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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題【甲午六月二十七日】 杯水救薪火。思之愚莫愚。威武不能屈。此云大丈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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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陽精舍雜詠【五首】 鳳岡朝陽壁立雲霄于彼岡。開吾竹牖向朝陽。而今種得碧梧樹。佇見靈禽千仞翔。龍嶽暮雲神龍潛見以雲隨。山色崢嶸見益奇。比歲生靈多苦旱。不成霖雨待何時。山下寒泉山下出泉逝若斯。先占果育養蒙宜。有時提碗充腸飮。方信衡門可樂飢。東湖明月東湖如鏡淨無塵。蹈死何人叱帝秦。偃然明月生波底。如見當年玉貌眞。西山淸風柏社孤臣有伯夷。西山何事採薇飢。居人百世傷心淚。惟有淸風拂面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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姑惡鳥【二首】 反哺慈烏極孝誠。鳥中曾聖世皆名。今來胡爲啼姑惡。不似當年反哺情。設令姑惡爾當誠。豈向他人說此名。彰惡知渠尤甚惡。世間難掩是非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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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大彦【魏琫植】乃晦【金永根】之雲潭 天生重老又何喪。遽使吾生泣恨長。世路伊來多百險。二君行矣戒關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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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일찍 출발하여 이찬은 여암(餘岩)에 들어가고, 나는 서령(西嶺)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벌교(筏橋)에 머물러 있다가 이찬을 만나 백정자(柏亭子)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이찬은 바로 들어갔다. 나는 사촌(社村)의 문경(文卿) 씨에게 들렀으나 부재중이고, 사여(士汝) 씨와 공찬(公贊)만 있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용전(龍田)으로 돌아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곧바로 성산(城山)으로 올라가 묘 아래에 있는 상석(床石)53)을 살펴보았다. 저녁에 재동(齋洞)에서 묵었다. 60리를 갔다. 早發而贊則入餘岩, 余則至西嶺酒幕朝飯。 留筏橋逢而贊, 抵柏亭子中火, 而贊則直爲入去。 余則入社村 文卿氏不在, 只有士汝氏、公贊, 故暫敍後, 入來龍田。 暫話直上城山, 墓下見床石, 暮托齋洞留宿。 行六十里。 상석(床石) 무덤 앞에 제물(祭物)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돌로 만들어 놓은 상(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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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비가 그쳤다. 달구리[鷄嗚, 닭이 울 무렵]에 출발하여 갈원(葛院)에 이르자 비로소 동이 트기 시작했다. 천안(天安) 북기점(北機店)에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덕평(德坪)에 이르러 묵었다. 雨歇。 鷄鳴發行, 至葛院, 始開東矣。 至天安 北機店秣馬, 至德坪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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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임실(任實) 종인(宗人)이 끝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출발하여 은진(恩津)의 기촌(機村)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연산읍(連山邑) 상개태(上開泰) 주막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다. 주막 문밖을 나서자마자 마침 한 소년을 만났는데, 살고 있는 곳을 물었더니 회덕(懷德) 죽림(竹林)에 사는 익환(益煥) 송치응(宋致應)이라고 하였다. 이에 이야기를 나누며 개태령(開泰嶺) 윗주막을 넘어 대추와 떡을 사서 먹고, 두거리(豆巨里) 저잣거리에 이르러 약주(藥酒)를 사서 마셨다. 송 석사(碩士)는 일이 있어 시장 인근에서 조금 뒤처지고 나 홀로 가다가 저녁에 공주(公州) 유성(油城) 시장 근처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100리를 갔다. 밤에 절구 한 수를 읊었다.유성의 객점에 홀로 머물러 있자니(獨宿油城店)마음을 끝내 진정시킬 수가 없구나(心懷竟未收)어찌하여 밤 깊도록 비는 내리는지(如何深夜雨)객지살이 나의 근심 더해만 가네(添我客中愁)밤새 비가 내려 흐릿하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그치지 않았다.6) 任實宗人, 終不來到, 故不得已早發, 至恩津 機村酒幕朝飯。 抵連山邑上開泰酒幕, 秣馬中火。 纔出幕們外, 適逢一少年, 問其所居, 則懷德 竹林居宋益煥 致應也。 仍爲談話, 越開泰嶺上酒幕, 賣棗餠相喫, 抵豆巨里市邊, 賣藥酒相飮。 宋碩士有事市邊落後, 余則獨行, 暮抵公州 油城市邊酒幕留宿。 行百里。 夜吟一絶曰: "獨宿油城店, 心懷竟未收。 如何深夜雨, 添我客中愁。" 夜雨晦晦, 朝起視之, 雨不止。 밤새……않았다 내용상 29일의 기록이 아니라 다음날 아침의 기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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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경유(景猷)와 함께 동부(東部)에 갔다가 경모궁(景慕宮)으로 가서 화옥(華玉)을 만났다. 말을 사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소식이 없으므로 해질 무렵에 도로 나왔다. 與景猷同往東部, 因向景慕宮見華玉。 待其買馬, 而終無消息, 日暮時, 還爲出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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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아침을 먹은 뒤에 청파(靑坡)로 갔으나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오는 길에 합동(蛤洞)의 윤 장령(尹掌令) 집에 들렀으나 병 때문에 만나지 못하였다. 또 근동(芹洞)에 들어가 중순(仲順)을 보고 왔다. 食後往靑坡, 不聞消息, 故來路入蛤洞 尹掌令家, 以病故不得相見。 又入芹洞見仲順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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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새벽에 동구(洞口)에 가서 안일득(安一得)을 만나 거둥을 뒤로 미루게 된 기별을 상세히 듣고, 오는 길에 신문(新門) 안의 송 진사(宋進士) 집에 들어가 서로 작별하였다. 오는 길에 대차동(大車洞) 김 참봉의 집에 들어가서 참봉 김윤추(金允樞)를 만나고 왔다. 曉頭往洞口內見安一得, 詳聞停退擧動之奇。 來路入新門內宋進士家, 相與作別, 而來路入大車洞 金奉參家, 見金參奉 允樞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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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아침을 먹은 뒤에 선화당(宣化堂)에 들어갔다. 상삼에게 일을 부탁하여 그 산송(山訟)에 관한 일을 건의하여 보냈는데, 마침내 제결(題決, 판결처분)을 얻어 오후에 나왔다. 하서가 김제(金堤)6)에서 돌아와 이에 함께 머물렀다. ○食後入宣化堂, 稱念象三, 以其山訟事立議送, 果如得題, 午後出來。 夏瑞自金堤還來, 仍與同留。 저본의 '題'는 '堤'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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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새벽에 출발하여 진위(振威)108)읍 뒤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대황교(大皇橋)109)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화성(華城)에 미치기 전에 김노가 병이 났다. 간신히 북문 밖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曉發, 抵振威邑後朝飯。 抵大皇橋午飯。 未及華城, 金奴發病。 艱抵北門外留宿。 行七十里。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시이다. 대황교(大皇橋)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대황교동에 있는 삼남지방과 한양을 연결하던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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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새벽에 출발하여 지지현(遲遲峴)110)에 이르자 막 해가 떠올랐다. 김노가 중병이 나서 일행과 짐을 나눠서 졌다. 간신히 사근평(肆覲坪)111)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김노가 주막에서 스스로 짐을 약간 졌다. 세동(細洞)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과천읍에 이르러 비를 만나 한참을 머물렀다. 비가 갠 뒤에 남태령 객점으로 올라갔다. 김노가 뒤따라와서 몹시 기뻤다. 이에 점심을 먹고 강을 건너는데 비가 다시 시작되었다. 모래사장 반도 못 가 비가 퍼붓듯이 쏟아져 옷자락이 흠뻑 젖었다. 간신히 식점거리(食店巨里)에 이르러 비를 피하였다. 비가 갠 뒤에 청파(靑坡)112)의 영대(永大) 집에 이르렀다. 의관과 짐 안의 물건들이 모조리 젖어 말할 수 없이 부아가 났다. 80리를 갔다. ○曉發, 抵遲遲峴始開東矣。 以金奴之大病, 分卜於同行。 艱抵肆覲坪店留。 金奴於酒幕自負略干卜。 抵細洞朝飯。 抵果川邑逢雨, 移時留連。 開霽後上南泰嶺店。 金奴追後來到, 可喜可喜。 仍爲午飯, 而越江, 雨更作。 沙場未半, 雨下如注, 衣裾盡濕。 艱抵食店巨里避雨。 開霽後, 抵靑坡永大家。 衣冠與卜中諸物盡濕, 憤不可言。 行八十里。 지지현(遲遲峴) '지지대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의왕에서 수원으로 넘어오는 길목이다. 지지현(遲遲峴)이라고 표기하는 곳이지만 본래는 '사근현(沙斤峴)' , '미륵현(彌勒峴)' 등으로 불렸다. 사근평(肆覲坪) 경기도 안양시이다. 청파(靑坡)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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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일찍 출발하여 전석치(磚石峙)를 넘어 오수(鰲樹)에 이르렀다. 나는 소로(小路)로 들어가 평당(坪塘)의 송연영(宋延英) 집에 이르렀으나 주인 부자가 모두 출타하여 만나지 못했다. 주막으로 나와서 점심을 먹고 있으니 뒤따라 당도하여서 다행이었다. 송연영(宋延英) 종형제를 마침 이 주막에서 만난 것은 요행이었다. 이어 작별하고 말치60)를 넘어 굴암(屈岩)에 이르러 묵었다. 早發越磚石峙, 抵鰲樹。 余則入小路, 抵坪塘 宋延英家, 則主人父子皆出他, 不得相面, 出來酒幕, 仍爲中火, 追後來到, 可幸。 延英從兄弟, 適逢此幕乃幸。 仍爲作別, 越斗峙, 抵屈岩留宿。 行七十里。 말치 원문의 '두치(斗峙)'는 전북 완주군 상관면과 임실군 관촌면과 진안군 성수면 사이의 고개이다. 말치 또는 마치(馬峙)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진안 마령 사람들이 말을 타고 가던 길목이어서 '마치'라 칭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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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일찍 출발하여 오원(烏院)61)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한참 밥을 먹고 있을 때에 보성(寶城)의 공서(公瑞) 종인(宗人)이 왔다. 만나서 쉬었다가 그길로 동행하여 쌍정자(雙亭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부내(府內)에 도달하여 전성철(全聖哲)의 집에 머물렀다. 70리를 갔다. 早發抵烏院朝飯。 方食之際, 寶城 公瑞宗人來, 相逢息後, 仍爲同行, 抵雙亭子中火。 得達府內, 留全聖哲家。 行七十里。 오원(烏院) 관촌(館村)의 옛 지명이다. 고문헌에 관촌(館村)은 등장하지 않고, 임실의 북쪽 경계 지점에 있었던 상북면·하북면과 '오원역(烏原驛)' 또는 '오원(烏院)'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지리지》에 오원이 임실의 역으로 수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驛)이 2이니, 오원(烏原)·갈담(葛潭)이다. "라고 하였다. 관촌은 객지에서 묵는 숙소라는 뜻인 객관(客館)의 뒷 글자에서 유래가 됐으며, 원(院)이나 역(驛)은 상당히 큰 규모의 국립 여행자 숙소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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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나는 밥을 먹기 전에 사교로 내려가 먼저 문옥(文玉)을 만나고, 가교 댁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다. 구룡정(九龍亭)에 들러 잠시 경수(敬叟) 씨를 만났다. 탄포(炭浦)135) 객점을 나오니 율지가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 박상현을 만나 동행하여 과역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문등(門登)에 이르러 율지와 박상현은 곧바로 간촌(看村)으로 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집안의 사당에 공경히 배알하였다. 안으로 들어가 손자를 보니 그 기쁨이 한량없었다. 그러나 산모가 유종(乳腫, 젖멍울)이 점점 더해지는 듯하니 이 또한 걱정되는 부분이다. ○余則食前下去四橋先見文玉, 下來柯橋宅, 朝飯發程。 入九龍亭, 暫見敬叟氏。 出炭浦店, 則聿之早來待矣。 又逢朴祥顯與之同行, 抵過驛午飯。 抵門登, 聿之與朴祥顯直向看村, 余則還家, 祗謁家廟。 入內見孫兒, 其喜不可量。 而産母似有乳腫之漸, 此亦悶慮處也。 탄포(炭浦)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탄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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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 전에 제종(諸宗)30)이 읍으로 들어가 소장을 내니, 관청에서는 "양조(兩造, 원고와 피고)가 대질하여 시비를 가려라."라고 조처하였다. 그러므로 주인이 바로 가서 이회종(李會宗)을 송처(訟處)로 끌고 와, 사창(司倉)의 봉환소(捧還所)에서 대질하니, (봉환소에서는 산송이 일어난 곳의) 형상을 그려 올 뜻으로 향색(鄕色)31)을 보냈다. 그러므로 읍에서 아침을 먹고 제각으로 올라왔다. 이에 그림을 그렸는데 5백 20척이었다. 향색은 저물녘에 내려갔다. ○朝前, 與諸宗入邑呈狀。 則題內"兩造對卞事"。 故主人卽往, 提來訟處李會宗, 對卞於司倉捧還所, 則圖形以來之意, 出送鄕色。 故朝飯於邑中, 上來祭閣, 仍爲圖形, 則五百二十尺。 鄕色乘暮下去。 제종(諸宗) 일가붙이의 본종(本宗)과 지파(支派)를 말한다. 향색(鄕色) 조선 시대 지방 기구인 향청(鄕廳)의 임원(任員)이었던 좌수(座首)ㆍ별감(別監)ㆍ색리(色吏)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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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아침을 먹고 광청(廣淸)59)에 도착하여 떡을 사서 요기를 하였다. 낙수(洛水)60)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날도 몹시 추웠다. ○朝飯, 抵廣淸買餠療飢。 抵洛水留宿。 是日亦爲極寒。 광청(廣淸)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부근으로 추정된다. 낙수(洛水)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낙수리이다. 옛날 낙수역(洛水驛)이라는 역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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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새벽에 출발하여 매치(埋峙)에 이르렀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찬바람이 아주 매서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주막집 일꾼을 불러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에 비로소 동이 텄다. 다시 출발하여 무동정(舞童亭)에 이르렀는데 아침을 먹기엔 너무 일러, 조막(造幕)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장수동(長壽洞)으로 들어가려고 구암(龜岩)61) 앞에 이르러 작은 길로 들어섰다. 알룡치(謁龍峙)의 최정환(崔正煥) 집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고개를 넘어 수동(壽洞)에 이르니 경달(敬達)의 어머니가 감기로 인해 큰 병이 나서 몹시 걱정되었다. 그대로 유숙하였다. ○曉發, 抵埋峙。 日未明, 而寒風極酷, 不得前進。 招幕漢開門入房。 移時始爲開東。 又爲發行, 抵舞童亭, 則朝飯尙早, 抵造幕朝飯。 欲入長壽洞, 抵龜岩前入小路。 抵謁龍峙崔正煥家療飢。 越嶺, 抵壽洞, 則敬達之母以感氣, 仍爲大病, 悶悶。 仍爲留宿。 구암(龜岩)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구강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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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새벽 무렵 비가 시작되어 종일 그치지 않았다. 일행은 오지 않고 혼자 황량한 객점에 남아있자니, 그 괴로움을 견디기 어려웠다. 이에 절구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낮엔 세 사람이 동행하다 밤에 혼자 남으니(晝伴三人夜獨留)문 앞에는 오직 물소리만 그윽하게 들리네(門前惟有水聲悠)나그네 묵는 창가에 온종일 단비가 내리니(旅窓永日兼時雨)내 가는 길에 온갖 수심이 더해지는 듯하네(添我行中萬端愁)밤새 비가 내렸다. ○曉頭雨始, 終日不止。 同行不來, 獨留荒店, 其苦難耐。 仍吟一絶曰: "晝伴三人夜獨留, 門前惟有水聲悠。 旅窓永日兼時雨, 添我行中萬端愁。 " 達夜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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