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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二十年戊寅三月十九日鄭傑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是在扶北一作多字田七卜七束庫乙折價錢文柒兩依數交易?之爲遣右人前本文記並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同生子女中若有雜談是去等以此文記告官卞正事田主 金振興[着名]訂人 李毛善大[左寸]筆執 朴愚春[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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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八年甲辰九月初三日 前明文右明文事有要用故伏在蓮洞坪滿字苧田三斗落只所耕四負㐣価折錢文貳佰柒拾兩依數捧上是遣幷旧文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 告 官卞正事苧田主 廉錫洙[着名]證人 徐俊敬[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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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三十年庚戌十二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耕食是多可移買次一道社食坪樓字畓拾斗落只所耕二十三卜四束㐣価折錢文一百五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一丈新文記幷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以此文記告官卞呈事畓主 幼學 自筆 崔鳳后[着名]證人 幼學 李後成[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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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豊九年己未十一月十八日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數年耕食是多可勢不得已一道社倉坪樓字畓十一斗落只所耕二十三負四束㐣価折錢文㱏佰參拾五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二丈新文記一丈倂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以此文記憑考事畓主 金德現[着名]證筆 林琪煥[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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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조필량(趙弼良)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八年己亥十二月初九日 金氏 趙弼良 道光十八年己亥十二月初九日 김씨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9년(헌종 5) 12월 9일에 숙모(叔母) 김씨(金氏)가 조카 조필량(趙弼良)에게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지비리(之飛里)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9년(헌종 5) 12월 9일에 숙모(叔母) 김씨(金氏)가 조카 조필량(趙弼良)에게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지비리(之飛里)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를 "道光十八年己亥"로 기재하고 있으나, 기해년은 도광 18년이 아니라 도광 19년이다. 여기에서는 간지를 기준으로 하여 1839년으로 작성연대를 잡았다. 숙모 김씨가 조카 조필량에게 논을 팔게 된 이유는 이사(移徙)하기 위해서였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지비리 전평(前坪) 누자답(樓字畓) 10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23부(負) 4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20냥이다. 지비리는 현재의 부안군 동진면 지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숙모 김씨가 구문기(舊文記)는 다른 문서와 함께 붙어 있어 내어 줄 수 없음을 밝히고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 조카 조필량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분쟁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官)에 신고하여 바름을 가릴 일이다'라고 표기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숙모 김씨와 정정(訂爭)으로는 김성운(金聖云)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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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己巳二月初八日 前明文右明文事所急有緊處自己買得東門外仙隱洞前坪地字畓三斗落只所耕十二負庫乙折價錢文三十八兩依數捧上是遣本文記二丈新文記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之說則以此文記憑告官卞正事畓主 閑良 房巖[着名]證人 證筆 廉致連[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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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설처(薛處)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三十三年戊子二月十四日 薛處 乾隆三十三年戊子二月十四日 薛處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68년(영조 44) 2월 14일 신노봉태난(辛奴奉太蘭)이 설(薛) 아무개에게 논과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68년(영조 44) 2월 14일 신노봉태난(辛奴奉太蘭)이 설(薛) 아무개에게 논과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노봉태난은 방매(放賣) 사유를 '나의 상전(上典)이 팔고자 하는 곳이 있어서 논과 밭을 팔게 되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은 매매행위에 대해 자신을 들어내지 않고, 집안의 노비를 내세워 계약했다. 따라서 이 계약은 노비(奴婢) 봉태난과 설처 사이에 이루어졌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동문(東門) 바깥쪽 선은동(僊隱洞) 전평(前坪) 지자답(地字畓) 3두락지(斗落只)와 밭 1두락지로 부수(負數)로는 13부(負)인 곳이다. 방매 가격은 2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신노봉태난은 구문기(舊文記) 2장과 신문기(新文記)를 매수인(買受人) 설처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신노봉태난과 증보(證保)는 정손(丁孫)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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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三年癸巳十一月初三日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以移買次伏在二道松串前坪禽字畓九斗落所耕二十四負三束庫果同字畓五斗落所耕十二負五束庫果同字畓二斗落所耕五負一束庫果同字田四斗落所耕八負三束庫果同字柴場三十同落乙價折錢文貳百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中間閪失故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口舌端以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幼學 裵汝玉[着名]訂人 幼學 金憤載[着名]訂筆 幼學 崔大錫[着名](背面)禽字田四斗落所耕八負三束庫果同字柴場三十同落處幷以背頉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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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김원달(金源達)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六年丁卯十二月初二日 金源達 同治六年丁卯十二月初二日 金源達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7년(고종 4) 12월 2일에 유학(幼學) 김원달(金源達)이 부안현(扶安縣) 이도면(二道面) 송곶(松串)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7년(고종 4) 12월 2일에 유학(幼學) 김원달(金源達)이 부안현(扶安縣) 이도면(二道面) 송곶(松串)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원달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선대로부터 전하여 부안현 이도면(二道面) 송곶(松串) 앞들에 있는 금자(禽字) 논 16마지기를 23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어 만약에 말썽이 일어나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원달 본인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하였으며, 증인으로 유학 김문화(金文化)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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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김기하(金基夏)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年庚子三月十八日 幼學金基夏 幼學 道光二十年庚子三月十八日 幼學金基夏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0년(헌종 6) 3월 18일에 유학(幼學) 김기하(金基夏)가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0년(헌종 6) 3월 18일에 유학(幼學) 김기하(金基夏)가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 논을 팔게 되었다고 거래사유를 적고 있다. 거래가 된 토지는 부안현(扶安縣) 우산내면(右山內面) 자미동(滋味洞) 전평(前坪)의 논 3두락지로, 부수(負數)로는 9부 1골이 되는 곳이다. 거래가격은 50냥이었다. 거래시 구문기와 신문기 2장을 매입자에게 넘겨 주었다. 뒤에 이 논에 대하여 말썽이 생기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증인(證人) 겸 필집(筆執)으로 임희복(任希福)이 답주(畓主) 김기하와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위의 자미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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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年庚子三月十八日幼學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是多可切有緊用處故勢不得已右山內面滋味洞前坪 畓三斗落只所耕九負庫乙価折錢文伍十兩依數捧上爲遣公文本文合二丈幷付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紛紜之說以持此文記憑考事畓主幼學金基夏[着名]證筆幼學任希福[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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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황규섭(黃圭燮)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明治四十三年庚戌十月二十六日 黃圭燮 明治四十三年庚戌十月二十六日 黃圭燮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0년(융희 4) 10월 26일 황규섭(黃圭燮)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청림리(靑林里) 곡묵촌(谷墨寸)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0년(융희 4) 10월 26일 황규섭(黃圭燮)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청림리(靑林里)에 있는 면전(綿田)과, 상서면(上西面) 노적리(露積里)에 있는 태전(太田)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황규섭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밭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군 하서면 청림리 묵방평(墨方坪) 영자(永字) 면전(綿田) 4두락지(斗落只)인 곳이다. 또 같은 마을 하평(下坪) 동자(同字) 3두락지인 곳과 상서면 노적리 상평(上坪) 적자(賊字) 태전(太田) 1두락지이다. 산세(山稅)는 매입자의 부담으로 하였으며 방매 가격은 120냥이다. 매도인(賣渡人) 황규섭은 구문기(舊文記)와 신문기(新文記) 모두 4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밭의 주인 황규섭의 이름과 서명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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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七年辛巳二月初十日 前明文右明文事以要用所致傳來伏在一道定只堤下深字畓十三斗落只所耕二十八束㐣折價錢文貳佰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放賣爲去乎舊文記中間閪失故以新文記一張成給而限則三年還退的定是如乎若過限則永永次持之意成文而又若有相左之端以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辛玉年[着名]訂人 金鍾根[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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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壬辰年) 노(奴) 춘석(春石) 패지(牌旨)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경제-매매/교역-배지 壬辰六月初十日 上典 李 奴 春石 壬辰六月初十日 上典 李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임진년(壬辰年) 6월 초10일에 상전(上典) 이모(李某)가 노(奴) 춘석(春石)에게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논을 팔도록 전권을 위임하면서 작성한 패지(牌旨). 임진년(壬辰年) 6월 초10일에 상전(上典) 이모(李某)가 노(奴) 춘석(春石)에게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논을 팔도록 전권을 위임하면서 작성한 패지(牌旨)이다. 상전 이모(李某)는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하여 정지제 아래에 있는 명자답(命字畓) 15마지기와 이자답(履字畓) 16마지기의 매입을 원하는 사람에게 시가(時價)대로 방매하고 이 패지에 따라 매매문서를 작성해 주라고 지시하였다. 패지는 배지(背旨)라고도 하였는데, 오늘날의 위임장과 같은 성격의 문서이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금전이 수반되는 거래 행위를 기피하여 자신의 노비에게 금전의 수수(授受)나 물건의 매매 등을 위임하였다. 이때 작성된 문서가 패지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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奴春石處無他宅有移買意定只堤下伏在命字畓十五斗落所耕二十八卜一束庫果履字畓十六斗落所耕三十六卜九束庫乙願買人處捧準價納宅爲遣牌子導良成文以給宜當者壬辰六月初十日上典 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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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전택규(田澤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九年癸未二月十九日 田澤圭 光緖九年癸未二月十九日 田澤圭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3년(고종 20) 정월 19일에 유학(幼學) 전택규(田澤圭)가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3년(고종 20) 정월 19일에 유학(幼學) 전택규(田澤圭)가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전택규는 자신이 매득하였던 부안현 일도면 봉황리(鳳凰里) 전평에 있는 측자답(則字畓) 1석락(石落)을 42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합하여 4장을 매입자에게 주면서 나중에 만약 서로 다툼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전택규와 증인 유학 전용빈(田溶彬)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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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김낙환(金洛煥)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年癸未十月二十九日 金洛煥 光緖十年癸未十月二十九日 김낙환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3년(고종 20) 10월 29일에 동몽 김낙환(金洛煥)이 부안 서도면(西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3년(고종 20) 10월 29일에 동몽 김낙환(金洛煥)이 부안 서도면(西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낙환이 긴급하게 쓸 곳이 있어서 자기가 매득한 부안 서도면(西道面)에 요자정(要字丁) 3두락을 17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 4부 5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1장과 신문기 1장을 아울러 매수자에게 건네주어 나중에 만약 서로가 다르게 여기면 이 문서를 증거로 삼아 증명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동몽 김낙환과 증보로 유학 유상근(柳相根), 필집으로 유학 임철수(林喆洙) 등 3명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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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채공하(蔡恭夏)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二年壬寅十一月十一日 幼學 蔡恭夏 道光二十二年壬寅十一月十一日 幼學 蔡恭夏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6.5*6.5 1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2년(헌종 8) 11월 11일에 유학(幼學) 채공하(蔡恭夏)가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2년(헌종 8) 11월 11일에 유학(幼學) 채공하(蔡恭夏)가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이 논을 팔게 되었다고 거래사유를 적고 있다. 거래가 된 토지의 위치는 밝혀져 있지 않고, 이자답(李字畓) 5승락지로 부수(負數)는 2부라고만 기재되어 있다. 거래가격은 3냥 5전이었다. 거래시 구문기 없이 신문기 1장만 매입자에게 넘겨 주었다. 뒷날 이 논에 대하여 말썽이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증인이자 필집(筆執)으로 박공수(朴恭壽)가 답주(畓主) 채공하와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에 서명하였다. 당시 박공수는 상중(喪中)이었다. 이 문서는 "1854년 이계민(李啓敏)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의 구문기이다. 12년이 지났지만 거래가는 변동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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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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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二年壬寅十一月十一日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李字畓五升落只所耕貳負庫乙価折錢文參兩伍錢依數捧上爲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持此文憑考事畓主 幼學 蔡恭夏[着名]證人自筆 喪人 朴恭壽[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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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四年乙丑二月念四日 前明文右明文事移去次草家軆舍三間行廊二間垈田一斗落果於字苧田三斗落果於字太田六斗落果同字田七斗落果同字田二斗落果新赸四處合一斗落只所耕 㐣並禾穀價折錢文貳百玖十兩依數捧上是遣以新舊文二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憑考事此亦中柿木六株栗木三株棗木五株梨木二株桑木五株家垈田主 幼學 柳鶴永[喪不着]證筆 幼學 金命澈[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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