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4년 한남서림(翰南書林)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9.10.13 翰南書林 李敎成 (昭和)9.10.13 翰南書林 李敎成 서울특별시 종로구 郵便日附印 : 光化門 9.10.13 后4-8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629_001 1934년 10월 11일, 한남서림 백두용이 이종률 방에 거주하는 이교성에게 2종의 책을 돌려보내 줄 것을 청한 간찰(簡札) 1934년 10월 11일, 한남서림(翰南書林) 백두용(白斗鏞)이 이종률(李鍾律) 댁에 거주하는 이교성(李敎成)에게 2종의 책을 돌려보내 줄 것을 청한 간찰이다. 간단히 안부 인사를 하고 상대가 말한 뜻은 잘 알았다며 2종의 책 대금 30원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며 우편료는 자신 쪽에서 부담하겠다고 전하고, 자신의 서림(書林)에서 가져간 책 2종을 속히 보내줄 것을 청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皮封_前面)光州郡 東町 三番地李鍾律 方李敎成 殿京城 寬勳洞 十八番地翰南書林 緘 十月 十三日郵便日附印 : 光化門 9.10.13 后4-8(簡紙)卽拜審 玆辰體事萬旺 仰慰區區敎意謹悉 而二種冊代金參拾圓外 更無道理 而所送郵料 則自此負擔爲計耳 本書林持去冊二種從速出梢 如何如何 餘姑不備謝禮十月十一日 生白斗鏞 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皮封_前面)全南 寶城郡 文德面 可川里李 敎成 氏 宅郵便日附印 : …□ 9.12.5 后□…(皮封_背面)京城 益善洞 一二○ 金永完陽月小晦郵便日附印 : 全南·福內 9.12.6 后4-12(簡紙)天借奇緣 幸遂荊願 別後悵憧非比尋常 本月兼蒙惠訊 次第拜承 凉康慰荷 更維互寒體上護旺 諸度勻寗 仰祝且頌 生 憒劣無狀已也敎意敬悉 而朱箚尙未回收 仰謝隨 而至此悚汗何極 雖等閒書尺宜卽仰㚆而荒物質上鼎重往㚆焉 敢少忽而然哉 此邊居間者之本色每多如此 可歎可歎節當刻期隨覓入郵矣休慮少俟 是仰提綱價格不合 大全相換 第圖之似好兩種落卷朱箚付時伴呈計矣 恕諒若何 多少都留俟候 更伏祈文 祺對時增祉 不備上謝甲戌陽月小晦 生 金永完 拜㚆其外如有可圖件 幸須謀忠 至仰至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京鄕路左 尙未一進陪候 遠外下情 恒甚慥慥 伏未審春日載殷靜亮氣力萬康 普節勻慶伏溯區區 不任下忱 族下生各依分幸耳 譜事方刊中 各似有告功矣 顧以同派 團聚之日 惟是貴門尙晩不應故 勢將畢單收筆悵缺何達 伏以西山宗事 貴門已了 獻土之誠 而尙未進補 當時債務 子母之額 反至新土還賣之境 此將奈何平淳許拾員領受 謳受呈洞察後 貴門所獻土價額及數年賭租条內 除右拾員金餘額 卽爲合送 使會此保宗之暇 兼妥大宗諸般宿債之地 千萬伏望 爲此不備 謹再拜上卽爲回示伏望伏望丙寅 陰二月 十二日 族下生鍾鐸鍾浹相元相衡 再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6년 김재식(金宰植)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之 臘月 六日 金宰植 李敎成 丙之 臘月 六日 金宰植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12월 6일에 김재식(金宰植)이 책의 간행과 관련해 이교성(李敎成)에게 부탁하는 간찰(簡札) 1926년 12월 6일에 김재식(金宰植)이 책의 간행과 관련해 이교성(李敎成)에게 부탁하는 간찰(簡札)이다. 아우는 70세의 대모께서 편안함을 크게 잃어 정상으로 돌아올 기약이 없으니 초조하고 번민스럽다. 며느리는 아주 사람스런 모습이고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 검소하니 집안의 경사이다. 송자대전을 전해 맡기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 집안에서 백지를 사서 보냈는데 품질이 나빠 물렸다. 다시 졸렬한 글을 보냈으나 책으로 간행하지 않고 저들이 허락할지 모르겠다. 3백 원 내에서 구매하기 어려울 듯한데, 이를 헤아려달라고 하였다. 별지와 피봉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別離之懷 何時不能 而在隆冬 室濘尤爲何如哉 未審返旆利稅堂候無損 普眷一慶 欲禱願聞 倍切平品 弟七耋大母 大失寧棣 復常無期 焦悶難喩 而婦阿婉容愉色 極可愛象 足驗受敎之有素 私門慶幸 孰此爲大近病感冒 旋復少可 觸寒之餘爲慮不尠 不至大病 尤幸尤幸 就傳托宋子大全事 鄙門果以白紙貿送 以品劣見退 還以拙文送之 不結冊刊 出未知彼中肯諾 但分帙之外 加刊一帙 則或有示費之道 而探聞于漫珍便 則此亦不能云 三百員之內 恐難購得矣 以此諒之如何如何 餘在續后 不備謹上丙之 臘月 六日 弟金宰植 拜拜舍伯欲少叙與兄悵別之緖 而身苦本祟 未能作字使余致此意 別紙更煩 諒之若何寶城郡 文德面 可川里李敎成氏宅 入納至急至急長城郡 黃龍面 莘湖里金宰植 謹拜書內簡同封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皮封)可川 靖下執 【南原宅】梅旅 敬圅(簡紙)遲暮繾綣惟朋友是已 况作數年顔率此哉 卽伏請冬令棣體窮後 隨宜禎康孫下枚占淸寧 溯禱無容卑悃 弟到底險? 去益匪測 逐年逆理 慘光實難撑保一軀 已今秋又哭第三妹情私恫悼 强起筋力費斷十個 陽昨纔轉抵于此 更沒寸跬之前進 又有幾件邳滯 不獲已明再間期當復路納 是因失握抒兄或餘地振刷之力 可圖移笻 何幸何幸 亦不敢專望耳 留不儩候上戊易初六 功服弟 鄭雲五 拜拜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조상의 사판(祠版) 관련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조상의 사판(祠版) 등에 대한 의견을 전하기 위해 보낸 간찰(簡札) 조상의 사판(祠版) 등에 대한 의견을 전하기 위해 보낸 간찰이다. 국한문 혼용체이다. 피봉이 없어 수신인이 미상이며, 말미에 날짜와 발신인 부분도 잘려져 나가 미상이다. 선조의 사판만 봉안해 내려오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고 진영(眞影)과 상홀(象笏), 신영(新影) 등에 대해서는 종중에서 알지 못하니 종중 결의 후에 통고하겠다는 사연을 전하고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5년 이종욱(李鍾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丑 李鍾昱 乙丑 李鍾昱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5년 1월 7일에 인척인 이종욱(李鍾昱)이 보낸 새해 인사 겸 문안하는 간찰(簡札) 1925년 정월 7일에 이종욱(李鍾昱)이 보낸 간찰이다. 인척(姻戚)인 종욱이 새해 인사를 겸하여 부모님 모시고 잘 있는지 안부를 묻는 문안 간찰이다. 상대방이 공부한 것이 춘시(春試)에 합격할 만한데 소식이 없는지 묻고, 자신은 부모님 모시고 그런대로 지내는 것으로 다행으로 여긴다는 등의 내용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2년 중국 상해 천경당서국(千頃堂書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民國卄一年五月卄日 千頃堂書局 李敎成 民國卄一年五月卄日 千頃堂書局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2년 5월 20일 중국 상해 천경당서국(千頃堂書局)에서 전남 보성의 이교성(李敎成)이 각 서적에 대해 문의한 것에 대해 답한 간찰(簡札) 1932년 5월 20일 중국 상해 천경당서국(千頃堂書局)에서 전남 보성의 이교성(李敎成)이 각 서적에 대해 문의한 것에 대해 답한 간찰이다. 문의한 책 중에는 없는 것이 많은데. 있는 것은 이미 초기(抄記)해서 보냈으니 읽어달라고 하고, 대금 지급 방법 등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천경당서국(千頃堂書局)의 용전지(用牋紙)를 사용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敬 通夫人之大倫 莫大乎 親親以親親之道 溯以上之 則雖鼻祖亦親之親也 故知親親之義者必不等閒於先事 而今親親之遺骸 將露於荒山白沙之中 則爲箕子孫者怗然度了可乎其將奮力修之可乎 嗚呼 惟我 先祖判尹公墓及其子孫五十餘位墓 俱在於楊州郡蘆海面 不咸山西麓 因不毛沙流 或有墳頹 而無形者或半頹幾危者居多而惟幸 公墓雖保 今日然塚上若干冷莎 不能保間間之汰落 唇前左邊傾頹 石人倒立之患 在卽龍尾肩甲月削年圮莫重 公墓將未免爲流沙所移也 其危急切迫之狀 難可形言 雖行路之人莫不顙泚之注踵 他尙何說哉 且自當國以植木爲大政 勿論山之公私有其童濯者 則不許証明 而編入國有始自京城附近已行沙防工事延及於該面初境今若因循置之 則兀然一墓將處於國有林之間 而靡泐乃已者明若覩火也 寧無公之子孫則 已旣以多數之雲仍 胡忍坐視其無墓而不動乎 盖山之爲沙以其無樹 無樹則土皮剝落而沙汰也 今所謂沙防工事者 卽植付苗木 以防其沙流也 今若墓近限二萬坪植付 苗木盡心養護 改莎修塋 則一以盡親親之義也 一以使十餘世先塋無歸於國有也 一以免外人之非笑也 夫如是則人子之事業莫過於此 然年前歸正之若干墓土 僅止於香火之需 而莫暇於改莎修塋 且幾湖之貧窶冷族 雖盡心力萬難保 其萬一之費 則此實有誠莫遂之地也 然居在墓近之地 知其危迫之狀 而徒恃我之無力 而不告於 孝思之僉宗 則亦不免祖宗之罪人 故左開其槪而派員 仰瀆 幸須 僉宗 勿以遠祖爲後 而認若親墓費盡誠力 各其派員于墓所 期有實効 則宗事 幸甚左 開一. 苗 木 二萬本 每本一錢 合二百圓一. 人 夫 四百名 每名一日雇價五十錢 合二百圓一. 莎 塊 二萬片 (配植苗本者)每片五里 合一百圓一. 墓上改莎草 人夫五十名 二十五圓合計 五百二十五圓也右金額三分排定, 其二分歸於湖南, 其一分歸於嶺南大正七年三月 日發文有司 李敎雄[李敎雄信]李鍾律[李鍾律信]李鍾一[李鍾一]李鍾麟[李鍾麟信]行 員 李台淳[李台淳信]寶城可川宗中 僉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무○년 정운오(鄭雲五)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易初六 鄭雲五 可川 南原宅 戊易初六 鄭雲五 可川 南原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무○년 역월 6일 공복제 정운오가 상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안부를 전하며 자신에게 찾아와 줄 수 있는지를 물은 간찰 무○년 역월(易月) 6일에 공복제(功服弟) 정운오(鄭雲五)가 상대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며 상대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 주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가천(可川) 남원댁(南原宅)에 보낸 간찰이다. 벗을 그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추운 겨울에 상대가 손자와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험지로 부임하여 갈수록 헤아릴 수 없으며, 해마다 이치를 거슬러 참혹한 광경이 자신 한 몸 보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가을에는 셋째 누이가 죽었다고 말하고 겨우 자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일들에 골몰하여야 한다는 것, 내일이나 내일모레에는 마지못해 길을 떠나야 한다며 그래서 만날 수가 없으니 형이 혹시 가능하다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신자 정운오(鄭雲五, 1846~1920)의 자는 경일(景日)이고, 호는 벽서(碧棲)이며, 본관은 연일이다. 정조원(鄭祚源)의 아들로, 담양 지곡에서 살았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6년 기경섭(奇景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人除月二十七日 奇景燮 寶城郡 文德面 可川里 大舍廊 丙人除月二十七日 奇景燮 寶城郡 文德面 可川里 광주광역시 광산구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12월 27일, 사생 기경섭이 사돈댁에 혼례를 잘 치른데 대하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축하자리를 열게 해 달라고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26년 12월 27일, 사생(査生) 기경섭(奇景燮)이 사돈댁에 혼례를 잘 치른데 대하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축하의 자리를 열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간찰이다. 편지의 서두에 사돈의 인연을 맺게 해 준 데 대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적고, 자신이 만났을 때 매우 추웠는데 실수를 한듯하다는 것, 다행이 도착하여 예식을 잘 치른 것은 하늘이 도움을 준 것이라고 하고 잘 돌아가시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하나의 희롱의 말이 있었던 것을 용서해 주시겠느냐고 말하고 유연(遊筵)하는 일은 축하 모임에도 있는 일이고, 이곳에서도 속례(俗例)가 된지 오래라서 젊은이들에게 강제로 하지 않도록 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행사를 치를 수 있게 해 줄 것을 청하였다. 이곳에서의 하는 것대로 대략 술과 안주를 급히 20 수량을 마련하여 치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다시 한 번 청하고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편지로 보인 물목은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듯하다고 적었다. 피봉에 의하면 발신자 기경섭은 광주군(光州郡) 임곡면(林谷面) 광산리(光山里)에 사는 기동환(奇東煥)에게 편지를 부치도록 요청했고, 수신자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에 거주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11년 종회소(宗會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明治四十四年十二月卄六日 李鍾律 星州李氏 僉宗 明治四十四年十二月卄六日 李鍾律 星州李氏 僉宗 서울특별시 鍾律, 鍾廷, 鍾冕, 鍾寅, 鍾一, 鍾麟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1년 12월 26일에 서울에 있는 이종률, 이종면, 이종일 등 3인이 보성 가천 성주이씨 종중에 위토의 유실과 회복 등에 관한 전말을 전하며 각 파의 배당금을 속히 거두어 보내 줄 것을 청하는 통문(通文) 1911년 12월 26일에 서울에 있는 이종률(李鍾律), 이종면(李鍾冕), 이종일(李鍾一) 등 3인이 보성 가천 성주이씨 종중에 위토의 유실과 회복 등에 관한 전말을 전하며 각 파의 배당금을 속히 거두어 보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통문이다. 각 종중에 배포해야 했기 때문에 신식연활자 판으로 인쇄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판윤공 위토를 완전히 추심한 일은 이미 두 통의 경고(敬告)를 통해 아셨을 것이지만 이 토지의 시말을 다시 조사하여 그 내용을 알린다고 하였다. 죽은 문용(汶容)씨 집은 경성에서 대대로 살고 있었는데 그는 차종(次宗)으로서 묘사를 주관하고 있었고, 토지의 소출 중에 2석의 조(租)는 집에서 사용했고, 대신 제수를 책임졌다는 것, 원래 토지의 소출은 1년에 10석이 못 되었지만 2석의 곡식이라도 족히 제수를 마련할 수 있었기에 그 지손(支孫) 된 사람들이 깊이 탐구하고자 하지 않았다는 것, 문용 씨가 죽고 그 고아와 과부가 생활을 위해서 700금의 빚을 졌고, 중간에 묘지기가 작간(作奸)을 부려 이 토지가 없게 된 것을 부근의 여러 족인들도 세운(世運)이라 치부하고 마음을 쓰지 못하였고, 혹시 그 소식을 알더라도 바로잡기를 논하는 사람이 없어 세월을 보냈다는 것, 문묘(文廟) 영건(營建)을 위해 종중의 논의가 생겨났다는데 그 토지의 값이 채무에 비하여 배로 불어나 소송을 통해 본가 이외에 24원을 더 주고 완벽하게 돌려받기로 했었다는 것, 그를 위해 각 파에 돈을 배정했는데 아직 적어 금액을 맞추지 못해 바꿀 수 없었던 상황에 부득이 다시 해당 전답문서를 전당잡혀 돈을 갚았다는 것, 400환(圜)에 이르는 200여 평을 겉으로는 완전히 찾았지만 이는 고식지계라 특별히 규정을 만들어 제수(祭需)의 가짓수를 정하고, 묘지 영역에 식목과 사초를 하여 국유지가 되는 것을 막으려다 보니 돈을 각 파에 배정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배정된 돈이 모두 걷힌다면 문제가 없지만 이미 여러 달이 지났으나 돈이 걷히지 않으니 이자를 불리지도 못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자손 된 도리를 말하며 액수대로 돈을 거두어 선조에게 효를 다하고 여러 종족과 화목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敬啓者判尹公祀土之有不可不推完者ᄂᆞᆫ 已悉於兩度函告어니와 再査此土之始末 則故汶容氏家之世居京城에 以其次宗으로 主管墓事이되 土之所出中年入二石租於自家ᄒᆞ고 代以精脯數挺으로 塞責享需而該土所出이 年不下十石者則雖剋入二石之租라도 足爲奠享之資故로 爲其支孫者之不欲深究矣러니 汶已棄世에 其孤兒寡婦之時値擾攘ᄒᆞ야 生活無路ᄒᆞ야 以七百金債款으로 媒成墓直之作奸ᄒᆞ야 至有無土之境인바 附近諸族도 亦關於世運而不遑念及ᄒᆞ고 縱或聞知而有論歸正者라도 自沮於交通之末由ᄒᆞ고 再緣於 文廟營建之役而不可疊議而因循度了矣러니 乃者宗議峻發ᄒᆞ야 杳得始末如右而謀及還土則錢主閔也 以其土價之比債數倍로 肆然呈出証明ᄒᆞ야 認爲已有而不欲還本 故로 或詰或訟에 終以本價外에 加給二十四圓而完璧爲定이나 各派排錢이 尙此零星 則勢不可待成數交換 故로 不得已更典該券ᄒᆞ야 以報閔債ᄒᆞ니 四百圜値 二千餘坪 先塋舊土를 外雖推完이나 實不過姑息者也라 然旣是敦事之地에 不可如前疏忽 故로 另立規程ᄒᆞ야 付之墓所ᄒᆞ야 使之永久遵施이되 待証明分交各派之時에 伴呈厥規爲計어니와 盖其槪目 則奠需ᄂᆞᆫ 指定各種ᄒᆞ야 使不得减焉ᄒᆞ고 草莎ᄂᆞᆫ 隨缺修補ᄒᆞ고 瑩域則全是沙磧이라 若不植木則將未免爲國有矣니 姑先水榛木米柳等을 隨其土宜ᄒᆞ야 始自 墓庭附近으로 每年二百本式栽植生養타가 土皮凝結後 更植良材之意로 受取墓直之誓約矣니 今也各派排錢이 如數入量則足可爲百世無虞之計者也라 然鄙等之函告 僉宗이 已經兩月에 非徒排金之無聞이라 多靳如何之回示ᄒᆞ고 有或送金者之减其排額ᄒᆞ니 原來排錢이式准支款ᄒᆞ고 少無濫數인바 屢月與人相持也에 於墓於郡於京之來往雜費也와 藉稱非其孫 而納迫者之亦多ᄒᆞ니 雖依定額入手라도 猶有不足之患이거늘 而况減數 則其所無麵者ᄂᆞᆫ 從何彌縫ᄒᆞ며 又或遷延收金則不無利子之增殖이니 此亦誰之塡充乎아 無麵者도 吾宗之擔當也오 增殖者도 吾宗之補完은 勢所難免也오 且若曰不爲其子孫也 不知其先墓也則已어니와 旣爲其孫而旣知其墓ᄒᆞ고 又知其如此狀况 則義不可邈視ᄂᆞᆫ 千里人情之所固有者之니 然則告厥成功ᄒᆞ야 永享厥祀者도 僉宗也오 不克其終ᄒᆞ야 廢棄 先墓者도 僉宗也니 幸須 僉宗은 勿嫌鄙等之覼縷煩瀆ᄒᆞ고 期於此文到日에 依定額備投ᄒᆞ야 勿虧一簣之功 則孝無大於 先祖也며 睦無大於宗族也며 慶無大於門中也며 譽無大於山下人民也니 伏願 仁人君子ᄂᆞᆫ 奮發齊力에 圖無後日之艱을 千萬爲盼繼頌時祺明治四十四年十二月卄六日在京 鍾律[印] 鍾廷[印]鍾冕[印] 鍾寅[印]鍾一[印] 鍾麟等[印]寶城 可川 星州李氏 僉宗 閣下(皮封_前面)寶城郡 可川 宗中 僉前(皮封_背面)京城宗會所 敬告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11년 서산종회(西山宗會)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辛亥陰八月十五日 西山宗會 寶城佳川 宗中 辛亥陰八月十五日 西山宗會 寶城佳川 宗中 參判 鍾律, 議官 鍾一, 主事 鍾寅, 博士 鍾麟, 副尉 鵬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1년 음력 8월 15일, 서산종회에서 판윤공 선조의 선산 추심과 묘정 수축을 위하여 배당금을 걷겠다는 내용으로 보성종중에 보낸 통문(通文) 1911년 음력 8월 15일에 서산종회(西山宗會)에서 판윤공(判尹公) 선조의 선산(先山) 추심(推尋)과 묘정 수축(修築)을 위하여 배당금을 걷겠다는 내용으로 보성(寶城) 가천(可川) 종중(宗中)에 보낸 통문이다. 신식연활자로 인쇄하고 구두점을 '。'로 표시해 놓았다. 요지는 판윤공(判尹公) 묘소의 수호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내용이다. 발급일자를 적고 발문(發文)자로서 서산종회의 석사 교진(敎璡)을 위시하여 주사(主事) 교선(敎善), 교섭(敎燮), 석사(碩士) 교원(敎元), 교항(敎恒), 참판 종률(鍾律), 의관(議官) 종일(鍾一), 주사 종인(鍾寅), 박사(博士) 종린(鍾麟), 석사 태순(台淳), 부위(鵬淳), 석사 영순(英淳)의 이름을 적어 보성 가천(佳川) 종중에서 받도록 적었다. 그 다음에 적힌 '위토(位土)의 사실(事實)'에는 판윤공 묘소가 전해 내려오다가 빚을 져 남에게 넘어가게 된 전말(顚末)을 적고 수금(收金)을 하게 된 이유를 6조항으로 적어 놓았다. 120원은 묘위답을 찾고, 60원은 사초 및 묘정을 수축하기 위해 총 200원을 모으기 위해 가천 문중에 배당한 돈은 10원이며 수금 기한은 1911년 음력 10월 1일(墓祀) 이전이고, 경성 중부 익동(益憧憧)의 의관(議官) 이종일(李鍾一) 가로 납부하도록 하였고, 각 종중에서 담당하는 금액은 부근 우편국에 가서 이종일씨에게도 보내도록 하라고 적혀 있다. 만약 기한 내에 납부하지 않아 유사(有司)가 파송되는 경우 유사의 여비(旅費)는 해당 종중에서 담당해야 한다는 조항이 함께 달려 있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