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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신덕연(辛德淵)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五年己卯十二月十一日 辛德淵 光緖五年己卯十二月十一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9년(고종 16) 12월 11일에 신덕연(辛德淵)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9년(고종 16) 12월 11일에 신덕연(辛德淵)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신덕연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봉황리 후평(後坪) 누자답(樓字畓) 6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18부(負) 6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25냥이다. 봉황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신덕연은 구문기(舊文記)가 중간에 불에 타서 유실되었음을 밝히고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으며, '차후에 분쟁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官)에 신고하여 바름을 가릴 일이다'라고 표기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유학(幼學) 신덕연과 정인(訂人)으로는 유학 전복여(田福汝)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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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정순익(鄭順翼)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五年己丑十二月十四日 鄭順翼 光緖十五年己丑十二月十四日 鄭順翼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7.0*7.0 3개(적색, 정방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9년(고종 26) 12월 14일에 정순익(鄭順翼)이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9년(고종 26) 12월 14일에 정순익(鄭順翼)이 남중작(南中作) 묘라평(竗羅坪)에 있는 식자전(食字田) 4두락과 개자전(盖字田) 4두락을 86냥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식자전은 부수(負數)로 9부가 되는 곳이며, 개자전은 10부가 되는 곳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밭을 팔게 되었다고 거래사유를 적고 있다. 밭이 있는 묘라평은 오늘날의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는 또 구문(舊文) 2장을 매입자에 넘겨주면서 만일 차후에 이 밭을 두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증인으로 박성로(朴成老)가 거래에 참여하여 정순익과 함께 문서에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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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최병식(崔炳湜)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幼學 崔炳湜 幼學 崔炳湜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9년 8월 11일에 유학(幼學) 최병식(崔炳湜)이 부안군(扶安郡) 좌산면(左山面) 연동로(蓮洞路) 아래에 있는 모시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9년 8월 11일에 유학(幼學) 최병식(崔炳湜)이 부안군(扶安郡) 좌산면(左山面) 연동로(蓮洞路) 아래에 있는 모시밭 1두락지를 40냥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최병식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 모시밭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구문기는 다른 문서에 함께 붙어 있기 때문에 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을 매입자에게 넘겨 주었다. 뒷날 이 모시밭을 두고 문제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증인으로 최윤홍(崔鈗洪)이 방매자 최병식과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己亥"로만 나오지만, 같은 모시밭을 1909년에 거래한 문서, "1909년 김봉상(金奉相)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가 있어서 기해년을 1899년으로 추정하였다. 요컨대 이 문기는 1909년 문서의 구문기에 해당하는 셈이다. 두 문서를 비교하면 10년 사이에 모시밭의 가격이 40냥에서 60냥으로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논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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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송월주(宋月柱)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二十四年甲辰六月十六日 宋月柱 道二十四年甲辰六月十六日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4년(고종21) 6월 16일 송월주(宋月柱)가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노곡리(老谷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4년(고종21) 6월 16일 송월주(宋月柱)가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노곡리(老谷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송월주는 세금이 많이 밀려서 물려받은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하서면 노곡리 전평(前坪) 계자답(誡字畓) 6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13부(負) 3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00냥이다. 노곡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송월주는 구문기(舊文記) 2장(丈)과 화곡(禾穀) 그리고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으며, '차후에 분쟁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官)에 신고하여 바름을 가릴 일이다'라고 표기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송월주와 증인(證人) 김상화(金尙華), 필(筆)은 이원전(金尙華)이 담당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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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八年己巳四月十七日 右人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故黃盖山定只堤下臨字墓畓四斗落只所耕十一負㐣折価錢文八十七兩依依數捧上是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門中相左之端則以此文記告 官卞考事畓主 幼學 朴受繪[着名]證筆 幼學 廉在祐[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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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신보형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五年己卯十二月日 辛普亨 光緖五年己卯十二月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9년(고종 16) 12월에 신보형(辛普亨)이 서도면(西道面)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9년(고종 16) 12월에 신보형(辛普亨)이 서도면(西道面)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신보형은 자기가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본 문기에는 매도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는데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서도면 정지제 아래에 있는 임자답(臨字畓) 4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11부(卜) 1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55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신보형는 구문기(舊文記) 2장(丈)과 새로 작성한 문서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신보형과 증인(證人) 염치화(廉治化)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각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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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五年己卯十二月日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西道定只堤下伏在臨字畓四斗落只所耕十一卜一束㐣価折偂文五拾五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旧文記二丈新文一丈永永放賣爲乎乙事畓主 辛普亨[着名]證人 廉治化[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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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족제 은상(殷相)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元年壬戌四月初一日 金德豐 族弟 殷相 同治元年壬戌四月初一日 金德豐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2년(철종 13) 4월 1일에 족형(族兄) 김덕풍(金德豐)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족제(族弟) 김은상(金殷相)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2년(철종 13) 4월 1일에 족형(族兄) 김덕풍(金德豐)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족제(族弟) 김은상(金殷相)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덕풍은 급하게 돈을 사용할 곳이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상리 전평(前坪)에 있는 궐자답(闕字畓) 3마지기, 부수(負數)로 4부 4속이 되는 곳을 족제 은상에게 3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3장과 입지(立旨)에 적혀 있는 다짐을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분란의 폐단이 있으면 이 문서들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당시 논 주인 김덕풍과 증필(證筆)로 유학 임낙기(任洛基)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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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元年壬戌四月初一日族弟殷相前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處自己買得畓伏在上東上里前坪闕字丁三斗落只所耕四負四束㐣價折錢文參拾兩依數交易是遣舊文記三丈果立旨之侤音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弊以此文記憑考事畓主 幼學 族兄 金德豐[着名]證筆 幼學 任洛基[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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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이노약봉(李奴若奉)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三年癸丑正月初七日 李奴 若奉 姜奴 玉男 咸豐三年癸丑正月初七日 李奴 若奉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3년(철종 4) 1월 7일에 이씨가의 노(奴) 약봉(若奉)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밭을 상전을 대신하여 거래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3년(철종 4) 1월 7일에 이씨가(李氏家)의 노(奴) 약봉(若奉)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밭을 상전을 대신하여 거래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씨가에서는 급하게 돈을 사용할 곳이 있어서 선은동에 있는 모시밭에서 2죽(二竹)을 생산하는 천자전(天字田)을 강씨가(姜氏家)의 노(奴) 옥남(玉男)에게 20냥을 받고 팔았다. 옥남도 상전을 대신하여 거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매매 당시 신문기 1장을 만들어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논란이 일어나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약봉 외에 증필(證筆)로 김원서(金元瑞)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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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九年乙巳三月二十日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當此窮節生活無路故不得已伏在下西面芦隱洞路上 字太種田九斗落山稅六負五束庫乙価折錢文玖拾伍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家垈文卷並付故以新文一章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 此亦中米罕九斗捧貰次田主 崔致京[着名]證筆 徐文明[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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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조육손(趙六孫)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元年壬戌閏八月初一日 趙六孫 同治元年壬戌閏八月初一日 趙六孫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2년(철종 13) 윤8월 초1일에 조육손(趙六孫)이 부안현(扶安縣) 연동(蓮洞)에 있는 모시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2년(철종 13) 윤8월 초1일에 조육손(趙六孫)이 부안현(扶安縣) 연동(蓮洞) 후평(後坪)에 있는 저전(苧田) 3두락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부수(負數)로 4부가 되는 이 모시밭을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50냥에 팔았다. 거래시 구문기 1장과 신문기 1장을 함께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문서의 끝 부분에 3년 안에 환퇴(還退)하겠다는 단서를 달았으며, 3년이 지나면 환퇴하지 않고 영구히 방매하겠다고 하였다. 증인(證人)으로 신귀인(申貴仁)이 참여하였고, 문서의 작성에는 박경현(朴京炫)이 참여하여 방매자 조육손과 함께 서명하였다. 모시밭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모시밭은 1898년에 조백운(趙白雲)이 220냥에 팔았으며, 1904년는 염석수(廉錫洙)가 270냥에 판 것으로 나와, 세월이 흐르면서 밭 값이 크게 오른 것으로 나온다. 즉 1862년에 작성된 이 문기는 "1898년 조백운(趙白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과 "1904년 염석수(廉錫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의 구문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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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三年丁丑三月日 明文右明文事有緊用處定只堤下伏在南臨字畓庫果同字畓四斗落所耕十六負㐣折価貳佰兩依數捧上是遣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爻端以此新文憑考事畓主 幼學 辛郁[着名]證人 幼學 田溶鎭[着名]舊文記他畓並付故未爲出給[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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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八年甲辰二月初七日 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伏在一道定只堤下臨字畓四斗落所耕十六負㐣價折錢文肆佰伍拾兩依數捧上是遣以舊文一張新文一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后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畓主 田準淇[着名]證人 姜和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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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이인방(李仁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五年甲辰六月初九日 金奴角金伊 李仁芳 嘉慶五年甲辰六月初九日 金奴角金伊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左寸]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00년(정조 24) 6월 초9일에 김씨댁 노(奴) 각금이(角金伊)가 상전(上典)으로부터 받은 패자(牌子)를 근거로 하여 부안에 있는 온자답(溫字畓)을 이인방(李仁芳)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00년(정조 24) 6월 초9일에 김씨댁 노(奴) 각금이(角金伊)가 상전(上典)으로부터 받은 패자(牌子)를 근거로 하여 부안에 있는 온자답(溫字畓) 4두락지를 이인방(李仁芳)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온자답은 들보 옆에 있는 논으로 부수(負數)로는 20부가 되는 곳이었다. 이 논에 화곡(禾穀)을 더하여 40냥을 받고 팔았다. 본문기(本文記)는 다른 전답의 문서에 함께 붙어 있기 때문에 매입자에게 주지 못하였다. 뒷날 이 거래를 두고 다른 말이 있거든 신문기를 가지고 관(官)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필(證筆)로는 이고읍동(李古邑同)이 이금이와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는데, 이금이는 왼손의 마디를 그려넣는 것으로 서명을 대신하였다. 각금이가 상전으로부터 받은 패자는 '1800년 노(奴) 각금이(角金伊) 패자(牌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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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이규룡(李奎龍)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六年丁卯十二月初六日 李奎龍 同治六年丁卯十二月初六日 李奎龍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不着 1개 1.2*1.2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7년(고종 4) 12월 초6일에 이규룡(李奎龍)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신리(弓新里) 전평(前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7년(고종 4) 12월 초6일에 이규룡(李奎龍)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신리(弓新里) 전평(前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으나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하여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들은 제상(堤上)에 있는 복자답(服字畓) 1두락으로, 매매가격은 4냥이었다. 구문기는 중간에 분실하여 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논 주인인 이규룡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유학(幼學) 한용하(韓用夏)가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고, 유학 성대집(成大集)이 필집(筆執)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는 상동면 궁신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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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陸年丁卯十月三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勢不得已傳來畓伏在扶安上東面弓新里前坪服字畓拾貳斗落只所耕貳拾肆負㐣價折錢文㱏百捌拾肆兩依數捧上是舊文記段他田畓幷付故未得出給以新文㱏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弊則持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喪人鄭良彦 喪不着證人 韓用浩[着名]筆執 朴乃允[着名](背面)弓新里鄭良彦十二斗落只文券 石橋上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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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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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五年己丑十二月十四日 前明文右明文事有緊用處伏在南中作竗羅坪食字田四斗落所耕九負盖字田四斗落所耕十負庫乙價折錢文捌拾陸兩依數捧上是遣並舊文二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持此文記憑考事田主鄭順翼[着名]證人朴成老[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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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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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년 김해만(金海萬)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康熙四十五年丙戌十一月二十七日 金氏 金海萬 康熙四十五年丙戌十一月二十七日 金氏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右掌]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06년(숙종 32) 11월 27일에 김씨(金氏)가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논을 김해만(金海萬)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06년(숙종 32) 11월 27일에 김씨(金氏)가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부안현(扶安縣)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온자답(溫字畓)을 김해만(金海萬)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논은 남편이 생시에 자기몫으로 물려받은 논이었는데, 김씨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거래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가격은 50냥이었다. 거래시 매입자에게 본문기(本文記) 1장을 넘겨주었으며, 뒷날 남편의 자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이 문서를 관(官)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논 주인 김씨는 오른손바닥을 그려 서명을 대신하였으며, 필집(筆執)은 죽은 남편의 동생 김위기(金偉器)가, 증인으로는 남편의 조카인 계형(啓亨)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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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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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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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熙四十五年丙戌十一月二十七日金海萬處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以家夫生時衿得耕食是在北一作溫字畓貳拾㱏負庫良中價折錢文伍拾兩捧上爲遣右人處本文記一丈幷以許給永永放賣爲去乎日後家夫同生及子孫中如有雜談者是去等將此文告官卞正事畓主金氏[右掌]筆家夫同生弟金偉器[着名]證人家夫同姓姪啓亨[着名]新明文中稱六斗落只今量所耕十八卜七束庫二十四卜六束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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