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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면수(李勉秀)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十年丙午 苧田主自筆 李勉秀 大韓光武十年丙午 李勉秀 전북 부안군 [着名]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6년 12월 8일 이면수(李勉秀)가 모시밭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1906년 12월 8일 이면수(李勉秀)가 저전(苧田), 즉 모시밭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밭은 선은동(仙隱洞)에 있었는데, 크기는 1대락(隊落)이었으며, 매매 대금은 20냥이었다. 밭의 크기를 재는 단위 가운데 대락은 매우 생소하다. 고문서에서 대락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예도 거의 없는 듯하다. 따라서 1대락이 어느 정도의 크기를 말하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이면수가 위 모시밭을 팔게 된 이유는 돈이 필요해서였다. 아마도 올해 가을 작황(作況)이 좋지 못하였고 그래서 생활에 필요한 곡식을 살 정도의 돈도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이면수는 이번 거래를 진행하면서, 위 모시밭과 관련하여 이전에 작성된 문서들도 같이 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예전 문서를 분실하였기 때문이다. 문서에 보이는 "구문기중간유실 고이신문일장 우전영영방매위거호(舊文記中間遺失故以新文一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라고 말한 부분이 바로 그 대목이다. 그런데 본 문서의 내용은 바로 앞서 소개된 "1906년 이면수(李勉秀)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의 문서와 그 내용이 같다. 모시밭의 위치나 크기도 동일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그것은 매매 가격인데, 그렇다면 앞서 거래한 모시밭과 이번에 거래한 모시밭을 동일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같은 지번에 있는 모시밭을 두 차례로 나누어 매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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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안달수(安達守)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四年戊子三月二十三日 安達守 光緖十四年戊子三月二十三日 安達守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8년(고종 25) 3월 23일에 유학(幼學) 안달수(安達守)가 부안현(扶安縣) 이도면(二道面) 송곶(松串)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8년(고종 25) 3월 23일에 유학(幼學) 안달수(安達守)가 부안현(扶安縣) 이도면(二道面) 송곶(松串)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안달수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송곶 전평(前坪)에 있는 금자답(禽字畓) 4마지기, 부수(負數)로 9부 3속이 되는 곳을 28냥에 팔았다. 그러나 문서의 끝 부분에 "논 주인이 논을 팔지 않는다고 말하여 7냥을 더 보태어 주어 총 35냥이다."라고 적혀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논값은 실제로 35냥에 거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논의 문서에 붙어 있어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안달수와 증필(證筆)로 유학 박문일(朴文一)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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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六年庚寅閏二月十四日 前明文右明文事報債無路故衿得伏在上西擧石里於字草家三間苧田七隊落太田一石六斗落㐣價折錢文九十兩依數捧上是遣以新舊文二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像則持此文憑考事此亦中右錢以市利例限七月晦內備報後還退事九十三兩六戔內三兩六戔無利家垈主 童蒙 李周鳳[喪不着]證人 幼學 姜永氣[着名]幼學 金基鐘[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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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六年庚寅二月 前明文右明文事以要用所致伏在上西擧石里前坪於字苧田一帶半直㐣價折錢文五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本無故以新文一丈成文事日後若有爻像則以此文記憑考事此亦中右錢三月晦內以報後還退事苧田主 童蒙 李周鳳[喪不着]證人 幼學 姜仁俶[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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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김명여(金明汝)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九年乙巳九月十六日 金明汝 光武九年乙巳九月十六日 金明汝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5년 9월 16일에 유학(幼學) 김명여(金明汝)가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5년 9월 16일에 유학(幼學) 김명여(金明汝)가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명여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상리 전평(前坪)에 있는 궐자답(闕字畓) 3마지기와 5마지기를 합하여 총 700냥에 팔았다. 3마지기 논은 부수(負數)로 4부 4속이 되는 곳이었고, 5마지기 논은 9복 9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2장과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벼(禾穀) 3석(石) 10두(斗)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 논 주인 김명여와 증인(證人)으로 유학 김원겸(金元謙)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문서 말미에 상리 전평 김명여 7마지기 문권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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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九年乙巳九月十六日 前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處故伏在上東上里前坪闕字畓參斗落所耕四負四束庫果闕字畓伍斗落所耕九卜九束庫乙價折錢文柒佰兩依數捧上是遣以舊文記二張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持此文記憑考事此亦中倂禾穀三石十斗事畓主 幼學 金明汝[着名]訂人 幼學 金元謙[着名]上里前坪金明汝七斗落文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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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신사명(辛士明)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四年庚子十一月二十四日 辛士明 大韓光武四年庚子十一月二十四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2.5*2.5 3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0년(광무 4) 11월 24일 신사명(辛士明)이 쌍괴제(雙塊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0년(광무 4) 11월 24일 신사명(辛士明)이 쌍괴제(雙塊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신사명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자기 매득하여 경작해 오던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쌍괴제 아래에 있는 지답(至畓) 개자답(芥字畓) 9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15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600냥이다. 쌍괴제는 쌍구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쌍구제는 오늘날 부안군 동진면에 있는 저수지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신사명은 구문기(舊文記)가 다른 문서와 함께 붙어 있어 내어 줄 수 없다고 하며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신사명과 증필(證筆)은 이행신(李行辰)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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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신명직(辛命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五十八年癸丑四月初六日 金履直 辛命直 乾隆五十八年癸丑四月初六日 金履直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喪人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93년(정조 17) 4월 초6일에 김이직(金履直)이 양친(兩親)의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부안(扶安) 일도면(一道面)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93년(정조 17) 4월 초6일에 김이직(金履直)이 양친(兩親)의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부안(扶安) 일도면(一道面) 지비리(之飛里) 전평(前坪)에 있는 온자답(溫字畓) 8두락지와 7두락지, 그리고 6두락지 논 등 세 곳을 신명직(辛命直)에게 310냥을 받고 팔았다. 이곳은 김이직이 외가(外家)로부터 자기몫으로 물려받은 논이었다. 당시 김이직은 사정이 있어서 양친의 장례를 바로 지내지 못하고 조금 기일이 지난 뒤에 치르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장례비용이 필요하여 논을 팔게 되었다. 8두락지 논은 부수(負數)로는 24복 6속이 되는 곳이었으며, 7두락지 논은 21복 8속이 되는 곳이었으며, 6두락지 논은 18복 7속이 되는 곳이었다. 거래시 본문기(本文記) 7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는데, 만일 차후에 족속 가운데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이 문기를 관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당시 김이직은 상중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으며, 증인(證人)으로는 최덕관(崔德寬)이, 필집(筆執)으로는 유학(幼學) 김광이(金廣履)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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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二十一年丙子十二月初八日幼學金昌海前明文右明文爲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耕食是在之飛里前坪一作溫字畓捌斗落只所耕貳拾伍卜參束庫乙價折錢文玖拾伍兩以交易依數捧上爲遣右人前本文記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良中同生子孫中如有雜談隅是去等此文記內兒爲告官卞正事畓主故金明輝妻朴召史[右掌]證 金仁才[着名]筆執幼學 孫萬雄[着名]新明文中稱八斗落只今量所耕二十四卜六束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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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 고(故) 김명휘처(金明輝妻) 박소사(朴召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十一年丙寅十二月十六日 李夏悅 故金明輝妻朴召史 乾隆十一年丙寅十二月十六日 李夏悅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左寸]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46년(영조 22) 12월 16일에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중방리(中方里)에 사는 이하열(李夏悅)이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고(故) 김명휘(金明輝)의 처(妻) 박소사(朴召史)의 전답과 상환(相換)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46년(영조 22) 12월 16일에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중방리(中方里)에 사는 이하열(李夏悅)이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고(故) 김명휘(金明輝)의 처(妻) 박소사(朴召史)의 전답과 상환(相換)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하열은 전답의 위치 때문에 농사 짓기가 어렵자 지비리 전평(前坪)에 있는 온자답(溫字畓) 25부 3속이 되는 곳을 박소사 소유의 근처 임자답(臨字畓) 12두락지와 맞바꾸기로 하였다. 상환하는 대신에 박소사에게는 40냥을 주기로 하였다. 거래하면서 박소사로부터 본문기 2장을 받았으며, 자신은 박소사에게 이 명문과 패자(牌子) 등 11장을 넘겨주었다. 만일 차후에 자손들 중에게 이 거래를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관(官)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논 주인 이하열은 외손가락 마디를 그려 서명을 대신하였으며, 증인으로는 무학(武學) 김초상(金楚相)이, 필집(筆執)으로는 유학(幼學) 최석귀(崔碩龜)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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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年壬午十月初五日崔龍甲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勢不得已生道極難故弓月里後坪伏在乃字畓十二斗落只所耕三十五負五束㐣価折錢文八十五兩依數交易捧上爲遣右人前本文記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同生子孫族屬等中間異[說]之弊是去等持此文記告 官卞正事自筆 幼學 韓守光[着名]證人 李得良[着名](背面)仙洞李議官券 二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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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2년 강봉구(姜奉鳩)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康熙六十一年壬寅十二月二十七日 金先興 姜奉鳩 康熙六十一年壬寅十二月二十七日 金先興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左寸]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22년(경종 2) 12월 27일에 김선흥(金先興)이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하여 자신이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던 논을 강봉구(姜奉鳩)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22년(경종 2) 12월 27일에 김선흥(金先興)이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하여 자신이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던 온자답(溫字畓)을 강봉구(姜奉鳩)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논은 원래 김선흥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오다가 막내아들 석휘(碩輝) 몫으로 명의를 해 놓았다가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온자답은 예전 측량시에는 24복 4속이었으나, 이번 측량에서 21부 8속으로 다시 책정이 되었다. 김선흥은 매입자에게 본문기 1장을 주었으나 도문기(都文記)는 다른 전답이 함께 실려 있어서 넘겨주지 못했다. 뒷날 자손들 가운데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관(官)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인(證人)으로 정일이(鄭日伊)이가 참여하여 오른손가락 마디를 그려 서명을 대신하였으며, 필집(筆執)으로는 김위상(金謂相)이 참여하여 답주 김선흥과 함께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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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유삼기 (柳三基)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三年癸巳十一月十六日 高時大 柳三基 道光十三年癸巳十一月十六日 高時大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3년(순조 33) 11월 16일에 고시대(高時大)가 부안현(扶安縣) 안덕동(安德洞)에 있는 논을 유삼기(柳三基)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3년(순조 33) 11월 16일에 고시대(高時大)가 부안현(扶安縣) 안덕동(安德洞)에 있는 논을 유삼기(柳三基)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고시대는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살아오던 안덕동(安德洞) 앞들의 부자답(扶字畓) 6마지기를 유삼기에게 5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1장을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시끄러운 일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고시대 본인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증인(證人)으로 이양연(李良連)과 유광옥(柳光玉) 등 3인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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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四年戊子三月二十三日 前明文右明文事勢不得已伏在扶北二道松串前坪禽字畓四斗落所耕九負三束㐣價折錢文貳拾捌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他畓並付故以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則持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幼學 安達守[着名]證筆 幼學 朴文一[着名]畓主言內不賣云故價文七兩加給則合三十伍兩(背面)金昌文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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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김인곤(金仁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二年丙子十二月卄四日 金仁坤 光緖二年丙子十二月卄四日 金仁坤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6년(고종 13) 12월 24일에 한량(閑良) 김인곤(金仁坤)이 부안현 하서면 돈지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명문(明文). 1876년(고종 13) 12월 24일에 한량(閑良) 김인곤(金仁坤)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명문(明文)이다. 김인곤은 흉년을 당하여 살 길이 막막하자 돈지리 상두동평(常頭洞坪)에 있는 용자답(庸字畓) 3두락지, 부수(負數)로는 8부 5속이 되는 곳을 23냥을 받고 팔았다. 거래시 매입자에게 구문기 1장과 신문기 1장을 넘겨 주었다. 만일 뒤에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관(官)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답주 김인곤이 문서에 서명하였으며, 김귀만(金貴萬)이 필집(筆執)으로 거래문기를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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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신옥년(辛玉年)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一年壬申九月十八日 辛玉年 同治十一年壬申九月十八日 辛玉年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2년(고종 9) 9월 18일에 유학(幼學) 신옥년(辛玉年)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2년(고종 9) 9월 18일에 유학(幼學) 신옥년(辛玉年)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옥년은 급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상리 전평(前坪)에 있는 주자답(珠字畓) 5마지기, 부수(負數)로 9부 5속이 되는 곳과 화곡(禾穀) 2석(石)을 합하여 18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를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시끄러운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당시 논 주인 신옥년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못했으며, 증인(證人)으로 유학 성효(聖孝)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 말미에 상리 전평 김명여 7마지기 문권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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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84년 신원첨(辛源瞻)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一年甲申十月初四日 辛源瞻 光緖十一年甲申十月初四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4년(고종 21) 10월 초4일 신원첨(辛源瞻)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정지리(定只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4년(고종 21) 10월 초4일 신원첨(辛源瞻)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정지리(定只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신원첨은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정지리 제방 아래에 있는 화자답(畵字畓) 20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52부(卜)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45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신원첨은 구문기(舊文記)가 다른 문서와 붙어 있어 내어 줄 수 없다고 하며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으며, '차후에 분쟁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官)에 신고하여 바름을 가릴 일이다'라고 표기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신원첨과 정필(訂筆)은 박공거(朴公擧)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추가로 본문에 일장(㱏張)은 일장(㱏丈)으로 써야 바른 표기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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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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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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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康熙二十七年戊辰二月十六日金先龍處明文右明文爲臥乎事段貧寒所致祖上傳來衿得耕食爲是如可扶北一作伏在溫字畓貳拾肆負四束庫乙價折而白米貳百伍拾伍斗以依數交易捧上爲遣右人處本文記幷永永放賣爲去乎後次同生子孫中如有雜談爲去等持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故崔承腋妻陳召史[右掌]證人出身呂仙吉[着名]證保兼司僕鄭士宏[着名]筆執出身金文弼[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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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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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9년 김봉상(金奉相)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隆熙三年己酉二月初八日 金奉相 隆熙三年己酉二月初八日 金奉相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9년 2월 초8일에 김봉상(金奉相)이 부안군(扶安郡) 좌산면(左山面) 연동리(蓮洞里)에 있는 모시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9년 2월 초8일에 김봉상(金奉相)이 부안군(扶安郡) 좌산면(左山面) 연동리(蓮洞里)에 있는 모시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연동 전평(前坪)에 있는 만자(滿字) 저전(苧田) 1두락지, 부수(負數)로는 1부 3속이 되는 곳을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60냥에 팔았다. 신문기와 구문기를 매입자에게 함께 넘겨 주었다. 만일 뒤에 이 모시밭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서기환(徐己煥)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방매자 김봉상과 함께 서명하였다. 논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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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隆熙三年己酉二月初八日 前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伏在左山面蓮洞前坪滿字苧田一斗落只所耕一負三束㐣價折錢文陸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旧文幷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憑考事苧田主 金奉相[着名]證人 徐己煥[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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