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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軒銘 余少友金世輔益卿。居棠岳禮亭。余於其肄業之所。以復軒顔之。因爲之銘曰。帝降民衷。與以仁義。禮之實何。節文斯二。惟聖性者。心與理一。下此一等。未免微失。嗟我凡愚。氣拘欲蔽。不明乎善。不循乎禮。自棄孰甚。衆惡爲多。是則可憂。憂之如何。昔在聖門。曰有顔氏。克去己私。復乎天理。所未至者。守而非化。有爲若是。余何人也。嗟乎益卿。明聽我言。群陰剝陽。勢將純坤。民神混處。蹄迹橫行。晦喪人紀。昏蝕天明。然無陽盡。剝上復下。此理甚明。恃之無訝。嗟乎益卿。古人有云。美質易得。至道難聞。毋恃爾質。益勉所學。絶彼柔道。愛此陽德。靜存動察。要復厥初。造次顚沛。其敢忽諸。之子攸居。爰嘉其名。其名伊何。曰維禮亭。禮爲敎本。敬者身基。博我約我。以顔爲師。日夕乾乾。從事四勿。不遠而復。庶幾元吉。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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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一齋箴【幷序】 冠山臥龍村魏君貫一。年及於立。深有慨於疇往失學。遂刻意爲已。以古人自期。又苦其索居。每從余而遊。誠不恥下問則優矣。自丁憂以來。其哀痛至諴。有能以感動微物者。此鄕隣之所共習聞稱賞也。擧此可知其餘。一臠全鼎。不其信乎。貫一於所居。以主一額之。因請余數語。以箴警乎云。余竊思之。昔南軒著主一銘與箴。其義詳且盡。晦翁且有敬齋之箴。合是數者觀之。主敬。爲學之要。無以加此。何須他言爲哉。矧貫一。已知其能養大者乎。然不忍孤其盛意。略掇緖餘。以爲之箴曰。人生一世。其責甚大。惟皇降衷。萬理總會。方寸之間。神明不測。主乎一身。參爲三極。君子存之。其德克明。功化之妙。渾然天成。庶民冥頑。喪其良心。朝晝牿亡。乃獸乃禽。心之爲物。至顯至微。凝氷焦火。淵淪天飛。操心之要。莫如存敬。旣常戒懼。發際深省。舍利趨義。去惡爲善。造次顚沛。以畏天顯。主一無適。萬變是當。爲學始終。此其大綱。顧今之人。所主不一。名利交攻。謀猷回遹。詞章雜學。爲世沈痼。紛撓不謳吟而膾炙焉。夷齊之不幸。抑亦首陽之幸歟。崇禎五丁亥晩春。余自大明洞。僑寓於德龍山下首陽里。當食有薇羹。因歔唏曰。是何地名之偶同。而又適有此物也。聞諸村人。此山多薇蕨。肥而味。澗谷幽邃。水石淸潔。名曰竹川。隣近又有三仁川云。余悵然久之。感古之懷。莫之得禁。噫孤竹二子。與三仁竝世。所行雖不同。其所以卽乎人心之安。而合乎天理之正則一也。如讀微子一篇。麥秀採薇等歌。則足以想當時而隕千古志士之淚矣。時丁鳦社之季。有聖王作於豊鎬。應天順人。天下靡然宗之。而獨夷齊者。不降志辱身。諫伐而餓。遂爲萬世節義之祖。而如孔孟二夫子。俱以仁與聖稱之。後之聞風尙論者。寧莫奮發自勵乎。嗟乎。矧今萬歲。殉社二百有餘祀。九圍腥羶。毁形裂冕。而海隅出日。罔不服役。世若有魯連胡銓。則有赴東海而死耳。寧能處小朝廷求活也。然而尙幸三古文物。寄在東表。如碩果之不見食。天不悔禍。歐巴蹄迹。橫行宇內。天理人紀。日以昏蝕。勢將純坤乃已。然陽無可盡之理。剝盡於上。則復生於下。斯理也。余於大易見之。而且於今日所居。竊有感焉。蓋首陽。何謂也。初九也。復之初九。卽子半之雷。首動於群陰之下者也。知斯義者。須當體天地之心。閉關息旅。絶柔道之牽。保陽德之微。敬義夾持。從事四勿。無定莫之能悟。惟君克念。拔乎流俗。尊其德性。以制利欲。反求經籍。古人爲師。終始惟一。視此銘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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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鳳岡精舍 高岡精舍煥重明。誰識斯翁繼述情。庭梧交翠朝陽上。要看三鳳羽儀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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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室道中作 地逐名賢眞不虛。此曾石室大爺居。追憶往年冬曉月。舟人指點以言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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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麻貴坪 憶曾麻督鏖倭秋。地得芳名永世流。再造皇恩誰敢忘。至今不忍見神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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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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錄先考三山府君家狀志感 門老咸稱我族賢。鄕人皆曰我師賢。寬仁淸儉如終始。孤子敢言我考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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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任丱吾東【二首】 寰宇蝕陽又颶風。幸今周禮在吾東。仁爲己任非高遠。斯道元來理甚公。康成三載在扶風。論易歸來道亦東。願言賢秀須勤學。米賊猶知誦鄭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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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重菴遺躅韻。贈羅聖敎【有英三首】 先生高躅躡頭流。往事於焉十四秋。珍重勉翁巖面筆。摩挲墮淚後人遊。嶽頹安仰衆奔流。斯道昏濛鬼藪秋。可愛羅君能篤信。羹墻遺躅日優遊。難以寸膠止濁流。此生無地讀春秋。回思智海依如夢。幾度親陪杖屨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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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동이 틀 무렵에 길을 나서 모란원(牧丹院)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금강(錦江)을 건너 효포(孝浦) 부동리(釜洞里)의 이 석사(李碩士) 집에 머물렀다. 平明登程, 至牧丹院中火。 渡錦江, 留孝浦 釜洞 李碩士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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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두치(斗峙)20)를 넘어 신거(信居)에 이르자 비로소 대로(大路)가 나왔다. 봉상(封上)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전주(全州) 부내(府內)로 들어가 곧장 서문 밖 여점(旅店)으로 갔으나, 삼정(森亭) 일행을 그림자도 찾을 수 없으니 이상하였다. 남문 밖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로 만났다. 곧바로 김 동지(金同知)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항선(缸鐥)을 찾아 가지고 왔다. 早食後, 踰斗峙, 至信居, 卽始得大路。 至封上秣馬, 入全州府內, 直往西門外旅店, 則森亭一行, 寂無影響, 可怪。 行至南門外, 始與相逢。 卽往金同知家, 暫話後, 推尋缸鐥而來。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대곡리로 넘어가는 재 이름이다. 말치 또는 마치(馬峙)로 불리우기도 하며 옛 국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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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윤익(允益)이 함께 그의 집에 갔기 때문에 동행하여 남양(南陽) 이찬의 집으로 들어가 요기하였다. 오한이 크게 일어나고 통증도 매우 심하여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렸는데, 마침내 통증이 사그라들어서 이찬과 강동(江洞) 윤익(允益)의 집으로 갔으나, 한번 누운 뒤로는 인사불성이 되었다. 연일 고통에 시달렸지만, 끝내 차도가 없었다. 允益同往渠家, 故同行入南陽 而贊家療飢。 寒栗大發, 痛勢亦爲大端, 稍待鎭定而終止, 故與而贊往江洞 允益家, 一臥以後, 不省人事。 連日苦痛, 而終無差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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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二月 금년 봄 2월에 충강공(忠剛公) 선조 행록(先祖行錄)을 개간(開刊)하는 일로 오촌(鰲村, 송치규) 장석(長席)에게 서문(序文)을 청하기 위해 이찬(而贊), 윤익(允益)과 동행하여 오촌에 갔었다. 당시 장석이 마침 병환 중이라서 글을 받지 못하고 가을을 기약하고 돌아왔다. 이번 겨울 종중의 협의에서 또 나에게 갔다 오라고 하였으므로 11월 19일에 길을 나서 석촌(石村) 송계석(宋啓錫)의 집에 이르러 묵었다. 20리를 갔다. 今年春二月, 以忠剛公先祖行錄開刊事, 請序文於鰲村 丈席之意, 與而贊及允益, 同行往鰲村矣。 其時丈席, 適患身, 不得受文, 秋以爲期而來矣。 今冬宗議, 又以余往還, 故乃於十一月十九日發程, 抵石村 宋啓錫家留宿。 行二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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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아침에 비가 오다가 저녁 무렵에 개었다. 해주(海州)에서 이 마을로 와서 살고 있는 박치환(朴致煥)은 전에 왔을 때에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했었는데, 이번 길에 다행히도 만나게 되니 매우 기뻤다. 박 석사도 나를 보고 정성껏 맞이해 주니 또한 매우 다행스러웠다.지난달 소상(小祥) 때에 약간의 회원(會員)이 문회계(文會稧)를 약속하였다고 하므로 나도 계안(稧案)에 이름을 넣어 돈 1냥을 납부하고 계안좌목(稧案座目)을 베껴 왔다.-계안(契案)은 뒤에 붙였다.-장석(丈席)은 자운동(紫雲洞)에 행차하셨기에 임실 동종(同宗)과 그대로 하직하였다. 성동(性洞)에 보낼 책자는 상주(喪主)에게 부탁하고, 이어 출발하여 다박동천(多朴洞川)을 건넜다. 마포(麻浦)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연기(燕岐)의 삼가(三嘉)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40리를 갔다. 朝雨晩晴。 自海州來寓此村朴致煥, 前來時相違未見矣。 今行幸爲相見, 幸幸。 朴碩士亦見我款待, 亦爲幸幸。 去月小祥時, 略干會員約爲文會稧云, 故余亦添名於稧案, 納錢一兩, 稧案座目謄來【契案附後】。 丈席行次紫雲洞, 故與任實同宗, 仍爲下直。 性洞所去冊子, 付託於喪主, 仍發程抵多朴洞川越涉, 至麻浦酒幕, 中火秣馬。 抵燕岐 三嘉酒幕留宿。 行四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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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일찍 출발하여 미정지천(尾亭地川)에 이르렀다. 내를 건너 청주(淸州)의 조천원(朝天院)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전의(全義) 읍내 시장 근처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가 덕평(德平)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천안 신은(新恩)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90리를 갔다. 早發至尾亭地川越川, 抵淸州 朝天院酒幕朝飯。 至全義邑內市邊暫憩, 抵德平酒幕, 中火秣馬。 天安 新恩酒幕留宿。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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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재록하는 일로 일찌감치 가서 유석하(柳錫夏)를 만나 상의하였다. 그길로 함께 김제(金堤) 송상실(宋相實)이 머물고 있는 주인집에 가서 상의하였더니, 아침을 먹은 뒤에 들어오라고 하였다. 도로 주인집으로 나와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들어갔으나 요청한 영리가 오지 않았다. 게다가 동행이 길을 재촉하므로 내려올 때 하기로 서로 약속하고 정오에 길을 나섰다. 삼례(參禮)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능측에 이르러 묵었다. 50리를 갔다. 以載錄事, 早往見柳錫夏相議, 仍爲同往金堤 宋相實所旅主人家相議, 則食後入來爲言, 故還爲出來主人家朝飯, 更爲入去, 則所請營吏不來。 且同行促行, 故以下來時相約, 午時登程。 抵參禮中火, 抵陵側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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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밤에 비가 내렸다. 순상(巡相) 내행(內行)이 들어왔다고 하였다. 아침을 먹은 뒤에 보은(報恩) 윤 석사(尹碩士, 윤제대(尹濟大)), 연산(連山)의 이 석사(李碩士)와 공북루(拱北樓)7) 아래에 가서 구경하고 왔다. ○夜雨。 巡相內行入來云, 故食後與報恩 尹碩士及連山 李碩士, 往拱北樓下, 觀光而來。 공북루(拱北樓)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었던 누각을 말한다. 조정에서 조령(朝令)을 받들고 사람이 내려올 때 부윤(府尹)이 나가 맞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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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일찍 출발하여 부기(富機)47)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목천(木川)48)의 새 주막에 이르러서 개장국을 사서 점심을 먹었다. 김제역(金堤驛) 마을에 이르러 낙안(樂安)으로 가는 일행과 헤어졌다. 일행과 오촌(鰲村)으로 갈 참이라 고동령(高東嶺)을 넘어 전의(全義)49) 읍내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早發, 抵富機朝飯。 抵木川新酒店, 買狗羹午飯。 抵金堤驛村, 與樂安同行分路。 與同行作鰲村行, 越高東嶺, 抵全義邑內留宿行。 六十里。 부기(富機) 충청남도 서산군 음암면 부장리(富長里)의 옛 지명으로 추정된다. 부장리는 부다리(富多里)와 기촌(機村) 일부 등 세 마을이 합해져 이루어진 마을이다. 목천(木川)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이다. 1413년(조선 태종 13) 목천현(木川縣)이 되었다가, 다시 목천군을 거쳐 1914년 천안군에 통합되면서 목천면이 되었다. 1963년 천안시에 속하였고, 2002년 1월 1일 읍으로 승격해 오늘에 이른다. 전의(全義)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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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여독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주인집에 머물렀다. 오후에 대로변으로 나가 요기를 하고, 그길로 관정동(冠井洞)으로 향하였다. 중도에 박상현(朴祥顯)과 공서(公瑞)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헤어져 돌아왔다. ○以路憊不能運動, 留主人家。 午後出去大路邊療飢。 仍向冠井洞矣。 中路逢朴祥顯及公瑞, 談話後, 相分還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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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 전, 공서가 내려가는 김에 김노와 고부의 김 생원을 데리고 출발하였다. 밥을 먹은 뒤 10냥을 가지고 개간소로 가서 냈다. 오후에 나와서 창동의 배진환(裵珍煥)이 머무는 곳에 들렀더니, 배진환은 출타하였다. 남문으로 나와 차동(車洞)115)으로 가니 주인이 출타하였다. 이에 아랫사랑으로 가서 주인 민치명(閔致明)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도로 창동으로 왔는데 배진환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로 남문으로 나와 율지와 함께 주인집으로 왔다. ○朝前, 公瑞下去次, 率金奴與古阜金生員發程。 食後, 持十兩錢往刊所納錢。 午後出來, 歷訪倉洞裵珍煥所住處, 則裵也出他。 出南門, 往車洞, 則主人出他。 仍往下舍廊, 與主人閔致明暫話, 還來倉洞, 則裵也不來。 還出南門, 與聿之出來主人家。 차동(車洞) 중구 의주로1가ㆍ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수렛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태어난 터에 비석을 세우고 그를 추모했던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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