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奴角金伊處無他宅矣急有緊用處扶安之飛里前坪伏在溫字畓肆斗落只庫乙某人處從時價放賣以納宜當事上典金[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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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八年癸丑四月初六日辛命直前明文右明文事段矣兩親過葬次外家衿得是在扶北一作伏在一道之飛里前坪溫字畓八斗落只所耕二十四卜六束庫及同畓七斗落只所耕二十一卜八束庫果又同畓六斗落只所耕十八卜七束等庫良中折價錢文參百拾兩依數捧上爲遣本文記七張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族屬中如有雜談是去等持此文記告官卞呈事畓主喪人金履直 喪人證人崔德寬[着名]筆執幼學金廣履[着名]定只堤下三巨里梁俠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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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정량언(鄭良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陸年丁卯十月三十日 鄭良彦 同治陸年丁卯十月三十日 鄭良彦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喪不着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7년(고종 4) 12월 30일에 정량언(鄭良彦)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신리(弓新里) 전평(前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7년(고종 4) 12월 30일에 정량언(鄭良彦)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신리(弓新里) 전평(前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들은 복자답(服字畓) 12두락지로, 부수(負數)로는 24부 되는 곳으로, 매매가격은 180냥이었다. 구문기는 다른 전답 문서에 붙어 있어서 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논 주인인 정량언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한용호(韓用浩)가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고, 박내윤(朴乃允)이 필집(筆執)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는 상동면 궁신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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奴言金處無他卽有萬萬緊急事耶當此歉年窮春凡節握過之道末由故勢不得已伏在下西尤谷坪字畓三斗落所耕八負二束廤乙從時価三十五兩斥賣於於願買入處俾無葛藤之意宜當事此亦中旧文中間閪失故不得幷給耳畓主 鄭[着名]丙戌三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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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년 김후제(金後磾)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康熙十一年壬子三月二十日 金後宗 金後磾 康熙十一年壬子三月二十日 金後宗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672년(현종 13) 3월 20일에 김후종(金後宗)이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부안현(扶安縣)의 논을 김후제(金後磾)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672년(현종 13) 3월 20일에 김후종(金後宗)이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부안현(扶安縣) 지비리(之飛里)의 온자답(溫字畓) 21부 되는 곳을 김후제(金後磾)에게 상목(常木) 5동(同)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후종은 이 논을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으나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았다. 거래시 매입자에게 이 문기를 주며서 뒤에 이 거래를 두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기를 관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답주인 김후종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증인으로는 친동생 김후주(金後柱)가 거래에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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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熙十一年壬子三月二十日金後磾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以買得耕食爲如乎扶北一作溫字畓貳拾壹負庫良中價折常木伍同捧上爲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後次雜談爲去等持此文告官卞正事畓主自筆金後宗[着名]證同生弟後柱[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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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己亥年) 송항순(宋恒淳)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己亥十一月十二日 幼學 宋恒淳 己亥十一月十二日 幼學 宋恒淳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기해년(己亥年) 11월 12일에 송항순(宋恒淳)이 부안군(扶安郡) 연동(蓮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기해년(己亥年) 11월 12일에 유학(幼學) 송항순(宋恒淳)이 부안군(扶安郡) 연동(蓮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을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으나 다른 논을 사기 위하여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대상이 된 토지는 연동 동평(東坪)의 만자답(滿字畓) 6두락지이며, 부수(負數)로는 18부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330냥이었다. 거래시에 신문기 1장과 반으로 나눈 구문기 2장을 함께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만일 뒤에 문제가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문서의 끝 부분에는, 지난 병신년에 김여중(金汝中)으로부터 논을 사면서 받았던 신문기를 유실하여 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반으로 자른 구문기는 그보다 훨씬 전에 이 논을 거래하면서 작성된 구문기로 추정된다. 증인으로 유학 김하순(金河舜)이 거래에 참여하여 방매자 송항순과 함께 서명하였다. 증인 김하순은 사실 이 전에 이 논을 갖고 있다가 팔았던 당사자이기도 하였다. "임인년(壬寅年) 김하순(金河舜)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 바로 그것으로, 이 문서의 구문기이기도 하다. 논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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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隆熙二年二月二十四日明右明文事以要用所致故傳來畓伏在南一面多福前坪陽菱堤下有字畓十五斗落只所耕二十九負二束庫果裳字畓四斗落所耕九負二束讓字畓三斗落所耕五負五束庫乙価折錢壹仟肆佰兩右前永永放賣爲去乎旧文記中間閪失故未得出給耳 日後若有他言則以此文憑考事畓主 郭東洪[印]證人 任成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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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六年丁卯正月初二日崔永心前明文右明文事段傳來畓數年耕食是多可勢不得已伏在弓月里西坪乃字畓九斗落所耕二十九負二束㐣価折錢文㱏百貳拾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他畓倂付故未得出給以新文一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則以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辛寬玉[着名]證筆 金治化[着名](背面)弓月里竹藪後下歲西九畓文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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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 최용갑(崔龍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年壬午十月初五日 幼學 韓守光 崔龍甲 道光二年壬午十月初五日 幼學 韓守光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1.2*1.2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2년(순조 22) 10월 초5일에 한수광(韓守光)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 후평(後坪)에 있는 논을 최용갑(崔龍甲)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2년(순조 22) 10월 초5일에 한수광(韓守光)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 후평(後坪)에 있는 논을 최용갑(崔龍甲)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을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으나, 사는 게 너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논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들은 내자답(乃字畓) 12두락, 부수(負數)로는 35부 5속인 곳으로 매매가격은 85냥이었다. 본문기 1장을 매입자인 최용갑에게 건네 주었다. 뒷날 동생(同生) 자손(子孫)들과 족속 중에서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논 주인인 한수광이 문서에 서명하였으며, 이득량(李得良)이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는 상동면 궁월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문서의 배면(背面)에 "仙洞李議官券 二丈"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에서 선동의 이의관은 이 문서는 소장처인 선은동의 부안의 전주이씨가로 추정된다. 선은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아마 이씨가에서 매입했던 논의 구문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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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二年丙子十月二十九日 右人前明文右明文事當此荒年村中所用萬分時急故不得已三十餘年村中傳來伏在鳳山後坪興字畓七斗落只所耕二十一負㐣折価錢文五十二兩依數捧上是矣旧文段年久所致某某處探覓永無踪跡故以此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是乎矣日後若有村中他說則以此新文一張當告官卞正事洞中 金順五[着名]姜治賢[着名]李聚五[着名]田云仲[着名]廉錫九[着名]蔡春彦[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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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熙六十一年壬寅十二月二十七日姜奉鳩前明文右明文事段移買次以自己買得耕食累年爲如可末子碩輝衿付載錄爲有是乃矣身谷字成文爲臥所北一作溫字畓旧量二十四卜四束今量則貳拾壹負捌束庫乙勢不得已錢文參拾兩依數捧上爲遣右人處永永放賣爲乎矣本文記一丈?許給爲遣衿付都文記段他田畓並付仍乎不得許給爲去乎日後子孫中如有雜談爲去乎持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金先興[着名]證人 鄭日伊[左寸]筆執 金謂相[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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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九年癸未二月初四日 前明文右明文事以要用所致自己買得伏在一道面定只堤下臨字十三斗落所耕三十卜庫果深字畓十二斗落所耕三十卜束㐣價折錢文參百貳拾兩依數捧上是遣並舊文五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論則持此文憑考事畓主 幼學 田湘玉[着名]證人 幼學 田汝伯[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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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김낙건(金洛鍵)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八年甲辰三月十二日 金落鍵 光武八年甲辰三月十二日 金落鍵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4년 3월 12일에 유학(幼學) 김낙건(金洛鍵)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금강동(金崗洞)에 있는 모시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4년 3월 12일에 유학(幼學) 김낙건(金洛鍵)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금강동(金崗洞)에 있는 모시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낙건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금강동 전평(前坪)에 있는 모시밭 1마지기와 산세(山稅) 2부를 5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모시밭 주인김낙건과 증필(證筆)로 유학 김우재(金禹載)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문서 말미에 구문서는 가대(家垈) 문서와 붙어 있어서 출급하지 못했다고 기록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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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오순주(吳淳周) 방매(放賣)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五年己丑七月十九日 吳淳周 光緖十五年己丑七月十九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9년(고종 26) 7월 19일에 오순주(吳淳周)가 초가(草家)를 팔면서 작성한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1889년(고종 26) 7월 19일에 오순주(吳淳周)가 초가(草家)를 팔면서 작성한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이다. 가대(家垈)의 주인 오순주는 자신이 매득하여 살던 초가(草家)를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문기에는 가대의 방매(放賣) 사유, 위치 등을 밝히고 있지 않다. 매매의 대상이 된 가대는 4칸 초가로 매도 가격은 15냥이다. 매도인(賣渡人) 오순주는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신구(新舊)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가대의 주인 오순주와 증인(證人)으로는 김원기(金元基)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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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임자운(林自雲) 방매(放賣)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八年壬辰六月晦日 林自雲 光緖十八年壬辰六月晦日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9년(고종 29) 6월 30일에 임자운(林自雲)이 초가(草家)와 태전(太田)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賣買明文) 1889년(고종 29) 6월 30일에 임자운(林自雲)이 초가(草家)와 태전(太田)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賣買明文)이다. 가대(家垈)의 주인 임자운은 자신이 매득하여 살던 초가(草家)와 태전(太田)을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문기에는 가대와 태전의 위치를 밝히고 있지 않다. 매매의 대상이 된 가대와 밭은 4칸 초가와 태전 3두락지(斗落只)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46냥이다. 여기서 태전은 콩밭을 말한다. 매도인(賣渡人) 임자운은 구문기는 유실(遺失)되어 내어 줄 수가 없음을 밝히고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차후에 분쟁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官)에 신고하여 바름을 가릴 일이다'라고 표기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가대의 주인 임자운과 증인(證人) 김익화(金益化), 집필(筆執)은 김도범(金道範)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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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三年癸巳十一月十六日柳三基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畓伏在安德洞扶字六斗落只所耕十五卜庫乙累年耕食是以可本五十五價依數捧上本文記一丈幷以出給爲去乎令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則持此憑考事畓主自筆 高時大[着名]證人 李良連[着名]又證人 柳光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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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八年甲辰三月十二日 前明文右明文事以要用所致自己買得伏在下西面金崗洞前坪苧田一斗落只山稅貳負㐣價折錢文伍拾兩依數捧上是遣只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憑考事苧田主 幼學 金落鍵[着名]證筆 幼學 金禹載[着名]此亦中舊文家垈幷付故未得出給事(別紙)金堈洞金有善苧田一隊落文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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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四年戊子十二月初十日明文右明文事當此大荒之年勢不得已扶北一道甑東前坪容字畓十斗落所耕三十六負三束㐣折價錢文貳佰參拾參兩依數捧上是遣舊文二張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憑考事畓主幼學 金希道[着名]證人幼學 田石凡[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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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김병두(金炳斗)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丙子正月二十九日 金炳斗 光緖三年丙子正月二十九日 金炳斗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6년(고종 13) 1월 29일에 유학 김병두(金炳斗)가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6년(고종 13)1월 29일에 유학 김병두(金炳斗)가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병두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선은동 전평(前坪)에 있는 현자답(玄字畓) 4마지기와 같은 현자답 2마지기를 13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2마지기 논의 구문기는 다른 논 문기에 붙어 있어서 출급하지 못하고 4마지기 논의 구문기 4장과 신문기 1장을 건네주며 나중에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당시 논 주인 김병두 그리고 증인(證人)으로 유학 임운집(任雲集) 유학 전인홍(田仁鴻)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光緖三年丙子'로 되어 있으나, 병자는 광서 2년이다. 여기에서는 간지를 기준으로 작성연대를 1876년으로 추정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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