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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庚子年) 참봉(參奉) 김문명(金文明)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庚子十二月二十五日 金文明 庚子十二月二十五日 金文明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경자년(庚子年) 12월 25일에 참봉(參奉) 김문명(/金文明)이 부안현 일도면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경자년(庚子年) 12월 25일에 참봉(參奉) 김문명(金文明)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문명은 다른 논을 매입하기 위하여 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관복제(寬伏堤) 위에 있는 논 9마지기와 3마지기를 50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서 5장과 신문서 1장을 합하여 총 6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만약 나중에 서로 다른 말이 나오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문명과 증필 유학 홍명국(洪明國)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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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三年甲子正月二十三日 崔錫龍處明文右明文事段門中畓每年收稅是如可要用所致夫伏在扶北八作㭗字畓三斗落只所耕七負五束庫乙價折錢文二十兩依數捧上是遣本文記二丈倂以右處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以此憑考事畓主 副門長 田五豊 喪不着證筆 幼學 李時白[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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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이익문(李益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三年癸卯十一月十七日 李益文 道光二十三年癸卯十一月十七日 李益文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3년(헌종 9) 11월 17일에 유학(幼學) 이익문(李益文)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3년(헌종 9) 11월 17일에 유학(幼學) 이익문(李益文)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익문은 긴급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북(扶北)에 있는 팔작(八作) 울자답(㭗字畓) 3마지기를 11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본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이익문만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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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三年癸卯十一月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自己買得扶北八作㭗字畓參斗落所畊柒負伍束庫價折錢文拾壹兩爲遣以本文記一丈幷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異言則以此憑考事畓主 幼學李益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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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子十二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切有移畓之意傳來畓九斗落牋字畓丁所耕十二負庫果同字畓三斗落所耕四負貳束庫伏在一道面寬伏堤上是乎所價折錢文伍佰兩依數捧上是遣以文記五張新文一張永永放賣于右前日後若有二論之端則以新舊文記憑考爲乎乙事畓主 金參奉文明[着名]訂筆 幼學 洪明國[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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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면(一道面) 관인제(寬仁堤) 전답문권(田畓文券) 녹명지(錄名紙)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扶安)의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일도면(一道面) 관인제(寬仁堤)에 있는 전자답(牋字畓)을 거래하면서 작성된 전답문권(田畓文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적은 녹명지(錄名紙). 부안(扶安)의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일도면(一道面) 관인제(寬仁堤)에 있는 전자답(牋字畓)을 거래하면서 작성된 전답문권(田畓文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적은 녹명지(錄名紙)이다. 문서의 소장자가 문서를 분류하기 위하여 이렇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묶음에는 "1827년 김영득(金永得)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4년 장경로(張敬魯)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0년 김상렬(金相烈)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3년 이상학(李相鶴)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3년 김낙환(金洛煥)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경자년(庚子年) 참봉(參奉) 김문명(金文明)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등 6건의 문서가 들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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扶安上西面露積里家垈掌記軆舍 六間半舍廊 五間翼廊 三間垈田 三斗落苧田 三斗五升落苧田 五升落基田 三斗五升落基田 一斗落村西基田 五斗落太田 二斗落太田 五斗落太田 三斗落太田 二斗落太田 五斗落村東坪基田 一斗五升落村東坪基田 七斗落綿田 四斗五升落綿田 二斗落綿田 二斗落太田 二斗五升落綿田 一斗落舍田 五十一斗落家後柴場 一片前麓柴場 一嶝黃實梨木 五株小實梨 一株柿 五株棗 五株栗 八株村東戶家 三間垈田 一斗落梨木 三株柿 九株栗 一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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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김영일(金永一)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七年丁未十二月二十五日 金永一 道光二十七年丁未十二月二十五日 金永一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7년(헌종 13) 12월 25일에 유학(幼學) 김영일(金永一)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7년(헌종 13) 12월 25일에 유학(幼學) 김영일(金永一)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영일은 긴급하게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북(扶北)에 있는 팔작(八作) 울자답(㭗字畓) 3마지기를 11냥에 팔았다. 거래 당시 본문서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만약 문제가 생기면 이 문서로 증거를 삼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영일과 증필(證筆)로 한량 박용이(朴用伊)가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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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七年丁未十二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自己買得伏在扶北八作㭗字畓三斗落只所畊七負五束庫叱價折錢文拾㱏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本文記一丈並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相左之端持此憑考事畓主 幼學 金永一[着名]證筆 閒良 朴用伊[着名](背面)仙洞 崔錫龍三斗落 仙洞 崔錫龍 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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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생원(生員) 이규환(李奎煥)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十二月初十日 閑良 崔成龍 李生員奎煥 同治九年庚午十二月初十日 閑良 崔成龍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0년(고종 7) 12월 초10일에 한량(閑良) 최성룡(崔成龍)이 생원(生員) 이규환(李奎煥)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0년(고종 7) 12월 초10일에 한량(閑良) 최성룡(崔成龍)이 생원(生員) 이규환(李奎煥)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최성룡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최성룡에게 팔았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의 뒤쪽에 있는 마경평(馬頃坪)의 울자답(㭗字畓) 3두락지이며 부수(負數)로는 7부 3속인 곳이며, 방매 가격은 27냥이다. 매도인 최성룡은 새로 작성한 매매문서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문기 3장을 매수인 이규환에게 넘겨주었다. 문서의 끝에는 만일 뒷날 이 거래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이 문기에 토지소재지로 명기된 일도면 봉황리는 오늘날 부안군 동진면의 면소재지인 봉황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거래 당시 최성룡은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증인으로는 유학(幼學) 전인풍(田仁豊)이 참여하고 서명하였다. 매입자인 이규환은 생원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현존하는 사마방목(司馬榜目)에서는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매입자 이규환(李奎煥)은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에서 구축한 고문서DB의 "1879년 이규정(李奎井) 호구단자(戶口單子)"에서 호주 이규정(李奎井)의 동생으로 나온다. 그는 당시 41세로 처 청주한씨(淸州韓氏)(34)와 함께 형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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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조환곤(曺瓛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五年丙寅正月二十九日 曺瓛坤 同治五年丙寅正月二十九日 曺瓛坤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6년(고종 3) 1월 29일에 유학 조환곤(曺瓛坤)이 부안현 상서면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6년(고종 3) 1월 29일에 유학(幼學) 조환곤(曺瓛坤)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조환곤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부안현 상서면(上西面) 구기평(舊基坪)에 있는 콩밭 1마지기를 2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본래 없었기 때문에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만약 나중에 이 밭을 두고 소동이 일어나거든 이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콩밭 주인 조환곤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으며, 증인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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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五年丙寅正月二十九日 前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自己買得伏在上西舊基坪太田壹斗落價折錢文貳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本無也只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則以此文憑考事太田主 幼學 曺瓛坤[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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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辛亥年) 이승희(李承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辛亥閏六月二十一日 金永根 李承曦 辛亥閏六月二十一日 金永根 전북 부안군 [指章] 2개, [署押] 1개 3.5*4 1개(적색, 정방형), 1*1 2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신해년(辛亥年) 윤 6월 21일에 김영근(金永根)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노적리(露積里)에 있는 논을 이승희(李承曦)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신해년(辛亥年) 윤 6월 21일에 김영근(金永根)이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노적리(露積里)에 있는 논을 이승희(李承曦)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영근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노적리 상평(上坪)에 있는 적자(賊字) 48차 밭 1마지기 5승락, 결부(結負)로는 2부 5속이 되는 곳을 이승희에게 3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며 만약 나중에 다른 말이 있거든 이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밭 주인 김영근과 증인(證人)으로 이장(里長) 송성옥(宋成玉)이 참여하였다. 이때 인주를 찍은 지장과 "상서노적리장지장(上西露積里長之章)"이라는 인장이 보인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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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九年己未十一月二十二日廉永斗前明文右明文事段急有緊用處伏在東道面仙隱洞前坪玄字丁七斗落所耕二十三負庫乙價折錢文伍拾捌兩依數捧上舊文記二丈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端指此文憑考事畓主 姜周煥[着名]證筆 趙宗奎[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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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김순오(金舜五)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參拾年庚戌十一月二十七日 金舜五 道光參拾年庚戌十一月二十七日 金舜五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0년(철종 1) 11월 27일에 김순오(金舜五)가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0년(철종 1) 11월 27일에 김순오(金舜五)가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순오는 자신이 매득한 동도면 선은동(仙隱洞) 앞들에 있는 논 7마지기를 6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서 8장을 건네주면서 나중에 분란이 있을 때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순오가 직접 문서를 작성하고 증인(證人)으로 유학 전윤수(田允秀)가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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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參拾年庚戌十一月二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伏在仙隱洞前坪柒斗落庫乙所耕二十卜畓折價錢文陸拾五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說是去等以此新舊文記捌張憑考事畓主自筆 金舜五[着名]證人 幼學 田允秀[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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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亥閏六月二十一日李承曦前明文右明文事以緊用所致伏在上西面露積里上坪賊字四十八次田一斗五升落結二負五束廤乙價折錢文三拾五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以此文憑考事田主金永根[指章]證人里長宋成玉[指章][上西露積里長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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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천순집(千順執)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三年丙戌三月十八日 千順執 光緖十三年丙戌三月十八日 千順執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6년(고종 23) 3월 18일에 천순집(千順執)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돈지(頓池)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6년(고종 23) 3월 18일에 천순집(千順執)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돈지(頓池)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제(金堤)에 사는 천순집이 논을 파는 이유는 '절유긴용(切有緊用)'이라 하여 긴히 돈을 쓸 곳이 있어서라고 밝히고 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하서면 돈지에 있는 논 12두(斗) 5승락지(升落只)로 부수(負數)로는 27부(負) 4속(束)인 곳이며, 방매(放賣) 가격은 55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천순집은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과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문기(舊文記) 10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천순집과 증인(證人)으로 이사변(李士卞), 필집(筆執)으로는 김서유(金成有)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그리고 이 문서가 작성된 병술년(丙戌年)은 1886년으로 광서(光緖) 13년이 아니라 광서(光緖) 12년이다. 여기에서는 간지를 기준으로 하여 작성연대를 추정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8년 전재열(田在說)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四年戊寅十一月 日 田在說 光緖四年戊寅十一月 日 田在說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8년(고종 15) 11월에 유학(幼學) 전재열(田在說)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8년(고종 15) 11월에 유학(幼學) 전재열(田在說)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전재열이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한 일도면 정지제(定只堤) 아래 심자답(深字畓) 16마지기, 부수(負數)로는 37복 5속이 되는 곳과 이자답(履字畓) 13마지기, 부수로는 35복 3속이 되는 곳을 48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를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전재열과 증인으로 유학 전여백(田汝伯)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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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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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九年庚午十二月初十日李生員奎煥前明文右明文事以要用所致自己買得伏在一道鳳凰後馬頃坪㭗字畓三斗落只所耕七負三束㐣価折錢文貳拾柒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三丈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則持此文記憑考事畓主 閑良 崔成龍 喪不着證人 幼學 田仁豊[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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