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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박응춘(朴應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酉 八月九日 罪宗 應春 癸酉 八月九日 朴應春 朴炯贊 고흥 밀양박씨 하구정 한국학호남진흥원 1933년에 박응춘(朴應春)이 고흥군 두원면 하구정에 사는 종인(宗人) 박형찬(朴炯贊)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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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이교춘(李敎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辰二月二十九日 査下 李敎春 戊辰二月二十九日 李敎春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진년 2월 29일 査下 李敎春이 보낸 답장편지. *昨別悵甚 今書慰解卽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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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홍승연(洪承涓)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亥元月念一日 弟 洪承涓 辛亥元月念一日 洪承涓 任氏家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辛亥年 1월 21일에 洪承涓이 사돈 任氏家에 새해 안부를 전하면서 쓴 간찰. 본인의 안부와 여식의 안부를 전한 내용, 새로 맞을 사위를 보내달라는 내용 등이 보임. *원문: 曰爲改歲瞻慕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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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이원용(李元用)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子臘月念八日 査弟 李元用 丙子臘月念八日 李元用 任氏家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丙子年 12월 28일에 李元用이 사돈댁 任氏家에 보낸 간찰. 혼인을 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말과 혼례에 소홀함이 없이 준비하자는 말이 담겨 있음. *원문: 宿仰華聞幸結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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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임백경(任百經)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巳十月初七 宗末 百經 癸巳十月初七 1833 任百經 任氏家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1_01_A00154_001 1833년 10월 7일에 任百經이 任氏家에 안부와 부탁한 과거시험 등에 관한 전한 내용의 간찰. 수령직으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나 아버님이 건강하여 다행이라는 내용, 부탁한 당신의 아들의 과거시험은 도울만한 계기가 되면 돕겠다는 내용 등이 실림. *상태: 8점의 간찰이 실린 簡牘帖 중 다섯 번째. *원문: 向者高駕枉屈下吏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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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박해룡(朴海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七月晦日 宗弟 海龍 甲戌七月晦日 朴海龍 朴炯得 고흥 밀양박씨 하구정 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에 박해룡(朴海龍)이 종형(宗兄) 박형득(朴炯得)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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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박해룡(朴海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八月念五日 宗弟 海龍 甲戌八月念五日 朴海龍 朴炯得 고흥 밀양박씨 하구정 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에 순천읍 여관에 머물고 있는 종제 박해용(朴海龍)이 박형득(朴炯得)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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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말씀을 올립니다. 굴전(掘前) 김 도령에게 전합니다.요즈음 체후가 매우 편안하십니까? 위로되고 궁금한 심정이 듭니다.저는 며칠을 도보로 움직였다가 도중에 모친이 몹시 편찮았습니다. 전날에 자녀가 없다고 말하였다가 벼락같이 만나고 작별하는 바람에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며칠 지나지 않아 귀댁으로 길을 떠났는데, 제각각 다른 마음을 가졌고 여비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10전의 약값 한 봉을 5~6전으로 취대(取貸)하였는데, 또한 응낙하지 않고 순천약(順天藥)을 기왕에 복약하였다고 답하였습니다. 그때의 신세를 절로 한탄하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본래 그곳은 순천 은천약국(順天恩泉藥局)인데, 의주대 약방에서 10년간 진력하여 성공하였고, 의사를 졸업하고 나서는 세계에서 저명해졌습니다. 한 차례 신규 진찰을 받기 위해 며칠간 머물렀습니다. 과연 이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뜻밖에 함께 가자고 강권했다가 헛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스스로 한탄한들 어찌하겠습니까. 형과 저의 사이에 어찌 전날에 숙식한 정이 있겠습니까.많은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저를 생각하면 버려진 한 물건에 불과합니다. 무슨 면목으로 은천약국(恩泉藥局)과 대면하겠습니까. 한 번의 행실이 백 년의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이 무슨 도리입니까. 약대(藥代) 105원씩 작정하기로 제한하고, 피차간에 계약이 성립되었다고 말하였는데, 이 일에 관해서는 또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이 있든 없든 간에 저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러나 형의 사촌 환자로 볼 때도 자부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진찰받으라고 말하였는데, 부자 관계가 되어서도 방금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형은 우애롭고 아우는 공손하다는 것이 존재하지 않은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또한 천명이고, 인력으로 해낼 수 없는 일이니, 빈손으로 갔다가 빈손으로 온 것은 모두 저의 불찰이라고 하고, 고개를 돌려 강을 건넜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모두 돈을 사랑한 것이고 덕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붕우라는 글자는 오륜(五倫)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손을 빌려서 질병의 상태를 구제하고자 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은 다만 자기를 사사롭게 여기고 인재를 취하는 일만을 생각할 줄 아니, 이는 또한 통탄하고 분통할 일입니다.지금 7월 초에 우연히 순천읍 은천약국(恩泉藥局) 임남수(林南洙) 쪽에 갔다가 나에게 사주와 유년 시절의 평을 요청하여, 여가를 틈타 일생에서 운수를 놓치는 단서가 여수(麗水)에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곁에 있던 정자민(丁自玟)이 "무슨 일로 운수를 놓친단 말입니까. 지난달 우연히 여수읍 돌산면 장군도의 김철수(金鐵洙) 쪽에 갔는데, 어떤 환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육사증(肉死?)이라 불렀고 사람들 가운데서 치료된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을병에 걸린 측은한 자신을 스스로 가련하게 여기고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며 '영암군 시종면(始終面) 옥야리(沃野里)에 박갑자약국(朴甲子藥局)에서 육사증을 주된 약으로 이름을 내걸고 약재 하나당 10원씩으로 판매하는 것이 명백한데, 온 세상 사람이 모두 아는 것입니다.'라고 단언하였습니다. 제가 '이 약은 7월 초에 환대금(換代金)에 따라 약정하였는데 지금까지 기한을 넘겼습니다. 그러므로 실수하였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로 아무 말이 없고 스스로 웃을 뿐이었습니다. 지금 정자민의 일은 모두 알지 못하니, 저의 처분을 깊이 양해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예식을 갖추지 않습니다.정축년(1936) 7월 18일에 박정대가 謹啓言 掘前金道令의게傳하오日間氣候大安否 慰溸願聞之地 生徒步數日路中母太甚不平中耳 第言前日無子女예對하야雷逢電別之餘라 猶卽所未安之心 故로不日發程于貴过 則各自爲心 而路費亦困難之中예拾円藥代一封을五六円으로取貸로대 亦不應諾 曰順天藥을已往服藥로爲對하니 其時身勢自嘆耳 誰怨誰咎哉 本是順天恩泉藥局也 則義州大藥方예十年間思心成功하고 醫師卒業으로 世界上有名也 則一次新診次累日連留之地예果然有曾驗之事 故意外強勸同行 而至於虛境 自嘆奈何 兄我間豈有前日宿食之情乎不在多言하고 我思我則不過一棄物也 何以顔目相對恩泉藥局乎 一介之行能誤百年之心事하니是何道理哉 藥代百五円式作定爲限 彼此間契約成立爲言 則是亦不聽하니 無子有子예於我何關고兄之四寸病人으로對하야도自恃之權이有之 故諸人診察爲言 則有父有子 方今出他爲言하니 世上不有兄友弟恭之事耶 莫說하고 是亦天命也오 非人力所致也니 空往空來은都是我之不察也라하고 回頭渡江예 豈不寒心哉 都是憐錢不憐德也라 朋友字五倫之一也 故借一人之手하야 欲濟疾病之境러니 世人但知私己取才之事로思之하니是亦痛忿也로다今七月初예偶到順天邑恩泉藥局林南洙方 而請我四柱流年評 而乖其餘暇예 一生失數之端在於麗水也云 則在傍丁自玟言內何事失數乎인가 去月今예偶到麗水邑突山面將軍島金鐵洙方예有病人一介 而人稱肉死? 人無致效者 故로自憐死病之惻隱 而自發跡斷言曰靈岩郡始終面沃野里朴甲子藥局 則但主肉死?之藥으로發名 而一劑㭘〖拾〗圓式으로判明 而擧世所共知也로다 本人言예此藥은七月初예因換代金으로爲約 而至今過限 故失手也로다 其後無言 而自㗛而已矣 方今丁自玟之事都不知也니 本人處令으로深諒焉 餘不備礼丁丑七月十八日 朴正大[朴正大信][皮封](前面) 麗水郡突山面將軍島金鐵洙 氏大至急 親殿(背面) 恩泉藥局留朴正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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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김영순(金永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寅閏七月十三日 金永淳 戊寅閏七月十三日 金永淳 朴炯得 고흥 밀양박씨 하구정 한국학호남진흥원 1938년에 김영순(金永淳)이 박형득(朴炯得)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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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박정대(朴正大)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丑七月十八日 朴正大 丁丑七月十八日 朴正大 金鐵洙 고흥 밀양박씨 하구정 한국학호남진흥원 1937년에 박정대(朴正大)가 김철수(金鐵洙)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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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민태용(閔泰鏞)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酉四月三日 閔泰鏞 丁酉四月三日 1837 閔泰鏞 任氏家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1_01_A00154_001 1837년에 4월 3일에 閔泰鏞이 任氏家에 보낸 간찰. 과거시험에 낙방한 임씨가 아들을 위로하고 본인의 안부를 전한 내용. *상태: 8점의 간찰이 실린 簡牘帖 중 여섯 번째. '任進士宅回納'이라고 적힌 피봉 조각이 함께 부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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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이호성(李鎬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子臘月念八日 侍生 李鎬成 丙子臘月念八日 李鎬成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자년 12월 28일 侍生 李鎬成이 보낸 편지 *禮席陪誨心幷吾實多伏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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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이교춘(李敎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辰二月二十九日 査弟 李敎春 戊辰二月二十九日 李敎春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진년 2월 29일 査弟 李敎春이 보낸 답장편지. *宴新未洽實深別後之悵卽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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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卧龍山)은 천애지각입니까? 도무지 천애지각이 아닌데도 이와 같으니, 한 통의 안부 편지가 또한 그 사이에서 몇 차례나 있었습니까? 어찌 그리 이토록 인편을 구하기가 어렵단 말입니까. 지난해 봄에 한 통의 안부 편지를 생질 기선(基善) 편에 부쳤고 그 후에 돌아왔습니다. 공춘(公春)이 만든 치포관(緇布冠) 한 건은 아직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4월 모일에 용아(用兒)가 마침 제가 잠시 나갔을 때 와서 알현하고 돌아갔다고 하니, 한쪽 내에서는 이처럼 이상하게 틀어지는 일이 발생하는데, 더구나 말 밖의 인편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우습고 우습습니다. 공께서 또한 진즉에 답장을 보냈지만 또한 지난날 인편을 구해 순조롭게 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어느덧 세월은 지나서 어느새 몇 달이 지났는데, 태만한 죄를 자책하며 무어라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부득이 공께서 막 우편을 통해서 연락해 주시니,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삼가 공부하는 체후가 평안하고 즐겁고 철에 따라 왕성하고 화목하며 자제분들은 모두 부모님을 편안히 모시고 있습니까? 우러러 축하드리는 심정이 그지없습니다.저는 요즈음 부모님의 병환으로 괴로워하고 있는데 공적 사적 일이 또 더해져서 두 차례 소갈증으로 밥을 먹지 못한 지 각각 사나흘이 되었고 공적으로 막 두통이 생겼으니, 조금 괴롭고 괴롭습니다. 우리들이 넉넉한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난날 '존선조 동계공(東溪公)의 제단과 봉령(奉靈)을 허락한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식언한 잘못을 면하기가 어렵다고 멀리서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리가 명령대로 따르지 않음을 어이하겠습니까. 다음 달 20일과 그믐 사이에 한 번 찾아뵈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석 달에 대이삼장(大耳三藏)1)이 장난하는 바가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습니까. 근간에 혹 지나가는 길에 왼편을 돌아보는 은혜가 있겠지요? 홀로 보름달을 바라보고 바람을 쐬며 바라보는 것을 미리 상상하지만, 다만 "내가 가지 않을지언정 그대는 어찌 오지 않는가.[我寧不往 子何不來]"라는 구절을 읊조릴 뿐입니다.보내주신 선물은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이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전적으로 안내받은 것이 없이 보냈으니, 아직까지도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무릎을 맞대고 세세히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나머지 할 말이 많습니다. 삼가 공부하는 체후를 스스로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고 편지를 올립니다.1938년 윤 7월 13일에 김영순이 두 번 절하고 올림. 대이삼장(大耳三藏) 당나라 숙종(肅宗) 때 인도에서 건너온 승려로 상대의 마음을 알아내는 타심통(他心通)을 익힌 인물이다. 龍山涯角耶 殊非涯角 而如此者一書之問 亦有數存於其間耶 何其難憑便梯若是之甚也 去年春一封候書寄託於 令甥基善便矣 其後還來也 公春造置緇冠一件尙未仰呈矣 四月日用兒適際鄙之暫出之時 往謁而歸云 一邊之內亦有如此異常瞑違 况言外便耶 呵呵 公亦趁修謝狀 而亦如疇昔之難憑順寄 故於焉自去月來遽爲數朔 其爲逋慢之罪 自訟難諭 不得已今才憑郵仰塵 悚悚 謹問經體湛樂對時旺穆 曁奉玉輩俱安彩趨 幷頌區區 永淳年來惱於親憂之中 公私又添 兩次痟喝 殊絶飮啄 各到三四日 而公才擾頭小苦小苦 非惟承得 吾子之年來富瞻之末光 回憶昔有尊先東溪公之壇祠奉靈之諾 遙想難免食言之 誅 然奈於脚不從令何 方擬來月念晦間一晉然安知郍腊不爲大耳三丈【藏】者之所戱耶 近間或有歷路 左顧之惠耶 預想獨看望月 臨風而望 而但吟我寧不往 子何不來之句而已 惠饋想應司處不司而專無 敎示 而送之 尙未知何如措處 故以待從膝細攄耳 自餘萬萬 伏希經候自重 不備上戊寅閏七月十三日金永淳再拜[皮封](前面) 高興郡頭原面龍山里 旧卧龍朴斯文炯得宅將命者(背面) 同郡占岩面沙洞金永淳書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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