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 임성모(任性模) 준호구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咸豊伍年乙卯月日 行縣監 幼學 任性模 咸豊伍年乙卯月日 南平縣監 任性模 行縣監[着押] 周挾無改印(흑색), 1顆 나주 풍천임씨 명고(임전)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豐川任氏世譜』 中編 一, 五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한국지명총람』 14 –전남편-, 한글학회, 1984. 1855년 남평현(南平縣) 어천면(魚川面) 신촌(新村) 제3통에 사는 유학(幼學) 임성모(任性模) 준호구 1855년(철종6) 남평현(南平縣) 어천면(魚川面) 신촌(新村) 제3통에 사는 유학(幼學) 임성모(任性模)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임성모는 이름을 홍모(鴻模)로 개명하였으며 당시 나이는 50세이고,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부친은 성균생원(成均生員) 임태규(任泰奎), 생부(生父)는 학생(學生) 임태희(任泰希)이고, 조부는 학생 임상욱(任相郁)이며, 증조부는 학생 은(溵)이다. 외조부는 학생 김두현(金斗鎭)으로 본관은 금성(錦城)이다. 가족으로는 부인 곽씨(郭氏)와 9살 어린 아들 헌식(憲軾)이 기재되어 있다. 처 곽씨의 나이는 46세이며, 본관은 해미(海美)이다. 문서에 기재된 노비는 총 3口로 계집종 가덕(加德, 76세), 사내종 귀철(貴哲, 42세), 계집종 도덕이(道德伊, 76)인데, 도덕이는 영광으로 도망갔다고 기재하였다. 문서 왼쪽 상단에는 남평현의 착압(着押)이 보이고, 문서 중앙에는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노비가 기재된 좌측 하단에 남평현인(南平縣印)이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