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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 어른 임 병룡 에게 드리다 呈林讓村丈【秉龍】 소싯적 큰 포부를 사마처럼 다리에 적더니233) 壯圖少日馬題橋늘그막에도 경서 연구하느라 세상 걱정 사라지네 白首硏經世念消서리 내린 뒤 늦은 향기 풍기니 국화 사랑스럽고 霜後晩香憐菊朶눈 속에 살려는 뜻을 매화가지에서 보는구나 雪中生意見梅條십 년간 어찌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았나 十年蹤跡緣何久백 리 길의 산하 멀다고 여기지 말게나 百里湖山莫謂遙서로 진중하게 세한의 약속 맺었으니 珍重歲寒相待事집구하여 오늘 아침 못 떠나게 할 필요 없네234) 縶駒不必永今朝 壯圖少日馬題橋, 白首硏經世念消.霜後晩香憐菊朶, 雪中生意見梅條.十年蹤跡緣何久? 百里湖山莫謂遙.珍重歲寒相待事, 縶駒不必永今朝. 사마(司馬)처럼 다리에 적더니 사마는 중국 전한(前漢) 때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말한다. 〈성도기(成都紀)〉에 "사마상여가 장안(長安)을 가는 길에 고향 촉군(蜀郡)을 지나다가 승선교(升仙橋) 기둥에 '사마의 높은 수레를 타지 못하면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不乘高車駟馬, 不復過此橋.]' 하였다."라고 하였다. 집구(縶駒)하여……없네 어진 사람이 왔다가 돌아가려 할 때 떠나지 못하게 만류하는 것을 말한다. 집구는 망아지의 고삐를 매어 머물게 한다는 것으로, 《시경》 〈백구(白駒)〉에 "깨끗한 흰 망아지가 채소밭 망친다는 구실을 붙여, 붙잡아 매어 두고 오늘 못 떠나게 하고는, 그분이 우리 집에서 소요하게 하리라.……깨끗한 흰 망아지가 저 빈 골짜기에 있도다. 싱싱한 풀 한 다발을 주노니 그 사람 옥처럼 맑도다.[皎皎白駒, 食我場苗, 縶之維之, 以永今朝, 所謂伊人, 於焉逍遙.……皎皎白駒, 在彼空谷. 生芻一束, 其人如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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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재25)에서 차운하여 황군 율파26) 서구 에게 주다 南宗齋 次贈黃君栗坡【瑞九】 반년 지나도록 돌아가지 못한 남쪽 나그네 未歸南客半經年선조 계승하는 그대의 깊은 정성에 감동했네 感子深誠繼述先평해27)의 고관은 화려한 문벌이요 平海簪纓華閥閱광산의 선영은 멋진 풍광이라네 匡山丘壟好風煙널리 서책 간행하느라 일이 분주한데도 廣刋緗帙行旁午짧은 시간에 정교하게 교정해 길이 전하게 하였네 精校陰陶可永傳이 외에 되려 할 일 있음을 알아야 하니 此外須知還有事입신이 바로 효도의 완성이라네 成身方是孝之全 未歸南客半經年, 感子深誠繼述先.平海簪纓華閥閱, 匡山丘壟好風煙.廣刋緗帙行旁午, 精校陰陶可永傳.此外須知還有事, 成身方是孝之全. 남종재(南宗齋) 황씨(黃氏)의 묘사(墓舍)로,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현에 소재한 듯하다. 황군 율파(黃君栗坡) 황서구(黃瑞九, 1896~1966)로, 율파는 그의 호이다.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순집(舜輯)이다. 9대조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이재속고(頤齋續藁)》와 8대조 만은(晩隱) 황전(黃㙻, ?~1771)의 《만은유고(晩隱遺稿)》를 간행하였으며, 고창군 흥덕현에서 독립운동 자금조달과 민족 교육을 위한 흥동장학회(興東獎學會)의 활동에 참여하였다. 평해(平海) 강원도 평해군으로, 황서구(黃瑞九)의 본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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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이 사심에 따라 의리를 어기는 것을 한탄하다 歎士子徇私悖義 저울로 무게를 알고 자로 길이를 아는데167) 權當知重度知長의를 보고 어찌하여 그 방도에 어두운가 見義胡然昧厥方애석하게도 마음이 장차 무너지고 폐해져 惜矣靈臺將壞廢애달프게 험한 길에서 오래도록 방황하네 哀哉險路久彷徨너희가 잡다하게 하는 말은 듣기 싫으니 厭聽汝所饒唇舌어찌 남들이 속마음 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나 盍懼人之視肺腸마침내 지금이라도 모름지기 능히 생각한다면 迄可及今須克念죽을 때까지 미치광이가 되지는 않으리라168) 莫爲至死作惟狂 權當知重度知長, 見義胡然昧厥方?惜矣靈臺將壞廢, 哀哉險路久彷徨.厭聽汝所饒唇舌, 盍懼人之視肺腸?迄可及今須克念, 莫爲至死作惟狂. 저울로……아는데 '권(權)'은 저울[衡]이요, '도(度)'는 자[尺]로, 사물을 헤아리는 기준이나 법도를 이른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저울에 달아 본 뒤에야 경중을 알고, 자로 재 본 뒤에야 장단을 아는 법이다. 어떤 사물이든 모두 그러하지만, 마음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權然後知輕重, 度然後知長短. 物皆然, 心爲甚.〕"라는 맹자의 말이 나온다. 능히……않으리라 《서경》 〈다방(多方)〉에 "오직 성인도 생각이 없으면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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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연정271)에서. 송연재·심석의 시에 차운하다272) 居然亭 次宋淵齋心石韻 화림273)이 빼어나다는 말 듣고 聞說花林勝지팡이 짚고 천 리를 갔네 一笻千里行보기 드문 기이한 수석들 罕看奇水石멋진 누정 일으키기에 참으로 좋네 合起好樓亭얼마나 진세의 꿈에 수고로웠나 幾處勞塵夢이제 오니 나그네 마음 상쾌하구나 今來爽客情편안하던 당시의 뜻 居然當日意사람은 없고 빈 물가 뿐이네 人去但虛汀 聞說花林勝, 一笻千里行.罕看奇水石, 合起好樓亭.幾處勞塵夢? 今來爽客情.居然當日意, 人去但虛汀. 거연정(居然亭)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화림동(花林洞) 계곡에 있는 정자이다. 송연재(宋淵齋)․심석(心石)의 시에 차운하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과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1839~1912) 형제를 가리킨다. 이 시는 송병선의 《연재집(淵齋集)》 권2에 〈화림동 거연정(花林洞居然亭〉이라는 제목과 송병순의 《심석재집(心石齋集)》 권2에 〈화림동 거연정에 쓰다[題花林洞居然亭]〉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 시 이하로는 김창술이 1941년에 안음(安陰), 즉 지금의 함양을 여행하는 중에 지은 것이다. 《後滄先生文集 卷21 安陰行記》 화림(花林)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일대에 걸쳐있는 화림동(花林洞) 계곡으로, 농월정(弄月亭)ㆍ동호정(東湖亭)ㆍ거연정(居然亭)ㆍ군자정(君子亭) 등 수많은 정자들과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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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 채공424)의 묘소를 지나며 過鳳巖蔡公墓 강문의 팔학사425)로 높은 이름 날렸으니 江門八學擅高名성을 논하던 당년에 강론하여 밝히려 했네 論性當年要講明어찌 알았으랴 인물성동이 호락의 설426)이 詎料異同湖洛說점차 천고의 커다란 논쟁을 이룰 줄을 轉成千古大啁爭 江門八學擅高名, 論性當年要講明.詎料異同湖洛說, 轉成千古大啁爭? 봉암(鳳巖) 채공(蔡公) 채지홍(蔡之洪, 1683~1741)으로,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사람이며, 한원진(韓元震)ㆍ현상벽(玄尙璧) 등과 함께 호론(湖論)의 중심인물이 되어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하였다. 저서에 《봉암집》이 있다. 강문(江門)의 팔학사(八學士)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배출된 윤봉구(尹鳳九)ㆍ한원진(韓元震)ㆍ이간(李柬)ㆍ채지홍(蔡之洪)ㆍ이이근(李頤根)ㆍ현상벽(玄尙璧)ㆍ최징후(崔徵厚)ㆍ성만징(成晚徵) 등 8명의 학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호락(湖洛)의 설 조선 후기에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야기된 이른바 호락논쟁(湖洛論爭)을 말한다. 이 논쟁은 한원진(韓元震)과 이간(李柬) 사이에서 시작되었는데, 한원진은 인물성상이론(人物性相異論)과 미발심체유선악론(未發心體有善惡論)을, 이간은 인물성구동론(人物性俱同論)과 미발심체본선론(未發心體本善論)을 주장하였다. 한원진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호서(湖西) 출신이었기 때문에 호론(湖論) 또는 호학이라 부르고, 이간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낙하(洛下), 즉 서울 출신이었기 때문에 낙론(洛論) 또는 낙학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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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을 그리워하며 4수 憶百拙【四首】 영걸한 의표 보고 싶어도 전혀 계책 없어 欲睹英儀計絶無궁벽한 산에서 유관을 쓰고 홀로 앉았네 窮山獨坐一冠儒정토산의 밝은 달을 마음으로 따라 가니 淨山明月心從去한갓 빈 껍질인 칠 척 몸뚱이만 남았네 虛殼徒存七尺軀곤궁함이 연래에 육체를 핍박했으나 空乏年來逼體膚매양 높은 의리 의지해 조금 늦췄네 每資高義緩斯須문득 서산을 따르지 않게 된 뒤로 却令未踵西山後고금의 인간사가 달라지게 되었네 致得古今人事殊두우성 찌른 기개가 길이 탄식하니 氣衝牛斗一長吁인간 세상 모든 일이 끝나 버렸네 萬事人間已矣夫오직 심신이 머물 바를 알 뿐이니 惟有心身知所止여생을 함께하며 언덕 찾길 바라네 願同餘日覓邱隅스스로 믿는데 하필 많고 적음을 물으랴 自信何須問衆孤범과 용은 원래 미꾸라지 여우와 다르네 虎龍元不類鰍狐그대 손을 빌려 옛 성인을 뵐 수 있으니 但能藉手見先聖한 가닥 실이 원래 한나라 사직 떠받쳤네231) 一線由來漢鼎扶 欲睹英儀計絶無, 窮山獨坐一冠儒.淨山明月心從去, 虛殼徒存七尺軀.空乏年來逼體膚, 每資高義緩斯須.却令未踵西山後, 致得古今人事殊.氣衝牛斗一長吁, 萬事人間已矣夫.惟有心身知所止, 願同餘日覓邱隅.自信何須問衆孤? 虎龍元不類鰍狐.但能藉手見先聖, 一線由來漢鼎扶. 한……떠받쳤네 후한(後漢) 엄광(嚴光)의 맑은 절조를 칭송하는 고어(古語)에 "동강의 한 가닥 낚싯줄이 구정을 떠받친 것이, 지금도 청사에 아름다운 명성을 전하네.〔桐江一絲扶九鼎, 至今青史流芳聲.〕"라고 한 것을 변용한 표현이다. 엄광은 어릴 때 광무제(光武帝)와 같이 공부한 친구였다. 광무제가 왕위에 올라 그를 찾아 간의대부(諫議代夫) 벼슬을 주었으나, 그는 벼슬을 거절하고 동려현(桐廬縣) 남쪽 칠리탄(七里灘)에서 낚시를 즐기며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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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친구 서영농 문환 의 별장에 이르러 벗들의 시에 화답하다 到蓼洞徐友瀛儂【文煥】庄上 和諸友韻 책 더미에 빠져서 백발에 이르렀으나 滾汨書堆到白紛도리어 몸은 조금도 보양하지 못했네 反身曾未補毫分〈양춘백설가〉456)로 착각해 외로이 읊조리고 孤吟錯認陽春雪누군가 후세에 양자운을 찾으리라457) 자신하네 自信誰求後世雲그대들 나란히 찾아와 감사와 부끄러움 많으나 高躅聯尋多感愧난리 때의 고상한 모임이라 듣기에 흡족하였네 亂時雅會足聽聞이곳에서 오히려 문풍이 있음을 보겠으니 此來猶見文風在화락한 기운은 술에 취해서일 뿐만이 아니네 和氣非徒酒以醺 滾汨書堆到白紛, 反身曾未補毫分.孤吟錯認《陽春雪》, 自信誰求後世雲.高躅聯尋多感愧, 亂時雅會足聽聞.此來猶見文風在, 和氣非徒酒以醺.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 매우 뛰어나 화답하기 어려운 시를 뜻한다.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問)〉이란 글에서 나오는 고사이다.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파인(下里巴人)〉이란 노래를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양춘백설가(陽春百雪歌)〉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곡조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에 화답하는 사람이 점점 적어졌다고 한다. 《文選 권45》 후세에 양자운(揚子雲)을 찾으리라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식견 높은 사람이 후대에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다. 양자운은 전한(前漢)의 유학자 양웅(揚雄, BC53~AD18)으로, 자운은 그의 자이다. 양웅은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한 뒤에 사람들이 모두 비웃자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지만 나쁠 것 없지. 후세에 또 양자운이 나와서 반드시 이 책을 알아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宋元學案 卷8 涑水下》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영향을 받아 사부(辭賦)에 뛰어났다. 저서에 《태현경(太玄經)》ㆍ《법언(法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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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을 찾아가다 訪壽山 교분은 돌처럼 굳고 덕은 쇠처럼 강해 交期石固德金剛늘그막에 서로 소원을 이룰 수 있겠네 晩節相將願可償세상은 명예 다퉈 예리한 칼날 같으나 世上爭名刀正利마음에 성인 사모해 아직도 향 피우네 心中慕聖瓣猶香여해에서 보주 찾는다107)고 하지 말게 休言驪海探珠寶용문108)에서 광채 입어 도리어 기쁘네 却喜龍門被彩光골짝의 푸른 솔이 별난 흥취를 이루니 洞裏碧松成別趣옷자락에 가득한 청풍을 느낄 뿐이네 淸風但覺滿衣裳 交期石固德金剛, 晩節相將願可償.世上爭名刀正利, 心中慕聖瓣猶香.休言驪海探珠寶, 却喜龍門被彩光.洞裏碧松成別趣, 淸風但覺滿衣裳. 여해(驪海)에서 보주(寶珠) 찾는다 뛰어난 시문(詩文)을 지으려고 애쓴다는 말이다. 원문의 '여해'는 검은 용이 살고 있는 바다이고, '보주'는 검은 용의 턱 밑에 있다는 구슬을 말하는데, 전하여 뛰어난 시문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백낙천(白樂天)ㆍ유우석(劉禹錫) 등 여러 사람이 모여서 금릉회고시(金陵懷古詩)를 짓다가, 유우석이 먼저 아름다운 시를 지으니, 다른 이들이 "동자(童子)가 용의 여의주〔驪龍珠〕를 얻었는데 나머지의 조개껍데기를 무엇에 쓰랴." 하고 붓을 놓았다고 한다. 《蘇東坡詩集 卷12 次韻孫巨源寄漣水李盛二著作幷以見寄五絶》 용문(龍門) 북송(北宋)의 학자 정이(程頤)가 만년에 거주했던 곳인데, 일반적으로 현자가 거처하는 곳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수산(壽山) 오병수(吳秉壽)의 거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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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시에 첩운하여 여중을 면려하다 疊前韻 勉汝重 뭇 사욕을 이기는 것은 혈전과 같아 克去羣私血戰如몸 떨쳐 솥 부수고 또 집도 불태우네132) 奮身破釜更焚廬강한 적과 서로 싸울 때는 근심이 깊지만 患深勁敵交攻際단병으로 곧장 막 전진해서는 용기가 배가 된다오 勇倍孤軍直前初몇 번이나 빈사의 상태 겪었던가 閱歷幾遭濱死地집안사람들 끝내 편안한 거처 얻었구나 室家終得有安居옥처럼 이룸은 더더욱 많은 시름에 달려 있으니133) 玉成尤在多憂戚그저 공부의 치밀하고 엉성함과 관계 있다오 只係工夫密與疏 克去羣私血戰如, 奮身破釜更焚廬.患深勁敵交攻際, 勇倍孤軍直前初.閱歷幾遭濱死地? 室家終得有安居.玉成尤在多憂戚, 只係工夫密與疏. 뭇……불태우네 사욕(私欲)을 이겨내는 것을 전쟁에서 결사의 각오로 싸우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항우(項羽)가 진(秦)나라와 싸우러 가면서 하수(河水)를 건넌 뒤,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태우고, 사흘 양식을 지니고서 사졸에게 반드시 죽을 각오로 싸울 것임을 보여주었던 데서 유래한다. 《史記 項羽本紀》 옥처럼……있으니 시련을 통하여 학문과 인격이 귀한 옥처럼 훌륭하게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그대를 빈궁하게 하고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그대를 옥처럼 성취시키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後集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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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그믐에 흥덕의 고암에 오르다 三月晦日 上興德之鼓巖 객창에서 봄 한 철 다 보내니 一春送盡旅窓中더는 풍광이 예전과 같지 않네 非復風光昔日同마른 꽃술은 일천 숲에 붉게 흩날리고 敗蕊千林紅作霰빽빽한 그늘 몇 곳엔 녹음이 무성하네 密陰幾處綠成幪노년에도 금단(金丹)은 소식이 더디니23) 丹頭暮境遲消息평소 뜻을 어느 때나 마칠 수 있을까 素志何時有克終이날 높은 곳에 오르니 뜻이 무한하여 此日登高無限意멀리 노성 동쪽에서 바람 쐬고 읊조리네24) 遙遙風詠魯城東 一春送盡旅窓中, 非復風光昔日同.敗蕊千林紅作霰, 密陰幾處綠成幪.丹頭暮境遲消息, 素志何時有克終?此日登高無限意, 遙遙風詠魯城東. 노년에도……더디니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주희가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지은 시에 "언뜻 지나가는 백 년 세월 얼마나 되랴. 세 번 꽃 피는 영지는 무엇을 하려는가. 말년에도 금단은 소식 없으니, 운당포 벽 위의 시가 거듭 한탄스럽네.[鼎鼎百年能幾時? 靈芝三秀欲何爲? 金丹歲晩無消息, 重歎篔簹壁上詩.]"라고 하였다. 《朱子大全 卷84 題袁機仲所校參同契後》 멀리……읊조리네 공자(孔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라는 공자의 명에 슬(瑟)을 울리다 말고,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시 읊으면서 돌아오겠다."라고 하였다.《論語 先進》 기수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 있던 물 이름이며, 무우(舞雩)는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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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암 최형이 부채를 보내준 것에 사례하며 절구 3수 謝新菴崔兄寄扇【三絶】 어디서 왔나 그 부채79)가 몹시 다정해라 何來便面最多情손안에서 바람 이니 홀연 맑아짐을 느끼네 手裏風生忽覺淸시기에 맞추어 쓸 수 없다 말하지 말게나 莫道時期違適用가을 날씨 다시 뜨거워 혹독한 삼복 같거늘 秋天再熱酷三庚함께 달 감상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는데 擬同賞月未曾能둥근 부채가 도리어 밝은 달 모양 같구나 團扇却如明月形구중천 밖에 높이 매달린 것 잡고 싶은데 欲把高懸九天外똑같은 정으로 이곳과 그곳을 비춰주리라 照來兩地一般情제갈의 백우선80) 어느 해에 또 벼슬을 사양했나 葛白何年又謝靑웃으며 백만의 위나라 진나라 병사를 지휘했지 笑揮百萬魏秦兵그대가 보낸 부채 받고 되레 과분함에 부끄러워 領君此物還慙侈공연히 스스로 마음 아파 손안에 비껴두었다네 空自傷心手裏橫 何來便面最多情, 手裏風生忽覺淸.莫道時期違適用, 秋天再熱酷三庚.擬同賞月未曾能, 團扇却如明月形.欲把高懸九天外, 照來兩地一般情.葛白何年又謝靑? 笑揮百萬魏、秦兵.領君此物還慙侈, 空自傷心手裏橫. 부채 원문의 '편면(便面)'은 옛사람들이 얼굴을 가리던 부채 등을 이르는 말이다. 제갈(諸葛)의 백우선(白羽扇) 제갈은 삼국(三國)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며, 백우선은 새의 흰 깃털로 장식한 부채로 제갈량이 쓰던 것이다. 제갈량이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출사표를 올리고는 위(魏)나라 조비(曹丕)를 공격하였는데, 싸울 때 언제나 윤건(綸巾)을 쓰고 백우선을 들고서 삼군(三軍)을 지휘하였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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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쌍계루에서 포은315) 정 선생의 시316)에 차운하다 을해년(1935) 白羊寺雙溪樓次圃隱鄭先生韻【乙亥】 포은과 목은317)이 청승 되었던 일을 기억해보면 記惟圃牧作淸僧모두 유학과 선학을 넘나든 큰 솜씨였지 俱是儒禪大手能깨끗한 땅의 절간은 천고토록 명승지인데 淨土伽藍千古勝쌍계루에 뜬 밝은 달이 십분 더 밝았네 雙溪明月十分增동해에 신선이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誰言東海神仙在정녕 이 누대에 오르니 세상 생각이 맑아지네 定到玆樓世念澄지나간 일 아득하여 지금은 볼 수 없지만 往者遙遙今不見누가 나를 이어 다시 이 누대를 오를는지 何人繼我復斯登 記惟圃、牧作淸僧, 俱是儒禪大手能.淨土伽藍千古勝, 雙溪明月十分增.誰言東海神仙在? 定到玆樓世念澄往者遙遙今不見, 何人繼我復斯登?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호이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달가(達可),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오부학당(五部學堂)과 향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고, 유학을 진흥하여 성리학의 기초를 닦았다. 저서에 《포은집》이 있다. 백양사(白羊寺)의……시 《포은집(圃隱集)》 제2권에 실린 〈장성 백암사 쌍계에 시를 지어 부치다〔長城白嵒寺雙溪寄題〕〉라는 시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호이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穎叔),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1354년 원나라 제과에 급제하고 귀국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정당문학과 판삼사사를 역임하였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시대의 변혁을 이끌었지만, 조선 건국의 주도 세력과의 대립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저서에 《목은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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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가뭄 속에 잠깐 비가 내리다 亢旱中乍雨 팔십 일 동안의 극심한 가뭄에 살 수 없더니 八旬亢旱不堪居잠깐 비가 내려 살짝 적셔주니 꿈결 밖이네 乍得微霑夢外如기쁨 기록한 소식의 기문114)은 기대하기 어렵고 誌喜難期蘇子記장맛비로 삼는다115)는 부암에 대한 글만 보네 作霖徒見傅巖書비가 벼에 지나갔지만 초상 전의 약과 같고 稻禾縱過喪前藥기장과 콩을 거두려니 그물 뒤의 어부 같네 黍豆將收網後漁저물녘에도 희미한 구름 다 사라지지 않으니 薄暮迷雲消未盡애태우던 만백성에게 희망이 아직 남아 있네 懸懸萬衆望猶餘 八旬亢旱不堪居, 乍得微霑夢外如.誌喜難期蘇子記, 作霖徒見傅巖書.稻禾縱過喪前藥, 黍豆將收網後漁.薄暮迷雲消未盡, 懸懸萬衆望猶餘. 기쁨……기문(記文) 송(宋)나라 소식(蘇軾)의 〈희우정기(喜雨亭記)〉를 말한다. 소식이 부풍(扶風)에 부임한 이듬해 관아에 정자를 만들었는데, 이해 한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다가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려 가뭄이 해소될 무렵 정자가 완성되자 정자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으로 짓고, "닷새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되겠는가. 닷새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보리농사가 안 될 것이다. 열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되겠는가. 열흘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벼농사가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東坡全集 卷35 喜雨亭記》 장맛비로 삼는다 원문의 '작림(作霖)'으로, 임금을 잘 보좌하는 어진 정승을 비유하는 말이다. 상(商)나라의 부열이 처음에 부암(傅巖)에 숨어 살면서 담을 쌓는 일을 하고 있다가 고종(高宗)의 꿈에 그 형상이 나타남으로 인해 발탁되어 재상이 되었는데, 고종이 부열에게 자신을 가르쳐주기를 당부하며 "만약 큰 내를 건너고자 한다면 그대로서 주즙을 삼을 것이고, 크게 가뭄이 든다면 그대로서 장마를 삼으리라.〔若濟巨川,用汝作舟楫;若歲大旱,用汝作霖雨.〕"라고 하였다. 《書經 說命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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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오헌265)의 시에 차운하다 次三梧軒韻 채마밭 노인이 심은 오동나무 몇 해나 되었나 圃老種梧經幾春난간 앞의 세 그루 예대로건만 새로워 보이네 軒前三樹舊惟新얽힌 가지에 달이 뜨니 도리어 그림이 생기고 交柯得月翻生畵무성한 잎 뜰에 가득하니 오히려 상쾌하게 하네 密葉滿庭却爽人봉황이 오는 때 어찌 꼭 태평성대이랴 鳳至那當遭聖世거문고 소리266)에 절로 어지러운 티끌이 걷힐 뿐 琴心獨自出紛塵상재를 공경할267) 그 책임은 끝이 없으니 敬恭桑梓無窮責어찌 편액의 글씨만 참된 줄 알 뿐이겠는가 豈但扁章認作眞 圃老種梧經幾春? 軒前三樹舊惟新.交柯得月翻生畵, 密葉滿庭却爽人.鳳至那當遭聖世? 琴心獨自出紛塵.敬恭桑梓無窮責, 豈但扁章認作眞? 삼오헌(三梧軒) 전북 부안군에 있는 정자이다. 최홍익(崔洪益)의 소요처로 그의 사후에 집안의 강학소로 사용하였다. 거문고 소리 원문의 '금심(琴心)'은 비파 연주를 통해서 애모하는 자기의 마음을 전하는 것을 말한다. 사마상여가 임공(臨邛)의 부호(富豪)인 탁왕손(卓王孫)의 딸인 과부 탁문군(卓文君)을 금심으로 유혹하여 함께 성도(成都)로 야반도주(夜半逃走)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상재(桑梓)를 공경할 상재는 뽕나무와 가래나무인데, 돌아가신 부모가 심은 것이므로 공경한다는 뜻이다. 전하여 고향이나 고향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시경(詩經)》 〈소반(小弁)〉에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반드시 공경하라.〔維桑與梓, 必恭敬止.〕"라고 하였는데, 주자(朱子) 주에 "고대에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담장 밑에다 심어 자손에게 누에를 치고 도구를 만드는 밑천으로 물려주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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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극경세서》94)를 읽다 讀《皇極經世書》 선천의 역학이 천 년 동안 어두웠는데 先天易學晦千春안락와95)에서 홀로 새로운 이치 터득했네 安樂窩中獨見新괘상극의96)는 모두 이치를 밝혔고 卦象極儀都闡理황왕제패97)는 다시 인륜을 논하였네 皇王帝伯更論人문장은 하해와 같아 물결이 장대하고 文章河海波瀾壯의사는 풍운과 같아 변화가 신묘하네 意思風雲變化神소견 좁아 이해하기 어려움을 탄식하니 窾啓堪嘆難領會공부하고 싶지만 방법 없음을 어이하랴 縱要下手柰無因 先天易學晦千春, 安樂窩中獨見新.卦、象、極、儀都闡理, 皇、王、帝、伯更論人.文章河海波瀾壯, 意思風雲變化神.窾啓堪嘆難領會, 縱要下手柰無因?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북송(北宋)의 학자 소옹(邵雍)의 저서로, 역리(易理)를 응용하여 수리(數理)로써 천지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관찰하고 설명하였다. 안락와(安樂窩) 소옹(邵雍)이 살던 집을 가리킨다. 괘상극의(卦象極儀) 팔괘(八卦), 사상(四象), 태극(太極), 양의(兩儀)를 말한다. 황왕제패(皇王帝伯) 삼황(三皇), 오제(五帝), 삼왕(三王), 오패(五伯)를 말한다. 소옹(邵雍)의 시에 "일월성신이 높이 떠서 밝게 비추고, 황왕제패가 커다랗게 퍼졌네.[日月星辰高照耀, 皇王帝伯大鋪舒.]"라고 하였다. 《擊壤集 卷9 安樂窩中一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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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질 박진호에게 부치다 寄朴甥珍浩 두류산의 천왕봉142)이 頭流天王峯하늘로 우뚝 솟구치니 聳出九霄中내가 그 꼭대기로 올라가서 我欲陟其巓속세의 마음 시원히 씻고 싶네 豁然盪塵胸어찌 부질없이 유람하겠는가 豈爲恣遊觀간직한 바에 진실로 까닭 있어 所存諒有由문을 나와 그대를 부르니 出門招之子천 리 길을 뉘와 함께 수레 탈까 千里誰共輈중니가 뗏목을 타려할 때에 仲尼乘桴日자로가 따르는 걸 허락했는데143) 曾許由也從지금은 본래 그럴만한 사람 없고 今固無其人사실 또한 같은 바는 아니라네 事亦非所同다만 괴이하게도 연소한 사람 중에 但怪年少中용맹을 좋아하는 이 들은 적 없으니 却無聞喜勇일찍이 봉황처럼 날기를 생각해 보지만 試思曾鳳翔기운이 절로 솟구치지 않는다네 有不氣自湧 頭流天王峯, 聳出九霄中.我欲陟其巓, 豁然盪塵胸.豈爲恣遊觀? 所存諒有由.出門招之子, 千里誰共輈?仲尼乘桴日, 曾許由也從.今固無其人, 事亦非所同.但怪年少中, 却無聞喜勇.試思曾鳳翔, 有不氣自湧. 두류산(頭流山)의 천왕봉(天王峯) 두류산은 지리산(智異山)의 별칭이고, 천왕봉은 지리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중니(仲尼)가……허락했는데 중니는 공자를 말하니, 공자가 일찍이 천하에 현군(賢君)이 없어 도(道)를 행할 수 없음을 탄식하는 뜻에서 가설적인 말로 이르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서 떠나리라. 나를 따를 자는 유인저.[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其由與.]"라고 하였다. 《論語 公冶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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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의 단풍을 읊다 詠內藏丹楓 서리가 거듭 내려 가을산을 흔드니 三申霜令動秋山별안간 단풍나무 숲에 빛깔이 바뀌었네 變色楓林倏忽間비단 휘장을 석씨 집에선 어떻게 수놓았을까321) 錦幛石家何繡錯채화322)를 동산에 늘어놓은 듯 알록달록하네 綵花陳苑正斒斕기운이 골짝을 찌니 요임금이 봉한323) 나라 되고 氣蒸洞作堯封國빛이 사람을 쏘니 한나라 장수324)의 얼굴이 되네 光射人成漢將顔내장사의 명승이 모두 이곳에 있으니 藏寺勝名都在此얼마나 많은 시인들의 화려한 글이 아롱졌던가 幾多韻士墨華斑 三申霜令動秋山, 變色楓林倏忽間.錦幛石家何繡錯? 綵花陳苑正斒斕.氣蒸洞作堯封國, 光射人成漢將顔.藏寺勝名都在此, 幾多韻士墨華斑? 비단……수놓았을까 석씨(石氏)는 진(晉)나라의 부호(富豪)인 석숭(石崇)을 가리킨다. 비단 휘장은 옛날에 귀인(貴人)이 출행(出行)할 때에 바람과 먼지를 가리기 위하여 길 좌우에 친 휘장을 말하는데, 석숭이 너무도 사치스러워서 50리 길이의 비단 보장을 만든 고사가 전한다. 채화(綵花) 비단 조각으로 만든 꽃을 말한다.《世說新語 汰侈》 요(堯)임금이 봉한 우순(虞舜)이 당요(唐堯)로부터 천하를 인수하여 매 주(州)마다 산 하나씩 열두 산을 봉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서경》 〈순전(舜典)〉에 "비로소 12주를 만들고, 열두 산을 봉하였다.[肇有十二州, 封十有二山.]"라는 말이 나온다. 한(漢)나라 장수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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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성86)에서 《이재집(頤齋集)》을 교정할 때 아들 형관(炯觀)87)이 와서 도와주었다가 11월 아무 날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 校正頤集于興城也 觀兒來助 仲冬日送之歸家 세월은 참으로 괴롭게 물처럼 흘러가는데 光陰正苦水流如무슨 뜻으로 남쪽으로 와 객사에 머무느냐 底意南來滯客廬시야에 들어온 영산88)은 구름에 잠겨 있고 望入瀛山雲鎻際회포를 푸는 오저89)에는 달이 막 밝아지네 懷暢吳渚月明初문자는 속루가 아니라고 비록 말하나 文字縱云非俗累부자(父子)가 집에 거하지 못함이 우습구나 翁兒堪笑不家居눈 속에 너를 보내며 고향 소식 찾는데 雪中歸汝探鄕信가는 여정 생각하니 꿈속에서도 멀어지누나 念到行程夢寐疏 光陰正苦水流如, 底意南來滯客廬.望入瀛山雲鎻際, 懷暢吳渚月明初.文字縱云非俗累, 翁兒堪笑不家居.雪中歸汝探鄕信, 念到行程夢寐疏. 흥성(興城) 전라북도 흥덕현(興德縣)의 별칭이다. 아들 형관(炯觀) 김택술의 셋째 아들이다. 영산(瀛山) 신선이 산다는 영주산(瀛洲山)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고창군(古昌郡) 흥덕현(興德縣)에 소재한 산을 가리킨다. 오저(吳渚) 오초(吳楚) 지방에 있는 호수 동정호(洞庭湖) 일대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고창군(古昌郡) 흥덕현(興德縣)에 소재한 호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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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성재467)를 수리할 때 지은 시 聚星齋修理韻 석천의 시에서 호를 취한 지468) 몇 해던가 石詩取號幾經秋별이 김씨 집안에 모이니 서기가 흐르네 星聚金門瑞彩流제가에서 창건했으나 응당 뒤지지 않았고 刱在諸家應不後웅장하여 이름에 걸맞아 가장 으뜸이네 名稱傑構最居頭퇴락할 때마다 곧장 경영하고 수리하니 隨將頹缺旋經理참된 정성이 두텁게 쌓여 남기에 합당하네 更合眞誠厚積留우리 선조의 맑은 기풍이 백세에 모범 되니 吾祖淸風師百世한가로이 놀지 말고 생각하고 닦을지어다 念修莫作等閑遊 石詩取號幾經秋? 星聚金門瑞彩流.刱在諸家應不後, 名稱傑構最居頭.隨將頹缺旋經理, 更合眞誠厚積留.吾祖淸風師百世, 念修莫作等閑遊. 취성재(聚星齋) 고려 말 고부 군수(古阜郡守)를 역임한 김광서(金光敍) 묘의 재실이다. 김광서는 고려가 망하자 형 세영(世英)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은거하면서 소요처로 지냈던 곳이다. 1819년(순조19)에 세워진 것이 화재로 소실되고 1826년에 중건되었다. 석천(石川)……지 석천은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의 호이다. 임억령이 부안 김씨가 살고 있는 옹정마을을 찾아가서 "옹정에는 군자가 많은데 김문에는 덕성이 모였다.[瓮井多君子, 金家聚德星]" 라는 시문을 남겼는데, 여기에서 취성재라는 호를 취했다고 한다. 그 시는 《석천선생시집(石川先生詩集)》 제3권에 〈만가(挽歌)〉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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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운하여 최여중에게 주다 次贈崔汝重 난세에 서로 만나기 어려움은 亂世難相見백 척 누대에 오르는 것 같네 如登百尺樓이 몸이 늙어가는 날이요 此身遲暮日우리 도가 멸망한 때이네 斯道滅亡秋함께 강학하는19) 게 시급한데 麗澤方爲急떨어져 지내니20) 참으로 슬프네 索居足可悲세한에도 한 조각 뜻 지녔으니 歲寒一片志뛰어난 인재21)를 누가 보냈을까 怎遣回千牛 亂世難相見, 如登百尺樓.此身遲暮日, 斯道滅亡秋.麗澤方爲急, 索居足可悲.歲寒一片志, 怎遣回千牛? 함께 강학하는 원문의 '이택(麗澤)'은 붕우(朋友)가 함께 학문을 강습하며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주역》 〈태괘(兌卦) 상(象)〉에 "두 개의 못이 서로 이어져 있는 상이 태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붕우와 함께 강습한다.〔麗澤兌, 君子以, 朋友講習.〕"라고 하였다. 떨어져 지내니 원문의 '삭거(索居)'는 이군삭거(離群索居)의 준말로, 벗들과 떨어져 외로이 사는 것을 말한다. 자하(子夏)가 "내가 벗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산 지가 오래이다.〔吾離群而索居, 亦已久矣.〕"라고 말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 뛰어난 인재 원문의 '회천우(回千牛)'는 천 마리 소가 싣고 가지 못할 만큼 재목이 매우 훌륭하다는 뜻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고백행(古柏行)〉에 "큰 집 무너지려 하니 들보 필요했는데, 만 마리 소가 고개 저을 만큼 산처럼 무겁구나.〔大廈如傾要梁棟, 萬牛回首丘山重.〕"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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