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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文爲回諭事三里居幼學朴仁弼以十七歲兒稟性眞孝之誠也其父以無何之疾數年呻吟長委枕席百藥無效漸至危劇矣去辛巳年十二月病勢蒼黃水不能下咽氣不能通脉至於死境豈不惘慘乎如此之時仁弼呼父惶級級是如可於斯之間欺其渾家割其右股稱其黃雀炙云而食其父矣自是以後有勿藥之慶而快蘇如初豈不歎賞哉如此孝行無愧於古人之孝豈可泯滅乎擧善懲惡晟世之美制也旌忠褒孝 國家之盛也玆以惟我坊員有溱論等訴故今月二十五日以入忕之意敬通于坊內各里一員式起選之地幸甚壬午四月二十三日 掌議金壽甲[着名] 色掌 韓敬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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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庚午年) 윤종호(尹宗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午二月三日 尹宗鎬 庚午二月三日 尹宗鎬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경오년(庚午年) 2월 3일 윤종호(尹宗鎬)가 보낸 서간(書簡). 경오년(庚午年) 2월 3일 윤종호(尹宗鎬)가 보낸 서간(書簡)이다. 서로 가깝고 반악(潘岳)과 양씨(楊氏)처럼 교분이 있어 두 집안이 봄바람 같은데 더구나 아껴주니 매우 감사하다며, 자신은 부모님을 모시고 그럭저럭 편안하다고 하였다. 옥 같은 상대방의 아들은 부러움을 사고 후의(厚意)로 보내준 물품은 자신에게는 사치스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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聲光已於密邇又此潘楊之睦始講其爲和煦便成兩家春風況尊寵賜者乎感荷沒量憑伏審夜禪重侍體度萬旺環堵普慶瞻昆戀德實非尋常弟省候粗寧但眷累無驚耳賢胤琳琅可愛令人健羨以筮福祿之綿綿也隨俗拘例挽之不得玉音鏘鏘尙在阿睹耳所送禮需何如是腆意也在渠爲侈兄之用俗若是之太甚耶회續后源源不示謹適禮庚午二月三日弟尹宗鎬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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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김상면(金相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辰元月小晦 金相勉 壬辰元月小晦 金相勉 남원 수지 죽산박씨가 남원 수지 죽산박씨가 1832년(순조 32) 1월 29일에 김상면(金相勉)이 보낸 서간(書簡). 1832년(순조 32) 1월 29일에 김상면(金相勉)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지난번 위장(慰狀)을 받고 이제야 답장한다며 안부를 묻고 자신은 일이 많아 대접을 못하여 무정하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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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 박인필(朴仁弼) 산지매매명문(山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전북 남원시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1835년(순조 35) 3월 13일에 박인필이 정속엽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받은 명문 1835년(순조 35) 3월 13일에 유학(幼學) 박인필(朴仁弼)이 정속엽(鄭速燁)으로부터 산지(山地)를 매입하면서 받은 명문(明文)이다. 정속엽은 안흘미동(鴈屹薇洞)에 선산이 있어서 여러 해 동안 수호해 왔으나, 지난 계미년 즉 1823년(순조 23)에 박인필이 친산(親山)을 이곳에 쓰기 위하여 선산의 좌우 용호(龍虎) 국내(局內)를 매입할 수 있도록 간절히 부탁하자 25냥을 받고 팔았다. 여기에 더하여 정속엽은 금년에 흉년이 들어 마침 살아갈 방도가 없던 터여서 선산 주룡(主龍)의 일맥(一脉)을 3냥을 받고 팔았다. 매매시 이곳과 관련된 전후 문서를 박인필에게 넘겨주었다. 정속엽은 이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만일 가까운 친척이 이의를 제기하여 시끄럽게 한다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할 때 증인으로는 유학 황상언(黃相彦)이, 보증인으로는 양진문(梁鎭文)이 참여하여 서명하였으며, 유학 오대연(吳大寅)이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당시 양진문은 상중(喪中)이었지만 문서에 서명하였다. 거래의 대상이 된 산지가 있는 안흘미동이 남원의 어느 곳에 해당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박인필이 이보다 훨씬 전인 1824년에 기지방(機池坊)의 미곡원(薇谷員)에 있는 산지를 매입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1824년 박인필(朴仁弼) 산지매매명문(山地賣買明文)" 참조) 기지방, 즉 오늘날의 남원시 금지면에 있었던 지역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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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五年乙未三月十三日幼學朴仁弼前明文右明文事段矣先山在於鴈屹薇洞而累年守護矣去癸未年日良中朴生員親山入葬而以同山所之意言及仍友乙不忍恝其言捧価貳拾五兩許賣左右龍虎局內是遣矣先山主龍但一脉禁養是加尼當此歲歉之后生活無路故先山但一脉亦爲折価參兩依數捧上是遣右前前後文記幷以永永放賣爲去乎日後段一草一木更勿侵漁紛紜之弊成文記爲遣日後若有三寸從行間爻象之章則持此文告 官卞正事山主 鄭速燁[着名]證人 幼學 黃相彦[着名]訂保 喪人 梁鎭文[着名]筆 幼學 吳大寅[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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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김남석(金南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正貳年三月八日 李己五 金南石 大正貳年三月八日 李己五 金南石 전북 남원시 [印] 3개 1.0*1.0 3개(적색, 원형), 1.2*0.8 2개(적색, 타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3년 3월 8일에 이기오(李己五)가 장수군(長水郡) 상번암면(上番岩面) 상북리(上北里)에 있는 논을 김남석(金南石)에게 팔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3년 3월 8일에 이기오(李己五)가 장수군(長水郡) 상번암면(上番岩面) 상북리(上北里)에 있는 논을 김남석(金南石)에게 팔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기오는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살아 왔던 상북리 치구평(峙舊坪) 38번지 논 3야미 1두락을 김남석에게 10원에 팔았다. 거래 당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었다.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매매 당시 매주(賣主) 이기오와 매수인 김남석 그리고 보증인(保証人)으로 조백규(趙伯奎) 등 3인이 참여하여 함께 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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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正二年四月七日 前明文右明文事自己買得畓屢年耕食是多可以要用所致伏在長水郡上番岩面上北里長峙坪宙宇四0畓六夜味一斗三升落結一負長尺坪宙字六二畓四夜味二升落結三束㐣價折錢文貳拾円依數交易捧上是遣右前以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此文憑考事大正貳年七月卄六日長水郡上番岩面上北里一統一戶賣主 金永西[印]長水郡上番岩面上北里一統七戶買主 金南石[印]長水郡上番岩面下北里三統四戶保證人 趙伯奎[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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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某年) 김창술(金昌述) 문기(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가사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가사매매명문 金昌述 등 金昌述 등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용현리에 있는 김창술(金昌述)과 송산리언(松山理彦) 소유의 가대(家垈)의 규모를 기록한 문기(文記) 용현리에 있는 김창술(金昌述)과 송산리언(松山理彦) 소유의 가대(家垈)의 규모를 기록한 문기(文記)이다. 가대의 매매를 위하여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용현리는 남원(南原)에 있는 지명으로 추정되지만,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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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정계봉(鄭季奉) 산지매매명문(山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전북 남원시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1808년(순조 8) 2월 13일에 정계동(鄭季東)이 노(奴) 얼손(旕孫)의 상전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받은 명문(明文) 1808년(순조 8) 2월 13일에 정계동(鄭季東)이 노(奴) 얼손(旕孫)의 상전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받은 명문(明文)이다. 정계동은 위 상전댁의 선대 유지 동편 기슭 길가 옆에 있는 분묘의 산지를 매입하고자 상전댁에 간청하였다. 정계동으로서는 망부(亡父)의 유언을 받들고자 한 것이어서 그만큼 절실하였다. 이에 상전댁은 사방의 경계를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북쪽으로는 횡로(橫路)를 마주하고, 동남쪽으로는 다른 사람이 쓴 두 개의 무덤 옆까지를 경계로 하며, 서쪽으로는 기슭의 반절을 경계로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네 곳 경계에 돌을 세우고 이랑을 만들어 표시한 다음에 10냥을 받고 매입자에게 산지를 넘겨주었다. 그러면서도 이후에는 부친의 무덤 외에 다시 이곳에 무덤을 쓰지 않겠다는 내용을 명문에 삽입하였다. 그러나 이 문서에는 거래된 산지의 구체적인 위치는 쓰여져 있지 않다. 아마 남원의 경내로 추정된다. 그리고 산주가 문서를 직접 작성하고 서명까지 하였지만, 성명은 기재하지 않았다. 대신 부리고 있는 종 얼손이 오른쪽 손가락을 그려 서명을 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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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二年戊辰二月十三日喪人鄭季東前明文右明文事段吾上典宅先代遺址東邊長麓橫路傍有居前墳墓是如今者依其亡父遺言請以小許買得其恳甚哀是乎所不得已强從其言捧価錢拾兩爲遣定界以給爲乎矣定界形址段北拒橫路東南距他人兩塚傍爲限西以麓半爲界皆以立石土坉割給爲乎旀雖爲買賣是乎乃日後切勿繼葬之意論理成文以給爲去乎如有彼此雜談是去等持此文卞正事山主自筆[着名]山主宅奴 旕孫[左一寸](背面)葬山文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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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유학(幼學) 소병렬(蘇柄烈) 방매(放賣)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十年丙午三月初十日 蘇柄烈 大韓光武十年丙午三月初十日 蘇柄烈 전북 남원시 [着押] 2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06년 3월 10일에 유학(幼學) 소병렬(蘇柄烈)이 가대(家垈)와 전답과 과목을 팔면서 작성한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 1906년 3월 10일에 유학(幼學) 소병렬(蘇柄烈)이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자신의 가대(家垈)와 전답과 과목을 팔면서 작성한 가대매매명문(家垈賣買明文)이다. 가대는 본체 3칸(間), 행랑체 1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답은 삼밭(麻田), 콩밭, 미나리밭의 일부, 봉자원(鳳字員) 4부(負) 등이며, 과목은 감나무(柹木) 1주, 뽕나무(桑木) 1주, 그리고 탄목(炭木) 1주로, 모두 합해서 55냥에 팔았다. 매매 당시 신구문기 2장을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관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거래 때 가대주 소병렬과 증인으로 유학 이문옥(李文玉)이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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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光武十年丙午三月初十日前明文右明文事段軆舍三間行廊一間累年居生是多可要用次麻田一片左田三片芹江一片柹木一株桑木一株炭木一株鳳字員卜數四負㐣價折錢文伍拾兩依數交易捧上是遣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異說則以此新舊文記二丈告官卞正事家垈主幼學 蘇柄烈[着押]證人幼學 李文玉[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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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김남석(金南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正二年四月七日 金永西 金南石 大正二年四月七日 金永西 金南石 전북 남원시 [印] 3개 1.0*1.0 3개(적색, 원형), 1.2*0.8 2개(적색, 타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3년 4월 7일에 김영서(金永西)가 장수군(長水郡) 상번암면(上番岩面) 상북리(上北里)에 있는 논을 김남석(金南石)에게 팔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3년 4월 7일에 김영서(金永西)가 장수군(長水郡) 상번암면(上番岩面) 상북리(上北里)에 있는 논을 김남석(金南石)에게 팔면서 함께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김영서는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농사지으며 먹고 살았던 상북리 치구평(峙舊坪) 40번지 논 6야미 1두락을 김남석에게 20원에 팔았다. 거래사유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라고 문서에 적고 있다. 거래 당시 신문기 1장을 매입자에게 건네주면서 나중에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매매 당시 논 주인 김영서와 매수인(買受人) 김남석 그리고 보증인(保証人)으로 조백규(趙伯奎) 등 3인이 함께 참여하여 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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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이원용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正六年丁巳陰二月二十五日 李元溶 大正六年丁巳陰二月二十五日 李元溶 전북 남원시 [印] 1개 1.3*1.3 1개(적색, 정방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7년 음력 2월 25일에 이원용(李元溶)이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寶節面) 황벌리(黃筏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7년 음력 2월 25일에 이원용(李元溶)이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寶節面) 황벌리(黃筏里)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원용은 긴히 돈을 쓸데가 있어서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았다. 매매의 대상이 된 토지는 두 곳이었다. 첫 번째 토지는 남원군 보절면 황벌리 구내 치동평(冶洞坪) 홍자원(洪字員) 12답(畓) 3두락지(斗落只)로 결수(結數)로는 6부(負)인 곳이다. 두 번째 토지는 홍자원(洪字員) 19(畓) 2두락지로 결수로는 2부 8속인 곳이다. 이 두 곳의 방매(放賣) 가격은 모두 280냥이다. 본 문서가 작성된 때는 일제 강점기지만 토지 면적을 표기하는 방법은 여전히 조선 시대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토지 면적은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결(結), 부(負,卜) 속(束) 등의 단위를 사용하였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두락지(斗落只), 승낙지(升落只) 등을 사용했다. 또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는 기일경(幾日耕) 등이 있다. 이 문서에는 파종량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기하였다. 매도인 이원용은 새로 작성한 문서를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문서의 끝에는 만일 뒷날 이 거래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거래참여자에 대한 사항은 문서의 맨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이원용과 증인(證人)으로 조기원(趙基元)이 참여하였다. 이원용만 도장을 찍었고 조기원은 서명이나 인장을 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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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정계동(鄭季東) 산지매매명문(山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전북 남원시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남원 금지 밀양박씨가 1810년(순조 10) 7월 초 10일에 정계봉이 노 돌금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받은 명문 1810년(순조 10) 7월 초10일에 정계봉(鄭季奉)이 상전을 대신하여 거래에 나선 노(奴) 돌금(乭金)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받은 명문이다. 돌금의 상전은 오랫동안 선산을 금양해 왔으나, 금년에 정계봉이 그 선산과 이웃해 있는 자신의 선산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산지 일부를 팔아달라고 간청하자 40냥을 받고 팔았다. 문서의 말미에 상전댁은 만일 이후에 이 거래를 두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상전을 대신하여 돌금이 서명하였으며, 증인으로 김인북(金仁北)이 참여하고 서명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직접 거래에 나서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흔히 자신의 노비에게 대신 거래를 하도록 위임장을 주었는데, 이를 패지(牌旨)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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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五年辛未七月初十日 鄭季奉 前明文右明文事段先山禁養之地累世守護矣當此今年右人山所近地乙禁養次累累恳乞故折価肆拾兩依肆交易捧上爲遣右處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雜談是去等以此文記告官卞正事山地主上典房 奴乭金[着名]訂人 金仁北[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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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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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大正六年丁巳陰二月二十五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買得畓伏在南原郡寶節面黃筏里區內冶洞坪洪字員一二畓三斗只結六負果同字員一九畓二斗只結二負八束㐣價折錢文貳佰八拾兩依數交易捧上遣等右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異說則文記一張憑考事畓主 李元溶[印]證人 趙基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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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교면(敎冕)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노비매매명문 光武七年癸卯六月十七日 敎冕 從叔 光武七年癸卯六月十七日 敎冕 從叔 전북 남원시 喪不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03년 6월 17일에 종질 교면(敎冕)이 가난한 종숙(從叔)에게 계집종 남섬(南蟾)을 보내면서 작성한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1903년 6월 17일에 종질 교면(敎冕)이 가난한 종숙(從叔)에게 계집종 남섬(南蟾)을 보내면서 작성한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이다. 조카가 부모의 형제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오랫동안 가난하게 살아왔던 종숙에게 노비를 선물로 보냈다. 비록 값을 받지는 않았지만 명문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노비 양여에 따라 나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논란을 차단하려고 한 것이다. 당시 계집종은 계사생(癸巳生)이었으므로 11세의 어린아이였다. 문서를 작성할 때 종질 교만은 상중(喪中)이어서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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