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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 성명【시귀】에 대한 만사 挽金公聖名【時龜】 능주는 경치가 좋은 고을이니 (紅綾山水邑)남쪽에 높은 하봉이 있네 (南有霞峯高)운림엔 푸른빛 감돌고 (雲林擁蒼翠)천석은 주위를 둘렀네 (泉石圍周遭)십여 호의 마을에 (籬落十餘戶)김씨가 은거한 곳 남아 있네 (金氏菟裘存)화목함은 향리에 드러났고 (惇睦著鄕里)시례는 자손에게 전하였네 (詩禮傳子孫)공이 온 것 그 어느 해였나 (公來昔何年)선업을 잘 계승하였네 (克肖先業美)풍도는 고인과 같고 (風度古人如)예악은 선배와 같았네 (禮樂先進似)효우는 집안에 넉넉하였고 (孝友洽于室)충신은 사람을 탄복시켰네 (忠信服於人)직접 농사지어 삼생199)으로 봉양하였고 (躬耕養三牲)술을 마련하여 사방 이웃을 모았네 (得酒會四隣)오직 천공만 알았으니 (惟有天翁知)복록은 은택이 많았네 (福祿多嘉惠)처자와 천수를 누렸고 (合琴共百齡)벗들은 한 기예를 지켰네 (群蘭守一藝)상복을 입고 함께 골목에 모이니 (緦服共巷聚)비난하는 말 들리지 않네 (未聞齗齘言)평생 온화한 기운을 간직하며 (平生和氣裏)소요한 즐거움 잊을 수 없네 (逍遙樂未諼)우리 집안과 주진200)같은 우의는 (鄙家朱陳誼)계속해서 어긋난 적이 없었네 (源源不曾虧)선군께서 살아 계실 적에 (先君在世日)노쇠한 나이에 친구가 드물었는데 (癃耋罕舊知)공이 찾아와 외롭고 적막함을 위로하여 (公尋慰孤寂)밤새 재미있게 담소를 나누셨네 (達夜語津津)작별하려다 도리어 오래 머물렀고 (欲别還留久)가자마자 자주 왔었네 (纔去復來頻)선군이 별세한 뒤에 (先君棄世後)공의 병이 선친과 같았네 (公病如先君)소자가 안부를 살피는 일 (小子省候節)다만 공처럼 부지런하지 못했네 (但末如公勤)쇠락하여 겨를이 없었지만 (沈没無暇隙)정녕코 하루인들 잊었겠나 (期擬何日忘)누가 알았으랴 기다리지 않고 (誰知不相待)갑자기 제향201)으로 가실 줄을 (遽爾歸帝鄕)이로부터 향린에는 (自此鄉隣間)선친의 벗 더 이상 있지 않네 (先友更無有)귀를 잡고 정성스럽게 가르쳐 주는 것 (提耳諄諄誨)아, 어느 곳에서 받을 수 있으랴 (嗚乎何處受)밤 누대 위에서 아득히 생각하니 (緬想夜臺上)옛 유람 선친과 함께 하리라 (舊遊共先親)소자가 저승에서 선친을 모실 때 (小子歸侍日)수일 안으로 응당 찾아가리라 (行應不多辰) 紅綾山水邑。南有霞峯高。雲林擁蒼翠。泉石圍周遭。籬落十餘萬。金氏菟裘存。惇睦著鄕里。詩禮傳子孫。公來昔何年。克肖先業美。風度古人如。禮樂先進似。孝友洽于室。忠信服於人。躬耕養三牲。得酒會四隣。惟有天翁知。福祿多嘉惠。合琴共百齡。群蘭守一藝。緦服共巷聚。未聞齗齘言。平生和氣裏。逍遙樂未諼。鄙家朱陳誼。源源不曾虧。先君在世日。癃耋罕舊知。公尋慰孤寂。達夜語津津。欲别還留久。纔去復來頻。先君棄世後。公病如先君。小子省候節。但末如公勤。沈没無暇隙。期擬何日忘。誰知不相待。遽爾歸帝鄕。自此鄉隣間。先友更無有。提耳諄諄誨。嗚乎何處受。緬想夜臺上。舊遊共先親。小子歸侍日。行應不多辰。 삼생(三牲) 소·양·돼지 세 가지 고기를 갖추어 봉양하는 것이다. 주진(朱陳)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시 「주진촌(朱陳村)」에 나오는 옛 마을의 이름으로, 한마을에 주씨(朱氏)와 진씨(陳氏) 두 성씨만 살면서 대대로 서로 혼인하여 세의(世誼)가 있었다고 한다. 제향(帝鄕) 옥황상제가 사는 하늘나라로, 『장자(莊子)』「천지(天地)」에 "저 흰 구름을 타고 제향에 이른다.[乘彼白雲, 至於帝鄕]"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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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67년 부안김씨(扶安金氏) 응산보청(鷹山譜廳)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丁卯九月 日 扶安金氏 鷹山譜廳 扶安金氏 羅州宗中 丁卯九月 日 1867 鷹山譜廳 扶安金氏 羅州宗中 전라북도 부안군 7.0*5.5(장방형) 흑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7년(고종 4) 9월에 부안김씨 응산보청에서 나주 종중에 보낸 통문. 1867년(고종 4) 9월에 부안김씨(扶安金氏) 응산보청(鷹山譜廳) 에서 나주 종중(羅州宗中)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모든 계파를 망라한 대동보를 만들기 위하여 각 종중에 수단(收單)과 전래(傳來) 문첩(文牒) 등 관련 문서를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대동보를 편찬하려는 노력은 여러 차례 시도되었으나 결실을 보지 못하고 각파에서 파보(派譜)만 만들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종의(宗議)에서 회동한 뒤에 지난 무술년과 계해년에 교정 작업을 하였으나 일이 있어서 중지되었고, 그 뒤에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자료들이 망실되었다. 그러나 각 종파들이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남남처럼 된 형편이어서 소목(昭穆)을 밝혀 매해마다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백세일실(百世一室)의 문중을 되살릴 필요성도 그만큼 절실해졌다. 그리하여 작년 가을에 종중에서 발의하여 보청(譜廳)을 설치하고 수단(收單)을 하고 오는 3월 그믐까지는 족보를 편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 문서는 나주의 종중에 이러한 내용을 다시 알려 관련 자료를 속히 보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통문의 작성연대는 정묘년으로만 기재되어 있으나, 통문에 서명한 도유사 김홍제(金弘濟)의 호구단자(戶口單子)들이 호남권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에 탑재되어 있어서 이를 토대로 위 정묘년을 1867년으로 추정하였다. 호구단자에 따르면 김홍제는 1822년생으로 부안현 상동면 상리에 거주하였는데, 1867년부터 1885년까지 그가 작성한 6건의 호구단자들이 현존하고 있다.(1867년 김홍제(金弘濟) 호구단자(戶口單子)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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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암【익현】어른의 신안사 간행소에서 감회가 있다는 시에 차운하여 드리다 次呈勉庵崔丈【益鉉】新安刊所有感詩 바라봄에 산두178)와 같아 우리 동방을 지키니 (望如山斗鎭吾東)부녀자나 천한 사람이나 앙모하는 마음 같네 (婦孺輿儓慕仰同)탐욕스러운 무리179) 참으로 두려워할 만하니 (封豕長蛇眞可畏)집안에서 다투는 것 이것이 무슨 풍조인가 (鬩墻闘室此何風)풀뿌리에 붙은 반딧불180)은 빛이 되기 어렵고 (草根螢爝難爲照)불길 앞 한 잔 물181)은 공이 되지 못함 부끄럽네 (杯水車薪愧不功)오직 선생만이 지휘하여 넓히는 힘이 있어 (惟有先生揮廓力)은연중에 하나의 의견으로 모아졌네 (脗然歸合一家中) 望如山斗鎭吾東。婦孺輿儓慕仰同。封豕長蛇眞可畏。鬩墻闘室此何風。草根螢爝難爲照。盃水車薪愧不功。惟有先生揮廓力。脗然歸合一家中。 산두(山斗) 태산북두(泰山北斗)의 준말로, 세상 사람들이 흠앙(欽仰)하는 훌륭한 사람을 비유한다. 여기서는 최익현(崔益鉉)을 비유한 말이다. 탐욕스러운 무리 여기서는 왜적을 비유한다. 『춘추좌씨전』 정공(定公) 4년 조에 "오나라는 큰 돼지와 뱀이라서 끊임없이 상국을 침범하고 있다.[吳爲封豕長蛇, 以荐食上國.]"라고 하였다. 풀뿌리에 붙은 반딧불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글에 "반딧불과 촛불은 하찮은 빛이지만, 해와 달에 광휘를 더하리이다.[螢燭末光, 增輝日月.]"라고 하였다. 『曹子建集 卷8 求自試表』 불길……물 『맹자』「고자 상(告子上)」에 "오늘날 인을 실천하는 자는 한 잔의 물로 한 수레 가득한 땔나무의 불을 끄려고 하는 꼴이다.[今之爲仁者, 猶以一杯水救一車薪之火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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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여【승현】에게 답함 答黃新汝【承顯】 쓸쓸하고 적막한 가운데 늙고 병들어 있는데 벗의 편지가 오니 또한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버금가네. 그 고마움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인하여 조부모, 부모를 기쁘게 모시는 가운데 신이 위로하여 건강함을 알게 되니, 더욱 우러르는 마음에 위안이 되네. 집안이 깊고 넓어서 주관해야 할 일이 매우 많으니, 전력으로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네. 자제가 할 일을 하지 않고 한갓 종이 위의 말에 얽매인다면 과연 어찌 학문이라 하겠는가. 보내준 편지를 읽어보니 회한하고 분비(憤悱)69)하는 뜻이 지면에 넘쳐나네. 참으로 이런 마음을 보존하여 평소에 행한다면 어버이를 섬기고 책을 읽는 것을 둘 다 함께 실행할 수 있으며 두 가지가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일세. 가장 훌륭한 사업은 이것보다 뛰어날 수 없으니 힘쓰고 또 힘써야 하네. 나는 근래 설사병을 앓아 한 달이 다되도록 차도가 없으니 너무나 괴롭다네. 경함(景涵)은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에게 보낼 답서 두 편을 써놨는데, 인편이 없어서 아직까지 오랫동안 부치지 못하였네. 지금 함께 보내니 그가 돌아오면 전달해주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말을 공교롭게 하고 낯빛을 아름답게 한다.'는 말에 대해 《집주》에서 주자는 "성인의 말은 박절하지 않으니 전적으로 '드물다[鮮]'고 하면 절대로 없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공자의 말은 이미 박절하지 않은데, 주자의 말은 어찌 그리 박절합니까. 매우 아쉽습니다.답변 : 본문을 해석한 것이니, 그 말이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네.질문 : 〈미자편〉의 첫머리에서 옛사람의 출처를 보인 연후에 성인의 출처를 보인 것70)은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이는 여러 주장을 모아서 절충(折衷)했기 때문이네. 衰病涔寂中。則故人書墨。亦足爲追從對晤之亞也。感感何喩。仍審重侍供歡。神勞多福。尤庸慰仰。家戶深闊。幹務多端。其不得專力讀書。固亦宜矣。不修子弟之職。而徒鎖紙上語。果何學也。及讀來喩。其悔悟憤悱之意。溢於紙面。苟能存此心而行於日用之間。則事親讀書。可以交修倂進。而有以相資矣。太上事業。無出此右。勉之勉之。義林近患痢症。彌月不退。苦事苦事。景涵尙不還家否。此有答書二片。而無便未付久矣。今倂以去。待其還。爲之傳致如何。巧言令色。集註朱子曰。聖人辭不迫切。專言鮮。則絶無可知。孔子之言。旣不迫切矣。朱子之言何其迫切痛缺。解釋本文。其言不得不爾。徵子篇。首以見古人出處然後。以見聖人之出處何。此集衆說折其衷之義。 분비(憤悱) 분비의 분은 마음속으로 뭔가를 통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하고, 비는 입으로 말을 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입으로 말해 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거니와,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이로써 세 귀퉁이를 유추해서 알지 못하면 다시 더 말해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미자편의……보인 것 〈미자〉 첫 부분에서 은나라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과 유하혜(柳下惠)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공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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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준에게 답함 答鄭士遵 한 폭의 소중한 편지는 참으로 뜻밖이었네. 공청(空靑)과 수벽(水碧)94)이라도 어찌 그 귀함을 비유하겠는가. 편지를 펼쳐서 읊조리니, 괴롭고 답답한 마음이 활짝 열려 눈 녹듯 사라지니, 마치 한문95)에 날아올라 맑은 바람을 맞는 듯하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이 매우 좋다고 하니 더욱 머리를 조아려 축원하는 마음에 흡족하네. 편지 내용 가운데 '경전의 스승이 사람 스승만 못하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그렇다네. 그러나 옛 사람이 이르지 않았는가. "제자가 물은 곳을 가지고 지금 자신의 질문으로 삼아보며, 성인이 답한 곳을 가지고 지금 귀로 들은 것으로 삼는다.……"96)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어찌 경전 스승이 사람 스승만 못하겠는가. 더구나 정신과 마음으로 깨우치는 것은 직접 말로 고하여 가르치는 것보다 낫지 않음이 없으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一幅珍函。眞望外也。空靑水碧。何足以喩其貴也。披玩諷詠。足令苦鬱之懷。豁然消釋。如羾寒門而灈淸風也。仍審侍省節宣。凡百安宜。尢愜頂祝。示中經師不如人師之說。是固然矣。然古人不云乎。將弟子問處。便作今日已問。將聖人答處。便作今日耳聞云云。苟能如此。則經師何嘗不如人師乎。况神會心得。未必不勝於口誥而命之爲也。如何如何。 공청과 수벽 한약의 약재이다. 한문(寒門) 초사(楚辭) 〈원유(遠遊)〉에, "한문의 경계를 넘어 더 멀리 달린다.〔逴絶垠乎寒門〕"라는 구절이 있는데, 왕일(王逸)의 주(註)에, "한문은 북극의 문이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공중지(鞏仲至)가 시를 보내 준 데 답한 편지에, "이 더운 여름에 시원하기가 한문(寒門)에 날아올라 맑은 바람에 씻은 듯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인용한 말이다. 제자가……삼는다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류(致知類)〉에 "《논어》를 읽는 자가 다만 제자들이 질문한 것을 자신이 질문한 것으로 여기고, 성인이 대답한 것을 바로 오늘 귀로 듣는 것으로 여긴다면 자연히 터득함이 있을 것이니, 만약 《논어》와 《맹자》 가운데에서 깊이 구하고 완미하여 함양해 간다면 비상한 기질을 이루게 될 것이다.[讀論語者 但將弟子問處 便作己問 將聖人答處 便作今日耳聞 自然有得 若能於論孟中 深求玩味 將來涵養 成甚生氣質]"라는 정이(程頤)의 말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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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행24) 【건신】에게 답함 答李汝行【建信】 편지로 서로 안부를 묻는 것도 벗들 사이에 좋은 일인데, 더구나 의심스럽고 답답한 심정이 편지 가득하여 보통 안부를 묻는 것과 견줄 것이 아님에야 어떠하겠는가? 근래 독서하여 얻은 힘을 여기에서 징험할 수 있겠네.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하니, 이것이 어떠한 좋은 시절인가? 나가서는 일을 주관하고 들어와서는 독서하되 엄격히 과정을 세워 조금도 쉬거나 폐하지 말기를 부디 바라고 바라네. 육행(六行)25)으로 말하면 우(友)가 효(孝) 아래에 있고, 팔형(八刑)26)으로 말하면 제(悌)가 인(婣) 아래에 있네. 대개 형벌을 만든 뜻은 비자(卑者)를 위해 그 존자(尊者)를 형벌주지 않으니, 아버지가 비록 부자(不慈)하더라도 부자의 형벌이 없고, 형이 비록 불우(不友)하더라도 불우의 형벌이 없네. 그러므로 단지 부제(不悌)의 형벌을 목인(睦婣) 아래에 말하였으니, 대개 동성과 이성의 존장을 통틀어 말한 것이네. 이 뜻은 집주(集註) 속에도 있으니, 살펴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書幅相問。朋友好事。矧有疑鬱滿紙。非尋常寒暄之比耶。近日讀書之力。從可驗矣。父母俱存。兄弟無故。此何等好時節耶。出而幹務。入而讀書。嚴立課程。勿少休廢。千萬望望。人於幼穉。有忌太溫。故至二十而衣裘帛。以六行言。則友在孝下。以八刑言。則悌在婣下。蓋造刑之意。不爲卑者以刑其尊者。父雖不慈。而無不慈之刑。兄雖不友。而無不友之刑。故只言不悌之刑於睦婣之下。蓋統同異姓尊長而言者也。此意在集註中。諒之如何。 이여행(李汝行) 이건신(李建信, 1880~?)을 말한다. 자는 여행,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육행(六行) 《주례》〈지관사도(地官司徒)〉의 효(孝), 우(友), 목(睦), 인(婣), 임(任), 휼(恤)을 말한다. 팔형(八刑) 《주례》〈지관사도(地官司徒)〉의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인(不婣), 부제(不弟), 불임(不任), 불휼(不恤), 조언(造言), 난민(亂民)의 형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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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길【운형】에게 답함 答金士吉【潤亨】 편지를 받은 뒤 여러 날이 지났는데, 잘 모르겠네만 부모를 모시고 공부하는 가운데 근황은 어떠한가? 사길은 자질이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우며 재능이 밝게 뜨여 오당(吾黨)의 젊은이 가운데 두려운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네. 지난 번 신안사(新安社)에서 계남(溪南)과 애산(艾山)30) 등 여러 어른과 이런 자네에 대해 말이 미쳤는데, 다만 두 아이31)가 장난을 쳐서 비록 아쉬운 점이 있지만 저들이 비록 기운을 빼앗더라도 봄날의 꽃샘추위나 가을날의 늦더위처럼 오래 가지 않을 것이네. 다만 바라건대 더욱 더 마음을 굳게 하고 생각을 정하여 양명정대(陽明正大)한 기운으로 하여금 나날이 채워 자라게 한다면, 저 하찮은 여증(餘證)은 다만 눈이 햇빛에 녹는 것처럼 사라질 것일세. 나를 따르며 친밀하게 지내는 한 무리의 젊은이 가운데 우리 그대 같은 이에 대해 나는 부탁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성(性)이란 만물의 한 가지 근원이니, 어찌 일찍이 '가깝다' '가깝지 않다'고 말할 것이 있겠는가. "서로 가깝다."32)고 한 것은 이는 기질지성(氣質之性)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네. 그러나 이른바 '기질지성'이란 것도 또한 다른 곳에 있는 또 다른 한 성이 아니네. 전적으로 이(理)를 가리켜 말한다면 본연지성(本然之性)이요, 기를 겸하여 말한다면 기질지성이네. 이(理)는 기의 주재자요, 기는 이(理)의 바탕이 되니, 어찌 일찍이 선후(先後)를 말할 수 있는가. 이 때문에 근원에 나아가 그 물줄기를 보는 것이 있으며 흐르는 물에 나아가 근원을 가리키는 것이 있으니, 각각 가리키는 것을 따라 선후를 말하는 것도 또한 어찌 해로움이 되겠는가. 書后有日。未審侍旁學履。近節何如。士吉天姿謹慤。才性開爽。在吾黨少年。未始非可畏人也。向於新安社。與溪艾諸丈語及矣。但二竪作戱。雖若可憾。而彼已奪氣如春寒秋熱之不能久。惟益加堅心定慮。使陽明正大之氣。日日充長。則彼小小餘證。不啻見晛矣。從遊親密。一隊少年。如吾友者不能無區區寄托之意如何。性者萬物之一原。何黨有近不近之可言。其言相近者。是指氣質之性而言。然所謂氣質之性。亦非別有一性在別處也。單指理言之。則本然之性也。兼指氣言之。則氣質之性也。理是氣之主。氣是理之質。何嘗有先後之可言。是以有卽源而見流者。有溯流而指源者。各隨所指而說先後。亦何妨耶。 계남(溪南)과 애산(艾山) 계남은 최숙민(崔琡民, 1837~1905)의 호이고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호이다. 최숙민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칙(元則)으로, 기정진의 문인으로 진주(晋州)에 거주하였다. 정재규의 본관은 초계, 자는 영오(英五), 후윤(厚允)으로, 〈납량사의기의변(納凉私議記疑辨)〉·〈외필변변(猥筆辨辨)〉 등을 지어 전우(田愚)의 기정진에 대한 반박을 변론하여 철학사적으로 중요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두 아이 원문의 '이수(二竪)'는 병마(病魔)의 별칭이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경공(景公)의 꿈에 병마가 두 아이[二竪]의 모습으로 나타나 고황(膏肓) 사이에 숨는 바람에 끝내 병을 고칠 수 없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春秋左傳 成公10年》 서로 가깝다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성은 서로 가까우나 습관에 따라 서로 멀어지는 것이다.[性相近也 習相遠也]"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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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일【경식】에게 답함 答文士一【敬植】 연초에 성산(星山)으로 길을 나섰는데, 매우 급한 일이 있었네. 그래서 곧바로 가는 길을 취하였다가 즉시 돌아왔기에 그대의 집에 들르지 못하였네. 그런대 뜻밖에 인편을 통해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니 고마우면서 위안이 됨이 어떠하겠는가. 인하여 부모님을 모시면서 그대 건강이 한결같이 좋은 것을 알게 되니, 실로 내가 듣고 싶었던 것에 부합하네. 의림은 늙고 병든 지 오래되어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데, 보잘 것 없는 오랜 학업은 텅 비어서 하늘의 뜬 구름과 같으니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랴! 보내준 편지의 길고 자세히 말한 것에서 그대의 뜻이 게으르지 않음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매우 감탄하네. 별지의 예설에 대해 삼가 나의 생각을 조목에 따라 답하였는데 그것을 귀숙처로 삼지 말고 더욱 더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답변28) : 복제 중에 지친의 상은 기년(期年)으로 끊는데,29) 《의례》 〈상복도〉에서 지팡이를 짚지 않는다고 한 것은 누이[姉妹]에 대해 말한 것으로 누이도 또한 지친이기에 특별히 지친 기년을 입는 뜻을 말한 것이네. 혼인은 남에게 시집 간 것을 이른 것이니, 시집간 누이는 대공복을 입는다고 한 것은 출가한 자는 한 등급 내려서 입는 뜻을 특별히 말한 것이네. 열아홉 번째 안팎의 질문 조목에 대해서는 대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歲初星山之行。緣有悤故。取直道徑歸。未得委造仙扃。謂外便頭得承惠存。感沃慰豁。何又如之。仍審侍省候節。一衛崇祉。實副願聞。義林衰病浸淹。有難支吾。而區區舊業。曠然若先天浮雲。歎恨何爲。示喩縷縷。足見尊意之不懈。感服多矣。別幅禮說。謹以鄙意。隨條仰答。勿爲歸宿。更加玩索。如何。服制。至親以期斷。喪服圖不杖期云者。姊妹亦至親也。故特言其至親服朞之義也.嫁是適人之謂也。嫁大功云者。特言其出嫁者。降一等之義也。十九內外。不須言。 답변 편지의 본문 내용을 보면 질문하는 조목을 보냈다고 하였는데, 그 질문은 생략하고 답변만 기록한 것이다。이 책에는 이러한 형식의 글이 많이 보인다. 지친의……끊는데 《예기》 〈삼년문(三年問)〉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부모를 위한 본복(本服)은 기년에 해당하지만 가륭(加隆)을 해서 삼년복을 입는 것이다. 부모뿐만 아니라 집안의 지친의 복은 원래 기년복을 입는데, 상황에 따라 변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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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 학헌【시풍】에 대한 만사 挽金公鶴軒【時豊】 화표주의 학은 어찌 아득한가 (華鶴何迢迢)대인은 은거할 곳을 정했네 (碩人卜薖軸)가문은 효우를 전하여 돈독하였고 (家傳孝友敦)대대로 시서를 배워 익혔네 (世襲詩書讀)농사짓는 것으로 사업을 삼았고 (事業付犂鋤)시내와 대를 둘러 집을 지었네 (經綸排水竹)풍류는 벗들이 칭찬하였고 (風流諸友稱)의를 행한 것 향리에서 탄복하였네 (行義鄕隣服)내 젊었을 때부터 (自我少年時)가장 잘 알고 지냈네 (相知也最熟)추우나 더우나 매번 안부를 물었고 (寒暄每訊存)시와 술로 자주 교유하였네 (文酒頻追逐)어찌 하늘에 사랑을 받지 못하여 (何事不媚天)갑자기 불행한 소식 고하는가 (遽然告不淑)바람 앞의 등불은 정히 가련하니 (風燈正可憐)천리마가 틈을 지나듯249) 이 어찌 빠른가 (隙驥此何速)밤을 지키는 개가 어찌 새벽을 지키랴 (犬夜熟能晨)이 몸 백번 바치더라도 죽음을 대신할 수 없네250) (百身難可贖)끝내 옥과 같은 사람이 (終令如玉人)백운 골짜기에 높이 누웠네 (高卧白雲谷)아, 내 몸에 병이 들어 (嗟我病縻身)소식 듣고 기어서라도 가보지 못하였네 (聞之未匍匐)유명간에 저버린 것이 많으니 (幽明辜負多)홀로 앉아 눈물을 삼키며 곡하네 (獨坐呑聲哭)천고의 떠나고 머무르는 정 (千古去留情)말을 토해 내어 만사를 쓰노라 (吐辭書尺牘)절하고 궤연에 아뢰니 (拜之達几筵)이 마음의 슬픔을 헤아리시기를 (相諒此心曲) 華鶴何迢迢。碩人卜過軸。家傳孝友敦。世襲詩書讀。事業付犂鋤。經綸排水竹。風流諸友稱。行義鄕隣服。自我少年時。相知也最熟。寒暄每訊存。文酒頻追逐。何事不媚天。遽然告不淑。風燈正可憐。隙驥此何速。大夜熟能晨。百身難可贖。終令如玉人。高卧白雲谷。嗟我病縻身。聞之未匍匐。幽明辜負多。獨坐呑聲哭。千古去留情。吐辭書尺牘。拜之達几筵。相諒此心曲。 천리마가 틈을 지나듯 『장자(莊子)』「도척(盜跖)」에 "홀연히 천리마가 틈을 지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忽然無異騏驥之馳過隙也]" 하였다. 백……없네 훌륭한 인물의 죽음에 대한 매우 애통해하는 심정을 이른다. 『시경』「소아(小雅) 황조(黃鳥)」에 "저 푸른 하늘이여, 우리 훌륭한 사람을 죽이도다. 만약 대신하여 죽을 수만 있다면 사람마다 그 몸을 백 번이라도 바치리라.[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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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윤규 목재의 운에 삼가 차운하다 謹次范潤圭牧齋韻 집이 우산에 있어 호를 목재라고 하였으니245) (家在牛山齋號牧)주인은 뜻과 사업 누구에게 논파하랴 (主翁志事向誰論)영공은 다니며 노래할 때 자취가 막혔고246) (寗公迹滯行歌日)정백은 작록을 보존하려는 마음이 없었네247) (井伯心無爵祿存)남은 힘이 있어 시서로 자제를 가르쳤고 (餘力詩書課子弟)장편시 읊조림에 풍월이 집 주위를 둘렀네 (長詩風月繞庭軒)푸르고 푸른 이슬 맞은 갈대엔 그리움이 많으니248) (蒼蒼葭露多遐想)조만간 내 장차 한번 방문하려 하네 (早睌吾將一造門) 家在牛山齋號牧。主翁志事向誰論。寗公迹滯行歌日。井伯心無爵祿存。餘力詩書課子弟。長詩風月繞庭軒。蒼蒼葭露多遐想。早晩吾將一造門。 집이……하였으니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서 "우산의 나무는 원래 아름다웠는데 큰 나라의 교외라서 사람들이 베어가서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없었다. 밤사이에 자라나고 비와 이슬이 적셔주어 싹이 나오는 것이 없지 않건만 소와 양을 다시 그곳에서 방목하니 이로 인해 민둥산이 되었다.[牛山之木嘗美矣, 以其郊於大國也, 斧斤伐之, 可以爲美乎?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 牛羊又從而牧之, 是以若彼濯濯也.]"라고 하였다. 영공(寗公)……막혔고 영공은 춘추 시대 위(衛)나라 사람인 영척자(甯戚子)를 가리킨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남의 수레를 끌어 주면서 먹고 살았는데, 항상 쇠뿔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이상하게 여겨 관중(管仲)을 시켜 맞아들이도록 하여 대부(大夫) 벼슬을 주었으며, 나중에는 국상(國相)으로 삼았다.『齊書』 정백(井伯)……없었네 정백은 중국 진(秦)나라의 정치가 백리해(百里奚)의 자이다. 원래 우(虞)나라 사람이다. 백리해가 우나라에 있을 때 진(晉)나라가 우나라에 재물을 주고 괵(虢)나라를 정벌하러 가는 길을 빌리고자 하자, 백리해는 우나라와 괵나라를 함께 집어삼키려는 의도를 알았지만 우공(虞公)이 충간(忠諫)을 들을만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그대로 우나라를 떠나 진(秦)나라로 갔다.『孟子 萬章上』 푸르고……많으니 『시경』「겸가(蒹葭)」에 "갈대가 푸르고 푸른데, 이슬이 서리가 되었네. 그리운 내 님은 강물 저 편에 계시네.[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라는 구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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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당 운에 삼가 화운하다 謹步持敬堂韻 『우서』의 첫 항목에서 흠명을 드러내었으니240) (虞書初項著欽明)성인들이 돌아가면서 계속 명성이 있었네 (聖聖歸來繼有聲)박약으로 차근차근 이끌면241) 누가 흠앙하지 않으랴 (博約循循誰鑽仰)조장하거나 잊지 않는 것242) 농사일에 비유하네 (助忘勿勿喩耘耕)이락243)에 이르러 묘결을 열었고 (洎乎伊洛開玄鑰)울창한 저 창주244)에서 집대성하였네 (蔚彼滄洲集大成)듣건대 새로 지은 당 표방한 것 좋다고 하니 (聞道新堂標榜好)주인은 응당 그 명성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主人應不負其名) 虞書初項著欽明。聖聖歸來繼有聲。博約循循誰鑽仰。助忘勿勿喩耘耕。洎乎伊洛開玄鑰。蔚彼滄洲集大成。聞道新堂標榜好。主人應不負其名。 우서의……드러내었으니 『서경』「우서(虞書) 요전(堯典)」에 "옛 요임금을 상고해 보건대 공이 크신 분이니, 공경스럽고 밝고 문채롭고 생각이 깊고 편안하고 편안하시며 진실로 공손하고 능히 겸양하시어 그 광채가 사해(四海)에 두루 미치고 상하에 이르셨다.[曰若稽古帝堯, 曰放勳, 欽明文思安安, 允恭克讓, 光被四表, 格于上下.]라고 하였다. 박약(博約)으로 차근차근 이끌면 박약은 박문약례(博文約禮)의 준말로, 스승에게 배워 식견을 넓히고, 그 지(知)를 예(禮)로 요약하여 행(行)으로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자한(子罕)」에 안연(顔淵)이 스승인 공자의 도에 대해서 감탄하며 술회한 뒤에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이끌어 주시면서, 학문으로 나의 지식을 넓혀 주시고 예법으로써 나의 행동을 단속하게 해 주셨다.[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라고 하였다. 조장하거나……것 『맹자』「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 힘쓰되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도 말고 억지로 조장하지도 말아야 한다.[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라고 하였다. 이락(伊洛)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를 지칭하는데,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강학하던 이천(伊川)과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정자(程子)의 학통을 이어받은 주자(朱子)를 포함한 정주학(程朱學)의 연원(淵源)을 의미한다. 창주(滄洲) 주희(朱熹)가 강학하던 무이산(武夷山)의 창주정사(滄洲精舍) 혹은 그 부근의 자연을 가리킨다. 주희는 창주정사를 짓고 지은 「수조가두(水調歌頭)」에서 "영원히 인간 세상 일 버리고, 나의 도를 창주에 부치노라.[永棄人間事, 吾道付滄洲.]라고 하였다.『晦庵集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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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읊조리다【5수】 偶吟【五首】 밤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벽닭 울음소리 듣고 (夜來未幾聽晨鷄)아침에 일어났는데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우네 (朝起於焉覺日西)이 사이에서 좋은 시절 놓치기 쉬우니 (此間易失好時節)힘써 고인을 따라 그와 같이 되기를 바라네 (勉逐古人要與齊)심전에 학문의 씨를 뿌리는 것 제때에 해야지 (種學心田須及時)사사로운 뜻 제거하여 양지를 배양214)하리라 (剗鋤私意培良知)익지 않으면 어찌 돌피의 비웃음215)이 없겠는가 (不熟寧無稊稗笑)등림216)에서 가장 높은 가지가 되길 힘쓰네 (鄧林勉作最高枝)이곳에 와서 나그네로 칩거한 지 오래지만 (來茲羈蟄已多時)문 밖의 풍광 혼연히 알지 못하네 (門外風光渾不知)석양녘에 객을 보내고 창을 열어 보니 (夕陽送客推窓看)시내 버들 드리워 봄이 가지에 가득하네 (溪柳垂垂春滿枝)저물녘에 비 그치고 맑은 바람 부니 (晚來雨歇動淸風)서실엔 티끌 없어 옥거울과 같네 (書室無塵玉鑑中)또 처음 달 뜰 때 오늘밤 약속 남겼으니 (更留初月今宵約)한 칸 작은 창이 동쪽 향해 열려 있네 (一間小牕開向東)밤부터 내리던 비 막 그치고 정오가 되니 (宿雨初晴午日臨)뜰 가득 깨끗하게 맑은 그늘 드리웠네 (滿庭瀟灑動淸陰)들 기운은 푸릇푸릇하여 발 밖에 맺히고 (野氣蔥蘢簾外纈)시내 버들을 휘어져 침상 가에 드리웠네 (溪柳委曲枕邊侵) 夜來未幾聽晨雞。朝起於焉覺日西。此間易失好時節。勉逐古人要與齊。種學心田須及時。剗鋤私意培良知。不熟寧無稊稗笑。鄧林勉作最高枝。來茲羈蟄已多時。門外風光渾不知。夕陽送客推窓看。溪柳垂垂春滿枝。晚來雨歇動淸風。書室無塵玉鑑中。更留初月今宵約。一間小牕開向東。宿雨初晴午日臨。滿庭瀟灑動清陰。野氣蔥蘢簾外纈。溪柳委曲枕邊侵。 양지(良知) 『맹자』「진심 상(盡心上)」에 "사람이 배우지 않고서도 능한 것은 양능(良能)이요, 생각하지 않고서도 아는 것은 양지이다."라고 하였는데, 주희가 그 주에서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이른바 양능이고 양지이다."라고 하였다. 『孟子集註 盡心上』 돌피의 비웃음 『맹자』「고자 상(告子上)」에 "오곡은 종자 중에 아름다운 것이지만 만약 익지 않으면 피만도 못하니, 인 또한 익숙히 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五穀者 種之美者也 苟爲不熟 不如荑稗 夫仁亦在乎熟之而已矣〕"라고 하였다. 등림(鄧林) 좋은 재목으로 가득하다는 전설상의 숲이다. 여기서는 뛰어난 재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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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홍223)【기현】의 회갑 운에 삼가 차운하다 謹步鄭穉弘【琦鉉】回甲韻 오직 그대의 풍모 가장 맑고 참되니 (惟君風節最淸眞)백발이 성성해도 세속에 물들지 않았네 (白髮星星不染塵)아위224)는 서산에 지는 해 돌리지 못하고 (莪蔚難廻西日晚)상봉225)은 다시 갑진년(1904, 고종41)의 봄을 맞네 (桑蓬重屬甲辰春)금옥과 같은 형제들 훈가226)를 부르며 즐거워하고 (金昆玉季壎歌樂)학과 난새 같은 자손들 채무227)를 추어 새롭네 (鶴子鸞孫彩舞新)이 세상 원로가 만일 모이는 일이 있다면 (此世耆英如有會)마땅히 이 사람에게 상석을 양보하리라 (合許首席讓斯人) 惟君風節最清眞。白髮星星不染塵。莪蔚難廻西日晚。桑蓬重屬甲辰春。金昆玉季壎歌樂。鶴子鸞孫彩舞新。此世耆英如有會。合許首席讓斯人。 정치홍(鄭穉弘) 정기현(鄭琦鉉, 1844~?)다.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치홍, 호는 만취(晩翠)이다. 아위(莪蔚) 부모의 은혜를 갚지 못한 불초한 자식을 비유한다. 『시경』「소아(小雅) 육아(蓼莪)」에 "길고 큰 아름다운 쑥이라 여겼더니, 아름다운 쑥이 아니라 제비쑥이로다.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느라 몹시 수고롭고 병드셨도다.[蓼蓼者莪, 匪莪伊蔚. 哀哀父母, 生我勞瘁.]"라고 하였다. 상봉(桑蓬) 뽕나무로 만든 활[桑弧]과 쑥대로 만든 화살[蓬矢]로, 여기서는 어린아이를 비유한다. 고대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뽕나무 활에 쑥대 화살을 메워서 천지 사방에 쏨으로써 장차 천하에 원대한 일을 할 것을 기대하였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禮記 內則』 훈가(壎歌) 『시경』「하인사(何人斯)」에 "형은 질나팔을, 동생은 피리 부네.[伯氏吹壎, 仲氏吹篪.]"라고 하였다. 이는 형제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채무(彩舞)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효자인 노래자(老萊子)가 그의 나이 70이 되었을 때 부모 앞에서 어린애처럼 알록달록한 채색옷을 입고 어린애 같은 장난을 하여 부모를 기쁘게 해 드렸던 데서 온 말이다. 『高士傳 卷上 老萊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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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호의 '국화를 읊다' 시에 차운하다 次月湖詠菊韻 네 꽃들이 번개 같은 달빛 쫓음이 부끄럽지만 愧汝羣芳逐電蟾꽃 중의 은일자17)로 가장 고결하다오 花中隱逸最高尖아침에는 오류18)와 함께 서사를 베끼고 朝同五柳謄書史저녁에는 삼려19) 위해 장과 소금 바꾸네 夕爲三閭替醬鹽꽃 피우니 언제 봄 신에게 아양 떨었던가 色笑何曾媚靑帝기상 늠름하니 원래 바람의 신도 두려워하지 않았지 氣稜元不怕飛廉참으로 어울리네 와서 비추는 가을밤 달이 正宜來照秋宵月어떨 때는 보름달도 됐다가 초승달도 되는 것이 或作圓輪或作鎌 愧汝羣芳逐電蟾, 花中隱逸最高尖.朝同五柳謄書史, 夕爲三閭替醬鹽.色笑何曾媚靑帝? 氣稜元不怕飛廉.正宜來照秋宵月, 或作圓輪或作鎌. 꽃 중의 은일자(隱逸者) 국화를 형용하는 말이다.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나는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이고,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중의 군자라고 여긴다.[予謂 菊花之隱逸者也; 牡丹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後集 卷10》 오류(五柳) 남북조 시대 진(晉)나라 은사인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도잠은 자신이 거처하는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고 자호하고, 울타리 밑에는 국화를 심었다고 한다. 삼려(三閭) 삼려대부(三閭大夫) 벼슬을 지냈던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굴원이 지은 〈이소(離騷)〉에 "아침에는 모란의 떨어진 이슬방울을 받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 떨어진 꽃잎을 주워서 먹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라는 구절이 있다. 《楚辭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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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의 기일에 자정76)과 함께 밤새도록 있으면서 先師諱辰 同子貞達夜 지금은 대의를 변모77) 보듯이 하는데 大義如今視弁髦선생께서 당시에 높은 공적을 드러냈네 先生當日見功高유언은 백세토록 떳떳한 법이 되었고 遺言百世爲經法서업을 계승한 어떤 사람이 호걸인가 繼緖何人是傑豪이 밤은 목성이 한 바퀴 돈 기일인데78) 此夜諱辰周木宿밤새운 제자들은 두 귀밑머리가 허옇네 達晨門弟兩霜毛신명의 도움으로 누 끼침이 없길 바라니 庶望冥佑無貽累저승과 이승이 감응하는 이치 멀지 않으리 相感幽明理不遙 大義如今視弁髦, 先生當日見功高.遺言百世爲經法, 繼緖何人是傑豪.此夜諱辰周木宿, 達晨門弟兩霜毛.庶望冥佑無貽累, 相感幽明理不遙. 자정(子貞) 간재 문인 남갑원(南甲元, 1871~?)의 자로 보인다. 변모(弁髦) 변(弁)은 치포관(緇布冠)으로 관례(冠禮)를 행하기 전에 잠시 쓰던 갓이고, 모(髦)는 총각의 더벅머리이니, 관례가 끝나면 모두 소용없게 되므로 전하여 쓸데없는 물건이라는 뜻의 비유로 쓰인다. 목성이……기일인데 스승이 돌아가신 지 12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목성은 12년을 주기로 하늘을 한 바퀴 도는데 그 궤도가 태양의 궤도인 황도(黃道)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 별이 궤도대로 잘 운행하면 임금에게 복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에게 질병이 많거나 병란이 일어난다고 한다. 《史記 卷27 天官書 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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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오일에 가석의 별장에서 十月五日可石庄上 그대가 옛날 이때에 태어났다지 認君庚降昔玆辰거백옥이 그릇됨을 안 지303) 또 오년이네304) 蘧子知非又五春구로305)를 추억하면 갑절이나 애통할 것이고 追感劬勞應倍痛공경히 몸과 모발을 유지함이 바로 참됨이네 敬持體髮是爲眞일편단심으로 옛것 지킨 이 지금 세상엔 드물고 丹心守舊稀今世백발에도 경서 연구하니 더욱 멋진 사람이로세 白首窮經更可人아들들 또한 가볍고 무거움을 헤아릴 줄 아니 諸子亦知輕重數뜻을 봉양하는게 맛난 음식 드리는 것보다 낫네 養親志意勝供珍 認君庚降昔玆辰, 蘧子知非又五春.追感劬勞應倍痛, 敬持體髮是爲眞.丹心守舊稀今世, 白首窮經更可人.諸子亦知輕重數, 養親志意勝供珍. 거백옥(蘧伯玉)이……지 거백옥은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이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거백옥은 나이 50이 되어서 49년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蘧伯玉年五十, 而知四十九年非.]"라고 하였다. 거백옥(蘧伯玉)이……오년이네 가석(可石)의 나이가 55세가 되었다는 말이다. 구로(劬勞) 낳아서 길러 주느라 애쓰신 부모의 은덕이라는 말이다. 《시경》 〈소아 육아(蓼莪)〉에 "슬프고 슬프다 우리 부모여, 나를 낳아 기르느라 얼마나 애쓰셨나.[哀哀父母, 生我劬勞.]"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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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신뢰받지 못함을 탄식하며 歎言不見信 누가 자웅을 알고 검은 까마귀를 판별하는가 誰認雄雌辨黑烏모두 내가 성인의 도와 글을 부지했다 하네 皆云余聖道文扶어두운 방에 구슬 던지면 칼을 잡고 노려보고309) 投珠暗室看持劒제문에서 비파 잘 탐이 피리 좋아함과 어긋났네310) 工瑟齊門乖好竽다만 옳고 그름은 본디부터 그대로 있거니 但見是非元自在어찌 의리와 이끗을 함께 갖출 수 있으랴 豈容義利一幷俱참으로 남을 믿기 어렵고 말에 믿음 없으니 誠難孚物言無信다만 이제부터 말없이 나를 지킬 뿐이라네 只可從今黙守吾 誰認雄雌辨黑烏? 皆云余聖道文扶.投珠暗室看持劒, 工瑟齊門乖好竽.但見是非元自在, 豈容義利一幷俱?誠難孚物言無信, 只可從今黙守吾. 어두운……노려보고 사람들이 까닭 없이 오해하여 미워함을 뜻한다. 《사기(史記)》 권83 〈추양열전(鄒陽列傳)〉에, "명월주(明月珠)와 야광벽(夜光璧) 같은 좋은 보배를 암암리에 길 가는 사람에게 던져 주면 칼자루를 잡고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으니, 그 이유는 까닭 없이 자기 앞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데서 유래하였다. 제문(齊門)에서……어긋났네 자신이 세상과 서로 맞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유(韓愈)가 일찍이 진상(陳商)에게 답한 편지에서, 어떤 사람이 피리[竽]를 좋아하는 제 선왕(齊宣王)의 문에 비파를 가지고 가서 벼슬하기를 구했으므로, 끝내 벼슬을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시대에 맞지 않는 난해한 문장을 즐겨 쓰던 진상에게 충고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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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여러 학생에게 주다 贈書社諸生 백발로 창동에서 학문을 근심하는데 白頭憂學滄之東그대들이 찾아온 뜻이 같아 감사하네 諸子相尋感志同본디 노력하면 상성을 바랄 수 있지만518) 自有有爲希上聖원래 무식하면 영웅호걸이 될 수 없네 元無無識作豪雄원중519)이 주자에게 잘 전수했다 들었으니 曾聞愿仲能傳晦강성이 마융520)만 못하다고 누가 말하겠나 誰道康成不勝融함부로 공담을 하려는 건 좋은 계책 아니니 妄擬空談非計得진실로 정성과 공경 통해 총명함이 나오네 亶由誠敬出明聰 白頭憂學滄之東, 諸子相尋感志同.自有有爲希上聖, 元無無識作豪雄.曾聞愿仲能傳晦, 誰道康成不勝融?妄擬空談非計得, 亶由誠敬出明聰. 본디……있지만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순 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면 또한 그와 같이 될 수 있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하였다. 원중(愿仲) 주자(朱子)의 스승인 이동(李侗, 1093~1163)의 자이다. 송(宋)나라 학자로, 호는 연평(延平),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나종언(羅從彦)이 양시(楊時)에게 낙학(洛學)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종언에게 가서 배워 양시와 나종언과 함께 '검남 삼선생(劍南三先生)'으로 불렸다. 이정(二程)의 학문이 주희에게 이어지는 교량적 역할을 하였다. 강성(康成)이 마융(馬融) 강성은 후한(後漢) 말기의 대표적 경학자(經學者)인 정현(鄭玄, 127~200)의 자이며, 마융(馬融, 79~166)은 정현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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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의 〈탄세음〉에 화답하다 和玄狂《歎世吟》 천지에 중화의 의관을 용납하기 어려우니 難容天地漢冠衣어디든 깊이 숨어 오래도록 돌아오지 말게나 何處深藏久莫歸예로부터 도원532)은 전하는 말이 이미 황당했고 從古桃源傳已誕오늘날에는 금화533)를 만나기가 응당 드물겠지 如今金華見應稀그 누가 큰 솜씨로 정치 운수를 담당하여 誰將巨手當治運백성이 금수로 변하는 것을 면케 하겠는가 免敎群生化走飛오직 마음 밭이 한 조각만 남아 있으니 惟有心田餘一片몸을 세워 하늘을 어기지 않을 수 있으리 安身卽可不天違 難容天地漢冠衣, 何處深藏久莫歸.從古桃源傳已誕, 如今金華見應稀.誰將巨手當治運, 免敎羣生化走飛?惟有心田餘一片, 安身卽可不天違? 도원(桃源)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일컬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말한다. 진(秦)나라 화를 피하여 들어간 사람들이 살았던 세상 밖의 별천지이다. 금화(金華) 중국 진대(晉代) 사람으로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에서 은거하다가 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선인(仙人) 황초평(黃初平)을 가리킨다. 나이 열다섯에 양을 치다가 도사를 따라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로 가서 수도(修道)하였다. 그 후 40년 만에 그의 형 황초기(黃初起)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가 만났더니 양은 보이지 않고 흰 돌들만 있었다. 황초평이 "양들은 일어나라."라고 소리치자, 흰 돌들이 모두 수만 마리의 양으로 변했다 한다. 《神仙傳 黃初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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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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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손창오370) 동선 군에게 주다 贈孫君昌午【東宣】 그대의 관례를 축하한 지 오년 남짓 祝子冠階五祀餘오늘 아침에 함께 머물며 수레에 책을 실었네 今朝同住載書車순임금의 소악 듣고 고기맛 잊음을 어찌 양보하랴371) 聞韶何讓不知肉칼자루 치며 또한 항상 고기반찬 탄식하지 말라372) 彈鋏且休常歎魚계곡에 흐르는 물 맑으니 마음도 함께 깨끗해지고 石澗流淸心共潔뜨락에 가지와 잎 없어지니 지역 온통 빈 듯 하네 庭柯葉盡境全虛세한의 좋은 친분은 원래 쉽지 않으니 歲寒相好元非易반드시 참된 마음으로 시종일관 꿰뚫어야 하네 須把眞情貫末初 祝子冠階五祀餘, 今朝同住載書車.聞韶何讓不知肉? 彈鋏且休常歎魚.石澗流淸心共潔, 庭柯葉盡境全虛.歲寒相好元非易, 須把眞情貫末初. 손창오(孫昌午) 창오는 손동선(孫東宣, 1918~?)의 자이다. 본관은 밀양이며, 정읍에 거주하였다. 김택술의 문인이다. 순(舜)임금의……양보하랴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실 때에 순 임금의 소악을 들으시고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으시며 이르기를 '음악을 만든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하셨다.〔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라는 말이 나온다. 칼……말라 전국 시대 제(齊)나라 풍환(馮驩)의 고사로, 객지에서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에 "제 나라 사람 풍환(馮諼)이 가난하여 맹상군(孟嘗君)에게 의탁해 있었는데 채소 반찬만을 먹게 하였다. 그러자 풍환이 기둥에 기대서서 칼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긴 칼을 찬 사람아 돌아갈지어다, 식탁에는 고기 반찬이 없구나.[長鋏歸來乎食無魚]' 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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