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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송원섭(宋垣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卯四月十四日 宋垣燮 己卯四月十四日 宋垣燮 朴炯得 고흥 밀양박씨 하구정 한국학호남진흥원 1939년에 송원섭(宋垣燮)이 인척(姻戚) 박형득(朴炯得)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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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초여름에 공부하며 지내는 체후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위로되는 심정이 큽니다.못난 저는 한결같이 매달린 뒤웅박 같을 뿐입니다. 말씀드릴 것은, 이전 편지에 대한 답장을 드리지도 않았는데 다시 편지를 받게 되니, 부끄러운 심정이 참으로 배가 됩니다. 다만 진정으로 궁핍한 사람이 가르침을 받지 못했으니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지금 2원 금을 힘을 다해 마련하여 보내니, 부디 조금도 염려하지 말고 받아주기를 바랍니다. 나머지는 조만간에 찾아뵙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고 답장을 올립니다.1939년 4월 14일에 송원섭이 절하고 올림 卽敬承肇夏經體上淸穆 仰慰區區者大矣 戚劣一如喩匏繫而已 就前書未修 而更承 書椷其愧{赤+艮}之心實倍于中 而但固窮乏 未遂敎示 信是難堪也 今者二円金極力送呈幸勿小慮 率領之地 是仰是仰耳 餘早晏間面叙 不備謝礼己卯四月十四日宋垣燮拜拜[皮封](前面) 卧龍里朴南坡 經案 回納(背面) 金城宋性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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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閔稚久別紙【元簡遺失己卯四月】 建院事鄕議經年相持至丙子秋始以別設淵谷歸一無論彼此分定執事仍以始役其時柳倅德玉多有宣力戊寅三月始得就工以上丁 奉安其時柳倅已陞替申倅新來張李爲佐猜忌作禍士流亦被其毒玆有別紙所布如左院事癘疫彌滿人不及遑且無得力處凡百未完脩擧靡期區區之誠常用悶縮垈田顚末略已默領之矣蓋院宇基址劉世賢金震玉任起宗三人之私田而以官屯田酌其好否大小無怨相換至成公文此則前等柳倅時已定之事也去冬間申倅忽然有要見院任之意賤生亦忝在院事之主矣同時往見則曰儒官基址掇以官屯不但事理不當而若有後來之官言或有及則不祥甚矣吾將準價買給使其田主持公文入送可也云其心所在非不知之而其言有似其意可尙故極言稱謝而退入送三人則曰汝等田庫斗數幾許而入於院基者亦幾許也蓋劉世賢田可太種一斗餘而在於主脈來龍之巓而廟室後面柱礎立於其界餘作後院不可耕墾之地金震玉田則太種四斗而自廟室後柱至講堂前柱兩旁有公需廳庫子家任起宗田則太種五斗而爲講堂前階階下有壇壇下又有募居人數家矣三人等各以此對之則曰院宇立柱之外庫子所居儒生菜田之地吾何盡買此餘則種麻種麥惟汝任意之而劉田則稱以柱外只給租二斗【劉價不肯受而還】金震玉則三十斗任起宗則十斗以此更成文記後其前日公文盡爲推納然則今日院基只立柱之內而其餘則便是三人等之私物也雖凡人所居亦有階庭園圃空閑之地而況此院基前後左右則是民田當初圖得已甚參酌築墻開基之外別無等閑廣占之地則尺寸之土不可客作他人之物而如是裁割與奪此果買給之意耶厥人等雖無識村氓亦有秉彝之心後園前庭其可入耕耶旣入人家亦可毁之耶此地田土甚貴論以時直一斗之田價可三四石則爲士者心豈能自安而彼人等豈無寃枉之心乎頃於春丁祭享時厥人等以此來訴其時隣邑多士亦不無來會者而草創之地無可變通待秋收合儒生備價準給之意僅以言送耳蓋其所謂官田非如 國屯官庄之比而繫是一官中私用之物則得失有無亦何大關而誘以來官先自劾之其心不過以爲如是則可以掩其前日妄言之跡而殊不知自他人視之如見其肺肝其心則可恕而其人可哀也已不但此也上年以發言事逢彼之怒者是劉世賢而【是前劉世賢呈書時有語侵院中事也】汭陽祠入享劉天放乃其高祖也亦是兩班子孫而竟至降定水軍募得願納者一人面請蒙諾後方受其所納若干之畓而旋則奪充閑丁金重鳴乃金滈之三寸叔也亦在院任頗能勤幹於事而又差以大同都監至有多士之屢請後得免焉其侵喝之辱至此而又極矣其前後用心行事果未知何以如此也陰陽判異言實不同惟此數款旣目顯爲而言發則必怒居是之鄕不諱其所欲諱而如是盡言不惟昧戒謹身亦涉呶呶而痛惋在心不覺自己亦惟黙察而勿咎之幸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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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임씨가(豊川任氏家) 시권(試券) 5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印 18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67_001 모년(某年)에 풍천임씨가(豊川任氏家)의 누군가가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모년(某年)에 풍천임씨가(豊川任氏家)의 누군가가 과거(科擧)에서 작성하여 제출한 시권(試券)이다. 이 시권의 시험 과목은 표(表)로, 표란 문장(文章) 종류 중 하나다. 시제(試題)는 '虞秩宗姜伯夷謝不咨而命夔典樂命龍作納言' 이고, 성적은 '차하(次下)'이다. 시권 우측 하단에 '팔월(八月)'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시권의 제출 순서를 말한다. 과거 시험에서 시권을 다 거두면 제출 순서대로 묶어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자호(字號)를 매겼다. 이를 작축(作軸)이라고 하며, 천축(天軸), 지축(地軸), 현축(玄軸) 등으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천축의 첫 번째 시권은 일천(一天), 두 번째 시권은 이천(二天)이라고 한다. 대개 비봉의 절취선에 크게 한 번 쓰고 그 아래에 좌우 각 두 번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본 문서는 월축(月軸)의 여섯 번째 시권인 것이다. 이 시권은 훼손이 심하고 좌우가 모두 결락되어서 어떤 시험인지, 어떤 성적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시권 우측에 기재되는 자호(字號)도 시권 비봉(祕封)이 있는 부분이 결락되어서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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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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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을유년 임백윤(任百允)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乙酉九月日 ▣▣面化民任百允等4人 城主 乙酉九月日 [1885] 任百允 南平縣監 [着押] 印 1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국대전(經國大典)』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을유년에 화민(化民) 임백윤(任百允) 등 4명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문서 을유년(乙酉年)에 화민(化民) 임백윤(任百允) 등 4명이 남평현감(南平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임백윤 등은 욱곡면(郁谷面) 서당동(書堂洞)에 있는 한림공(翰林公) 임곡지(任哭之) 등 선조(先祖)의 분묘(墳墓)와 묘실(墓室)을 수호(守護)하는 것을 5~6호(戶) 민(民)에게 잡역(雜役)으로 배치(排置)하였는데, 본읍(本邑) 면임(面任) 무리들이 이 연역(烟役)을 횡침(橫侵)하고 있으니 바로잡아 달라고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문서에 임백윤을 비롯해서 임백효(任百孝), 임인준(任仁準), 임□호(任□鎬) 등이 참여하였다. 욱곡면 서당동은 현재 나주 봉황면 오림리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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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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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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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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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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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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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임성모(任性模) 강경시권(講經試券) 2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任性模 [1834] 任性模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54_001 1834년(헌종1년)에 임성모(任性模)가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1834년(헌종1년)에 임성모(任性模)가 29세에 과거(科擧)에서 작성하여 제출한 강경시권(講經試券)이다. 강경(講經)은 문장(文章)을 시험하는 제술(製述)과는 달리 유교경전(儒敎經典)의 암송과 이해 정도를 평가하는 시험으로 생원・진사시와 문과의 초시(初試)에 적용되었다. 강경의 기본 경전은 논어(論語)・맹자(孟子)・대학(大學)・중용(中庸)의 사서(四書)와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 또는 주역(周易)의 삼경(三經) 등 칠서(七書)이다. 강경시권에는 강송한 서명(書名), 강송한 내용, 성적, 성적에 대한 시강관(試講官)의 확인(手決) 순으로 작성되는데, 성적의 등급은 통(通)・략(略)・조(粗)로 구분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순통으로 매겨지기도 한다. 본 시권에는 주역・서전・시전・논어・맹자・중용・대학 순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임성모는 주역을 시험보았고, 성적이 기재되어 있는 자리에 임성모가 강경시험에 입격하였음을 알리는 '조흘첩(照訖帖)'이 점련되어 있다. 임성모의 자(字)는 성빈(聖彬), 호(號)는 신묵헌(愼黙軒)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으로, 임태규(任泰奎)의 아들이다. 임성모의 부인은 해미곽씨(海美郭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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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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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71년 노(奴) 태선(太先)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三十六年辛卯十一月初三日 財主 安氏 任生員 奴 太先 乾隆三十六年辛卯十一月初三日 安氏 奴 太先 安氏[右寸], 黃再憲[着名]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1771년(영조47) 11월 3일에 재주(財主) 안씨(安氏)가 망부(亡父) 제위(祭位) 호자답(號字畓)을 임생원댁(任生員宅)의 노(奴) 태선(太先)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1771년(영조47) 11월 3일에 재주(財主) 안씨(安氏)가 임생원댁(任生員宅)의 노(奴) 태선(太先)에게 망부(亡父) 제위(祭位) 호자답(號字畓)을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흉년을 만나 부모를 봉양할 길이 없어서 망부(亡父) 제위(祭位) 호자답(號字畓)을 임생원댁(任生員宅) 노(奴) 태선(太先)에게 32냥에 판다는 내용의 매매 계약서이다. 훗날에 '동생이나 자손들이 문제 삼으면 이 계약서를 관에 올려 판단의 근거로 삼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계약서 형식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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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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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양준묵(梁晙默)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乙巳四月十八日 査弟 梁晙默 乙巳四月十八日 梁晙默 任氏家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乙巳年 4월 18일에 梁晙默이 사돈 任氏家에 보낸 안부 간찰. *원문: 綠陰如海懷仰益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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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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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38년 임태순(任泰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戌三月二十四日 宗末 百經 戊戌三月二十四日 任泰淳 任氏家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1_01_A00154_001 1838년 3월 24일에 任泰淳이 任氏家에 안부와 관직 청탁에 관한 내용을 적어 보낸 간찰. 전라좌수사의 직임을 받고 남쪽으로 내려와 분주한데다가 집안의 喪事까지 겹쳐 고민이 많다는 내용과 관직 자리가 아직 비지 않았으니 자리가 나가기를 기다려 보자는 내용 등이 보임. *상태: 簡牘帖 중 세번째 간찰. 간찰과 함께 피봉이 부착되어 있는데 발급자 정보에 '康津滯客謝狀'이라고 적혀 있으나 임백경이 강진현감으로 있었던 시기는 1833~1834년 이므로,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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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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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임경도(任京道) 가사토지매매명문(家舍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明治四十五年二月十日 賣主 李春三 買主 任原道 明治四十五年二月十日 李春三 任京道 4顆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1912년 2월 10일에 이춘삼(李春三)이 광주 유등곡면(柳等谷面)의 가옥 등을 임경도(任京道)에게 매매하면서 작성한 가사토지매매명문(家舍土地賣買明文). 1912년 2월 10일 이춘삼(李春三)이 광주 유등곡면(柳等谷面)의 가옥 등을 임경도(任京道)에게 매매하면서 작성한 가사토지매매명문이다. 1912년 2월 10일에 이춘삼은 자기가 매득해 수년 동안 갈아 먹고 살다 부득이 긴용하게 쓸 데가 있어 유등곡굴 종수리(種壽里) 궐대(闕垈)의 예사 3칸과 행랑 1칸 부수(負數) 6상속(六上束)을 값 100량과, 촌후평 궐자전 1두 5승락 2홉 부수 8복 4속(八卜 四束)을 돈 80량과, 만산평 거답 1배미 1두락 부수 4복 7속 곳을 돈 150량을 모두 받아서 쓰고 임경도에게 영영 방매하니, 이후에 말이 나는 폐단이 있으면 이 문기(文記)로써 산정(算定)하라는 내용이다. 명문 끝에 파는 사람 이춘삼과 사는 사람 임경도, 본 마을의 이장 고광호(高光顥)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고 각각 도장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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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이영호(李榮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辰臘月二十三日 査弟 李榮鎬 戊辰臘月二十三日 李榮鎬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진년 12월 23일 査弟 李榮鎬가 보낸 답장편지. *於鳫歲色垂暮阻懷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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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示院儒文 惟我 兩先生孝悌之敦詩禮之敎處家盡倫立朝盡忠爲學士大夫所尊師而然邦人之崇奉芬苾豈但慕其遺澤已哉將以學先生之所學志先生之所志於赫赫泮泮之際庶幾瞻依感慕觀法近而效則易也今距先生之世百有七十年而流風餘韻尙在人心其民務本而厚生畏法易使少加禮義優成美俗余以藐末受命朝廷才蔑學疏不克導宣風化行過斯院怵愓兢厲有所奉聞於諸君子者書院之尊先師爲講學也學之不講豈非院之恥也月朔之講冬夏之習聞久不修擧甚爲諸君子慨惜也俎豆肅肅之地衿紳濟濟之會而絃誦幾乎廢絶酒肉但見淋漓此豈壽國活民之意哉凡士之入斯院而登是堂者繼自今奮勵改轍或群居改業或以時會講實心爲學興起斯文以勿負書院之名則一光於先生嘉惠後學之道也耶學之方宜以先生爲準 先生之道大學博初學固難窺測而先生於儒先最慕退陶法門統宗會元必於紫陽始諸日用人倫達之天德王道其說具載遺文慤而可據近而易導永觀先生之學當自此始也余方原濕靡監不暇與諸君子尋一日之間讀 先生之書講 先生之道甚可恨也而區區所期待於此邦之士意不偶爾諸君子以千秋虔祀爲得尊賢之誠必以興學明道爲盡尊賢之實勉之哉崇禎四丁巳孟冬老峯先生 六世孫 逹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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淵谷書院講堂重修記 湖南長興府治有名淵谷書院者我先祖老峯屯村兩先生俎豆之所也歲庚申余來治是府旣謁院院之士咸造而言曰院宇之不修也久矣且以兩先生之後承而來此者無不有事於是院今亦烏得以已乎余曰唯唯老峯先生謫居玆土遺風懿德洽于士林士林之建院而妥兩先生之靈者所以尊其德而慕其道也院之建今百有餘年而多士之追慕愈久不已復欲修院者亦所以修先生之道也夫尊道修道皆在士林豈後承之所可私哉今多士之在院也誦先生之書服先生之訓行先生之行詩書洋洋揖遜濟濟人之相見者不問而知是院之士則道修而院亦修矣多士其勉乎哉余又聞堯舜孔孟之道得朱子而大明朱子之道大明於東方者亦宋文正與兩先生之力也夫欲修先生之道則必讀朱子與宋文正之書旣讀朱宋之書則可以溯源於堯舜孔孟之傳矣誠如是也修一院而天下之道修矣勉乎哉多士於是棟桶之欹橈者旣而正之瓦甎之破缺者易而新之亦白之漫漶者塗而治之越明年辛酉三月工告訖遂書其顚末以視多士且以諗我兩先生後承崇禎紀元後四辛酉肇冬下院文貞公五大孫 致序 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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