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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실훈언(學室訓言)과 경학문(警學文)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학실훈언(學室訓言)과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경학문(警學文)을 베껴놓은 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학실훈언(學室訓言)과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경학문(警學文)을 베껴놓은 글이다. 학실훈언은 학문을 하는 올바른 태도와 마음자세를 길러 군자의 길로 나아가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글이다. 경학문은 부모의 낳고 길러주신 은혜에 대한 보답은 입신양명으로 그 부모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니, 이는 학문을 하는 것이 바른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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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오봉산이 내다보이는 강동리에서 벗과 정을 나누는 심경을 서술한 내용의 7언시 1수 미상년에 모인이 오봉산(五鳳山)이 곧장 앞으로 내다보이는 곳 강동리(江東里)에서 벗과 수응(酬應)하며 정을 나누는 심경을 서술한 내용의 7언율시 1수이다. 한번 지팡이를 짚고 석문(石門) 언덕 밖으로 나가니 오봉산 앞머리가 곧장 보이고, 국화가 피어있다며 경치를 읊었다. 가을에 떨어지는 나무를 보고 상대가 깊이 나누지 못했던 정을 아쉬워하고 손에 들어온 놀라운 소식이 담긴 편지에 사람들이 놀라고 겨울을 당하여 어찌할지 말들 하는데 글을 멈추고 산루(山樓)에 기대어 멀리 바라본다고 당시의 상황과 자신의 행동을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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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 주제의 시 4수(首)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동지(冬至) 즈음의 추위와 어려움, 회포, 동지 다음날 솜옷을 입은 기쁨 등 동지를 주제로 읊은 시 4수 동지(冬至) 즈음의 추위와 어려움, 회포, 동지 다음날 솜옷을 입은 기쁨 등 동지를 주제로 읊은 시 4수이다. 작성 시기와 작자는 미상이다. 〈두 번 움츠려 읇다[二龜縮吟]〉, 〈동지음(冬至吟)〉 2수, 〈동지 다음날 솜옷을 입고 짓다〉 등이다. 첫 번째 시에서는 '우리나라 삼천리는 다시 따뜻해질 것이니', '움츠리고 펴지는 것은 날이 있으니 모름지기 여유로워라'라고 하였다. 〈동지음〉에서는 동지의 모습과 감상을 적었고, 세 번째 시에서는 동지에 비로소 솜옷을 입고는 '소설(小雪), 소한(小寒)도 두렵지 않은 옷', '모름지기 예의(禮義)도 배로 지키게 할 옷'이라고 하면서 솜옷을 입는 기쁨과 그 효과를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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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笻試出石門邱 五鳳山前直向頭 數朶黃花今日景 千尋碧海舊時流 閒情自悅江東里 世劫頻驚漢北州 君唱我酬傾所歷 幾年空費運心舟殘年一別不能留 况是難堪落木秋 夢寐或形難可情 心肝相照未應休 芝椷入手眞驚書 華什開眸强拙酬 適此冬喧那旨形 停書遙望倚山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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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고려밀직대제학 이인민(李仁敏) 묘갈명(墓碣銘) 고문서-시문류-묘문 辛酉四月 李商永 辛酉四月 李商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1년 4월 16일 이상영이 쓴 고려밀직대제학 이인민의 묘갈명과 서문 1921년 4월 16일, 통훈대부 행(行) 성균관교수(成均館敎授)를 지낸 이상영(李商永)이 쓴 고려밀직대제학 이인민(李仁敏)의 묘갈명과 서문이다. 이인민(1330~1392)은 할아버지가 이조년(李兆年)이며, 백형이 이인복(李仁復), 중형이 이인임(李仁任)인 당대 최고의 권문세가였다. 그러나 이상영은 이 묘갈명의 서두에서, 공은 국정이 어지러움을 보고 하루아침에 관직을 버리고 경산으로 돌아갔으니 이른바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不俟終日者)이었다고 하였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기미를 보고 떠나가서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見幾而作 不俟終日)"고 하였다. 그리고 목은(牧隱) 이색 선생이 그에게 준 시에서 "돌아가도 되는데 돌아가지 않는 사람은 한산(韓山) 옹이고, 머물러도 되는데 머물지 않는 사람은 제학(提學) 공"이라고 한 것과, "선생의 대의(大義)는 군신(群臣)을 움직였다."고 하고 또 "출처(出處)는 다만 대의를 보존하기 위해서였다."라고 한 것을 인용하며, 공의 고상함은 헛되이 고상한 것이 아니라, 의(義)가 있으면서 고상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상영은 1905년 11월 2일 을사오적인 박제순 등 역적들에게 국법을 시행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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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 초고(草稿)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지은 "삼산정사운"이라는 칠언율시와 "내팔경음"이라는 칠언절구 17수의 한시 초고 삼산정사(三山精舍) 7언율시와, 내팔경음(內八景吟)이라는 제목아래 7언절구 17수가 있다. 내팔경음에는 절구마다 각각 제목이 붙어 있는데, 방장청풍(方丈淸風), 영주조돈(瀛洲朝暾, 영주의 아침햇살), 봉래낙조(蓬萊落照), 화서천인(華瑞千仞), 수강벽립(壽崗壁立), 소요숙운(逍遙宿雲), 입암산성(笠岩山城), 명금초가(鳴金樵歌), 동림춘수(東林春水), 옥녀추월(玉女秋月), 갈령동송(葛嶺冬松), 조치훤성(鳥峙喧聲), 웅포환화(熊浦渙火), 만경연야(萬頃連埜), 칠보광명(七寶光明), 내장효종(內藏曉鍾) 등이다. 그러므로 내팔경은 전라도의 여덟 지역을 읊은 것이며, 지우고 수정한 곳이 여러 곳 있는 초고(草稿)이다. 이 시에서 삼산정사는 전남 곡성군의 "죽곡면(竹谷面) 삼태리(三台里)에 있는 강학소이다. 본관이 문화(文化)인 유태영(柳台永)이 종인(宗人) 동기(東基)과 친구 조은규(趙殷奎) 및 뜻이 같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건립하여 강학하던 곳이 있으나 여기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방장산은 전북 정읍시와 고창, 전남 장성의 경계에 솟아 있으며, 영주는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부안의 변산(邊山)을 일명 영주산(瀛洲山)이라 한다.'고 하였다. 입암산성은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산성이다. 옥녀추월의 옥녀봉은 전북 무주군 부남면(富南面)에 있다. 갈령은 전남 장흥군 장평면 녹양리 서남쪽에 위치한 고개이다. 웅포는 익산에 있는 지명이며, 만경은 만경의 넓게 이어진 들판이라는 뜻으로, 김제지역의 옛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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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음(所願吟)〉 등의 시 초고(草稿)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519_001 〈홍백란〉, 《지비자집》의 〈경협골〉, 〈박인규에게 고하다〉, 〈소원음〉 등의 시 초고 여러 편의 시를 짓고 수정한 초고이다. 작성 시기와 작자는 미상이며, 모두 15편이다. 〈홍백란(紅白亂)〉 2수, 〈발문(發㦖)〉 2수, 〈증야죽박우(贈埜竹朴友)〉 3수, 《지비자집》의 〈경협골(勁脥骨)〉 5수, 〈유무음(有無吟)을 장서실에서 써서 아손(兒孫)에게 보여주다〉, 〈박인규(朴仁奎)에게 고하다〉, 〈소원음(所願吟)〉 등의 시가 있다. 〈경협골〉의 제목 밑에는 '주자(朱子)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주자가 이 3자를 써주었다.'는 세주가 있어, 이 시를 쓴 배경을 설명하였다. 〈소원음〉은 칠언율시로 '공자를 배우고자 하면 이자(李子)로부터, 주자를 배우고자 하면 송자(宋子)로부터. 이자는 우리나라에서 공자를 잇고, 송자는 우리나라에서 주자를 이었네. 심산(心山)은 두 부자(夫子) 모두 배우기를 원하네.'라는 내용이며, 이 시의 밑에는 "석담(石潭, 율곡 이이)의 근원은 수사에서 나왔고, 화양(華陽, 우암 송시열)의 맥은 무이(武夷)를 이었다."라고 설명하였다. 〈유무음(有無吟)을 장서실에서 써서 아손(兒孫)에게 보여주다〉라는 시는 아래의 관련문서 마지막에 있는 〈있고 없음을 읇다[有無吟]〉, 〈장서실에서 쓰다[書于藏書室]〉와 같은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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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이교성(李敎成) 제문(祭文) 고문서-시문류-제문 丁酉十月戊戌朔二十日丁巳 李敎成 丁酉十月戊戌朔二十日丁巳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527_001 1897년 10월 20일 이교성이 5대조 할머니 증숙인 해평윤씨의 묘소에 올리는 제문 1897년 10월 20일 이교성(李敎成)이 5세부터는 친진(親盡)으로 1년에 한 번 묘제를 지내게 된 5대조 할머니 증(贈) 숙인(淑人) 해평윤씨 묘소에 올리는 제문이다. 1880년 자신이 정읍 두승산(斗升山) 아래 안영리로 이사한 뒤 1881년에 처음 세향(歲享)을 시작했는데 자신이 혹은 난리로 혹은 형세로 제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이미 16년이 되었다고 하였다. 금년 봄 비로소 제사를 들었으나 서로 다른 언덕을 바라보며 미치지 못하다가 하나의 지방(紙榜)으로 오세조 고비(考妣) 묘소 옆에 합쳤다고 하니, 세향은 반드시 묘소에서 하는 것인데 이같이 하면 어찌 묘제의 이름이 있겠는가라고 탄식하였다. 마침내 이것이 연례(年例)가 되어 여전히 묘향(墓享)을 빠뜨리고 있으니 이것은 시천(詩川)의 한 종인(宗人)에게서 나왔고 편리함으로 집안사람들을 선동하였다고 하였다. 자신이 잔약한 바탕으로 가난하고 이룬 것이 없으나 또한 한줄기 선조의 기운을 이은 사람이라, 어렵고 먼 길을 이제 돌아왔으니, 삼가 대강을 논하여 바로잡겠다고 하는 내용으로 올린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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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성주이씨 족보간행(族譜刊行) 발(跋) 초(草) 고문서-시문류-발 崇禎紀元後丁巳仲夏 李漢鎭 崇禎紀元後丁巳仲夏 李漢鎭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97년(정조 21) 성주이씨 족보를 간행하면서 기념하여 작성한 발문의 초본 1797년(정조 21)에 성주이씨 족보를 개수(改修) 간행하면서 작성한 발문(跋文)의 초본(草本)이다. 두 발문은 훗날 따로 베껴 놓은 것으로 보이며 1797년 5월에 후손 이한진(李漢鎭)이 작성한 발문과 같은 해 10월 16일, 이우진(李佑震)이 작성한 발문이 함께 등서되어 있다. 이한진의 발문 내용은 1687년(숙종 13)에 은암공(隱庵公) 이광적(李光迪)이 목판으로 3권의 족보를 만들고 1751년(영조 27) 학암공(鶴庵公) 이응협(李應協)이 7권으로 활자 인쇄하여 간행한 족보를 언급하고 이후 40년이 흘렀으므로 새로이 족보를 간행하여야 한다는 당위와, 1786년에 운각(芸閣) 활자를 이용하여 새긴 것이 여러 권이고 지금까지 500여 판에 이르렀지만 중도에 상척(喪慽)이 이어지는 통에 탈고를 하지 못하고, 자신도 세상에 나아가 4년간 일을 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등의 경위와 족보 간행의 의의 등을 서술한 내용이다. 이우진의 발문 내용은 1786년에 택진(澤鎭) 씨가 서울에 보소를 설치한 이래로 거의 수단(收單)을 했으나 중도에 잘못되게 된 것을 1796년 봄에 서울에서 영당(影堂)으로 수단을 실어 내려와 초권(初卷)을 교정하고, 택진 씨가 수집한 이하의 세계를 싣고 약간의 명전(名錢)을 마련하여 각수를 모으고 판을 꾸며 재승(齋僧) 만학(萬學)에게 시켜 10월에 마치게 된 일을 서술하며 2년 동안 영당을 수리하고 강당을 짓고 족보를 간행한 사적을 기록하였다. 이한진(李漢鎭, 1732~?)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중운(仲雲), 호는 경산(京山)으로 감역(監役)을 지냈다. 전학(篆學)에 뛰어났으며 음악에도 통하여 그의 퉁소는 홍대용(洪大容)의 거문고와 함께 짝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재주로 당시의 명사였던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성대중(成大中)·홍원섭(洪元燮) 등과 교유하였다. 글씨는 당나라 이양빙(李陽氷)의 소전(小篆)을 따랐는데, 『서청(書鯖)』에서는 그의 전서가 이름은 났으나 근골(筋骨)이 적다고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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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之曾王考隱庵府君 明於譜法 且兼愽雅 司評李竣氏及牧使李尹孫所錄 擧皆披覓 參以已之見聞 粤在肅廟丁卯(1687)刊行三卷譜 距萬曆癸丑(1613)李芝江承宣公所刊單卷譜 餘七十有年 所其後六十有五年 歲在英廟辛未(1751)李參判應協氏又出七卷譜 至今爲四十餘年 則派流漸遠支裔益繁 舍弟澤鎭又爲謀 所以及時重刊 繩我祖武敦我族義 廣攷書籍詳密參證 當宁丙午(1786)以芸閣活字代剞劂之功印出者幾至數卷 合爲五百餘板 力綿事巨 際有喪慽聯綿 以故積年編摩未及脫藁 身又就世者 已過三霜有一年 嗚呼人世之事 不如意者 十常居八九 齎志未遂 大孫家望余用是懼 幸貫鄕宗侍武■甫諸人 惟我 先祖享食之所聚 列邑宗中諸君子幹事該識者幾員裒輯 我舍季未了之蹟 且慮其活字不可以久傳 以名錢數千餘金 貿梓刻出 期以一年之內 其志槩與力量非人人之所可及者 吾宗之有功 亦可謂大矣 大抵族譜 卽私家史筆也 其在尊祖敦宗之道 不可一日無者 而餘百歲以前 則雖薦紳之家 鮮克存譜 譜法不行 則派流無以懲矣 派流無懲 則吾宗族散在八路者 將未免爲路人矣 求其本則 始祖一人 而以一人之身 散而爲百千乃人 以我 始祖之心 觀之則寧不慽然而悲也 近來文拘大備憲章昭著 至及閭巷 莫不肖孝悌之心 油然生焉 今此修譜之擧 亦是敦睦之義也凡吾同宗毋論親近疎逖 雖千百歲之下 溯源尋派 可以開卷瞭然 豈非盛且美哉 原本追遠之道 收族厚風之義 其在斯歟 自譜廳馳書告余曰 子之先曾王考尙書公有勳勞於吾宗信史如三卷之譜 至今行于世 藏板于 影堂 百有餘年 尙有遺風 善頌子於今日重刊之譜 可無弁首之文乎 請之甚固 余以文拙 不敢辭其勤托之意 又爲家庭紹述之道 表余區區之忱 以竢後之具眼者云爾 崇禎紀元後丁巳(1797)仲夏 后孫漢鎭 謹書歲丙午(1786)春澤鎭氏設是譜於京中 幾盡收單 而不幸中道故片紙系錄 將作喪家之休紙 遠邇諸族咨嗟者久 昨年春 影堂昇號之餘 將營講堂 而武說氏顯曾氏及存培甫 以爲不於 影堂本所 無以成此譜 不與幷講堂之役 無以該譜事 迺於四月初輸來京中收單 初卷校正則從澤鎭氏所輯 以下世系則承三舊譜所錄收得 略干名錢而募刻手 李進澤繡之於板付 齋僧萬學俾任支供 至是年十月之乃訖 噫二年之間 而 影堂修理講堂成造 族譜刊役 次第成就 終始事役 不亦甚題且盛乎 大抵是譜非澤鎭氏 無以始非某某氏 無以成而武說氏又就世於今年八月前後主事二人 不得見成譜 譜旣成 曷勝悵然而悲乎 是年(1797)陽月旣望 佑震 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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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박동주(朴東柱)의 소장(疏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壬辰 十二月 初六日 朴東柱 壬辰 十二月 初六日 朴東柱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2년 12월 6일에 박동주(朴東柱)가 보낸 소장(疏狀) 1892년 12월 6일에 박동주(朴東柱)가 보낸 소장(疏狀)이다. 선부군 동지공(同知公)의 상사(喪事)에 망극하다면서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특히 맏아들이 민물고기를 먹고 병이나 신음하고 있어 경황이 없다. 다행히 의약이 주효해 조금 살아났다. 상사에 몸소 가서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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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曾主前 疏上省禮白 居諸易得先府君同知公常事 儼臨出人至孝 想必罔極難抑矣 惟疾之憂 幽明無間 幸加隨禮順變 俾無滅性以遵先哲攸訓焉 伏問間者令弟氏丈 雪裡枉顧 極賀而旋 卽分難悵懷難言 未知氷塗能無撓底駕勞攘餘 體度万支曁孝中棣體候 一向萬支 諸節均禧 伏溸區區 不任遠誠 外甥慈省觕依 而長兒再昨前 以河魚之祟 殿屎無況矣 幸刀圭奏效 近則差蘇 幸何盡達 事當躬晋 以恭象生之厄 礙住不得遂誠伏歎 餘只祝祀事安享 不備候疏上壬辰 十二月 初六日 外甥 朴東柱 疏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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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한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팔월니십사닐 팔월니십사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8월 24일에 함양에 와서 본 집안 소식과 함께 수신자의 형 안부를 묻는 한글 간찰(簡札) 8월 24일에 함양에 와서 본 집안 소식과 함께 수신자의 형 안부를 묻고자 쓴 한글 간찰(簡札)이다. 오른쪽이 잘려나간 것으로 보이며, 내용이 뒷면에 이어져 있다. 함양 차를 타고 나니까 눈물이 앞을 가려 진정할 수 없었다고 하고 두 시에 함양에 와 내리니 정효가 나와서 반겼다. 집에 와보니 아버지가 바싹 마르고 진지도 못 잡수시니 볼 수가 없다. 병관 여러 남매도 궁색한 듯하고 며느리는 바싹 마르고 병이 나 누워있다. 네 형이 궁금해서 두어 자 써서 부친다고 하고, 또 정순과 외할머니 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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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惟肇秋僉體淸穆 門節均禧 仰不任區區 敦情之至 族從各保劣狀耳 窃有仰告者 惟我享京公 後乃散在遐邇 不啻會合 無常譜族已久 自挽近以來 各派其派之譜其族然不過家乘之規 亦不免各派 不同斷爛無統矣 何幸近自 京城有本派一體合譜之擧 是乃吾門孝悌親睦上 油然底道理也 鄙族亦自數十年間派吾譜吾故 向不入於彼大同矣 今見是報追 悉其內容則果合於二度通辭 而各郡僉族內 謀嚮應 自京諸處 各單畢至故 鄙疏亦擬 不後於人 從近修單 以參於八月忌辰之享 伏願貴派僉丈 旣在同派 愈親之地 同聲相應利完宗事 一以明前後 未明之蹟 一以保遠近 不保之族 幸莫甚之想 在遠外 都恃情親 只以弊說忠告 望須尊亮 姑不備 謹上甲子 陰七月 二十日 族從 鐘元奎淳黙齋公 嗣孫 聖淳健淳相璣相龍等 再拜上望須輪悉 此意于貴邊各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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