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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이동선(李東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明治四十五年壬子陰正月初九日 朱正執 李東善 明治四十五年壬子陰正月初九日 朱正執 전북 부안군 [印] 3개 1.7*1.7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2년 음력 1월 9일에 주정집(朱正執)이 고부군(古阜郡) 입마촌(立麻邨) 계동(桂洞)에 있는 논을 이동선(李東善)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2년 음력 1월 9일에 주정집(朱正執)이 고부군(古阜郡) 입마촌(立麻邨) 계동(桂洞)에 있는 논을 이동선(李東善)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고부군 입마촌(立麻邨) 계동(桂洞)에 사는 주정집은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농사지으며 먹고 살던 입마촌 계동 전평의 인자삼차답(印字三次畓) 9마지기를 이동선에게 720냥에 팔았다. 주정집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았다고 거래사유를 적고 있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2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을 하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주정집과 증인(證人)으로 주상숙(朱相淑), 주익찬(朱益贊) 등 3인이 참여하여 함께 인장을 찍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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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治四十五年壬子陰正月初九日李東善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以要用所致伏在古阜郡立麻邨桂洞前坪印字三次畓九斗落庫結三十負三束廤乙價折錢文七佰貳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舊文二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記憑考事畓主 古阜郡立麻邨桂洞朱正執[印]證人 古阜郡立麻邨桂洞 朱相淑[印]桂洞里長 朱益贊[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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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주원숙(朱元淑)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九年乙巳三月一日 朱元淑 大韓光武九年乙巳三月一日 朱元淑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1.2*0.7 1개(적색, 타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5년 3월 1일에 유학(幼學) 주원숙(朱元淑)이 백선(白仙) 후평(後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5년 3월 1일에 유학(幼學) 주원숙(朱元淑)이 백선(白仙) 후평(後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주원숙은 백선 후평에 있는 윤자답(倫字畓) 9마지기, 부수(負數)로는 22부 2속이 되는 곳과 같은 윤자답 4부 6속이 되는 곳을 합하여 총 180냥에 팔았다. 주원숙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여러 해 농사지으며 먹고 살았지만 왕세(王稅)를 낼 길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논을 팔았다고 거래 사유를 적고 있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2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을 하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주원숙과 증인(證人)으로 유학 주동진(朱東辰)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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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五年庚申十一月十八日宋舜男前明文右明文事段當此棄年生道極難故下西伏在老谷前坪誡字畓六斗落所耕十三負三束㐣價折錢文壹百拾伍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本文記一丈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談是去乎持此文告 官卞正事畓主 李六孫[着名]證人 宋奉伊[着名]筆 李平彦[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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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十年丙午十二月初八日 明文右明文事當此窮節錢政葛藤故不得已伏在仙隱村中字苧田一隊落所耕一負五束㐣折価錢文貳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中間遺失故以新文一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苧田主自筆 李勉秀[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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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년 유학(幼學) 김창해(金昌海)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二十一年丙子十二月初八日 故金明輝妻朴召史 幼學金昌海 乾隆二十一年丙子十二月初八日 故金明輝妻朴召史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右掌]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56년(영조 32) 12월 초8일에 고(故) 김명휘(金明輝)의 처(妻) 박소사(朴召史)가 부안현(扶安縣)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유학(幼學) 김창해(金昌海)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56년(영조 32) 12월 초8일에 고(故) 김명휘(金明輝)의 처(妻) 박소사(朴召史)가 부안현(扶安縣)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유학(幼學) 김창해(金昌海)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소사는 자신이 매득하여 농사를 지어왔던 지비리의 온자답(溫字畓) 8두락지, 부수(負數)로는 25부 3속이 되는 곳을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김창해에게 95냥을 받고 팔았다. 거래하면서 본문기(本文記)를 매입자에게 넘겨주었는데, 차후에 만일 동생(同生) 자손들 중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기를 관(官)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박소사는 문기에 오른쪽 손바닥을 그려 서명을 대신하였으며, 증인(證人)으로는 김인재(金仁才)가, 필집(筆執)으로는 유학(幼學) 손만웅(孫萬雄)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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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十一年丙寅十二月十六日故金明輝妻朴召史前明文右相換明文事段矣亦居在中方里而之飛里前坪良中一作溫字畓所耕二十五卜三束庫及同作臨字畓十二斗落只三十二卜六束庫興父子各買得耕食是如乎此里作農甚▣右人畓十二斗落只果彼此從其取近添給錢文四十兩依約相換而右人畓本文二丈捧上爲遣矣畓西庫本明文牌子幷十一丈幷以永相換成文爲去乎日後子孫中如有雜談是去等持此文告 官卞正事西畓主李夏悅[左寸]證武學金楚相[着名]筆幼學崔碩龜[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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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년 김선룡(金先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康熙二十七年戊辰二月十六日 故崔承腋妻陳召史 金先龍 康熙二十七年戊辰二月十六日 故崔承腋妻陳召史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右掌]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688년(숙종 14) 2월 16일에 고(故) 최승액(崔承腋)의 처(妻) 진소사(陳召史)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경작해 왔던 부안현(扶安縣)의 논을 김선룡(金先龍)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688년(숙종 14) 2월 16일에 고(故) 최승액(崔承腋)의 처(妻) 진소사(陳召史)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경작해 왔던 부안현(扶安縣) 지비리(之飛里)의 온자답(溫字畓)의 논을 가난하여 먹고 살 길이 막막하자 김선룡(金先龍)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온자답은 부수(負數)로 24부 4속이 되는 곳인데, 진소사는 백미 255두(斗)를 받고 논을 팔았다. 거래시 본문기를 매입자에게 넘겨주었으며, 만일 차후에 자손들 중에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官)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답주인 진소사는 오른손바닥을 그려 서명을 대신하였으며, 증인(證人)으로는 출신(出身) 여선길(呂仙吉)이, 증보(證保)로는 겸사복(兼司僕) 정사굉(鄭士宏)이, 필집(筆執)으로는 출신(出身) 김문필(金文弼)이 거래에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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雍正十一年癸丑元月二十日金明哲前明文右明文事段有利買處自己買得是在扶北一作伏在溫字畓新量所耕貳拾壹負捌束庫良中價折錢文四十六兩計數捧上爲遣右人處本文記二丈幷以永永出給放賣爲去乎後此子孫中如有雜談是去等持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姜奉鶴[左寸]證人婿 權老郞[着名]證保 金以鼎[着名]筆執 金楚相[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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奎彩奎七相善 宗中一不禁用事己卯十月十八日秋講行時並本利捧上錢七十兩果正租三十一斗五升也三道宗人七兩式頃下餘錢五十兩畓三斗落價頃下實在租三十一斗五升永五處分給事來按有司俊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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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午十月十八日三道宗錢分給記奴小礼丹 六兩奴小改春 六兩七戔五令伯 一兩盧生員 三兩許汝長 四兩該三道宗稧錢分排收扶安宗人三兩用來秋時祭日並本利四兩五戔持來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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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이경백(李京伯)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癸卯五月十八日 李京洵 癸卯五月十八日 1903 李京洵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3년 5월 18일에 이경백(李京伯)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에 있는 콩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3년 5월 18일에 이경백(李京伯)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에 있는 콩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경백은 이번에 큰 흉년을 당하여 생활해 나갈 길이 막막하여 자신이 매득한 돈지리(頓池里) 전평에 있는 현자전(玄字田) 6마지기를 11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2장과 표(票) 2장을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밭 주인 이경백과 증인(證人)으로 이백환(李伯換)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 말미에 환퇴(還退)의 기한을 3년이라고 규정해 놓았다. 방매자가 3년 안에 밭은 되사는 조건으로 콩밭을 판매한 것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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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卯五月十八日 前明文右明文事段當此大荒之年生活無路故伏在下西頓池里前坪自己買得太種直字田六斗落所耕十五負一束㐣價折錢文㱏百拾兩依數捧之是遣舊新文二丈果票二丈右宅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田主 李京洵[着名]證人 李伯換[着名]還退期在三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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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최영심(崔永心)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六年丁卯正月初二日 辛寬玉 崔永心 同治六年丁卯正月初二日 辛寬玉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7년(고종 4) 1월 2일에 신관옥(辛寬玉)이 부안현(扶安縣) 궁월리(弓月里)에 있는 논을 최영심(崔永心)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7년(고종 4) 1월 2일에 신관옥(辛寬玉)이 부안현(扶安縣) 궁월리(弓月里)에 있는 논을 최영심(崔永心)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관옥은 궁월리 서쪽 들에 있는 내자답(乃字畓) 9마지기를 120냥에 팔았다. 신관옥은 이 논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논을 수년 동안 농사지으며 먹고 살다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팔게 되었다고 거래사유를 밝히고 있다. 이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논의 문서에 붙어 있어서 출급할 수 없어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관옥과 증필(證筆)로 김치화(金致化)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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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김도현(金道賢)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丁丑三月二十八日 金道賢 光緖三年丁丑三月二十八日 金道賢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7년(고종 14) 3월 28일에 유학(幼學) 김도현(金道賢)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거석리(擧石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7년(고종 14) 3월 28일에 유학(幼學) 김도현(金道賢)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거석리(擧石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도현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상서면 거석리(擧石里) 촌전에 있는 어자답(於字畓) 2마지기를 3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2장을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시끄러운 일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도현과 증필(證筆)로 동몽(童蒙) 최원백(崔元白)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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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陸年丙戌十一月二十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伏在仙隱洞前坪一作玄字畓四斗落只所耕十卜庫乙錢文四十陸兩右人前依數捧上爲遣本文記段他畓倂以故新文記一章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若有雜談是去等以此新文記告官 卞正事畓主 徐致錄[着名]證人 朴好才[着名]筆執 趙宗學[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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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신노춘이(辛奴春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六年丙申十二月十六日 李生員宅奴 分同 辛奴 春伊 道光十六年丙申十二月十六日 李生員宅奴 分同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6년(헌종 2) 12월 16일에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분동(分同)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신씨가(辛氏家)의 노(奴) 춘이(春伊)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6년(헌종 2) 12월 16일에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분동(分同)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신씨가(辛氏家)의 노(奴)춘이(春伊)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생원댁노 분동은 상전 이생원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대신하여 토지를 매매한 것이다. 이생원은 급하게 돈을 쓸 일이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논인 일도면의 일작(一作) 현자정(玄字丁) 4마지기, 부수(負數)로는 10부가 되는 곳을 신씨가(辛氏家)의 노 춘이에게 3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1장과 패자(牌子)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서로 다른 말이 있으면 이것으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생원댁노 분동과 증필(證筆)로 조형익(趙亨益)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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奴分同處無他矣宅急有緊用處伏在扶東仙隱洞前坪一作玄字畓肆斗落只所耕拾負㐣準價依數納宅後成文以給事丙申十一月 日上典 李[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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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신욱수(辛郁首)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丁丑 畓主 幼學 辛郁首 光緖三年丁丑 辛郁首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7년(고종 14) 3월 신욱수(辛郁首)가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문서 1877년(고종 14) 3월 신욱수(辛郁首)가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신욱수가 팔고자 한 것은 정지제(定只堤) 남쪽 아래에 있는 임자(臨字) 답(畓)과 또 다른 임자(臨字) 답 4두락 등 2군데였다. 매매 가격은 200량. 결코 적은 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신옥수는 이번 거래를 진행하면서, 본 톤과 관련하여 이전에 작성했던 문서들은 주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 문서들이 다른 전답의 문서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인데, 문서 마지막에 "구문기 타답병부 고미위출급인(舊文記 他畓並付 故未爲出給印)"라고 적힌 부분이 바로 그 내용이다. 한편 신욱수는 양반 신분에 속한 자였다. 이는 자기 스스로를 유학(幼學)이라고 칭한 점을 알 수가 있다. 유학이란 관직이나 품계를 같지 못한 양반의 자제들이 사용하던 용어였는데, 사실 양반이 논이나 밭의 거래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으레는 자신이 부리고 있는 노복을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양반이 돈과 관련한 일에 관여한다는 것을 좋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관행은 갑오경장 이후가 되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는데, 신욱수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대리인으로 내세울만한 노복이 없어서였는지 혹은 이제는 신분이라는 것이 무색한 것이 되어 비린 시절이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문서는 거래된 전답의 위치와 크기로 미루어 볼 때 "1904년 전준기(田凖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의 구문기로 추정된다. 그리고 관련문서들이 모두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집안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歲在壬寅十二月初十日 前明文右明文事有要用故自己買得伏在左山面蓮洞東坪滿字畓陸斗落只所耕七負七束㐣価折錢文伍百伍拾兩依數捧上是遣幷旧文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則以此文記告 官卞正事此亦中日後若爲餘力則還退事畓主 幼學 金河舜[着名]證人 幼學 李永春[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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