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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正月二十一日 前手記右手標事段淸字丁十二斗落庫乙斥賣而右人無本文卷之意不無驚訝故如是成標日後或有鬧撓之弊是去等以此憑考事畓主自筆 朴洪奕[着名][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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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庚子年) 전주(全州) 이득용(李得容)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庚子四月 日 李得容 城主 庚子四月 日 李得容 전북 부안군 [署押]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경자년(庚子年) 4월에 전주(全州)에 거주하는 이득용(李得容)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경자년(庚子年) 4월에 전주(全州)에 거주하는 이득용(李得容)이 선산의 친묘답(親墓畓)을 몰래 거래한 자들을 처벌해달라면서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문서의 전후면이 제사(題辭)로 가득하여 판독할 수 없는 글자들이 있지만, 그 대략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득용의 7촌 조카 이원복(李遠福)이 평소 투전꾼으로 소행이 좋지 않았는데, 부안현(扶安縣) 우산내면(右山內面) 고사포(古楂浦)에 사는 김기방(金基邦)과 작당하여 왕세(王稅)를 납부한다는 명목으로 관가(官家)에서 입지(立旨)를 받아내어 지난 3월에 이득용의 친묘답(親墓畓)을 김기방에게 투매(偸賣)하였다. 물론 이 두 사람은 가명성문(假名成文), 즉 다른 사람의 명의로 명문을 작성하였다. 멀리 전주에 살면서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이득용은 부안현감에게 소지를 올려 김기방을 잡아다가 처벌하고, 이원복을 투매한 죄목으로 다스려달라고 탄원하였다. 수령은 이에 대하여 양자를 대변(對卞)하기 위하여 이들을 잡아오라는 제사(題辭)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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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이규동(李奎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乙酉正月初五日 李奎東 朴正言 乙酉正月初五日 李奎東 남원 수지 죽산박씨가 남원 수지 죽산박씨가 1825년(순조 25) 1월 5일 이규동(李奎東)이 박용호(朴龍祜)에게 보낸 서간(書簡). 1825년(순조 25) 1월 5일 이규동(李奎東)이 박용호(朴龍祜)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뜻밖에 폄하(貶下)되니 놀랍다며 수레를 내린 지 얼마지 않아 이런 지경이 되었다고 하였다. 새해를 맞아 상대방이 잘 지낸다니 위로가 된다며 자신은 허다한 시끄러운 일로 괴롭다고 하였다. 수일 뒤에 만나러 가겠다고 하였다, 이규동은 1824년 3월 덕원부사(德原府使)에 제수되었고 10월 그의 아버지 병 때문에 임소로 돌아가지 못해 개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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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과부(寡婦) 김소사(金召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丁丑三月初六日 寡婦 金召史 光緖三年丁丑三月初六日 寡婦 金召史 전북 부안군 [右掌]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7년(고종 14) 3월 초6일에 과부(寡婦) 김소사(金召史)가 부안현(扶安縣) 의동(衣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7년(고종 14) 3월 초6일에 과부(寡婦) 김소사(金召史)가 부안현(扶安縣) 의동(衣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소사는 이 해에 흉년이 들어 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어서 의동(衣洞) 전평에 있는 무자답(務字畓) 3마지기를 14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는 유실되었기 때문에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만약 나중에 이 논을 두고 소동이 일어나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김소사와 증인(證人)으로 동생 김국서(金國瑞)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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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三年丁丑三月初六日 前明文右明文事段當此歉年生活末由故伏在衣洞前坪務字畓三斗落只所耕四負三束㐣價折錢文拾肆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遺失故以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則以此文記憑考事畓主 寡 金召史[右掌]證人 同生 金國瑞[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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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유생원댁노(柳生員宅奴) 옥봉(玉奉)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丁丑正月二十二日 柳生員宅奴 玉奉 光緖三年丁丑正月二十二日 柳生員宅奴 玉奉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7년(고종 14) 1월 22일에 유생원댁노(柳生員宅奴) 옥봉(玉奉)이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의복동(宜服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7년(고종 14) 1월 22일에 유생원댁노(柳生員宅奴) 옥봉(玉奉)이 상전(上典)을 대신하여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의복동(宜服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유생원댁은 급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의복동 전평에 있는 직자(稷字) 논 12마지기, 예자(藝字) 논 7마지기, 농자(農字) 논 3마지기, 4마지기, 5마지기, 그리고 색자(穡字) 논 5마지기 그리고 하평(下坪)에 있는 예자(藝字) 논 5마지기, 후평(後坪)에 있는 엽자(鬣字) 논 4마지기 등 모두 합하여 2석(石) 5마지기를 총 66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를 함께 건네주며 만약 나중에 분란이 일어나거든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옥봉과 증인(證人)으로 김생원댁노 귀덕(貴德)이 참여하였다. 참고로 노비의 신분으로 많은 토지를 매매하는 경우 상전이 서로의 노비를 앞세워 매매하였다. 이 문서에 매입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지만, 노(奴)라고 기재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 노도 상전을 대신하여 거래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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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三年丁丑正月二十二日 奴前明文右明文事段有緊用處伏在扶安下西面宜服洞前坪稷字畓十二斗落所耕二十負二束庫果藝字七斗落所耕十四負一束庫果農字三斗落所耕七負三束庫果農字四斗落所耕十負七束庫果農字五斗落所耕九負七束庫果穡字五斗落所耕十八負六束庫果又下坪藝字五斗落所耕十六負四束庫果又後坪鬣字四斗落所耕八負五束庫合貳石伍斗落畓乙價折錢文陸百陸拾兩依數捧上是遣舊文記並以永永放賣於右人前爲去乎日後如有紛紜則以此文憑考事畓主柳生員宅奴玉奉[着名]證人金生員宅奴貴德[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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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扶安) 상서면(上西面) 노적리(露積里) 가대장기(家垈掌記)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전북 부안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노적리(露積里)에 있는 가대(家垈)와 그에 딸린 전답(田畓)의 규모를 기록한 가대장기(家垈掌記). 부안현(扶安縣) 상서면(上西面) 노적리(露積里)에 있는 가대(家垈)와 그에 딸린 전답(田畓)의 규모를 기록한 가대장기(家垈掌記)이다. 어느 문중에 속한 가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규모가 매우 크다. 노적리의 가대를 거래한 문기((1865년 유학영(柳鶴永) 방매(放賣)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 1858년 최정택(崔禎澤) 방매(放賣) 가사매매명문(家舍賣買明文))들이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 소장문서에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가대도 전주이씨가의 소유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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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四年戊子三月五日 前明文右明文事切有緊用處故上東面內基里東麓松田五拾同落價折錢文㱏百陸拾兩依數捧上是遣旧文中間閪失故以新文㱏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記告官卞政事松田主 幼學 尹守五[着名]證人 幼學 崔成甫[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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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오도현(吳道賢)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伍年己丑十一月二十日 吳道玄 光緖十伍年己丑十一月二十日 吳道玄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9년(고종 26)11월 20일 오도현(吳道玄)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복성리(福星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9년(고종 26)11월 20일 오도현(吳道玄)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복성리(福星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오도현은 흉년이 들어 세금이 너무 많아 감당하기가 어려워지자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밭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복성리에 있는 후평(後坪) 잠자(潛字) 태전(太田) 2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6부(卜)이며 화곡(禾穀)까지 모두 합하여 방매(放賣) 가격은 3냥 5전이다. 여기서 태전은 콩밭을 뜻한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명문(明文)에서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밭의 주인 유학(幼學) 오도현, 증인(證人) 유학 김원호(金元浩), 집필(執筆) 유학 오석목(吳錫穆)의 이름이 있다. 태전주(太田主) 오도현은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김원호와 오석목은 각각 이름을 쓰고 그 아래에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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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伍年己丑十一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多可當此凶年王稅判出無路故勢不得已伏在於福星後坪潛字太田二斗落只所耕六卜㐣幷禾穀價折錢文三兩五戔意數捧上是遣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則以此文記告官卞政事田主 幼學 吳道玄 喪不着證人 幼學 金元浩[着名]筆執 幼學 吳錫穆[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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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염규석(廉圭錫)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一年壬申三月二十二日 廉圭錫 同治十一年壬申三月二十二日 廉圭錫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2년(고종 9) 3월 22일에 염규석(廉圭錫)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심성(深城) 제방 근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2년(고종 9) 3월 22일에 염규석(廉圭錫)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심성(深城) 제방 근처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염규석은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두 곳이다. 첫 번째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심성 제방 근처에 있는 칭자답(称字畓) 2두락지(斗落只)로 도조(賭租)가 2두락지인 곳이다. 두 번째 토지는 칭자답 1두락지로 부수(負數) 2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모두 55냥이다. 매도인(賣渡人) 염규석은 구문기(舊文記) 2장과 새로 작성한 문서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명문(明文)에서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답주(畓主) 염규석과 증필(證筆)은 유학(幼學) 김병두(金炳斗)의 이름이 있다. 답주(畓主) 염규석는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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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一年壬申三月二十二日 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伏在上東面深城堤邊称字畓二斗落只胃耕賭租二斗落庫称字畓一斗落所耕二負五束㐣價折錢文五十五兩依數捧上爲遣以舊文二丈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若他端持此文憑考事畓主 喪人 廉圭錫 喪不着證筆 幼學 金炳斗[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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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김사제(金思濟)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六年丙申九月十一日 尋德元 金思濟 道光十六年丙申九月十一日 尋德元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6년(헌종 2) 9월 11일 심덕원(尋德元)이 김사제(金思濟)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6년(헌종 2) 9월 11일 심덕원(尋德元)이 김사제(金思濟)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심덕원은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부득이하게 김사제에게 팔았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제방 안쪽의 칭자답(称字畓) 1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 2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 가격은 마침 해당 부분이 붓으로 수정을 하여 판독이 어렵게 되었다. 몇 냥인지는 알 수 없고 나머지는 5전(錢)이 분명하게 적혀 있다. 매도인(賣渡人) 심덕원은 구문기(舊文記)를 잃어버려 신문기(新文記)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 김사제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유학(幼學) 심덕원과 증필(證筆)은 유학 하문칙(河文則)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매수인(買受人) 김사제는 당시 상중(喪中)이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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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拾三年甲戌十二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急有緊用處自己買得九斗落伏在西道秩寬仁提上牋字畓所耕十貳卜㐣価折錢文一百七十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旧文一章並新文一章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弊則以此文記告官 憑考事畓主 張敬魯[着名]證人 李相鼎[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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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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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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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김영득(金永得)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柒年丁巳五月初九日 金永得 道光柒年丁巳五月初九日 김영득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7년(순종 27) 5월 9일에 김영득(金永得)이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7년(순종 27) 5월 9일에 김영득(金永得)이 부안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영득은 이 해에 흉년이 들어 살아갈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부안 일도면(一道面) 관인제(寬仁堤) 안에 있는 전자답(牋字畓) 9두락지를 105냥에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부수(負數)로는 15부 7속이 되는 곳으로, 김영득 자신이 매득하여 오랫동안 경작해 왔었다. 매매 당시 구문기 5장과 신문기 1장을 합한 6장을 매수자에게 건네주어 나중에 만약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주인 김영득과 증인으로 김정용(金正用)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 뒷면에 '一道寬仁堤上九斗落'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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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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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柒年丁巳五月初九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故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當此歉年生活無路故寬仁堤內牋字畓九斗落所耕十五負七束㐣並禾穀価折錢文一百五兩依數捧上是遣以旧文五章新文一章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異端則以此文記告官憑考事畓主 金永得[着名]證筆 金正用[着名](背面)一道寬仁堤上九斗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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