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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병오) 二十九日 丙午 -유조돈장(柔兆敦牂)-. 흐리고 비. 【柔兆敦牂】。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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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갑신) 十七日 甲申 맑음. 하서선생(河西先生)이 경범(景范)51)과 중명(仲明)52)에게 준 시를 기록한다.정통과 편색으로 사람과 물이 나뉘고,(正通偏塞分人物)청수하면 현인이 되고 탁박하면 우인이 된다네.(淸粹爲賢濁駁愚)천리도 기질에 구애됨이 없을 수 없으니,(天理不無拘氣質)인심은 이를 따라 형구의 누가 된다네.(人心從此累形軀)온갖 사특함이 함께 온전히 밝은 본체를 가리지만,(羣邪共蔽全明體)한번 깨우치면 옛 더러움을 새롭게 할 수 있네.(一覺能新舊染汚)샘이 흐르고 불이 타듯이 내면을 길러가면,(泉達火燃充養去)이치는 밝아지고 마음은 전일해져 순의 무리 되리라.(理明心一舜爲徒) 陽。記河西先生示景范仲明詩。正通偏塞分人物。淸粹爲賢濁駁愚.天理不無拘氣質。人心從此累形軀.羣邪共蔽全明體。一覺能新舊染汚.泉達火燃充養去。理明心一舜爲徒. 경범(景范) 조희문(趙希文, 1527~1578)의 자이다. 조희문의 호는 월계(月溪),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김인후(金麟厚)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556년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성균관 전적(典籍)·사예(司藝)·사성, 사헌부장령·사간원헌납·이조좌랑, 홍문관수찬·교리, 장흥부사(長興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당시 기대승(奇大升)·정철(鄭澈)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으로 ≪월계유집≫을 남겼다. 중명(仲明) 양자징(梁子徵, 1523~1594)의 자이다. 양자징의 호는 고암(鼓巖)이고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담양에 소쇄원(瀟灑園)을 창건한 양산보(梁山甫)의 아들이며, 김인후(金麟厚)의 문인이자 사위이다. 효행(孝行)으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랐으며, 거창현감(居昌縣監)과 석성현감(石城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은진의 갈산사(葛山祠)와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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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임자) 十五日 壬子 맑음. 몸이 조금 아팠기[採薪之憂] 때문에 한가하게 ≪미암선생유고(眉岩先生遺稿)≫를 보았다.그가 지은 〈정심명(正心銘)〉을 기록했다.〈정심명〉(正心銘)이 마음을 보존하여 기르기를,(存養此心)거울의 투명과 저울의 공평같이 하며,(鑑空衡平)물(物)이 오거든 순히 응하여,(物來順應)정대하고 광명하게 하라.(正大光明)또 '덕(德)'자의 해석을 기록했다. "주상께서 이르기를, '경이 만든 ≪대학석소(大學釋疏)≫나 ≪신증유합(新增類合)≫은 모두 정밀하고 심오하오. 다만 ≪유합≫의 글자풀이에 가끔 사투리를 썼고, 또 간혹 온당치 못한 곳도 있었소. 예컨대 '덕(德)' 자를 '어질 덕'이라 했는데 덕은 흉함도 있고 길함도 있으니, 어찌 선(善)으로만 풀이할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신 (유희춘)이 대답하기를, "사투리는 신이 본래 외방 고을[해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덕이란 글자는 원래 좋은 글자입니다. 다만 부덕(否德)이나 흉덕(凶德)처럼 좋지 않은 글자를 덕 자 위에 덧붙임으로써 불길하게 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陽。有因採薪之憂。 閒看 ≪眉岩先生遺稿≫。記其所作〈正心銘〉。〈正心銘〉存養此心。鑑空衡平。物來順應。正大光明.記德字釋。"上曰 '卿所修 ≪大學釋疏≫及 ≪類合≫。 皆精深。但 ≪類合≫。 釋字間有使土俚。 又或有未穩處。如德字釋어딜덕。 德有匈有吉。 豈可專以善釋之?' 臣曰 '土俚則臣本外方鄕産。 故實不免有之。若德字。 則元是好字。只有否德匈德。 加不好之字於德上。 故爲不吉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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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정묘) 三十日 丁卯 갬. 이날은 지기(知己)인 송혁모(宋赫謨)씨의 생일이다. 그 아들 송환준(宋煥俊)이 직접 주찬(酒饌)을 갖춰 나를 초대했다. 내가 가서 실컷 먹고 취하여 〈주광가(酒狂歌)〉를 불렀다.아름답고 효성스럽도다! 송환준이여,(美哉孝哉宋煥俊)나의 마음의 회포를 일으키는구나.(起余心之所懷)애통하고 슬프도다! 김영찬이여,(痛哉哀哉金永粲)이 가일(佳日, 회갑일)에 미치지 못한 것이 한스럽구나.(恨未及於此佳)아아, 슬프도다!()운수가 맞지 않아 불행한 것인가?(數奇之不幸歟)나의 사사로운 뜻을 이기지 못한 것인가?(己私之未克歟)아아, 애통하도다!(嗚呼痛哉)우리 부모 나를 낳고 길러주시니,(吾父母生我劬勞)그 정상을 어찌 다 할 수가 있겠는가?(情狀何旣)효양을 잃어 후회해도 소용 없으니,(失孝養追莫及)부모를 현양하는 것을 잘 마칠 것이로다.(以顯父母是爲終)입신양명(立身揚名)을 무엇인들 하지 않을 것이며,(立身揚名何莫爲)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기에 무엇인들 하지 않을 것인가?(堯舜其君何莫爲) 晴。是日卽知己之友。 宋赫謨氏生辰也。其令尹煥俊。 爲親具酒饌。 聊以招余。余往醉飽。 發〈酒狂歌〉。美哉孝哉宋煥俊。起余心之所懷.痛哉哀哉金永粲。恨未及於此佳.嗚呼痛哉。數奇之不幸歟.己私之未克歟.嗚呼痛哉.吾父母生我劬勞。情狀何旣.失孝養追莫及。以顯父母是爲終.立身揚名何莫爲。堯舜其君何莫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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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매월당집》에 있는 시를 적다.〈무도〉1) (舞蹈)이미 정밀하게2) 의리를 궁구하며,((旣精)究義理)내 덕성을 함양하고,(涵養吾德性)오래오래 스스로 젖어들며,(久久自浹洽)동정(動靜)에 항상 경(敬)을 위주로 하네.(動靜常主敬)환연(渙然)3)히 얼음이 볕에 풀어지듯,(渙然氷釋陽)이연(怡然)4)히 이치가 순정(順正)해지고,(怡然理順正)흔연히 생의(生意)가 있어서,(欣然有生意)온몸이 내 명령을 따르리라.(百體從吾令)이 같은 일을 어찌 그만두겠는가?(若此惡可已)자연히 노래와 시가 되고,(自然形歌詠)자기도 모르게 춤추고 발을 구르며, (不知舞且蹈)대화(大化)의 성인과 함께 돌아가리.(同歸大化聖) 《梅月堂集》文詩。〈舞蹈〉(旣精)究義理。涵養吾德性。久久自浹洽。動靜常主敬。渙然氷釋陽。怡然理順正。欣然有生意。百體從吾令。若此惡可已。自然形歌詠。不知舞且蹈。同歸大化聖。 《매월당시집(梅月堂詩集)》 권13 〈무도(舞蹈)〉에 수록되어 있다. 《매월당시집》의 원문에는 들어있으나, 김영찬의 일기에는 글자가 빠져 있어 추가하였다. 환연(渙然) 얼음 같은 것이 풀리는 모양을 말한다. 이연(怡然) 즐겁고 기쁜 모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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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갑인) 二十三日 甲寅 흐림. 밤에 가랑비가 내렸다. ≪향음주례홀기고증(鄕飮酒禮笏記考證)≫111)을 보고 의심나는 글자를 기록한다. 계(戒)는 고(告)이다. 개(介)의 음은 계(界)이다. 일치(一觶)는 작(爵)의 큰 것으로 4승(四升)을 받는다. 영(榮)은 집의 처마이다. 조(阼)는 동쪽 계단이다. 진(陳)은 당도(堂塗)112)이다. 구(胊)는 가운데를 접은 포(脯)이다. 노(臑)는 비절(臂節)이다. 후(後)는 질골(腟骨)이다. 엽(厭)의 음은 엽(葉)이다. 손을 미는 것을 읍(揖)이라 하고 안으로 당기는 것을 엽(厭)이라 한다. 의(疑)는 음이 얼(臬)이니, 바르게 서서 스스로 안정한 모양이다. 쵀(啐)는 음이 채(蔡)인데 뜻은 상(甞)이다. 陰。夜小雨。看 ≪鄕飮酒禮笏記考證≫。 記疑難字。戒告也。介音界。一觶爵之大受四升。榮屋翼也。阼東階也。陳堂塗也。眗中屈脯也。臑臂節也。後眰骨也。厭音葉。推手曰揖。引手曰厭。疑音臬。正立自定之貌。啐音蔡甞也。僎音遵。 遵法而助主人者。 ≪향음주례홀기고증(鄕飮酒禮笏記考證)≫ 이준(李埈, 1812~1853)이 향음주례에 대한 〈홀기(笏記)〉들을 모아, ≪의례≫의 〈사관례(士冠禮)〉・〈향사례(鄕射禮)〉・〈대기(戴記)〉 등을 참고하여 주석과 해석을 덧붙인 책이다. 당도(堂塗) ≪이아(爾雅)≫에 "진(陳)은 당도(堂塗)이다"라고 했는데, 당도는 당 아래에서 당의 문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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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계묘) 十四日 癸卯 갬. 근래 눈이 강산에 가득히 내리고 추위가 매서우니, 문 닫고 홀로 앉아 서적을 열람하다가 석년(昔年)에 지은 〈대학암(大學岩)〉122) 시가 있는 것을 보고 기록한다.일개 산에 대학암이 생긴 까닭 들어보니(聞一山巖所以然)아름다운 이름 없어지지 않아 운무가 의지하네(佳名不泯倚雲烟)선생의 심학은 천년을 밝혔으며(先生心學明千載)증자의 대학 종지를 전한지 또 몇 년이었던가(曾氏傳宗又幾年)우뚝 빼어남이 인의(仁義)의 바위와 같으니(驀地秀如仁義石)훗날에는 남전(藍田)의 옥123)으로 만들리라(後來做得玉藍田)누가 능히 이곳에 살며 작은 공효라도 바랄까(孰能棲此冀微效)머리 돌려 가슴에 새기며 잠 이루지 못하네(回首服膺也未眠) 晴。近日。 雪滿江山。 寒威甚嚴。 閉門獨坐。 看閱書籍。 見昔年所著〈大學岩〉韻。 記之。聞一山巖所以然。 佳名不泯倚雲烟。 先生心學明千載。 曾氏傳宗又幾年。 驀地秀如仁義石。 後來做得玉藍田。 孰能棲此冀微效。 回首服膺也未眠。 대학암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의 훈몽재(訓蒙齋)에 있는 바위 이름이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1548년에 순창 점암촌에서 기거하면서 세운 강학당 앞 물가에 이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송강 정철 등이 대학을 공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남전(藍田)의 옥 남전은 중국에서 좋은 옥(玉)이 생산되기로 이름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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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임진) 初一日 壬辰 -현익집서(玄黓執徐)- 날씨 갬. 혹자가 도(道)를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물었다. (내가) 답하여 말하길, "선유(先儒)가 말씀하기를, '가르치는 것 또한 많은 방법이 있다'고 하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가르침은 등급을 뛰어넘어서는 안 되는 것이므로, 순서를 따라 점차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을 바탕으로 해서 이끌어주고 곁에서 격려하며 점차 연마하고 성취하도록 하고, 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을 확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玄黓執徐】。晴。或問敎道。答曰。 "先儒曰。 '敎亦多術。' 竊想。 敎不可躐等。 卽循序漸進。 而因其固有而導之。 誘掖激勵。 漸摩成就。 擴充其仁義禮智之性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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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갑진) 二十七日 甲辰 -알봉집서(閼逢執徐)-. 맑음. 【閼逢執徐】。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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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갑진) 二十四日 甲辰 맑음. 아침노을[朝霞]이 졌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풍년의 징조로 여겼다.〈퇴고사단이기변(四端理氣辨)〉삼십구판(三十九板)을 보았다. 퇴계선생의 말에 "이기(理氣)를 겸하고 선악이 있는 것은 비단 정(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性)도 그러하다. 어찌 이것을 가지고 나눌 수 없다는 증거로 삼을 수 있겠는가?" -이(理)가 기(氣) 가운데 있다는 것으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성(性)도 그러하다고 말한 것이다.- 라고 했는데 의심이 있어 기록한다. -아마도 이것은 정자가 말한 "악도 또한 성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惡亦不可不謂之性也]"104)를 가리킨 듯하다. 그러나 온전히 기질지성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陽。朝霞。 時人以爲有年之徵。看〈退高四端理氣辨〉三十九板。退溪先生之言曰。 "兼理氣有善惡。 非但情爾。 性亦然矣。安得以是爲不可分之驗耶?"【從理在氣中處言。 故性亦然矣。】有疑故記之。【恐指是程子曰。 '惡亦不可不謂之性也'哉。然而抑非全指氣質之性也。】 악(惡)도 …… 없다 이 말은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 보인다. 정호(程顥)가 이르기를, "낳는 것을 성(性)이라고 이르니, 성(性)은 바로 기(氣)이고 기(氣)는 바로 성(性)이라는 것은 생(生)을 이른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 받은 기품(氣稟)은 이치상 선악이 있기 마련이나 성(性) 가운데에 원래 이 두 물건이 상대하여 나온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선한 사람이 있고 어릴 때부터 악한 사람이 있으니, 이는 기품에 그러함이 있어서이다. 선(善)은 진실로 성(性)이지만, 악(惡)도 성(性)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生之謂性, 性卽氣氣卽性, 生之謂也. 人生氣稟, 理有善惡, 然不是性中元有此兩物相對而生也. 有自幼而善, 自幼而惡, 是氣稟有然也. 善固性也, 然惡亦不可不謂之性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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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계축) 四日 癸丑 맑음. 바람은 남북방향으로 불고, 구름은 건술(乾戌)105)방향이다. 陽。風南北。 雲乾戌。 건술(乾戌) 건술방(乾戌方)은 서쪽에서 북으로 30도~45도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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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기유) 三日 己酉 흐리고 비. 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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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신해) 五日 辛亥 -중광대연헌(重光大淵獻)-. 흐림. 잠깐 맑다 잠깐 비가 왔다. 【重光大淵獻】。陰。乍晴乍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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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六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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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무신) 二日 戊申 -저옹군탄(著雍涒灘)-. 흐리고 비. 【著雍涒灘】。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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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계사) 十五日 癸巳 맑음. 집에 돌아왔다. 오늘 밤에 월식이 있었는데 손자가 묻길, "어떤 것이 달을 먹나요?"라고 하기에 내가 응답하길, "해가 그것을 먹는단다."라고 했다. 손자가 "그렇다면 달도 해를 먹나요?"라고 물어서 내가 "그렇단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손녀가 옆에 있다가 묻길, "그렇다면 천옹(天翁)은 왜 그렇게 못하도록 하지 않나요?"라고 물어서 내가 응답하길, "끝내는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주었다. 陽。還巢。是夜月蝕。 孫兒問。 "何者食月?" 余應之曰。 "日以食之。" 孫曰。 "然則月亦食日?" 余答曰。 "然。" 孫女在傍問之曰。 "然則天翁何不敎以不然?" 余應之。 "終使之不然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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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무신) 十一日 戊申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어버이에게 감사하는 정과 송구한 마음에 종일토록 경황없이 보냈다. ≪염락(濂洛)≫을 보다가 '학사 장역(張繹)59) 사숙(思叔)이 이천선생(伊川先生)을 제사한 글'에 이르렀는데, 그 속에 "천지가 우리를 용납함에 부모가 그것을 생겨나게 하셨고, 군친(君親)이 우리에게 임하심에 부자께서 그것을 이루게 하셨네."라는 말이 있어서 기록하였다. 卽吾生日也。感親之情。 悚惕之心。 終日無況而過。看 ≪濂洛≫。 至 '張學士繹思叔祭伊川先生文'中有曰。 '天地其容我兮。 父母其生之。君親其臨我兮。 夫子其成之'語。 而記之。 장역(張繹) 자는 사숙(思叔)이며, 하남성(河南省) 수안(壽安) 사람이다. 정이(程頤)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윤돈(尹焞)과 함께 정이가 만년에 얻은 두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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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병신) 二十九日 丙申 흐림. 잠깐 비가 내렸다. 삼가 연계정에 차운하여 짓다.한 구역의 명승지에 옛날부터 정자 있어,(一區名勝古今亭)연계정이라 거듭 편액하니 늙은 버들 푸르구나.(重扁漣溪老柳靑)반 이랑 연못에 맑은 물이 은근하고,(慇懃半畝塘淸水)중추에 뜬 달은 뜰에 가득 쇄락하네.(洒落仲秋月滿庭)의를 강명하는 유자들의 말은 옥과 같고,(講義斯文言似玉)정을 펴는 모임에서의 고깔은 별처럼 빛나네.(輸情契社弁如星)선생의 성대한 덕 잊기 어려운 곳에서,(先生盛德難忘地)후세에는 다시 누가 경서 안고 올까?(來者復爲孰抱經) 陰。乍雨。謹題漣溪亭韻。一區名勝古今亭。重扁漣溪老柳靑.慇懃半畝塘淸水。洒落仲秋月滿庭.講義斯文言似玉。輸情契社弁如星.先生盛德難忘地。來者復爲孰抱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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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무술)57) 初一日 戊戌 맑음. 집으로 돌아 왔다. 陽。歸巢。 8월 앞에 7월이 있고 뒤에 9월이 있으므로 8월인데, 원문에는 7월로 잘못 기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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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정미) 十日 丁未 석전일(釋奠日)이다. 흐림. ≪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을 보았다. 선생의 '서시학자(書示學者)'를 보고 기록한다.선생이 말하기를 "주렴계의 〈도설(圖說)〉은 도리가 정미하고 문장이 간략하며 뜻이 충분하다. 장자(張子, 장횡거)의 〈서명(西銘)〉58)은 규모가 광활하지만 건너뛰지도 않고 빠뜨리지도 않았다. 만일 타고난 천품이 대단히 고명하다면 먼저 태극 위에서 공부해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또 ≪서명≫을 깨달아 앎으로써 태극에 미쳐야 한다. 태극은 덕성의 본령이고, 〈서명〉은 학문의 기강이니, 요컨대 끝내 어느 한쪽을 폐할 수 없다."라고 했다.또 시를 지어 걸어두고서 문인들에게 보였으니, "천지 사이에 두 사람이 있으니, 중니(仲尼)가 원기(元氣)라면 자양(紫陽)은 진수일세. 잠심하여 다른 갈래의 미혹에 향하지 않음으로서 이 쇠퇴하고 병든 몸을 위로할지어다."라고 하였다.선생은 대개 '서계(書契, 문자)가 생긴 이래로 여러 성인이 극(極, 표준)을 세웠지만, 그것이 쇠퇴함에 이르러서는 공자가 없었다면 여러 성인의 도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고, 공자 이후에는 여러 현인이 계승해갔지만, 어두짐에 이르러서는 주자가 없었다면 공자의 도가 밝아지지 못했을 것이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처럼 시에서 드러낸 것이다. 釋奠日也。陰。看 ≪河西先生集≫。 見先生書示學者。 記之。先生曰。 "濂溪之圖說。 道理精微。 文簡意足。張子之銘。 規模廣闊。 不泛不漏。若天資大段高明。 則先從太極上用工。不然則且理會〈西銘〉。 以及乎太極。太極德性之本領。〈西銘〉學問之綱紀。 要之終不可偏廢云云。" 又作詩揭示門人。 "天地中間有二人。 仲尼元氣紫陽眞。潛心勿向他歧惑。 慰此摧頹一病身。" 先生蓋以'書契以來。 群聖立極。 而及其衰也。 無孔子則群聖之道不傳。孔子以後。 群賢繼統。 而及其晦也。 無朱子則孔子之道不明'。 故發諸詞詩。 서명(西銘) 장횡거가 서재의 서쪽 창문가에 써서 걸어 놓은 글 이름으로, 인의(仁義)에 입각한 유가의 윤리설을 요약해서 서술한 것인데, 주희가 별도로 주를 달아 해설하면서부터 세상에 크게 유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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