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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六年辛亥三月初四日 張氏 前明文右文爲事段移買次養家衿得扶北一道蘭字九斗落只所耕二十五負七束㐣娚妹 官卞是如可分付內他畓庫並半分決給故右畓放賣錢分次捧價錢一百伍十兩爲遣右人前永永放賣爲乎矣本文記段他田畓並付乙仍于不得出給爲去乎日後同生子孫中若有以此之弊是去等以此文告 官卞正事畓主 幼 朴壽福[着名]畓主 幼 崔鳳成[着名]筆 幼 金昌彦[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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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김철(金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二年壬辰十二月初二日 張文豊 金喆 道光十二年壬辰十二月初二日 장문풍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2년(순조 32) 12월 2일에 장문풍(張文豊)이 김철(金喆)에게 부북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2년(순조 32) 12월 2일에 장문풍(張文豊)이 김철(金喆)에게 부북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장문풍은 지난 2년 동안에 집안에 사고가 있어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았던 부북 지비리의 난자답(蘭字畓) 9두락지를 김철에게 140냥을 받고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25부 7속이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장문풍은 본문기 1장을 매수자 즉 김철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이 거래를 두고 다른 말이 나오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장문풍 본인이 직접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고 증인으로 이득존금(李得存金)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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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二年壬辰十二月初二日 金喆 前明文右明文事段兩載家故不得已傳來畓扶北一作蘭字畓九斗落只所耕二十五負七束㐣価折錢文一百四十兩依數捧上是遣本文記一張幷以永永放買爲去乎日後若爲雜談之弊是去等以此文記告官 卞呈事畓主 自筆 張文豊[着名]證人 李得存金[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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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元年辛亥十一月初一日高生員宅奴善鳳前明文右明文事歉年生活無路故自己買得伏在露積里村前於字田肆斗落所耕貳卜五束廤價折錢文貳拾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舊文一丈並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紛紜則持此文憑考事田主 閑良 陳乭金[左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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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一年乙酉八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以要用所致伏在下西靑林前坪於字畓㱏石三斗落山稅 㐣價折錢文參佰兩捧上是遣旧文二丈果新文一丈放賣爲去乎稅則黃租每年拾貳石酌定是矣限來明年依本價還退之意成文以給若過限則永永次持事畓主 自筆 李榮圭[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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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이규열(李圭烈)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四年乙丑正月二十五日 金命澈 李圭烈 同治四年乙丑正月二十五日 金命澈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5년(고종 2) 1월 25일에 김명철(金命澈)이 이규열(李圭烈)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5년(고종 2) 1월 25일에 김명철(金命澈)이 이규열(李圭烈)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김명철은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지어 먹던 논을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청림리(靑林里)의 전평(前坪) 어자답(於字畓) 12두락(斗落) 부수(負數)로는 3부(負)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95냥이다. 매도인(賣渡人) 김명철은 구문기(舊文記)는 잃어버렸고 신문기(新文記) 1장을 매수인(買受人) 이규열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유학(幼學) 김명철과 증필(證筆)로는 유학 조환곤(曺瓛坤)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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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이광진(李光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十九年乙亥三月初九日 李光震 嘉慶十九年乙亥三月初九日 李光震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15년(순조 15) 3월에 유학 이광진(李光震)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15년(순조 15) 3월에 유학 이광진(李光震)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광진은 급히 돈을 쓸 곳이 있어서 정지제(定只堤) 아래의 임자답(臨字畓) 13마지기, 부수로는 10부 2속이 되는 곳과 같은 임자답내 27부(負)가 되는 곳을 모두 19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서는 다른 논의 문기에 붙어 있어서 매입자에게 주지 못했다. 만약 이 논을 두고 나중에 서로 다른 말이 나오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광진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였고, 증인(證人)으로 서규찬(徐奎贊)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嘉慶十九年乙亥'로 되어 있지만, 을해년은 가경 20년이다. 여기에서는 간지를 기준으로 하여 1815년을 작성연대로 추정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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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전준홍(田準洪)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八年甲辰十一月十七日 田準洪 光武八年甲辰十一月十七日 田準洪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4년 (광무 8) 11월 17일에 전준홍(田準洪)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정지리(定只里)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4년 (광무 8) 11월 17일에 전준홍(田準洪)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정지리(定只里)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전준홍이 논을 팔게 된 이유는 급히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라고 하였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정지리의 제방 아래 심자답(深字畓) 11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36부(負)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900냥이다. 매도인(賣渡人) 전준홍은 구문기(舊文記)와 새로 작성한 문서 각각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유학(幼學) 전준홍과 증인(證人)으로는 전사흠(田士欽)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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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최대관(崔大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四年戊午三月初四日 崔柱岳 崔大觀 嘉慶四年戊午三月初四日 崔柱岳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98년(정조 22) 3월 4일에 유학(幼學) 최주악(崔柱岳)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유학 최대관(崔大觀)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98년(정조 22) 3월 4일에 유학(幼學) 최주악(崔柱岳)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유학 최대관(崔大觀)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유학 최주악은 다른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부북의 일작(一作) 명자답(命字畓) 15마지기를 최대관에게 13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2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동생이나 자손 중 만약 누구든지 다른 말을 하거든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최주악 본인이 문서를 작성하였다.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嘉慶四年戊午'로 되어 있으나 무오(戊午)는 가경 4년(1799)이 아니라 가경 3년(1798)이다. 여기에서는 간지를 기준으로 작성연대를 추정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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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四年戊寅三月二十二日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伏在上東長水內坪闕字畓三斗落卜數十一負七束內三卜陳頉實八卜七束庫乙價折錢文貳拾伍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一丈並以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自筆姜致彦[着名]證人 廉碩澈[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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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이시용(李時容)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八年戊午二月二十日 幼學李時容 咸豐八年戊午二月二十日 幼學李時容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8년(철종 9) 2월 20일에 유학(幼學) 이시용(李時容)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장수내평(長水內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8년(철종 9) 2월 20일에 유학(幼學) 이시용(李時容)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장수내평(長水內坪)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경작해 왔으나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 사유를 밝히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은 상동면 장수내평의 궐자답(闕字畓) 3두락지로, 부수로는 11부 7속이 되는 곳인데, 이 중 3복이 진탈(陳頉)로 빠져 실제로는 8부 7속이며, 매매가격은 50냥이었다. 진탈은 경작하지 않고 묵혀둔 곳으로 조세 대상에서 제외된 곳을 가리킨다. 이시용은 구문기가 다른 전답의 문서에 함께 붙어 있어서 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유학(幼學) 이시백(李始白)이 증인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상동면은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일대에 해당하지만, 장수평이 어느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문서는 "1878년 강치언(姜致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과 "1887년 김인숙(金仁淑)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의 구문기이기도 하다. 즉 1878년이 강치언이 같은 논을 팔 때, 그리고 1887년(고종 24) 12월에 김인숙(金仁淑)이 같은 논을 팔 때 매입자에게 건네준 구문기였다. 진탈로 3복이 빠진 것도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같은 논이 1858년에는 50냥이었지만, 1878년에는 25냥으로, 그리고 1887년에는 30냥으로 거래가격이 각기 달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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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황재성(黃在成)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三年甲戌十二月晦日 黃在成 同治十三年甲戌十二月晦日 황재성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4년(고종 11) 12월 31일에 유학 황재성(黃在成)이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1874년(고종 11) 12월 31일에 유학 황재성(黃在成)이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황재성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황가산(黃可山) 북쪽 기슭의 명자전(命字田) 5두락지를 22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 7부가 되는 곳이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2장을 아울러 매수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밭주인 홍재성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못하였고 증필로 유학 강태서(姜泰瑞)와 증인으로 유학 임필서(任弼瑞)가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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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捌年戊子正月十八日崔甲斗前明文右明文事傳來耕食是如可伏在扶東道雇馬堤下島字畓拾陸斗落只所耕三十七負一束庫乙錢文貳百二十五兩依數交易捧上是遣右人前本文記二丈並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是去等持此文告 官卞正事畓主幼學尋昌仁[着名]證 喪人尹台相[着名]筆 幼學李得良[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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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十年丙午九月十一日右明文事自己買得數年收稅是多可以要用所致伏在左山內蓮洞前坪滿字畓陸斗落只所耕廤倂禾穀㐣価折錢文柒百佰捌拾兩依數捧上是遣以新旧文七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說則以此文記告官卞政事畓主 幼學 李正瑞[着名]證人 幼學 金文巨[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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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六年壬寅十二月十九日 前明文右明事當此要用處故不得已蓮洞前坪滿字畓六斗落只所耕十三負五束㐣価折錢文七百兩依數封上是遣新舊文合六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則持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崔允七[着名]證筆 姜勸永[着名]證人 金正宿[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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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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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光緖三年丁丑六月初七日李生員 前明文右明文事錢文十一兩貸去矣當此大無之年無一分報給至於流移之境宅上洞坪天字田一斗五升落所畊三負五束果天字苧田五升落所畊一負㐣右宅前永永次持而以後若有異說則持此文憑考事田主 閑良 房致安[着名]證人 幼學 田溶鎭[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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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김인숙(金仁淑)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六年庚寅十月二十五日 金仁淑 光緖十六年庚寅十月二十五日 김인숙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0년(고종 27) 10월 25일 김인숙(金仁淑)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0년(고종 27) 10월 25일 김인숙(金仁淑)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지비리(之飛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논의 주인 김인숙은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대개 요용소치(要用所致)나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략히 기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지비리 전평(前坪) 누자답(樓字畓) 10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23부(負) 4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45냥이다. 지비리는 현재의 부안군 동진면 지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김인숙은 새로 작성한 문서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문기(舊文記) 3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김인숙과 증인(證人)으로는 정화숙(鄭化淑)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추가로 본문에 일장(一張)은 일장(一丈)으로 써야 바른 표기이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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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노(奴) 돌쇠(乭金)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三十年庚戌三月初十日 上典 邊 道光三十年庚戌三月初十日 上典 邊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0년(철종 1) 3월 10일에 상전(上典) 변(邊) 아무개가 부안(扶安) 촌전(村前)에 있는 논을 노(奴) 돌쇠(乭金)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0년(철종 1) 3월 10일에 상전(上典) 변(邊) 아무개가 부안(扶安) 촌전(村前)에 있는 논을 노(奴) 돌쇠(乭金)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상전 변(邊) 아무개는 이사하기 위하여 어자전(於字田) 4마지기 안에 있는 모시밭(苧田) 1마지기를 돌쇠에게 20냥에 팔았다. 모시밭은 부수(負數)로는 2복 5속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거래 당시 신문기 1장을 돌쇠에게 주면서 나중에 증빙자료로 삼으라고 하였다. 이 문기는 상전인 변아무개가 직접 문서를 작성하였다. 상전이 돈이 궁하여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종에게 밭을 판 특별한 사례에 속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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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三十年庚戌三月初十日奴乭金處明文右明文事移居次村前於字田四斗落內苧田一斗落並以捧價貳拾兩是遣以新文一丈所耕二卜五束並汝矣處永永放賣爲是日後憑考事田主 上典 自筆 邊[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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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김문환(金文煥)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四年乙丑四月初十日 金文煥 同治四年乙丑四月初十日 金文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5년(고종 2) 4월 10일에 유학(幼學) 김문환(金文煥)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노적리(露積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5년(고종 2) 4월 10일에 유학(幼學) 김문환(金文煥)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노적리(露積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문환은 다른 전답을 매입하기 위하여 노적리 좌평(左坪)에 있는 어자(於字) 산지기(山直) 밭 2마지기를 8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원래 구문서는 없었기 때문에 신문서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말썽이 나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밭 주인 김문환과 증인으로 처조카 유학 조환곤(曺瓛坤)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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