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歲次己亥八月十一日右宅前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處故不得已而伏在左山蓮洞路下苧田壹斗落只所耕 㐣価折錢文肆什兩依數捧上是遣新文一張右宅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則以此文憑考事此亦中旧文幷付他文故不得出給事苧田主 幼學 崔炳湜[着名]證人 崔鈗洪[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五年己卯十二月十一日 前明文右明文事段傳來耕食矣以要用所致伏在一道面鳳凰里後坪樓字畓六斗落只所耕十八負六束㐣折価貳拾伍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已爲中間失火故只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日後若有異端則持此文告 官卞政事畓主 幼學 辛德淵[着名]訂人 幼學 田福汝[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임오년(壬午年) 부안(扶安)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 삼도종전(三道宗錢) 분급기(分給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경제-상속/증여-분재기 壬午十月十八日 全州李氏家 壬午十月十八日 全州李氏家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임오년(壬午年) 10월 18일에 부안(扶安)의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작성한 삼도종전(三道宗錢) 분급기(分給記). 임오년(壬午年) 10월 18일에 부안(扶安)의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작성한 삼도종전(三道宗錢) 분급기(分給記)이다. 종중(宗中)에서 종전(宗錢)을 분급한 사람들의 이름과 액수를 적었다. 여기에는 노(奴)도 포함되어 있고, 노(盧)와 허(許)의 성씨를 가진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가을의 시제(時祭)에 사용되는 금액을 분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진성규(陳性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癸卯十二月卄七日 陳性圭 癸卯十二月卄七日 1903 陳性圭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3년 12월 27일에 유학(幼學) 진성규(陳性圭)가 부안군 하서면 삼현동에 있는 콩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3년 12월 27일에 유학(幼學) 진성규(陳性圭)가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삼현동(三玄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진성규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하서면 삼현동(三玄洞) 후평에 있는 제자(濟字) 콩밭 3마지기를 3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기 1장을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밭 주인 진성규와 증인(證人)으로 유학 장내성(張乃成)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 말미에 구문기는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출급하지 못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0년 이주봉(李周鳳) 방매(放賣)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光緖十六年庚寅三月十七日 李周鳳 光緖十六年庚寅三月十七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0년(고종 27) 3월 17일 이주봉(李周鳳)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거석리(擧石里)에 있는 초가(草家)와 전답(田畓)을 팔면서 작성한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1890년(고종 27) 3월 17일 이주봉(李周鳳)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거석리(擧石里)에 있는 초가(草家)와 전답(田畓)을 팔면서 작성한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이다. 가대와 밭의 주인 이주봉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살아오던 초가(草家)를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가대와 전답이다. 부안현 상서면 거석리에 있는 초가 4칸과 행랑(行廊) 2칸, 그리고 밭 2두락지(斗落只)와 저전(苧田) 9두락지이다. 이와 함께 태종전(太宗田) 18두락지, 면전(綿田) 4두락지, 옥답(沃畓) 3두락지, 시장(柴場) 50동(同), 배나무 1주(株), 감나무 6주(株)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모두 250냥이다. 거석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이주봉은 신구문기(新舊文記) 3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가대주(家垈主) 동몽(童蒙) 이주봉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을 하지 않았다. 증인(證人)은 강영기(姜永氣), 증필(證筆)은 이영의(李瑛儀)가 참여하여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十六年庚寅三月十七日前明文右明文事段傳來記得累年居生是多可要用所致伏在上西面擧石里於字草家四間果行廊二間果垈田二斗落果苧田九隊〖斗〗落果太種田拾捌斗落果綿田肆斗落果沃畓參斗落果紫場伍拾同處梨木一株柿木陸株所耕二負㐣價折錢文貳百伍拾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以新舊文三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則以此文記憑考事家垈主 童蒙 李周鳳 喪不着證人 幼學 姜永氣[着名]證筆 幼學 李瑛儀[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十六年庚寅二月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傳來畓累年捧稅是多可勢不得已伏在全羅道扶安上東面弓月里東西南坪叩馬堤下服字畓十二斗落果渠永一斗落果上畓三畝所耕三十負四束庫果服字八斗落所耕二十負四束庫果乃字十二斗落所耕三十五負五束庫果乃字畓九斗落所耕宮結二十九負二束庫果官字畓九斗落所耕二十四負六束庫果鳥字畓十六斗落所耕二十一卜一束庫果官字畓十二斗落所耕二十八負六束㐣価折錢文陸佰兩依數捧上是遣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則以此文告 官卞正事畓主扶安上東 崔永心[着名] 此亦中新文記一丈果旧文記八張出給事證人扶安 韓應化[着名]證筆扶安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大韓光武四年庚子十一月二十四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自己買得畓伏在雙塊堤下基畓芥字畓玖斗落所耕拾五負五束㐣価折錢文陸佰兩依數捧上是遺旧文記他文券倂付故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則以此文記以此憑考爲乎乙事畓主 辛士明[着名]證筆 李行辰[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武四年庚子十二月初九日 明文右明文事以要用所致雙口堤下基畓芥字畓玖斗落所耕十五負五束庫乙価折錢文陸佰兩依數捧上是遣以新旧文二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持此文記憑考事畓主喪人 金元謙 喪不着訂人 南汝順[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十一年甲申十月初四日 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自己買得伏在一道定只堤下坪畵字畓二十斗落只所耕五十二卜庫叱折価錢文四百五十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一張[段他畓倂付不得出給以]新文記㱏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則持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辛源瞻[着名]訂筆 朴公擧[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6년 동중(洞中) 김순오(金順五) 등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二年丙子十月二十九日 金順五 光緖二年丙子十月二十九日 전북 부안군 [着名] 6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6년(고종 13) 10월 29일 동중(洞中) 김순오(金順五)가 봉산(鳳山)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6년(고종 13) 10월 29일 동중(洞中) 김순오(金順五)가 봉산(鳳山)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마을 공동 소유의 논이다. 마을 대표 김순오는 흉년이 들어 마을에 급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30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봉산(鳳山)에 있는 후평(後坪) 흥자답(興字畓) 7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21부(負)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52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김순오는 '구문기(舊文記)가 작성된 지 오래되어 찾을 수 없어서 줄 수 없다고 밝히고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으며, '차후에 분쟁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官)에 신고하여 바름을 가릴 일이다'라고 표기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김순오와 강치현(姜治賢), 이취오(李聚五), 전운중(田云仲), 염석구(廉錫九), 채춘언(蔡春彦)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논은 마을의 공동 재산이므로 마을 사람 여러 명이 거래에 참여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2년 김규상(金珪相) 방매(放賣) 산지매매명문(山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正元年陰八月八日 金珪相 大正元年陰八月八日 전북 부안군 [印] 3개 1.5*1.5 1개(적색, 원형), 1.1*0.8 1개(적색, 타원형), 1.6*1.1 1개(적색, 타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2년 음력8월 8일에 김규상(金珪相)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익상리(益上里)에 있는 산판(山坂)을 팔면서 작성한 산지매매계약서(山地賣買契約書) 1912년 음력8월 8일에 김규상(金珪相)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익상리(益上里)에 있는 산판(山坂)을 팔면서 작성한 산지매매계약서(山地賣買契約書)이다. 김규상은 스스로 매입하여 가꾸어 온 시장(柴場)을 팔게 되었다. 시장(柴場)이란 땔감 채취를 위하여 가꾼 지정된 삼림 지역을 말한다. 매매 대상이 된 시장은 부안군 상동면 익상리 뒷쪽에 있는 산판 10동락(同落)이다. 매매 가격은 150냥이다. 익상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매도인 김규상은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거래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부안군 상동면 익상리에 살고 있었다. 이 거래에는 매도인 참봉(參奉) 김규상과 보증인(保證人)으로는 호용신(扈用辰) 또한 마을 이장(里長) 심한근(沈漢根)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산판사표(山坂四標)를 살펴보면 동(東)쪽으로는 김원겸(金元兼)의 시장(柴場)있고, 서쪽으로는 이씨(李氏) 성을 가진 사람의 산이 있다. 남(南)쪽은 김옥여(金玉汝)의 시장이 있고, 북(北)쪽으로는 손씨(孫氏) 성을 가진 사람의 산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3년 서내열(徐乃烈)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七年癸卯十一月十八日 徐乃烈 光武七年癸卯十一月十八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3년(광무 7)11월 18일에 서내열(徐乃烈)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노계동(老溪洞)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3년(광무 7) 11월 18일에 서내열(徐乃烈)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노계동(老溪洞)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밭의 주인 서내열은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밭을 팔게 되었다. 이 문기에서는 특별한 방매 사유를 밝히고 있지 않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하서면 노계동 전평(前坪) 태종전(太種田) 9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13부(負) 2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05냥이다. 여기서 태종전은 콩밭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락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서내열은 구문기(舊文記)가 가대(家垈) 문서와 함께 붙어 있어 내어 줄 수 없다고 하며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밭의 주인 유학(幼學) 서내열과 증필(證筆)은 강봉국(姜奉國)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 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0년 김상만(金祥滿)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五年庚寅三月十八日 金祥滿 光緖十五年庚寅三月十八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0년(고종 27) 3월 18일 김상만(金祥滿)이 부북(扶北) 일도면(一道面) 증산(甑山) 남쪽 산기슭에 있는 땅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0년(고종 27) 3월 18일 김상만(金祥滿)이 부북(扶北) 일도면(一道面) 증산(甑山) 남쪽 산기슭에 있는 땅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산의 주인 김상만은 다음달 말까지 이곳에 있는 친산(親山)을 이장할 계획이었다. 때마침 상대방이 이곳에 산소를 쓰기 위하여 매입 의사를 밝히자 옛 무덤구덩이 전후 좌우 10보씩에 해당하는 땅을 팔기로 하였다. 방매(放賣) 가격은 모두 50냥이다. 증산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증산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매도인(賣渡人) 유학(幼學) 김상만은 새로 작성한 문서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산지주(山地主) 유학(幼學) 김상만과 증필(證筆)로는 유학 박규환(朴奎桓)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十五年庚寅三月十八日 前明文右明文事親山在於扶北一道面甑山南麓是乎所以來月晦內移去後右人入葬之意自舊壙前後左右限十步之地價折錢文伍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記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爻象持此文憑考事山地主 幼學 金祥滿[着名]證筆 幼學 朴奎桓[着名](背面)擧石里家垈文 李周鳳處買得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7년 이생원(李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丁丑六月初七日 房致安 李生員 光緖三年丁丑六月初七日 房致安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7년(고종 14) 6월 7일에 한량(閑良) 방치안(房致安)이 부안현 택상동(宅上洞)에 있는 논을 이생원(李生員)에게 팔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7년(고종 14) 6월 7일에 한량(閑良) 방치안(房致安)이 부안현 택상동(宅上洞)에 있는 논을 이생원(李生員)에게 팔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한량 방치안은 예전에 이생원에게 11냥을 빌렸는데다가, 마침 이 해에 큰 흉년이 들어 수중에 한푼도 없어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닐 지경이 되자 할 수 없이 택상동(宅上洞) 들에 있는 천자전(天字田) 1.5마지기와 같은 천자 모시밭 1마지기를 빚 대신 모두 넘겨주기로 하였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를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밭 주인 방치안은 상(喪)을 당하여 서명하지 못하였고, 증인(證人)으로 유학 전용진(田溶鎭)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7년 이성실(李成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十二年丁未九月二十一日 李成實 光武十二年丁未九月二十一日 李成實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7년 9월 21일에 이성실(李成實)이 선은동(仙隱洞) 전평(前坪)에 있는 콩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7년 9월 21일에 이성실(李成實)이 선은동(仙隱洞) 전평(前坪)에 있는 콩밭 천자전(天字田) 5두락지, 부수로는 8부 6속이 되는 곳을 65냥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선은동은 이 문기의 소장처인 부안의 전주이씨가가 살았던 동도면(東道面)에 있는 곳으로, 오늘날의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구문기는 이사하면서 분실하였기 때문에 신문기 1장만을 매입자에게 넘겨주었다. 만일 뒷날 이 논에 대하여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바로 잡으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武十二年丁未九月二十一日明文右明文事移買次切有緊用處故勢不得已伏在仙隱洞前坪太種田天字五斗落所耕八負六束㐣折価錢文陸拾伍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移去時閪失故以新文㱏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太田主自筆李成實[着名]證人 姜和玉[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武十年丙午五月初四日 明文 一夜味右明文事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要用所致勢不得已伏在古阜巨麻面林方里前坪嘯字畓七斗落只所耕二十九負四束㐣價折錢文參佰貳拾兩依數捧上是遣旧文倂付他畓文券故以新文㱏張右人處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文記憑考事畓主 劉承彦[着名]證人 金德彦[着名]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04년 신명직(辛命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九年甲子十月十五日 李仁芳 辛命直 嘉慶九年甲子十月十五日 李仁芳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左寸]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04년(순조 4) 10월 15일에 이인방(李仁芳)이 부안(扶安)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신명직(辛命直)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04년(순조 4) 10월 15일에 이인방(李仁芳)이 부안(扶安)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신명직(辛命直)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인방은 부채가 너무 많아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지비리 전평(前坪)의 온자답(溫字畓) 4두락지, 부수(負數)로 17복 4속이 되는 곳을 신명직에게 55냥을 받고 팔았다. 본문기(本文記) 1장과 패자(牌子)를 매입자에게 넘겨주었는데, 뒷날 친족들 중에서 다른 말을 하거든 이 문기를 관(官)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보(證保)로 동성사촌(同姓四寸) 옥남(玉南)이, 필집(筆執)으로 김치일(金致鎰)이 거래에 참여하여 이인방과 함께 서명하였는데, 옥남은 왼손의 마디를 그려넣는 것으로 서명을 대신하였다. 한편, 여기에서 본문기는 '1800년 이인방(李仁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를 가리키며, 패자는 '노(奴) 각금이(角金伊) 패지(牌旨)'를 가리킨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