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만나지 못한 듯이 서글픕니다. 이해에 형의 체후가 더욱 평안하시고 자손들도 두루 평안할 것을 청하리라 생각되니, 우러러 칭송하고 축하드립니다.저는 일전에 복매(復梅) 형과 함께 제주도에 갔다가 바다에서 풍파를 만나 수질(水疾)이 갑자기 발병하여 미처 땅을 밟지도 못하고 성산포(城山浦)에서 배를 대고 육지로 백여 리를 가서 겨우 제주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지금도 정신과 혼이 나가서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어질어질합니다. 이는 또한 자기가 스스로 만든 일이니, 누구를 향해 원망하고 탓하겠습니까. 혹 그 형편을 보면 섬사람의 인심이 육지와는 현격히 다르니, 이러한 등의 서책은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곳에 온 것이 후회됩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일어난 일이니, 진퇴유곡(進退維谷)이라 할 만합니다.섬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임죽헌(林竹軒)【이름이 정춘(丁春)이다.】을 방문했으니, 그가 "구례(求禮)의 양현용(梁顯龍) 군이 지난해에 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갔고, 윤유당(尹酉堂)도 또한 이 책을 구입할 수 있을지 여부로 편지를 써서 알아보았다가 전혀 판매할 뜻이 없다는 답장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형세로 보아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여관 외에는 기숙할 곳이 없어서 부득이 여관에 머물렀는데, 하루의 시간을 허비한 것이 과연 적지 않습니다. 하늘 끝의 천 리나 떨어져 있는데 스스로 허탄할 뿐입니다. 다만 며칠을 기다려 보다가 돌아올 계획입니다.매화시는 그간에 과연 살펴보았습니까? 몹시 듣고 싶습니다. 육지에서 나오는 즉시 선장(仙莊)에 오로지 찾아뵐 계획입니다. 나머지는 가까운 시기에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예식을 갖추지 않습니다. 오직 종형께서는 살펴주기를 바랍니다.1934년 7월 30일에 종제(宗弟) 해룡이 두 번 절하고 올림.저도 동과(同寡)의 사람이니 말한들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이즈음 우전(雨田) 선생의 책이 간행되었습니다. 다만 몇 자의 문안 편지를 써서 올리니, 부디 황전(黃田) 선생도 곁에서 함께 보신다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제성(濟城)에 있는 제 김연성(金演聲)이 두 번 절하고 올림혜전(蕙田) 선생은 요사이 평안하십니까? 저는 정신이 없어 각각 안부를 전하지 못하니, 이러한 제 뜻을 고려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귀댁의 최근 여러 식구도 줄곧 평안하였습니까? 아울러 그 소식을 몹시 듣고 싶습니다.매화시의 1, 2, 3등은 과연 누가 하였습니까? 아무개가 인편으로 통지하겠지만, 몹시 궁금합니다. 일전에 면전에서 부탁한 남원군 수지면(水旨面) 초리(草里) 강덕윤(姜德潤), 같은 동 호곡(好谷) 박환태(朴煥兌), 박환성(朴煥成)의 시가 명단에 빠졌다면 입격(入格)을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는 긴요한 일이므로 이같이 다시 부탁드립니다. 奉別未幾 其所悵仰如隔許多歲月謹請此內兄體增旺 覃儀勻休 頌仰且祝 弟日前與後梅兄偕作濟州之行 而海上遇風波 水疾猝發 未及登地 下船于城山浦 陸行百餘里 纔抵濟島 至今神魂未定圉圉若醉中人 此亦自取 向誰怨尤哉或視形便 則島中人心與陸地逈別 此等書冊莫可出放 到今思之 悔作此行 然此是已發之 夫可謂進退惟谷者也 抵島卽時先訪林竹軒 【名丁春】 則那氏言內求礼梁顯龍甫年前以此冊出放次來到 空行而歸 尹酉堂又以此冊出放與否 作書探知 故都無出放之意答書云云 勢也奈何 旅舘外無一寄宿處 而不得已留連于旅舘 一日所費果是不少 天涯千里 只自咄歎而已第俟幾日期當回程計耳 梅花詩間果考來耶 切切願聞 出陸卽時專晉于仙莊計耳 餘在從近面穩 留不備 惟希 涵亮甲戌七月晦日 宗弟海龍二拜弟亦同寡之人也 言何如之 際玆雨田先生之書行也 但將數字問安以呈幸而傍照于黃田先生 亦不好矣哉濟城留弟 金演聲 二拜蕙田先生近節泰平 擾未各候 此意慮仰 若何 貴近諸詩〖侍〗眷亦一例泰平 倂切願聞梅花詩一二三等果是誰 某隨便通知 甚仰甚仰日前面托南原水旨面草里姜德潤仝面好谷朴煥兌朴煥成詩若遺漏 則付之入格若何此是緊關 故如是更託耳[皮封](前面) 高興郡豆原面卧龍里何求亭朴炯得 先生親展(背面) 濟州島山池港南鮮旅館內朴海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