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전에 보낸 편지에서 이미 다 말했으니, 고명께서 잘 양해해 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받고 전달하려는 말뜻이 더욱 진중할 줄은 참으로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더구나 폭면의 두 글자는 너무 시제에 맞지 않아 부끄러운 심사를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이후에 글의 상서로움이 갈수록 좋아 모임의 원고를 누군들 한번 보고 싶은 기원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평가에 대한 점수는 비록 분명한 견해가 있더라도 결코 할 수 없습니다. 학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은데 다리를 이어 붙여도 슬퍼하고 다리를 절단해도 원망할 것이니,1) 그 천성을 온전히 하고 그 본성을 보존하는 것만 하겠습니까. 또 청안(靑眼)과 백안(白眼)의 눈빛을 나타내지 말고 자황(雌黃)을 입안에서 내지 않으니,2) 노년의 경계가 이미 정해졌습니다. 대개 기예를 견주고 능력을 경쟁하는 것은 선비가 서로 겸양하는 도리가 아님이 있을 수 있으니, 좌하께서 어찌 또한 혹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붓을 잡기가 몹시 곤란하여 이 정도로만 대충 씁니다. 삼가 답장을 올립니다.갑술년(1934) 5월 20일에 이병수가 절하고 올림. 학다리는……것이니 『장자(莊子)』 「변무(騈拇)」에 나오는 말이다. 청안(靑眼)과……않으니 진(晉)나라 완적(阮籍)이 예교(禮敎)에 얽매인 속된 선비가 찾아오면 백안을 뜨고 맞이했고, 고결한 고사(高士)가 찾아오면 밝은 눈으로 대했던 고사에서 연유하고, 자황(雌黃)은 유황(硫黃)과 비소(砒素)를 혼합하여 만든 안료(顔料)로, 옛날에 황지(黃紙)에 글씨를 쓰다가 잘못 쓸 경우 이것을 사용해서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썼으므로, 전하여 시문(詩文)의 개찬(改撰)이나 평론을 가리킨다.(『晉書』 卷49 「阮籍列傳」, 『晉書』 卷43 「王衍列傳」) 陋拙前書已悉 想 高明有以裁諒 而荐此華訊 委到辭意益復珍重 實非所圖 况幅面二字太不着題 歉愧罔喩 第惟日來文祺益茂 社稿孰無一見之願 然評徵高下 雖有明見 决不可爲也 鶴長鳧短 續則悲 斷則怨 曷若全其天 而存其性哉 且靑白不形 雌黃不口 老年拙戒已定耳 蓋凡較藝爭能有非士子相讓之道 則 座右豈亦未之或思耶把筆甚艱 只此草草僅复甲戌五月廿日 李炳壽拜謝[皮封](前面) 高興郡豆原面龍山里何求亭詩社朴 斯文 炯得 甫 經幌下羅州老安面琴谷謹謝函(背面) 甲戌陰六月卄日 付 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