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4년 김영완(金永完)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十一月五日 金永完 李敎成 甲戌十一月五日 金永完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全南·福內 9.12.12 后4-12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40_001 1934년 11월 5일, 생 김영완이 상대가 구입하기를 원하는 책의 재고상황, 가격 등을 전하고 상대가 가져간 책을 보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성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簡札) 1934년 11월 5일, 생(生) 김영완(金永完)이 보성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상대가 원하는 책들에 대해 현재의 책 입고 상태, 가격 등을 전하고 상대가 가져간 책 등에 대해 주고받는 문제 등을 언급한 편지이다. 어제 보낸 편지를 아직 읽지 못한 것에 대해 우편도 잃어버리는 일이 있고 지체되어 전달되기도 한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못난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고 인사했다. 『주차(朱箚)』를 이제 겨우 회수했다는 것, 『사류(事類)』 2책을 함께 올린다는 것, 『사평(史評)』은 찾는 대로 추후에 부치겠다는 것, 『명사강목(明史綱目)』 은 좋은 책은 있지만 흠이 있는 것은 없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 지난번에 물었던 『주자대전(朱子大全)』은 다른 사람 차지가 되었다는 것, 좋은 것은 65책으로 50엔 이내로는 안 된다는 것, 조금 좋지 않은 것은 40엔인데 대충 둘러대는 말이 아니니 양해해 달라는 것, 『여사(麗史)』와 『무경(武經)』의 수말(首末)을 우체국에 보냈는지에 대한 물음, 만약 부쳤다면 즉시 우편국에 보내기를 바란다는 것,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바꾸는 일은 어찌 할 것인지 2질을 모두 하기 어렵다면 한 질만 하는 것은 어떠한지에 대한 물음, 다른 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잘 도모할 것이니 알려달라는 것, 『율곡전서(栗谷全書)』와 『퇴계집(退溪集)』은 사려는 곳이 있는지, 『목은집(牧隱集)』과 다른 것에 대해서 상세히 말씀해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추기한 글에서는 당신 쪽에서 사기를 희망하는 것이 나올 때마다 자신 쪽에 상세히 말씀해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 전에 말씀하신 것은 정신이모호해서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적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3년 이남수(李南洙)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酉陰四月十七日 李南洙 李斯文敎成 癸酉陰四月十七日 李南洙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16_001 1933년 음력 4월 17일, 족질 남수가 족숙 이교성씨에게 혼처를 소개하며 신랑 될 자를 소개하고 그를 이달 말 내로 봐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簡札) 1933년 음력 4월 17일, 족질(族侄) 남수(南洙)가 전남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씨에게 혼처를 주선하며 이달 말 이내로 신랑을 만나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지난달에 이별했던 것이 아직 꿈같다며 최근 푸른 나뭇잎이 그늘을 만드는 요즈음에 어른 모시고 계신 형제분들의 안부를 물었다. 조카인 자신은 상중에 겨우 생활을 보존하고 있다고 인사한 후 전에 부탁했던 혼인에 관한 일에 대해 언급했다. 개평(介坪) 승지(承旨) 정승현(鄭承鉉)씨가 혼인을 저울질하는데, 나이 16세이고 피차 적당하기에 속히 통기하니 편지를 보는 대로 다음날에 자신의 집으로 왕림하여서 서로 상의하시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신랑 될 사람이 위양(渭陽)과 남원(南原)의 윤(尹) 모(某) 가(家)라고 하니 족숙께서 연원을 참고하면 조금이라도 보탬이 있을 것이라며 이달 말 내로 좌우간에 신랑을 만나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묻고 편지를 마쳤다. 추기(追記)에는 만약 연기를 한다면 이곳에서는 절망할 것이니 기한 내로 왕림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4년 김영완(金永完)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9.12.7, 十一月一日 金永完 李敎成 (昭和)9.12.7, 十一月一日 金永完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9.12.7 前8-12, 郵便日附印 : 全南·福內9.12.6后□…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40_001 1934년 11월 1일, 생 김영완이 이교성에게 상대가 편지로 말한 서책들에 대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 보낸 간찰(簡札) 1934년 11월 1일, 생(生) 김영완(金永完)이 보성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상대가 편지로 말한 서책들에 대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 쓴 답장 편지이다. 이전에 보낸 안부편지를 받았을 것이라며 최근의 상대의 안부와 좋아하는 서적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자신은 한 결 같이 못난 모습으로 지내어 드릴 말씀이 없다는 것, 지난번에 말씀하신 것 중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많다며 회수된 책들은 판(板)과 종이 값 측면에서 그 수를 채우기 어려울듯하다는 것, 『정종(正宗)』은 우선 나온 것이 없으니 찾는 대로 말씀드리겠다는 것, 세 종류의 낙질(落秩)은 말씀대로 있게 되면 부쳐 올리겠다는 것, 『차의(箚疑)』는 조만간 입수될 것 같으니 그때 함께 올리겠다는 것, 『의례경전(儀禮經傳)』은 우선 두고, 『여사(麗史)』와 『무경(武經)』의 첫 권과 끝 권을 얻게 되어 감사하다는 인사, 『대전(大全)』을 서로 바꾸는 일은 잘 도모해 보심이 어떠하냐는 물음, 이처럼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는 말, 이외에 얼마간에 좋은 물건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말 등을 전한 내용이다. 이교성이 서책의 구비를 위하여 거래했던 모습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4년 김영완(金永完)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9.12.17, 至旬有一日 金永完 李敎成 (昭和)9.12.17, 至旬有一日 金永完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光化門 9.12.17 ▣…, 郵便日附印 : 全南·福內 9.12.13 后4-12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40_001 1934년 11월 11일, 생 김영완이 상대가 원하는 책의 구입 정보를 전달하는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簡札) 1934년 11월 11일, 생(生) 김영완(金永完)이 상대가 원하는 책의 구입 정보를 전달하는 내용으로 보성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편지이다. 부모님을 모시며 공부하는 상대의 안부를 묻고 간단히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상대가 말한 뜻은 잘 알았다며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경향판(京鄕板)을 따지지 않고 몇 질이 있지만 내 외 집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것을 아직 정리하지 못하였으니 조금 기다려 달라고 했다. 바꾸는 문제는 『여사(麗史)』는 아니고, 지난번 편지에서 송자대전 2질이 있다며 주자대전으로 바꾸는 일을 말씀하셨는데 자기 쪽에 있는 『주서(朱書)』로 바꾸는 것을 간청한다고 하였다. 『여사(麗史)』와 『무경(무경(武經)』, 『사선(史選)』을 25엔으로 팔기를 원한다고 하였으니 견본을 부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외에 팔고 있는 물건이 있으면 기회를 보아서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송서(宋書)』의 낙질본은 마땅히 찾아볼 것이지만 이 것 또한 후편을 기다려 달라는 것, 『문장(文章)』, 『정종(正宗)』은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으니 간행한 책을 들여와야 할듯하니 후편을 기다려 달라는 것, 『주차(朱箚)』는 잘 도착했느냐는 물음 등의 내용을 적었다. 이교성이 김영완에게 책을 구하는 일 뿐 아니라 자신 집의 소장본과 바꾸거나 팔고자 하는 거래이기도 함을 확인할 수 있다. 발신일자 란에 연도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우편일부인(郵便日附印)을 통해 1934년(소화 9)임을 알 수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6년 이홍순(李洪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秋夕後三日 丙子秋夕後三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6년 8월 18일 이홍순이 성주이씨 가천문중 여러분에게 항의서로 작성한 간찰(簡札) 1936년 8월 18일, 이홍순(李洪淳)이 성주이씨 가천문중(可川門中) 여러분에게 올린 항의서(抗議書)이다. 봉투 안의 문장 형식은 통문(通文)이고, 문서의 맨 앞에 항의서(抗議書)라는 제목을 달았다. 내용을 보면 우선 문회(門會)를 재작일에 개최한 것에 대해 매우 감명스러웠다고 인사했다. 그러나 후정공(候正公)의 향화(香火)에 대하여 건의한 것은 좀 늦었지만 또한 괜찮다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 문중의 큰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전 해에 종술(鍾述) 씨 및 문중이 석구산(石舊山)을 2분하여 소유하기로 한 약속이 허사로 돌아가고, 가천문중이 천천(千川) 문중과 대립하여 소송한 일에 대해서는 모골이 송연하다고 하였다. 거짓으로 두 문중이 화해를 보았던 것은 특파원이 한 일이며, 화해금 1천원 중 500원은 양회산(梁會散) 부자(父子)가 담당하는 돈이고, 20원은 박중근(朴重根)의 보관증에 관계된 돈이며 나머지 480원 현금 중에 200원은 김(金) 변호사에게 사례금으로 지불하고, 10원은 석씨(石氏)를 위로하기 위해 요리집에서 지불했으며, 270원 수입이 났는데, 그것을 또 이리저리 처리하고 남은 잔금이 107원인데 누가 횡령을 했다는 말이냐고 따졌다. 또 안산(案山) 묘소 이외의 4개소 임야를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이상의 일을 총합하여 살펴보면 여러분이 각자 양심이 가르치는 것이 있을 것이라며 후정(候正) 선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청원했다. 이홍순은 후정(候正公)의 후손으로 선조의 향화(香火)와 관련한 변명과 요청을 들어 줄 것을 가천문중에 청한 것으로 보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2년 이평순(李平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戌陰十二月三日 李平淳 可川 僉宗 壬戌陰十二月三日 李平淳 可川 僉宗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음력 12월 3일, 족종 이평순이 선조 위토의 환퇴를 위한 배당금을 거둬들이는 내용으로 보성군 문덕면 가천에 거주하는 첨종에게 보낸 간찰(簡札) 1922년 음력 12월 3일, 족종(族從) 이평순(李平淳)이 선조 위토의 환퇴를 위한 배당금을 거둬들이는 내용으로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可川里)에 거주하는 첨종(僉宗)에게 보낸 간찰이다. 12월 날씨에 상대 여러분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상대 종족 여러 집의 덕택으로 반천리의 여정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이번 종사(宗事)는 현종(賢從)들과 상의하여 지난번 회소(回甦)에서 언급하였다며 성의를 보여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더 배당한 금액은 규정상 그러한 것이라며 귀 파(派)와 곡성(谷城) 양 종중에도 배당금을 더하게 되었다며 잘 걷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위토(位土) 환퇴를 위한 금액에 관하여 간략히 보고하고 오는 1월 28일 공(公)의 배위(配位) 기신(忌辰) 일에 모두 참석하시기를 바란다는 것, 이날 각 곳의 종인(宗人)이 모두 모일 뜻으로 이미 왕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자와 발급자를 적은 뒤에는 3처(處)에 배당된 금액을 기록하고 오는 1월에 참석할 때 가져 오실 수 있는지 물었다. 만약 기사(忌祀) 전에 연락할 수 있다면 족종의 원주소(原住所)인 강화군(江華郡) 부내면(府內面) 갑관리(甲貫里)로 송부해 줄 것을 청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2년 이교숙(李敎琡)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戌二月十七 李敎琡 壬戌二月十七 李敎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59_001 1922년 2월 17일, 종질 이교숙이 서산 묘의 이안을 건의하고 이를 위해 종중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보성 종중에 보낸 간찰(簡札) 1922년 2월 17일, 종질(從侄) 이교숙(李敎琡)이 서산(西山) 묘(墓)의 이안(移安)을 건의하고 이를 위해 종중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보성 종중에 보낸 간찰이다. 상중에 있는 상대 및 촌내의 큰 집, 작은 집 등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13일에 서울에 올라와 우선 무탈하다고 했다. 다음날 서산(西山)에 가서 묘를 배알하였는데 영홀(影笏)이 아직 존재하여 기뻤다고 했다. 위토 19두락 밭과 10여두락이 벽순, 학순, 종팔, 만종 등에게 들어갔고 땅을 팔거나 이작(移作)이 되는 등 제사가 끊어지고 산지기가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며 통분하였다. 중요한 부조묘의 제사가 이렇게 됨에 이르러 자손 된 자로서 그대로 둘 수 없다며 곡성(谷城)에 이안(移安)해야겠다고 했다. 이를 의논하기 위하여 이달 24일에 서산(西山) 정사손(定嗣孫)에서 회의를 열고, 곡성과 보성 양 쪽 중에 이안(移安)을 할 것이라는 것, 하게 되면 보성은 영광댁(靈光宅), 곡성은 시천댁(詩川宅)으로 정하는 것이 좋겠는데 이는 종중에서 상의하여 답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자신이 그동안 며칠을 머물면서 생겨난 비용이 많지만 기일을 더 늦출 수 없어 기어이 조치를 취한 뒤에 내려갈 계획이라며 양해해 달라고 말하고 나머지는 다시 고하겠다고 전했다. 추기에는 수다동(水多洞)의 땅 내력을 자세히 적어 보내며 추심할 생각이라고 적었다. 또 기순(起淳)이 소나무 값 44냥을 추심(推尋)하는 일로 지금 성순(聖淳)과 재판중이고 어제 평리원에서 대질을 하였다고 적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7년 이준회(李浚會)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易月旬九 李俊會 丁卯易月旬九 李俊會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7년 10월 19일, 소제 이준회가 상대의 편지에 답하여 자신의 안부와 상황을 전하고 상대가 말한 책장과 고공 값에 대해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27년 10월 19일, 소제(少弟) 이준회(李浚會)가 상대의 편지에 답하여 자신의 안부와 상황을 전하고 상대가 말한 책장(冊藏)과 공(工) 값에 대해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헤어진 뒤로 병이 심해지고 근심은 더욱 요란해졌다며 상대의 편지를 받고도 답장하지 못하고 다만 친형이 편지 올리고 말로 사례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지금 상대의 편지를 받으니 미처 전달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 그러하리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불민함을 탓하였다. 최근 상대의 건강이 평안하시는 말에 위로되었다고 하고 막내 동생분의 병환은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은 집안의 많은 문제들로 어지러운 중이라며 상황을 말하고 자신의 이러한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청한 후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쓸모없는 재목이 허사로 돌아갔음을 알 것이라고 하고, 책장(冊藏)에 대해서는 황변(黃弁)에게 그 규제(規制)를 상세히 언급해 주었다는 것, 공가(工價)에 대해서는 말씀대로 우선 결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16년 이교인(李敎仁)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丙辰十二月十三日 李敎仁 長洞里 丙辰十二月十三日 李敎仁 長洞里 전라남도 보성군 圓形朱印: 李敎仁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12월 13일, 장동리 이교인이 장동리, 가천리, 석동리 등 6개 동리에 위토가 모래로 덮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도움을 줄 것을 청하려고 보낸 통문(通文) 1916년 12월 13일, 장동리 이교인(李敎仁)이 장동리, 가천리, 석동리 등 6개 동리에 위토가 모래로 덮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도움을 줄 것을 청하기 위해 보낸 통문이다. 이번에 간 신완복(申完福)은 경기 양주군 호원산소(芦原山所)의 산지기인데 그가 우리 가문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산지기를 거행했던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 위토가 모래로 덮히게 되면서 매년 거행하던 시사(時祀)를 채근하자 올해는 추위를 무릅쓰고 와서 그 사유를 아뢰기로 이번에는 산의 주인되는 각 집에서 십시일반으로 걷어 거행하려고 한다며 각 집에서 다소간에 후의를 베풀어 앞으로의 일을 보존하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수신처는 장동리(長洞里)를 비롯 가천리(可川里), 석동리(席洞里), 신운리(新雲里), 시천리(詩川里), 두슬리(斗瑟里) 등 여섯 동네이다. 추기에는 선산(先山)의 일이 매우 시급하니 문서가 도착하는 즉시 가천문장(可川門長)에게 이 글과 함께 올려 읽어보게 하고 읽은 후에는 문장댁(門長宅)으로 도로 보내줄 것을 청하였다. 국한문 혼용체로서 전체 한문이나 '가, 이고, 을, 에, ᄒᆞ야' 등의 토가 한글로 적혀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이백순(李百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今月 八日 李百淳 今月 八日 1923 李百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92_001 모년에 이백순이 문중의 위토이전 등의 일에 대해 그간의 진행과정을 가천에 보고한 간찰 모년에 이백순(李百淳)이 위토이전(位土移轉) 건, 형재공(亨齋公) 사판봉안(祀版奉案) 건, 족보간행 등과 관련해서 문중의 종파 사이에 생긴 갈등에 대해서 자신이 상경해서 만나고 처리한 일의 과정을 보성군 가천 집안으로 보고한 간찰이다. 형편을 봐서 안 되면 인장(印章)은 통신하기가 불편하니 날짜에 맞추는 것이 지체된다. 소송하게 되면 인조개각(印造改刻)한다고 광고한 일도 있어서, 즉시 상경해서 하지 않으면 소송할 계획이었다. 마침 신병이 있고, 이교웅(李敎雄)에 대해서는 비밀리에 조사해보았더니 되돌릴 이치가 없어 곡성‧보성 두 문회(門會)를 따를 계획이었다. 하행하여 곡성‧보성 문회를 개축(開祝)하고, 교난(敎欄)‧교재(敎在)가 동석해서 자세히 얘기한 후 그들의 흑백을 문중에서 잘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싶은 생각이 크게 있다. 이 서류 등과 인장을 문중에 함께 가지고 가니, 인장은 각각 분급하시라고 하였다. 또 금년 가운(家運)이 불길하여 생활난이 막심한 중에 문중에서까지 분란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하고, 그간 해왔던 일의 소장취소건 등의 서류와 쓰인 경비를 적었다. 피봉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16년 성주이씨 이종일(李鍾一)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丙辰十一月二十六日 李鍾一 李冕容 丙辰十一月二十六日 李鍾一 李冕容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11월 26일, 성주이씨 족손 이종일, 이태순이 문경공·판윤공·도정공·대사헌공 등의 산소 단장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호 종족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보성 문중에 보낸 통문(通文) 1916년 11월 26일, 성주이씨 족손 이종일(李鍾一), 이태순(李台淳)이 문경공·판윤공·도정공·대사헌공 등의 산소 단장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호(畿湖) 종족(宗族)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보성 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내용은 지역이 떨어져 서로 만나기 어려운 종족간의 아쉬움과 추운 겨울에 회의를 마치고 돌아간 상대에게 안부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 대시급한 선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를 위해 보성 등 각 문중에서 완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을 청한 내용이다. 나머지 상세한 전말은 족대부(族大父) 이교인(李敎仁) 씨에게서 들을 수 있다고 적었다. 편지 글과 같은 통문의 내용 뒤에는 '대시급에 관한 건'이라고 하여 시급하게 처한 문제점을 3가지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첫 번째는 문경공 묘소의 단독소유증명을 몇 명의 명의로 공동소유권을 만들기 위한 토지구입과 인지수수료가 매우 많기에 현재 회의 중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판윤공 묘소 근처 백사(白沙)가 된 곳을 사초(莎草)하기 위한 문제가 시급하니 총독부에서 사방공사를 하기 전에 먼저 식목(植木) 하여 소유권을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도정공 대사헌공 부자(父子)의 산소에 사초가 퇴락한 문제를 짚으며 이러한 세 가지 문제가 시급하지만 서울에 사는 자손 몇 명으로는 가난하여 금액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기호(畿湖)의 종족 집에 통지하여 내년 음력 정월 말일까지 금액을 모두 수합하여 총독부가 사방공사를 하기 전에 묘소를 단장하자고 했다. 내년 음력 1월 10일 내로 보성 각 문중에 한 사람을 보탤 테니 이 사람에게 수납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 이 문제는 곡성문중에도 통고하였다고 적었다. 통문은 경성에 살고 있는 이종일, 이태순 두 사람의 명의로 발신되어 가천리(可川里), 운곡리(雲谷里), 시천리(詩川里), 두슬리(斗瑟里)에 회통(回通)하도록 하였다. 피봉에 적힌 발신자는 경성 익선동 125번에 살고 있는 이종일이며, 수신자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 이면용(李冕容)씨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地隔千里 奉接無路 景仰古風 徒勞夢想 幸値 榮旆入闉之會亦未得奉拜 其或天嫌吾人花樹之誼而然歟 伏悵之懷 愈倍前日也 而況此衰境冷候不憚途遠餘 其許多年少親枉董役 以完 先塋 其追遠孝思之誠 令人健羨 致賀不已 仍伏詢至沍榮旆還次 利稅勞攘餘氣體候無至損節 門內諸節均休幷伏溸區區不任下忱 族孫等 僅保度(2)日 公飽歲債 調度益貧 行無餘力之可及於禮儀等節 而現有大時急底先事者非止再 無一可擧實□爲孑孫之道 然居在 墓近明知有事於先塋 而坐歎自力之無可奈何 又不告於遠地族親 則亦失於敦親之道 故敢將其槩尾附仰瀆於尊體事 伏望將此 諭及寶城各門中俾完在迫之 先事 若何若何 多少詳悉於族大夫敎仁氏 故萬閣 續后 不備上(3)候禮 京城 益善洞 一百二十五番地丙辰十一月二十六日族孫等 鍾一[李鍾一]京城仁寺洞五十九番地 台淳[李泰淳信]再拜大時急에 關ᄒᆞᆫ 件一 文景公墓所(今高陽郡碧蹄面仙遊洞) 自來高陽郡參判鍾律氏之主管 而曾未暇於後慮ᄒᆞ고 該位土 自己單獨所有証明 到今形便을 觀之즉 土地所有가 無關於文簿有無요 臺帳에 所載人爲主而其家力(4)去益零替 勢將幾箇人名義共同所有記濟然後라야 可免 先塋絶火之慮 故在京諸族이 相呌憂歎 然其土地價格이 至於千餘円 則登記印紙與手料가 亦甚夥然 以是로 方會議中이요一 判尹公墓所(楊州芦海面無愁洞佛堂谷)位土則 雖已歸定이나 然이나 山所與山形이近爲白沙之地也 非徒莎草頹落之急이라 自明春으로 總督府의셔 行沙防工事於不咸山內外面植付苗木할 旨로 揭令(5)ᄒᆞ여시니 若然즉 山所近形便이 頹敗白沙요 且閥外幾嶝도 皆是白沙라 行沙防工事에 免할 權利가 無ᄒᆞ니 此將何爲오 是以로 時急業議ᄒᆞ야 莎草도 完築케ᄒᆞ고 先山嶝을一新植木치 못ᄒᆞᆯ지면 山所近處幾百步之地라도 植木ᄒᆞ여사 可免脹目失墓之勢라 萬若總督府로 植木ᄒᆞᆫ後ᄂᆞᆫ 雖諸子孫이 一齊會合ᄒᆞ야 呼天呼寃이라도 奚可奈何이니 爲其子孫者 知而不爲면 卽■近禽獸라 族孫等이 居在京中에 此令辭을(6)知之故로 幾箇子孫會合ᄒᆞ야 方收議ᄒᆞᆫ 中이온ᄃᆡ 玆敬通告ᄒᆞᆷ一 都正公大司憲公父子分山所(楊州芦海面廣石里)莎草崩頹不是라 墳上折半崩頹ᄒᆞ고 外堦가 崩落에 可爲露棺之境이니 子孫者 參當目見不可以口舌로 急이라고 告할事 先爲罪悚ᄒᆞ야 方收議莎草完築을爲計ᄒᆞᆷ右三件事가 目下大時急 故京居子孫幾箇人이 會合收議 則擧皆貧寒中夥多(7)ᄒᆞᆫ 金額을 不可勝當ᄒᆞ야 畿湖間宗族家로 通告ᄒᆞ야 明年陰正月晦間에ᄂᆞᆫ 金額을 收合ᄒᆞ여사 總督府行亦前에 植木이 爲第一이오니大父主覽此時急所告ᄒᆞ시고 寶城各門中으로 收議ᄒᆞ시면 明年陰正月旬內로 行員一人을 下送ᄒᆞ올지니大諒ᄒᆞ시와 以完先事 伏祝明年陰正月二十九日이馬韓國夫人忌祀라 其時에 寶城門中의셔도(8)行員一人을 定ᄒᆞ야 自京下去行員으로 偕爲上來ᄒᆞ시와 告事規定도 ᄒᆞ시고 莎草等事도 完築ᄒᆞ시믈 伏望再此由을 京近郡宗族間이며 谷城門中의도 通告ᄒᆞ여시니諒燭ᄒᆞ시옵可川里雲谷里詩川里斗瑟里 僉前(皮封_前面)寶城郡 文德面 可川里李冕容氏 閣下(皮封_背面)京城 益善洞 一二五番李鍾一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18년 이교웅(李敎雄)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大正七年三月 李敎雄 寶城可川宗中 大正七年三月 李敎雄 寶城可川宗中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8년 3월, 성주이씨 종중에서 선산 단장 건으로 보성 가천문중에 보낸 통문(通文) 1918년 3월에 성주이씨 종중 발문유사 이교웅(李敎雄), 이종율(李鍾律), 이종일(李鍾一), 이종린(李鍾麟) 등이 선산의 단장 건으로 보성 가천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양주군(楊州郡) 노해면(蘆海面) 불함산(不咸山) 서록(西麓)에 있는 판윤공과 그 자손 50여위의 묘소 있는 선산을 단장하기 위해서 식목(植木)을 한다며 소용비용과 금액 배분에 대해 가천종중에 통지한 내용이다. 묘소의 단장은 묘소가 퇴락한 상태에서 식목(植)木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선산 인근 산을 조선총독부에 빼앗길 위험에 처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무를 심어 산림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통문이 끝난 후 '좌개(左開)'에서는 묘목을 2만 본 심는데 매 1본 당 1전으로 200원, 인부 400명을 고용하고 매 1명당 고용값 50전을 주어 200원, 사괴(莎塊) 2만 편 이 매 1편당 5리여서 100원, 묘위에 개사(開沙)하기 위해 인부 50명을 써서 25원, 총합 525원이 들어갔으며 이 금액을 3분하여 그 중 2분은 호남(湖南)에서 담당하고 1분은 영남에서 담당한다고 적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69년 분재기(分財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己巳八月 己巳八月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9년 8월 날짜로 토지와 우척(牛隻)을 나누어준 분재기(分財記) 1869년 8월 날짜로 토지와 우척(牛隻)을 나누어준 분재기(分財記)이다. 사유와 조상관계, 피상속인, 문서작성 참여자 등과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전답과 대지·우척(牛隻)의 규모만을 기록해놓았다. 전답은 수동촌 초자답 등 14곳이며, 우척은 1필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토지분배 내역을 적어놓은 분재기(分財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위토의 분포상황을 밝히고, 또 5곳으로 토지분배 내역을 적어놓은 분재기(分財記) 위토를 제위조(祭位條)와 산위조(山位條)로 나누어 토지의 분포상황을 밝히고, 또 5곳으로 토지분배 내역을 적어놓은 분재기(分財記)이다. 제위조는 문중의 조상제사를 위해 마련된 위답이며, 산위조는 조상 산소의 수호와 제사를 위해 조성한 위답이다. 5곳의 토지는 가천 안산평 외자답(外字畓) 등과 가천 용복평 목자답 등, 가천 용복평 목자답(앞과 동일한 곳임) 등, 장동평 화자답 등, 가천촌 앞 부자답 등인데, 각각 끝에는 비(婢)의 이름을 적어놓았으며 네 번째만 이름이 없다. 피봉이 있는데, 증조고(曾祖考) 참판공(參判公) 분재기, 조고(祖考) 동지공(同知公) 분재기라 쓰여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69년 분재기(分財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己巳八月十八日 己巳八月十八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69년 8월 18일 날짜로 토지와 우척(牛隻)을 나누어준 분재기(分財記) 1869년 8월 18일 날짜로 토지와 우척(牛隻)을 나누어준 분재기(分財記)이다. 사유와 조상관계, 피상속인, 문서작성 참여자 등과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전답과 대지·우척(牛隻)의 규모만을 기록해놓았다. 전답은 가천 수반평(樹盤坪) 부자답(夫字畓) 등 모두 18곳이며, 우척은 4필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李箕斗爲通政大夫者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21년 종손 이종술(李鍾述)의 복정공 묘지보호 증서(證書) 고문서-증빙류-증서 辛酉五月十一日 李種述 李冕容 辛酉五月十一日 李種述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5월 11일에 종손 이종술(李鍾述)이 문장(門長) 이면용에게 발급한 복정공 묘지보호에 관한 증서(證書) 1921년 5월 11일에 종손 이종술(李鍾述)이 문장(門長) 이면용에게 발급한 복정공 묘지보호에 관한 증서(證書)이다. 이 증서는 6대조 복정공 묘지보호에 관한 것이다. 산야 소재는 보성군 문덕면 운곡리 9-1번, 112-2번이다. 면적은 280정7무이다. 이것을 본인이 지금 수호하고 있다. 복정공(僕正公) 제사도 체천(遞遷) 시효에도 문장 이면용은 제사 체천을 받아서 제사를 주재(제주)한 지 여러 해이다. 설향(設饗)할 기한이 멀지 않아 결코 이 산야의 수익으로 설향할 계획을 준비하기로 한 즉, 본인은 누세 선조의 열위사업(列位事業)을 단독으로 지배하기에 불가능하였다. 그리하여 문장 이면용의 처분에 따라 복정공 자손 내에서 관리인 5원을 선정하여 이 산야 소유권보존 또는 처분 수익사용 등을 전부 이전한다. 본 관리인은 이 산야에서 매년 수익이 나오는 동시에, 문장과의 협의를 통해 이 설향에 관계된 위토와 묘각(墓閣) 등 제반사업을 차제에 함께 세울 것이며, 다소를 불문하고 이 수익은 사용목적을 변치 아니하기로 한다. 그런데 복정공 자손이 결의한 결과 이 산야 280정7부 내 종손보(宗孫保)로 하여 140정미를 본인에게 증여하였다. 본인은 이번에 이를 증여를 받은 바, 이 묘각을 건축할 시에도 묘각 전부 재목료(材木料, 송목)는 본인이 증여를 받은 부분 내에서 대용하기로 약정하고, 일후에 증명하기로 하여 문장에게 이 증서를 공급한다. 이상이 본 증서의 내용이며, 다음에 산야의 규모를 규정하였다. 곧 복정공 묘지보호의 산야 한계는 방하동(芳荷洞)으로부터 복정공묘소의 오른쪽 고개까지(溫水洞)이다. 그리고 종손 보호산야는 온수동 우편부터 호등(虎嶝)까지이다. 증주(證主)는 종손 이종술(李鍾述)이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