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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항리 소재 대지(垈地) 화수기(禾數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李相用 李相用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물항리 소재 대지(垈地)의 화수기(禾數記) 물항리 소재 대지의 임대 현황을 밝힌 문서이다. 임차인과 점유면적, 화조(禾租) 등을 적어놓았다. 임차인은 이상용 등 4명이며, 각각 1좌대(坐垈)를 임차하였다. 답 5두의 화조 관계기록도 첨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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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2년 이면용(李冕容) 망단자(望單子)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壬戌 十二月 十五日 星州李氏 大同譜所 李斯文 冕容氏 座下(피봉) 壬戌 十二月 十五日 星州李氏 大同譜所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12월 15일에 성주이씨 대동보소에서 이면용(李冕容)을 도청(都廳)으로 의망한다는 망단자(望單子) 성주이씨 종중에서 대동보를 편찬하기 위해 설치한 보소에서 이면용을 도청으로 임명한다는 단자이다. 도청은 실무책임자를 가리키며, 당시 이면용의 직역은 유학(幼學)이었다. 직임은 대동보도청(大同譜都廳)이며, 날짜 위에는 성주이씨보소의 직인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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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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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후(雲侯)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畓主 京居 從 雲侯 雲侯 ○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운후(雲侯)가 사촌 아무개에게 논 3두락을 120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 준 수표(手標) 전답을 매매하면 통상 매매명문을 작성해 주는데 이 경우는 특이하게 보다 간단한 형식의 수표로 작성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수표를 작성하니. 요긴하게 쓸 목적으로 내 스스로 매득한 답, 보성(寶城)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위 탑사동(塔寺洞) 들에 있는 부(婦) 자(字) 논 3두락(3부 9속)을 120냥으로 가격을 작정해서 그 수대로 받고, 구문기(舊文記)를 아울러 영영 방매하며 신문기(新文記)는 수표(手標)로 만들어 주니 후일에 잘 살펴볼 것이라. 답주(畓主) 경(京) 거주 사촌 운후(雲侯)[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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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標右標段 以要用所致 自己買得畓 伏在寶城文田面可川村上塔寺洞坪 婦字參斗落只負數什參卜玖束庫乙 價折錢文壹佰貳拾兩 依數奉用是遣舊文記幷以 永永放賣 而新文則以手標成給以爲後日相考事畓主 京居 從 雲侯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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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김봉식(金鳳植) 노비(奴婢)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己亥 八月十七日 標主 木同 金鳳植 己亥 八月十七日 金鳳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Z037_01_A00160_001 1899년(기해) 8월 17일에 김봉식(金鳳植)이 아무개에게 여자 종을 매입할 때 작성해 준 약속 증서 문서에는 '기해(己亥)'라고 되어 있는데 '1899년 8월 22일 김인동(金仁同)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이다. 이 수표를 토대로 작성된 문서이므로 이 시기의 문서임을 알 수 있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종 점순(占順)의 여식인 복율(卜栗)을 매매할 때의 가격으로 문서 중에 있는 250냥 내에서 100냥은 먼저 내주고 나머지 150냥은 이번 달 22일에 전라도 감영(監營)으로부터 입안을 받고 갖추어 줄 것이며, 만약 기한이 지나게 되면 관청으로 오고 가는데 드는 부비(浮費)는 내가 감당할 것이라. 신·구문기(新·舊文記)는 이미 받았다. 기해년 8월 17일 표주(標主) 목동(木洞) 김봉식(金鳳植)[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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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김순(金順) 대리인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乙未 四月初十四日 金順處 順代 手記 乙未 四月初十四日 金順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5년 4월 14일에 김순(金順) 대리인이 작성한 수기(手記) 이미 산 땅을 환퇴하고자 한 사실을 적기하고 추후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작성해 놓은 문기이다. 작성자는 김순 처에서 김순을 대신한 사람이다. 상전댁이 종가로서 유래해온 답 석동평에 있는 5두락지를 지난 정축년(1877)에 50냥을 받고 영영 방매하였다. 후에 환퇴(還退)할 뜻으로 관청의 결송(決訟)을 물었고 또 환퇴하고자 하였다. 피차가 좋은 뜻으로 다시 가격을 40냥을 받기로 했기 때문에, 끝내 환퇴하지 못했다. 이후에 제족 중 환퇴한다는 말이 있을 것 같으면 이 수기로 관에 고할 일이라 하였다. 날짜 아래에는 수결한 종이쪽지를 붙였다. 환퇴는 한 번 샀던 땅이나 집 따위를 도로 물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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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婢占順女息卜栗是乙 放買〖賣〗價文卷中二百五十兩內一百兩 爲先出給是遣 餘數一百五十兩 今月二十二日 自完營備給是爲 若過限 則來往浮費服當事 新舊文已爲受納事己亥 八月十七日 標主 木洞 金鳳植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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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順處 順代 手記右手〔手記〕事段 上典宅宗家流來畓席洞坪五斗落乙去丁丑年分 以五十兩 永永放賣矣 後以還退之意 問官決訟 而又欲還退矣 彼此好意更價■■〔四〕兩而捧之故 終末還退 日後諸族中 若有還退之說 則以此手記告官事乙未 四月初十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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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栗谷)과 우암(尤庵), 공자 등의 어록 사본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율곡(栗谷)과 우암(尤庵), 공자 등의 어록에서 추출한 글을 베껴놓은 사본 율곡(栗谷)과 우암(尤庵), 공자 등의 어록에서 추출한 글을 베껴놓은 문서이다. 율곡은 ?성학집요(聖學輯要)? 「修己」편의 회덕량장(恢德量章)에서 추출한 일부 글이다. 보통 사람의 병통 세 가지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그 외에 인정(人情)이나 처변(處變), 군자의 삼외(三畏) 등에 관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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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이교문(李敎文) 제문(祭文) 고문서-시문류-제문 壬辰 三月 初一日 李敎文 壬辰 三月 初一日 李敎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2년 3월 1일에 종조고(從祖考)의 입광일(入壙日)을 맞아 하루 전에 종손 이교문(李敎文)이 올리는 제문(祭文) 종조고(從祖考)의 입광일(入壙日)이 1892년 3월 1일이다. 하루 전에 종손 이교문이 병으로 상여줄을 잡고서 곡을 하지도 못하고 길게 통곡하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글로 재배하고 고한다고 하고서 애사를 전하였다. 종조고는 할아버지의 형제를 가리키며, 입광일은 관을 광중에 매장하는 날이다. '제문(祭文)'이라는 제하의 표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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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 출전 잡문(雜文)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보성 출신인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이 송자대전(宋子大全)에 나타나는 곳의 날짜와 관련내용을 적어놓은 잡문(雜文) 보성 출신인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이 송자대전(宋子大全)에 나타나는 곳의 날짜와 관련내용을 적어놓은 문서이고, 초서(初書)부터 육서(六書)까지 연월일을 적어놓고 이를 반복하여 썼다. 또 안방준의 문집인 우산집(牛山集) 출전의 송시열 관련 내용을 ?송자대전?에서 확인하여 연령별로 적어놓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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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재실(齋室) 완공기 고문서-시문류-문 丁巳 丁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7년에 재실을 완성하는데 이르기까지 겪은 마음고생과 완성된 모습 및 주변 경관을 찬한 기문(記文) 1917년 재실(齋室)을 완성하는데 이르기까지 겪은 마음고생과 완성된 모습 및 주변 경관을 찬한 기문이다. 평일에도 서로 시샘하고[齮齕] 미워함이 있었는데 일이 거의 완성될 무렵에 한스러웠던 것은 재원(財源)이었다. 기쁨과 걱정이 아우르던 때 목공을 늘리게 되어, 곡절을 겪은 뒤 정사(丁巳, 1917)년에 공사를 끝냈는데 힘이 부족하여 문(門)을 다는데 미치지 못했다. 후년(後年)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목공이 말하기를, '이와 같은 성대한 집에 어찌 문이 없을 수 있는가?' 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끝냈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두 재(齋)에 올라 주번 경관을 돌아보며 명산이 구름속에 우뚝 솟아있음을 응전(鷹鸇)의 기상에 비유하며, 동서남북 봉우리들을 묘사하고 있다. 끝에는 '예(禮)는 이(理)이다.'라는 주자의 말을 인용하며 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보성과 적성(赤城) 두 집안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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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글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작성자와 작성일자 미상의 쪽지 글 작성자와 작성일자가 미상인 쪽지 글이다. '편함에 홀리는 것은 스스로 미혹되는 것이다.'라는 등의 경구가 있고, 우옹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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