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維歲次 丁丑 七月己丑朔三十日甲午 幼學 李敎永 敢昭告于斗升山西南龜垞嶝下土地之神 維余擇地名以連坪 往來有意三十四年 今才完定 乃涓吉辰卜築玆土 惟神尙冀鑑 佑世世血屬 相傳無替 業以孔朱永奠厥居 且俾衰朽 養安保拙 修身省愆庶逭危辱 大小寧瑟 無有灾厄 我其報賽 永世無斁 尙饗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1937년 이교영(李敎永) 성조(成造) 축문(祝文) 고문서-시문류-축문 李敎永 李敎永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146_001 1937년 7월 30일에 이교영(李敎永)이 성조(成造) 후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작성한 축문 1937년 7월 30일에 이교영(李敎永)이 연평(連坪)에 택지를 잡으면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작성한 축문이고,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維歲次) 정축년 7월 기축 30일 갑오에 유학 이교영이 감히 밝게 두승산(斗升山) 서남쪽 귀타(龜垞) 고개 아래 토지신에게 밝게 고함. 오직 내가 연평(連坪)이라 하는 곳에 택지를 하여 왕래함에 뜻을 둔 지 34년이라. 지금에는 완전히 정하게 되니 이에 길일을 잡아서 이 땅에 개축하고자 오직 토지신께 감히 바라옵니다. 세세토록 혈속(血屬)들을 보우하사 서로 전하여 쇠퇴함이 없게 해주시고, 공자와 주자를 업으로 하여 영원히 이곳에 머물면서 쇠하여 썩지 않도록 잘 길러 보전하고 몸을 닦아 허물을 살피고자 하니 거의 욕됨을 면하여 크고 작은 일이 평안하여 재액이 없게 하소서. 내 신의 은혜에 보답하길 영원토록 다함이 없으리라. 흠향(歆饗)하소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칠언율시 3수(首)의 시문(詩文)과 기문(記文)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칠언율시 3수의 시문과 남의 처자식을 빼앗은 것에 대해 호소를 한 기문 칠언율시 3수(首)와 남의 처자식을 빼앗은 것에 대해 호소(呼訴)하는 기문(記文)이다. 시문은 〈괴석(恠石)〉이란 제목의 시 1수와 〈진영중수운(鎭營重修韻)〉에 대한 시(詩) 2수로 모두 칠언율시 3수이다. 시문 2편의 끝에는 작자의 성명을 기재해 놓았다. 그 뒤에 이어붙인 산문은 앞의 내용과는 상관없다. 남의 처자식을 빼앗은 사람에 대한 혹평(酷評)을 늘어놓은 산문(散文)이다. 원통하고 분완(憤惋)한 일은 불선(不善)을 쌓는 일인데, 이 불선을 쌓는 일 중 가장 나쁜 것은 남의 처자식을 빼앗는 것이라고 하고, 꾀꼬리와 말과 소 등의 짐승들도 서로 짝을 찾고 새끼를 챙기는데, 사람에게서 인륜의 부부의 정과 부모의 정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가속이 단 3명으로 서로 의탁하며 살다가 하루아침에 그 두 사람을 잃어버려서, 생각하지 않고 잊으려 할수록 더욱 생각나고 잊기 어려운데, 빼앗은 자가 사또[使道]의 자제인 한림(翰林)이라고 하니, 자신이 호소할 곳이 없어서 매우 많은 사람에게 아뢴다고 호소하고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기문(記文)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형재공 사판을 이봉하는 일에 관한 기문 모년에 형재공(亨齋公) 사판(祀板)을 이봉(移奉)하는 일에 관한 기문(記文)이다. 형재공의 사판을 이봉하는 일은 정례(正禮)에 위배되고 정세(情勢)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고, 예의 바름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주부자(朱夫子주희(朱熹))의 정론(定論)을 토대로 중국으로 말하자면 범문정공(范文正公 범중엄(范仲淹))의 사당이 불천지위이기 때문에 묘소의 아래에 세웠고,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불천위는 별도로 묘소에 사당을 세운다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말했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은 형편상 미치지 못하면 별도로 사당의 곁에 묘(廟)를 세운다고 하였다. 이른바 정세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근자에 종운(宗運)이 비색(否塞)하여 천백세 동안 내려온 제전(祭田)을 적손(嫡孫)이 삼켜버려서 향사(享祀) 존모(尊慕)의 도(道)에 왕래가 끊어졌다. 금일에 이르러 크게 힘을 쏟고자 하나 대종(大宗)이 없으니 지손(支孫)인 자가 예(例)대로 하되 별도로 사당을 비록 다른 곳에 있으나 묘소로 옮겨서 받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례와 정세에 매우 적합하다고 하고, 묘의 아래로 다른 곳에서 전이(轉移)하는 것이 천부당만부당하다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시문(詩文)과 명단(名單) 고문서-시문류-시 李南洙 李南洙 경상남도 함양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칠언율시 1수의 시문과 다수의 인명을 기록한 명단 시(詩) 1수(首)와 다수(多數)의 인명(人名)을 기록한 메모지이다. 경남 함양군(咸陽郡) 병곡면(甁谷面) 송평리(松坪里) 이남수(李南秀)를 비롯하여 다수의 인명을 기록하였다. 이름 옆에는 소명(小名, 아명)이나 자(字)를 기재하였다. 칠언율시 1수는 함양 지곡면(池谷面) 개평(介坪) 정순함(鄭淳咸)이 지었다고 되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체천의(遞遷義)와 지방행제(紙榜行祭) 초기(抄記)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체천의(遞遷義)와 지방행제(紙榜行祭) 관련 논의들을 베껴놓은 초기(抄記) 체천의(遞遷義)와 지방행제(紙榜行祭) 관련 논의들을 베껴놓은 글이다. 체천의는 그중에서 최장방지의(最長房之義)와 논별묘(論別廟), 지방행제의는 그중에서 지손지방설행의(枝孫紙榜設行義)와 또 그에 관한 의논이다. 최장방지의는 사계 김장생의 설이며, 논별묘는 도암 이재의 의논이다. 지손지방설행의는 우암 송시열의 설이며, 이는 『송자대전(宋子大全)』 권54, 서(書), 답김구지(答金久之)에 수록되어 있다. 또 하나의 의논은 남계 박세채의 설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퇴계의 천상재기(川上齋記)와 제망실임씨문절록(祭亡室任氏文節錄) 사본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퇴계의 간찰 1편과 천상재기(川上齋記), 제망실임씨문절록(祭亡室任氏文節錄) 일부를 베껴놓은 사본 퇴계의 간찰 1편과 천상재기(川上齋記), 제망실임씨문절록(祭亡室任氏文節錄) 일부를 베껴놓은 글이다. 퇴계언행록초(退溪言行錄抄)는 이덕홍(李德弘)의 편지에 대한 답장글이다. 천상재기(川上齋記)는 이지용(李志容)의 문집인 『小松遺稿』 권7, 기(記)에 수록되어 있는데, 부친이 가천현(可川縣) 주거지에 지은 서재에 대한 기문이다. 제망실임씨문절록은 사망한 부인 임씨의 절개 중에서 두 사례를 적어놓았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집안의 나씨 부인 관련 본생선부인가전초기(本生先夫人家傳抄記)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집안에 전해지는 나씨 부인 관련 사실을 기록한 본생선부인가전초기(本生先夫人家傳抄記) 집안에 전해지는 나씨 부인 관련 사실을 기록한 본생선부인가전초기(本生先夫人家傳記)이다. 자신을 낳아준 돌아가신 모친에 대해 집안에 전해지는 사실을 기록한 기문이다. 선부인은 성이 나씨(羅氏)이며 금성부(錦城府) 사람이다. 그 이하의 기록은 시조부터 부모까지의 가계이다. 부친은 종찬(鍾燦)이며, 후처인 강씨가 선부인을 낳았고 그는 아들과 딸 8명 중에 막내였다. 그러나 선부인의 전승 기록은 관련 내용의 누락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926년 고소인 이종채(李鍾采) 등 고소장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장 大正十五年 八月 日 李鍾采 寶城警察署長 大正十五年 八月 日 李鍾采 寶城警察署長 전라남도 보성군 李鍾采, 李洪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898_001 1926년 8월 대리인 겸 고소인 이종채(李鍾采) 등이 피고소인 이형순(李亨淳) 등은 형법을 범한 자로서 사실에 대한 증거를 보성경찰서장에게 제출한다는 고소장 1926년 8월 대리인 겸 고소인 이종채(李鍾采) 등이 피고소인 이형순(李亨淳) 등은 형법을 범한 자로서 사실에 대한 증거를 보성경찰서장에게 제출한다는 고소장이다. 내용은 고소인 명단과 고소사실, 부속서류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903번의 문서와 동일하다. 고소인은 이교숙(李敎琡) 등 31명이며, 피고소인은 이형순 등 2명이다. 고소인은 모두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와 운곡리, 복내면 시천리 등에 거주하는 5대 조손의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며, 연령을 아울러 기재하였다. 고소인은 고소사실을 9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보성군 문덕면 운곡리에 있는 7대조 이규명(복정공)의 묘를 보호하기 위해 구한국법에 따라 입안(立案)하였는데, 그것은 그 부근의 산야에 대한 소유권을 특별히 인허해 줄 것을 바란 것이며 또 그 산은 종자와 특별제사상속자가 수익(收益) 관리해오던 것이다. 둘째, 피고소인 이형순의 부(父) 이종술은 복정공의 6대손이나, 그의 시대부터 복정공과 그 처의 제사는 항렬 및 나이가 최고인 자가 제사지내왔으며, 현재는 고소인 이교성의 부 이면용이 봉사(奉祀)하고 있다. 셋째, 대정 8년의 임야조사 때 앞서의 산을 이종술의 명의로 소유 신고케 하고 대정 10년에 산을 둘로 나누어 하나는 복정공묘의 보호림으로, 하나는 종손보호림으로 하였다. 종손보호림은 가난한 사정을 호소했던 이종술에게 사용 수익시켰다. 이는 문중 회의록에 기재되어 있으며, 피고소인 이형순은 그 관리인 중 한 사람이다. 넷째, 신탁계약 해제와 소유권 이전수속을 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이종술이 대정 12년 9월 12일에 사망하자, 이종술의 양자 이완순과 서자 이형순 간의 상속권 소송이 광주지방법원에서 아직 확정 판결되지 않았다. 다섯째, 피고소인 이형순이 대정 15년 1월경 묘지보호림의 채목(棌木)을 양 50부(負) 가량 벌채하여 사익을 취한 불법행위에 대해 현지 조사를 통해 발견하였다. 여섯째, 이형순은 상속권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앞서의 임야 등기수속상의 순위에 따라 상속등기할 기회가 있음을 이용해 매각 횡령할 생각으로 이종술의 장녀의 아들인 박중근에게 2천원을 받고 예매(預賣) 계약하였다. 일곱째,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물왕리 소재 복정공의 초처 해평윤씨의 묘에 대해서는 제전(祭田) 7두락지를 사서 묘수(墓守)에게 소작을 시킨 이래 백여 년간 분묘를 보호하고 음력 10월의 묘제를 지내왔다. 여덟째, 피고 등은 대정 15년 음력 5월 19일에 몰래 윤씨의 분묘를 파내 그 유골을 취한 다음 고소인 등에게 내일 보성에 도착한다고 통지하고서 석유상자에 넣어 피고소인의 주소지로 왔다. 아홉째, 문중회의를 열고 형순을 불러 그 이유를 물은 바, 이영순과 협의하고 협력하여 그 보수금(報酬金)을 징출(徵出)해 이익을 얻을 심산이었다고 진술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고소인은 이형순이 3가지 범법사실이 있고 이영순은 이를 공모하였다고 보고 이를 고소하며, 추가로 고소사실에 대한 증거로서 위임장과 임야분할신고서 사본, 문중회의록 사본 각 1통을 제출한다고 하였다. 고소대리인 겸 고소인은 이종채와 이홍순이며, 이 고소장의 제출처는 보성경찰서장이다. 그러나 이 문서는 '1926년 고소인 이종채(李鍾采) 등 고소장 1'과 글씨체는 다르나 동일한 내용의 문서이며 수정한 흔적이 있어 제출 원본은 아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告訴狀寶城郡 文德面 龍巖里告訴人 李敎琡當五十六歲同所告訴人 李敎先當五十六歲同所告訴人 李敎薰當五十二歲寶城郡 文德面 龍巖里告訴人 李敎成當四十歲同所告訴人 李敎燮當三十四歲同所告訴人 李敎元當三十七歲同郡同面雲谷里告訴人 李敎錫當五十一歲同郡同面龍巖里告訴人 李敎煥當五十二歲同所告訴人 李鉦當四十八歲同所告訴人 李鍾昱當四十七歲寶城郡同面龍巖里告訴人 李鉉當四十四歲同所告訴人 李鎬當四十二歲同所告訴人 李鍾當四十二歲同所告訴人 李鏇當四十二歲同所告訴人 李鍾獜當四十歲同所告訴人 李鍾俊當四十一歲同所告訴人 李鍾仁當三十九歲同郡同面龍巖里告訴人 李鍾來當三十九歲同所告訴人 李鍾冕當三十五歲同所告訴人 李鍾尙當三十三歲同所告訴人 李鍾澈當五十歲同所告訴人 李鍾義當三十七歲同所告訴人 李鍾允當三十六歲寶城郡 福內面 詩川里告訴人 李正淳當四十一歲同郡 文德面 龍巖里告訴人 李獻淳當三十歲同所告訴人 李東淳當二十一歲同郡 文德面 龍巖里告訴人 李龍淳當三十六歲同所告訴人 李昌淳當三十五歲同所告訴人 李奉根當二十四歲同所右代理人兼告訴人 李鍾采當四十九歲寶城郡 文德面 龍巖里右代理人兼告訴人 李洪淳當三十三歲同郡同面雲谷里被告訴人 李亨淳當三十歲位同所被告訴人 李永淳當三十二歲位告訴事實一 告訴人 李敎琡의 五代被告訴人等의七代祖의 當한 亡李奎明(僕正公)의 墓가寶城郡 文德面 雲谷里(元石洞里) 山番地의 有라 故告訴人 及被告訴人等의 父祖等이 協議를 遂하야 當時 官憲에申請을 爲하야 右墓保護의 爲하야 ?力 元石洞里山 全部를 舊韓國法에 因한 立案케 한 事 有함 卽 官憲이 其士大夫의 墓의 保護를 爲하야 其附近山野에 對하야 所有權을 特別附與認許를 望者이라而 其山은 宗子 若 特別祭祀相續者가 於 之 收益管理하야 來 望者이라二 然한ᄃᆞㅣ 被告訴人 李亨淳이 實父亡 李鍾述은 右僕正公의 六代孫으로서 系統上 養宗孫의 身位에 當하야시나 同人의 父의 時代부터 僕正公 及其妻等이 祭祀는 該子孫中 行列及年最高者의게 順番流行하야 來한 바 現今은 告訴人 李敎成이 父 李冕容이 奉祀하는 中이라三 然한ᄃᆞㅣ 大正八年中 林野調査의 際 前示山은 門中에서 協議를 爲하야 信託的 李鍾述의 名義로써 所有申告를 시케 둔 바 大正十年中 四五回에 亘하야 門中에 對하야 自分의 生活이 極히 窮艱하다는 事情을 言하고 ?? 救濟로 하야 右林野의 內幾部를 贈與方을 懇願홈에 依하야 門中은 別紙土地分割申告書 及門會議錄에 記載하야잇는 圖와 如히 同林野全部 二로 分割하야 一部는 僕正公墓의 保護林으로 一部는 宗孫保護林으로 하야 李鍾述으게 其宗孫分에 當한 林野은 使用收益을 시키고 尙? 其宗孫分의 立木中 ? 後日墓閣을 建築하는데 要한 材木으로도 伐用하기 可타 證書 徵 置 墓의 保護林에 對한 別紙門會議錄寫의 記載하야 잇ᄂᆞᆫ 것과 가히 門中에서 特別管理人을 相定한 結果 被告訴人 李亨淳도 其管理人中一人으로서 林野保護에 對하야 努務를 爲하고 잇는 者이라四 而? 告訴人等은 右信託契約을 解除하고 前示林野의 所有權移轉手續을 위하??야도 공교히 林野移動申告期間을 徒過?? 或은 李敎仁의 孫 된 李甲淳 ?? 同林野의 對한 不服申立을 爲 하잇ᄂᆞᆫ 故로 相當手續을 爲할 수가 能치 못함으로써 不如?함을 걱정하던 中 不幸? 李鍾述은 大正十二年九月十二日 死亡하야시다 其家督相續에 처해서는 目下 光州地方法院에서 李鍾述의 養子 된 李完淳 其庶子 된 李亨淳間에 訴를 爲하야 이것이 아직 判決確定되지 못한 者이라.五 然한ᄃᆞㅣ 被告訴人 李亨淳은 門中及林野特別管理者等의 不知中 大正十五年一月頃 墓地保護林에서 棌木을 約五十負位 可量을 窃히 伐取하야 之을 私益으로 爲하ᄂᆞᆫ 事有함의 對하야 付告訴人等은 이것을 事後 他人으로부터 聞知하고 實地에 가서 檢査을 爲한 바 과연 李亨淳 不法의 行爲임을 發見하여시나 寬忍自重하고 本日에 至홈六. 被告訴人等은 相謀하야 後日 萬一 李亨淳이 李完淳으게 前示亡李鍾述의 家督相續等에 關한 訴와 勝訴의 判決을 受한 場時에ᄂᆞᆫ 前記林野(墓地分 宗孫分共) 所有權 登記手續上 順位의 依하야 當然 李亨淳의 名義로 相續登記을 爲 付此機會 잇심을 利用하야 이것을 他에 賣却하야 多大의 利得을 橫領할 生覺으로 積 寶城郡 栗於面 陽地里 朴重根으게 代金額은 不詳이나 右林野을 豫賣의 契約을 위하야 其代金中 約二千圓位 可量 取하야 被告訴人 兩名이 分配利得한 것이라 右朴重根은 亡李鍾述의 長女의 子 된 關係가 有할 뿐이니라 亡李鍾述 其妻 對 遺言에 依 該林野 告訴人及被告訴等間에서 內部의 關係事情을 熟知하고 잇시면서 이것을 買受한 者이라七 前示亡李奎明의 亡初妻海平尹氏의 墓은 京畿道 始興郡 秀岩面 物旺里 同人의 累代先祖墓下에 有홈 그런ᄃᆞㅣ 告訴人等父祖로부터 曾 祭田이라 하야 土地七斗落餘을 買受하야 이것을 墓守의 報酬라 하야 墓守으게 小作을 시겨 爾來百有年間 墳墓을 保護하고 또 每年의 陰十月中의은 墓祭을 爲하야 來한 者이라八 然한ᄃᆞㅣ 被告等은 相謀하야 大正十五年 陰五月 十九日 門中에 全然 不知中 突然 右尹氏의 墳墓을 掘出하야 其遺骨을 가지고 ??에 掃하야 처음으로 告訴人等으게 掘塚의 上遺骨을 가저 明日 寶城에 到着한다ᄂᆞᆫ 通知을 爲하고 該遺骨은 不敬千萬도 不拘 石油箱에 너허 此을 負하고 被告訴人의 住所地에 來한 것이다九 그리하야 告訴人等은 大端히 憤忱해서 門會을 開하고 亨淳을 呼하야 其不心得을 責하고 其理由을 무루록 亨淳 말이 實은 李永淳과 協議한 結果 協力하야 七代祖妣尹氏의 墓을 掘運하야 來한 것은 全혀 此을 藉稱하야 門中에 對하야 될 수 잇는 ᄃᆞㅣ로 後日 其報酬金을 徵出하야 利得을 爲할 心算의 下에서 此을 實行한 것시라고 云한다依하야 右事實을 綜合하야 見하면 被告訴人 李亨淳은 前記僕正公의 墓保護林의 管理者中 一人으로서 特別義務責任이 有한 것도 此을 違?背하고 濫히 櫟木을 竊取하야 此을 利得하고 並하야 李永淳과 相謀하야 未來亡李鍾述 家督相續을 爲할 際 門中으로부터 信託을 受하야 李鍾述의 名義에 有한 門中의 林野(僕正公墓保護林)을 自分의 名義로 登記順位上相續을 受할 만한 機會잇심을 奇貸라고 하야 此을 利用할 心算이 下에 미리 此을 他에 賣買豫約을 爲하야 代金을 橫領하고 또 惡意로써 門中에도 이리키지안코 擅히 先代의 墳墓을 掘하고 不當의 報酬을 偏取하랴 한 거시다李永淳은 李亨淳과 相謀하야 門中共有林野가 亡李鍾述의 名義로 有한거시 後日 李亨淳에 對하야 其家督相續을 受할 際 登記順位上 前記林野가 李亨淳의 名義로 相續을 할만한 機會잇심을 看破하고 之?을 奇貨라고 하야 몬자 神祕리 此을 他에 豫賣却고켜 其代金을 利得하자고 李亨淳과 共同周旋하야 其賣得金을 配當利得하고 또 惡意로써 先代의 墳墓을 不法에도 窃히 掘出하야 一般關係子孫等에 不當의 報酬金品을 徧取하라 한 ? 同時 墳墓의 掘出을 實行한거시다以上? 被告訴人等의 行爲은 孰언시? 合倂罪라 하야 刑法을 犯한 者라고 思料하야 此後 告訴에 及한 次?追하니 被告訴의 事實에 對한 詳細及證據은 御尋에 依 하야 申出하것사이다附屬書類一 委任狀一通一 林野分割申告書寫一通一 門會議錄寫一通以上大正十五年 八月 日右告訴代理人兼告訴人 李鍾采同 李洪淳寶城警察署長 殿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14년 양회원(梁會源)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寅十月二日 梁會源 李生員 甲寅十月二日 梁會源 李生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4년 10월 2일에 양회원(梁會源) 등이 이생원에게 선조의 문집 발행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보낸 간찰(簡札) 1914년 10월 2일에 양회원(梁會源) 등이 이생원에게 선조의 문집 발행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보낸 간찰이다. 양회원은 호봉간소(護峰刊所) 소속으로 양재학(梁在鶴), 양재경(梁在慶) 등 아우와 공동명의이다. 날씨가 추워지고 낙엽이 떨어지니 오직 하나의 햇살은 옛 벗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인데 자신들은 벽지에 살아서 나아갈 연고가 없어 한탄스럽다고 하면서 상대방에게 안부를 물었다. 다만 자신들이 선조의 책을 인출(鋟板)하는 일은 스스로 힘을 헤아리지 못했으나, 우리 가문의 사사로운 일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지금 사풍(士風)이 땅에 떨어져 있으니, 범 우리 사문(斯文)에 관련된 일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거의 끊어져 가는 맥을 부양하는 뜻이 깃들어 있고, 같은 소리는 반드시 상응하는 이치가 있기에 하찮은 종이를 이에 경솔하게 올리니 헤아려달라는 등의 내용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