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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壬寅年) 김하순(金河舜)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壬寅十二月初十日 幼學 金河舜 壬寅十二月初十日 幼學 金河舜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임인년 12월 초10일에 유학(幼學) 김하순(金河舜)이 부안군(扶安郡) 좌산면(左山面) 연동리(蓮洞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임인년 12월 초10일에 유학(幼學) 김하순(金河舜)이 부안군(扶安郡) 좌산면(左山面) 연동리(蓮洞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하순은 이 논을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으나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대상이 된 논은 연동리 동평(東坪)의 만자답(滿字畓) 6두락지이며, 부수(負數)로는 7부 7속이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550냥이었다. 만일 뒤에 문제가 있으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시 구문기를 매입자에게 건내주었다. 그리고 문서의 맨 끝에 만일 뒤에 여력이 있으면 환퇴(還退)하겠다는 단서를 달아놓았다. 즉 지금은 방매자가 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논을 팔기는 하지만, 나중에 금전의 여유가 생기면 되사겠다는 조항을 삽입한 것이다. 증인으로 유학 이영춘(李永春)이 거래에 참여하여 방매자 김하순과 함께 서명하였다. 논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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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三年丁亥三月初二日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伏在下西老道前坪佳字畓玖斗落只所耕十七負七束廤乙以要用所致価折錢文陸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一張果舊票一張幷新文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爻象之以此文記憑考事畓主 幼學 金殷淑[着名]證人 幼學 高壽敏[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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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二年丙戌十一月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處傳來畓伏在扶安下西老谷前坪 字廤所耕四負一束貳斗落価折錢文貳拾柒兩依數捧之是遣永永放賣于 右宅爲去乎旧文段他田畓幷付故只以新文成文爲去乎日後如有爻象之端是去等持此文憑考事田主 黃贊成 喪不着證人 幼學 曺伯賢[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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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二十四年甲辰六月十六日 前明文右明文事段傳來畓世不得是稅積〖債〗許多故下西伏在老谷前坪誡字六斗落只所畊十三負三束㐣価折文一百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本文記二丈幷禾穀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談是去等持此文告 官卞正事畓主 宋月柱[着名]證人 金尙華[着名]茟 李元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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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송순남(宋舜男)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五年庚申十一月十八日 李六孫 宋舜男 嘉慶五年庚申十一月十八日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1.2*1.2 1개(적색, 원형), 1.0*1.0 1개(적색)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00년(정조 24) 11월 18일 이육손(李六孫)이 송순남(宋舜男)에게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노곡리(老谷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00년(정조 24) 11월 18일 이육손(李六孫)이 송순남(宋舜男)에게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노곡리(老谷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이육손은 올해 생활이 너무 극난(極難)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하서면 노곡리 전평(前坪) 계자답(誡字畓) 6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13부(負) 3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15냥이다. 노곡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이육손은 구문기(舊文記) 1장(丈)과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으며, '차후에 분쟁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官)에 신고하여 바름을 가릴 일이다'라고 표기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이육손과 증인(證人) 송봉이(宋奉伊), 필(筆)은 이평언(李平彦)이 담당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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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八年十一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以要用所致不得已天字垈田一斗落只所耕二負九束庫乙幷化穀價折錢文肆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有失故新文記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持此文憑考事畓主 田仲三[着名]證人 具俊化[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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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三年癸丑正月初七日姜奴玉男前明文右明文事段緊用所東道仙隱洞伏在苧田二竹所出天字庫所耕玖束庫乙價折錢貳拾兩依數交易捧上是右人前永永放賣新文記一張成給爲去乎日後若有相左之端是去等持此文記卞正事苧田主 李奴若奉[着名]證筆 金元瑞[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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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김희도(金希道)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四年戊子十二月初十日 金希道 光緖十四年戊子十二月初十日 金希道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8년(고종 25) 12월 10일에 유학 김희도(金希道)가 부국(扶北) 일도면(一道面) 증동리(甑東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8년(고종 25) 12월 10일에 유학 김희도(金希道)가 부국(扶北) 일도면(一道面) 증동리(甑東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희도는 대흉년을 당해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증동리 전평(前坪)에 있는 용자답(容字畓) 10마지기, 부수(負數)로 36부 3속이 되는 곳을 233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2장과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툼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당시 논 주인 김희도와 증인(證人)으로 유학 전석범(田石凡)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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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十一年丁未四月初八日 前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伏在全羅北道萬頃南一面竗羅坪盖字畓十五斗落結三十三卜六束庫果此字畓十三斗落結三十卜一束庫果同字畓十八斗落結四十一卜六束庫果同字畓十三斗落結二十五卜七束庫合畓五十九斗落価折錢文貳仟扒佰伍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幷付他畓不得出給以新文一丈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持此文憑考事畓主 京新門外平洞 前叅奉 李相弼[印]賣主 前主事 裵閏國[印]居賣主 幼學 任殷叔[着名]執筆 幼學 任道衡[印]保證 幼學 姜自先[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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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陽二年丁酉二月十四日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耕食是多可要用所致故伏在上東弓月里東坪服字畓六斗落只所耕十五負庫乙價折錢文㱏佰十兩依數捧上是遣幷以新旧文記二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幼學 李慶槇[着名]證筆幼學 林文白[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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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元年壬戌閏八月初一日 前明文右明文事段無他至有緊用處伏在蓮洞後坪 字苧田參斗落只所耕四負㐣價折錢文伍拾兩依數捧上是遣旧文一張新文記一張右人前放賣爲乎矣限三年還退而若過三年則不退次永永放賣爲乎喩乙月後憑考事苧田主 趙六孫[着名]證人 申貴仁[着名]執筆 朴京炫[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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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豊四年甲寅正月二十六日幼學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木浦前坪号字畓五斗落只所耕拾負五束㐣価折錢文拾五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成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瑞則以此文記憑考事畓主 幼學 崔石斗[着名]證茟 幼學 林世[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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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양계광(梁啓光)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隆熙三年己酉正月十三日 梁啓光 大韓隆熙三年己酉正月十三日 양계광 전북 부안군 [印], [着名]2개 1.3*1.3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9년(융희 3) 1월 13일에 양계광(梁啓光)이 고부현(古阜縣) 거마면(巨麻面) 임방리(林方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9년(융희 3) 1월 13일에 양계광(梁啓光)이 고부현(古阜縣) 거마면(巨麻面) 임방리(林方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양계광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고부현 거마면 임방리 전평(前坪) 소자답(嘯字畓) 7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29부(負) 4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220냥이다. 임방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백산면 오곡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양계광은 새로 작성한 문서와 구문기(舊文記)를 합쳐 모두 3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분쟁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官)에 신고하여 바름을 가릴 일이다'라고 표기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참봉(參奉) 양계광과 증인(證人)은 유양지(劉良知), 증필(證茟)은 유학(幼學) 김경숙(金敬淑)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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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隆熙三年己酉正月十三日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累所耕食是如可以要用所致伏在古阜巨麻面林方里前坪嘯字畓七斗落只所耕二十九負四束㐣價折錢文貳佰貳拾兩依數捧上是遣幷新舊文三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參奉 梁啓光[印]證人 幼學 劉良知[着名]證筆 幼學 金敬淑[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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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최영심(崔永心)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六年丁卯正月初二日 辛寬玉 崔永心 同治六年丁卯正月初二日 辛寬玉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1.2*1.2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7년(고종 4) 정월 초2일에 신관옥(辛寬玉)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 서평(西坪)에 있는 논을 최영심(崔永心)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7년(고종 4) 정월 초2일에 신관옥(辛寬玉)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 서평(西坪)에 있는 논을 최영심(崔永心)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들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으나,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논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들은 내자답(乃字畓) 9두락, 부수(負數)로는 29부 2속인 곳으로 매매가격은 120냥이었다. 구문기는 다른 논문서에 붙어 있어서 주지 못하고 신문기만 매입자인 최영심에게 건네 주었다.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논 주인인 신관옥이 문서에 서명하였으며, 김치화(金治化)가 문서를 작성하고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는 상동면 궁을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최영심은 같은 해 1867년 10월 10일에 상동면(上東面) 궁을리(弓乙里)에 있는 논 7두락을 70냥에 샀다. "1867년 최영심(崔永心)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참고. 최영심은 그 뒤 1890년 2월 17일에는 같은 지역에 있는 논 아홉 곳을 600냥을 받고 팔았다. "1890년 최영심(崔永心)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참고. 최영심은 1890년 11월 초2일에는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 동평(東坪) 통수동(通水洞)에 있는 의자답(衣字畓) 5두 5승락을 78냥에 팔았다. "1890년 최영심(崔永心)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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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七年癸卯四月十四日 前明文右明文事以婚用處故伏在下西三賢洞前坪字畓六斗落只所耕拾柒負四束㐣價折錢文貳佰六十兩依數捧上是遣以新舊文四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憑考事畓主 陳濟澤證人 幼學 張乃成[着名]證人 幼學 洪石喬[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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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김성운(金成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二年丙戌三月初八日 金成雲 光緖十二年丙戌三月初八日 金成雲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6년(고종 23) 3월 8일에 김성운(金成雲)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賢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6년(고종 23) 3월 8일에 김성운(金成雲)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賢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성운은 자신이 매득한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賢洞) 앞들에 있는 부자답(扶字畓) 6마지기를 27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3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이 논을 두고 만약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성운과 증인(證人)으로 하자중(河子中)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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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次己亥十一月十二日 前明文右明文事移畓次自己買得伏在蓮洞東坪滿字畓六斗落只所耕十八負㐣価折錢文參佰參什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一張半割舊文二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則以此文 憑考事此亦中去丙申年金汝中氏許買得新文遺失故未得出給事畓主 幼學 宋恒淳[着名]證人 幼學 金河舜[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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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丙戌年) 노(奴) 언금(言金) 패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경제-매매/교역-배지 丙戌 畓主 鄭 丙戌 鄭 전북 부안군 [着名]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병술년(丙戌年)에 답(畓)의 주인 정씨(鄭氏)가 자신의 노(奴)의 언금(言金)에게 준 위임장 병술년(丙戌年) 3월에 주인 정씨(鄭氏)가 자신의 노(奴) 언금(言金)에게 준 위임장이다. 위임하는 사안은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우곡평(尤谷평)에 있는 답(畓) 3두락(斗落)의 매도건이었다. 답주(畓主) 정씨가 이 밭을 팔게 된 이유는 급히 돈이 필요해서였는데, 매매 희망 가격은 35냥이었다. 이 밭을 사기 원하는 사람에게 파는 문제를 언금에게 위임하였던 것이다. 한편 정씨는 이 밭의 매매를 위해, 이 밭과 관련하여 이전부터 있었던 문서들도 함께 내주어야 했다. 그게 관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였다. 그것은 중간에 분실하였기 때문인데, 문서에 보이는 "차역중 구문중간서실 고부득병급이(此亦中 旧文中間閪失 故不得幷給耳)"라는 부분이 바로 그 내용이다. 이 가운데 "차역중"은 추가 사항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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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7년 김은숙(金殷淑)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三年丁亥三月初二日 金殷淑 光緖十三年丁亥三月初二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7년(고종 24) 3월 초2일에 김은숙(金殷淑)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노곡리(老谷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7년(고종 24) 3월 초2일에 김은숙(金殷淑)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노곡리(老谷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김은숙은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하서면 노곡리 전평(前坪) 가자답(佳字畓) 9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17부(負) 7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60냥이다. 노곡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김은숙은 구문기(舊文記) 1장(丈)과 예전에 쓴 약속문서 1장 그리고 새로 작성한 문서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유학(幼學) 김은숙과 증인(證人)으로는 유학 고수민(高壽敏)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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