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를 파종하다 播麥 시내 밭에 파종한 보리가 찬바람을 맞으니 播麥溪田冷觸風노년에 먹고살기가 어쩜 이리도 힘든가 衰年食力一何窮손님 와도 아침 내내 말할 겨를이 없고 客來未暇終朝話시기 놓쳐 풍년의 공을 거두기 어렵다네 期失難收熟歲功서치의 운치504)는 참으로 배울 만하니 徐子韻標眞可學〈벌단〉시505)의 뜻과 어찌 같지 않은가 伐檀詩意豈無同저물녘에 돌아와 산창 아래서 할 일 있어 暮歸有事山牕下반짝이는 서재 등불이 한밤중에 이르렀네 耿耿書燈到夜中 播麥溪田冷觸風, 衰年食力一何窮?客來未暇終朝話, 期失難收熟歲功.徐子韻標眞可學, 《伐檀》詩意豈無同?暮歸有事山牕下, 耿耿書燈到夜中. 서치(徐穉)의 운치 서치는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자는 유자, 호는 빙군(聘君)이다. 동한(東漢)의 현인(賢人)으로, 집안이 빈궁하여 직접 농사지어 먹고살면서도 공검의양(恭儉義讓)과 담박명지(淡泊明志)를 숭상하여 소명(召命)에 응하지 않았다. 남주고사(南州高士)라고 일컬어졌다. 벌단(伐檀)시 청렴한 선비가 자기 노력이 아니면 공짜 밥을 먹지 않는다는 안빈(安貧)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시경》 〈벌단(伐檀)〉은 벼슬아치가 공로도 없이 나라의 녹을 먹어 군자가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는 것을 풍자한 시이다. 그 시에 "끙끙 박달나무를 베어 왔거늘 하수 물가에 버려두니, 하수가 맑고 또 물결이 일도다. 심지 않고 거두지 않으면 어찌 벼 300전을 취할 것이며, 수렵하지 않으면 어찌 너의 뜰에 매달려 있는 담비를 보겠냐고 하니, 저 군자여, 공밥을 먹지 않도다.〔坎坎伐檀兮, 寘之河之干兮, 河水淸且漣. 不稼不穡, 胡取禾三百廛, 不狩不獵, 胡瞻爾庭有縣兮? 彼君子兮, 不素餐兮.〕"라는 내용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