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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三年丁丑一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當此荒年生活無路故勢不得己傳來畓伏在頓池前坪嘉字三斗落只所耕八負㐣價折錢文三十兩依數捧上是遣幷以新旧文五丈永永放賣於右人前爲去乎日後若有諸族中異言則持此文記考官卞正事畓主 安福同[着名]證筆 金炳後[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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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안완봉(安完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四十九年甲辰十一月初七日 朴倭土伊 安完奉 乾隆四十九年甲辰十一月初七日 朴倭土伊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784년(정조 8) 11월 초7일 박왜토이(朴倭土伊)가 안완봉(安完奉)에게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 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784년(정조 8) 11월 초7일 박왜토이(朴倭土伊)가 안완봉(安完奉)에게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돈지리(頓池里) 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박왜토이는 조모(祖母)가 자기매득(自己買得)하여 경작해 왔던 논으로,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 매도(賣渡)하게 되었다. 보통 명문(明文)에서는 땅을 파는 이유를 가계가 어렵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흉년이 들거나, 다른 땅이나 집을 사려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하서면 돈지리 전평(前坪) 가자답(嘉字畓) 3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8부(負)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45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박왜토이는 새로 작성한 문서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구문기(舊文記) 2장(丈)을 매수인(買受人) 안완봉에게 넘겨주었다. 본문에는 훗날, 자손(子孫) 중에 이 거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면 될 일이라고 기록했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박왜토이와 증인(證人) 강승원(姜承元), 필(筆) 고응성(高應星)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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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一年壬申九月二十日 明文右明文事急有要用處買得伏在上東鳳山前坪 字畓五斗落所耕九卜三束㐣幷禾穀三十斗價折錢文壹百貳拾伍兩依數捧上是遣以舊文記一張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持此文券憑考事畓主 申郁 喪不着證人 任鎭常[着名](別紙)淑文處別拾三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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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이안우(李安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四年甲午三月初五日 李安遇 道光十四年甲午三月初五日 李安遇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4년(순조 34) 3월 초5일에 이안우(李安遇)가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4년(순조 34) 3월 초5일에 이안우(李安遇)가 부북(扶北)에 있는 망자답(邙字畓) 14두락지, 결부(結負)로는 31복 2속이 되는 곳을 1백냥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그는 흉년으로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논을 팔게 되었다고 거래사유를 밝히고 있다. 본문기(本文記)는 중간에 잃어버려 신문기 1장만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뒷날 자손 중에 이 논을 두고 이의를 제기하면 이 문서를 관(官)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답주인 이안우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유학(幼學) 김길(金吉)과 김광옥(金光玉)이 증보(訂保)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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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拾年乙丑十二月二十三日辛命直前明文右明文事段切有緊用處扶北伏在一作荷字所耕二十三卜一束又(虛錄頉下)鳳字所耕八卜八束合九斗落庫果八作樓字十一斗落所耕二十八卜二束庫乙價折錢文壹百陸拾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永永放賣爲乎矣本文記段他畓幷付乙仍于未得出給爲去乎日後如有相左是去等以此卞正事畓主自筆 幼學 金誠鉉[着名]定只堤下自鳳凰里之飛里去路下二次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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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정득완(鄭得完)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五年乙巳十一月二十日 鄭得完 道光二十五年乙巳十一月二十日 鄭得完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5년(헌종 11) 11월 20일에 정득완(鄭得完)이 부북(扶北)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5년(헌종 11) 11월 20일에 정득완(鄭得完)이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부북(扶北) 팔작(八作)의 누자답(樓字畓) 10두락지, 부수(負數)로 20복 5속이 되는 곳을 90냥에 팔았다. 거래시 매입자에게 구문기 2장과 신문기 1당을 함께 넘겨주었다. 뒷날 자손 중에 이 논에 대하여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기 3장을 가지고 관(官)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증인 겸 필집(筆執)으로 오예경(吳禮敬)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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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오도현(吳道賢)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五年己丑十一月二十日 吳道賢 光緖十五年己丑十一月二十日 吳道賢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9년(고종 26) 11월 20일 오도현(吳道賢)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복성리(福星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9년(고종 26) 11월 20일 오도현(吳道賢)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복성리(福星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오도현은 흉년이 들어 세금을 낼 방도가 없자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밭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복성리에 있는 잠자(潛字) 태전(太田) 6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5부(負) 7속(束)인 곳이며, 방매 가격은 105냥이다. 여기에서 태전은 콩밭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관(官)에 가져가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밭의 주인 유학(幼學) 오도현, 증인(證人) 유학 김원호(金元浩), 집필(執筆) 유학 오석목(吳錫穆)의 이름이 있다. 태전주(太田主) 오도현은 상중(喪中)이어서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지 않았고, 김원호와 오석목은 각각 이름을 쓰고 그 아래에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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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七年癸卯二月初三日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要用所致勢不得己伏在扶安立下牛東里右邊殊字苧田㱏斗伍升落只所耕三負五束廤価折錢文㱏百伍拾兩依數捧上是遣倂新旧文二章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像之弊端則持此文記告 官卞呈事苧田主 幼學 金耿龜[着名]證人 幼學 曺德弼[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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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임기주(林基柱)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七年辛卯八月二十七日 林基柱 光緖十七年辛卯八月二十七日 林基柱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1년(고종 28) 8월 27일에 임기주(林基柱)가 부안현(扶安縣) 입하면(立下面) 우동리(牛東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1년(고종 28) 8월 27일에 임기주(林基柱)가 부안현(扶安縣) 입하면(立下面) 우동리(牛東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임기주는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밭을 돈이 필요한 데가 있어서 팔았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입하면 우동리 우측 가장자리에 있는 수자(殊字) 저전(苧田)으로 1두(斗) 5승락지(升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3부(負) 9속(束)인 곳이다. 방매(放賣) 가격은 76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임기주는 구문기(舊文記)를 잃어버려 내어 줄 수가 없었고, 신문기(新文記) 1장(丈)을 매수인(買受人)에게 넘겨주었다. 새로 작성한 문서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모시밭 주인 유학(幼學) 임기주와 증필(證筆) 나우성(羅祐成)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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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七年辛卯八月二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要用所致不得而伏在立下面愚東里右邊殊字苧田㱏斗五升落只所耕三負九束㐣価折錢文柒拾陸兩依數捧上是遣舊文遺失故不得出給而以新文一丈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苧田主 幼學 林基柱[着名]證筆 幼學 羅祐成[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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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염상봉(廉相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六年丙申正月望 幼學田鎭斅 幼學廉相鳳 道光十六年丙申正月望 幼學田鎭斅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36년(헌종 2) 정월에 유학(幼學) 염상봉(廉相鳳)이 논을 사면서 받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36년(헌종 2) 정월 보름에 유학(幼學) 염상봉(廉相鳳)이 부안현 선은동에 있는 논을 사면서 받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유학(幼學) 전진효(田鎭斅)는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선은동 전평(前坪)의 현자답(玄字畓) 4두락지를 30냥에 염상봉에게 팔았다. 결부(結負)로는 8부 2속이 되는 곳이었다. 뒷날 다른 말이 생기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답주인 전진효가 자필로 명문을 작성하였으며, 유학 조갑환(趙甲環)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답주와 함께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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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六年丙申正月望幼學廉相鳳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畓伏在扶東仙隱洞前坪玄字丁四斗落只所耕捌負貳束㐣価折錢文參拾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鬧端則持此告官卞正事畓主自筆 幼學田鎭斅[着名]證人 幼學趙甲環[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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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四年甲午三月初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當此歉年至有緊用處扶北二作邙字丁十四斗落只三庫並以所耕三十一卜二束㐣価折文一百兩依數捧上爲遣本文記段中間閪失故新文記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若有紛紜之弊則持此文告 官卞正事畓主自筆 李安遇[着名]訂保幼學 金吉[着名]訂保幼學 金光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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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이맹삼(李孟三)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正元年十月二十日 金奉俊 李孟三 大正元年十月二十日 金奉俊 전북 부안군 1*1 2개(적색, 정방형), 1.2*1.2 2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2년 10월 20일에 김봉준(金奉俊)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복성리(卜星里)에 있는 밭을 이맹삼(李孟三)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1912년 10월 20일에 김봉준(金奉俊)이 부안군(扶安郡) 상동면(上東面) 복성리(卜星里)에 있는 밭을 이맹삼(李孟三)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이다. 매매대금(賣買代金)은 모두 90원이다. 매도인(賣渡人)은 매매대금을 받고 토지소유권(土地所有權)을 매수인(買受人)에게 전달하기로 하였다. 보증인(保證人)은 대정원년 10월 20일에 계약 사실을 확인하고 서명하였다. 이 거래에는 매도인(賣渡人)으로 부안군 상동면 복성리 2통 5호에 사는 김봉준과 부안군 상동면 신후리(新后里) 1통 6호에 사는 보증인 김광섭(金光燮), 그리고 매수인(買受人) 이맹삼이 참여하였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모두 네 곳이었다. 첫 번째 밭은 부안군 상동면 복성리 497호에 있는 3야미(夜味), 4두락지(斗落只)로 부수로는 3부(負) 8속(束)인 곳이다. 두 번째 밭은 부안군 상동면 복성리 499호에 있는 1야미, 1두락지로 1부 1속인 곳이다. 세 번째 밭은 부안군 상동면 복성리 462호에 있는 2야미, 1두락지로 1부 5속인 곳이다. 네 번째 밭은 부안군 상동면 신후리(新后里) 509호에 있는 1야미, 3두락지이며 3부 8속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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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二十五年乙巳十一月二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矣有要用處扶北八作樓字畓拾斗落只所耕二十卜五束㐣価折錢文玖拾兩捧上是遣右人前旧文記二丈新文記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或有子孫中雜談之弊以此文記三丈告 官卞正事畓主鄭得完[着名]證人執筆吳禮敬[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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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正元年陰九月十日 前明文右明文事ᄂᆞᆫ自己賣得累年耕食이다가勢不得已伏在上東面卜星里坪乃字四九九号太田一片壹斗落結一負五束庫果同坪字四六二太田二片壹斗落結一負五束庫을倂折錢文壹佰兩依數捧上이고舊文은幷付他文券故로以新文一張으로右人前永永放賣ᄒᆞ거은日後에若有他說則以此文記憑考事太田主 上東面卜星里 金奉俊[印]證人 仝里 金光燮[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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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十五年己丑十一月二十日 右人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當此凶年王稅判出無路故伏在上東面福星里後坪潛字太田六斗落只所耕五負柒束㐣價折錢文㱏百五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端則持此文記告官卞政事太田主 幼學 吳道賢 喪不着證人 幼學 金元浩[着名]執筆 幼學 吳錫穆[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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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오원칠(吳元七)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五年己丑二月二 吳元七 光緖十五年己丑二月二 吳元七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9년(고종 26) 11월 20일 오원칠(吳元七)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신후리(新后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9년(고종 26) 11월 20일 오원칠(吳元七)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신후리(新后里)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오원칠은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서 밭을 팔게 되었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부안현 상동면 신후리에 있는 잠자(潛字) 태전(太田) 5두락지(斗落只)이며 부수(負數)로는 4부(負) 9속(束)인 곳이며, 방매 가격은 85냥이다. 여기에서 태전은 콩밭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는 밭의 주인 유학(幼學) 오원칠, 증인(證人)은 유학 김주성(金周成), 집필(執筆)은 유학 오도현(吳道賢)의 이름이 있다. 문서를 작성한 오도현은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태전주(太田主) 오원칠과 증인 김주성은 각각 이름을 쓰고 그 아래에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7년 임병호(林秉鎬)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丁酉十一月初八日 宋心中 林秉鎬 丁酉十一月初八日 1897 宋心中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7년 11월 8일에 송심중(宋心中)이 부안군(扶安郡) 입하면(立下面) 우동리(愚東里)에 있는 집과 텃밭을 임병호(林秉鎬)에게 팔면서 작성한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1897년 11월 8일에 송심중(宋心中)이 부안군(扶安郡) 입하면(立下面) 우동리(愚東里)에 있는 집과 텃밭을 임병호(林秉鎬)에게 팔면서 작성한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이다. 가대주인 유학 송심중은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살았으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우동리(愚東里)에 있는 초가 4칸과 텃밭 1마지기, 시장 100동락, 모시밭(苧田) 1마지기, 콩밭(太田) 11마지기, 촌전답(村前畓) 4마지기 등을 모두 350냥에 임병호에게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2장을 건네주어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거래 당시에 가대주(家垈主)인 송심중과 증인(證人)으로 유학 김성술(金性述)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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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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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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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4년 최석룡(崔錫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三年甲子正月二十三 田五豊 崔錫龍 同治三年甲子正月二十三 田五豊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4년(고종 1) 1월 23일에 부문장(副門長) 전오풍(田五豊)이 최석룡(崔錫龍)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4년(고종 1) 1월 23일에 부문장(副門長) 전오풍(田五豊)이 최석룡(崔錫龍)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명문(明文)이란 어떤 권리를 증명해 주는 문서로 파는 사람이 작성하여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매매(賣買) 연월일(年月日)과 매수자(買受者), 매도사유(賣渡事由), 매도물(賣渡物)의 소재지, 양안상(量案上)의 자(字), 번(番), 결부속(結負束)과 두락(斗落) 등 매매 대상물의 정보와 가격, 그리고 매도인(賣渡人), 필집(筆執), 증인(證人) 등이 기록된다. 그러나 시대와 작성하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문중(門中)의 논으로 매년 세(稅)를 받아오다가 돈이 필요한 곳이 있어 매도를 하게 되었다. 부북(扶北) 8작(作) 울자답(㭗字畓) 3두락지(斗落只)로 부수(負數)로는 7부(負) 5속(束)인 곳이며, 방매(放賣) 가격은 20냥이다. 조선 시대에는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賣渡人) 전오풍은 문중의 부대표로 거래에 참여하며 구문기(舊文記) 2장(丈)과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買受人) 최석룡에게 넘겨주었다. 신문기(新文記)에 '영영방매(永永放賣)'라고 적어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차후에 시비가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논의 주인 부문장 전오풍과 증필(證筆) 이시백(李時白)이 참여하였다. 답주(畓主) 전오풍는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이시백은 이름 아래에 서명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 선은동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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