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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三年甲戌十月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東道面澤上洞前坪伏在玄字畓八斗落所耕拾扒卜壹束庫果柴場貳拾同落庫叱折價錢文壹佰玖拾兩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以此新旧文記憑考事畓主幼學 辛敬重[着名]證人幼學 金利仲[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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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김치규(金致珪)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三年癸未三月 日 金致珪 道光三年癸未三月 日 金致珪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3년(순조 23) 3월에 김치규(金致珪)가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3년(순조 23) 3월에 김치규(金致珪)가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치규는 흉년이 들어 생활이 몹시 어려워지자 자신이 매득한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현자답(玄字畓) 8마지기, 부수(負數)로는 6속이 되는 곳을 7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2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자손들 중에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치규 본인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였지만, 당시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는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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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二年壬子十一月十三日幼學金邦孝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耕食是多可移買次伏在一道松串前坪禽字畓二斗落只所耕參負參束庫果同字畓二斗落只所耕伍負二束㐣果同字畓五斗落只所耕拾參負參束庫果同字畓一斗落只所耕四卜伍束庫果同字畓一斗落只所耕貳負柒束同字三斗落只所耕陸負柒束庫叱價折錢文拾九兩依數捧上爲遣本文記二張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論是去等以此文記憑考事畓主自筆幼學金履勳[着名]證人 幼學金錫泰[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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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伍年乙未十二月 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自己買得一道坪禽字畓三斗落三卜三束二斗落只二卜七束四斗落只七卜九束二斗落只五卜二束二斗落只四卜五束二斗五升落只五卜二束庫乙捧價柒拾捌兩永爲放賣爲去乎日後以此文記卞正爲乎乙事 旧文記陸張亦爲粘付事畓主自筆 金致相[着名]證人幼學 金養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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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김인숙(金仁淑)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三年丁亥十二月晦日 金仁淑 光緖十三年丁亥十二月晦日 金仁淑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7년(고종 24) 12월에 김인숙(金仁淑)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장수천(長水川)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7년(고종 24) 12월에 김인숙(金仁淑)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장수천(長水川)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 사유를 밝히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은 상동면 장수천의 궐자답(闕字畓) 3두락지로, 부수로는 11부 7속이 되는 곳인데, 이 중 3복이 진탈(陳頉)로 빠져 실제로는 8부 7속이며, 매매가격은 30냥이었다. 진탈은 경작하지 않고 묵혀둔 곳으로 조세 대상에서 제외된 곳을 가리킨다. 김인숙은 구문기와 신문기 등 모두 3장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방매자는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유학 염도여(廉道汝)가 증필(證筆)로, 유학 전복여(田卜汝)가 증인으로 각각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상동면은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일대에 해당하지만, 장수천이 어느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방매자 김인숙이 매입자에게 넘겨 주었던 구문기는 현재 모두 남아 있는데 "1858년 이시용(李時容)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과 "1878년 강치언(姜致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 바로 그것이다. 진탈로 3복이 빠진 것도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같은 논이 1858년에는 50냥이었다가 1878년에는 25냥, 그리고 1887년에는 30냥으로 거래가격이 각기 달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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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김재후(金載垕)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豊七年丁巳十一月初九日 金載垕 咸豊七年丁巳十一月初九日 김재후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7년(철종 8) 11월 9일에 김재후(金載垕)가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1857년(철종 8) 11월 9일에 김재후(金載垕)가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재후가 집안의 생계(生計)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부북(扶北)에 있는 대대로 전해 내려온 사자(斯字) 논 5두락지를 8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기 1장을 건네주어 나중에 만약 자손들이 여러 말이 있으면 이 문기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김재후가 직접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보증인으로 사촌인 김이후(金以垕), 증인으로는 김원서(金元瑞) 등 3명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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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豊七年丁巳十一月初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家道無路故扶北伏在傳來畓斯字伍斗落只所耕拾扒負伍束㐣折価錢文捌拾兩依數捧上爲遣新文記一長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子孫中雜談爲去等以此文記卞正憑考事畓主 自筆 金載垕[着名]證保四寸 以垕[着名]證人 金元瑞[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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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豊四年甲寅十一月初九日 明文右明文事段傳來畓累年耕食是多可勢不得已黃水題〖堤〗下扶北伏在邙字畓十四斗落只所耕三十三卜㐣價折錢文七十八兩依數捧上是爲本文一丈新文幷右人處永永放買爲去乎四年期限還退之意成文爲去乎日後若有異說之弊則持此文記 憑告事畓主 幼學 金光三[着名]證人 二道都監 崔乃進[着名]茟執 幼學 李汝化[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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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三年丁亥十一月十六日 前明文右明文事段急有緊用處一道鳳凰村後麓松田廣五百步長五百步松枝五十同落柴草二十同落折價錢文八十五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家垈文卷並付故未得出給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則以此文記告 官爲乙事松田主自筆 金裕一[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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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九年己未十一月初四日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移買次伏在弓月里前坪坊下橋官字畓十七斗落所耕三十九卜八束庫果【十七斗落己丑二月二十九日賣買印】浦坪鳥字畓十六斗落所耕三十七卜一束庫果又浦坪官字畓十二斗落所耕二十八卜六束㐣合四石五斗落價折錢文伍百伍拾兩侄許永永放賣爲去乎旧文記一丈幷新文記一丈日後若有爻象之弊則持此文記憑考事畓主自筆同姓三寸 平烈[着名]證人同姓四寸 永直[着名](背面)坊下橋三寸畓文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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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최윤칠(崔允七)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六年壬寅十二月十九日 崔允七 大韓光武六年壬寅十二月十九日 崔允七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2년 12월 19일에 최윤칠(崔允七)이 부안군(扶安郡) 연동(蓮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2년 12월 19일에 최윤칠(崔允七)이 부안군(扶安郡) 연동(蓮洞) 전평(前坪)에 만자답(滿字畓) 6두락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부수(負數)로는 13부 5속이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700냥이었다. 신문기와 구문기를 합쳐 문기 6장을 매입자에게 건네 주었으며, 차후에 이 논에 대하여 문제가 생기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인으로 김정숙(金正宿)과 강권영(姜勸永)이 참여하여 방매자 최윤칠과 함께 서명하였는데, 이 중 강권영이 이 문서를 작성하였다. 이 논은 뒷날 이정서(李正瑞)에 의해 다시 방매되었는데, "1906년 이정서(李正瑞)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최윤칠 방매 문서는 이정서 방매 문서의 구문기인 셈이다. 이 두 문서를 살펴보면 4년만에 논값이 700냥에서 780냥으로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논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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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염석수(廉錫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八年甲辰九月初三日 廉錫洙 光武八年甲辰九月初三日 廉錫洙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4년 9월 초3일에 염석수(廉錫洙)가 부안군(扶安郡) 연동(蓮洞)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4년 9월 초3일에 염석수(廉錫洙)가 부안군(扶安郡) 연동평(蓮洞坪)에 있는 만자저전(滿字苧田) 3두락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부수(負數)로는 4부가 되는 이 모시밭을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270냥에 팔았다. 거래시 구문기와 신문기를 매입자에게 모두 건네 주었다. 만일 차후에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인으로는 서준경(徐俊敬)이 방매자 염석수와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모시밭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모시밭은 앞서 1862년에 조육손(趙六孫)이 방매하였으며, 1898년에는 조백운(趙白雲)이 방매한 것으로 나온다. 거래가격은 1862년 50냥에서 1898년 220냥으로 올랐으며, 1904년에 와서 다시 270냥으로 크게 올랐다. 이렇게 보면, "1862년 조육손(趙六孫)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와 "1898년 조백운(趙白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은 1904년에 작성된 이 문서의 구문기들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시밭의 마지막 거래로 추정되는 1904년의 매입자는 이 문서의 소장처인 부안 선은동의 전주이씨가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선은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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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四年庚子五月二十七日 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處伏在上東上里後坪珠字畓九斗落所耕十七卜二束庫果珠字畓六斗落所耕九卜二束庫果一道方洞前坪之字畓四斗落所耕四卜七束庫合拾玖斗落並禾穀㐣價折錢文玖佰伍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一張与旧文四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持此憑考爲乎事畓主 喪人 金元謙 喪不着訂人 幼學 林致守[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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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남계풍(南啓豊)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瑞元年乙亥十月卄三日 南啓豊 光瑞元年乙亥十月卄三日 南啓豊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5년(고종 12) 10월 23일 남계풍(南啓豊)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僊隱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5년(고종 12) 10월 23일 남계풍(南啓豊)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僊隱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남계풍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 전평(前坪) 지자답(地字畓) 3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 로는 12부(負)이다. 방매 가격은 6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남계풍은 구문기(舊文記) 3장(丈)과 신문기(新文記)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유학(幼學) 남계풍과 증인(訂人)으로는 김치도(金致道)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각 이름을 쓰고 서명하였다. 추가로 본문에 광서(光瑞)는 광서(光緖)로, 일장(一張)은 일장(一丈)으로 써야 바른 표기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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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拾柒年壬申二月初九日朴生立諸子孫等處明文右明文爲臥乎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一道面壹作伏在務字畓拾伍斗落只所耕參拾柒負庫乙捧價錢貳百兩依數交易捧上爲遣右人前本文記二丈並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良中同生子孫中如有雜談之弊是去等持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李大建[着名]證人 鄭禿邑山[着名]筆執 金鳳儀[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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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三年癸未三月 日 前明文右明文事段當此窮節生道極艱自己買得是在伏在東道面擇相洞玄字畓八斗落只所耕六束庫乙捧價錢柒拾兩是遣旧文書貳丈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間如有異談是去等以此文記告官卞政事畓主自筆 金致珪[喪人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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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이양순(李養淳)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二十四年己卯十二月初五日 李養淳 嘉慶二十四年己卯十二月初五日 李養淳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19년(순조 19) 12월 5일에 유학(幼學) 이양순(李養淳)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19년(순조 19) 12월 5일에 유학(幼學) 이양순(李養淳)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택상동(擇上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양순은 다른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선대로부터 자기 몫으로 물려받은 동도면 택상동(擇上洞)의 전평(前坪)에 있는 현자답(玄字畓) 4마지기, 부수(負數)로는 7복이 되는 곳을 3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다른 논의 문기에 붙어 있으므로 매입자에게 건네주지 못했다. 나중에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양순과 증필(證筆)로 유학 전복휴(田福休)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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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八年甲辰十一月十七日明文右明文事急有所用處故一道定只堤下伏在深字畓十一斗落所耕三十六負㐣價折錢文玖佰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舊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端持此文記憑考事畓主 幼學 田準洪[着名]證人 幼學 田士欽[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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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신홍형(辛洪馨)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丁丑十二月日 辛洪馨 光緖三年丁丑十二月日 辛洪馨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7년(고종 14) 12월에 신홍형(辛洪馨)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정지리(定只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7년(고종 14) 12월에 신홍형(辛洪馨)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정지리(定只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신홍형이 논을 팔게 된 이유는 급히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라고 하였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정지리의 제방 아래 심자답(深字畓) 11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36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50냥이다. 매도인(賣渡人) 신홍형은 구문기(舊文記)가 중간에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신문기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답(畓)의 주인 유학(幼學) 신홍형과 증필(證筆)로는 조운룡(趙雲龍)의 이름이 있다. 신홍형은 이름 아래에 서명하였고 조운룡는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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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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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4년 유치중(劉致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八年甲辰十一月二十一日 劉致仲 大韓光武八年甲辰十一月二十一日 유치중 전북 부안군 [着名] 5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4년 11월 21일에 유학 유치중(劉致仲)이 고부군(古阜郡) 거마면(巨麻面) 계동(桂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4년 11월 21일에 유학 유치중(劉致仲)이 고부군(古阜郡) 거마면(巨麻面) 계동(桂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유치중은 항구전(巷口錢) 900냥을 납부할 길이 없어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계동 전평의 위토(位土) 지자답(紙字畓) 16두락지를 800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35부 6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매수자에게 신구문기 2장을 건네주면서 나중에 여러 자손들 가운데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유학 유치중을 중심으로 유양지(劉良知), 유운경(劉雲卿), 유체국(劉替國), 유선중(劉善仲) 등 유씨 종족 5명과 증인으로 유학 주정집(朱正執)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들 중 유선중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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