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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안동종대수리소(安東宗垈修理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癸卯六月 日 完東宗垈修理所 各邑宗中 癸卯六月 日 崔鳳洙 各邑宗中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03년 6월에 완동종대수리소에서 전라도 각 읍 종중에게 보낸 통문. 1903년 6월에 완동종대수리소(完東宗垈修理所)에서 종대(宗垈)를 수리한다면서 전라도 각 읍 종중(宗中)에게 보낸 통문이다. 선조의 유지(遺址)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훼손되어 수리에 드는 비용을 부채를 얻어서 해결해야 하는데, 이후 부채를 갚을 방법이 없어서 각 읍 종중에게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수리소의 발문은 최봉수(崔鳳洙)의 이름으로 나갔으며, 부안, 고부, 전주, 남원, 영암, 보은, 나주, 순천, 함열, 서천 등 각 지역의 담당 유사의 이름도 문서의 말미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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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敬通事竊嘗聞節義者道學之藩籬道學者節義之堂室有節義而無道學者有矣未有有道學而無節義者也惟我先師艮齋先生之道學節義自有一世之公論而無有閒然者矣一自震泳誣言誣筆之出 先師之藩籬幾乎破矣堂室何得以獨全哉嗚呼 先師窮而無位未能展布所蘊逮乎晩年遭値不辰瘴海萬里一心献靖炳然之丹凛然之義可質神明也乃於山頹之未幾欲以心神所寄之手稿請認而刊之者已是門人不思之甚且雖慮遠圖久之或出於萬不得已當曰 先師有靈必大罪我タ且負罪爲之猶可說也噫彼震泳欲伸已意敢誣引 先師爲證答李炳殷書曰 先師嘗敎小子曰聞業印者自認則著書者無關如此則不必深拘又曰 先師嘗敎朴察訪家五粹使人代認又草答金洛斗書曰 先師今春三月獨坐杏下竹床命震泳曰世不可知文稿君須料量爲之此皆 先師曾有認敎之謂而與癸亥三月十一日對先師仲子華九於華島倡言 先師曾有認意者互相發也其所謂認意者卽認敎之實也認敎者卽認意之表也以言以書白空撰出以成 先師敎人認刊之據是推諉 先師以禦討認者之口也於是嘲侮載路譏罵漲天啞タ然傳笑曰是師是弟之單傳密付者果是事也皜タ我 先師之日光玉潔歸於窣タ黑地而莫之鮮其陷師之罪吁亦極矣凡在及門之徒孰不明目張膽思所以辨討哉夫愛莫愛於親遺重莫重於先系然 先師沈尸之誓不譜之戒不啻峻嚴者何哉爲其大義之愛重有大於此故也獨於文槀也不顧乞認之爲破義而自謂不拘敎人量爲則是槀之愛重非惟加於親遺先系又有大於大義之係也吾知 先師之學决不如是也此其心跡ト確證旣昭昭矣且况晩年勿急刊槀勿干彼認之訓二度手筆鄭重嚴截付之胤子而謹守之一則曰若請願而刊布决是自辱愼勿勉從一則曰勿汲汲傳世以自取辱吾輩之所以據而斥之者亶在於此彼無據之誣言誣筆安足以亂識者之耳目但末俗好譏流言難定千口成公久傳成實誠不無其慮辨之討之在所不已而尙冀其息黥補劓自服其誣自新厥躬矣終是傲然自是少不萌悔以至終祥不服罪被黜祀悻タ而去此所以先師之誣愈深而討擧之不容緩也玆敢仰通伏願 僉君子齊聲共討以明先師大義以扶斯文一脉千萬幸甚 先師之訓曰閑聖闢異自是道理如此若怕他嫌怒含糊不分別則其罪豈不尤大矣乎請 僉君子之深念而回敎焉 甲子七月 日 李驥魯 金熙鎭 朴晩煥 林哲圭 金敎潤 林鍾斗 黃鍾復 蘇學奎 金洛奎 金基重 金洛斗 朴勝謙 金益容 林秉龍 金泰熙 朴魯重 田華九 金炳周 崔觀鉉 李起煥 鞠瑛煥 李宗魯 申洪均 田熙文 辛基溫房煥永 崔鍾文 白南斗 李炳殷 崔光煥 邊圭源 崔潤變 宋宇鎭 柳源模 崔秉哲 金鍾一 邊復源 金澤述 徐錫煥 許春植 蘇昌奎 李錫夏 韓鎬敎 奉鶴九 崔炳珪 鄭基華 崔秉昭 吳璿根 金賢述 崔泰鎰 金鍾淵 文泰益 鄭逈澤康用範 兪康植 金璡植 李相裕 林鍾元 李康壽猜贒疾能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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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甲寅十月二十三日 各處契員與用錢之人 甲寅十月二十三日 發文有司 各處契員與用錢之人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갑인년 10월 23일에 부안의 전주최씨 처암공파계에서 각처의 계원들과 계의 자금을 이용한 사람들에게 계일을 통보하면서 보낸 회문. 갑인년(甲寅年) 10월 23일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全州崔氏)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에서 각처의 계원들과 계의 자금을 이용한 사람들에게 계일(契日)이 다음 달 10일로 확정되었다고 통보하면서 보낸 회문(回文)이다.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석동재각(席洞齋閣)에 참석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회문의 끝 부분에는 돈을 빌려간 사람들의 성명과 금액(본전)과 아직 갚지 못한 잔금 등이 차례로 적혀 있다. 예컨대 행산(杏山)의 송양호(宋良皓)는 계에서 조(租) 1석 1두 1승 5홉을 빌렸는데, 현재 10두 6승을 갚지 못한 상태이다. 빌린 계의 자금은 전(錢)과 조(租) 또는 도조(賭租)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계원의 거주지는 행산 외에 행하리, 봉두산, 마곡, 구야리, 원재중, 우서리, 모가산, 봉두산, 상리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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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손호풍(孫浩豊)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庚申十月 日 孫浩豊 등 20명 全州崔氏門中 庚申十月 日 孫浩豊 扶安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경신년 10월에 손호풍 등 20명이 옹정사 유지의 소유권 변경과 관련하여 부안의 전주최씨문중에 보낸 통문. 경신년(庚申年) 10월에 손호풍(孫浩豊) 등 20명이 부안(扶安)의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 있었던 옹정사(甕井祠) 유지(遺址)를 최씨문중에서 그들 문중의 단독 소유로 바꾼데 대하여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옹정사는 1694년(숙종 20)에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옹암(甕菴) 최생명(崔生命)의 위패만을 봉안하였다. 옹암은 대호군(大護軍) 김당(金璫)의 사위로 처가(妻家)가 있는 부안현에 옮겨와 살면서 전주최씨로서는 부안과 처음 인연을 맺은 인물이었다. 부안 전주최씨의 역사는 옹암으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옹정사는 그 뒤 1714년(숙종 40)에 옹암의 손자 최계성(崔繼成)의 위패를 청계사에서 이전 봉안하였다. 도중에 옹정사의 건물이 여러 차례 병화로 소실되었으나 1778년(정조 2) 옹정사를 중창(重創)하면서 손홍적(孫弘績), 김석량(金錫良), 최명룡(崔命龍) 등을 추배(追配)하였다. 그 뒤 1835년(헌종 원년)에 이르러 최활(崔活), 김단(金湍), 채달주(蔡達周)를 또 추배하였다. 따라서 모두 8명이 이곳 옹정사에 배향되게 되었다. 그러나 1865년(고종 2) 대원군의 전국 서원철폐령으로 인하여 옹성사는 훼철되었다. 이 때 8현의 위패를 이곳 유지에 매장하고 그 자리에 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매년 3월 14일에 8현의 후손들과 이 지방 유림들이 모여 치제(致祭)를 해왔다. 8현 가운데 4명이 전주최씨이며, 이곳 역시 부안 전주최씨의 텃밭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배향된 4성(姓)의 후손들이 골고루 답토(畓土)를 나누고, 단직가(壇直家)를 세우고, 여러 가지 손실 비용을 각자 부담해 왔는데, 이를 무시하고 최씨문중의 단독 소유로 바꾸었으니 이것은 매우 부당하다는게 손호풍 등의 주장이다. 이 통문에 연명한 사람들은 최씨가 아닌 손씨(孫氏), 김씨(金氏), 채씨(蔡氏) 등 3성 출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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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석동재(石洞齋)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丙戌正月 席洞齋 丙戌正月 席洞齋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46년 부안 전주최씨 석동재 통문 1946년 1월에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 석동재(席洞齋) 도유사(都有司) 최주홍(崔周洪)이 보낸 통문(通文)이다. 족보 발행을 위해 2월 30일까지 명단을 보내 달라고 하였으며 임원과 규례를 적어 보냈는데 족보 1질은 100원, 수단금은 관자(冠者) 10원 아이 5원, 수단소는 석제(石堤)와 백석리(白石里) 2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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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通諭事夫有姓之修譜亶出於昭系收族之原義而惟我提學公派辛亥之家乘譜頗多漏落之人甲子之大同譜未得家家有冊是誠諸族之所同慨歎而且歲紀已週三十滄桑屢回百六死者墓木已拱生者童已抱子矣修譜亦云且晩咸願續修維新得以家家有冊其於昭先敦族之義庶有考據之無弊幸甚云故今於寅會僉議齊發玆定任員與規例略列如左輪仰惟願 僉族斯速收單今二月晦日內無漏納單于席洞齋爛議開板事丙戌正月 日 席洞齋 都有司崔周洪規例一譜冊一秩에百円으로磨練事一單金은冠에十円童에五円으로磨練事一收單時譜冊申込하되冊価半額과單金全部를交附事一納單期限은二月晦日內完定事一收單有司은譜廳任員과同一報酬事一收單所은石堤白石里兩處로定홈譜所任員編輯 崔光煥 崔秉澔校正 崔斗洪 崔基洪掌務 崔春洪 崔在洪監印 崔玉煥 崔墀洪正書 崔敏洪 崔秉甲 崔秉炫收單有司司成公派 處士公派 檢閱公派--崔秉淵處庵公派 崔東周 崔相烈參奉公派 崔秉浩 崔弘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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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흥학계(興學稧)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戊午十一月二日 全州崔氏興學稧 戊午十一月二日 1858 興學稧 全州崔氏一族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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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별청계(別廳稧)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庚子十月初二日 有司 崔 庚子十月初二日 1840 崔 別廳稧員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40년(헌종 6)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회문 1840년(헌종 6) 11월 2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全州崔氏)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회문이다. 문계강신(門稧講信) 일자(日字)를 통보하고, 전유사(錢有司)들의 회계(會計)를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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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참봉공파수계(參奉公派脩稧)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壬辰十月十八日 有司 崔 壬辰十月十八日 1832 崔 參奉公派脩稧員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1832년(순조 32) 회문 1832년(순조 32) 10월 18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참봉공파(叅奉公派) 문중에서 종원(宗員)들에게 보낸 회문이다. 계회일자(稧會日字)를 통보하고, 전유사(錢有司)들의 회계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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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문계(門稧)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癸丑十月初二日 癸丑十月初二日 1853 全州崔氏門中 全州崔氏門稧員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1853년(철종 4) 회문 1853년(철종 4) 10월 2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宗員)들에게 보낸 회문이다. 석동재(席洞齋)에서의 계회일자(稧會日字)를 통보하고, 전유사(錢有司)와의 회계(會計)를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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邑先候三巖公余之從叔也來治玆土政通廢興建一小亭於堂之後一㢧之地扁其楣曰西林亭公退之暇與文人才士逍遙於斯亭山林泉石爲太守之樂而遂成稧帖焉余出宰湖西纔三載又移治扶風慕公之蹟溯公之世今去公之時已四十禩餘聞郡人所傳盖記得當時事遂陟西林園亭已頹久只見瓦礫滿址數尺荒碑凡然堅立乎其間撫往陳跡殊極愴感乃命工匠經始重建告功遲速姑難預期亭旣成則不可無稧旣稧則不可無財舊帖中題名君子未知幾存幾沒而其若子若孫有能繼述先志修單收入量宜出力合聚存殖每當仲春仲秋齊會登亭以備觴詠之資以舒幽鬱之懷則庶可續先輩盛擧豈不猗歟美哉玆將輪通幸望 亮悉 收單以今晦內收入次丙申八月日 本郡守趙[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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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중(崔宗中) 서간(書簡) 피봉(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席洞 崔宗中 席洞 崔宗中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 석동 앞으로 보낸 간찰의 피봉. 부안 석동의 최종중(崔宗中) 앞으로 보낸 간찰(簡札) 피봉(皮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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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문중(崔氏門中) 서간(書簡) 피봉(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席洞 崔氏門中 席洞 崔氏門中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 석동의 최씨문중 앞으로 보낸 간찰의 피봉. 부안 석동의 최씨문중(崔氏門中) 앞으로 보낸 간찰(簡札)의 피봉(皮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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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흥학계(興學稧)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癸丑九月初十日 癸丑九月初十日 1853 全州崔氏門中 興學稧員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부안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들에게 보낸 1853년(철종 4) 회문 1853년(철종 4) 9월 10일, 부안(扶安)에 거주하는 전주최씨 문중에서 종원(宗員)들에게 보낸 회문이다. 석동재(席洞齋)에서 있을 흥학계(興學稧) 계회일자(稧會日字)를 통보하고, 전유사(錢有司)와의 회계(會計)를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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