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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北道 古阜郡宮洞面 靑良里 洞第 統苐戶籍表第 號 註明戶主 宋馹淳 年四十五 本礪山 職幼學 業農 前居地 移居月日父 學生 鎭龜生父祖 學生 培曾祖 學生 奎燦外祖 學生 黃永煥 本紆州同居親屬妻 丹陽禹氏歲四十六子 幼學榜玉年二十七婦 婦興城張氏歲二十六寄口 : 男 口 女 口雇傭 : 男 一口 女 口現存人口 : 男 二口 女 二口 共合 : 五口宅家 : 己有 瓦 間 草 六間 借有 瓦 間 草 間 共合 : 間光武六年二月 日郡守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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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송일순(宋馹淳)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光武二年二月 古阜郡守 宋馹淳 光武二年二月 古阜郡守 전북 고부군 [郡守官印] 1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1898년(광무 2) 2월에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궁동면(宮洞面) 청량리(靑良里)에 사는 송일순(宋馹淳)이 작성한 호적표(戶籍表). 1898년(광무 2) 2월에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궁동면(宮洞面) 청량리(靑良里)에 사는 송일순(宋馹淳)이 작성한 호적표(戶籍表)이다. 호적표는 1896년(건양 1)에 공표된 호구조사규칙(戶口調査規則) 및 호구조사세칙(戶口調査細則)에 따라 각 항목을 양식화하여 인쇄한 새로운 호적양식이다. 호적표의 기재항목은 호주의 거주지, 주소, 이름, 나이, 본관, 직업, 사조(四祖)사항을 기재할 뿐만 아니라, 이전 거주지, 전입 시기, 동거친속(同居親屬), 가택(家宅) 소유현황 등이 추가되었다. 이 문서 역시 이러한 양식에 맞춰서 인쇄한 종이에 각 항목을 채웠다. 호주(戶主) 송일순의 나이는 44세로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그의 직업은 농업이고 직(織)은 유학(幼學)이다. 호적표에는 호주의 사조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부친은 송진구(宋鎭龜), 조부는 송배(宋培), 증조부는 송규찬(宋奎燦), 외조부는 황영환(黃永煥)이다. 외조부의 본관은 홍주(紆州)이다. 송일순은 아내,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았다. 처(妻) 단양우씨(丹陽禹氏)의 나이는 41세이고 아들 송방옥(宋榜玉)은 23세이며 자부(子婦) 흥성장씨(興城張氏)는 22세이다. 현존인구 항목에는 실제 거주자를 파악하기 위해 동거친속 뿐만 아니라 기구(奇口), 고용(雇傭) 인원까지 포함하여 기재하도록 했다. 현존인구 항목에는 남 2구, 여 2구, 공합(共合) 4구로 기재되어 있다. 가택(家宅) 항목을 살펴보면 기유(己有)칸에 초가(草家) 5간(五間)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기유는 가택이 본인 소유일 경우에만 기재하는 항목이다. 만약 호주가 거주하는 가택이 빌린 것일 경우 차유(借有) 칸에 기재하게 되어있다. 즉, 송일순이 거주한 가택이 본인 소유의 초가집이며 크기가 5칸임을 뜻한다. 1898년에 작성된 호적표에는 송일순 처의 나이가 잘못 기재되어 있다. 단양우씨(丹陽禹氏)의 나이는 송일순보다 1살 많다. 그러나 호적표에는 3살 적게 적혀있다. 송일순이 호주로 기재된 호적표는 1897년부터 1906년까지 작성된 총 9장이 전해지고 있다. 이 9년 동안 그의 거주지는 계속 고부군 궁동면 청량리에 머물렀으며, 아들과 며느리를 거느리고 처와 더불어 2대가 함께 살아가는 주거 형태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손주는 이 호적표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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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未三月卄二日 右人前手標右標事果以舍兄之債事屢次官庭推卞而至今必報乃已故右錢三十兩减條而以租二石今十月晦內代捧之意如是成標如有他端則右錢三十兩並本利推給事標主 幼學 金成叔[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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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北道 古阜郡宮洞面 靑良里 洞第 統苐戶籍表第 號 註明戶主 宋馹淳 年四十四 本礪山 職幼學 業農 前居地 移居月日父 學生 鎭龜生父祖 學生 培曾祖 學生 奎燦外祖 學生 黃永煥 本紆州同居親屬妻 丹陽禹氏歲四十一子 幼學泰玉年二十三婦 婦興城張氏歲二十二寄口 : 男 口 女 口雇傭 : 男 口 女 口現存人口 : 男 二口 女 二口 共合: 四口宅家: 己有 瓦 間 草 五間 借有 瓦 間 草 間 共合 : 間光武二年二月 日郡守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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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조한국(趙漢國)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서(序) 고문서-시문류-서 교육/문화-문학/저술-서 癸卯春 趙漢國 癸卯春 趙漢國 전북 정읍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1903년에 조한국(趙漢國)이 작성한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의 서(序). 1903년에 조한국(趙漢國)이 작성한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의 서문이다.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은 호남지방의 충절, 충효, 정절에 관한 기록을 모은 책자로, 9권 8책의 석인본이다. 편자는 미상이다. 권1에 충신몽포(忠臣蒙褒), 권2·3에 효자몽포(孝子蒙褒), 권4에 열녀몽포(烈女蒙褒), 권5에 충신건사(忠臣建祠), 권6∼8에 효자미몽, 권9에 열녀미몽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조한국은 본관이 임천(林川)으로, 1880년(고종 17) 증광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에 들어가, 1895년 충주부관찰사를 거쳐 내무아문협판(內務衙門協辦)을 지내다가 1897년 광주부윤(廣州府尹), 1898년 개성부윤, 경상북도관찰사가 되었다. 1899년 궁내부특진관·궁내부협판을 거쳤다. 1900년 전라북도관찰사, 1904년 충청남도관찰사를 지냈다. 1904년 충청남도관찰사·의정부참찬·궁내부특진관, 1905년 시강원첨사(侍講院詹事)·장례원소경(掌禮院少卿), 1906년 제실회계심사국장(帝室會計審査局長), 1907년 지돈녕사사(知敦寧司事)·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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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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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武四年庚子四月初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伏在全羅北道萬頃南一面竗羅坪方字畓十七斗落結三十八負果同字畓六斗落結十三負七束果同字畓五斗落結十一負一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三負七束果同字畓三斗落結七負六束果同字畓四斗落結九負五束果同字畓十二斗落結二十六負七束果盖字畓九斗落結二十六負果同字畓十五斗落結三十三負六束果同字畓六斗落結十五負六束果同字畓六斗落結十五負四束果同字畓十斗落結二十五負七束果同字畓十二斗五升落結二十七負一束果同字畓六斗落結十二負三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四負五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一負七束果同字畓十二斗五承落結二十七負一束果食字畓四斗落結七負四束果同字畓六斗落結十六負七束果同字畓四斗落結十一負八束果此字畓十三斗落結二十五負七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二負三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二負三束果同字畓十三斗落結三十負四束果同字畓四斗落結十一負九束果場字畓九斗落結二十四負七束果化字畓八斗落結二十二負二束果髮字畓九斗落結二十九負四束果身字畓六斗落結十七負一束果萬字畓四斗落結七負三束果木字畓十二斗落結二十六負七束果白字畓十五斗落結三十五負二束果同字畓六斗落結十負二束果在樹字畓十五斗落結三十三負果衣字畓九斗落結二十四負一束果制字畓十三斗落結二十八負八束果樹字畓十三斗落結二十三負九束果鳴字畓九斗落結十七負七束果同字畓八斗落結十三負一束果同字畓九斗落結三十負八束果同字畓十八斗落結四十負果鳳字畓十斗落結二十三負九束果同字畓九斗落結二十二負果同字畓三斗落結六負二束果賴字畓九斗落結二十負三束果制字畓三斗落結五負二束果食字田三斗落結九負果同字田三斗落結七負八束果同字田二斗落結五負果場字垈田一斗落結一負廤合田與畓貳拾石拾捌斗落乙価折錢文壹萬捌仟伍百兩依數捧上是遺右宅前以新文記㱏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此文記憑考爲乎事畓主 萬頃 李福宗[着名]從兄 李允化[着名]證人 吳云先[着名]筆執 京 張永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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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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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0년 임도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隆熙四年三月初五日 任道淑 大韓隆熙四年三月初五日 전북 부안군 [印]3개 1.2*1.2 3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0년(융희4) 3월 초5일 임도숙(任道淑)이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군(萬頃郡) 남일면(南一面) 묘라리(竗羅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0년(융희4) 3월 초5일 임도숙(任道淑)이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군(萬頃郡) 남일면(南一面) 묘라리(竗羅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밭의 주인 임도숙은 궁춘(窮春)하여 부득리 하게 농사지어 먹던 왔던 밭을 팔게 되었다. 즉, 궁춘이란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서 농가의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였던 것이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전라북도 만경군 남일면 묘라리 장자전(場字田) 4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9부(負) 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80냥이다. 묘라리는 오늘날의 김제군 성덕면 묘라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임도숙은 구문기(舊文記)가 다른 문서와 함께 붙어 있어 내어 줄 수 없다고 하며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매매 대상이 된 밭의 사표(四表)를 살펴보면 동(東)쪽으로는 강흥숙(姜興叔)의 밭이 있고 남(南)쪽으로는 임창숙(任昌叔)의 밭이 있다. 그리고 서(西)쪽은 길(路)이 접해있고. 북(北)쪽으로는 임문숙(任文叔)의 밭이 있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밭의 주인 임도숙과 증인(證人)은 강흥숙, 이장(里長) 임은숙(任殷淑)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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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隆熙四年三月初五日前明文右明文事當此窮春勢不得而耕食田夫伏在萬頃南一面竗羅洞場字田四斗落只所耕九負㐣価折捌拾兩依數捧上爲遣旧文幷付他卷故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四表東姜興叔田 南任昌叔田西路 北任文淑田田主 任道淑[印]證人 姜興叔[印]里長 任殷淑[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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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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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이공필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隆熙二年戊申二月二十二日 李公弼 隆熙二年戊申二月二十二日 전북 부안군 [印], [着名] 2개 1.3*1.3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8년(융희 2) 2월 22일 이공필(李公弼)이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군(萬頃郡) 남일면(南一面) 도하리(道下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8년(융희 2) 2월 22일 이공필(李公弼)이 전라북도(全羅北道) 만경군(萬頃郡) 남일면(南一面) 도하리(道下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이공필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전라북도 만경군 남일면 도하리 제방 아래 정자전(貞字田) 12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27부(負) 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840냥이다. 도하리는 오늘날 김제시 성덕면 남포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매도인(賣渡人) 이공필은 구문기(舊文記)가 다른 문서와 함께 붙어 있어 내어 줄 수 없다고 하며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이공필과 증인(證人) 서민택(徐敏澤), 증필(證筆)은 임은숙(任殷淑)이 참여하였다. 임은숙은 상중(喪中)이어서 도장을 찍었고 답주와 증필은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문서 뒷면에는 '萬頃石洞李公弼十二斗落文券' 만경현 석동에 사는 이공필의 12두락지 문권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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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八年壬辰正月二十五日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伏在上西安德洞前坪 字畓七斗落所耕二十三負三束㐣價折錢文肆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他畓倂付故未得出給而以新文一張永永放爲去乎日後如有爻象之端則持此新文一張憑考事畓主 幼學 高道日[着名]證筆 幼學 張德良[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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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박화연(朴化然)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朝鮮開國五百五年丙申十一月 日 朴化然 大朝鮮開國五百五年丙申十一月 日 朴化然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6년 11월에 유학(幼學) 박화연(朴化然)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玄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6년 11월에 유학(幼學) 박화연(朴化然)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玄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화연은 긴요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삼현동 전평(前坪)에 있는 논 3마지기, 부수(負數)로는 7부 8속이 되는 곳을 3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논의 문서에 붙어 있으므로 신문기 1장을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박화연과 증필(證筆)로 유학 박윤준(朴潤俊)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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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朝鮮開國五百五年丙申十一月 日 前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下西面三玄洞前坪 字畓三斗落卜數七負八束㐣價折錢文三十兩依數捧上以遣舊文記他畓倂付故以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若有爻象之段則持此文記告官卞呈事畓主 幼學 朴化然[着名]證筆 幼學 朴潤俊[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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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고제현(高濟賢)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朝鮮開國五百五年丙申十一月 日 高濟賢 大朝鮮開國五百五年丙申十一月 日 高濟賢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6년 11월에 유학(幼學) 고제현(高濟賢)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玄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6년 11월에 유학(幼學) 고제현(高濟賢)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玄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고제현은 긴요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삼현동 전평(前坪)에 있는 논 7마지기, 부수(負數)로 23부 3속이 되는 곳을 7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2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고제현과 증필(證筆)로 유학 장봉옥(張鳳玉)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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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朝鮮開國五百五年丙申十一月 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路伏在下西三玄洞前坪字畓七斗落卜數二十三負三束庫乙價折錢文七十兩依數捧上是遣以新舊文記二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則持此文記告官卞呈事畓主 幼學 高濟賢[着名]證筆 幼學 張鳳玉[着名](別紙)三賢洞前坪劉乃花十斗落文券三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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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나치구(羅致九)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癸卯十二月初三日 羅致九 癸卯十二月初三日 1903 羅致九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3년 12월 3일에 나치구(羅致九)가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건천리(乾川里)에 있는 목화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3년 12월 3일에 나치구(羅致九)가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건천리(乾川里)에 있는 목화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나치구는 한겨울에 살아갈 방법이 없어서 건천리 전평(前坪)에 있는 목화밭(綿田) 3마지기와 산세(山稅) 5부 2속을 38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구문기는 유실되어서 출급하지 못했다. 거래 당시 논 주인 나치구와 증필(證筆)로 강봉국(姜鳳國)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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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捌年戊戌七月初八日蔡生員奴春石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傳來畓下西伏在頓池前坪屈乃坪中字畓十一斗落只所耕二十一負庫果西邊四斗落只所耕四負二束庫乙價折錢文陸拾貳兩依數捧上是遣本文記一丈並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紛紜之弊是去等持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李汝宗[着名]證人 南順伊[着名]筆執 高夢說[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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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이관필(李寬弼)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四年己未十二月初九日 李述里金 李寬弼 嘉慶四年己未十二月初九日 李述里金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99년(정조 23) 12월 9일에 이술리금(李述里金)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에 있는 논을 이관필(李寬弼)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99년(정조 23) 12월 9일에 이술리금(李述里金)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에 있는 논을 이관필(李寬弼)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술리금은 살아나갈 길이 지극히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조상 때부터 내려온 논인 돈지리의 전평(前坪)에 있는 굴내평(屈乃坪) 중자답(中字畓) 11마지기와 서변(西邊) 논 4마지기를 이관필에게 19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는 중간에 유실되어 부득이 출급하지 못하고 신문기를 건네주어 나중에 자손 중 만약 다른 말이 있은 경우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술리금과 증인(證人)으로 재종제 이탁주(李卓柱), 필집(筆執)으로 유학 한태윤(韓泰允) 등 3인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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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四年己未十二月初九日李寬弼前明文右明文事段生道極難故勢不得已祖上傳來畓下西伏在頓池前坪屈乃坪中字畓十一斗落只所耕二十一負庫果西邊四斗落只所耕四卜二束庫乙價折錢文㱏百玖拾兩依數捧上是遣本文記段中間遺失故不得出給而以新文記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若有二言之弊則持此文告官卞正事畓主 李述里金[着名]證人 再從弟 李卓柱[着名]筆執 幼學 韓泰允[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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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신옥년(辛玉年)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四年戊寅二月十二日 辛玉年 光緖四年戊寅二月十二日 辛玉年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8년(고종 15) 2월 12일에 신옥년(辛玉年)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8년(고종 15) 2월 12일에 신옥년(辛玉年)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옥년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부안현 일도면 정지제(定只堤) 아래 임자답(臨字畓) 13마지기와 심자답(深字畓) 12마지기를 300냥에 팔았다. 임자답은 부수(負數)로는 30복, 심자답은 31복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를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은 경우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옥년과 증인(證人)으로 전여백(田汝伯)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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