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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밥을 먹은 뒤 송상오를 조문하고 출발하였다. 만마동(萬馬洞)을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절구 한 구절을 읊었다.만마동 산골에 나뭇잎 떨어지는 가을(萬馬關山落木秋)기암괴석은 길가에 우뚝우뚝 솟아있네(奇岩怪石路頭頭)무성한 신록은 단풍 든 계절만 못하니(繁陰不若丹楓節)누가 나보다 먼저 이 누정을 읊었을까(先我何人詠此樓)정자동(亭子洞)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부내(府內)의 전성철(全聖哲)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저녁참에 북문 밖으로 가서 송약수(宋若洙) 씨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그 아우 송민수(宋民洙) 씨 집에 들렀다. 그와 함께 주인집으로 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갔다. ○食後, 吊宋象五而發。 過萬馬洞, 吟一絶曰: "萬馬關山落木秋, 奇岩怪石路頭頭。 繁陰不若丹楓節, 先我何人詠此樓。" 抵亭子洞午飯。 抵府內全聖哲家留宿。 行六十里。 夕間, 往北門外, 見宋若洙氏暫話。 來路入其弟民洙氏家。 與之偕來主人家, 暫話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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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대곡(大谷) 형님, 동재(洞哉)와 함께 남계(南溪) 정내성(丁乃成)을 찾아갔으나 내성은 서재(書齋)에 갔기에 잠시 정사문(丁思文) 씨를 만나 보았다. 서재(書齋)에 이르러 신 승지(愼承旨)의 서간(書簡)을 내성에게 전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물녘에 재동(齋洞)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은 뒤에 호치(虎峙)에 가서 대옥(大玉) 부모의 병환을 묻고, 그대로 머물렀다. 食後與大谷兄主及洞哉, 訪南溪 丁乃成, 則乃成去書齋, 故暫見丁思文氏。 抵書齋, 傳愼承旨書簡於乃成, 移時敍話, 乘暮入齋洞。 夕飯後往虎峙, 問大玉親患, 仍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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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아침을 먹고 나서 오는 길에 윤동(輪東)에 들어가 성윤(聖允)의 길례(吉禮)를 묻고, 탄포(炭浦)로 출발하였다. 경수(敬叟) 씨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노송정(老松亭)주막에서 점심을 먹었다. 남면(南面)의 가산(佳山) 김이준(金履俊) 집에 들러 옷보따리를 찾았다. 오는 길에 석촌(石村)의 송계석(宋啓錫) 집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저물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食後來路入輪東, 問聖允吉禮, 而發炭浦。 逢敬叟氏, 暫話後, 至老松亭酒幕午飯。 入南面 佳山 金履俊家, 推尋衣褓。 來路入石村 宋啓錫家, 暫話後, 乘暮還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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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길을 나서 용계점(龍溪店)에서 점심을 먹었다. 곡성(谷城) 교촌(校村) 오익(吳熤)의 집에 이르러 묵었는데, 오익은 바로 천평(泉坪) 고창진(高昌鎭)의 사돈집이다. 고창진의 아들이 현재 처가에 있기 때문에 만나 보려고 왔다. 이날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아서 몹시 괴로웠다. ○發程抵龍溪店中火。 抵谷城 校村 吳熤家留宿, 吳熤卽泉坪 高昌鎭査家也。 昌鎭之子, 方在其妻家, 故欲見而來矣。 是日風日極不佳, 苦哉苦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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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길을 나서 오수(鰲樹)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임실 국평(菊坪)2)에 이르러 마을 어귀의 주점(酒店)에 노복과 말을 머물게 하고 종인(宗人) 송기렴(宋基濂)의 집에 들어갔으나, 종인은 마침 출타 중이어서 데리고 오라고 그의 아들을 보냈다. 저물녘에야 들어왔기 때문에 길을 떠나지 못하였는데, 하서의 맏아들 전(椣)이 눈병을 앓은 지 지금 몇 달이 되어 현재 병으로 누워 있다고 하니, 매우 걱정스럽다. 저녁을 먹은 뒤에 하서와 함께 노복과 말이 있는 주점(酒店)으로 나와서 묵었다. ○發程抵鰲樹中火。 抵任實 菊坪, 留奴馬於村前酒店, 入宗人基濂家, 則宗人適出他矣。 以偕來之意, 送其子矣。 乘暮入來, 故不得發程, 而夏瑞之長子椣, 以眼疾今至數朔, 方在病臥云, 爲之悶悶。 夕飯後, 與夏瑞出來奴馬所在酒店留宿。 국평(菊坪)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대명리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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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문적의 수정(修正) 때문에 주인집에 남아있었다. 오후에 정동(貞洞)21)에 갔는데 이 석사가 없었다. 다만 그의 아우 이훈(李壎)하고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니, 석사 이혜길(李惠吉)이 혼자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이혜길이 집으로 가자고 청하기에 그와 함께 가서 그대로 유숙하였다. ○以文蹟之修正留主人家。 午後往貞洞, 李碩士不在。 只與其弟壎, 暫話而來, 則李碩士惠吉專訪來待矣。 夕飯後, 惠吉請往其家, 故與之偕往, 仍留。 정동(貞洞)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이 현재 정동 4번지에 있던 데서 '정릉동'이라 하였던 것을 줄여 정동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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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아침 전 율지와 정동으로 가서 거기서 아침을 먹고 오후에 나왔다. 박 상인이 밥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동향 사람들은 날마다 내려가는데, 나와 율지는 혜길이 함께 가자고 하는 통에 발이 묶여, 함께 가지 못해 몹시 괴로웠다. 혜길은 내일 새벽에 나온다는 뜻으로 약속하고 나왔다. 오전에 정동에 있을 때 안채에서 음식을 한 상 내와서 배불리 먹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朝前, 與聿之往貞洞, 仍爲朝飯, 午後出來。 朴喪人食後發去。 同鄕之人日日下去, 而余與聿之拘於惠吉之同行, 未得同行, 悶悶。 惠吉則明曉出來之意相約而出來。 午前在貞洞時, 自內間食物一床出送, 故飽喫。 可感可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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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새벽에 출발하여 연봉정(延逢亭)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간천교(艮川橋) 가에 이르러, 가덕(加德)에서 올라오는 연산의 송상철(宋相喆) 형제를 만났다. 길가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그대로 헤어졌다. 부(府) 서쪽 주인집으로 들어와 유숙하였다. ○曉發, 抵延逢亭朝飯。 抵艮川橋邊, 逢連山宋相喆兄弟之自加德上來。 暫話路邊, 仍爲分路。 入來府西主人家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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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중군(中軍)을 만나고 싶어, 밥 먹기 전에 중군(中軍)을 만나러 갔다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나왔다. 감영의 수리(首吏) 송덕일(宋德一)을 찾아보고 나와 주인집으로 왔다. 아침을 먹고 일행과 길을 나누어, 나는 순창(淳昌)으로 길을 잡고 오서 객과 동행하였다. 용두치(龍頭峙)53)를 넘어 모음치(毛音峙)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欲見中軍, 食前, 往見中軍, 暫敍後出來。 尋見營首吏宋德一出來主人家。 朝飯, 與同行分路, 余則以淳昌作路, 與烏栖客作行。 越龍頭峙, 抵毛音峙留宿。 용두치(龍頭峙) '용머리 고개'라고 한다. 고개의 북쪽에는 전주천과 전주 구도심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김제시로 이어진다. 산의 모양이 용의 머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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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어제 날씨가 몹시 추웠기 때문에 일찍 출발하는 데에 겁이 났다. 닭이 울자 말에게 꼴을 먹였다. 평산(平山) 읍내까지 25리를 가니 날이 밝기 시작하였다. 응봉(鷹峯) 주막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청석동점(靑石洞店)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105리 길을 갔다. 以昨日極寒, 㥘於早發。 鷄鳴秣馬。 至平山邑內二十五里, 日始明矣。 至鷹峯幕, 朝飯秣馬。 至靑石洞店留宿。 是日行一百五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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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닭이 울자 출발하여 오정문(五井門)에서 송경(松京)까지 25리를 가서 아침밥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시종 혼(混)과 춘백(春白)이 송경(松京)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 한참 지체되었는데, 일이 제때에 처리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나만 먼저 출발하였다. 청파(靑坡)까지 3리쯤 못 가서, 우연히 흥양(興陽) 사람 신막금(申莫金)을 만났다. 천 리 밖 길에서 고향(故鄕) 사람을 만났으니, 그 기쁘고 다행스러움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있겠는가.날이 저문 까닭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고 즉시 동파여점(東坡旅店)으로 향하였다. 해가 다 넘어가서 더 길을 갈 수 없을 듯했는데, 임진강(臨津江)이 반쯤 얼어붙어 무사히 건너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에 특별히 얼음을 깨서 운항하는 배가 있다고 하므로 급히 서둘러 나룻가에 달려가니 해가 뉘엿뉘엿 어두워지고 있었다. 즉시 강을 건너 임진점(臨津店)에 머물렀다. 이날 95리를 갔다. 鷄鳴發行, 自五井門入至松京二十五里, 朝飯秣馬。 盖以混傔及春白, 有松京處置事, 移時遲滯, 而事不趁時區處, 故不得已, 余獨先發。 至靑坡未及三里許, 忽逢興陽人申莫金。 千里之外路, 逢故鄕人, 其喜幸勝言? 以日暮之故, 不得久話, 卽向東坡旅店, 則日力似不可前進, 而聞臨津半氷, 利涉極難矣。 特以敲氷行船云, 故急急馳至津頭, 日將黃昏矣。 卽爲渡江, 留臨津店。 是日行九十五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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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밤사이 눈이 그쳤다. 한밤중에 말에게 꼴을 먹이고 서흥(瑞興)까지 60리를 가니 아침 해가 비로소 떠올랐다. 날씨가 몹시 추워서 오후에 길을 나섰다. 총수(叢數)까지 50리를 가서 묵었다. 내려갈 때는 저물녘에 이 점(店)에 들어가 새벽에 출발하였기 때문에 산수(山水)를 두루 구경할 수 없었다. 지금 푸른 벼랑의 청강(淸江)을 보니 또한 아름다운 강산(江山)인데, 관사(館舍)만이 우뚝 서 있고 거주하는 백성들은 모두 탄막(炭幕)살이로 살아가니 산수가 주인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애석하였다. 以夜間雪霽。 夜半秣馬, 至瑞興六十里, 朝日始紅。 日氣極寒, 午後登程, 至叢數五十里留宿。 下去時, 黃昏入此店, 曉頭發行, 故未得周觀山水矣。 今觀蒼壁淸江, 亦好江山, 而但館舍巍然, 居民皆是以炭幕姿生, 惜乎山水不得主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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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일찌감치 사헌부 유사를 보내 경주인(京主人)34)과 흥양(興陽) 호장(戶長)을 불러오게 했는데, 유사가 그들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가 애초에 부르러 가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고 분통이 터졌다.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에 갔다. 오는 길에 군택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오후에 경주인이 와서 말하기를, "호리(戶吏)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니 괴이하고 괴이하다. 早送憲府司有, 招來京主人及興陽 戶長, 而司有者, 以不來爲言, 可知其初不往招, 憤憤。 食後往鑄洞。 來路逢君澤, 立談而來。 午後京主人來言, "戶吏不來"云, 可怪可怪。 경주인(京主人) 중앙과 지방의 연락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지방에서 서울에 파견된 향리를 말한다. 경주인은 고려 중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계속되어, 상경하는 지방민 및 하급관리 등에게 잠자리와 식사의 편의를 제공하고, 공무 또는 군역 복무를 위해 서울에 올라온 관리ㆍ군인들이 각 관청에 배치되어 종사할 때 그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책임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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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睡聽蠶食葉 枕畔飜驚夢迷茫細雨聲天淸星萬點月白夜三更無乃松風響胡然壁蟋鳴側聽仍一笑耿耿蠶燈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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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송진회(宋鎭會)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光武六年一月日 郡守 李範喬 宋鎭會 光武六年一月日 興陽郡守 宋鎭會 전라남도 고흥군 興陽郡印(적색, 정방형, 4.5×4.5), 興陽郡守之章(적색, 정방형, 2.5×2.5),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02년(광무 6)에 송진회(宋鎭會, 69세)가 흥양군(興陽郡)에서 발급받은 호적표(戶籍表). 1902년에 宋鎭會(69세)가 興陽郡에서 발급받은 戶籍表. *주소: 全羅南道 興陽郡 豆原面 鶴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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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정덕철(鄭德哲)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光武六年一月日 郡守 李範喬 鄭德哲 光武六年一月日 興陽郡守 鄭德哲 전라남도 고흥군 興陽郡印(적색, 정방형, 4.5×4.5), 興陽郡守之章(적색, 정방형, 2.5×2.5),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02년(광무 6)에 정덕철(鄭德哲, 79세)이 흥양군(興陽郡)에서 발급받은 호적표(戶籍表). 1902년에 鄭德哲(79세)이 興陽郡에서 발급받은 戶籍表. *주소: 全羅南道 興陽郡 豆原面 鶴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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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박경진(朴璟鎭)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표 壬寅月日 行郡守 幼學 朴璟鎭 壬寅月日 興陽郡守 朴璟鎭 전라남도 고흥군 興陽郡印(적색, 정방형, 4.5×4.5), 興陽郡守之章(적색, 정방형, 2.5×2.5), 고흥 학림 여산송씨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1902년(광무 6)에 박경진(朴璟鎭, 19세)이 흥양군(興陽郡)에서 발급받은 호적표. 1902년에 朴璟鎭(19세)이 興陽郡에서 발급받은 戶籍表. *주소: 豆原面 鶴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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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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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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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明洞林卉雜詠【二十六首】 梅陋卷春風入。幽人樂未央。階梅白如玉。自爾動淸香。拱北花舊年夫山樹。今日明洞栽。此花吾所愛。枝枝拱北開。牧丹春日題花品。牧丹如彼穠。堪笑山中客。侈粧富貴容。芍藥芍藥白而赤。庭除開數叢。採根醫俗病。功與朮蔘同。桃籩實桃爲下。花開亦片時。儂非避世者。不怕漁郞來。葵花小院葵花發。太陽在上臨。誰知那箇物。自保中丹心。四季花春風晩發了。夏日亦如之。秋霜與臘雪。此時花最奇。柳門前垂碧柳。宛然學先生。時有淸風起。午陰聽流鸎。梧風前聲滴雨。月下影流珠。待到栽琴日。山水我自娛。杏雙杏立庭畔。逢春自發榮。洙壇千載後。此樹最多情。桑柔桑葉沃若。蠶婦採無餘。生靈衣被日。知莫爾功如。芹山廚多別味。採採澗中芹。自愧誠心薄。無由獻我君。栗園栗當秋熟。甲中箇箇黃。夜來風雨急。小兒曉提筐。柹霜柹甘如蜜。團團滿樹紅。最憎烏鵲集。深啄半邊空。梨花發色如雪。實圓味似氷。時有佳賓至。摘來小盤登。棗珍果棗爲上。秋來味正甘。安期云此喫。仙術摠虛談。榴五月花方發。九秋實正肥。中有紅珠滿。自然露光輝。木果此山多木果。何望報瓊瑤。忍說先人病。幾年賴汝調。橘橘林秋霜白。黃香箇箇圓。巴邛邦處在。不要學棋仙。蘭谷蘭日猗猗。含薰不自語。衆芳易穢蕪。紉佩我延佇。蓮秋水淸如鑑。芙蓉艶不塵。濂翁一去後。愛汝有何人。菊山空木葉落。晩節寒花開。盈把嗅香立。無人送酒杯。楓楓樹倚塘立。綠陰滿塘斜。風霜搖落日。紅葉亦復嘉。檜山谿伴石逕。雙檜十尋高。白雪乾坤滿。蒼翠獨雄豪。竹猗猗君子竹。高出碧雲端。胡爲俗眼賤。霜雪不知寒。松南山松樹密。影與翠雲齊。此地得高友。歲暮共寒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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