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년 남원향교(南原鄕校) 재임(齋任) 이호연(李瑚淵)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辛亥十二月 鄕校齋任李瑚淵崔遇泰等남원향교 재임 이호연 최우태 등 4인 鄕中 辛亥十二月 전북 남원시 [官印] 1개 6.5*4.5(장방형) 흑색 1개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1851년(철종 2) 12월에 남원향교(南原鄕校) 재임(齋任) 이호연(李瑚淵) 등 4명이 고을의 유생들에게 보낸 통문(通文). 1851년(철종 2) 12월에 남원향교(南原鄕校) 재임(齋任) 이호연(李瑚淵) 등 4명이 기지방(機池坊)에 사는 사인(士人) 박정환(朴正煥)과 그의 처 청풍김씨(淸風金氏)의 효열(孝烈)을 영읍(營邑)을 통해 조정에 알려 포양(褒揚)의 특전을 받을 수 있도록 널리 여론을 모아달라며 고을의 유생들에게 보낸 통문(通文)이다. 박정환은 관련문서에는 박인필(朴仁弼)로도 나오는데, 이는 박정환의 소자(小字)로, 같은 인물이다. 관련문서를 참고하여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밀양박씨(密陽朴氏) 강수공(江叟公)의 9대손인 박정환은 충효(忠孝)의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효심이 깊었다. 부친이 괴질에 걸려 여러 해 동안 앓다가 급기야 사경을 헤매자, 박정환은 백방으로 약을 구하는 한편, 밤낮으로 하늘에 기도를 올리며 자기를 대신 데려가라고 빌었다. 급기야는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 불에 구은 다음에 부친에게는 참새구이라고 속여서 드시게 하였다. 그러자 사경에 이르렀던 그의 부친이 점차 회복하게 되었다. 박정환의 나이 불과 17세였다. 모두가 하늘이 그의 효성에 감동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 그 달 모친이 괴질에 걸려 갑자기 사경을 헤매었는데, 박정환은 백방으로 약을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모친에게 마시게 하여 마침내 소생케 하였다. 박정환뿐만 아니라 그의 처 청풍김씨도 효열(孝烈)로 이름이 높아 여러 차례 지방 유림들이 포양(褒揚)을 청하는 상서를 관에 올리기도 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남원의 밀양박씨 문중에는 박정환이 박인필이라는 이름으로 작성했던 시권(試券)이 3장 전하고 있다. 문과에 급제하지 못했고, 생원 진사시에 합격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지만, 박정환이 효자일 뿐만 아니라 학문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인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