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김세풍(金世豊)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光緖二年月日 行縣監 幼學 金世豊 光緖二年月日 高山縣監 金世豊 전라북도 완주군 行縣監[着押] 1개(적색, 정방형), 周挾 字改印 고산 신평 경주김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문현주, 『조선시대 호구단자의 작성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08. HIKS_OD_F1002-01-000001 1876년(고종 13)에 유학 김세풍(金世豊)이 전라도(全羅道) 고산현(高山縣)에서 발급받은 준호구. 1876년(고종 13)에 전라도(全羅道) 고산현(高山縣) 현내면(縣內面) 신평리(新坪里) 제2통 제3호에 사는 당시 64세인 유학 김세풍(金世豊)이 고산현에서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이때 그는 처 동래정씨(東萊鄭氏, 47세), 아들 부부 및 손자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당시 아들의 이름은 상필(商弼, 26세)인데 이때 이름을 상현(商炫)으로 개명하였으며, 며느리는 전주최씨(全州崔氏,30세)이고, 손자는 대근(大根,11세)이다. 도망간 노비가 1명이 있었다. 한편 관련된 문서에 의하면 김세풍의 초명(初名)은 김관억(金寬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관억이 28세 때 작성한 호구단자에 따르면 당시 그는 전주부 봉상면 사거리에 살고 있었으며, 다섯 살 아래의 처 만경두씨(萬頃杜氏)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전주부에서 고산현으로 이거하였으며, 아내가 사망하였거나 이혼한 뒤에 재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호주가 살았던 고산현 현내면 신평리는 현재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