉審)함에 오랫동안 품은 소원이 시원스레 보상되었으나 평소에 도모했던 명승지 계룡을 비로 인해 그냥 지나쳐 한스럽다고 하였다. 편사(編史) 이자(李子)의 글을 물어 본 일에 대해서는 지난번 제천에서 예사로 보고 지나쳐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중부 두 어른이 사문(師門)의 뜻을 받들어 행하였고 비록 존경하는 마음이 지극하더라도 곧바로 '자(子)'라고 말할 리가 없으니 율옹(栗翁, 이이)인 듯하다고 하고 이를 살펴달라고 하였다. 정씨(丁氏) 집안의 《주차집보(朱箚輯補)》는 전에 들었고 《삼십주가도화(三十朱家都華)》 1부와 주차(朱箚)는 집성(集成)하였지만 편질이 매우 많아 즉시 출간하지 못하였으며, 정씨가 《소의신편(昭義新編)》을 구입하는 일로 제천에 도착하여 찾아보았으나 매우 드물어 구하기 어려우니 형이 만약 구입할 수 있다면 도모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값은 당판(唐板) 20책의 우편비용이 11원 가량이며, 물건은 배편으로 보낼 때 서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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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七月念二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七月念二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7월 22일에 동생 김택경이 부탁한 서적과 《현가궤범》 송부, 마종 매입 등의 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7월 22일에 강원도 강릉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자신은 황내(黃嬭, 서책의 별칭) 한 가지 일뿐인데 부탁한 서적을 수탐(搜探)하였으나 율옹(栗翁, 이이)의 필찰(筆札)이 전혀 없고 부본(副本)도 없으며 사략(史略)도 매입할 수 없으며, 《현가궤범(絃歌軌範)》은 사우(士友)간에 베껴 쓴 책을 매입한 것이 있다. 이것을 빌려 보고 부칠 것이다. 귀하의 부근 시장에 모시고 살 곳이 있는지와 지금 계절에 많이 나는 물품의 한 근 갑이 얼마인지, 성포(成布) 1필(疋)은 몇 근인지 등을 묻고, 2필의 재료를 사서 보내주기 바라며 대금은 도착하는 대로 보내겠다. 지난번에 약속한 마종(麻種)의 사안은 잊지 않고 형이 말씀하신대로 영서(嶺西) 생산지에 자세히 찾아보았는데, 반드시 선금을 약속한 뒤에 원래의 가격으로 매입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늦가을에는 이미 중간에서 상인들이 선점하여 높은 가격을 부른다고 하며 작년에는 높은 가격 때문에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지금 미리 헤아려 보면 조금도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1말에 2원이라고 하니, 백 원에 한하여 그믐사이에 들여와 보내면 선후를 주선할 계획이다. 곡성(谷城)의 화종(華宗)이 일을 함께하는 것이 좋을 듯하고, 이렇든 저렇든 간에 깊이 헤아려 회답해 주어 패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하고, 만약 송금하지 않으면 이삼백 원을 자신이 혼자 장만할 수 있을지 염려하고 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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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이공우(李孔雨)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卯蜡月七日 李孔雨 李敎永 己卯蜡月七日 李孔雨 李敎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9년 12월 7일 이공우(李孔雨)가 병중에 있는 자신의 감회와 다른 벗들에 대한 추억을 적은 간찰(簡札) 1939년 12월 7일 이공우(李孔雨)가 병중에 있는 자신의 감회와 다른 벗들에 대한 추억을 적은 간찰이다. 먼저 상대방이 상(喪) 중에서 두 번 소식을 준 것에 대해 보통의 정(情)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한 번 몸의 원기(眞元)을 잃고 나니, 소생하기 어려워 여전히 병석에서 전전(輾轉)하고 있다고 하고, 집에 안 좋은 빌미가 더해지고 몸은 중병에 걸리니, 온갖 생각이 하늘에 사무치게 고통스럽고, 불효한 죄는 머리털을 뽑아 세어도, 머리털이 모자란다고 하였다. 김우(金友)는 근래 가까운 곳에 있어서 일부러 심부름꾼을 보내고 서찰을 보내어 간절하게 한 번 얘기하고자 하나 오늘, 내일 계속 미루고 있으니 이것은 나의 성의가 얕아서 그런 것이고, 또 벗 이서유(李瑞裕)는 이번 10일에서 보름 사이 순천 등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이 또한 김우(金友)를 만나서 의논한 뒤의 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별지로 추신을 쓰기를, 한 사람(김우가 잠깐 머무는 곳의 주인)이 오늘 아침에 와서 말하기를 김씨가 새벽에 길을 떠났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하니, 그의 우울함의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감회 등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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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九月十五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九月十五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9월 15일에 동생 김택경이 마종에 관한 일, 《현가궤범》 속록(續錄), 화종노인 주소 불분명 등의 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9월 15일에 강원도 강릉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푸른 갈대에 마음이 동요되고 국화가 피는 요즈음 춘부장(春府丈) 등의 안부를 묻고, 친구 및 여러 어른들과 반년 넘게 나누었던 정을 한순간도 잊지 못한다고 하고, 마종(麻種)에 관한 일을 언급하고 있다. 형이 말씀하신대로 대략 주선하였는데 송금이 지연되는 것은 무슨 층절(層節)이 있는지를 묻고, 그믐초 사이에 수합하여 출송할 계획에 대해 형의 회답을 보지 못하여 자못 암울하다고 하였다. 귀부의 농사형편은 마(麻)를 파종할 땅이 몇 고을이 되는지와 전의 시세의 높고 낮음에 다른 송금의 많고 적음을 상세히 헤아려 속히 알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생청(生淸)은 벌 농사가 잘 안되어 가격이 높고 귀하여 진품을 얻기 어렵다고 하고, 《현가궤범(絃歌軌範)》은 근래 등본 1책을 구하였는데 본주인이 50전으로 팔겠다고 하는데 형의 생각은 어떤지 묻고, 가을 뒤에 속록(續錄)하라는 말씀은 부응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곡성(谷城)의 화종노인 인섭씨(寅燮氏)가 전에 마종을 부탁하였으나 주소가 상세하지 않은데 남섭씨(南燮氏)와 같은 마을인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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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6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十二月卄七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十二月卄七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12월 27일에 김택경이 딸아이의 혼례, 마종·양목·남철 등의 구입, 시보의 고출, 문공연원록의 필첩 등의 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12월 27일에 김택경(金澤卿)이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수신자의 안부를 묻고 먼저 22일에 딸아이의 혼례(婚禮)를 치렀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마종(麻種) 3표(俵)를 시세가 조금 내려갔을 때 비로소 매입하는데 가격이 1말에 1원이고 육지로 보내는 비용은 1표에 1원으로 도합 33원이라고 전하고,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듯하니 믿고 쓸 만한 사람을 뽑아서 발매(發賣)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지를 물었다. 가금(價金)은 내년 봄에 씨를 뿌린[立種] 뒤에 계산하여 보내도 괜찮다고 하고, 양목(陽木, 소나무)은 알맞게 쓸 수 있는 품질이 아닌 듯하나 기술이 뛰어난 장인이 단점은 제거하고 장점을 취한다면 좋을 것이라고 하면서 4덩이[塊]를 만들어 보관하니 그 가격이 3원이라고 하였다. 남철(南鐵) 3개는 지침을 균정(均停)하게 하면 오래 쓸 수 있으니 형이 직접 살펴보고 사서 보내되, 그 재료는 양목을 꼭 쓰지 않고 대추나무라도 괜찮다고 하였다. 또 그곳 저포(苧布)는 중간 품질 1필을 시세 5원가량으로 한정하여 3필을 사서 보내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예전에 서찰로 시보(諡譜)를 고출(考出)해 달라는 일은 잊었느냐고 하면서 공들의 시호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달라고 하고, 문공연원록(文公淵源錄)과 형의 선조 문열공(文烈公)의 필첩(筆帖) 한 본을 보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외에 우황(禹黃) 비의(比擬), 《명사보유(明史補遺)》 1책의 대여 등의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추신이 있는데, 혼서(婚書)를 대략 써서 보내니 보고 불에 태우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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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5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至月卄九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至月卄九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11월 29일에 동생 김택경이 꿀과 서적의 송부, 《현가궤범》의 터득, 마종 시세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11월 29일에 강릉군 성산면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8일에 꿀[蜂蜜]과 서적을 부쳤는데 받았는지 몇십일에 이르렀는데 회답이 없어 몹시 아울(訝鬱)하고 어제 소의편(昭義編)을 근래에 되풀이하여 보았는데 고명(高明)께서 평소에 어떻게 보았는지 묻고 이것은 뛰어난 작품이니 억지로 매입할 수 없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 높을 듯하다고 하고, 《현가궤범(絃歌軌範)》을 반드시 금공(琴工)이 두루 헤아린 뒤에야 터득할 것이라는 내용과 마종(麻種)은 시세가 근래 어떻게 되는지, 오는 10일 사이에 얼마간을 부치되 그 가격은 적게는 1말이며 부비(浮費)와 아울러 1원 50전가량으로 헤아려서 살펴 회답해 주시고 황양목(黃楊木)도 아울러 부칠계획이라는 말과 말미에는 동지의 추위에 춘부장의 기체후가 만강하신지 잡안도 평안하신지 자신은 여전히 잘 지낸다는 안부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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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최숙(崔橚)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三月十七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三月十七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8_001 1928년 1월 4일에 최숙이 옛날 일의 진전 소식과 전 해의 스승 원고의 장황(粧黃), 뒤의 원고의 인출 계획, 선향에서 볼 수 있는 유생 통지 등의 내용으로 이순구에게 보낸 간찰 1928년 1월 4일에 전남 담양군 대덕면(大德面) 용대리(龍坮里)에 사는 최숙(崔橚)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순구(李舜九)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해가 바뀌었는데 춘부장께서는 잘 계신지 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인출(印出)에 있어 옛날 일에 대한 소식이 조금 진전이 있는 듯하여 다행이다. 스승의 원고는 전 해에 장황(粧黃)하였으나, 그 뒤의 원고는 다만 돈이 없어 아직도 인출하지 못하고 있다. 봄 사이에는 인출할 생각이다. 선향(仙鄕)에서 혹 볼 수 있는 유생은 부디 통지해 달라고 하였다. 나머지 많은 일들은 대면하여 아뢰고 이만 줄이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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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四月七日 金澤卿 李正汝 丙子四月七日 金澤卿 李正汝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8_001 1936년 4월 7일에 김택경이 족숙 성교의 형편을 묻고, 마종과 양목의 수응 및 저포와 남철의 청구에 회답이 없는 일, 선향 방문 계획 등의 내용으로 이정여에게 보낸 간찰 1936년 4월 7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정여(李正汝)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반년을 모시고 정담을 나누었는데 천리를 떨어져 있으니 슬프고 그립다고 하고, 왕성한 여름에 정양하시는 체후와 형제분들과 화종(華宗)들도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여전히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고 족숙(族叔) 성교(敎成) 형의 형편은 어떠한지 물었다. 마종(麻種)과 양목(陽木)을 수응(酬應)한 것과 저포(苧布)와 남철(南鐵)을 청구(請求)한 것은 1월쯤에 1차로 서찰을 받은 뒤에 몇 차례 구하고자 하였는데 서너 달이 되어도 어떠한 회답도 없으니 형의 평소 신의로는 이러할 리가 없어 염려되고 암울하다고 하였다. 존좌(尊座)께서 같은 문중에서 상종하는 일에 있었으면 그 사정을 알 것이니 부디 소외시키지 말고 자세히 알려주어 의혹을 풀어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선향(仙鄕)의 산수(山水)가 오래도록 안중에 있어 다시 찾아보기를 원하며, 금년 5월경에 경북으로 가는 길에 귀부(貴府)에 나아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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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5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九月二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九月二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8_001 1936년 9월 2일에 김택경이 재앙이 많고 수재(水災)가 참혹한 현재의 상황, 선향에 가는 일, 여러 일의 회답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6년 9월 2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대형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여름 사이에 몇 차례 안부를 물었으나 회신이 없어 암울하다. 올해는 재앙이 많고 흉사가 심한 중에 수재(水災)가 더욱 참혹하여 생명이 엄몰(淹沒)되고 토지가 파손된 것을 형용하여 말할 수 없으니 큰 재난이라 말할 만하다. 귀하가 계신 곳은 피해가 어떠한지, 화종(華宗)의 여러 댁들은 혹 심하게 피폐해지지 않았는지 묻고, 자신이 사는 곳은 집안이 파괴되고 토지가 손상되어 모두 함께 근심하고 있으나 생명의 피해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였다. 선향(仙鄕)에 다시 가는 것은 마음에 절실하나 재해가 이와 같아 물정이 흉흉하고 두려워서 어느 겨를에 가서 만나기를 도모하겠느냐고 하였다. 가을 추위에 집안의 안부를 묻고, 봄 사이에 말한 여러 종류의 일들은 잘 헤아렸는지 부디 회답으로 한 번 말씀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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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二月六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二月六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8_001 1936년 2월 6일에 김택경이 딸아이의 혼사, 마종의 발매, 남철과 저포의 구매, 원지 가격의 회답, 율옹의 필찰, 《명사보유》와 《시보》의 검토, 《매월당집》 등의 매입 등에 관한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6년 2월 6일에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寶城郡)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1월에 서찰이 와서 답장을 썼는데 서로 간에 각 항의 물품을 조처한 뒤에 통신(通信)할 계획이다. 혼사는 과연 수락한 곳이 있는지 묻고, 딸아이의 혼사가 삼척(三陟) 심씨(沈氏)로 정해졌다고 하였다. 우리 고을은 다른 고을보다 혼기를 지난 규수가 많으니 형이 있는 지역을 차치하고 이곳을 염두에 두면 반드시 청혼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마종(麻種)은 근래에 통지한 것이 도착하였는지 묻고, 형이 1표(俵)만 보내라는 말씀이 있어 어떤 사람에게 매입하기로 약속하였다. 새해가 되기 전에 예사로 가격을 짐작하고 새해가 된 뒤에 매매하여 파종하기 전에 도착하면 3표로 물건을 발매할 수 있을 것이다. 양목(陽木)은 1표로 매입하지 못하니 이렇든 저렇든 형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여 미안하다. 남철(南鐵)과 저포(苧布)는 시세에 따른 가격으로 사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 이곳은 원지(原紙) 가격이 1축(軸)에 5원이라고 하고 반드시 얼마간의 우편 비용이 있을 것이니 헤아려서 회답해달라고 하고, 원지는 근처에서 구하기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율옹(栗翁, 이미)의 필찰이 조금 먼 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에게 부탁하여 마련하였는데 아직 일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귀하의 선조의 필첩(筆帖) 《명사보유(明史補遺)》와 《시보(諡譜)》를 자세히 검토할 것이니 특별히 생각하여 반드시 베풀어주고, 《매월당집(梅月堂集)》은 형이 매입한 것을 《연원록(淵源錄)》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진실로 시원스러운 일이며 《매월당집》은 예전에 판각한 것인데 누가 편찬한 것이며 시문(詩文)도 갖추어 있는지를 물었다. 이곳은 새로 간행한 6책이 상세한데 가격이 현격하게 다르다. 《소의신편(昭義新編)》은 몇 번을 되풀이하여 보았는데 의체(義諦)를 알았는지 묻고, 이는 곡성(谷城) 정오재(丁梧齋)의 부탁으로 겨우 사우에게 구한 것이나 지난 가을에 서찰로 알렸는데도 오래도록 답장이 없다. 형이 마침 매입하여 보내라는 말씀이 있어 지레 먼저 보낸다. 올 1월초에 비로소 정씨가 서찰로 《소의신편》을 보내라 하니 형이 만약 뜻이 없으면 중요한 곳을 뽑아내어 갖추고서 곧바로 정씨에게 보내주는 것이 좋을 듯하며 많은 일들에 대해 가부간에 속히 알려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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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허성환(許聖煥)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酉七月二十二日 許性煥 李敎成 癸酉七月二十二日 許性煥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87_001 1933년 7월 22일에 허성환이 이교성에게 정형과 경언 등의 소식, 이참봉 조의 추심에 대한 생각 등을 적어 보낸 간찰 1933년 7월 22일에 허성환(許聖煥)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정형(鄭兄)과 경언(京彦) 등의 소식, 이참봉 조(租)의 추심에 대한 생각 등을 적어 보낸 간찰이다. 돌아온 뒤에 마음이 항상 당신에게 있었던 것은 여름 3개월 동안 같은 곳에서 가르침 받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고, 부모님 모시는 형제들의 안부를 묻는데, 그 우울한 상황을 눈으로 보는 것 같아 잊을 수 없다고 하였다. 몽재(蒙齋) 형은 자신을 전송하는데 10리까지 나와준 것에 대한 감사하다고 하고, 천규(千圭)의 조제약방은 두세 번 말을 해서 써 보냈는데 그간 시험해본바 효과가 있었는지 물었다. 광주에는 사람이 많지만 지음(知音)은 적어 담양 가산에 며물렀다가 여름감기를 앓아 2·3일만에 돌아왔다는 것과, 경언(京彦)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적고, 이참봉(李參奉) 조에 4원(圓)을 추심(推尋)했는데 1원을 보낸 것에 대해서는 횡설수설(橫說竪說)했지만 터놓고 얘기하자면 만나야 하는데 이번에 출발하면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 아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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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至月初九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至月初九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61_001 1935년 11월 9일에 김택경이 마종(麻種)의 요구에 부응할 계획, 생청 송부, 《소의편》 등의 정가, 《화안시보》의 인물들을 살펴봐줄 것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11월 9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세 번의 서찰을 차례대로 받았는데 물품의 많은 것들을 결정짓지 못하여 이렇게 사례를 지체하다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죄송스럽다. 겨울인 이즈음에 춘부장(春府丈)님의 몸과 마음은 편안하며 형제분도 건강한지, 아드님도 학문에 열중하는지, 멀리서 그리워하는 마음 그지없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근근이 지난날의 졸렬함을 지키며 살고 있다. 부탁한 마종(麻種)은 형이 선금을 보내지 않았지만 얼마간을 부응할 계획인데 보따리상들이 발호(跋扈)하는 이유로 아직 장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오는 그믐 안에 꾀하여 얻을 희망이 있을 듯하다. 생청(生淸)은 양봉(養蜂)하는 일이 잘 안되어 구하기 어려워서 다만 2되를 보내니 시험 삼아 약용하라고 하고, 《소의편(昭義編)》은 5권에 정가 5원이고, 《현가궤범(絃歌軌範)》은 1권에 50전이라고 하였다. 율옹(이이)의 필찰이 한 곳에 몇 폭(幅) 있다고 하여 도모하여 얻을 계획이다. 《화안시보(華案諡譜)》에 문충공(文忠公) 박순문(朴純), 문목공(文穆公) 박원계(朴元桂), 충경공(忠景公) 박지계(朴之桂), 문공공(文恭公) 심언광(沈彦光), 문양공(文襄公) 최연(崔演)이 있는지 살펴 달라. 형이 자식에게 바른 도리로 가르치는 뜻을 여러 번 요청하였는데 정성스런 뜻이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하고, 집안에 선기(先忌)가 겨울철에 많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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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이교승(李敎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巳至月二日 李敎升 辛巳至月二日 李敎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41년 11월 2일에 이교승(李敎升)이 혼사, 문안(門案)의 의리, 새해 달력 등에 관한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41년 11월 2일에 이교승(李敎升)이 보낸 간찰이다. 수신자는 미상이다. 한 해가 가려고 하는 이때에 형제분의 체후는 강녕히 잘 보중하고 각 집안 식구들이 모두 평안한지 묻고 삼가 사모하는 마음 지극하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막내 아이 혼사가 보성 당촌(堂村)에서 행할 날이 가까워져서 오는 13일인데 모든 일이 갖추어졌다. 회옹(晦翁)의 이른바 '가취(嫁娶)'라는 말은 음미할 만한 가르침이라 하고, 부탁하신 문안(門案)을 기록하는 일은 돈목(敦睦)의 의리라서 졸렬함을 잊고 지어 올리니 다시 고견(高見)으로 질정해 달라고 하였다. 각 댁에서 가져온 명첩(名牒)이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하고 이번에 가는 언찰(諺札)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였으며, 시천어첩(詩川御牒)은 이미 모두 인쇄되었다고 하였다. 별도로 첨부한 쪽지에는 새해 달력은 조각한 것이 용렬하여 어른어른한 눈에 합당하지 않으니 여러 댁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리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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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김기석(金箕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申二月四日 金箕錫 李順九 壬申二月四日 金箕錫 李順九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74_001 1932년 2월 4일에 김기석이 자식을 가르치고 경계해야 할 것, 영애의 혼처 소개 등의 내용으로 이순구에게 보낸 간찰 1932년 2월 4일에 전남 장성군 황룡면(黃龍面) 옥정리(玉井里)에 사는 동생 김기석(金箕錫)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순구(李順九)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먼저 안부를 묻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하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랑한다면 그를 노력하도록 만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뜻으로 새벽과 저녁으로 경계하고 깨우쳐 그로 하여금 굳건하게 뜻을 세우게 해야 한다. 분명치 못하게 반평생을 헛되이 보내고 자식을 가르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없는 자가 경계를 삼지 못하는 얕은 성품으로 세장물정에 어둡고 친척과 고을의 뜻과 맞지 않아 따르는 사람이 없다. 형과 내가 정의를 맺고 5개월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궁금한데, 대군자(大君子)의 넓은 도량과 훌륭한 덕이 법도에 맞고 엄격한 것은 천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주(瀛洲)에서 어제야 집으로 돌아와 떨쳐 일어나기가 어렵다. 영애(令愛)의 혼처로 합당한 사람을 구한다면 자신의 고을 북쪽 아래의 회촌(晦村) 평리(坪里)에 사는 친척 한수(漢洙)의 막내 동생 집에 나이가 17세인 총각이 있다. 소학교에서 배우고 책문(策文)을 읽었으며 모습이 단정하다. 집안의 재력은 없으나 집안의 법규가 화순하여 넉넉한 집에 버금가는 혼처이니, 형이 만약 뜻이 있으면 자세히 살피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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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김기석(金箕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冬至後七日 金箕錫 李舜九 冬至後七日 金箕錫 李舜九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774_001 1931년 김기석이 최우(崔友)의 행실과 우리 형의 용서하는 마음, 2차로 약을 지어 보낸다는 등의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31년 동지(冬至)가 지난 뒤 7일(음력 11월 22일)에 김기석(金箕錫)이 보낸 간찰이다. 먼저 안부를 묻고 특별히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평정을 유지하며 마음을 안정시켜 응집되고 만년에 통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우리 형의 효(孝)가 자애롭게 마음을 환하게만 하고 근심을 펴지 않으면 아침저녁으로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봄에 마음에 민망하여 스스로 정신과 마음이 괴롭고 근심스럽지 않겠는가마는, 굽으면 반드시 펴지는 것이 천도(天道)의 법이라고 하였다. 지난번 최우(崔友)의 행실은 실로 여러 날을 생각하여 부득이한데서 나온 것이며, 샛길과 굽은 길로 불경(不經)한 작은 술법으로 구제하고자 한 것은 우리 형의 측달(惻怛)함에 차이가 없음을 헤아려 곡진히 용서하였으나 또한 옆 사람들이 얼굴에 침 뱉는 것을 면하기 어려워 매번 밤에 일어나 앉아 몸을 돌아보고 스스로 탄식한다. 비유하자면 높은 산에 오르는 자가 산세가 기험(崎險)하여 천만 번 돌아가야 하는데 산에 오를 때 만약 먹줄처럼 곧고 대패처럼 평평하기를 구하고자 한다면 중도에 수레를 돌리려고 할 것이다. 하물며 지금 세상에 도(道) 밖의 도가 많고 리(理) 밖의 리가 있어 바람을 타고 번개를 채찍질하며 이름 지어 형용할 수 없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최우는 그 사이에 한두 번 도를 헤아렸을 것인데 이 벗은 사방에 뜻이 있어 선장(仙庄)에 나아가지 않았으니, 다만 2차로 약을 지어 우편으로 보낸다. 전두에 몸을 일으켜 나아감은 오로지 우리 형의 신용에 달려 있으며 세상만사가 미리 정하기 어려우니 각각 그 마음을 다할 뿐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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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子復月念九日, (大正)13.11.29 李鐺 李敎燮 甲子復月念九日, (大正)13.11.29 李鐺 李敎燮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18_001 1924년 10월 29일에 재종질 이당이 부평초처럼 외로운 자신의 근황과 혼사의 여러 사안을 이교섭에게 전하는 간찰 1924년 10월 29일에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 장전리(長田里)에 머무르는 재종질 이당(李鐺)이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숙부 이교섭(李敎燮)에게 보낸 간찰이다. 삼가 진흙이 질퍽거리는 행차는 화평하게 돌아왔는지, 재종조부(再從祖父)의 기력이 강건하시고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상대방의 체후와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도 모두 편안한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재종질 자신은 지금 겨우 길을 출발하여 부평초처럼 외로운 자취를 알 수 없으니 신세가 백 가지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고, 혼사 소식을 전하였다. 혼사는 삼천(三川) 한 곳을 다시 생각해 보니 부자를 선택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규수가 있으면 받아들이라고 하고, 사랑(沙郞) 한 곳은 박사(博士) 형과 의논해 보니 처지가 비슷하고 덕도 비슷해서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하다는 것과 저 집안의 사세가 진실로 가난하면 필시 안으로 도와도 부족하니 편지로 원용(元用) 형에게 의논하여 허락받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지금 세상의 인심이 가난하면 부유함을 택하니 이에 따라 부유함을 택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자신의 의견도 전하고 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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