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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박오위장댁노(朴五衛將宅奴) 동일(東日)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拾肆年癸巳二月二十六日 金福介 朴五衛將宅奴東日 道光拾肆年癸巳二月二十六日 金福介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3년(순조 33) 2월 26일 김복개(金福介)가 박오위장댁(朴五衛將宅) 노(奴) 동일(東日)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문서(土地賣買文書). 1833년(순조 33) 2월 26일 김복개(金福介)가 박오위장댁(朴五衛將宅) 노(奴) 동일(東日)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문서(土地賣買文書)이다. 김복개는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밭을 박오위장댁의 노 동일에게 팔았다. 문서상 토지를 산 사람은 박오위장의 노비(奴婢) '동일'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 사대부는 매매행위에서 자신을 들어내지 않고, 집안의 노비를 내세워 계약을 했다. 즉, 이 밭의 실질적 매득인(買得人)은 박오위장이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명자태전(命字太田) 3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5부(負) 6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8냥이다. 여기서 말하는 태전(太田)은 콩밭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김복개는 중간에 구문기(舊文記)를 모두 분실하여 이번에 작성된 신문기(新文記) 1장(丈)만을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추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을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밭의 주인 김복개와 정필(訂筆) 이기석(李基錫)의 이름과 서명이 각각 있다. 본 문서(文書)가 작성된 계사년(癸巳年)은 1833년으로 도광(道光) 14년이 아니라 도광 13년이다. 여기에서는 간지를 기준으로 작성연대를 추정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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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肆年癸巳二月二十六日朴五衛將宅奴東日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自己買得太田命字三斗落所耕五負陸束㐣捧價錢文捌兩是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旧文記段中間閪失故以新文一張放賣日後如有爻象是去等持此文憑考卞正事田主 金福介[着名]訂筆 李基錫[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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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김방혁(金邦爀)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八年戊子二月 日 道光八年戊子二月 日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28년(순조 28) 2월에 김방혁(金邦爀)이 부안현(扶安縣) 선은평(仙隱坪)에 있는 현자답(玄字畓)과 황자답(黃字畓)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28년(순조 28) 2월에 김방혁(金邦爀)이 부안현(扶安縣) 선은평(仙隱坪)에 있는 현자답(玄字畓) 4두락지와 황자답(黃字畓) 1두락지 등 모두 5두락지를 45냥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현자답은 부수로는 8복 2속인 곳이며, 황자답은 3복 2속 되는 곳이었다. 김방혁은 이 논들을 자신이 매입하여 경작해 왔으나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고 있다. 거래시 매입자에게 본문기 3장을 함께 넘겨주었으며, 만일 뒤에 이 논들에 대해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김방혁이 문서를 자필로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증인은 거래에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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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八年戊子二月 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用處自己買得縣內一作仙隱坪玄字丁四斗落只所耕八卜二束庫及黃字畓一斗落只所耕三卜二束合五斗落只本文記三丈幷以捧価錢肆拾伍兩依數捧上爲遣永永放賣日後若相左之弊以此文記憑考爲乎乙事畓主自筆 金邦爀[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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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二十五年庚辰正月十一日金邦爀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急用處自己買得縣內一作仙隱坪伏在玄字丁畓四斗落只所耕八卜二束庫及黃字畓一斗落只所耕三卜二束合五斗落只本文記二丈幷以右人前捧価肆拾伍兩依數捧上爲遣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如有相左則以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閑良金允周[着名]證人閑良金泓吉[着名]筆執閑良姜有輔[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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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年乙酉七月十一日 前明文右明文事所用緊急故傳來苧田二斗落天字所耕二負六束㐣價折錢文十六兩果仙隱洞前麓柴場五同落價折二兩合十八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中間遺失故以田當票一張果以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文記告 官憑考事苧田柴場主 童蒙 金明轍[着名]證筆 幼學 姜士成[着名]證人 幼學 田福汝[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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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박수회(朴受繪)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二月初三日 朴受繪 同治九年庚午二月初三日 朴受繪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0년(고종 7) 2월 3일에 유학 박수회(朴受繪)가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0년(고종 7) 2월 3일에 유학 박수회(朴受繪)가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수회는 긴급하게 돈을 사용할 데가 있어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았던 부안현 일도면(一道面) 황개산(黃盖山)의 묘 아래에 있는 명자답(命字畓) 3마지기를 7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서는 다른 논과 붙어 있어서 출급하지 못하고 신문서 1장을 매입자에게 주면서 나중에 이 논을 두고 논란이 생기면 이 문서를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인 박수회와 증인(證人)으로 이취호(李取浩)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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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九年庚午二月初三日 前明文右明文事有急用處傳來右田伏在一道黃盖山墓下命字三斗落所耕六負三束庫乙捧價錢文柒兩是遣右人永永放賣爲去乎舊文段他田中幷付故不得出給而以新文一張興成爲去乎如有日後携貳之弊以此文憑考事田主 幼學 朴受繪[着名]訂人 李取浩[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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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戌十一月二十八日愚東里前坪謝字畓四斗落果慼字畓六斗落果太種田二斗五升落荷字庫文券幷付於家垡文券故未得出給印畓主 李相九 [喪不着] 字正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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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壬子年) 김호영(金浩榮)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壬子十月卄七日 金浩榮 壬子十月卄七日 金浩榮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임자년(壬子年) 10월 27일에 유학 김호영(金浩榮)이 부북 송사을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임자년(壬子年) 10월 27일에 유학 김호영(金浩榮)이 부북(扶北) 송사을리(松事乙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호영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부북(扶北) 송사을리(松事乙里) 후평에 있는 정자(停字) 논 12마지기를 32냥에 팔았다. 부수(負數)로는 20복 8속이 되는 곳이었다. 거래 당시 본문서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을 때에는 이 문기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인 김호영과 정필(訂筆)로 유학 고시영(高時榮)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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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二年戊戌二月二十日 明文右明文事有要用處定只堤下履字畓八斗落所耕三十三負二束㐣折價四百兩依數捧上是遣右前以新文一丈永永放賣矣日後若有爻端持此憑考事畓主 幼學 田在悅[着名]證人 幼學 金致道[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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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신재윤(辛在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三年甲戌九月二十日 辛在潤 同治十三年甲戌九月二十日 辛在潤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4년(고종 11) 9월 20일 신재윤(辛在潤)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4년(고종 11) 9월 20일 신재윤(辛在潤)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재윤은 돈을 쓸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매도를 하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이 앞에 있는 천자답(天字畓) 13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30부(負) 5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28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신재윤은 3년 안에 환태(還退) 즉, 이 논을 다시 사겠다고 문서에 썼다. 매도인(賣渡人) 신재윤은 구문기(舊文記) 1장(丈)과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차후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신구문권(新舊文券)을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유학(幼學) 신재윤과 증인(證人)으로는 유학 김진현(金晉鉉)이 참여하였다. 문서에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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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박오달(朴五達)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四年戊子十一月十五日 朴五達 光緖十四年戊子十一月十五日 朴五達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8년(고종 25)에 11월 15일에 박오달(朴五達)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정지리(定只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8년(고종 25)에 11월 15일에 박오달(朴五達)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정지리(定只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오달은 큰 흉년이 들어 생활이 어려워 부득이하게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정지리 제방 아래에 있는 논 5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18부(負)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4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박오달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문기(舊文記) 2장과 신문기(新文記)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본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한량(閑良) 박오달과 증인(證人)으로 한량 김성오(金成五)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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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子十月卄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伏在扶北松事乙里後坪停字畓十二斗落只所担二十卜八束庫乙價折錢文參拾貳兩依數捧上是遣本文卷一丈並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談持此文卷憑考事畓主 幼學 金浩榮[着名]訂筆 幼學 高時榮[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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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나치구(羅致九)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七年癸卯十一月十八日 羅致九 光武七年癸卯十一月十八日 羅致九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3년(광무 7) 11월 18일 나치구(羅致九)가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노계동(老溪洞)에 있는 태종전(太種田)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3년(광무 7) 11월 18일 나치구(羅致九)가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노계동(老溪洞)에 있는 태종전(太種田)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나치구는 스스로 매득하여 경작하던 밭을 긴히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군 하서면 노계동 전평(前坪) 태종전(太種田) 9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 11부(負) 3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00냥이다. 여기서 태종전은 콩밭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나치구는 밭의 구문기(舊文記)가 가대문서(家垈文書)와 함께 붙어 있어서 새로 작성한 문서만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가대문서는 집문서를 의미한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밭의 주인 나치구와 증필(證筆)로 나치삼(羅致三)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문서에 이름을 쓰고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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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三年甲戌九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伏在東道仙隱洞前坪天字畓十三斗落所耕參拾負五束庫乙折價錢文貳百捌拾兩依數捧上是遣限三年還退之意成文記爲乎矣舊文記㱏丈並以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新舊文券憑考事畓主 幼學 辛在潤[着名]證筆 幼學 金晉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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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황도길(黃道吉)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十一年辛酉二月二十八日 黃道吉 咸豐十一年辛酉二月二十八日 黃道吉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1년(철종 12) 2월 28일 황도길(黃道吉)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이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1년(철종 12) 2월 28일 황도길(黃道吉)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이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황도길은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매도(賣渡)를 하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이 앞에 있는 천자답(天字畓) 13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32부(負)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10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잃어버려 내어 줄 수 없다고 기록했다. 매도인(賣渡人) 황도길은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차후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논의 주인 유학(幼學) 황도길의 이름과 그 아래에는 서명이 되어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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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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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豐十一年辛酉二月二十八日 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自己買得伏在仙隱洞前坪天字畓十三斗落所耕三十二負庫乙折價錢文㱏百兩依數捧上是遣永永放賣爲去乎矣本文記段中間閪失不得出給只以新文一丈成給爲去乎日後若有二談以此文憑考事畓主 幼學 黃道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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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地賣買契約書一土地表示ᄂᆞᆫ左記의通홈一賣買代金玖拾円也一賣渡人은前記賣買代金急準領ᄒᆞ고土地所有權을買受人의게轉渡홈一保証人은右契約의確實된事由를保証으로左에署名捺印홈大正元年十月二十日扶安郡上東面卜星里二統二戶賣渡人 金奉俊扶安郡上東面新后里一統六戶保証人 金光燮買受人 李孟三 殿土地表示面名 里洞名 字番号 地目 夜味 面積 結數上東面 卜星里 乃四九七 田 三味 四斗 三負八束上東面 卜星里 乃四九九 田 一味 壹斗 一負一束上東面 卜星里 字四六二 田 二味 壹斗 一負五束上東面 新后里 服五0九田 一味 三斗 三負八束餘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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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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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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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九年癸巳六月十三日 明文右明文事段當此窮節生道極艱故伏在上東面福星里前麓松田參拾同落價折錢文肆拾參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中間流失故以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端則持此文記告官卞政事松田主 幼學 金奉瑞[着名]證人 幼學 朴成律[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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