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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김관억(金寬億)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道光二十年月日 府官 金寬億 道光二十年月日 全州府官 金寬億 전라북도 전주시 府官[着押] 1개(적색, 정방형), 周挾 字改印 고산 신평 경주김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문현주, 『조선시대 호구단자의 작성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08. HIKS_OD_F1002-01-000001 1840년(헌종 6)에 김관억(金寬億)이 전주부(全州府)에서 발급받은 준호구. 1840년(헌종 6)에 전주부(全州府) 봉상면(鳳翔面) 사거리(四巨里) 제6통 제3호에 사는 당시 28세인 김관억(金寬億)이 전주부에서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이때 그는 처 만경두씨(萬頃杜氏, 23세)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당시 그의 장인 두양술(杜良述)은 중시(重試)에 급제(及第)하였다고 나온다. 중시는 조선시대 당하관(堂下官) 이하의 문무관에게 10년마다 한 번씩 보이는 과거이다. 한편 관련문서에 의하면 김관억은 전주부에서 고산현(高山縣)으로 이거하였으며 이때 이름도 세풍(世豊)으로 개명한 듯하다. 또한 한참 뒤의 일이지만 처 만경두씨가 죽었거나 그녀와 이혼한 뒤에 다시 동래정씨(東萊鄭氏)를 만나 재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호주가 살았던 전주부 봉상면 사거리는 현재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장기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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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김달원(金達元)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嘉慶三年戊午正月日 靈巖郡 幼學 金達元 嘉慶三年戊午正月日 靈巖郡守 金達元 전라남도 영암군 行郡守[着押] 周挾無改印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HIKS_OD_F1018-01-000034 1798년(정조 22) 1월에 영암군에서 유학(幼學) 김달원(金達元, 54세)에게 발급한 준호구. 1798년에 영암군에서 幼學 金達元(1745~?)에게 발급한 准戶口. *주소: 靈巖郡 西終面 茅亭 第九統 第三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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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김희민(金喜敏)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嘉慶三年戊午正月日 行郡守 幼學 金喜敏 嘉慶三年戊午正月日 靈巖郡守 金喜敏 전라남도 영암군 行郡守[着押] 周挾無改印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HIKS_OD_F1018-01-000034 1798년(정조 22)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김희민(金喜敏, 40세)에게 발급한 준호구. 1798년에 靈巖郡에서 幼學 金喜敏(1759~?)에게 발급한 准戶口. *주소: 靈巖郡 西終面 茅亭 第?統 第二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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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김현수(金顯洙)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光緖八年壬午正月日 行郡守 幼學 金潤鉉 故 代孫 幼學 顯洙 光緖八年壬午正月日 靈巖郡守 金顯洙 전라남도 영암군 行郡守[着押] 周挾無改印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HIKS_OD_F1018-01-000034 1882년(고종 19) 1월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김현수(金顯洙, 32세)에게 발급한 준호구. 1882년에 靈巖郡에서 幼學 金顯洙(1854~1929)에게 발급한 戶口單子. *주소: 靈巖郡 西終面 茅亭 第一統 第一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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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김현수(金顯洙)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光緖十一年乙酉正月日 行郡守 幼學 金顯洙 光緖十一年乙酉正月日 靈巖郡守 金顯洙 전라남도 영암군 行郡守[着押] 周挾無改印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영암 모정 광산김씨 양간공파 HIKS_OD_F1018-01-000034 1885년(고종 22)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김현수(金顯洙, 32세)에게 발급한 준호구. 1885년에 靈巖郡에서 幼學 金顯洙(1854~1929)에게 발급한 准戶口. *주소: 靈巖郡 西終面 茅亭 第一統 第一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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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김응상(金膺相)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 道光二十三年癸卯 幼學 金膺相 道光二十三年癸卯 扶安縣監 金膺相 전라북도 부안군 行縣監[着押] 6.5*6.5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43년(헌종 9)에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에 거주하는 김응상)이 부안현에서 발급받은 준호구. 1843년(헌종 9)에 부안현(扶安縣) 남하면(南下面) 둔계리(遯溪里)에 거주하는 김응상(金膺相)이 부안현(扶安縣)에서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김응상의 본관은 부령(扶寧)으로, 당시 68세였다. 그는 아내 남원양씨(南原梁氏, 49세) 및 3명의 아들과 2명의 며느리들, 1명의 손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은 큰아들 양묵(養黙, 39세) 큰며느리 개령심씨(開寧尋氏, 34세), 손자 기경(基慶, 10세), 둘째아들 천묵(天黙, 29세) 둘째며느리 전의이씨(全義李氏, 28세), 셋째아들 원묵(元黙, 20세) 셋째며느리 금성오씨(錦城吳氏, 21세) 등이다. 큰아들 양묵은 이전 관련 문서에 의하면 여러 차례 개명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데리고 살았던 노비가 4명이 있었다고 나와 있다.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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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子規樓謹賡 御製韻 端廟御製見上危樓近接故行宮往跡蒼茫在越中老石北山雲欲沒孤舟西浦路何窮庭陰棐樹深深碧墻外桃花寂寂紅杜宇來呼今夜否不妨泥醉臥無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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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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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騎驢過水踰店【四月十一日與李生仲明同行夜宿朴哥家東小門外可十里許】 四月輕寒麥來黃野人紛錯世分秧濃陰萬木平沙路旅緖無端一倍長【會洞鄭直長翼永子明欲移葬其親於新山故要余一往見】參差百菓鬱成林隙地纖蔬不擇陰趣味都空山客月經謀只在市入金草肥足慰飢驢肚谷僻堪誇怪鳥音二夜留連緣業否浮雲一舍夢中尋【右再宿加五里村朴哥家李生同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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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8일 初八日 종일 비가 왔다. 아침 전에 사헌(士憲)이 파주(坡州)로 길을 떠났는데, 비가 그치지 않아 중도에서 낭패를 당했을 것이 뻔하니 매우 염려스럽다. 終日雨。 朝前士憲作坡州之行, 而雨勢不止, 中路見敗必矣, 爲慮萬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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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5일 初五日 아침을 먹기 전에 근동(芹洞)에 가니 백건(伯健)이 요기 거리와 술을 마련하여 보내주었는데, 가난한 집에 폐를 끼치니 도리어 편치 않았다. 밤에 뇌우가 퍼붓고 우박이 내렸다. 朝前往芹洞, 伯健備療飢及酒而饋之, 貧家貽弊, 還爲不安, 夜雷雨電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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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6일 初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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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추웠다. 저녁 무렵 내려왔다. 청파에서 묵었다. 寒。 夕間下來。 靑坡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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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흐리고 추웠다. 청파에서 머물렀다. 陰而寒。 留靑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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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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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2일 十二日 차동, 근동, 합동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往車洞及芹洞、蛤洞, 談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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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5일 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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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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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6일 十六日 흥양이 와서 천노가 올라온다고 기별해 주었는데, 여산(礪山)에서 뒤처졌다고 하였다. 고대하던 끝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興陽來言千奴上來之奇, 而礪山落後云, 苦待之餘, 稍可寬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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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3일 十三日 주동(注洞)에 갔다 왔다. 往注洞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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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8일(무오) 二十八日 戊午 -저옹돈장(著雍敦牂)-. 맑음. 여수(麗水) 안기택(安奇宅)이 와서 이종기(李鍾琪) 댁에서 기식(寄食)하다가 여기에 와서 자고 갔다. 【著雍敦牂】。陽。麗水安奇宅來。 寄食於李鍾琪宅。 留宿於此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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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4일(계묘) 二十四日 癸卯 -소양단알(昭陽單閼)-. 흐림. 동오(東吾)로 돌아왔다. 이근영(李根榮)이 재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종기(李鍾琪)ㆍ종삼(鍾三)이 와서 나에게 고향집 안부를 물었다. 이몽우(李濛雨)ㆍ성우(成雨)가 와서 나에게 왕래하는데 어수선함이 없었는지 물었다. 당직(堂直) 표인학(表仁學)이 문안하였다. 수업 받는 아이들도 혹 먼저 와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혹 뒤에 와서 진현(進見)하기도 했다. 【昭陽單閼】。陰。還東吾。李根榮守齋。李鍾琪ㆍ鍾三來問我本第安否。李濛雨ㆍ成雨來問我往還之無擾。堂直表仁學問安。受業兒。 或先候問。 或後來進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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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6일(을사) 二十六日 乙巳 -전몽대황락(旃蒙大荒落)-. 맑음. 연초(煙草, 담배)는 평생 즐겨하던 것인데, 신식담배를 전매[榷賣]한 후로는 항상 그만두고자 하기를 등한히 하지 않았다. 금년 겨울에 전매국181) 사람이 봉초(封草)182)를 피우지 않는가 의심하고 어디에서 한 가치를 주워 와서 나에게 묻고자 하였으나, 내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날카롭게 꾸짖어 보냈다. 이후 소문에 담양에서 범금자(犯禁者)가 오백명에 이르렀다는 것을 들었다. 결국에는 인민의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되겠구나. 이규번(李圭番), 이근영(李根榮), 나 세 사람은 구석에 앉아 세상을 탄식하며 절초(絶草)를 맹세하였다. 【旃蒙大荒落】。陽。烟草平生所嗜。 而新式榷賣後。 常欲止之不閑。今冬全賣局人疑不吸封草。 拾一啇於何處以來。 欲質問我。 我不知其由。 快叱而遣之。此後所聞潭陽一鄕。 犯禁者至於五百名。 畢竟人民手足無所措。李圭番ㆍ根榮與我三人。 隅坐嘆世。 誓以絶草。 전매국 1910년 조선총독부소속으로 전매국을 설치하면서 개인의 담배경작과 판매를 전면 금지한다. 1921년 4월 1일 〈조선 담배 전매령(제령제5호)〉을 공포하여 7월 1일부터 담배의 전매를 실시하였고, 1일에 〈칙령 제53호〉에 의해서 전매국을 신설하였다. 봉초(封草) 담뱃대에 넣어서 피울 수 있도록 잘게 썰어 봉지로 포장한 담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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