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와 묵은해가 바뀌는 이때 그대를 그리워하는 심정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삼가 묻겠습니다만, 연말에 조용히 지내는 체후가 한결같이 두루 평안하고 모든 식구가 큰 복을 받고 평안합니까. 삼가 궁금한 마음이 그지없습니다.족종(族宗)은 편모를 봉양하면서 그럭저럭 편안하고 식구들도 병환이 없으니, 삼가 다행입니다. 드릴 말씀은 『삼강총보(三綱統譜)』는 우리 가문의 막중한 일인데, 혼자 고생하면서 어렵고 험난한 일을 피하지도 않고 이처럼 부지런히 하니, 도리어 진정으로 미안합니다. 종하(宗下)는 본래 어리석은 자질로 추천장을 잘못 받았으니, 수봉(收奉)하는 일이 단단히 염려됩니다. 이사하는 일로 이곳을 떠나 타향에서 살아야 하는 형편인데, 종적이 뜸해지고 일도 힘듭니다. 수나라의 구슬이 길을 잃고 초나라의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1) 세상에 팔기 어렵습니다. 이 상황을 스스로 돌아보면, 또한 자신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단자를 거두는 임무를 받들어 행할 수 없으니, 두려운 심정을 누그러트리기가 어려워 이미 우러러 전달하는 것입니다. 부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기를 삼가 갈망하고 고대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존족(尊族)께 널리 고하니, 깊이 벌주지 않기를 삼가 바랍니다.사세로 보아 응당 나아가서 알현하고 어르신께 여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길이 조금 멀고 새집을 마련한 초기에 여러 일로 분주하여 몸을 빼낼 겨를이 없어 대략 몇 줄의 편지를 쓰지만, 언제 도착해서 읽어보겠습니까? 과연 과연 석두(石頭)에서 가라앉고 떠오름의 잘못이 없겠습니까.나머지는 후속 편지에서 다시 말하겠습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고 예를 올립니다.단금(單金) 1원을 우편에 부치니 받아주기를 바랍니다. 품속의 족보 한 질을 보내주기를 삼가 바랍니다.무인년(1938) 12월 31일에 족종 진규가 두 번 절하고 올림.밀양 박씨 삼강총보(密陽朴氏三綱統譜) 단초(單抄)효자 휘 노길(魯吉)은 자가 내수(乃洙)이고 호가 송파(松坡)이다.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22대손이고 호참(戶參)에 추증된 옥래(玉來)의 아들이며, 모친은 정부인(貞夫人) 의령 남씨(宜寧南氏)이다. 철종 갑인년(1854) 12월 30일에 태어났다. 고종 무자년(1888)에 음직으로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에 제수되었다.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워 어릴 적부터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의리를 알았습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하며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새벽에는 문안 인사를 올리며, 어버이의 뜻을 이어받아 순종하고,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은 어버이께 먼저 드렸으니, 모두 효자의 세세한 예절을 갖추고 있었다.집안은 평소 청빈하여 아침저녁으로 농사짓고 고기잡이·땔나무를 하며 세월을 보내서, 형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하였다. 가선공(嘉善公)이 병세가 위독하자 의원을 맞이하고 약을 조제하며 하늘에 대고 자신이 대신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부친상을 당해서는 갑자기 기절하였다가 곧바로 깨어났고 물고기와 술은 먹지 않았으며 안채에 들어가지 않고 계율을 지켰다. 묘지가 좋지 않은 것을 늘 걱정하였는데, 오랜 정성에 신이 감동하고 이치가 순응하여 끝내 길지를 얻었다.근검함으로 집안을 다스려서 만년에 조금 풍요로워지자, 재물을 쌓고 흩는 의리를 알았다. 이에 자기 재산을 반으로 나누어 부친, 조부, 증조 삼대 세향(歲享)의 전답을 마련하였는데, 홀로 큰 금액을 부담하였고, 세보(世譜)를 수정하였으며, 친척, 친구 중에 가난한 사람은 분수에 따라 구제하였다. 형제 관계가 돈독하여 큰 이불로 침상을 함께 썼고 창화(唱和)하며 화락하게 지냈다. 거처에는 다른 방이 없었고 재물은 사적으로 보관해 둔 것이 없었다. 자식은 의로운 방법으로 가르쳤으며 재실을 설치하고 스승을 선택하여 『소학(小學)』과 『격몽요결(擊蒙要訣)』을 법문의 바른길로 삼아서 이단의 가르침에 물들지 않게 하였다. 한 가문이 화목하여 완전히 법도 있는 가문의 풍도가 있었으니, 해방(海坊)에서 교화된 자가 많았다.수성(隋城, 수원) 백형재(白亨在)가 행장을 짓고 경재(敬齋) 순흥(順興) 안교환(安敎煥)이 묘지를 찬하다. 초나라의……건너면 남쪽에서 자라는 귤나무를 회수(淮水) 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귤이 탱자로 변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환경이 변함에 따라 그 성질도 변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주례(周禮)』「고공기(考工記)」) 歲換新舊 瞻慕曷極 伏未審臘尾靜體節一衛萬寧 渾庇鴻禧綾安 伏溸區區 不任下忱之至 族宗偏省粗安 眷亦無警 伏幸而已耳 就白三綱統譜吾門莫重之事也 而以獨賢之勞不避艱險 如是勤苦 還實未安者也 宗下本以愚騃之才謬蒙薦狀 以收奉之事斷斷爲念矣 以搬移事勢離居他鄕 踪迹疏濶 事亦辛酸 隋珠失路 楚橘渡淮 難售於世 自顧渠狀 亦一自取其於凔浪 奈何 以事機之如此 未得奉行收單之任 其所悚仄 難以泓款 可旣仰達者也 ■(以)海河之念 千萬容恕 伏望且翹 以此意佈告于 令尊族無至深誅之意 伏祝伏祝 事當進 謁 稟告座下 軒屛 然道路秒遠 攝以新寓之初多般屑屑 未得抽身之暇 畧以數行片 而未知何時抵 覽矣 而果無石頭浮沈之過歟 餘在續后更告 不備上禮單金壹圓付上 郵便考領 伏企伏企耳懷中譜一帙 惠付伏望伏望戊寅臘月末日 族宗晉圭再拜密陽朴氏三綱統譜單抄孝子諱魯吉字乃洙号松坡 糾正公二十二代孫■(王)贈戶參玉來子 妣貞夫人宜寧南氏 哲宗甲寅十二月三十日生 高宗戊子蔭折衝將軍龍驤衛副護軍 天性至孝 自幼能知事親從兄之義 溫淸定省承順唯諾 完衣美味不先身口 皆是孝子之疏節也 家素淸貪 朝暮於?? 歲月於漁樵 使兄專其學業 鄕里咸稱孝敬 嘉善公疾篤 迎醫合藥 稽天祈代 及遭艱 頓絶方甦 鱗糱不嘗 中門守戒 常憂塋兆不利 積年竭誠 神感理應 終得吉地 勤儉理家 晩年稍饒 能知積散之義 中分其財 備置考祖曾三世歲享之田 獨擔鉅貲 修整世譜 親戚故舊之艱乏者隨分濟恤 友于兄弟 大被連牀 壎篪迭唱 居無異室 財無私藏 教子以義方設齋擇師 以小學要訣爲法門正路 不使熏染於異教 一家雍睦 完然有法家風 海坊多化之者 隋城白亨在撰行狀 敬齋順興安教煥撰墓誌[皮封](前面) 全南高興郡頭原面龍山里何求亭朴炯得 氏 殿至急勿滯(背面) 慶北尙州郡化北面雲興里朴春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