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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四年乙丑四月初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移買次伏在露積里左坪於字山直田貳斗落只所耕 廤價折錢文捌兩依數捧上是遣本無舊文記故只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爻象持此文憑考事田主 幼學 金文煥[着名]證人 內侄 幼學 曺瓛坤[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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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四年乙丑正月二十五日幼學李圭烈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伏在靑林前坪於字畓拾貳斗落只夜味所耕三負㐣價折錢文㱏百玖拾伍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旧文記閪失故以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論則持此文憑考事畓主 幼學 金命澈[着名]證筆 幼學 曺瓛坤[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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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김명철(金命澈)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三月二十日 金命澈 同治九年庚午三月二十日 金命澈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0년(고종 7) 3월 21일에 김명철(金命澈)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청림리(靑林里)에 있는 논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0년(고종 7) 3월 21일에 김명철(金命澈)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청림리(靑林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김명철은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지어 먹던 논을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하서면 청림리 전평(前坪) 어자답(於字畓) 6두락지(斗落只), 9야미(夜味)로, 산세(山稅)가 3부(負)인 곳이었다. 방매(放賣) 가격은 100냥이다. 매도인(賣渡人) 김명철은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유학(幼學) 김명철과 증필(證筆)으로 유학 조환곤(曺瓛坤)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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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九年庚午三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自己作畓累年耕食是多可伏在扶安下西面靑林里前坪於字畓陸斗落九夜味山稅參負㐣價折錢文㱏佰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是去等持此文憑考事畓主 幼學 金命澈[着名]證筆 幼學 曺瓛坤[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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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九年乙亥三月初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烈有緊用處扶北定只堤下伏在臨字畓拾參斗落只所耕十負二束庫果同字二十七負四束庫乙折價錢文㱏百玖拾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永永放賣爲乎矣本文記段他畓倂付故不得出給爲去乎日後若有相左之弊則以此文記告官憑考事畓主自筆幼學李光震[着名]證人 徐奎贊[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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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여서(女婿) 이광열(李光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乾隆五十七年壬子十二月十五日 朴永福 女婿李光列 乾隆五十七年壬子十二月十五日 朴永福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92년(정조 16) 12월 15일에 이광렬(李光列)이 장인 박영복(朴永福)에게서 논을 사면서 작성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92년(정조 16) 12월 15일에 이광렬(李光列)이 장인 박영복(朴永福)에게서 논을 사면서 작성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영복은 자신이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던 재목동(材木洞) 전평(前坪)의 치자답(治字畓) 3두락지를 15냥에 사위에게 팔았다. 3두락지 가운데 1두 5승락지는 기왕에 이미 사위에게 주었고, 나머지 15냥을 마저 주면서 돈을 받은 것이다. 부수(負數)로는 7부 5속이 되는 곳이지만, 재목동이 오늘날의 어느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본문기는 다른 전답의 문서에 함께 붙어 있기 때문에 사위에게 주지 못하였다. 뒷날 자손 중에 이 논을 가지고 다른 말을 하거든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필집(筆執)으로 유학(幼學) 이종선(李宗先)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기는 "1796년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장복(長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의 구문기로 추정된다. 1792년으로부터 4년이 지나 거래된 이 논의 가격은 25냥으로 그 사이 10냥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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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七年壬子十二月十五日女婿李光列處許給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材木洞前坪治字畓三斗落只內壹斗五升落只前已衿給是遣其餘壹斗五升落只以賣買礼価折錢文拾五兩依數捧上爲遣右人處許給永永放賣爲乎矣爲本文記段他他田畓幷付仍乙乎不以出給而合庫三斗落只所耕七負五束庫乙日後同生子孫某人中如有雜談是去等以此文記告 官卞事畓主 朴永福[着名]筆執幼學李完先[着名]筆幼學朴宗郁[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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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김광일(金光一)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四年甲申七月 日 金光一 道光四年甲申七月 日 金光一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4년(순조 24) 7월에 김광일(金光一)이 부북(扶北) 일도면(一道面)의 진자답(盡字畓)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4년(순조 24) 7월에 김광일(金光一)이 부북(扶北) 일도면(一道面)의 진자답(盡字畓) 25두락지, 부수로는 48부 4속이 되는 곳과, 그 북변의 3부 1속이 되는 곳을 290냥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 논은 김광일이 친동생에게서 매득한 곳이었는데,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거래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시 구문기 2장을 매입자에게 넘겨주었다. 뒷날 자손들 중에서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증인으로 서유록(徐有祿)이 거래에 참여하여 답주 김광일과 함께 문서에 서명하였다. "1821년 김중전(金仲田)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은 이 문기의 구문기에 해당하는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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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四年甲申七月 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同生弟買得扶北一作盡字畓二十五斗落只所耕肆拾扒負肆束庫果北邊三負一束庫乙決價貳佰玖拾兩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諸族中如他說以此憑考爲㫆本文記貳丈幷以出給爲乎乙事畓主兄金光一[着名]證人徐有祿[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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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八年戊午二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傳來耕食是如可要用所致伏在上東長水內坪闕字畓三斗落卜數十一負七束內三負陳頉實八卜七束庫乙價折錢五十兩依數捧上爲遣本文記他田畓幷付故未得出給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日後如有異說持此文相考事畓主幼學李時容[着名]證筆幼學李始白[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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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고덕인(高德仁)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二十年甲午二月初十日 高德仁 光緖二十年甲午二月初十日 고덕인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4년(고종 31) 2월 10일에 유학 고덕인(高德仁)이 부안 상동면(上東面) 제내리(堤內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4년(고종 31) 2월 10일에 유학 고덕인(高德仁)이 다른 곳의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부안 상동면(上東面) 제내리(堤內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거래가 된 논은 부안 상동면 제내리에 있는 촌전답(村前畓) 9두락, 칭자정(稱字丁) 18복 5속으로, 225냥을 받고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1장을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문서 말미에 김제(金堤) 김옥현(金玉玄)의 신문기 1장이 다른 논과 붙어 있기 때문에 부득이 본문기를 출급하지 못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거래 당시 논주인 유학 고덕인과 증인으로 유학 심원중(沈元仲), 증필로 유학 심문경(沈文京) 등 3명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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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二十年甲午二月初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有移畓次伏在本上東堤內村前畓九斗落稱字丁所耕十八卜五束㐣価折錢文貳佰貳拾伍兩依數捧上是遣幷旧文壹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此文記憑告事此亦中金堤金玉玄新文一張他畓幷付故不得出給事畓主 幼學 高德仁[着名]證人 幼學 沈元仲[着名]證筆 幼學 沈文京[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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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이덕명(李德明)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一年丙戌九月初一日 李德明 光緖十一年丙戌九月初一日 이덕명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6년(고종 23) 9월 1일에 유학 이덕명(李德明)이 부안(扶安) 하서면(下西面) 의복동(宜服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6년(고종 23) 9월 1일에 유학 이덕명(李德明)이 부안(扶安) 하서면(下西面) 의복동(宜服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덕명은 자신이 매득한 하서면 의복동(宜服洞) 전평에 있는 직자답(稷字畓) 12두락, 예자답(藝字畓) 7두락, 농자답(農字畓) 12두락, 색자답(穡字畓) 5두락, 또 하평(下坪)에 있는 예자답(藝字畓) 5두락, 후평에 있는 엽자답(鬛字畓) 4두락 및 장신포(長信浦) 전평에 있는 갈자답(碣字畓) 5두락, 전자답(田字畓)에서 수확한 5부 6속 등 모두 합하여 2석(石) 10두락과 금년 농사에서 수확한 화곡(禾穀)을 더하여 88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를 매수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이 거래를 두고 논란이 생기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이덕명과 증필로 유학 권승원(權承原)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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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一年丙戌九月初一日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是多可要用所致伏在扶安下西面宜服洞前坪稷字畓十二斗落所耕二十二負㐣果藝字七斗落所畊十四負一束㐣果農字三斗落所畊七負三束庫果農字四斗落所耕十負七束庫果農字伍斗落所畊九負七束庫果穡字伍斗落所畊十八負六束庫果又下坪藝字伍斗落所畊十六負四束庫果又後坪鬣字四斗落所畊八負伍束庫果長信浦前坪碣字伍斗落所畊伍負田字所畊伍負六束廤合貳石十斗落畓㐣並今年花穀価折錢文八百八十兩依數捧上是遺並新旧文記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則持此文記卞正事畓主 幼學 李德明[着名]證筆 幼學 權承原[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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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二年壬子十二月十四日 前明文右明文事段有緊要處伏在一道面定只堤下履字畓七斗落所耕二十二卜庫果同字畓六斗落所耕十八卜庫果同字畓十斗落所耕四十三卜庫果同字畓四斗落所耕十六卜庫果薄字畓十一斗落所耕三十五卜庫果命字畓八斗落所耕二十四卜庫果鳳凰里前坪則字畓二十斗落所耕五十三卜八庫合三石六斗落價折錢文柒佰捌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他畓文倂付故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日後如有爻端持此文記憑考事畓主自筆 朴奇炳[着名]證人幼學 田禮豊[着名]此亦中每畓庫所耕或有相左之端來問干畓主處憑箚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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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최경수(崔景壽) 방매(放賣)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十六年癸酉五月二十日 崔景壽 嘉慶十六年癸酉五月二十日 최경수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1.0*1.0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13년(순조 13) 5월 20일에 유학 최경수(崔景壽)가 생질(甥姪)에게 가대(家垈)를 팔면서 작성한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1813년(순조 13) 5월 20일에 유학 최경수(崔景壽)가 생질(甥姪)에게 가대(家垈)를 팔면서 작성한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이다. 최경수는 이사를 하기 위하여 자기가 손수 지은 초가 4칸과 대지 2두락지를 생질(甥姪)에게 40냥을 받고 팔았다. 거래 당시 나중에 만약 문제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당시 가대주 유학 최경수와 증필로 유학 이양하(李養河)가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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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김덕현(金德現)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豊九年己未十一月十八日 金德現 咸豊九年己未十一月十八日 김덕현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9년(고종 10) 11월 25일 김덕현(金德現)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사창리(社倉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9년(고종 10) 11월 25일 김덕현(金德現)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사창리(社倉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김덕현은 자신이 매득하여 농사를 지어먹던 논을 부득이하게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사창리 전평(前坪) 누자답(樓字畓) 11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23부(負) 4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35냥이다. 사창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김덕현은 새로 작성한 문서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문기(舊文記) 2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김덕현과 증인(證人)으로는 임기환(林琪煥)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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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유학영(柳鶴永) 방매(放賣)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同治四年乙丑二月念四日 柳鶴永 同治四年乙丑二月念四日 柳鶴永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5년(고종 2) 2월 4일에 유학(幼學) 유학영(柳鶴永)이 부안(扶安)의 여러 곳에 있는 집과 토지를 팔면서 작성한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1865년(고종 2) 2월 4일에 유학(幼學) 유학영(柳鶴永)이 부안(扶安)의 여러 곳에 있는 집과 토지를 팔면서 작성한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이다. 유학영은 이사를 하기 위하여 초가 3칸, 행랑 2칸, 텃밭 1마지기, 어자(於字) 모시밭 3마지기와 또 어자(於字) 콩밭 6마지기와 7마지기, 2마지기 그리고 신산(新赸) 4곳을 합한 1마지기와 벼(禾穀) 등을 모두 290냥에 팔았다. 그러나 이 문서에는 가사와 밭의 정확한 위치는 기재하지 않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서 2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어 나중에 다른 말이 있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가대전(家垈田) 주인 유학영은 상중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증필로 유학 김명철(金命澈)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의 중간에 감나무 6주, 밤나무 3주, 대추나무 5주, 배나무 2주, 뽕나무 5주 등이 거래에 포함되었다는 점을 추가로 기재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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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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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四年戊寅正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以要用所致傳來伏在一道定只堤下履字畓十六斗落所耕庫果同字畓十三斗落所耕 㐣錢文折價參佰陸拾兩依數捧上是遣幷舊文記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持此文記憑考事畓主 辛玉年[着名]證人 田汝伯[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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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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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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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33년 장윤풍(張允豊)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三年癸巳十一月二十九日 張允豊 道光十三年癸巳十一月二十九日 張允豊 전북 부안군 喪人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3년(순조 33) 11월 29일에 장윤풍(張允豊)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3년(순조 33) 11월 29일에 장윤풍(張允豊)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장윤풍이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부북의 일작(一作) 임자(臨字) 논 16마지기, 부수(負數)로는 37복 5속이 되는 곳을 30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자손들이 서로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장윤풍 본인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였으나 상중(喪中)이어서 서명은 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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