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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정운오(鄭雲五)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菊初五 鄭雲五 李生員 【正章冕容】 丙菊初五 鄭雲五 李冕容 郵便日附印: 光州 5.10.2 后5-8, 郵便日附印: 黃城 5.10.3 后2-5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6년 9월 5일, 공복제 정운오가 편지를 받고 상대와 헤어진 이후 여름과 가을동안의 안부를 전하기 위해 보성 이면용 씨 댁에 보낸 간찰 1916년 9월 5일, 지곡(芝谷)에 사는 공복제(功服弟) 정운오(鄭雲五)가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면용(李冕容)씨 댁에 상대와 헤어진 이후의 자신의 근황을 전한 안부 답장 편지이다. 자신이 여러 달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여름과 가을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상대를 그리워했다는 인사, 지난달 말에 편지를 받고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가 조금 풀렸다는 것, 가을 날씨가 상대가 안녕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가문이 불행하여 지난번에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지 열흘도 되지 않아 막내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며 찢어지는 마음을 술회하였다. 나머지 가족들은 잘 지내고 있다는 것, 언제 상대를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나고 싶다는 희망 등의 내용을 적었다. 난외에는 자신 쪽의 이웃들은 모두 평안하다는 것, 상대의 편지 두통을 어찌 어찌 전달한다는 등의 내용을 적었다. 수신자 이면용(李冕容)의 자는 정장(正章),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보성군 문덕면(文德冕) 가천(可川)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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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啓者。事孰爲大。事親爲大。事親孰大。推養爲大人莫不有親。我親。必有其親。而親之親。必有其親。以此推親。我親之本。必曰其祖也。人莫不事親。我事其親。而親。獨不欲事其親乎。親事其親。而親之親。獨不欲事其親乎。以此推孝。我孝之始。亦曰其祖也。况我隴李。世襲之孝。聞於天下者乎。然天之福人也。不曾以雙。孝子之門。每每有傷哉之家。此實吾宗仁人君子之恨也。嗚呼。今日。尤有可恨者。卽我中葉判尹公之祀事也。惟公。寔我文祖(文景相公)之子。三公(校理公, 參判公, 星原尉公)之考。其淸德令聞。洋溢乎當時。其遺風餘韻。馨香乎百代。今我雲仍之赫赫於天下者。實公之賜也。夫何世降而親殺。族疎而宗孤。公墓焉不克其守。簫簫馬鬣。只登乎樵牧之歌謳。草草奠酌。時憑乎村翁之香火。今焉三十霜于玆矣。卽我諸孫而觀之。雖曰遠祖。溯夫當時而念之。莫是一親夫我三公之靈。今如不昧。必不瞑目於地下。晝夜號泣於其親墓之左右矣。假使三公之享。牛實於籩。佾舞於庭。 靈其獨安乎。言念及此。不覺淚零而漬楮也。使我赫赫之宗。以 公而獨不享於百禩之後乎公祀之土。尙在墓前。宛然如舊矣。(顚末見下)公墓之守。亦在山下。傳焉至今矣。爾來三十年間。子孫之瞻省者。往往有愧諸墓直而獨往者。見諸祀土而痛哭者。此不足論。其於村人之指點而嗟惜。何哉。此實事親者之所不可忍。亦夫推養者之所不可安。顧我諸宗。雖則淸貧。寧不出巨資而擴新庄。不能齊衆力而還我千金之舊土耶。伏願我僉宗之仁人君子。欲盡事親之大事。必先乎推養。使親之親。無憾乎冥冥之中。幸甚辛亥陰八月十五日西山宗會發文碩士 敎璡 議官 鍾一主事 敎善 主事 鍾寅主事 敎燮 博士 鍾麟碩士 敎元 碩士 台淳碩士 敎恒 副尉 鵬淳參判 鍾律 碩士 英淳寶城佳川 宗中 勳鑑位土의 事實判尹公墓所ᄂᆞᆫ 在楊州郡 蘆原面下契無樹洞佛堂谷 而局內에 無他田畓이오 墓下에 只有八斗落畓ᄒᆞ니 此是 公之祀土―라 故汶容氏가―世居京城 而其近代墓― 亦在 公之塋內 故로 其墓畓을 仍爲管攝인바 土之所出中에 二石租를 收入於自家ᄒᆞ야 作脯以供時祀ᄒᆞ고 其餘則付之墓直矣러니 去辛卯年冬에 汶容氏 後室嚴氏夫人이 典其畓於林震燮 而債用七百兩ᄒᆞ고 其所收二石租로 俾報錢賭케ᄒᆞ고 仍卽歸鄕이러니 墓直千伊東이 不報其賭ᄒᆞ야 錢利夥多에 林亦督債 故로 墓直이 更以五石賭로 移典于閔蔚珍家ᄒᆞ야 得債六千兩 而遂報林債ᄒᆞ니 此是位土無乎之事實收金이 理由一 排斂錢은 二百圓으로 議定ᄒᆞ야 一百二十圓은 畓土를 還推ᄒᆞ고 六十圓은 莎草及廟庭頹落을 修築ᄒᆞᆯ 事一 貴宗所當金은 十圓으로 議定ᄒᆞᆫ 事一 收金의 期限은 本年陰十月一日(卽公之時祀日)內로 定ᄒᆞᆫ 事一 收錢의 處所ᄂᆞᆫ 京城 中部 益洞 六十八統 三戶 議官 鍾一■家로 定ᄒᆞᆫ 事一 各宗中所當金額은 附近郵便局으로 交付ᄒᆞ야 右의 收金處所로 換送ᄒᆞᆯ 事一 限內에 金額이 未到ᄒᆞᄂᆞᆫ時ᄂᆞᆫ 有司를 派送ᄒᆞ되 其旅費ᄂᆞᆫ 該宗中에셔 擔負ᄒᆞᆯ 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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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한남서림(翰南書林)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9.12.5 翰南書林 白斗鏞 李敎成 (昭和)9.12.5 翰南書林 白斗鏞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全南·福內 9.12.5 后4-12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29_001 1934년 음력 10월 27일, 한남서림 백두용이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의 이교성씨에게 책 가격을 전달하며 책을 사지 않을 경우 돌려 줄 것을 청한 간찰 1934년 음력 10월 27일, 생(生) 한남서림(翰南書林) 백두용(白斗鏞)이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의 이교성씨에게 책 가격을 전달하며 책을 사지 않을 경우 돌려줄 것을 청한 간찰이다. 지난번에 견본품으로 온 두 종(種)의 책자는 상대가 생각한대로 34원의 가격이니 보내주시면 된다고 하고, 그러나 그중에 낙질이 있다면 베껴서라도 보완해 줄 것, 대·소권으로 권이 가지런하지 않다면 휴지가 되고 마니 완전하게 받들도록 흠결 없이 해주면 돈을 보내드릴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발송해 드렸던 자신의 2종(種) 책자는 이 가격으로는 안 되니 돌려보내주기를 바란다고 하고 편지를 마쳤다. 한남서림에서 이교성 씨가 소유하고 있는 책 중 팔고 싶어 했던 책자에 대해 매입 가능함을 언급한 후, 한남서림에서 가져간 2종의 책자에 대하여 가격을 흥정하며 되돌려 줄 것을 청한 내용이다. 한남서림(翰南書林)은 1900년경에 백두용(白斗鏞,1872~1935)이 문을 연 최초의 근대적 고서점이다. 고서를 매입하여 파는 헌책방의 개념에, 간행사업도 병행하였는데 이것을 1932년에 간송 전형필이 인수하였다. 한남서림에서 편찬·간행한 책자를 살펴보면, 1917년 유금(柳琴)이 4가의 시 가운데서 초록한 것을 박제경이 주를 달고 백두용이 교정한 『전주사가시(箋註四家詩)』(활자본, 4권 1책), 어록과 이두를 모아서 설명한 『주해어록총람(註解語錄總覽)』(목판본, 1권 2책, 1919), 중국 속어사전(俗語辭典)인 『어록해(語錄解)』, 『詳密註解 옥추보경(玉樞寶經)』(1923), 『해동역대 명가필보(名家筆寶)』(1926), 작자미상의 조선후기 한문 희곡인 동상기를 모아 활자본으로 간행한 『동상기찬(東床記纂)』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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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백윤한(白潤翰)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敎成 1935 白潤翰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29_001 1935년 한남서림 백두용의 아들 백윤한이 아버지 사후 장부를 정리하면서 『역대도』의 값을 수수하기 위하여 이교성씨에게 보낸 간찰(簡札) 1935년 한남서림 백두용의 아들 백윤한이 아버지 사후 장부를 정리하면서 『역대도(歷代圖)』의 값을 수수하기 위하여 이교성(李敎成)씨에게 보낸 간찰이다. 상대가 말씀한 것은 잘 알겠다고 인사하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다소간의 거래가 있던 책자에 대하여 장적(帳籍)과 대조해 본 결과 조금도 차이는 없지만 역대도(歷代圖) 2책이 13원의 값으로 상대가 가지고 있다는 증서(証書)가 있어 상대에게 증서를 보내니 살펴봐 줄 것을 청했다.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오는 사람이 많은 만큼 서점의 사정이 전날과 다르다며 우리 서점 장부에 있는 상대의 돈이 17원이고 상대가 잠시 가지고 있는 책값의 증서에는 13원으로 적혀 있고, 장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3원을 감하여 10원으로 결정하였으니 남은 액인 7원과 증서를 함께 보낸다고 적었다. 만약 『역대도』에 대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도로 돌려주어도 무방하다고 말하고 책을 도로 보내준다면 10원을 돌려 드리겠다고 전했다. 백두용(白斗鏞,1872~1935)은 최초의 고서점인 한남서림을 설립한 인물이다. 편지에 작성일자와 작성자가 기록되어 있지만 백두용의 사망시기로 보아 1935년으로 보이며, 백두용의 글씨와 비슷한 서체로 보아 그 후손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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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종상(李鍾祥)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子 陰十月 二十六日 李鍾祥 寶城郡 文德面 可川里李生員 南原宅 侍史開坼 甲子 陰十月 二十六日 李鍾祥 李生員 南原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4년 음력 10월 26일에 이종상(李鍾祥)이 족보의 일로 이생원 남원댁에 보낸 간찰(簡札) 1924년 음력 10월 26일에 이종상(李鍾祥)이 족보의 일로 이생원 남원댁에 보낸 간찰(簡札)이다. 지난 1922년 여름에 족손 이종상이 영남에서 대동보의 일을 맡았는데, 호남의 남북도에 종중의 임무로 차례로 찾아다니다가 처음 족대부의 병풍궤 아래에 옷자락을 들어 올려 경의를 표하였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났다고 하면서 안부를 묻고, 족손은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고 하였다. 문경공 파보의 일은 처음에 대동보의 역사와 함께 말들이 있었으나, 대동보는 이미 완성되었고 균형을 잡지 못한 것은 오직 우리 본파이다. 본파 안에 신구의 보승(譜乘)이 없지 않으나 근래의 사실들이 소루하기가 매우 심하고 상세함과 소략함이 같지 않다. 계통의 단절과 후손과의 관계가 어긋난 것이 많다. 본파의 대동을 위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사람과 재물을 얻는 것은 고기를 잡는 사람의 공이니 이를 통찰해 달라고 하였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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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현(李鍾現)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鍾現 李鍾采 李鍾現 李鍾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문중의 유사 이종현이 이종채에게 근래의 문중 일에 대한 의견을 적어 보낸 간찰과 피봉 모년에 문중의 유사(有司) 이종현(李鍾現)이 가천의 이종채(李鍾采)에게, 근래의 문중의 여러 일에 대해 혹자의 말을 빌어 문제를 조목조목 제기하고, 자신 의견을 쓴 장문(長文)의 간찰이다. 날짜는 미상이다. 혹자가 말한 것에는, '귀 종중 일은 어찌 이처럼 창피한가. 문중 토지를 이전하는데 20인 명의의 공동소유로 하기로 하면서 시천파는 사람이 없어 1명이 참가하였다고 하고, 여기에 면 직원인 정순(正淳)이 마음대로 인감을 처리하여, 문장(門長)의 아들 교성(敎聲)이 이를 말하니, 정순이 종손이 어디에 있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대의 문중은 무종손(無宗孫) 무문장(無門長) 무유사(無有司)라 이를 수 있다. 지난해 묘사(墓祀) 때 시천에서 한 사람도 헌관(獻官)을 맡을 만한 자가 없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무종손이다. 지난해 목사(木寺)‧가천 두 파는 일하는 인원이 상경(上京)할 때 마음대로 쓴 경비가 5‧600원이었는데, 문장이 전혀 몰랐다고 하니, 무문장이 아닌가?' 하는 등의 내용이 있다. 발신인이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내용에는, '참판 공의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止慈), 시촌(詩村) 공의 효우(孝友), 승지공·판서공·종사랑공의 그 형을 사랑하고 그 집안을 존중하여 천륜이 돈독함으로, 종서(宗庶)에 질서가 있고, 장자와 지차의 차례가 있었다. 비록 세대가 점점 멀어져 무복(無服)에 이르면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하나, 우리 조상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같은 자손이다. 그 자손 된 자가 만에 하나 어찌 우리 조상의 마음을 체득하지 못하겠는가. 선조의 자애와 효도‧우애의 윤리를 어기는 것은 즉 참판공 및 시촌공 4형제에 대한 죄인이다. 비록 저승의 선조라도 하늘에 영령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만약 영령이 있다면, 이러한 자손은 마땅히 보이지 않게 죄줄 것이다. 남원 영광의 종족과 여러 장유(長幼)에게도 이를 고하여 이 일에 대해 알리기를 바란다.'는 등이 있다. 피봉 앞면에는 수신자 이종채(李鍾采)의 이름과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라는 주소지가 기재되어 있고, 뒷면에는 이종현의 주소지인 순천군 황전면 죽내리가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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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이종협(李鍾浹)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寅 元月 十七日 李鍾浹 李鍾采 丙寅 元月 十七日 李鍾浹 李鍾采 寶城郡 文德面 可川里李鍾采 氏 座下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1월 17일 족종 이종협과 종탁(鍾鐸)‧철협(喆協) 3명이 이종채에게 족보 간행사업에 관한 용건을 적어 보낸 간찰 1926년 1월 17일 족종(族從) 이종협(李鍾浹)‧종탁(鍾鐸)‧철협(喆協)이 가천의 이종채(李鍾采)에게 보낸 간찰로, 족보 간행사업의 진행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다. 3년 뒤에 훌륭한 보책(譜冊)이 나오면 감격이라 하면 감격이고, 또한 가문에 새로운 광채를 더할 것이나, 족보간행 사업을 시작하고 여러 해가 되었고, 우리 본파는 인력을 투입하고 간행을 도와 완성을 고하고자 하는데, 귀 문중은 무엇을 찾느라 늦어지는가 하고 물었다. 족보의 규칙은 시대를 따라야 한다. 적서(嫡庶) 등을 말하지만, 분별은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편집의 규칙에서도 층(層)에 10자, 높이는 9자 등으로 정해져 있는데, 귀 파(派)에서 따로 의견을 제시하니, 만약 누락되는 것이 없으면 미루지 말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속히 부치는 것이 어떻겠는가, 오늘 고치고 내일 또 고쳐서 세월을 보내어 비용이 늘어나니 감당하기 어렵다는 등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보내는 날짜 위에는 발신인의 종파의 직인이 찍혀있다. 피봉 앞면에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 이종채(李鍾采)씨 좌하(座下)라 하였고, 뒷면에는 경성부 성주이씨보소(星州李氏譜所)에서 이종협이 발신한 것으로 되어 있다.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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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이종탁(李鍾鐸)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丑 陰六月 二十五日 李鍾鐸 李敎成 乙丑 陰六月 二十五日 李鍾鐸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5년 음력 6월 25일에 이종탁(李鍾鐸)이 족보 발간의 일로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簡札) 1925년 음력 6월 25일에 이종탁(李鍾鐸)이 족보 발간의 일로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성주이씨보소(星州李氏譜所)에서 보낸 것으로 보아 종사(宗事)에 관한 용건인 것으로 보인다. 천륜은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종사와 보역(譜役)을 번거롭더라도 모두 살피는 것이다. 우리 문경공(文景公) 파보는 지난해 경성에서 시작하였다가 형편에 따라 여기로 옮겼다. 우리 파도 대동보에 빠질 수 없어 독려하고 있으며 단자를 올려 보낼 날이 아직 있다. 보소에는 현재 단자를 제출한 곳이 70여 가문이며 인원수는 3천5백여 명이다. 각각 백여 질의 보안(譜案)이 승낙되었는데, 쓸데없는 말들이 있다. 지체되지 않게 문중에 비용을 독촉해 단합해서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 외에 교정건과 대부님의 건강, 노원의 소송 등에 관한 간단한 언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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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이형순(李亨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寅五月十八日 李亨淳 李 生員 南原宅 丙寅五月十八日 李亨淳 李 生員 南原宅 서울특별시 종로구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5월 18일, 족손 이형순이 자신의 7대조비 분묘 이장건으로 보성군 이생원댁(남원댁)에 보낸 간찰(簡札) 1926년 5월 18일, 족손(族孫) 이형순(李亨淳)이 자신의 7대조비 묘소의 이장에 대하여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일로 보성군 이(李) 생원댁(남원댁)에 보낸 간찰이다. 상대와 한 촌내의 여러 집이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객지에서 무탈하게 지내고 있다고 인사했다. 이번에 올라 온 것은 안산(安山) 묘소를 살피기 위해 온 것이라며 성묘를 하고 보니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한편으로는 감탄하였다고 했다. 7대조비(代祖妣)의 산소에 사초(莎草)가 전무한 것을 보고 걱정하고 그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석동리(石洞里)로 옮겨 합장함이 좋겠다고 하였다. 무덤을 깨는 날은 이달 19일로 정하였고 합장일자는 21일 오전 8시가 될 것이라며 문중의 부형(父兄)들게 말씀드리고 시제에 참고하시며, 합장일자를 내려가서 다시 택하여 정하겠다고 하였다. 국한문 혼용체로 토(吐)를 한글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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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문집발간 통문(通文)과 제사(祭事)에 관한 초고(草稿)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庚午三月十九日 澹對軒儒會所 庚午三月十九日 澹對軒儒會所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0년 3월 19일 담대헌 유회소에서 송사 기우만 선생의 문집발간을 위해 발문한 통문과 제사에 관하여 논한 초고 1930년 3월 19일 담대헌 유회소(澹對軒儒會所)에서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선생의 문집발간을 위해 발문한 통문이다. "우리의 도(道)를 전승하는 것은, 사람이 있을 때는 사람에게 달려있고, 사람이 죽으면 책에 달려있다. 우리 성사 선생이 우리를 두고 떠나가신지 이미 15년"이라고 하면서 송사선생 문집 발간에 참여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유회소의 도청과 도유사, 부유사, 사서, 도감, 감동 등의 명단이 열거되어 있다. 도청은 민치량(閔致亮)이다. 기우만(奇宇萬)은 기정진(奇正鎭)의 손자이며, 조부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킨 인물이다. 1896년 일본 세력을 구축하고자 의병을 일으켰다. 담대헌은 기정진(奇正鎭) 선생이 장성군 진원면 사무소 뒤편 고산 마을에다 1878년에 지은 정사(精舍)로서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1927년 고산서원(高山書院)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며, 1931년 ?송사집?이 발간되었다. 이 통문의 뒷면에는 기일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함께 제사지내는 문제, 장지(葬地)에서의 산신제, 묘제 등 제례에 대해 논한 내용이 필사되어 있다. 작성한 시기와 작자는 미상이다. 글의 첫머리에 "기일에는 옛날에 제사가 없었는데, 정자(程子)‧한위공(韓魏公)‧사마온공에 이르러 제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考妣)를 함께 제사지내는 것에 대해 묻자, 정자가 대답하기를 '한 분의 신위에만 제사지낸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주자(朱子)도 가례(家禮)에서 한 분의 신위만 설치한다고 하였다. 우리 조선에 들어와서 ?오례의(五禮儀)?에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 신위를 함께 설치하니, 마침내 나라의 풍속이 되었는데, ?오례의?라는 책은 개국 초기에 잘못 편찬된 두찬(杜撰)이다."라고 하면서 퇴계도 '어머니의 기일에 아버지 제사를 올리는 것은 존자(尊者)를 끌어들인다는 혐의가 된다.'고 하였으니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장사지낼 때의 산신제(山神祭)와 묘제(墓祭)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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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비문[贗碑文]'에 대한 간찰(簡札) 초안(草案)과 시문(詩文) 초안(草案)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가짜 비문[贗碑文]'과 관련하여 자신의 입장을 논증한 간찰 초안과 주자가 황중본의 〈붕우설〉에 대해 쓴 글을 읽고 이를 모방하여 지은 시 5수 '가짜 비문[贗碑文]'과 관련한 상대방의 문제 제기에 대해, 발신자가 자신의 입장을 논증한 간찰이다. 발신하려고 한 간찰의 초안이거나 수신한 간찰의 일부로 보인다. 발신자명, 수신자명, 연기(年紀)가 모두 없다. 저희 집안인 곡성군의 면섭(冕燮)으로부터 나의 이름을 거론하고, '완지(莞誌) 간행소에 안비문(贗碑文)을 싣지 말라는 부탁을 했었는데 장차 어찌할 것인가.'라고 하였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답변으로 안비문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당초 임승모(任承模)의 변문(辨文)이 나오자, 안씨(安氏)는 사문난적(斯文亂賊) 등으로 원수처럼 성토하였으나, 필암서원(筆巖書院)에서는 '하서(河西) 비문을 모방했을 뿐 아니라 하서보다 낫다.'고 하였다는 등의 의견을 소개하고, 우암 송시열과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호)의 말, 영송 김재홍(嶺松 金宰弘)과의 토론, 옛글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과 관련한 주자(朱子) 등의 말, 우암(尤庵)이 포은(圃隱)·정암(靜庵)·율곡(栗谷)·사계(沙溪)·하서(河西) 등을 평가한 말 등을 들어 이들 5명이 공자와 주자의 도통을 이었다고 하는 등의 의견을 진술했다. 안비(贋碑)에서 한 말인 '하늘이 사문(斯文)을 열었으니, 당세에 도를 행할 수 없으나 만세에 능히 전할 수 있다.'는 글의 취지를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뒷면의 맨 처음에는 주자가 황중본(黃仲本)의 〈붕우설(朋友說)〉에 대해 쓴 글을 읽고 이를 모방하여 지었다고 밝혔다. 시는 '심산은 시 짓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心山非是愛吟詩]'로 시작하며, 내용에 천속(天屬)이 포함된 시 5수의 초고와 메모가 있는 초안이다. 시 5수의 첫구는 모두 '심산은 시 짓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심산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천속지합(天屬之合)인 부자‧형제 관계, 천속으로 말미암아 이어진 부부관계, 천속에 힘입어 온전한 군신관계, 천속에 힘입어 바른 붕우관계 등에 대한 시 5수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맹자(孟子)》 의 글 등을 적었다. 주자의 글은 《주자대전(朱子大全)》 권81의 〈발황중본붕우설(跋黃仲本朋友說)〉이다.(星州李氏譜所)에서 이종협이 발신한 것으로 되어 있다.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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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이대순(李大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丑九月念八 李大淳 乙丑九月念八 李大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5년 9월 28일에 이대순(李大淳)이 종중 사람들에게 새로 간행된 족보와 '백순의 글'을 보낸다는 간찰(簡札) 1925년 9월 28일에 이대순(李大淳)이 종중 사람들에게 새로 간행된 족보와 '백순의 글'을 보낸다는 내용의 간찰이다. 면섭(冕燮)을 통해서 본 여러분들의 글이 우리 문중의 정수리의 침이 된다고 하면서, 이로 인해 지난 일을 생각해보면 묘답(墓畓)을 옮기는 일, 문경공 상홀(文景公象笏)의 일, 노원(蘆原)의 일 등은 매번 치열했는데, 지금 족보를 간행하는 일을 보면 '들불(燒原)'이 되지 못하고, 다만 차가운 불일 뿐이라고 하면서 '백순의 글(百淳書)'과 족보를 함께 보낸다는 내용 등이 있다. '백순의 글'은 백순의 입장에서 쓴 글로, 세 사람이 위탁한 일에서 종현(鍾現)과 같이 하여, 백순이 하나도 혼자 비용을 쓴 일이 없고, 서로 헤어질 때도 결산서가 있었다고 하면서, 그 이후 비용의 처리 등에 대한 과정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끝에서는 비록 백척간두에 있으나 의롭지 않은 종중 재산은 결코 탐하지 않았음을 단언하니 염려하지 마시라고 하고, 백순은 그간 본 몇백의 손해는 놔두고도, 잘못 없이 종중 사람들로부터 미움받아 신분이 땅구덩이로 추락했으니 통탄하나, 이미 응송(應訟)하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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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이종탁(李鍾鐸) 등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寅 陰二月 十二日 李鍾鐸 丙寅 陰二月 十二日 鍾鐸 鍾浹 相元 相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음력 2월 12일에 이종탁(李鍾鐸) 등이 족보와 채무 관계의 일로 보낸 간찰(簡札) 1926년 음력 2월 12일에 이종탁(李鍾鐸) 등이 족보와 채무 관계의 일로 보낸 간찰(簡札)이다. 족보 간행의 일이 완공을 고할 듯하다. 같은 파가 한데 모인 날을 돌아보면 오직 귀 문중이 아직도 늦어져서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수단도 끝내고 필사도 마쳐야 하는 지금 몹시 서운함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서산(西山)의 종중의 일은 귀 문중에서 헌토(獻土)하는 정성을 다했으나 아직도 보완되지 않았다. 당시 채무는 원금과 이자의 액수가 도리어 새 토지를 환매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장차 어찌할 것인가? 평순(平淳)이 10원을 영수하기로 허락했으니 받아서 드리고 통찰한 후에 귀 문중에서 헌토 가액 및 수년 동안의 도조(賭租) 내에서 이 10원을 제하고 나머지 액수를 즉시 보내는 것이 맞겠다. 대종(大宗)의 제반 묵은 부채를 타결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 편지의 발신인은 이종탁 외에, 종협(鍾浹)·상원(相元)·상형(相衡) 등 4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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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종일(李鍾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子 陰十月 二十五日(간찰)/陰十月 二十六日(피봉) 李鍾一 李冕容 甲子 陰十月 二十五日(간찰)/陰十月 二十六日(피봉) 李鍾一 李冕容 경성부 죽첨정 131번지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4년 10월 25일 족손 이종일이 이면용에게 족보 편찬사업 관련내용으로 보낸 간찰 1924년 10월 25일 족손(族孫) 이종일(李鍾一)이 가천 이면용(李冕容)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집안 어른의 안부를 묻고, 족보편찬 일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적었다. 홍순(洪淳)을 통해 안부를 들었고, 또 공의 의론(議論)으로 우리 문경공파(文景公派)의 족보를 기일에 맞춰 완성하는 것은 자신의 바람이기도 하며, 통찰해 주심에 칭송하는 마음에 끝이 없다고 하였다. 10월에 수운(壽韻)의 건강이 계절에 따라 좋은지, 집안이 모두 편안한지 묻고 자신은 그런대로 지낸다고 하였다. 보의(譜儀)는 두 번의 통유(通諭)에서 잘 알았으나, 그 파(派)에서 각자 작업하는 것은 오히려 산만하고 계통이 없으니, 경기에서부터 먼저 창도해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족대부(族大父)께서 감독하고 살펴주어서 이미 시작한 이 일을 완성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피봉 앞면에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 이면용씨 정좌하(李冕容氏 靜坐下)라 하였고, 뒷면에는 경성부 죽첨정(竹添町) 131번지 이종일, 음력 10월 26일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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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이종형(李鍾瀅)·이종석(李鍾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戌陰三月二十日 李鍾瀅 李敎成 壬戌陰三月二十日 李鍾瀅 李敎成 경기도 부천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음력 3월 20일, 종하 이종형·이종석 등이 이교성씨에게 선조 문경공 위토를 잃어버린 일과 관련하여 종중회의를 하기 위해 인천부 이철순가로 왕림해 줄 것을 청한 간찰(簡札) 1922년 음력 3월 20일, 종하(宗下) 이종형(李鍾瀅), 이종석(李鍾錫) 등이 선조 문경공 위토를 잃어버린 일과 관련하여 종중회의를 하기 위해 인천부 이철순가(李哲淳家)로 왕림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교성(李敎成) 씨에게 보낸 간찰이다. 선조 문경공 위토 견실사(見失事)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 알고 있을 것이라며 별묘(別廟)터를 귀정(歸正)하던지, 위토(位土) 사건을 환퇴(還退)하는 방침을 연구하던지 결정하기 위하여 본년 4월 25일에 인천부(仁川府) 우각리(牛角里) 제1호 12번지 이철순의 집에서 방침을 규정할 수 있도록 왕림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그 곳에 왕림하는데에 들어가는 여비는 각기 종중에서 부담하도록 할 일이라고 추기해 놓았다. 간찰과 동봉되어 있는 별지(別紙)에는 피고(被告) 적자(賊子) 3인 중에 학순(學淳)은 이미 죽었고, 종팔(鍾八)은 현재 서대문 감옥에 있고, 만종(万鍾)은 지금 수색 중이라는 정보를 적어 놓았다. 국한문 혼용 문체를 사용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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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백두용(白斗鏞)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七月一日, (昭和)10.7.30 翰南書林 李敎成 乙七月一日, (昭和)10.7.30 翰南書林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光化門 10.7.30 后4-8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29_001 1935년 7월 1일, 한남서림 백두용이 이교성에게 상대가 돌려준 책을 잘 받았으며, 원하는 책을 만들어 보내면 받을 것인지 묻고, 판매하고 있는 책의 가격을 전한 간찰(簡札) 1935년 7월 1일, 한남서림(翰南書林) 백두용(白斗鏞)이 돌려준 책을 잘 받았으며 상대가 원하는 책을 만들어 보내면 받을 것인지 묻고 판매하는 책 가격을 전한 내용으로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편지이다. 장마와 더위가 성한 이때의 수해를 언급하며 안부를 묻고, 상대가 보내온 답장 편지를 여러 차례 읽으며 기뻤다고 인사하고 자신은 더위를 먹었고, 가족들은 별 탈이 없다고 인사했다. 상대가 보내온 『화동강목(華東綱目)』, 『서오경(書烏經)』, 『이락연원(伊洛淵源)』을 잘 돌려받았다고 전하고, 『매월당집(梅月堂集)』을 만들어 보낸다면 받으시겠냐고 물었다. 『율곡전서(栗谷全書)』가 현재 한 질 있는데 지본(紙本)은 경천연지(京川連紙)로 1권을 베껴서 채워 놓았으며, 총 책수는 24책으로 가격은 45엔이라고 적었다. 당시의 책 가격과 판매방식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백두용(白斗鏞,1872~1935)은 최초의 고서점인 한남서림의 설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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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성주 봉산재(鳳山齋) 종회의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大正十五年乙丑十一月二十日 星州鳳山齋宗會 李龍淳 大正十五年乙丑十一月二十日 星州鳳山齋宗會 李龍淳 경상북도 성주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11월 20일에 성주 봉산재(鳳山齋) 종회에서 영정 모사 관련 비용 건으로 이용순(李龍淳) 문중에 보낸 통문(通文) 1926년 11월 20일에 성주 봉산재(鳳山齋) 종회에서 영정 모사 관련 비용 건으로 이용순(李龍淳) 문중에 보낸 통문이다. 안산사(安山祠) 영정의 변고에 대해 7개월간 수색하였는데, 농서공·도은공·경무공 3위의 영정이 대구에 사는 일본인 도본신신(稻本新臣)에게서 나오고, 참지공과 판윤공 2위의 영정은 경성에 사는 일본인 천지무태랑(天池茂太郞)에게서 발견되었다. 이를 본래의 장소에 도로 봉안하고, 변을 당한 5위의 영정과 은암공의 영정을 모사하고, 12위의 영정은 가장(加裝)하고 있다. 저간에 영정 수색 비용과 3차 종회비, 제반 비용 등 도합 천여백 원인데, 각 도군(道郡)의 각 문중에 분배하여 마련하기로 하였으니, 각 문중에 배정된 금액을 보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유사 이교달(李敎達) 등의 연명이 있다. 끝에는 배정된 금액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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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종원(李鍾元) 등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子 陰七月 二十日 李鍾元 甲子 陰七月 二十日 族從 鐘元 奎淳 黙齋公 嗣孫 聖淳健淳相璣 相龍等 再拜上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4년 음력 7월 20일에 이종원(李鍾元) 등이 족보의 일로 보낸 간찰(簡札) 1924년 음력 7월 20일에 이종원(李鍾元) 등이 족보의 일로 보낸 간찰(簡札)이다. 우리 경공(京公)의 제향이 흩어지고 족보도 없어진지 오래되었지만, 근래 각 파의 족보는 가승(家乘)의 규모에 불과하여 각 파가 같지 않고 조각나서 계통이 없기를 면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근자에 경성에서 본파를 일체 합한 족보의 일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는 우리 가문의 효제와 친목상에 당연한 도리이나, 우리 족속은 저 대동보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두 통의 통지한 말과 같아 각 군의 모든 족속 내에서 향응하고자 하였다. 서울의 여러 곳에서는 각 단자가 다 이르렀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단자를 정비하고 8월 기신제에 참여하였다. 바라건대, 귀 파의 모든 어르신은 같은 파이고 더욱 친하니 같은 목소리로 서로 응하여 종사가 완결되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발신인은 이종원 외에 규순(奎淳), 묵재공(黙齋公) 사손(嗣孫) 성순(聖淳), 건순(健淳), 상기(相璣), 상룡(相龍) 등이다. 별지가 있는데, 주변 각처에 이 뜻을 다 알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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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년 김방식(金邦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之暮春九日 金邦植 可川 戊之暮春九日 金邦植 可川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무○년 3월 9일에 제 김방식이 상대의 집에서 돌아온 후로부터 약 2달간에 있었던 자신의 안부와 그리운 마음을 전한 안부 편지 무○년 3월 9일에 신호(莘湖)에 사는 제(弟) 김방식(金邦植)이 가천(可川)에 사는 이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형이 옛 것을 좋아하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1월에 헤어진 후 어느덧 봄이 다 가게 되었다며 멀리 있어 만나지 못하여 한탄스럽다고 했다. 상대와 상대의 종자부(從子婦)가 잘 있는지, 상대가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생부(生父) 어른은 환후를 잘 조리하고 계신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상대가 있던 곳에서 돌아온 지 채 2일도 되지 않아 자신의 본래 병증이 일어나 먹을 것을 입에 대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 사지에 마비가 와서 누웠다 일어났다 함에 사람을 대령한지 한 달이 넘었다가 겨우 집 뜰을 걷고, 현재는 거의 완치 되었다고 했다. 나머지 인사들은 조카아이의 말로 듣기를 바란다고 하고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형이 이 쪽으로 혹시 지나가게 되어도 너무 많은 물자를 주어 자신이 감사인사를 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말하고 동생은 10리쯤 떨어진 곳에 출타하여 아직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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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김영완(金永完)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陽月小晦 金永完 李敎成 甲戌陽月小晦 金永完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全南·福內 9.12.6 后4-12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40_001 1934년 10월 30일, 생 김영완이 『주차』가 아직 회수되지 않아 부치지 못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簡札) 1934년 10월 30일, 생(生) 김영완(金永完)이 보성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상대가 요청한 책(冊)의 전송과 관련하여 현 상황을 전한 간찰이다. 헤어진 뒤로 그리워하다가 이달에 상대의 편지를 차례로 받았다며 최근 상대의 안부가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은 못난 여전하다고 하고 상대방이 한 말은 잘 알았다고 했다. 『주차(朱箚)』가 아직 회수되지 않아 죄송하다고 했다. 비록 띄엄띄엄 편지가 왕래되고는 있지만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다며 이쪽 거간(居間)하는 사람의 본래 모습이 항상 이와 같다며 탄식했다. 기한에 맞추어 우편으로 받아보실 수 있을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제시한 강(綱)의 가격은 의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 『대전(大全)』과 바꾸는 일은 다음 기회에 도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 두 가지의 낙권(落卷)은 『주차(朱箚)』를 부칠 때에 함께 보낼 계획이니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추신으로는 그 외에 원하는 것이 있다는 충심을 다하여 도모할 것이니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발신자 김영완은 경성(京城) 익선동(益善洞) 120번지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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