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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貞善)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貞善 貞善 전북 부안군 30.1* 개(, /////23.5)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신년(辛年) 12월 20일에 정선이 보낸 간찰 신년(辛年) 12월 20일에 정선이 보낸 간찰이다. 신년이란 간지에 신(辛)이 들어가는 해를 말한다. 피봉이 없는 관계로 수신인은 알 수가 없다. 한편 정선은 스스로를 삼종형(三從兄)으로 적고 있는데, 삼종은 팔촌이 되는 형제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나의 아버지 육촌 형제의 자녀들이 나와 팔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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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승헌(承憲)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卯 承憲 癸卯 承憲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3년(고종 40)에 승헌(承憲)이 보낸 간찰(簡札) 1903년(고종 40) 2월 18일에 승헌(承憲) 보낸 간찰이다. 수신인은, 승헌이 스스로를 죄질(罪姪)로 적고 있는 점으로 보아, 승헌의 삼촌이었다고 생각된다. 죄질은 상(喪)을 당한 상태라는 의미이다. 승헌이 본 간찰을 보낸 이유는 전답의 매매와 관련한 내용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계묘년으로만 되어 있지만, 문서의 지질과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1903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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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성(嚴柱成) 서간(書簡) 피봉(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嚴柱成 金昌鶴 嚴柱成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봉황리(鳳凰里)에 사는 엄주성(嚴柱成)이 같은 면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김창학(金昌鶴)에 보낸 서간(書簡)의 피봉(皮封).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봉황리(鳳凰里)에 사는 엄주성(嚴柱成)이 같은 면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김창학(金昌鶴)에 보낸 서간(書簡)의 피봉(皮封)이다. 피봉의 이면에 6월 10일이라고 보낸 날자를 적었지만 년도는 알 수 없다. 한편 수신인은 '金技士昌鶴氏'라고 적고 있으며, 접합이매재중(接合二枚在中)이라고 내용물을 표시하였다. 상동면 봉황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에 해당하는 곳이며, 내기리는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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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基里金技士昌鶴氏接合二枚在中(背面)鳳凰里嚴柱成六月十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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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김화서(金化西)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丑五月卄九日 金化西 李議官 癸丑五月卄九日 1913 金化西 전북 부안군 [印] 3개 1.2*1.2 3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3년 5월 29일에 김화서(金化西)가 이의관(李議官)에게 보낸 서간(書簡). 1913년 5월 29일에 김화서(金化西)가 이의관(李議官)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엊그제 약속한 볏섬 1석 10두를 이번에 의심하지 말고 출급(出給)하라는 것과, 정공인(鄭公仁)의 도장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담고 있다. 이 편지는 정공인이 부안의 전주이씨가에 전답을 방매한 거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화서는 이 거래에 증인으로 참여하기도 하였고, 이씨가를 대신하여 정공인으로부터 거래금액을 받기도 하였다. "1913년 정공인(鄭公仁) 영수증(領受証) 1", "1913년 정공인(鄭公仁) 영수증(領受証) 2", "1913년 김화서(金化西) 영수증(領受証) 1", "1913년 김화서(金化西) 영수증(領受証) 2", "1913년 김화서(金化西) 영수증(領受証) 3", 1913년 김화서(金化西) 영수증(領受証) 4", "1913년 김화서(金化西) 영수증(領受証) 5" 등이 바로 이와 관련된 문서들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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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議官 殿除□再昨日所約租包㱏石十斗此去便勿疑出給切仰之鄭公仁氏圖章姑未入來事癸丑五月卄九日 金化西[印][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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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甲子年) 이돈선(李暾善)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子 弟李暾善 甲子 李暾善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갑자년(甲子年) 이돈선(李暾善) 서간(書簡) 갑자년(甲子年) 이돈선(李暾善)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초행일(初行日)에 관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혼인식과 관련된 편지였음을 알 수 있다. 초행일이란 신랑(新郞)이 혼례식(婚禮式)을 치르기 위해 신부집으로 가는 혼례 의식을 말한다. 발행일시(發行日時)과 입문일시(入門日時)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데, 발행일시와 입문일시가 같은 날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랑집으로부터 신부집까지의 거리가 아주 먼 거리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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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者郵書仰想熟參而今且專人◉係于歸日字之迫所也十分另意期於右日治行焉日家所云若前日理程則甚如不利是此是初行之事不可疎忽也以此諒之如何就審日內禮盡在沽藥旺仁庇句禧◉◉不任區區弟姑率盛寧呌姑今則小差之餘不備禮 甲子元月九日弟李暾善再拜發行日時甲子二月六日巳時入門時仝日酉末戌初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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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이주봉(李周鳳)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六年庚寅二月 李周胤 光緖十六年庚寅二月 李周胤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0년(고종 27) 2월에 동몽(童蒙) 이주봉(李周鳳)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거석리(擧石里)에 있는 모시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0년(고종 27) 2월에 동몽(童蒙) 이주봉(李周鳳)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거석리(擧石里)에 있는 모시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주봉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거석리 전평(前坪)에 있는 어자(於字) 모시밭 1.5 대락(隊落)을 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본래 없었기 때문에 신문기 1장을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시끄러운 일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추기로 3월 그믐 안으로 돈을 갚는다면 되살 수 있다는 환퇴(還退) 조항을 삽입하였다. 거래 당시 모시밭 주인 이주봉은 상을 당하여 서명하지 못하였고 증인(證人)으로 유학 강인숙(姜仁俶)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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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김병두(金炳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二年癸亥六月二十二日 黃海鱗 金炳斗 同治二年癸亥六月二十二日 黃海鱗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3년(철종 14) 6월 22일에 유학(幼學) 황해린(黃海鱗)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논을 유학 김병두(金炳斗)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3년(철종 14) 6월 22일에 유학(幼學) 황해린(黃海鱗)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논을 유학 김병두(金炳斗)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황해린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선은동 전평(前坪)에 있는 일작(一作) 현자답(玄字畓) 4마지기를 김병두에게 3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3장를 매입자에게 건네주었으며, 나중에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특히 이 문기에 환퇴(還退)를 위해서 구문기를 건네준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황해린은 나중에 이 논을 다시 살 의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논 주인 황해린과 증인(證人)으로 유학 임필상(任弼常)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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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二年癸亥六月二十二日幼學金炳斗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伏在東道仙隱洞前坪一作玄字畓四斗落所耕拾負㐣折價錢文參拾五兩依數捧上是遣日後還退次舊文三丈倂右人前放賣爲去乎日後系人中若有他端持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幼學 黃海鱗[着名]證人 幼學 任弼常[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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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노(奴) 분동(分同) 패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경제-매매/교역-배지 丙申十一月 日 上典 李 奴 分同 丙申十一月 日 1836 上典 李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6년(헌종 2) 11월에 상전(上典) 이모(李某)가 노(奴) 분동(分同)에게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토지의 거래를 위임하면서 작성해 준 패지(牌旨). 1836년(헌종 2) 11월에 상전(上典) 이모(李某)가 노(奴) 분동(分同)에게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토지의 거래를 위임하면서 작성해 준 패지(牌旨)이다. 거래 대상이 된 논은 선은동 전평(前坪)에 있는 일작(一作) 현자답(玄字畓) 4마지기로, 값을 정하여 상전댁에서 받아들인 뒤에 문서를 작성하여 지급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병신년으로만 되어 있으나 분동이 방매자로 거래한 관련문서 "1836년 신노춘이(辛奴春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를 통해서 작성연대를 1836년으로 추정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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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최영심(崔永心)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六年庚寅十一月初二日 嘉義崔永心 光緖十六年庚寅十一月初二日 嘉義崔永心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0년 11월 초2일에 가의(嘉義) 최영심(崔永心)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0년 11월 초2일에 가의(嘉義) 최영심(崔永心)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 동평(東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경작해 왔었다. 매매 대상이 된 논은 동평 통수동(通水洞)에 있는 의자답(衣字畓) 5두 5승락, 매매가격은 78냥이었다. 문서에는 이 논의 부수(負數)를 사복(司卜) 11복 1속과 민결(民結) 5복 1속으로 나누어 기재하였다. 구문기는 다른 논 문서에 함께 붙어 있어서 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을 매입자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최영심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유학 한응화(韓應化)가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는 상동면 궁월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최영심의 자품으로 적힌 가의(嘉義)는 가의대부(嘉義大夫)의 줄임말로, 조선시대 종2품의 문무관의 품계이다. 최영심은 이보다 앞서 2월에도 상동면 궁월리에 있는 여러 곳의 논들을 600냥에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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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김자익(金子益)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開國五百五年丙申九月十九日 幼學 忠淸道龍湖 金子益 開國五百五年丙申九月十九日 幼學 金子益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6년 9월 19일에 김자익(金子益)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6년 9월 19일에 김자익(金子益)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고마제(叩馬堤) 아래의 궁월리(弓月里) 동서남평(東西南坪)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들을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세를 받아왔으나,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논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들은 복자답(服字畓) 12두락, 거영(渠永) 1두락, 상답(上畓) 3무(畝) 30부 4속, 복자답 8두락 20부 4속, 내자답(乃字畓) 12두락 35부 5속, 내자답 9두락 궁결(宮結) 29부 2속, 관자답(官字畓) 9두락 24부 6속, 조자답(鳥字畓) 16두락 37복 1속, 관자답 12두락 28부 6속 등 아홉 곳으로 매매가격은 1,400냥이었다. 거래시 구문기 9장과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넘겨주었으며,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이 때 건네 준 구문기의 하나가 "1890년 최영심(崔永心)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인데, 불과 6년 사이에 논값이 600냥에서 1,400냥으로 2배 이상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거래 당시 충청도 용호(龍湖)에 살고 있었던 유학 김자익이 문서에 서명하였으며, 유학 김원겸(金元謙)이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는 상동면 궁월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며, 고마제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있는 대규모 저수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문서에 매입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이 문서의 소장처인 선은동에 살았던 부안의 전주이씨가로 추정된다. 선은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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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五年己丑七月十九日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草家四間折価錢文參拾五兩依數捧上是遣永永放賣爲去乎以此新舊文憑後之地爲乎乙事家垈主 吳淳周[着名]證人 金元基[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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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八年壬辰六月晦日 前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勢不得已草家四間舍太田三斗落只所耕 㐣折價錢文肆拾陸兩依數捧上是遺旧文記中間流失故不得出給而以新文一丈右處永永放賣爲去乎日后若有他說則以此文記告官憑爲乎乙事家垈主 林自雲[着名]證人 金益化[着名]筆執 金道範[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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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심문경(沈文京)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六年壬寅 畓主 幼學 沈文景 光武六年壬寅 沈文景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2년(고종 39) 1월 18일 심문경(沈文京)이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2년(고종 39) 1월 18일 심문경(沈文京)이 마차제(馬車堤) 위에 있는 경자(驚字) 답(畓) 9두락(斗落)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매(賣買) 문서이다. 심문경이 이 논을 팔게 된 이유는 급히 돈이 필요해서였다. 매매 대금은 450냥이었다. 금액으로 보아 규모가 작은 거래는 아니었던 것을 추정된다. 심문경(沈文京)은 위 논을 매도하면서, 위 논과 관련된 이전의 문서는 주지 못하였다. 그 문서가 다른 문서와 서로 병합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문서에 보이는 "구문기병부타답문권고이(旧文記幷付他畓文券"이라고 한 대목이 바로 그 내용이다. 한편 본 문서를 작성한 심문경이나 또는 증인으로 자리를 함께 하였던 김몽삼(金夢三) 등은 양반 신분에 속한 자였다. 그 점은 그들 스스로 유학(幼學)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알 수가 있다. 조선시대에 있어, 논밭을 거래하거나 혹은 어떤 물건을 거래하는 데 있어 양반이 직접 참여하는 예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대개는 자신 집에서 부리고 있는 노(奴)를 대신하였는데, 그런 점에서 본 문서는 이례적이었다고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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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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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大韓光武十年丙午十一月初九日 明文右明文事當此窮節錢政葛藤故不得已伏在仙隱洞村前 字畓苧田一隊落所耕 㐣折価錢文伍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中間遺失故以新文一張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苧田主自筆 李勉秀[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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