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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2년 윤종균(尹鍾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申七月十日 弟 尹鍾均 壬申七月十日 尹鍾均 朴炯得 고흥 밀양박씨 하구정 한국학호남진흥원 1932년에 윤종균(尹鍾均)이 박형득(朴炯得)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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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임태규(任泰奎) 백패(白牌) 고문서-교령류-백패 정치/행정-과거-백패 嘉慶十八年十月日 純祖 任泰奎 嘉慶十八年十月日 純祖 任泰奎 科擧之印 1顆(정방형, 적색)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국대전(經國大典)』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1813년(순조 13)에 유학(幼學) 임태규(任泰奎)가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받은 증서 1813년(순조 13) 10월에 유학(幼學) 임태규(任泰奎)가 생원시(生員試)에 입격(入格)하여 받은 합격증서이다. 임태규는 삼등(三等) 제17인(人)으로 합격하였다. 백패(白牌)는 조선시대 생원과 진사에 합격한 사람에게 주던 증서로 1등 5명, 2등 25명, 3등 70명으로 모두 100명을 합격시켰다. 따라서 임태규는 생원 100인 중 47위가 된다. 백패라는 말은 합격증서의 색깔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서 형태는 현재 액자로 되어 있다. 임태규의 자(字)는 문경(文卿)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이다. 부인은 금성김씨(錦城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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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 정사신(鄭思愼) 등 의송(議送)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酉二月日 南平儒生幼學鄭思愼等23人 巡相 癸酉二月日 [1813] 鄭思愼 巡察使 兼使[着押]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국대전(經國大典)』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계유년에 정사신(鄭思愼) 등 23명이 관찰사(觀察使)에게 올린 문서 계유년(癸酉年) 2월에 남평(南平)에 사는 유생(儒生) 정사신(鄭思愼) 등 23명이 관찰사(觀察使)에게 올린 의송(議送)이다. 정사신 등은 명고(鳴皐) 임전(任錪) 등을 모신 사우(祠宇)에 속한 촌민(村民)들의 교역(橋役) 등을 탈역(頉役)해 줄 것을 관찰사에게 청하는 내용이다. 이 문서에 수결한 사람은 정사신, 이지형(李志亨), 홍직모(洪稷謨), 송상현(宋相鉉), 윤진은(尹進殷), 서취대(徐就大), 정사발(鄭思潑), 서학성(徐學聖), 최명박(崔鳴泊), 홍의산(洪義散), 김훈(金壎), 송태규(宋兊奎), 윤백무(尹百茂), 최명집(崔鳴集), 정구령(鄭龜岭), 최국현(崔國鉉), 이지설(李志說), 윤혁(尹爀), 윤계은(尹啓殷), 배서우(裵瑞雨), 김정(金程), 최필명(崔必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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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남평현감(南平縣監) 전령(傳令)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정치/행정-명령-전령 四月十七 南平官 留鄕所 四月十七 南平縣監 留鄕所 南平官[着押] 3顆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某年) 4월 17일에 남평현감(南平縣監)이 유향소(留鄕所)로 내린 전령(傳令) 모년(某年) 4월 17일에 남평현감(南平縣監)이 유향소(留鄕所)로 임태학(任泰學)을 압치(押致)하고 무덤을 굴거(掘去)하게 하라고 내린 전령이다. 남평현감은 일찍이 들어보니 매우 놀라운 일이므로 즉각 장교를 정해서 임태학(任泰學)을 압치(押致)하고, 그로 하여금 그 무덤을 파가게 한 뒤에 와서 보고하라고 유향소에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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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임태규(任泰奎) 시권비봉(試卷秘封) 1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任泰奎 任泰奎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50_001 1813년(순조13)에 임태규(任泰奎)가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의 비봉(祕封) 1813년(순조13)에 임태규(任泰奎)가 작성하여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즉 시권(試券)의 비봉(祕封)이다. 피봉부(皮封部)라고도 한다. 시권 우측에 응시자의 성명, 나이, 본관, 거주지, 사조(四祖)의 직역, 성명을 적어 답안지를 제출할 때 이 부분을 잘라서 따로 보관한다. 이는 채점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피봉부와 본체부(답안지) 사이에 자호(字號)를 쓴다. 채점 후에 이 비봉을 답안지와 묶어서 작성자에게 돌려준다. 이를 통해 임태규의 인적사항을 알 수 있다. 임태규가 이 시권을 작성한 나이는 35세로, 본관은 풍천(豐川)이고 거주지는 남평(南平)이다. 그의 4조(祖)를 살펴보면, 아버지는 유학(幼學) 임상욱(任相郁), 할아버지는 학생(學生) 임은(任溵), 증조(曾祖)는 학생(學生) 임창하(任昌夏), 외조(外祖)는 학생(學生) 김녹현(金祿鉉)이다. 임태규(1779~1813)의 자(字)는 문경(文卿)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으로, 임상욱(任相郁)의 아들이다. 그의 부인은 의인(宜人) 금성김씨(錦城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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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임태규(任泰奎) 시권(試卷) 2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任泰奎 [1813] 任泰奎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한국의 과거제도』 , 이성무, 한국학술정보(주), 2004 『조선시대 시권 연구』 , 김동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HIKS_A021_01_A00052_001 1813년(순조13)에 임태규(任泰奎)가 제출한 과거답안지(科擧答案紙) 1813년(순조13)에 임태규(任泰奎)가 생원시(生員試)에 작성하여 제출한 시권(試券)으로, 삼등(三等) 제7인(人)에 급제한다. 이 시권의 시험 과목은 사서의(四書疑)로 시제(試題)는 '問云云'으로 생략되었지만 소글자의 긴문장으로 기재되어 있다. 성적은 '차하(次下)'이다. 시권 우측에 '구우(九宇)'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시권의 제출 순서를 말한다. 과거 시험에서 시권을 다 거두면 제출 순서대로 묶어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자호(字號)를 매겼다. 이를 작축(作軸)이라고 하며, 천축(天軸), 지축(地軸), 현축(玄軸) 등으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천축의 첫 번째 시권은 일천(一天), 두 번째 시권은 이천(二天)이라고 한다. 대개 비봉의 절취선에 크게 한 번 쓰고 그 아래에 좌우 각 두 번을 쓰도록 되어 있었다. 본 문서는 우축(宇軸)의 아홉 번째 시권인 것이다. 임태규(1779~1813)의 자(字)는 문경(文卿)이고 본관은 풍천(豐川)으로, 임상욱(任相郁)의 아들이다. 그의 부인은 의인(宜人) 금성김씨(錦城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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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노(婢) 도덕(倒德) 자매명문(自賣明文) 고문서-증빙류-입안 법제-소송/판결/공증-입안 康熙五十八年癸丑七月十三日 自賣 婢 倒德 幼學 任生員相郁 康熙五十八年癸丑七月十三日 婢 倒德 任相郁 婢 倒德[右寸], 業伩 徐英大[着名], 幼學 徐宗伯[着名], 同姓 三寸叔 金長金[左寸]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HIKS_A021_01_A00033_001 1793년 7월 13일에 도덕(倒德)이 유학(幼學) 임상욱(任相郁)에게 자신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자매명문(自賣明文) 1793년(정조 17) 7월 13일에 도덕(倒德)이 유학(幼學) 임상욱(任相郁)에게 자신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자매명문(自賣明文)이다. 13세의 도덕(倒德)은 흉년으로 늙은 부모가 병이 들고 또 연달아 기근이 들어 목숨을 부지할 방법이 없기에 임생원댁에 15냥에 자기를 영원히 방매한다고 했다. 이어 관의 입안을 받아 후일에 만약 잡담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바르게 잡을 일이라고 하였다. 이 문서에는 매매당사자인 도덕과 임상욱 외에 필집으로 업유(業儒) 서영대(徐英大), 증인으로 유학 서종백(徐宗伯), 증참으로 동성 삼촌숙(同姓三寸叔) 김장금(金長金)이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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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 이언교(李彦敎)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丑二月八日 査弟 李彦敎 丁丑二月八日 李彦敎 任氏家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丁丑年 2월 8일에 李彦敎가 사돈인 任氏家에 안부를 전하면서 사위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내용의 간찰. *원문: 姻誼旣篤一面尙遲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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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임백경(任百經)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子二月望日 宗末 百經 甲子二月望日 任百經 任氏家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1_01_A00154_001 1864년 任百經이 宗人에게 청탁한 과거시험 문제 등에 대한 답한 내용의 간찰. 안부를 전하고 묻는 내용, 부탁한 宗人 아들의 과거시험은 이번 시험관원이 전혀 알지 못한 이들이라 부탁하지 못했다는 내용 등을 전한 내용이 실림. *상태: 8점의 간찰을 折帖형식으로 묶아 만든 簡牘帖. 다른 고문서를 덧대어서 만든 흔적이 보임. 간찰첩 가운데 두번째 간찰. *원문: 卽拜承阻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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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선생(南坡先生)은 맑은 눈으로 보십시오.일전에 벌교(筏橋)에 갔다가 끝내 얼굴을 대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아쉬운 심정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탁한 『매천집(梅泉集)』의 서문은 정례(情禮)로 받아들이고 감히 글솜씨가 없다고 사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겨우 실정을 서술하여 이남계(李南溪) 사백(詞伯)에게 보내고 택영(澤榮) 씨와 문호(文鎬) 씨에게도 보냈는데, 두 씨의 자는 '之'자로 고쳤습니다. 그러므로 일전에 이에 관해서 적어서 올렸습니다. 황석전(黃石田)1)은 아직도 착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석전 가 부근에서 영남 조중근(曺仲謹)2)의 글을 얻었다고 합니다. 또한 하동의 김토규(金土珪)와 김상기(金相基)가 매천(梅泉)의 시문을 중간하고 널리 배포하러 적립금 700원을 찾아 상경한 뒤에 간행한다고 합니다. 한꺼번에 함께 간행하여 매도하는 것은 또한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은밀히 부탁하니, 즉시 인쇄를 독촉하여 이달 내에 간행을 마쳐서 먼저 파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 많은 말은 예식을 갖추지 않고 편지를 올립니다.1932년 7월 10일에 제 윤종균이 두 번 절하고 올림.하구정 시에 차운하다[何求亭次韻]발을 걷어 올리니 봄비가 가늘게 내리고捲簾春雨微베개에 기대니 밤에 강물 소리가 들려오네倚枕夜江響덕을 쌓은 사람을 어디에서 찾을꼬種德復何求세월이 오래되니 훌륭한 자손 있네年深玉樹長 황석전(黃石田) 황원(黃瑗, 1870~1944)으로,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계방(季方), 호는 석전이다. 조중근(曺仲謹) 조긍섭(曺兢燮, 1873~1933)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근, 호는 심재(深齋)이다. 南坡先生 靑照日前筏橋之行 竟未面晤而歸 悵何如云 俯托梅集序容以情禮 不敢以不文牢辭故僅敘情實 付于李南溪詞伯 共澤榮氏文鎬兩氏 兩氏字改以之字 故前以錄呈 黃石田尙未逢着 然聞諸友人 則自石田邊近得嶺南曺仲謹文字云 且河東金土珪金相基以須選梅集詩文 重刊廣佈 探積立金七百円 而上京刊出云 一時幷刊賣渡亦難 故玆以密寄 卽督印刷此月內了役 先賣若何 餘萬不備上壬申七月十日 弟 尹鍾均 二拜何求亭次韻捲簾春雨微 倚枕夜江響種德復何求 年深玉樹長[皮封](前面) 寶城郡筏橋活版所梅泉集刊所內朴南坡 炯得 氏旅次入納(背面) 求禮郡光義面芝川里尹鍾均拜椷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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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소식이 끊어진 것이 몹시 아쉽습니다. 이해에 형의 체후가 더욱 왕성하고 모든 식구가 모두 평안하리라 갈망하니, 우러러 간절한 마음으로 축하합니다.저는 객지 생활이 줄곧 고생스럽습니다. 드릴 말씀은 『매천집(梅泉集)』 네 질은 구매처에서는 구매 희망자가 전혀 없지만, 간혹 찾는 사람이 드물게 있습니다. 한 질은 혹 육지에서 구매하러 와서 혹 일원 내지 80전을 내고 구매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고파는 등의 일은 모두 냉소적으로 답변하니, 아무리 구매하기를 원한다 해도 형세로 보아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여관 비용은 비록 얼추 들지만 매일 1원 이상이 혹 소비됩니다. 형세로 보아 부득이하게 10질은 몇 사람에게 억지로 임치(任置)하여 여관비를 빌려 쓰되 부족한 몇 원은 집안의 몇 원(員)을 찾아서 스스로 부담하여 보내게 해서야 겨우 육지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30질은 온전히 돌려보냈고, 나머지 30질은 다만 9월 9일을 기다려 영주사(瀛洲社)와 한서사(漢西社)의 덕회(德會)를 기다렸다 의논하여 방매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반 푼은 임치해 두고 돈을 주지 않는다면 도리어 출송하기로 단단히 약속하였으니, 내달 20일 사이에 책자나 대금을 양단에서 작정하여 끝을 내되, 판매용 10질은 집으로 돌아가서 돈을 마련하여 보낼 계획입니다. 전후의 사실은 이후에 매(梅) 형이 증인으로 참석한다면 털끝만큼도 교묘하게 꾸미지 못하고 판명될 것입니다.비록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다만 내달 20일 사이를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형과 나의 사이는 마음으로 서로 맺어진 관계로 앞으로의 조처는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을 기약하니, 염려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소한 이해관계는 잘 대처하는 것을 기약합니다. 나머지는 할 말을 남겨 두고 협지에서 소상히 말하였습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고 편지를 올립니다.1934년 8월 25일에 종제(宗弟) 해룡(海龍)이 두 번 절합니다.저의 원고는 도합 5매입니다.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보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매화시고(梅花詩考)는 어찌 이렇게도 잘못된 평가를 받았단 말입니까. 8등 시는 작품이 좋습니까? 3등 시는 매번 이때가 되면 있는 일임을 논할 것도 없이 작가가 봉요(蜂腰)를 범하였으니, 시가에서는 몹시 꺼리는 일입니다. 형이 응당 분명히 알 것인데도 이러한 격식을 벗어났으니, 형의 훌륭한 명예에 혹 어떻겠습니까. 몹시 아쉽습니다. 저의 원고는 하나하나 보내주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말한 것들은 상으로 여겨 두어 보내지 말고 본고만 보내주기를 몹시 바랍니다.귀사의 여러 선생은 근황은 어떻습니까? 정신이 없어서 각자에게 안부를 드리지 못합니다. 이러한 뜻을 한명 한명 전달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間阻悵深 謹請此內兄體增旺 大度勻休 仰頌區區且祝 宗弟旅狀一是辛酸而已 就悚梅集四求買處則 都無願買 而或有鮮訪人 而一秩或自陸地買來 而或一円或八十戔買來云 而賣買等事皆以冷笑答之 雖欲出放 勢也奈何 旅館費用은雖略略用之 每日一円以上或消費也 勢不得已十秩은强爲任置幾人處하야 旅費을借用而不足条幾許圓은訪家幾員自担惠付 僅爲出陸 三十秩은還完 餘三十秩은第待九月九日瀛洲社及漢西社德會時議放云 故半分任置 而若不入料 則還爲出送하기로 斷斷牢約 則來月念間冊子나代金이나兩端間作定出末 而賣用十秩은㱕家辦出報納計耳 前後事實後梅兄証參 則判無一毫巧飾也 雖百難中第俟來月念間若何兄我間以心相結之地 來頭措處期於善終計 勿慮爲荷 以些小利害期當善處計耳 餘留夾詳 不備上 宗弟海龍二拜甲戌八月念五日鄙稿合五枚也 一勿遺漏推送如何梅花詩考何如是誤評耶 八等詩善否 勿論三等詩每到此時所在家犯於蜂腰 詩家大忌也兄應燭悉 而到此格外 兄之好個名譽倘何如哉 切切可惜者也 鄙稿一一推送 無使孤望若何鄙之曰等賞置之 勿付本稿만推送至仰貴社諸先生近節若何 擾未各候 此意一一傳佈爲荷[皮封](前面) 高興郡豆原面卧龍里何求亭內朴炯得 先生(背面) 順天邑旅朴海龍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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