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최병욱(崔炳郁) 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癸丑八月四日 崔炳郁 崔光煥 宋子大全重刊之役(所) 癸丑八月四日 1913 崔炳郁 崔光煥 宋子大全重刊之役所 1.3*1.3(원형) 2개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13년 8월에 최병욱과 최광환이 ?송자대전?의 중간을 추진하는 곳에 보낸 서간. 1913년 8월 4일에 부안(扶安)에 사는 최병욱(崔炳郁)과 최광환(崔光煥)이 전주최씨(全州崔氏) 문중을 대표하여 ?송자대전(宋子大全)?의 중간(重刊)을 추진하는 곳에 보낸 서간이다. 사문(師門)의 대사(大事)인 ?송자대전?의 중간(重刊)에 즈음하여 그냥 있을 수 없다면서 문중에서 협의한 뒤에 종이 3 박스를 보내겠다고 하였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집은 여러 차례 간행된 바 있다. 송시열 사후 수제자인 권상하(權尙夏)의 주도로 송시열이 생전에 남긴 글을 묶어 문집을 편찬하였다. 1694년경(숙종 20) 초본(草本)이 완성되었으나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이유로 간행이 미루어졌다. 이때 남겨진 필사본인 초본 40책이 『우암유고(尤庵遺稿)』라는 서명으로 전하는데, 이를 황강본(黃江本)이라고 한다. 권상하의 활동무대가 주로 황강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1717년(숙종 43)에는 민진후(閔鎭厚)의 건의에 따라 왕명(王命)으로 167권 63책의 『우암선생문집(尤菴先生文集)』이 교서관(校書館)에서 철활자(鐵活字)로 간행되었다. 본집과 별집 9권을 포함하여 167권이었고, 뒤에 간행한 『경례문답 經禮問答』을 합하여 191권이 되었으며, 나중에 부록 및 1732년(영조 8)에 연보 5권이 간행되었다. 교서관본은 일명 운관본(芸館本)이라고도 하는데, 대체로 송나라 장식(張栻)의 문집인 『남헌집(南軒集)』의 범례를 따른 것이다. 1787년(정조 11) 『송자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총 236권 102책의 방대한 분량의 문집이 간행되었다. 일반적으로 저자의 호를 제명(題名)으로 삼는 것과 달리 '송자(宋子)'라는 명칭을 붙인 것은 송시열이 '주자(朱子)'에 버금가는 스승임을 나타낸 것이며, '문집'이라고 칭하지 않고 '대전(大全)'이라 칭한 것 역시 주자의 문집인 '주자대전(朱子大全)'과 비견된다는 뜻이다. 이 판본은 평안 감영에서 각인되었는데, 이 때문에 기영본(箕營本)이라고도 한다. 이것이 1907년(순종 1)에 병화로 소실되자, 1929년 후손과 지방 유림들의 협력으로 대전 가양동 소재 남간정사(南澗精舍)에서 대전(大全)의 중간(重刊)이 이루어졌다. 그 뒤 1977년에 이르러 다시 한번 영인, 반포되었다. 최병욱 등이 서간에서 언급한 ?송자대전?은 아마 1929년 남간정사에 중간된 책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