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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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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師華西李先生畫像贊 和風霽月。粹玉精金。學盡天人。心妙古今。先立乎大。一以貫之。斥邪衛聖。百世宗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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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賢贊【爲李服汝。作。】 諸葛孔明。躬耕南陽。抱膝梁甫吟。將與草木長終。贊曰。南陽帝鄕。我土信美。迺疆迺耕。爰有鎡器。窓外日遲。抱膝長吟。若將終身。守此山林。黃覇。於囚獄中。受書於夏侯勝曰。朝聞道夕死可矣。贊曰。人生一世。道遠任大。一息尙存。不容小懈。身在縲絏。手抱壁經。函席從容。日夕講明。陵秀夫。於䃃洲流離。悤劇之中。日書大學章句。以勸講曰。人君不讀大學。不知治天下。贊曰。炎運垂絶。皇駕南遷。作事在人。成功則天。造次顚沛。不忘治道。日講大學。王躬是保。尹穀。於潭州重圍中。爲二子行冠禮。曰正欲令兒曹冠帶。見先人於地下。爾旣畢禮。自火其廬。擧家赴池而死。贊曰。犬羊肆毒。禍在俄頃。受國厚恩。不忍偸生。歸見先人。二子行冠。焚慮赴池。生順死安。【噫。宇宙間好男子。指不可勝屈。而如此輩人。亦可謂大丈夫矣。吾兄寤寐曠感。累發於咨嗟詠歎。而又筆之書示。及此頑懦其爲廉立。那可與百世聞風比日語哉。後若有畫師之擧。則圖寫諸眞。亦嘉。惠此弟千萬懸仰。弟於文字。素不知體格。而但重違勤敎。不免妄發。俯覽斤削。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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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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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李黃溪【墣】 漢燮白燮無祿。己卯六月奄遭先妣喪。縷命苟存。而日月奔駟。終制已久。實不堪風木之悲也。所謂緖餘。離索荒廢。夙夜忉怛。竊計此身之拜侍於座下。今幾許歲。烏頭之力。自驗已盡。愧懼何可量。伏惟道體康寧。令從孫造詣。想必日進於高明之域矣。遠外景仰。曷容名喩。竊惟先師立心制事。與夫苦心發明者。無一非明天理正人心者也。見今邪說橫行。人獸莫辨。不必聖人。人人可以能言距之矣矧在師門後嗣。尤不可惕念繼述耶。重菴文丈。智海之行。亦可謂暮年光華。何必嗟勞哉。所欲陳者何限。只此不備。伏惟俯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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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李朗海【烋】 拜候遽爾經二霜。居常。山仰曷容少施。間因仙鄕士友便。備聞動止。履道貞吉。而近住淸溪舊社云。年判大無近止之憂。人人攸同而竊想處善循理。不以貧窶動心。則綽有餘裕矣。不勝欽服。伏惟和煦。氣體更若何。太歲涒灘。見今崇禎五周。而明日卽萬歲殉社也。雖在尋常餘。人猶不堪漑釜寤歎。如門下扶植陽秋之義。其爲感慨。尤爲罔涯矣。天厭穢德。固其所也。而尙玆若爾何哉。然此殆難與俗人言。爲之瞻昊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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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李朗海 匪意吳雅大集。歷訪山門。兼承惠覆。至意盈紙。感戢罔喩。矧又古體長篇。莊誦屢回。烈皇盛德大義。怳若親睹。自不覺涕泗交頤。其爲慨古警今。有補於世敎。豈膚淺云爾。漢燮。亦於是日。榛苓之思。莫能按住。有所妄構詩云乎哉。敢此錄呈。以瀆案下。猥率甚矣。而其寤歎之出於情思。則容或恕之否。智海金丈。再遷以來。便信源源。而去月亦往拜。則顔髮不小衰。可見其定力有素。爲之欽服無射。間來兒輩。作懷德行。尙玆未還。仁山與諸處聲息。未知何如。從后當詳稟矣。伏祝道體啓居。若序萬重。用慰瞻仰。餘不敢盡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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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子善【煕元】 地殆三舍。屢者枉顧。寔出望外。幸賢者不置此漢於忘域。又玆書訊。無乃過厚耶。但書末請言。雖出於問於不能之至義。顧此愚昧。有何一半分所得。而說及他人哉。此與借視聽於瞽聾奚異也。歲華如駛。遽爾夏屆。恭請侍學節度。近更如何。憑聞執事。上重菴別紙。自道有入病云。非惟執事。人孰無病。若知如此是病。則便不如此是藥也。竊恐執事之病所祟。則驕吝也。入者之相因交攻。理勢固然。古聖有云。如有周公之才之美。使驕且吝。其餘不足觀也。蓋吾輩淺劣。才讀數十卷書。便自高大。其病誠難醫也。此非菖蒲茯苓。如干草劑所可補治。迨其病痼之未深。急急下手。以敬畏謙遜。爲和中之方。日日調服。略不間斷。勿以小愈而止。如許幾十年。庶可見效。勿委以庸醫常談。而試服之如何。此漢之病。若錄之。則非止爲人。然莫能自治。而讓與神丹妙方於別人。慚愧尤切。餘神昏不戩。吾南先生文集卷之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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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문적을 수정하고 용동의 이 참판 집으로 갔는데, 간행소의 유사가 문적을 다 산삭(刪削)하였으므로 종일 용동에 머물렀다. ○修整文蹟, 往龍洞李參奉家, 則刊所有司, 皆刪削文蹟, 故終日留龍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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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 전에 박영규(朴營奎)가 내려가므로 집에 편지를 써서 부쳤다. 밥을 먹기 전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밥을 먹은 뒤 회동으로 가서 송 장성을 만나, 그 삼촌 송익정(宋翼廷) 씨를 위문하고, 또 그 독자(獨子)의 상을 조문하였다. 송지순의 집으로 내려와 잠시 얘기를 하고 왔다. ○朝前, 朴營奎下去, 故修付家書。 食前, 往貞洞, 暫話而來。 食後, 往晦洞見宋長城, 慰其三寸翼廷氏, 又吊其獨子喪。 下來持淳家, 暫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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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밥을 먹은 뒤 용동으로 가서 종일 놀며 쉬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구안(돈화문(敦化門) 앞길) 약방으로 가서 내일 거동(擧動, 임금의 행차)할 때 여기 와서 구경하겠다는 뜻을 언급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食後, 往龍洞終日遊憩, 而來路, 往洞口內藥房, 以明日擧動時, 來此觀光之意言及, 而還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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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밥을 먹은 뒤 길을 떠날 무렵, 마침 암자 아래를 지나는 상선(商船)이 있어서 어디로 가는지 물으니 공주로 간다고 하였다. 뱃사공을 불러 급히 배에 올랐다. 배를 띄운 지 몇 리 못 가서, 바람과 일기가 순조롭지 못해 도로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올랐다. 선덕(先德) 객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삼거리 객점을 지나 발치(發峙)100)를 넘어 이인(里仁)101) 객점에 이르렀다. 잠시 쉬고 나서 우금치(于今峙)102)를 넘어 공주 화산교(花山橋)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食後, 離發之際, 適有商船之過菴下, 故問其所向, 則往于公州云也。 招津夫急登船。 浮江數里, 以風日之不順, 還下船登陸。 抵先德店午飯。 歷三巨里店, 越發峙, 抵里仁店。 暫憩後, 越于今峙, 抵公州花山橋店留宿。 行七十里。 발치(發峙) 충청북도 충주시의 직동과 살미면 재오개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 삼남대로로 통하는 대로의 첫 고개였다고 한다. 이인(里仁)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이다. 우금치(于今峙) 우금치(牛禁峙)를 말한다. 공주 분지의 남쪽 끝에 낮은 안부를 이루어 형성된 고개로 높이가 약 100m이며, 부여에서 공주 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다. 동학운동 때 관군과 싸워 동학 농민군 10만 명이 전사한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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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八月 봄에 상경하였을 때 재동(齋洞)의 육충사(六忠祠)를 예조에 재록(載錄)하는 일로 예조에 소장을 올렸으나 육충사(六忠祠)가 아직도 사액(賜額)되지 않은 것이 은전(恩典)의 흠이었다.《사원록(祠院錄)》에 삼가 마땅히 써서 들여야 하니 이전에 받은 제사(題辭)를 재록(載錄)하기위해 장방(長房)59)으로 들어갔는데, 서리 배광옥(裵光玉)이 말하기를, "《사원록》 중 전라도권이 규장각(奎章閣)에 들어있으니 지금 바로 재록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올 시기를 묻자 "조만간에는 기약할 수 없다"라고 하므로 직접 보지 못하고 돌아왔었다.이번 가을 문중에서 또 나더러 가서 만나라고 했기 때문에 8월 그믐날에 길을 나섰다. 가아(家兒, 아들)를 데리고 천노(千奴)에게 짐을 지게 하여 과역(過驛) 시장 근처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노송정(老松亭)에 이르자, 천노(千奴)가 다리 병이 난 탓에 도로 들여보내고 우연히 사교(四橋)의 상덕(尙德)을 얻어 짐을 지게 했다. 탄포(炭浦)에 이르자 비가 내려 가아(家兒)는 마륜(馬輪)으로 가고, 나는 곧 비를 무릅쓰고 사교(四橋)의 가교(柯橋) 댁에 이르러 묵었다. 春間上京時, 以齋洞 六忠祠 春曹載錄事, 呈于禮曹, 六忠祠之尙未宣額欠典也。 《祠院錄》, 謹當書入, 向事之題, 載錄次入長房, 則書吏 裵光玉曰: "《祠院錄》 全羅道卷, 入奎章閣, 則今方載錄, 無可奈何"云, 故問于出來之, "早晩無期"云, 故不得親見而來矣。 今秋門中, 又以余往見, 故八月晦日發程, 而率家兒, 使千奴負, 至過驛市邊療飢。 抵老松亭, 千奴以脚病之致, 還爲入送, 偶得四橋 尙德負卜, 至炭浦雨作, 家兒往馬輪, 余卽冒雨, 抵四橋 柯橋宅留宿。 장방(長房) 조선시대 각 관청에서 서리가 쓰던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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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임진년(1832, 순조32) 윤(潤) 9월 22일. 우리 종중의 족보 일로 오후에 출발하였다. 정암(鼎岩) 주점에 이르러 무열(武說) 씨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열 씨가 와서 함께 유숙하였다. ○壬辰閏九月二十二日。 以吾宗譜牒事, 午後發程。 抵鼎岩酒店, 留待武說氏矣。 不移時踵至1) 仍與同留宿。 至 저본에는 '止'로 되어있으나, 다수의 용례와 문맥에 따라 '至'로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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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동이 틀 무렵, 궐내에서 소찰(小札)이 도착하였는데, 주인 영감이 전 완백(完伯)으로 있을 때 죄인이 첩을 거느린 일로 삭직까지 당하였다니, 한탄스럽다. 담종(痰腫)에 독기(毒氣)가 마구 퍼진데다가 극심한 추위로 종일 차동에서 머물렀다. 平明自闕內小札來到, 主人令監, 以前完伯時罪人率妾事, 至於削職, 可歎。 痰瘇大端肆毒, 且以極寒, 終日留車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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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오늘도 몹시 추웠다. 주동(鑄洞)과 차동(車洞)에 사내종을 보내면서 화살처럼 빨리 돌아오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날씨가 추운 데다가 종기는 빠른 시일 안에 회복될 가망이 없고, 추운 날씨에 길을 떠나 바람에 상할까 염려스러워 덩그러니 여막(旅幕)에 앉아 있으니 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마음이 매우 답답하여 큰 병이 될 것만 같으니, 이를 장차 어찌할꼬. 又極寒。 送奴於鑄洞及車洞, 而還歸思如矢, 而日寒如此, 且瘇氣無時日快復之望, 當寒作行傷風, 可慮。 塊坐旅幕, 此何景色。 思之鬱鬱, 若成大病, 此將奈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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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이날은 바로 조비(祖妣)의 제삿날이다. 마음이 매우 심난하여 하루 종일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밤에 꿈자리도 뒤숭숭하였으니, 아마도 집안 걱정 때문인 것 같다. 밤에 일어나 홀로 앉아 있다가 한참 뒤에 다시 누웠다. 是日卽祖妣祀日也。 懷事甚惡, 終日不出一步。 夜夢又煩亂, 想必家中之思慮所致也。 夜起獨坐, 移時就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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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출발하여 벌교(筏橋)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서령(西嶺)1)을 넘어 정문등(旌門登)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무동정(舞童亭)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다음과 같이 절구 1수를 읊었다.다행히 우리 일가붙이 예닐곱 사람이(幸我同宗六七人)함께 천릿길을 가 조상을 극진히 섬기네(聯笻千里別親親)때는 9월 노란 국화 피는 시절로(時維九月黃花節)붉은 단풍으로 단장한 산이 면면이 새롭네(紅葉粧山面面新) ○發程, 抵筏橋朝飯。 越西嶺, 抵旌門登午飯。 抵舞童亭留宿。 吟一絶曰: "幸我同宗六七人, 聯笻千里別親親。 時維九月黃花節, 紅葉粧山面面新。 " 서령(西嶺)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추동리 석거리재이다. 벌교에서 서울 방향으로 갈 때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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