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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九年癸未三月十五日右前明文右明文事伏在擧石里家基草家四間果行廊二間果太種田一石六斗落果苧田七帶落㐣價折貳百六拾兩依數捧用是遣以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云日後若有爻象之弊則持此文卷告 官卞正事此亦中舊文記幾許丈卽當出給而姑未推尋未得出給而推後覓給事家垈主 幼學 吳敬善[着名]證人 崔君至[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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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오경선(吳敬善)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光緖九年癸未三月十五日 吳敬善 光緖九年癸未三月十五日 吳敬善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3년(고종 20) 3월 15일에 유학 오경선(吳敬善)이 부안현 거석리에 있는 집과 밭을 팔면서 작성한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1883년(고종 20) 3월 15일에 유학(幼學) 오경선(吳敬善)이 부안현(扶安縣) 거석리(擧石里)에 있는 집과 밭을 팔면서 작성한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이다. 오경선은 거석리에 있는 초가 4칸, 행랑 2칸, 콩밭 1석 6두락, 모시밭 7대락 등을 모두 합쳐서 총 26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시끄러운 일이 있으면 이 문기를 관(官)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구문기는 몇 장이라도 즉시 내어 주어야 하지만 아직 찾지 못하였으니 나중에 찾아서 준다고 하였다. 거래 당시 가대주인 오경선과 증인(證人)으로 최군지(崔君至)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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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七年癸卯七月二日 前明文右明文事有緊用處伏在扶安晴湖鷄爲坪收稅畓伍石拾捌斗落只所耕 結 庫叱價折錢文白銅貨㱏萬兩依數捧上是遣以新舊文十一丈永永放賣於右前爲去乎後若有異言以此文記憑考事畓主 韓參奉宅奴年奉[左寸]捧價後舊文出給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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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신오훈노(辛五勳奴) 공수(孔秀)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六年壬寅九月二十八日 辛五勳奴 孔秀 大韓光武六年壬寅九月二十八日 辛五勳奴 孔秀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2개 2.5*2.5 2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2년 9월 28일에 신오훈노(辛五勳奴) 공수(孔秀)가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2년 9월 28일에 신오훈노(辛五勳奴) 공수(孔秀)가 논을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오훈노 공수는 이번에 큰 흉년을 당하여 가을 일을 할 길이 없어 상동면 쌍구제(雙口堤) 아래에 있는 9마지기를 화곡(禾穀)과 함께 50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문서와 붙어 있어서 출급하지 못하고 신문기 1장을 건네주며 나중에 서로 다른 단서가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공수와 증인(證人)으로 김성언(金成彦)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집필(執筆) 최익서(崔益瑞)는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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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六年壬寅九月二十八日 前明文右明文事段當此歉荒年秋事無路故上東雙口堤下玖斗落所耕二十六負四束㐣幷禾穀價折錢文伍佰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他文記幷付故不得出給而以新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端則以此憑考事畓主 辛五勳奴孔秀[着名]證人 金成彦[着名]筆執 崔益瑞[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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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정천석(鄭千石) 자매명문(自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자매명문 경제-매매/교역-자매명문 光緖三年丁丑三月初四日 鄭千石 舊上殿宅 光緖三年丁丑三月初四日 鄭千石 전북 부안군 [左章] 1개,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7년(고종 14) 3월 4일에 정천석(鄭千石)이 구상전댁(舊上典宅)에게 자신의 식구(食口)를 노비로 팔면서 작성한 자매명문(自賣明文). 1877년(고종 14) 3월 4일에 정천석(鄭千石)이 구상전댁(舊上典宅)에게 자신의 식구(食口)를 노비로 팔면서 작성한 자매명문(自賣明文)이다. 이 명문을 작성한 정천석은 본시 옛 상전댁 노였는데 이번에 큰 흉년을 당하여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정천석 본인(36세)을 포함하여, 처 덕율(德栗, 30세), 아들 순안(順安, 4세) 등 3명의 식구를 옛 상전댁에 10냥을 받고 영구히 팔았다. 나중에 문제가 생길 때에는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정천석과 처 문덕율(文德栗), 증인(證人)으로 유학 황은필(黃殷弼) 등 3인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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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三年丁丑三月初四日舊上殿宅前明文右明文事段矣身素是右宅奴屬矣當此大荒之年至於餓死之境故矣身年三十六婦德栗年三十子順安年四合三口價折錢文拾兩依數捧上是遣右宅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以此憑考事明文主 鄭千石[着名]婦 文德栗[左章]證人 幼學 黃殷弼[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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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채생원노(蔡生員奴) 춘석(春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拾捌年戊戌七月初八日 李汝宗 蔡生員奴 春石 道光拾捌年戊戌七月初八日 李汝宗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8년(헌종 4) 7월 8일에 이여종(李汝宗)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에 있는 논을 채생원댁노(蔡生員奴) 춘석(春石)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8년(헌종 4) 7월 8일에 이여종(李汝宗)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에 있는 논을 채생원댁노(蔡生員奴) 춘석(春石)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여종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돈지리의 전평(前坪)에 있는 굴내평(屈乃坪)의 중자답(中字畓) 11마지기와 서변(西邊)의 논 4마지기를 춘석에게 62냥에 팔았다. 중자답은 부수(負數)로는 21부가 되는 곳이며, 서변의 논은 4부 2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본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분란이 일어나면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여종과 증인(證人)으로 남순이(南順伊), 필집(筆執)으로 고몽열(高夢說) 등 3인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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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白敏徵爲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者乾隆三十八年三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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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년 백민징(白敏徵) 교지(敎旨) 3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白敏徵 英祖 서울 종로구 [官印] 1개 6.5*6.5(정방형) 적색 1개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1773년(영조 49)에 국왕이 백민징(白敏徵)을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773년(영조 49) 3월에 국왕이 백민징(白敏徵)을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은 조선시대 무신 정3품 당상관(堂上官)의 품계명으로 해당 관직에는 중추부(中樞府)의 첨지사(僉知事)가 있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는 조선시대 중추부(中樞府)의 정3품 당상관(堂上官)으로 정원은 8명이다. 위로 영사(領事) 정1품 1원, 판사(判事) 종 1품 2원, 지사(知事) 정2품 6원, 동지사(同知事) 종2품 8원이 있고, 아래로 종4품인 경력(經歷) 1원과 종5품인 도사(都事) 3원이 있다. 수원백씨 가문에는 이 교지를 포함하여 백민징의 교지가 4건 소장되어 있는데, 모두 80세가 넘어 수직(壽職)으로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실직(實職)에 임명된 것은 아니다. 이 교지가 소장된 영암의 수원백씨 가문에는 백민징의 호구단자를 포함하여, 그의 아들 백창윤(白昌潤), 손자 백경옥(白慶玉), 증손 백사형(白思亨) 등의 호구단자 11점이 소장되어 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작성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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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백민징(白敏徵) 교지(敎旨)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白敏徵 英祖 서울 종로구 [官印] 1개 6.5*6.5(정방형) 적색 1개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1774년(영조 50)에 국왕이 백민징(白敏徵)을 가선대부(嘉善大夫) 행 용양위부호군(龍驤爲副護軍)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774년(영조 50)에 국왕이 백민징(白敏徵)을 가선대부(嘉善大夫)행 용양위부호군(龍驤爲副護軍)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는 종 2품이며, 관직인 용양위부호군(龍驤爲副護軍)은 종 4품이어서 품계보다 낮은 관직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수원백씨 가문에는 이 교지를 포함하여 백민징의 교지가 4건 소장되어 있는데, 모두 80세가 넘어 수직(壽職)으로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실직(實職)에 임명된 것은 아니다. 이 교지가 소장된 영암의 수원백씨 가문에는 백민징의 호구단자를 포함하여, 그의 아들 백창윤(白昌潤), 손자 백경옥(白慶玉), 증손 백사형(白思亨) 등의 호구단자 11점이 소장되어 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작성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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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白敏徵爲嘉善大夫行龍驤爲副護軍者乾隆三十九年 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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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백민징(白敏徵) 교지(敎旨) 2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白敏徵 英祖 서울 종로구 [官印] 1개 6.5*6.5(정방형) 적색 1개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1774년(영조 50)에 국왕이 백민징(白敏徵)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 1774년(영조 50)에 국왕이 백민징(白敏徵)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는 종 2품 품계로 초기에는 문무산계(文武散階)로 사용하였으나 후기에는 종친(宗親)과 의빈(儀賓)의 품계로도 사용하였다. 이때 백민징은 나이 82세의 고령이었기 때문에 수직(壽職)으로 이 품계를 받은 것이다. 수원백씨 가문에는 이 교지를 포함하여 백민징의 교지가 4건 소장되어 있는데, 모두 80세가 넘어 수직(壽職)으로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실직(實職)에 임명된 것은 아니다. 이 교지가 소장된 영암의 수원백씨 가문에는 백민징의 호구단자를 포함하여, 그의 아들 백창윤(白昌潤), 손자 백경옥(白慶玉), 증손 백사형(白思亨) 등의 호구단자 11점이 소장되어 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작성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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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白敏徵爲嘉善大夫者乾隆三十九年 月 日年八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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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김재식(金宰植)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午正月卄九日 弟 金宰植 李敎成 庚午正月卄九日 金宰植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0년 1월 29일에 김재식(金宰植)이 당내의 상을 당한 일과 며느리의 해산, 모란을 옮겨 심는 등의 내용으로 보낸 간찰(簡札) 1930년 1월 29일에 아우 김재식(金宰植)이 당내의 상의 슬픔과 슬하의 참혹한 광경이 닥쳤다니 놀랍고 슬프다는 말도 못하겠고, 다음 달에 며느리의 해산이 있고, 모란을 옮겨 심는 것에 대하여 말한 답장 편지이다. 골고루 안부를 묻고, 당신의 가문에서 당내의 상척(喪戚)과 슬하의 참경(慘境)을 만났다니 놀랍다. 슬프다는 말을 어찌 하겠는가. 아드님이 굳건하지 못하여 걱정이지만 화상은 걱정이 되지 않으나 고질병은 가장 우려되니, 이쪽에 혹 문의(問議)할 곳이 자세치 않고 병의 근원이 어떠한지 몰라서 다음 달 보름께 직접 가서 보고 의논할 계획이다. 자신은 아내가 조금 아프지만 다른 식구들 무탈하여 매우 다행이고, 며느리가 다음 달이 해산할 날이라고 하니 무사히 해산하기를 밤낮으로 바란다. 아버지 된 지 어제 같은데 벌써 할아버지가 된다니 놀랍고, 외조부 닮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모란은 지난봄에 옮겨 심었는데 가물어서 뿌리가 아직 튼튼하게 의탁하지 못하였다. 다시 옮기면 반드시 살기 어려우니 1년을 더 기다려 뿌리가 굳은 뒤에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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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日憶金秋潭【鎭總 甲子】 嗟君去後更無奇 此別元來永別離藥院優游能幾日 升山遠覽亦多時白首餘生思舊迹 黃花佳節詠新詩不復人間相對得 神交可待九原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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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艮齋先生 【甲辰】 道體貞泰 慕仰區區 驥魯素學空疏 未嘗不欲勵志劬書 以收桑楡之餘光 然有意未遂 慚靦何言 先墓下丙舍 己保三百年之久 而迄今闕大人君子不朽之迹 心常欫然 伏乞先生 特賜齋號與記文 使此空山權室 賁然生光 則一門受賜 亦多矣 敢瀆尊聽 惶恐無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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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艮齋先生 【丁未】 顧此昏黑世界 履霜堅冰已極 士當明春秋大義 撥亂反正 可也 然非惟才勇不足 只是窮而在下 雖欲奮起 勢所末田也 潛處林盧 俯讀仰思 粗窺一箇道理曰 但當抱經遯迹 忍痛自靖 雖枯死溝壑 甘受母悔 是也 淺見似此 未知如何 餘伏望體仁衛道 以慰天下之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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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艮齋先生 【戊申】 遠望海山 山氣秀麗 而名又嘉矣 蓋群山3)與臣峙 自濛澒澒 肇判誰錫嘉名 以待今日 每擬一進候謁 兼欲玩其形勝而未果 去月二十日 因任德仁便 得船於沙津 而才到格浦 風勢不利 留四五日 終不得放舟 且居處舟中 身作寒疾 亦不遂意而歸 此時情私 何以仰達 下示敬義 兩進之敎 敢不加勉以副先生惓惓下敎之意乎 伏念內而立心 正而直之 然後 外敏而制事 敏以方之 此所謂敬以直内 義以方外也 然則 是終身事業 非一朝一夕而可到者 未知如何 餘伏望依仁弘道 隨所遇而安 정서본에는 "君山"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는 "群山"의 오기라고 판단되어 바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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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詩經 夫子何須勸讀詩 令人興感戒懲之列國變風觀世俗 盛周大雅想威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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