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기관별 검색

검색 범위 지정 후 검색어를 넣지 않고 검색버튼을 클릭하면 분류 내 전체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으로 검색된 결과 84193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領收證第五○七號 昭和十六年度 農會費 地主 邑面 新波里 閔丙淑 代理人 邑面 里 納一金 參拾錢也 (會員割)一金 四拾參錢也 (地稅割)計 金 ,七三右 領收候也昭和 年 月 日南原郡農會 邑面分區取扱者注意一 期限內納付セラルベシ(할)事二 期限經過セバ(하면)過怠金ヲ(을)賦課ス(함)三 過怠金賦課納入告知書ヲ(을)受ク(하고도)尙完納セサルトニキハ(치아니한時는)財産押差ノ(의)處分ヲ(을)爲スベシ(홈)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領收證一金四拾五圓也右ᄂᆞᆫ南原郡宝節面之元波洞里也字家垈価로正正領收함大正十一年十一月十九日領受人 金泰産[印][印]保証人 梁正鎬[印]梁寅洙殿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41년 이교정(李敎政) 등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寶節面) 지세(地稅)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昭和十六年 月 日 南原郡巳梅面會計員 崔本成海 李敎政外一人 昭和十六年 月 日 南原郡巳梅面會計員 崔本成海 전북 남원시 1.2*1.2 2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41년에 이교정(李敎政) 외 1인이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寶節面)에 지세(地稅)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領收證). 1941년에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寶節面) 신파리(新波里)에 사는 이교정(李敎政) 외 1인이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寶節面)에 지세(地稅)를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領收證)이다. 이교정(李敎政) 외 1인은 1941년도 1기분 지세(地稅)(국세(國稅))로 1원 3전, 지세 부가세(도세(道稅))로 79전, 지세부가세(면세(面稅))로 74전 등 모두 2원 56전을 납부하였다. 당시 보절면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한 회계원은 이본광기(李本光器)로, 일제의 이른바 창씨개명(創氏改名) 때문에 성씨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지세는 조선왕조 때에도 국가 세입의 상당부분을 차지했으며,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주세 수입의 원천이었다. 일제는 지세의 원천인 토지제도의 정리에 심혈을 기울여, 1912년부터 토지소유권을 명확히 규정한다는 명분으로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였으며, 1914년 '지세령'을 공포해 세율을 인상했다. 1918년에 토지조사사업이 종결됨에 따라 토지대장 및 지적도가 정비되자 지세령을 개정하여 과세표준과 세율을 개정하는 등 세 단계를 거쳐 조세제도를 구축해 나갔다. 제1단계는 과세대장에서 누락되어 있던 탈세자를 탖아내 과세대상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1905년 등록된 토지면적이 약 96만결이던 것이 1910년말에는 약 102만결로 늘었다. 특히 오랫동안 지역토호들에 의해 자행되어온 은결(隱結) 등 지세 부과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토지들에 대한 과세를 정비하자 세수가 크게 늘었다. 그러 그 과정에서 농민들의 상당수는 가지고 있던 전답의 소유권을 박탈당하였다. 제2단계는 1914년 3월에 지세의 부과, 면세 및 징수에 관한 기본법인 지세령 및 시가지세령을 제정 공포한 것이었다. 지세령의 개정으로 세율이 크게 오르자 세수도 크게 늘었다. 예컨대 1913년도 지세수입이 647만원이던 것이 1914년에는 945만원으로 47.4%나 증가하였다. 제3단계는 토지조사사업을 완료하고 1918년 세제 정리를 통해 지세에 대한 과세율을 개정한 것이었다. 종래의 과세면적 단위인 '결(結)' 제도를 폐지하고 토지 수익에 기초하여 토지대장에 등록된 '지가(地價)'를 과세표준으로 한 것이다. 이것은 물납제에서 금납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18년 토지조사사업이 모두 마무리되면서 1920년에는 지세 수입이 1910년에 비해 2배 가량 증가했다. 당시 총 조세 수입 가운데 지세가 25%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으며 일제의 조세수입은 연평균 15.9%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일제는 이렇게 확보된 지세 수입을 통해 총독부의 예산을 확충해 식민지 지배의 기반을 강화할 수 있었다. 때문에 많은 우리 농민들은 지주에게 유리한 기한부계약제 소작농 혹은 화전민으로 전락하거나 만주·연해주·일본 등지로 이주했다.(이재은, ?일제강점기 조선지방재정사 연구?, 한국지방세연구원, 2015.)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19년 정원백(丁元白)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八年 賣渡人丁昌斗父丁元白 大正八年 丁元白 전북 남원시 [印] 1.0*1.0 1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9년 음력 11월 18일 정원백(丁元白)이 작성해 준 영수증(領收證)이다. 1919년 음력 11월 18일 정원백(丁元白)이 작성해 준 영수증(領收證)이다. 전북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宝節面) 도룡리(道龍里) 488번지에 있는 전(田) 477평(坪)과 남원군 보절면 도룡리에 석침(石砧) 1개의 값으로 받았다는 내용이다. 석침이란 다듬이 돌을 흔히 말하는데, 여기서는 그게 아니라 상석(床石)과 같은 커다란 돌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한편 본 영수증을 써 준 정원백은 스스로를 정창두(丁昌斗)의 아버지라고 적고 있는데, 정창두가 직접 영수증을 작성하지 않고 아버지 정원백이 대신 써 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측컨대 정창두가 본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 어떤 사정으로 인해 현장에 나오지 못하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領收證一金壹佰拾伍円柒拾貳戔也右金을 伏在南原郡宝節面道龍里四四八番地田四百七十七坪及伏在南原郡宝節面道龍里石砧一座로正正領受홈大正八年陰十一月十八日賣渡人丁昌斗父丁元白[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11년 한현모(韓賢模)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明治四十四年 證主 韓賢模 明治四十四年 韓賢模 전북 남원시 [印] 1.0*1.0 3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1년 1월 1일 한현모(韓賢模)가 작성한 영수증(領收證) 1911년 1월 1일 한현모(韓賢模)가 작성한 영수증(領收證)이다. 이교정(李敎政)으로부터 150원을 천천면(天川面) 춘동리(春洞里) 천잠평(天蠶坪)에 있는 수참(水砧) 값으로 수령한다는 내용이다. 수참이란 물레방아를 말한다. 한편 천천면은 장수군(長水郡)에 속한 지역인데, 본 수참을 매입한 이교정은 남원 거주자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교정의 이름이 호적대장(戶籍台帳)에는 성관(成寬)으로 적혀 있다는 내용도 보인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領收證一金壹百五拾円也右을 天川面 春洞里 天蠶坪水砧 代金으로確實히 領收홈明治四十四年一月一日證主 韓賢模[印]李敎政 殿 台帳所在名成寬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17년 김현(金顯) 영증(領證) 1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六年 領證主 金顯 大正六年 金顯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7년 음력 12월 김현(金顯)이 작성한 영수증 1 1917년 음력 12월 김현(金顯)이 작성한 영수증이다. 24원 85전 2원(原)을 전북 남원시 보절면(宝節面) 원신동(原薪洞) 양지평(陽地坪)에 있는 답(畓)의 매도가로 인수하였다는 내용이다. 특별한 언급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위 돈은 전체 매도 금액으로 판단되나, 관련 문서 "1917년 김현(金顯) 영증(領證) 2"의 내용을 참고하면 계약금이었음이 분명하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領證一金貳拾肆圓捌拾伍戔貳原也但以宝節面原薪洞陽地坪畓価로正正히領受候也大正六年陰十二月四日領證主 金顯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17년 김현(金顯) 영증(領證) 2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六年 領證主 金顯 大正六年 金顯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7년 음력 12월 9일 김현(金顯)이 작성한 영수증 2 1917년 음력 12월 김현(金顯)이 작성한 영수증이다. 전북 남원시 보절면(宝節面) 원신동(原薪洞) 양지평(陽地坪)에 있는 답(畓)의 매도를 인수하였다는 내용인데, 관련 문서 "1917년 김현(金顯) 영증(領證) 1"을 참고하면 이번에 받은 돈은 위 답 매도가의 잔액(殘額)이었음이 분명하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領證一金陸佰円六圓也但以宝節面 原薪洞里 陽地坪畓価로正正히領受홈大正六年陰十二月九日領證主 金顯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모년(某年) 양고순(梁顧順) 등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전북 남원시 1.2*0.8 1개(적색, 타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모년(某年) 양고순(梁顧順)이 이용기(李容器)에게 명도비용(明渡費用)으로 700원을 받고 작성해 준 영수증(領收證). 모년(某年) 양고순(梁顧順)이 이용기(李容器)에게 명도비용(明渡費用)으로 700원을 받고 작성해 준 영수증(領收證)이다. 구례군(求禮郡) 토지면(土旨面) 용두리(龍頭里)에 사는 양고순은 영수증에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宝節面) 신파리(新波里)에 사는 이용기 앞으로 영수증은 발행되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領收証一金七百圓也右金額은明渡費用으로正히領受홈求禮郡土旨面龍頭里領受人 梁顧順[印]令人柳氏[指章]南原郡宝節面新波里李容器 貴下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94년 조용운(趙龍雲) 상환토지양도증(償還土地讓渡證) 고문서-증빙류-증서 경제-회계/금융-증서 甲午 讓渡人 趙龍雲 甲午 趙龍雲 전북 남원시 [印] 1.3*0.9 1개(적색, 타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54년 음력 12월 9일 조용운(趙龍雲)이 작성한 상환토지양도증(償還土地讓渡證) 1954년 음력 12월 9일, 조용운(趙龍雲)이 작성한 상환토지양도증(償還土地讓渡證)이다. 전라남도 구례군(求禮郡) 토지면(土旨面) 용두리(龍頭里) 279번지에 있는 답(畓)을 상대방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양도하는 대신 백미(白米) 1두(斗) 백승(百升)을 받는다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상환토지는 조용운 이 국가로부터 부여 받아 경작해 왔던 논으로 추측된다. 조용운은 이 토지를 넘기기로 한 것인데, 누구에게 이 토지를 양도하기로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받는 사람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償還土地讓渡證-. 土地의 表示求禮郡 土旨面 龍頭里 二七九畓地外 四等前記土地은 拙者가 受配耕作하였던 바 今般 代価白米壹斗百升을 領收하고 貴下의게 讓渡키로 玆以成證함甲午陰十二月九日讓渡人 趙龍雲[印]貴下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58년 이기호(李起鎬) 대리모(代理母) 강양여(姜良女) 영수증(領收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檀紀 四千二百九十一年 姜良女 檀紀 四千二百九十一年 姜良女 전북 남원시 [印] 1.0*1.3 1개(흑색, 타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58년 이기호(李起鎬) 대리모(代理母) 강양여(姜良女) 영수증(領收證) 1958년 음력 12월 15일 이기호(李起鎬)의 대리모(代理母)인 강양여(姜良女)가 작성한 영수증(領收證)이다. 용원리(龍源里) 뒷산 고갯마루에 있는 정자(亭子) 한 동(棟)의 대금(代金)으로 7만원을 인수하였다는 내용이다. 잔액이라고 표현하였으니 위 정자의 전체 거래 금액은 7만원이 넘었던 것임이 분명하다. 정자란 대개 마을의 공동 재산이었다고 생각하였는데, 개인적으로 매매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조금은 의아하다. 한편 본 영수증을 작성한 사람이 이기호의 대리모로 되어 있는데, 왜 이기호 대신 어머리가 본 계약서를 작성한 것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본 계약이 이루어질 당시 이기호가 어떤 사정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될 뿐이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領收證-. 建物殘額合七萬整也但 龍源里後山嶝 정자 壹棟代金으로命正히 受領함檀紀 四千二百九十一年陰十二月十五日李起鎬代理母[印]右龍源里姜良女貴下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18년 이양래(李洋來) 영수증(領收證) 2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戊午 領收印 李洋來 戊午 李洋來 전북 남원시 [印] 1.0*1.0 1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8년 1월 13일 이양래(李洋來)이 작성한 영수증(領收證) 1918년 1월 13일 이양래(李洋來)가 작성한 영수증(領收證)이다. 84원을 수령한다는 내용이다. 이 돈은 남원군(南原郡) 도룡(道龍)에 있는 답(畓) 8두락지(斗落只)를 사기 위해 이양래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체 매매 가격은 이보다 더 많았다. 다만 일부는 이미 지급하고 나머지를 이번에 준 것이다. 그런데 위 84원 19량은 백미 1석(石)의 값이라고 적은 점을 보면, 이양래는 본 영수증의 상대방으로부터 쌀로 차용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領收證一金八拾四円也右은 道龍所在畓 八斗落只代金在条中次數領收홈(內現金六十五円과 白米壹石代十九円合算)戊午正月十參日領收印 李洋來[印]

상세정보
저자 :
(편저자)
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917년 양칠한(梁七漢) 영증(領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六年 梁七漢 大正六年 梁七漢 전북 남원시 [印] 3개 1.0*1.0 3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7년 윤2월 14일에 양칠한(梁七漢)이 작성한 영수증 1917년 윤2월 14일에 양칠한(梁七漢)이 작성한 영증(領證)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써 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내용은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宝節面) 신파리(新波里) 심곡평(深谷坪)에 있는 답(畓) 3두지(斗只)를 매도하는 데 있어, 우선 선금(先金)으로 15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선금은 일반적으로 전체 매도 금액의 10%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거래 금액은 150원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상세정보
84193건입니다.
/4210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