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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貳拾陸年丙午十一月十一日黃學仁前明文右明文事段要用所致伏在仙隱洞前坪玄字三斗落所耕二卜八束庫果同字畓二斗落同字田一斗落幷所耕六卜三束㐣價折錢文三十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永永放賣本文記他田畓幷府故未得出給以此新文一丈日後相考事畓主 幼學 李圭咸[着名]證筆 幼學 黃道晃[着名](背面)乃賢畓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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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강여중(姜汝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十年辛未正月初五日 康汝中 同治十年辛未正月初五日 康汝中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1년(고종 8) 1월에 강여중(康汝中)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1년(고종 8) 1월 5일에 강여중(康汝中)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강여중은 본인이 매득하여 농사지어 먹고살다가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상동면(上東面) 장수(長水) 안뜰에 있는 거자답(巨字畓) 1마지기를 3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원래 있던 문서는 잃어버려 신문서 1장을 건네주며 나중에 다른 말이 나오면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매매 당시 논 주인인 강여중과 증필(證筆)로 전봉규(田鳳圭)가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문서 뒷면에 강여중의 노비 소남(小男)이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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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안성집(安成集)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九年甲午三月十二日 安成集 光緖十九年甲午三月十二日 安成集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4년(고종 31) 3월 12일에 유학(幼學) 안성집(安成集)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매산리(梅山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4년(고종 31) 3월 12일에 유학(幼學) 안성집(安成集)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매산리(梅山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안성집은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매산리 전평(前坪) 방자답(傍字畓) 10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20부(負) 8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65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안성집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문기(舊文記) 1장(丈)과 신문기(新文記)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논의 주인 유학(幼學) 안성집의 이름과 그의 서명이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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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九年甲午三月十二日 前明文右明文事急有緊用處伏在一道梅山前坪傍字畓十斗落所耕二十負八束㐣價折錢文六拾伍兩依數捧上是遣旧文一張果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持此文告 官卞正事畓主 幼學 安成集[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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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三年丙子三月初三日 前明文右明文事移去此東道仙隱洞前坪玄字丁七斗落所耕二十三負庫乙價折錢文壹百五十兩依數捧上旧文記二丈並以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紛紜之端指此文記憑考事畓主 廉圭錫 喪不着證人 田興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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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염영두(廉永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九年己未十一月二十二日 姜周煥 廉永斗 咸豐九年己未十一月二十二日 姜周煥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59년(철종 10) 11월 22일에 강주환(姜周煥)이 염영두(廉永斗)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59년(철종 10) 11월 22일에 강주환(姜周煥)이 염영두(廉永斗)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강주환은 돈이 긴히 필요해서 논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 전평(前坪) 현자(玄字) 7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23부(負)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58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강주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문기(舊文記) 2장과 함께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 염영두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강주환과 증필(證筆)으로 조종규(趙宗奎)의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그 아래에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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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三年癸巳十月晦日幼學 前明文右明文事段以移去次自己買得伏在仙隱洞前坪玄字畓四斗落只所耕 八負二束庫叱折価參拾伍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相左之弊則以此憑考事畓主自筆 幼學梁哲洙[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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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八年甲辰正月三十日 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伏在一道面定只堤下臨字畓十五斗落所耕三十日負㐣價折錢文壹仟兩依數捧上是遣以新文一張舊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持此文記憑考事畓主 田玉汝[着名]證人 田士欽[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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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남계욱(南啓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二年丙子十月初九日 南啓旭 光緖二年丙子十月初九日 南啓旭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6년(고종 13) 10월 초9일 남계욱(南啓旭)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6년(고종 13) 10월 초9일 남계욱(南啓旭)이 부안현(扶安縣) 동도면(東道面) 선은동(仙隱洞)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남계욱은 돈이 급히 필요한 데가 있어서 밭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동도면 선은동 동중(洞中)의 천자(天字) 저전(苧田) 2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1부(負)인 곳이다. 저전은 모시밭을 말한다. 방매(放賣) 가격은 5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남계욱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문기(舊文記) 1장(丈)과 함께 새로 작성한 문서 1장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밭의 주인 남계욱이 자필(自筆)로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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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二年丙子十月初九日 前明文右明文事急有要用處伏在東道仙隱洞洞中天字苧田二斗落只所耕一負庫乙價折錢文伍兩依數捧上是遣旧文記一張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談以此文記告官卞庭事苧田主 自筆 南啓旭[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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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신욱(辛郁)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四年戊寅十月二十八日 申郁 光緖四年戊寅十月二十八日 申郁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78년(고종 15) 10월 28일 신욱(申郁)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정지제(定只堤) 아래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78년(고종 15) 10월 28일 신욱(申郁)이 부안현(扶安縣) 일도면(一道面) 정지제(定只堤) 아래 쪽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욱은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 논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일도면 정지리의 제방 아래 명자답(命字畓) 15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16부(負)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34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신욱은 새로 작성한 매매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본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신욱과 증인(證人)으로는 전용진(田鎔鎭)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구문기(舊文記)는 다른 논의 문서와 함께 붙어 있어 내어 줄 수 없음을 문서에 밝히고 있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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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四年戊寅十月二十八日 前明文右明文事要用所致伏在扶安一道面定只堤下命字畓十五斗落所耕三十四卜畓五斗落所耕十六負㐣價折錢文參伯肆拾兩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日後若有異端則持此文記憑考事旧文記他畓卷倂付故未得出給畓主 申郁[着名]證人 田鎔鎭[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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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신기남(辛奇男)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六年庚寅十二月十五日 辛奇男 光緖十六年庚寅十二月十五日 辛奇男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0년(고종 27) 12월 15일에 신기남(辛奇男)이 부안현 상변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0년(고종 27) 12월 15일에 신기남(辛奇男)이 부안현(扶安縣) 상변리(象邊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기남은 조세를 납부할 길이 없어서 상변리 전평에 있는 논 8마지기를 150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구문기를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문제가 생기면 관에 알려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 논 주인 신기남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못하였고, 신무연(辛武然)이 증필(證筆)로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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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김명철(金明轍) 방매(放賣) 시장문기(柴場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시장문기 光緖十年乙酉七月十一日 金明轍 光緖十年乙酉七月十一日 金明轍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5년(고종 22) 7월 11일에 동몽(童蒙) 김명철(金明轍)이 저전(苧田)과 시장(柴場)을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柴場文記). 1885년(고종 22) 7월 11일에 동몽(童蒙) 김명철(金明轍)이 저전(苧田)과 시장(柴場)을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柴場文記)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김명철은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 물려받은 밭과 시장을 매도하게 되었다. 여기서 동몽(童蒙)은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천자(天字) 저전 2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2부(負) 6속(束)인 곳이며 방매(放賣) 가격은 16냥이다. 또한 선은동(仙隱洞)에 있는 시장(柴場)은 5동락(同落)으로 매매 가격은 2냥이다. 시장(柴場)이란 땔감 채취를 위하여 지정된 삼림 지역을 말한다. 김명철은 모두 18냥을 받고 모시밭과 시장을 팔았다. 매도인(賣渡人) 김명철은 구문기(舊文記)를 중간에 잃어버려 전당표(田當票) 1장과 새로 작성한 매매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본문에는 ''영영방매(永永放賣)''라 표기하여 아주 팔아버림을 확인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매도인 동몽 김명철과 증필(證筆)은 유학(幼學) 강사성(姜士成), 증인(證人)은 유학 전복여(田福汝)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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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최규성(崔奎成)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七年癸卯十一月十三日 崔奎成 光武七年癸卯十一月十三日 崔奎成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3년(광무 7) 11월 13일 최규성(崔奎成)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노계동(蘆溪洞)에 있는 면전(綿田)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3년(광무 7) 11월 13일 최규성(崔奎成)이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노계동(蘆溪洞)에 있는 면전(綿田)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최규성은 궁핍한 겨울에 살아갈 방법이 없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밭을 팔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군 하서면 노계동의 남평(南坪) 면전(綿田) 4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18부(負) 9속(束)인 곳과 동평(東坪) 태종전(太種田) 4두락지로 부수로는 5부 5속인 곳이다. 이 두 곳의 방매(放賣) 가격은 모두 85냥이다. 여기서 태종전은 콩밭을 말한다. 산세(山稅)는 매입자가 내기로 정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최규성은 새로 작성한 문서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또한 구문기(舊文記)는 다른 문서와 함께 붙어 있어 내어 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밭의 주인 유학(幼學) 최규성과 증필(證筆) 유학 서덕노(徐德魯)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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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七年癸卯十一月十三日 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耕食是多可當此窮冬勢不得已伏在下西面芦溪洞南坪 字綿田四斗落所耕山稅八負九束㐣果東坪太種田四斗落所耕五負五束㐣價折錢文捌拾伍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以新文㱏丈永永放賣爲去乎旧文記他文幷付不得出給而日後若有他說則以新文㱏丈以卞考事田主 幼學 崔奎成[着名]證筆 幼學 徐德魯[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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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六年庚寅十二月十五日 明文右明文排結錢充納無路故伏在象邊里前坪畓八斗落價折錢文㱏佰五拾依數捧上是遣並以舊文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之端以此文記告官卞政事畓主 辛奇男[喪不着]證筆 辛武然[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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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전재열(田在悅)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二年戊戌二月二十日 田在悅 光武二年戊戌二月二十日 田在悅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8년(광무 2) 2월 20일에 전재열(田在悅)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정지제(定只堤) 아래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8년(광무 2) 2월 20일에 전재열(田在悅)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정지제(定只堤) 아래 쪽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전재열은 논을 팔게 된 이유를 요용소처(要用所處), 즉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라고 밝혔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군 일도면 정지리의 제방 아래 이자답(履字畓) 8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33부(負) 2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40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전재열은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유학(幼學) 전재열과 증인(證人)으로는 유학 김치도(金致道)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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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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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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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김봉준(金奉俊)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正元年陰九月十日 金奉俊 大正元年陰九月十日 金奉俊 전북 부안군 [印] 2개 1*1 1개(적색, 정방형), 1.2*1.2 1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2년 음9월 10일 김봉준(金奉俊)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복성리(卜星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2년 음9월 10일 김봉준(金奉俊)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복성리(卜星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김봉준은 밭을 스스로 매입(買入)하여 경작해오다가 부득이하게 부안현 상동면 복성리에 있는 콩밭 2곳을 팔게 되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내자(乃字) 499호 태전(太田) 1편(片) 1두락지(斗落只)로, 결수(結數)로는 1부(負) 5속(束)인 곳과 462호 태전 21편 1두락지 결수로는 1부 5속인 곳이다. 두 곳의 방매(放賣) 가격은 모두 100냥이다. 매도인(賣渡人) 김봉준은 구문기(舊文記)가 다른 문서와 함께 붙어 있어 매입자에게 넘겨주지 못하고, 새로 작성한 문서 1장만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밭의 주인 상동면 복성리에 사는 김봉준과 증인(證人)으로는 같은 동네 사는 김광섭(金光燮)가 참여하였다. 그들은 각자의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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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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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十年辛未正月初五日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耕食是如可要用所致伏在上東面長水內坪巨字畓三負三束庫㱏斗五升落乙価折錢文參兩依數捧上是遣本文記閪失故只以新文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此文記憑考事田主 姜汝中[着名]證筆 田鳳圭[着名](背面)姜奴小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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