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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윤기섭(尹琪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丑 尹琪燮 二拜 辛丑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1년 10월 27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사돈에게 안부와 건강을 염려하며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01년 9월 8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가족들의 안부와 사돈의 건강에 대한 위로를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모가 바야흐로 깊은데 사모하는 마음이 매우 깊습니다. 삼가 편지를 받고서 이미 감사하고 또 하례 드립니다. 정양하시는 체후가 좋으심을 알게 되었으나 종기가 점점 심하여 어찌 이다지도 길어지는지 염려되고 안타깝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평안하고 사위 내외는 부모 모시고 평안하다니 실로 막혔던 소식이 제 마음에 부응이 됩니다. 다만 항상 만날 수 있는 바가 아니어서 매우 염려됩니다. 세상의 길이 험한데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요. 탄식을 이길 수 없습니다. 숲속에 숨어있으면서도 오직 깊지 않을까 두려워하니 이렇게 세상의 비웃음을 당하는 것은 이것은 쉬운 일입니다. 오직 마땅히 스스로 수행할 뿐입니다. 부디 모쪼록 기회를 따라서 잘 도모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저는 부모님 모시고 근근이 손상됨은 없으나 세모에 기쁘고 두려운 마음이 더욱 깨달아집니다. 백부께서는 해소의 근심이 추위를 당하여 편안하지 못하니 매우 염려됩니다. 방문해 달라는 말씀에 감히 급히 나가지 못하고 길이 멀고 날씨가 추워서 거듭 쓸데없는 근심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서 물러나 새봄을 기다렸다가 한번 도모할 것입니다. 사위는 신정에 일찍 보내도록 명 해주시길 바랍니다. 서로 소식이 막힌 지가 오래되었는데, 혹 사람의 정이 어찌 이렇게 가을의 근심 속에 있을 수만 있겠습니까? 존장 또한 나와 같이 속(俗) 됨이 심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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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조진익(趙鎭翼)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午 三月 四日 趙鎭翼 甲午 三月 四日 趙鎭翼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4년 3월 4일에 조진익(趙鎭翼)이 사돈에게 질병의 근심과 가족의 안부, 일상의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894년 3월 4일에 조진익(趙鎭翼)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질병의 근심과 함께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며 일상의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가 서글픔이 매우 크던 차에 편지를 받고서 늦봄에 조섭하는 안부가 점차로 회복되셨음을 알았으니 하례 드리는 지극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부모님 모시고 그런대로 지내니 사사로운 분수에 매우 다행입니다. 서울의 소식은 아직도 적막하여 반드시 헛된 곳으로 돌아가서 한갓 매우 탄식하고 한숨 쉴 뿐입니다. 길일이 닥쳤는데 제반 상황이 궁색한 단서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니 매우 염려됩니다. 그것은 말씀하신 대로 올려 보냈습니다. 나무 상자는 언문 편지 가운데 두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내버려 두었고 훗날을 기다려 대면하였다가 가지고 오는 것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존장의 유삼(油衫) 등의 물건은 바야흐로 존장께서 역병 중에 있으므로 부쳐 올리지 못하였으니 진실로 한탄스럽습니다. 며느리는 병이 없이 편히 부모를 모시고 있다고 하니 기특하고 다행이나 여름 전에 보내주실 수 없는지요? 윤우에게 관매(官梅) 몇 그루를 부탁했었는데 나에게 보름 사이에 가져올 수 있을는지요? 백지 한 묶음은 비록 편지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부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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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윤기섭(尹琪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卯 四月 十七 査生 尹琪燮 拜手 癸卯 四月 十七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4년 8월 4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사돈에게 안부를 전하며 연길 날짜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04년 4월 17일에 윤기섭(尹琪燮)이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가족들의 안부와 연길 날짜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번 내려주신 답장 편지를 받은 지 날이 오래되었는데, 다시 삼가 묻건대 보리 추위에 정양하시는 체후는 만왕하시고 사위도 책을 읽고 평안하며 가족들 모두 크게 평안하신지요? 그립고 송축하는 마음을 견딜 수 없습니다. 저의 어버이는 그런대로 평안하시나 사소한 집안의 연고로 오래도록 편하지 못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하겠습니까? 딸아이의 행차에 애초에 몸소 데리고 떠나려 했는데 마침 장애가 있어 집안 조카를 대신하여 보냅니다. 오늘은 비가 오려고 하는데 길이 90리나 되어 염려가 적지 않습니다. 대서(大暑) 전에 사위에게 명하여 한번 본가에 오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듣건대 호곡(好谷)의 행차는 멀지 않은 때에 있을 것 같은데, 만일 요객(繞客)의 행차가 있다면 마땅히 영광스럽게 왕림할 것이니 미리 책상을 쓸고 기다리겠습니다. 교자가 이미 존형의 편에 있으므로 먼 길을 오갈 때 굳이 짐을 더하지 않을 것인데, 이렇게 빈손으로 종을 보내게 되었으니 삼가 어찌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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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이기두(李箕斗)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丑 七月 十九日 李箕斗 乙丑 七月 十九日 李箕斗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5년 7월 19일에 이기두(李箕斗)가 사돈에게 장마철의 안부와 신례(新禮)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簡札) 1925년 7월 19일에 이기두(李箕斗)가 성명 미상의 사돈에게 안부와 신례(新禮)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마가 다하여 가을이 맑으니 그리운 마음이 날로 간절합니다. 편지를 받고서 삼가 요즈음에 존장의 체후가 매우 좋으시고 가족들도 고르게 평안하며 며느리도 탈 없이 정길(貞吉) 함을 알았으니 위안되어 실로 멀리 있는 제 마음에 흡족합니다. 저는 한결같이 괴로운 모습이나 오직 자식의 크고 작은 일 외에는 다른 근심이 없습니다. 제가 한번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고 또 새 사람의 정숙한 모습도 보고 싶으나 장마의 더위가 계속되어 뜻이 있어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인정 밖의 일과 같으니 단지 그리워만 하고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였습니다. 신례(新禮)는 장차 내달 안에 치를 계획인데 길일은 집 아이가 가까운 때에 응당 소매에 넣어 갈 것이니 이것으로 헤아려 주시는 것이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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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이교문(李敎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亥 三月 卄一日 罪從侄 敎文 拜手 南省叔主前 丁亥 三月 卄一日 李敎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358_001 1887년 3월 21일 이교문(李敎文)이 숙부에게 물품에 대한 목록과 비용 등의 내용을 알리는 간찰(簡札) 1887년 3월 21일 이교문(李敎文)이 남성(南省)에 사는 이종 숙부에게 보내는 편지로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거 보러 오는 행차 편에 편지를 받고 부모님 모시는 체후가 좋으시고 가족들도 모두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삼가 위안이 됩니다. 죄인 조카는 석 달을 여행의 괴로움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니 어찌합니까? 교지에서 빠진 것들은 모두 불민함으로 인함이고 전후의 동성이 글로 써서 준 것이 하나의 사례로 보인 것입니다. 다시 긴요한 뜻으로 부탁하신 것은 이렇게 모두 안보하기가 쉽지 않으니 조금 늦은 것과 같으나 필경 찾을 것입니다. 사서 보낸 물건은 모두 주인집 밖에서 사온 물건입니다. 객지에서 사용하는 비용은 빚을 내 것이 아닌 것이 없으니 갑자기 판출하기 어렵습니다. 마포 두 필은 보내신 대로 도착하였고 이처럼 짧은 것은 29척입니다. 이것은 주인이 청한 바이니 내 뜻과 같지 않습니다. 포의 값이 지극히 헐하여 본가가 십일 냥인데, 응당 5전 이십 냥에 해당되어 이렇게 집행을 하니 이것으로 다시 헤아려 주시고 다시 장척 이필을 뒤의 인편에 다시 부쳐 주기를 매우 바랍니다. 분황교지(焚黃敎旨) 8장은 먼저 찾아 보내주기를 바람. 하인배가 죽을 각오로 내려가고자 하니 이렇게 긴히 당겨서 일을 주관하니 안에 쌓아두는 뇌문석 하나와 상석 하나와 방석 몇 개를 사서 보내기 바랍니다. 만재(晩齋) 숙부와 남종(南從)이 모두 눈으로 듣고 본 것이니 반드시 상세히 들었을 것입니다.천 냥의 돈은 반드시 집행할 것이니 미리 헤아려 전후의 비용으로 합니다. 또한, 나의 뜻에 적지 않을 것이니 엽전 일백 냥을 먼저 읍에 머무는 경주인 김화녀(金和汝)에게 지급하여 주고, 받은 서표를 올려보내고 이것을 미루어 사용하면 매우 좋겠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쓴다면 매 백냥 당 엽전이 더 해져서 그 아래로는 60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니 자읍(自邑)에 먼저 주고 삼사십 냥을 풀어 준다고 하니 대략 처리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봉안(鳳眼)을 만들어서 다시 보낸 것은 돈 십사 냥이고 탕건 한 건은 90냥입니다. 찬물로 손을 씻으면 평소와 같으니 바구니에 넣어서 보내주십시오. 갑사(甲絲)는 모두 갖추기 어려우니 조금 기다렸다가 다음 달에 들어올 것입니다. 황지(黃紙) 한 장은 구전이고 토호지(士好紙) 한 장은 팔 전이니 다시 교지를 내기 위해 사서 지급하는 것입니다. 분황교지(焚黃敎旨)는 추가로 구입한 것인데, 이십 냥에 구입한 것입니다. 분황제(焚黃祭)는 천천히 베풀어서 행할 것이고 탕폐(宕幣)는 먼저 거행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서울에서는 모두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김화녀(金和汝)는 바꾸는 것이 뜻과 같지 않으니 돈으로 사서 보내기를 오로지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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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이교문(李敎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亥 二月 十七日 罪從侄 敎文 拜疏上 南省終叔前 丁亥 二月 十七日 李敎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358_001 1887년 2월 17일 이교문(李敎文)이 이종 숙부에게 물품에 대한 목록과 비용 등의 내용을 알리는 간찰(簡札) 1887년 3월 21일 이교문(李敎文)이 남성(南省)에 사는 이종 숙부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숙부에게 보내는 물품에 대한 구매와 비용 등의 내용을 전하는 답장 편지이다. 먼저 3대의 은덕으로 교지를 받게 된 일에 감사를 전하였으며, 검서(檢書)는 바빠서 만나지 못했다 하였고 교지 30장을 봉하여 올린다고 하였다. 분황 교지는 다음번에 보내고 봉안(鳳眼)을 하는 비용은 대략 20냥이 될 것이라 하였다. 추신에 사립(絲笠)은 백여 금이 들 것이고 통영에서 온 것이 좋으며 탕건(宕巾)은 검서의 머리 모양을 보지 못해 사 보내지 못한다고 하였다. 하인들의 노자와 식사 비용으로 521냥을 출금했다 하였으며, 도홍대(桃紅帶) 1건은 12냥이고, 금관자(金貫子) 1건은 5냥 5전이고, 은합자(銀合子) 1건은 3냥 2전인데 우선 빚을 내어 쓸 것이라 하였으며, 마포(麻布)는 중품 장척(尺長)으로 구할 것이니 합 20냥 7전과 마포 3필의 값을 보내 달라는 등의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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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안명우(安命祐)의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道光十八年丁酉十一月二十日 安命祐 李箕文 道光十八年丁酉十一月二十日 安命祐 李箕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38년 11월 20일에 답주 안명우(安命祐)가 논을 이기문(李箕文)에게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38년 11월 20일에 답주 안명우(安命祐)가 논을 이기문(李箕文)에게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자기가 매득한 논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이매(移買)하고자 문전면 가천촌 아래 용보평 목자답(睦字畓) 3두락지 부수 14복(卜)3속(束)을 전문 80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안명우인데 자필(自筆)이며 직역은 유학이다. 증인은 유학 임경(任暻)이다. 이름 아래에 수결이 있다. 끝에는 구문기(舊文記)라고 쓴 것과 토지 소재지 및 면적을 쓴 쪽지를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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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최성민(崔聖民)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咸豐元年 辛亥 三月二十日 畓主 自筆 墓所守護人 崔聖民 寶城 李生員宅奴 月梅 前明文 咸豐元年 辛亥 三月二十日 崔聖民 月梅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51년 3월 20일에 답주 최성민(崔聖民)이 이생원댁 노(奴) 월매(月梅)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1년 3월 20일에 답주 최성민(崔聖民)이 이생원댁 노(奴) 월매(月梅)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매매 사유는 이매(移買)이다. 이매는 자기 땅을 팔아서 남의 땅을 사는 것을 말한다. 토지는 안산 초산면 물항동 황사우에 있는 담자답(淡字畓)이다. 토지 규모는 697분답 2야미 2두5승락지 부수(負數) 6부5속이다. 이 토지를 전문 60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최성민인데 자필(自筆)하고 이름 아래에 수결하였다. 증인은 동성사촌 성홍명(成鴻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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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元年 辛亥 三月二十日 寶城 李生員宅奴 月梅 前明文右明文事段 移買次 安山草山面勿項洞黃沙隅伏在 淡字六百九十七分畓二夜味二斗五升落廤負數陸負伍束廤 價折錢文陸拾兩 右宅墓位土奴新舊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是非是去等 持此文告官卞正事畓主 自筆 墓所守護人 崔聖民 [着名]證人 同姓四寸 成鴻鳴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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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증회용(曾會用)의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十三年正月初九日 曾會用 全福進 嘉慶十三年正月初九日 曾會用 全福進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08년 정월 9일에 답주 증회용(曾會用)이 논을 전복진(全福進)에게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08년 11월 20일에 답주 증회용(曾會用) 논을 전복진(全福進)에게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자기가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부득이하게 이매(移買)하고자 문전면 가천촌의 답 1두5승락지와 목자답(睦字畓) 1두5승락지 합 3두락지 부수 13복(卜)을 전문 48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증회용, 증인은 증낙철(曾洛喆), 필집은 증최감(曾崔甘)이다. 이름 아래에 수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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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9년 이참봉댁 노(奴) 삼순(三順)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四十四年 己亥 四月 日 田主 李叅奉宅奴 三順 李生員宅奴 善才 前明文 乾隆四十四年 己亥 四月 日 三順 善才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79년 4월에 전주 이참봉댁 노(奴) 삼순(三順)이 이생원댁 노(奴) 선재(先才)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79년 4월에 전주 이참봉댁 노(奴) 삼순(三順)이 이생원댁 노(奴) 선재(先才)에게 토지를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상전댁에서 부채를 상환하고자 연전에 매득한 전답 안산 초산면 물항동 환사외(還沙隈)의 담자(淡字) 697분답 1두5승락지 3복5속과 동자(同字) 698답 1두5승락지 1복8속, 동자전(田) 춘모(春牟) 4두락지 2복5속을 전문 50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전주는 이참봉댁 노 삼순이며, 증인은 노 신귀쇠(申貴金)와 신귀돌(申貴乭)이고, 필집은 오수백(吳壽伯)이다. 이름 아래에 수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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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四十四年 己亥 四月 日 李生員宅奴 善才 前明文右明文事段 矣上典宅 以償債事 不得已 買得安山草山勿項洞還沙隈伏在 淡字六百九十七分畓壹斗五升落只三卜五束庫果 同字六百九十八畓 ■■■■■■(壹斗五升落只) 一卜八束庫果 ■■■■■■■■(同字田六百八十九) ■■■■■(春牟肆斗落)二卜五束庫乙 右人前 價折錢文伍拾兩 依數捧上納宅是遣 本文記一度牌子二丈並以 許給爲旀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子孫族屬中或有雜談是去等 持此文告官卞正事田主 李叅奉宅奴 三順 [左寸]證人 奴 申貴金 [左寸]申貴乭 [左寸]筆執 吳壽伯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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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二十四年十一月初二日 安生員 奴 文纎 嘉慶二十四年十一月初二日 安生員 奴 文纎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19년 11월 2일에 답주가 논을 안생원댁 비(婢) 문섬(文纖)에게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19년 11월 20일에 답주가 논을 안생원댁 비(婢) 문섬(文纖)에게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왼쪽이 대각선으로 잘려나가 후반부의 내용을 알 수 없다. 확인 가능한 내용은 '전래해온 논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이매(移買)하고자 문전면 가천촌 용보평 하자(下字) 1두 (미상)와 논 6두락지 부수 33복(卜) (미상)을 전문○45냥에'라고 한 것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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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이일(李鎰)의 계약서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隆熙四年庚戌陰正月二十日 再從侄 鎰 再從叔 敎成氏 隆熙四年庚戌陰正月二十日 李鎰 敎成氏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0년 음력 정월 20일에 종손 이일(李鎰)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선산의 수호를 위임하면서 발급한 계약서 1910년 음력 정월 20일에 종손 이일(李鎰)이 이교성(李敎成)에게 선산의 수호를 위임하면서 발급한 계약서이다. 문자는 국한문 혼용이다. 전남 보성군 문전면 가천리 뒤의 망일봉 아래 초막동에 있는 5세조 참의공 산소 국내를 척량할 때 재종숙 교성씨가 표지를 초막동 안산인 천마봉 정상에 묻고서 오래 동안 수호하다가 후에 친히 장사지낼 곳으로 하기로 하고 금액 20원을 보조하여 일대의 땅을 허급한다고 하였다. 끝에는 단서를 달았는데, 한 번의 벌목 외에 한 그루라도 작벌하는 일이 있으면 종가에서 크게 시비할 것이라 하였다. 허급자는 5세조 종손 재종질 이일이며, 증인은 가천리 이장인 윤희정(尹喜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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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황시원(黃時元)의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丁丑十一月晦日 畓主閑良 黃時元 光緖三年丁丑十一月晦日 黃時元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77년 11월 그믐에 답주 황시원(黃時元)이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1877년 11월 그믐에 답주 황시원(黃時元)이 논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이다. 유래해온 논을 여러 해 동안 갈아먹다가 부득이하게 세금을 낼 일로 문전면 가천촌 입점동의 부자답(夫字畓) 1두락지 부수 4복(卜)4속(束)을 전문 35냥에 영영 방매한다고 하였다. 답주는 한량 황시원, 증인은 한량 박기석(朴己錫)이다. 이름 아래에 수결이 있다. 끝에는 추기한 사항이 있는데, 구문기(舊文記)를 내줄 수 없는 연유를 적었다. 뒷면에는 토지 소재지와 면적을 적은 쪽지를 붙여놓았다. 또 분재기(分財記)를 통해 위토임을 증명하는 쪽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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