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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곽동서(郭東瑞)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八年壬辰 畓主 郭東瑞 光緖十八年壬辰 郭東瑞 전북 부안군 [着名] 1.0*1.0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2년 곽동서가 토지를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2년(고종 29) 곽동서(郭東瑞)가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남일면(南一面) 소석리(小石里) 들판에 있는 빈자(賓字) 답(畓) 6두락과 명자(鳴字) 답 3두락과 봉자(鳳字) 답 8두락 등 세 곳이었다. 매매 가격은 250량으로, 상당한 규모의 거래였다. 곽동서는 본 논들을 매도하면서, 이 논의 이전 매매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들은 주지 못하였다. 그것은 분실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본 거래에서 곽동서로부터 논을 사들인 사람, 즉 매수자(買受者)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는데, 매매 명문에서 매수자의 이름을 적지 않는 경우는 매우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명문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매수자의 이름을 적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이 문서는 거래된 전답의 위치와 크기로 미루어 볼 때 "1902년 곽윤거(郭允擧)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과 "1906년 이석기(李石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6년 함공수(咸公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등의 구문기로 추정된다. 그리고 관련문서들이 모두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집안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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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최석만(崔錫萬)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八年己巳十一月二十五日 幼學崔錫萬 同治八年己巳十一月二十五日 幼學崔錫萬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9년(고종 6) 11월 25일에 유학(幼學) 최석만(崔錫萬)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조개동(肇開洞) 마을 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9년(고종 6) 11월 25일에 유학(幼學) 최석만(崔錫萬)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조개동(肇開洞) 마을 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을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으나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하여 팔게 되었다고 매매 사유를 밝히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은 상동면 조개동 마을 앞의 관자답(官字畓) 9두락지로, 부수로는 24부 6속이 되는 곳이며, 매매가격은 150냥이었다. 구문기는 다른 전답의 문서에 함께 붙어 있어서 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방매자 최석만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증인은 거래에 참여하지 않았다. 상동면은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일대에 해당하지만, 조개동이 어느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문서의 하단에는 같은 날 최석만에 의해 작성된 수기(手記)가 실려 있는데, 구문기가 다른 전답에 실려 있어서 매입자에게 주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사실을 신문기에 부기하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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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신백첨(辛伯詹)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四年乙亥八月 日 辛伯詹 同治十四年乙亥八月 日 辛伯詹 전북 부안군 喪不着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5년(고종 1) 8월에 신백첨(辛伯詹)이 부안 정지제(定只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5년(고종 1) 8월에 신백첨(辛伯詹)이 부안 정지제(定只堤)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백첨은 긴히 돈을 쓸 곳이 있어서 농사지어 먹고 살던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찬자답(讚字畓) 9마지기를 270냥에 팔았다. 나중에 시끄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당시 구문서는 다른 13마지기 논 문서에 붙어 있어서 출급하지 못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백첨과 증인(證人) 이한열(李漢烈)이 모두 상(喪)을 당하여 서명하지 못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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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김원겸(金元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四年庚子五月二十七日 金元謙 光武四年庚子五月二十七日 金元謙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4년(광무 8) 5월 27일 김원겸(金元謙)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4년(광무 8) 5월 27일 김원겸(金元謙)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상리(上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김원겸은 돈이 긴히 필요한 데가 있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세 곳이었다. 첫 번째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상리 후평(後坪) 주자답(珠字畓) 9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17부(卜) 2속(束)인 곳이다. 두 번째 토지는 같은 마을 주자답 6두락지로 부수로는 9부 2속인 곳이다. 세 번째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一道面) 방동(方洞) 전평(前坪) 지자답(之字畓) 4두락지로 4부 7속인 곳이다. 세 곳을 총면적은 19두락지이고 화곡(禾穀)까지 포함한 방매(放賣) 가격은 95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김원겸은 신문기(新文記) 1장(丈)과 구문기(舊文記) 4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답주(畓主) 김원겸은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으며, 임치수(林致守)가 증인으로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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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년 김재영(金才永)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貳拾二年丁丑正月卄九日 朴毛辰 金才永 乾隆貳拾二年丁丑正月卄九日 朴毛辰 전북 부안군 [左寸] 3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57년(영조 33) 1월 29일에 봉사(奉祀) 박모진(朴毛辰)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김재영(金才永)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57년(영조 33) 1월 29일에 봉사(奉祀) 박모진(朴毛辰)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김재영(金才永)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북쪽에 있는 일작(一作) 이자답(履字畓) 37부(負)가 되는 곳을 김재영에게 26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3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자손들 가운데 여러 말들을 하거든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박모진과 증인(證人)으로 삼촌 박인종(朴仁宗), 보증(保證)으로 사촌 박시태(朴時泰), 집필(執筆)로 김봉의(金鳳儀) 등 4인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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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貳拾二年丁丑正月卄九日金才永前明文右明文爲臥乎事段惟我祖上祭位畓所在於遠處故取家近移買次以北一作伏在履字畓所耕參拾柒負庫乙捧價錢二百陸拾伍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本文記三丈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良中若有同生子孫中雜談之弊是去等持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奉祀 朴毛辰[左寸]證同姓三寸 朴仁宗[左寸]保同姓四寸 朴時泰[左寸]筆 金鳳儀[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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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2년 박생립(朴生立) 제자손(諸子孫)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拾柒年壬申二月初九日 李大建 朴生立 諸子孫 乾隆拾柒年壬申二月初九日 李大建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2.5*2.5 1개(흑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52년(영조 28) 2월 9일에 이대건(李大建)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박생립(朴生立)의 자손(子孫)들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52년(영조 28) 2월 9일에 이대건(李大建)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박생립(朴生立)의 자손(子孫)들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대건은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농사지으며 먹고 살다가 일도면에 있는 일작(一作) 무자답(務字畓) 15마지기, 부수(負數)로는 37부 되는 곳을 박생립의 자손들에게 20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2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자손들 중에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대건과 증인(證人)으로 정독읍산(鄭禿邑山), 필집(筆執)으로 김봉의(金鳳儀)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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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年辛未正月 日 前明文右明文事老休齋畓庫移買次一道面定只堤下伏在臨字畓十三斗落所耕拾負貳束同字貳拾柒負肆束庫叱捧價錢貳百參拾兩幷舊文記二丈永永放賣爲去乎以此憑考爲乎乙事老休齋稧長 辛一煥[着名]筆執 金邦麟[着名]有司 辛東稷[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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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노휴재(老休齋)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十一年辛酉十月 日 辛景始 老休齋 咸豐十一年辛酉十月 日 辛景始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1년(철종 12) 10월에 신경시(辛景始)가 부안의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논을 노휴재(老休齋)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1년(철종 12) 10월에 신경시(辛景始)가 부안의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논을 노휴재(老休齋)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경시는 급하게 돈이 필요하여 정지제 아래의 임자답(臨字畓) 13마지기, 부수로는 10부 2속이 되는 곳과 같은 임자답 27부 4속이 되는 곳을 노휴재에 196냥 5전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 1장을 건네주면서 이를 증빙문서로 삼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경시가 직접 문서를 작성하였고, 증인(證人)으로 김기겸(金基謙)과 신두환(辛斗煥) 등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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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十一年辛酉十月 日 老休齋中明文右明文事有急次定只堤下臨字畓拾三斗落所耕十負二束庫果同字二十七負四束庫乙捧價錢壹百玖拾陸兩五錢齋中放賣而舊文記一張幷以出給爲去乎以此憑考爲乎乙事畓主自筆 辛景始[着名]證人 金基謙[着名]辛斗煥[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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奴五壯處無他宅有移買意扶北一作命字畓十五斗落所耕二十八卜一束庫乙願買人處捧準價納宅爲遣牌子導良成文以給宜當者丙寅十二月二十八日上典 崔[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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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백운(白云)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十二年丙寅十二月二十八日 崔生員宅奴 五壯 李生員宅奴 白云 嘉慶十二年丙寅十二月二十八日 崔生員宅奴 五壯 전북 부안군 [左寸]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06년(순조 6) 12월 28일에 최생원댁노(崔生員宅奴) 오장(五壯)이 상전을 대신하여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백운(白云)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06년(순조 6) 12월 28일에 최생원댁노(崔生員宅奴) 오장(五壯)이 상전을 대신하여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백운(白云)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최생원댁노 오장은 일도면 정지제(定只堤) 아래에 있는 명자답(命字畓) 15마지기를 팔라는 상전의 패자(牌子)를 받고, 이생원댁노 백운에게 150냥을 받고 팔았다. 최생원댁은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하여 이 논을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1장과 패자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이 논을 두고 논란이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매입자 백운도 상전을 대신하여 거래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최생원댁 노 오장과 증필 조영익(趙榮益)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한편,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嘉慶十二年丙寅'으로 되어 있으나 병인(丙寅)은 가경 12년(1807)이 아니라 가경 11년(1806)이다. 여기에서는 간지를 기준으로 하여 작성연대를 추정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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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二年丙寅十二月二十八日李生員宅奴白云前明文右明文事段矣宅以移買次定只堤下伏在命字畓十五斗落所耕二十八卜一束庫乙賣納之意成下牌子故右人前折價一百五十兩依數捧上永永放賣而本文一丈及牌子一丈並以成文以給爲去乎日後如有相左之端則以此記憑信事畓主崔生員宅奴五壯[左寸]證筆 趙榮益[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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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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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八年壬辰 三月十八日 前明文右明文事 伏在南一面小石前坪賓字畓六斗落所耕十八卜庫果同後坪鳴字畓三斗落所耕六卜六束庫果鳳字畓八斗落所耕十七卜五束㐣価折貳百五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段中間閪失故只以新文記一丈永永放賣爲去乎後若有異說以此憑考爲當事畓主 郭東瑞[着名]證人 金景斗 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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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元年辛巳三月十五日 朴淳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一道之飛里前坪伏在似字丁二十一第畓所耕四十四負八束庫果蘭字丁三十六第畓所耕四十負七束[己亥年 此畓洪德汝處先爲放賣焉]合三十二斗落[內十六斗落洪德汝先爲貿焉]庫切有急用處右人前價折錢文參百參拾兩如數捧上永永放賣而本文記一丈完文一丈所志一張幷以出給爲去乎日後子孫中如有雜談是去等將此文告官卞正事畓主 自筆 金鍾煥[着名]證人 孔赫權[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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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평렬(平烈)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九年己未十一月初四日 同姓三寸 平烈 咸豐九年己未十一月初四日 同姓三寸 平烈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9년(철종 10) 11월 초4일에 평렬(平烈)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9년(철종 10) 11월 초4일에 평렬(平烈)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궁월리(弓月里)에 있는 논들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들을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으나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하여 팔게 되었다고 매매 사유를 밝히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은 상동면 궁월리 전평(前坪) 방하교(坊下橋)의 관자답(官字畓) 17두락, 부수로는 39부 8속이 되는 곳과, 포평(浦坪)의 조자답(鳥字畓) 16두락, 부수로는 37복 1속이 되는 곳과, 포평(浦坪)의 관자답(官字畓) 12두락, 부수로는 28부 6속이 되는 곳 등 모두 4석 5두락으로, 매매가격은 550냥이었다. 구문기 1장과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방매자는 매입자의 3촌으로 조카에게 논을 팔았으나, 성은 명문에 기재하지 않았다. 평식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증인은 동성(同姓) 4촌인 영직(永直)이 거래에 참여하고 서명하였다. 상동면 궁월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장등리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한편 이 문서의 중간에는 "官字畓十七斗落所耕三十九卜八束庫"라는 부분을 선으로 그어 표시하였고, 우측에 "十七斗落己丑二月二十九日賣買印"라고 기재해 놓은 점이 눈에 뜨인다. 뒷날 기축년에 가서 이 부분의 논을 매매하면서 이제는 구문기가 된 이 명문에 매매사실을 효주(爻周)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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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정서(李正瑞)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十年丙午九月十一日 幼學 李正瑞 光武十年丙午九月十一日 幼學 李正瑞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6년 9월 11일에 이정서(李正瑞)가 부안군(扶安郡) 좌산내면(左山內面) 연동(蓮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6년 9월 11일에 이정서(李正瑞)가 부안군(扶安郡) 좌산내면(左山內面) 연동(蓮洞)에 있는 만자답(滿字畓) 6두락지와 화곡(禾穀)을 모두 780냥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문기와 구문기 등 모두 7장을 매입자에게 건네 주었으며, 차후 이 논에 대하여 분란이 생기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이정기는 이 논을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세를 받아왔으나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증인으로 유학 김문거(金文巨)가 방매자 이정서와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에 서명하였다. 논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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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六年庚寅十二月十五日右人前明文右明文事排泩錢充納無路伏在鳳凰里前坪九斗落所耕十四負㐣價折錢文二佰陸拾貳兩依數捧上是遣右前並舊文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以此文記告官卞政事畓主 辛奇男[喪不着]證筆 辛武然[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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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四年乙亥八月 日明文右明文段耕食畓讚字丁定只堤下九斗落有要用處折價錢文貳百柒拾兩永爲放賣爲去乎如有爻象以此憑考而舊文記並付他十三斗落畓庫不得出給亦以此憑後爲乎乙事畓主 辛伯詹[喪不着]證人 李漢烈[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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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九年乙巳十一月卄二日 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處故伏在上東上里後坪珠字畓九斗落所耕十七卜六束庫乙價折錢文肆伯兩依數捧上是遣以新旧文二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言持此文憑考事畓主 金元謙[着名]訂人 金仁淑[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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