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5640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일 初一日 조금 따뜻해졌다. 稍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7일 初七日 폭우가 쏟아졌다. 雨大注。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8일 初八日 밤에 눈이 내렸다. 夜雪。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9일 初九日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2일 十二日 몹시 추웠다. 아침을 먹기 전에 주동(注洞)에서 종을 보내 돈을 재촉하였으므로 아침을 먹은 뒤에 1냥을 가져와서 자(子)에게 주고 왔다. 極寒。 朝前注洞送奴促錢, 故食後持一兩, 給子而來。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6일 初六日 눈이 내렸다. 雪。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0일 初十日 추웠다. 寒。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3일 十三日 또 몹시 추웠다. 又極寒。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1일 十一日 청파(靑坡)에 가서 권 서방(權書房)에게 1냥 3전 4푼의 채전(債錢, 남에게 빚을 진 돈)을 얻어 오는데 추웠다. 往靑坡, 得一兩三戔四分債錢於權書房而來寒。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2일(신해) 二十二日 辛亥 –중광대연무(重光大淵獻)-. 흐림. 상왕(上王)이 계묘년에 '식소구헌(式昭舊憲)' 네 글자를 써서 함경도(咸鏡道) 향약소(鄕約所)에 하사한 글을 살펴보았다.함경도는 곧 우리 가문이 터를 잡아 왕조를 일으킨 땅이다.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친히 향헌(鄕憲) 41조를 지었으며, 효령대군(孝寧大君)은 성지를 받들어 헌목(憲目) 56조를 기술했고, 세종대왕(世宗大王) 10년에는 다시 유향소(留鄕所)를 설치하여 절목(節目) 12조를 마련했으며, 정조(正祖) 21년에는 향약(鄕約) 윤음(綸音)을 반포하였으니, 아름답고 성대하도다.열성조(列聖朝)께서 근본을 돈독히 하고 세속을 교화하려는 지극한 뜻은 실로 만 대에 떳떳한 법이다. 금년에 친히 '식소구헌(式昭舊憲)' 네 글자를 써서 내림은 선대의 뜻을 밝히고 또한 사민(士民)을 면려(勉勵)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혹시 오래되면 폐단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증보해서 바로 잡는 것이 옳다. 장례원(掌隷院)으로 하여금 시의(時宜)를 참작해 절목(節目)을 만든 다음 간행하여 남북도(南北道) 관찰부(觀察府)에 반포하고 여러 군의 향교에 두어 춘추로 강마(講磨)하게 하여 공경히 옛 법을 지키도록 하라. 【重光大淵獻】。陰。奉審上王癸卯書。 '式昭舊憲'四字。 賜咸鏡道鄕約所。咸鏡道卽。 我家肇基龍興之地也。太祖高皇帝。 親製鄕憲四十一條。 孝寧大君奉旨述憲目五十六條。 世宗大王十年。 復設留鄕所。 磨鍊節目十二條。 正祖二十一年頒下鄕約綸音。猗歟盛矣。 列聖朝敦本化俗之至意。 寔是萬世常憲也。今年親書'式昭舊憲'四字以下。 式昭先旨。 亦勉勵士民者。 而其或久未必無弊。 今可以增補而矯救者。令掌隷院。 參酌時宜成給節目。 刊模頒下南北道觀察府。 使之置諸列郡鄕校。 春秋講磨。 欽守舊憲。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7일(을축) 七日 乙丑 -전몽적분약(旃蒙赤奮若)-. 흐림.일찍이 듣건대, 구산(龜山, 양시(楊時))이 명도(明道, 정호) 선생에게 배우다 떠나자, 명도가 이르기를 '우리 도가 남으로 가는 구나.[吾道南矣]'라고 하였다. 이제 두보의 〈소혜(蘇徯)에게 주다[贈蘇徯]〉라는 시를 보니, "이 사람이 몸을 빼서 왔으니, 어찌 우리 도가 동쪽으로 옮겨감이 아니겠는가?[斯人脫身來, 豈非吾道東?]"라는 구절은 정현(鄭玄)이 마융(馬融)에게서 배우고 하직하자, 마융이 "정 생이 지금 가니, 우리 도가 동으로 옮겨가는구나!"라고 했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록한다. 【旃蒙赤奮若】。陰。嘗聞龜山學於明道先生而去。 明道曰。 '吾道南矣'。今見杜子〈贈蘇徯詩〉曰。 "斯人脫身來。 豈非吾道東"之句。 引鄭玄學於馬融。 辭歸。 融曰。 "鄭生今去。 吾道東矣"之語也。故記之。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5일(계유) 十五日 癸酉 -소양작악(昭陽作噩)-. 흐리다 비. 동오재(東吾齋)로 돌아왔다.〈포은선생백양쌍계루시〉(圃隱先生白羊雙溪樓韻)시를 청하는 백양사 승려를 이제 보고서,(求詩今見白羊僧)붓 잡고 읊조려도 되지 않으니 부끄럽네.(把筆沉吟愧不能)청수(淸叟) 스님 누각 세우니 명성이 처음 중해지고,(淸叟起樓名始重)목은(牧隱) 선생 기문 지으시니 가치 도리어 더해졌다네.(牧翁作記價還增)풍광이 아득한 저문 산의 노을은 붉고,(烟光漂渺暮山紫)달그림자 배회하는 가을 물은 맑구나.(月影徘徊秋水澄)오래도록 인간세상을 향해 골몰한 일 많으니,(久向人間多汨事)구름 헤치고서 언제나 그대와 함께 오를거나?(披雲何日共君登) 【昭陽作噩】。陰而雨。還東吾齋。〈圃隱先生白羊雙溪樓韻〉求詩今見白羊僧。把筆沉吟愧不能.淸叟起樓名始重。牧翁作記價還增.烟光漂渺暮山紫。月影徘徊秋水澄.久向人間多汨事。披雲何日共君登.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1일(기묘) 二十一日 己卯 -도유단알(屠維單閼)-. 맑음. 태조대왕(太祖大王)이 포은선생(圃隱先生)을 쳐서 죽인 일에 대해 조정에서 시비를 분별하라고 하자, 신이 애오라지 답하였다.60)주나라에서는 백이의 청절을 포용해,(聖周容得伯夷淸)해치지 않고 수양산에서 굶어죽게 하였지.(餓死首陽不死兵)그러나 그날 선죽교에서는,61)(善竹橋過當日事)정 선생을 모신 이 아무도 없었네.(無人扶去鄭先生) 【屠維單閼】。陽。太祖大王加兵圃隱先生。 辨是非於廷。 臣聊以答之。聖周容得伯夷淸。餓死首陽不死兵.善竹橋過當日事。無人扶去鄭先生. 태조대왕(太祖大王)이 …… 답하였다 연안 이씨 가승보에 이석형(李石亨, 1415~1477)이 지은 시로 나온다. 세조 2년에 전라도관찰사로 있던 이석형(李石亨)이 익산을 순시하던 중 사육신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착잡한 심경을 중국 고사를 빌어 〈이녀죽(二女竹)과 대부송(大夫松))〉이라는 시 한 수를 지었는데, 이 시 때문에 이석형은 고변을 당하여 세조 앞에 끌려와서 국문을 받게 되었다. 세조는 "경은 정몽주가 고려에서는 어떤 사람이고 우리 조선에서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석형은 왕이 하문한 것을 시로써 올리겠다 하고 이 시로 답하였다 한다. 그러나 그날 선죽교에서는 1916년 3월 27일 일기에는 '善竹橋過當日事'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는 '善竹橋當日事'로 '過'자가 빠져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1901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처암공파계안(處庵公派稧案)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사회-조직/운영-계문서 辛丑十一月 日 辛丑十一月 日 1901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01년부터 1907년까지 작성된 부안 전주최씨 처암공파계안 1901년부터 1907년까지 작성된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 처암공파계안(處庵公派稧案)이다. 강신일(講信日)은 11월 1일이며 계금(稧金)의 출입을 기록한 것이다 처암공은 최계성(崔繼成)으로 최수손의 아들이며 문성공 최아(崔阿)의 8세손이다. 부안 옹정에서 출생하였으며 1507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옹정서원에 제향되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辛丑十一月 日處庵公派稧案處庵公派稧案辛丑十一月初十日講信時倂本利所捧文貳佰什兩貳戔內下記十二兩除實在錢㱏佰玖拾捌兩貳戔出利印火串里金應老錢四十五兩所山里崔子和錢四兩五戔杏山里金明先錢七兩五戔杏山里崔仁甫錢五十兩鳳頭山金贊中錢二十兩 保金興万堂直 金興萬錢四十兩山亭里裵正述錢十兩火串里崔敬先錢二十一兩二戔 保汝先光局鳳頭里林敬壽錢十五兩 保金興万白石里鄭自三錢六兩二戔 保仁南原--壬寅十一月初十日講信時所捧文倂本利貳佰玖拾柒兩參戔內五十二兩全州祭需錢條報給十九兩三戔六分以派下記出給八兩當日下記用合七十九兩三戔六分除之實在文貳佰拾柒兩玖戔肆分出利卽所山里崔自和錢六兩七戔五分杏山里金明先錢六兩二戔五分 代?先崔仁甫錢二十兩山亭里崔弘寬錢二兩山直里趙秀漢錢三十兩白石里鄭子三戔三十兩鳳頭山林京秀錢十兩金贊中錢十兩堂直金興万錢四十兩金興萬錢拾柒兩五戔火串里金應魯錢貳拾兩甕中里韓永壽錢貳拾伍兩四戔四分--癸卯十一月初十日講信時所捧文三百二十七兩二分內旧下記九十五兩七戔六分果門債派錢條十五兩果當日下記十兩合一百二十兩七戔六分除之則實在文二百六兩二戔六分出給卽後錄[此亦中六兩五戔三浦宅債錢備報則實在文一百九十九兩七戔六分出利印所山崔自和錢十兩二戔三分杏山許君日錢二十兩山丁里趙水漢錢三十兩白石里鄭子三錢四十五兩火串里金應老錢二十兩瓮中里韓永秀錢二十五兩又韓永秀錢四十五兩一戔六分--甲辰十一月十日講信時所捧文貳佰玖什玖兩二戔八分內當日下記五兩除之則實在文貳佰玖什肆兩參戔四分出利印所山崔子化錢十五兩三戔五分杏山許君日錢三十兩山丁里趙水漢錢三十兩白石里鄭子三錢六十七兩五戔火串里金應老錢二十兩瓮中里韓永水錢七十兩一戔五分元齋錢五兩五戔二分蓮洞門中錢六戔八分蓮洞甘洞宅錢四十五兩二戔二分″ 崔應圭錢十兩--乙巳十一月初十日講信時所捧文肆佰肆什壹兩伍戔壹分內白石鄭子三處一百一兩二戔五分代草家成文次捧又所山子化名下二十三兩三分內三兩上在二十兩三分蕩減當日下記五兩除之則實在文參佰拾伍兩貳戔參分出利印[此亦中杏山許君日名下四十五兩以宗會次捧則實貳佰柒拾兩貳戔參分又蓮洞門中利錢三戔?減給後山直里趙壽漢錢三十兩火串里金應老錢二十兩瓮中里韓永壽錢七十兩一戔六分元齋中錢九兩二戔八分蓮洞崔日瑞錢七十兩蓮洞門中錢十五兩崔德昶錢五十兩堂直伯萬母錢五兩五戔--丙午十一月初十日講信時所捧錢肆佰肆兩捌戔參分內當日下記五兩除之則實在文參佰玖拾捌兩捌戔參分出利印二戔五分縮此亦中錢一百二十九兩五戔正租柒石貿置富谷後錄山直里趙壽漢錢三十兩火串里金應老錢二十兩瓮中里韓永壽錢七十兩一戔六分蓮洞崔日瑞錢七十兩蓮洞門中錢九兩五戔元齋中錢十三兩九戔二分蓮洞崔德昶錢五十兩伯萬母堂直錢五兩五戔--丁未十一月初十日講信時所捧文肆佰參兩㱏戔三分內金應老名下拾兩減給韓永壽貳拾㱏兩捌分減給金氏齋債錢幷利㱏佰拾伍兩報給當日下記柒兩貳戔伍分除下處庵公派??丙午十一月講信???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91년 김희성(金希成)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辛卯式 行縣監 幼學 金希成 辛卯式 興陽縣監 金希成 전라남도 고흥군 行縣監[署押] 興陽縣監之印(적색, 정방형) / 周挾改印(흑색, 장방형) 고흥 봉동 김해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6-01-000632-01 1891년(고종 28)에 흥양현에서 김희성(金希成, 33세)에게 발급한 준호구(准戶口). 1891년(고종28)에 興陽縣에서 金希成(33)에게 발급한 准戶口. *주소: 古邑面 鳳桐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94년 이보응(李輔應)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光緖二十年月日 行縣令 李輔應 光緖二十年月日 金溝縣令 李輔應 전라북도 김제시 行縣令[着押] 1개(적색, 정방형), 周挾 字改印 금구 도장 전주이씨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문현주, 『조선시대 호구단자의 작성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학위논문, 2008. HIKS_OD_F1011-01-000001 1894년(고종 31)에 통훈대부전행양천현령 겸 남양진관병마절제도위 이보응(李輔應)이 금구현(金溝縣)에서 발급받은 준호구. 1894년(고종 31)에 금구현(金溝縣) 하서면(下西面) 제일도장리(第一都莊里) 제2호에 사는 당시 57세인 이보응(李輔應)이 금구현에서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이때 그는 홀아비로 있으면서, 동생 계응(桂應, 47세)과 제수 연안이씨(延安李氏, 32세), 그리고 아들 재욱(載彧, 33세), 며느리 의성김씨(義城金氏, 36세)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또한 2명의 노비 가운데 1명은 도망을 갔고 1명은 죽었다. 호주가 살았던 금구현 하서면 제일도장리는 현재 전라북도 김제시 도장동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94년 김희성(金希成)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甲午式 行縣監 幼學 金希成 甲午式 興陽縣監 金希成 전라남도 고흥군 行縣監[署押] 周挾改印(흑색, 장방형) 고흥 봉동 김해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6-01-000632-01 1894년(고종 31)에 흥양현에서 김희성(金希成, 36세)에게 발급한 준호구. 1894년(고종31)에 興陽縣에서 金希成(36)에게 발급한 准戶口. *주소: 古邑面 鳳桐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67년 김광명(金光明)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丁卯式 行縣監 通政大夫兼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金光明 丁卯式 興陽縣監 金光明 전라남도 고흥군 行縣監[印] 興陽縣監之印(적색, 정방형) / 周挾改印(흑색, 장방형) 고흥 봉동 김해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6-01-000632-01 1867년(고종 4)에 흥양현에서 김광명(金光明, 102세)에게 발급한 준호구. 1867년(고종4)에 興陽縣에서 金光明(102)에게 발급한 准戶口. *주소: 古邑面 鳳桐里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88년 김희성(金希成)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戊子式 行縣監 幼學 金希成 戊子式 興陽縣監 金希成 전라남도 고흥군 行縣監[署押] 興陽縣監之印(적색, 정방형) / 周挾改印(흑색, 장방형) 고흥 봉동 김해김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HIKS_OD_F1006-01-000632-01 1888년(고종 25)에 흥양현에서 김희성(金希成, 30세)에게 발급한 준호구. 1888년(고종25)에 興陽縣에서 金希成(30)에게 발급한 准戶口. *주소: 古邑面 鳳桐里

상세정보
56403건입니다.
/2821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